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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길 끝에 다시 - 소설로 만나는 낯선 여행
함정임 외 지음 / 바람 / 2014년 4월
평점 :

#1. 돋보이는 기획의 '도시와 나'를 그대로 닮아있는 개성 가득한 이야기들의 향연
처음 '도시와 나'를 읽으며 일본소설에서나 만나는 독특한 기획의 소설집이라 반갑고 신선했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도시와 나'가 해외의 여러도시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다양한 이야기 모음이라 신선했다면, 이번 소설집 '그 길 끝에 다시'는 국내의 여러도시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다 보니 신선하면서도 친근한 느낌이 가장 큰 특징이었습니다.
이러한 단편 소설집의 가장 큰 유익은 정해진 한정된 테마를 담아내는 작가들 제각각의 개성이 작품을 통해 선명하게 드러난다는 점입니다. 독자들은 이를 통해 다양한 이야기를 풍성하게 즐길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그 길 끝에 다시'는 역시나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너무도 개성 넘치는 작품들이 오롯이 담겨 있었습니다. 기본 테마인 '도시'와 '여행' 두가지를 기본으로 짧은 이야기속에 함축적으로 표현해 내는 작가들의 역량을 대하며 감탄하게 되고, 또 서로 너무 다른 방식의 설계와 접근과 풀이를 대하면서 진심으로 놀라게 되었습니다.
#2. 흔히 단편 소설들을 만나는 수상작 모음집과 차별되는 편안하고 특색있는 이야기들의 매력
어차피 기본적으로 해외의 도시와 독특한 문화를 접목시킨 이야기가 펼쳐졌던 ‘도시와 나’를 읽을 때는 잘 못 느꼈던 부분입니다만, 익숙한 국내 도시를 배경으로 쓰여진 이번 작품집 ‘그 길 끝에 다시’를 읽다보니 확실히 차별화된 특색을 느꼈습니다. 흔히 다양한 문학상 수상 작품집을 읽을 때면 느끼는 것은 작품들이 하나같이 지나치게 무겁다는 것이었습니다. 문학상 마다 평가 포인트가 있고, 역량을 평가하기 위한 우리 평단의 일관성이 그대로 드러난다고 해야 할까요? 그 코드에 맞추다보니 기본적인 무거움이 한결같이 존재하고 거기에 약간의 차별화된 부분이 들어갈 때 높은 평가를 받게 되는 것이지요. 저는 그것이 독자들의 기대와는 별개로 변함없이 흘러가는 평단의 강박이라고 생각합니다.
다행스럽게도 문학상과는 관계없이 발표되는 이 소설집에서는 그러한 강박이 거의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파격적인 느낌의 작품도 있고 참신한 느낌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지나치게 무겁지 않아 잘 읽어지고 편안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묘한 감동까지 발견하게 되어 참으로 행복한 기분으로 책을 내려놓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3. 개인의 취향에 따라 골라 읽을 수 있는 재미
물론 골라 읽지는 않았지만 쭈욱 읽다보니 좀 더 취향에 맞아 좋았던 작품이 있고, 약간은 기대에 못미치는 느낌 또는 이건 뭐지? 하는 느낌이 약간 남는 작품도 있었습니다. 완전히 소화가 안되는 느낌의 작품을 만나면 살짝 좌절하기도 하고 말이죠.
제 취향에 너무 잘 맞아 흡족했던 작품은 첫 번째 백영옥 작가님의 ‘결혼기념일’이었습니다. 이 작품은 정말 정말 너무 좋았습니다. 이 작품에서 개인적으로 빵 터지면서 이 책 전체에 대한 기대치를 극한으로 올려놓았습니다. 주인공의 상황 설정과 여정, 감정표현들이 너무 좋았고 공감이 갔습니다. 전체적인 구도가 너무 좋았습니다. 물론 그래서 다음 단편에서 실망을....
제목처럼 결혼생활과 이혼 후의 이야기가 펼쳐지는데 결혼생활에 대한 묘사가 상당히 공감을 불러일으켰습니다.
“큰 성공이 큰 행복을 의미하진 않는다. 돈을 많이 벌면, 집을 넓히면, 좋은 가구를 들여놓으면 행복해질 것이라 막연히 생각했던 그때의 우리가 알 리 없는 진실이었다”p.21
"지금 돌이켜보면 행복은 무료함 그 자체, 아무 일도 없음에 있을지도 모른단 생각이 든다." p.22
"이혼할 지음, 호탕하던 그의 성격도, 웃음도, 그에게선 점점 사라져버렸다. 남편은 해파리처럼 투명한 인간으로 변해갔다. 위선도 위악도 없는 투명한 인간, 겉과 속이 똑같아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는 인간, 보호색도, 어떤 색깔도 가지지 않는 무색 무취의 인간, 그는 그저 본능에 충실한 인간으로 변해가고 있었다."p.26~27
인생에 많은 행과 불행이 있지만 결혼생활에 있어 경제적 파탄은 사실상 관계를 정상적으로 유지하기 어렵게 만드는 큰 불행입니다. 함께 힘을 합쳐 이겨내야 하는 것이 인생의 지혜이지만 좀 더 솔직히 말하자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신뢰하고 이겨내는 부부는 사실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이런 불행과 잊혀지는 것들에 대해 감각적으로 잘 표현해주고 있어 너무 좋았습니다.
정말 마음에 들었던 또 하나의 작품은 바로 함정임 작가님의 ‘꿈꾸는 소녀’ 였습니다. 외국인 소녀의 몽환적인 독백과 상실감을 품고 있는 노총각 G의 건조한 서사가 교차 진행되는 방식이 정말 독특하고 매력적이었습니다. 제가 살던 부산이 배경이었던 점, 그 익숙함이 더욱 좋았습니다.
이기호 작가님의 ‘말과 말사이’는 꽤나 충격적이었습니다. 흐흐... 미녀 작가 윤고은님의 ‘오두막’은 솔직히 좀 익숙한 죄의식과 치유코드라 신선함이 떨어졌는데 마지막 상징적 장면이 임팩트 있게 와닿았습니다. 한창훈 작가님의 ‘여수 친구’도 또 한가지 충격적이고 황당한 한 인물에 대한 묘사가 특징있었습니다. 김미월 작가님의 ‘만보걷기’는 마무리가 약간 약하다는 느낌이 있었습니다.
#4. 기타 등등 남겨야 할 말
1) 작품의 후반부에 첨부되어 있는 ‘작가 인터뷰’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거의 50페이지에 육박하는 ‘작가 인터뷰’는 작품에 대한 작가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고, 작가들만의 독특한 상황과 시각, 생각을 조금 훔쳐보는 기분이어서 무척 신선하고 좋았습니다. 제가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작품속 의미들을 설명해주는 느낌도 있어서 좋기도 했는데, 이거 참, 저의 역량부족이겠지만 정말 좋은 작품은 따로 설명을 안해도 쉽게 이해해야하는 것인데 말입니다.(라고 남탓으로 마무리를...)
2) 표지는 개인적으로 취향이 아닙니다...
3) 책은 그린라이트지로 제작된 것으로 생각되는데 개인적으로 너무 좋아하는 지질입니다. 가볍고 느낌이 좋은 편입니다.
4) 여러작가님들이 참여한 단편 소설집은 참 다양한 맛이 있어서 좋습니다.
5) 느낌좋고 의미있는 이런 기획 소설집은 앞으로도 시리즈로 쭈욱 출간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문학상 수상을 위해서가 아니라 독자를 위한 다양한 시도가 이어지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다음편도 기대하고 있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