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평생 여행하며 살고 싶다 - 학교 대신 세계, 월급 대신 여행을 선택한 1000일의 기록
박 로드리고 세희 글.사진 / 라이팅하우스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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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평범한 여행에세이가 아닌 이유....

 

   요즘 한창 방영중인 K팝스타는 실력있는 출연자들의 무대를 보는 재미도 있지만 사실상 대한민국 최고의 프로듀서들의 심사평을 보는 맛이 쏠쏠합니다. 심자위원들은 위치가 위치인지라 늘 재능이 넘치는 예비스타들의 오디션은 물론 자사에 발탁된 연습생들의 무대를 질릴 정도로 보아왔던 터라 그들의 눈높이를 맞출만한 무대를 만나는 일은 흔지 않을 겁니다. 그런 그들도 감탄하며 놀라는 무대가 종종 있는데, 양현석 심사위원의 말을 빌리자면 '노래 잘하고 춤 잘추는 사람은 많지만 가장 놀랄 때는 전혀 예상치 못한 무대를 보았을 때'라고 합니다. 예상치도 못한 무대가 실력과 어우러질 때 깜짝 놀랄일이 생기는 것입니다.


   이책 [나는 평생 여행하며 살고 싶다]의 경우가 바로 그런 경우였습니다. 최근엔 정말 여행 에세이 홍수의 시대가 아닌가 싶을만큼 여행 관련 에세이가 너무 많습니다. 여행관련 정보를 제공하는 책들도 있고, 여행이라는 형식만 차용해오고 실은 그냥 감성 에세이인 경우도 있습니다. 솔직히 이 책도 그런 류의 감성에세이 중 하나로 생각하고 집어들었습니다. 그리고 초반에 "풍어"라는 제목의 짧은 글 한편으로 평범한 여행에세이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풍어]

 어부들의 축제에

초대받지 않은 갈매기들이 찾아왔다.

소란스럽다.

 

누군가의 안락과 풍요를 위해서

누군가는 희생되고

눈치 빠른 누군가는 중간에서 이익을 챙기는

 

세상을 담은 소란한 풍경 한판." p22.

 

 아무것도 아닌 듯 하지만 '어부들이 그물을 들어올리는 순간을 보며 이런 통찰을 하는 사람이라면 이 사람이 세계를 여행하며 풀어내는 감상들이 예사롭지 않겠구나!'하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2. 온몸으로 귀중한 시간으로 체득한 삶의 진리가 나를 설레게 한다.

 

   여행에세이에 자꾸 눈이 가고 손이 가는 이유는 역시나 우리가 하루하루 살아내고 있는 현실에서의 삶이란게 워낙에 녹녹하지가 않기 때문일 것입니다. 나보다 먼저 '꽉 짜여진 생활의 틀을 깨고 박차고 나가봤더니 이렇게 좋더라'라는 그들의 고백을 읽으며 떠나지 못하는 자들의 탈출욕구를 삭히는 것이겠지요. 고백이라기보단 선언에 가깝지 않나 싶네요. 그리고 그들이 선언하는 바에 따르면 늘 전전긍긍하고 여유없는 한국을 떠나면 전혀 다른 세계의 다양한 삶이 보이고 우리의 삶이 꽤나 경직된 삶이라는 것이 눈물나게 깨달아진다는 것입니다. 조금만 멀리서 바라보면 딱히 그리 동동거릴 일도 아니란 것이지요. 


" 한국이라면 아마 난리가 났을 것이다. 사람들은 오만상을 찌푸리고 정신적, 물질적 피해 보상을 운운하며 관계자를 채근했을 것이다. 한 사람의 초조는 옆 사람에게 전해져 짜증이 되고 그것은 다시 분노와 신경질로 몸피를 키워 결국 모두를 불쾌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나도 화를 내며 관리 소홀의 책임을 물었겠지. 사고를 대하는 이곳 사람들의 온화한 태도가 한국 사회와 선명하게 비교되었다." p50

 

    다양한 세상의 다양한 사람과 삶의 양태를 직접 본 자들만이 느낄 수 있는 통찰입니다. 나와 내 주변만 바라보면 너무도 당연한 권리임에도 불구하고 이 글을 읽는 순간 저 또한 상당히 부끄러웠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대접받고 인정받고 싶은 욕구는 점점 커지기 마련이니까요. 사는게 뭐라고 이리 바둥거리나? 라고 하지만 넉놓고 있을 수가 없는 현실앞에 슬퍼지기도 합니다.  

 

"상식은 늘 변한다. 상식은 자기 안에서만 통하는 헛된 믿음이다. 그 상식을 타인에게 강요하는 순간 상식은 폭력이 된다" p60

 

상식이 비상식이 되는 순간을 여러번 겪으면서 저자는 자신있게 말합니다. 상식이 헛된 믿음이 되고 폭력이 된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북 쪽은 민족이 갈라져 막혀있고, 삼면은 바다로 막혀있는 우리는 굉장히 편협한 사고를 하며 살고 있습니다. 이런 사실이 딱히 표가 나지 않는 이유는 비슷한 처지와 관념을 가진 사람들끼리 그것이 '상식이다'라고 서로 믿고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우리만 벗어나면 멘붕에 빠질 수 밖에 없으니 우리를 굳건히 지키는 수밖에 없겠지요. 이 책을 읽으면서 저도 저의 상식이 얼마나 헛된 것인지 생생하게 겪어보고 싶은 충동에 빠졌습니다.  

 

 

#3. 뒤틀린 프레임으로 강요받은 편견과 선입관을 깨뜨리는 경험의 힘...

 

   [나는 평생 여행하며 살고 싶다]를 읽으면서 가장 와닿았던 것은 사실 세상 곳곳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삶을 단순히 규격화시켜 동일한 잣대로 판단해서는 안된다는 점이었습니다. 그리고 미국이나 유럽 등의 이른바 선진국이 좋고, 아시아나 중동은 안좋다는 식의 되먹지 못한 선입관이 참 어처구니 없는 것이구나 하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지금도 마음 한 구석에는 그래도 깔끔하고 깨끗하고 개개인의 인권이 보장되는 것이 좋은 것이 아닌가 싶기는 합니다만 그 모든 생각들이 상대적이고 궁색한 사고라는 것이 저자가 한결같이 말해주고 싶어하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 파키스탄 사람들은 우리의 기준을 훨씬 상회하는 친절이 몸에 밴 사람들이었다. 나는 무슬림에 매료되지 않을 수 없었다. (중략) 언론을 통해 만나는 이슬람은 악마처럼 그려지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일부 근본주의 단체의 만행일 뿐, 몸으로 만난 이슬람 사람들의 심성은 천사 중의 천사였다." p185

 

   몸으로 부대껴 보지 않으면 관념으로 이해합니다. 이를테면 저의 경우는 이슬람권에 사는 수많은 사람들을 나쁜 기운, 뭔가 불편한 이미지로 관념화해서 덩어리로 대충 이해하고 규정하고 넘어가버렸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그 실체는 따뜻한 체온을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들의 환경과 지역이 그들을 규정하려고 할뿐 사실은 똑같은 인간이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잘난 우리보다 훨씬 마음이 고운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여행은 이를수록 좋다. 한 사회 안에서 살다 보면 사고도 고여 있게 된다. 유연하게 흐르는 사고를 하기 위해서는 온몸에 밴 습속을 뒤집어 놓는 먼 나라를 여행하며 멋진 사람들을 만나는 것만큼 효과적인 게 없다." p278


   할 수만 있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떠나고 싶습니다. 제가 아니라면 우리 아이들이라도 사고가 경직되기 전에 넓은 세계를 보여주고 싶습니다. (내가 본게 없어서 설명해줄 수는 없겠지만... 다행히 설명해서 될 일도 아니고..)



" 많은 선배들이 나에게 충고한다. 그만큼 여행했으니 이제 현실로 돌아오라고. 나를 아끼는 마음에서 한 소리란 걸 안다. 하지만 나는 쉽게 동의하지 못한다. 나는 지금까지 비현실적이었던 적이 없으니까. 여행은 유목과 마찬가지로 지극히 안정적이고 현실적인 삶이다. 여태 변변한 전셋집조차 가지지 못한 건 버는 돈을 여행에 다 써서 그런 것이기도 하지만 집을 가지는 게 두렵기 때문이다. 가진 게 많으면 쉽게 떠날 수 없다. 나는 평생 여행하며 살고 싶다. 여행이 곧 나의 집이다." p106


   이 대목이 조금 이해가 안되었습니다. 많은 선배들은 저랑 생각이 좀 다른가 봅니다. 자신의 터전에서 힘들여 가정을 이루고 삶을 가꾸는 삶의 가치는 비교할 수 없이 귀합니다. 그러나 평생 여행하는 삶 역시 너무 멋진 삶입니다. 일어나지 않은 일을 걱정하는 것이 일상이 된 현대사회의 경직된 사고로 바라보니 나이들어 빈하고 궁해질 것을 미리 염려해서 '불쌍하다 걱정된다'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발상의 가장 큰 한계는 바로 이 지점입니다.  지금을 그리 아둥바둥 사는 우리가 딱히 퍽이나 나이들어 빈하고 궁하지 않을 가능성이 얼마나 되겠냐 말입니다.  

 

자, 모두들 떠나요~~~~~ (저는 여기를 잘 지킬테니.. 흠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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