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스크랩 - 1980년대를 추억하며 비채 무라카미 하루키 작품선 5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권남희 옮김 / 비채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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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하루키가 각광받은 이유를 어렴풋이 생각하게하는..

   막연히 일반화시킬 문제는 아니지만 한국인들보다 훨씬 미국문화에 호의적이고 개방적으로 대했던 일본의 역사(진짜 그랬는지 자신은 없지만)를 생각해 보면 하루키센세의 라이프스타일은 일본인들에게 로망처럼 여겨질 소지가 다분했습니다. 하루키의 여러 작품속에 나타나는 특징들을 보면 일본의 전통적인 부분을 찾기가 힘듭니다. 심지어 이름만 아니면 저자가 일본인인지 전혀 모를 내용들이지요. 특히 그의 다양한 에세이들에 나타나는 소설가 외적인 그의 사고, 행동양식과 취향 등을 살펴보아도 그저 쿨할 뿐 일본인스럽지 않은 것이 특징이라면 특징입니다. 하루키의 작품자체도 전통 평단에 좋은 이미지는 아니었을것으로 미루어 짐작될만한 성격이고 평단의 반응과 대중의 지지는 반비례까지는 아니더라도 꽤나 일치하지 않는 것을 생각해보면 그러거나 말거나 마이웨이하는 작품속 스타일마저 쿨해보입니다. 그러기에 세계적으로 호응을 얻기에 유리한 것이기도 하구요.

   하루키의 에세이들을 통해 하루키에 대해 떠올리게 되는 이미지는 왠지 전통 평단의 어르신들께 "하이!", "쓰미마셍!!" 하며 머리를 연신 굽신거리는 여타 일본작가들의 모습과 '흠..' 하며 멍하니 쳐다보다 휙 나가는 하루키의 모습이 대비되어 떠오르는 느낌이랄까? 뭐 그런것 느낌적인 느낌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루키센세는 일본인들이 동경할 법한(또는 그럴것이라고 제맘대로 추정하는) 문화와 스타일을 마치 날 때부터 장착하고 태어난듯이 자연스럽게 가지고 있다보니(저는 하루키의 이런 취향은 다분히 의도되었다가 고착된 것은 아닐지 그렇다면 하루키는 대단한 수완가가 아닐지 의심도 해봅니다만) 일본인들에게 묘한 환호와 동경과 지지를 받는 하나의 요소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것입니다.

#2. 다분히 하루키의 하루키적인 모습이 여실이 드러나는..그러나 의외로 공감할 수 없는...

   단순히 개인 에세이라고 하기엔 포맷이 정해져 한정되어 있다보니 애매한 장르의 글들이 담겨있어 기고문 모음이라고 하거나 칼럼 모음집이라고 보는 것이 더 적절할 지도 모를 만한 이 책은 어쩌면 하루키가 약간 간접적인 방법으로 1980년대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분야를 드러낸 것으로 볼 수도 있겠습니다. 잡지를 훑어보고 거기서 쓸만한 소재를 발췌해서 거기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덧붙이는 희한한 형태의 글들이다 보니 그 내용들은 해당 잡지가 무엇이냐에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는데, 역시나 하루키스럽게도 발췌해내는 대상 잡지는 일본 잡지가 아니라 외국의 유력 잡지들이 되겠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다 보니 1980년대 미국인지 유럽인지 모를 곳들의 이야기가 자연스레 담겨져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하루키의 외형적인 모습은 전형적 일본인인데 그 내용물은 일본스럽지 않다보니 풀어내는 이야기마다 일본스럽지 않았습니다.
   문제는 여기에서 발생했습니다. 제가 기대한 바와 포인트가 어긋나 버린 것이지요. 왜냐면 저는 80년대의 향수를 흠뻑 느끼고 싶었던 것이고, 하루키가 감탄하거나 호기심에 넘쳐하는 내용들을 저도 같이 공감하면서 '캬~~ 그땐 그랬지, 참.. 그랬어...'라고 하고 싶어 안달이 났던 것인데,  미국에 누가 어떻고, 어느 배우가 어떻고 이래버리면 저는 '으잉? 이 양반이 누굴꼬?', '음... 이사건은 어떤 사건이지?' 뭐 이런 반응을 보일 수 밖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함빡 기대했다가 '생각보다는 그다지 흥미롭지 않은데?'하는 반응을 보일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다른 분들은 대체로 무척이나 즐거이 읽으셨던 것으로 보아, 워낙 제가 문화적 소양이 없었던 것이 이런 참사의 원인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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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슬쩍슬쩍 일본을 디스하는 다국적 인류 하루키센세..

   하루키센세가 딱히 일본스럽지 않다고 자꾸 얘기하는 제가 좀 이상한 듯도 하지만, 묘하게 하루키센세는 일본스러운 전통이나 일본사람, 문화에 대한 불만스러움을 자주 표출합니다. 고급스럽게 스모그가 낀 것처럼 은근슬쩍 말입니다. 이 책에서도 무척이나 자주 그런 뉘앙스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처음 서문부터 지속적으로 책 전체에 걸쳐 디스가 계속됩니다.
"수준 높은 두 잡지 <에스콰이어>와 <뉴요커>의 엄정함에는 매번 감탄했다. (중략) 이런 잡지를 계속 보다보니 이제 일본 잡지는 당최 못 읽겠다. 일본 잡지는 어째서 그렇게 연재와 험담과 소문과 대담이 많을까?" P.005
"일본에서는 정치만화를 보는 것보다 TV에서 나오는 정치평론가의 의견을 듣는 편이 훨씬 웃기다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는지?" p.075
"샘 셰퍼드와 제시카 랭은 현재 미국에서 가장 자극적이고 이상적이고 지적이고 아름다운 커플이 되었다. 일본으로 비유하자면.... 생각나는 사람이 없지만." p.186
​   만약 한국 소설가가 이런 태도로 글을 썼다면 아마도 저는 그다지 반갑지만은 않았을 듯 합니다. 물론 그런 상황은 아니니 심각할 것은 없지만 저도 모르게 거슬리더군요. 참, 샘 셰퍼드와 제시카 랭이 누군가 찾아봤더니 대단한 사람이지만 얼마전에 이혼했더군요. 황혼이혼이라고 해야하려나... 여튼 이 두사람 기사를 찾아보고 최근 사진도 보다보니 이 책이 쓰여진 당시와 현재의 시간적인 간극을 피부로 느낄 수 있더군요.
#4. 그래도 하루키니까..

   여러가지 이유에도 불구하고 중 후반쯤 가자 기대와 다른 내용으로 인한 저의 실망은 어느새 사라지고 하루키 특유의 유쾌함을 느끼고 있는 저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이 책은 실망이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이건 또 뭐란 말인가?' 혼란스럽더군요. 역시나 그래도 하루키였습니다.
   아, ​제가 가장 와닿았던 문장은 전혀 다른데 있었습니다. 컨트리 가수 보비 베어의 한마디였죠.
"​마음에 들지 않는 노래는 절대로 레코딩하지 않아요. 안그러면 그 노래가 크게 히트할 경우 죽을 때까지 불러야 하니까. 그런건 싫습니다." p.052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이 너무 잘 풀리면 싫어해야 할까요? 그렇게라도 해서 아내와 아이들이라도 풍족했으면 하는 마음은 잘못된 것일까요? 후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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