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으른 작가들의 유유자적 여행기 박람강기 프로젝트 1
찰스 디킨스.윌리엄 윌키 콜린스 지음, 김보은 옮김 / 북스피어 / 2013년 11월
평점 :
절판


 

 

 

#1. 이것은 도대체 무슨 장르의 책이던가?

 

   여행기라면 모름지기 어딘가를 여행하기 위한 여행준비와 여행지 정보, 여행팁 등이 실용적으로 실려있거나 혹은 어디를 가는지는 뒷전이고 일상을 떠난 여행이 주는 자유로 인해 중력의 영향을 벗어난 머리통과 가슴에서 쏟아져 나오는 단상을 아련하게 나열하는데 있습니다. 이를 통해 읽는 이에게 정보를 제공하거나 대리만족을 주는 것이지요. 그것이 바로 여행기의 미덕인 것입니다.

 

   여기 여행기라고 주장하는 책을 한권 읽었습니다. 북스피어 책이니 샀다고 말씀드립니다. 마포 김사장님의 감을 믿었다고 하겠습니다. 이 과정에서 제가 간과한 것이 하나 있었으니, 바로 "사장님의 개취는 저와 많이 다를 수도 있음"이었습니다. 이 책이 재미가 없었다는 말이 아니라 도무지 뭔 노무 책인지 알 수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처음 저의 기대는 이랬습니다. '음... 고상한 작가들이 게으르게 여행을 떠났다니, 고즈넉한 곳을 천천히 유랑하며 느낀 상념이나 단상 등이 유머러스하게 엮었겠군..' 이었습죠. 지금 생각해보니 그런 내용이었다면 김사장님이 출간할 생각을 안했겠지요. 아니나 다를까 저의 기대는 완전히 어긋났습니다. (다시 한번 노파심에 강조하자면 재미가 없었다는 얘기가 아니라고...) 이건 뭐 출발하자마자 산을 타더니, 다치지를 않나, 뜬금없이 귀신이야기가 등장하고, 경마 이야기가 막 나오고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이야기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리하야 이 책을 놓을 때쯤엔 '음.. 유쾌하고 재미지군.. 그나저나 내가 뭘 읽은거지?' 하는 여운만 남았던 것이었던 것이었습니다.

  

 

#2. 그래서 두사람은 대관절 왜 이따구 여행을 떠난 것일까?

 

   이들이 떠났다고 주장하는 것이 여행인지 뭔지는 저도 헤깔립니다. 내용만 봐서는 부분적으로 허구로 지어낸 이야기 같기도 하고 알쏭달쏭하기 때문입니다. 어차피 등장인물도 가명입니다. 그러니 이게 여행기를 가장한 소설책인지 뭔지 알랑가 몰라하는 상황에 몰리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앞에서 잠시 언급한 것 처럼 이들의 게으른 여행은 전혀 게으르지 못합니다. 그 이유는 두 인물의 게으름관이 상이했기 때문입니다.

 

"프랜시스 굿차일드는 노력형 게으름뱅이였다. 자신이 빈둥댄다는 확신을 갖기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고통과 노동을 감수했다. 요컨대 프랜시스에게 게으름이란 쓸모없는 근면이었다. 반면 토머스 아이들은 순수 아일랜드인이나 나폴리인 타입의 게으름뱅이였다. 수동적인 게으름뱅이, 타고난 게으름뱅이, 한결같은 게으름뱅이로, 만약 자신이 설교를 하기에 너무 게으르지 않았다면 아마 했을 거라 보는 설교를 실천하며 살았다. 그는 게으름계의 완전하고 완벽한 감람석이었다." p11

 

   그러니까 모든 일정을 토머스에게 맞추었다면 유유자적했겠지만 안해도 될일까지 나서면서 자신이 게으르고 한가해서 이런 일을 하고 있는거라(얼마나 할일이 없으면 이런걸 하냐? 뭐 이런느낌을 즐김으로써 자신의 게으름을 스스로 증명하려는 태도라고 장황하게 설명해야할까나...) 여기는 프랜시스 때문에 시작부터 부상자 등장에 좌충우돌하게 됩니다. 전혀 게으르지 않다는 거지요. 그래서인지 전혀 색다른 재미도 있고 흥미진진하기도 했습니다. 다음 장에는 과연 어떤 이야기가 나올까? 이런 궁금증이 계속 들게 만들었으니 말입니다.

  

   에 또... 그러니까 이들은 왜 여행을 떠난 걸까요? 이 책은 여행기 본문에 해당하는 내용이라 전후관계에 대한 이야기는 전혀 없습니다. 이 부분에 대한 정보는 제가 아끼고 사랑하고 애정하는 르지라시 6호 메인 기사를 통해 알게되었습니다. 찰스 디킨스가 편집장으로 있던 그 당시 잡지 "하우스홀드 워즈"의 기사 글감을 찾음은 물론 이후 연재할 5부작 여행기를 쓸 심산으로 떠났던 모양입니다. 이것이 대외 명분이라면 실제로 조금더 실질적인 이유는 디킨스가 반한 여자 엘렌 터넌의 공연 일정이 그기간에 있었고 그는 그녀를 만나고 싶었기 때문이었습니다. 45세의 유부남 디킨스가 18세의 엘렌 터넌을 좋아하기 때문에 먼곳까지 공연을 보러 간 것이지요. 지금 생각해보면 아저씨 팬이 걸그룹 공연을 따라다니는 꼴이라 재밌습니다. 

 

 

#3. 디자인만으로도 소장욕을 불러일으키는 책

 

    개인적으로 이 책의 디자인은 매우 좋습니다. 마음에 쏙 들었습니다. 특히 속표지의 퀄리티에 깜짝 놀라버리고 말았습니다. '이 정도 디자인이면 국어사전을 옮겨다 놔도 읽겠다.' 뭐 이런 마음이 들었다고나 할까요? 그래서인지 내용 자체에서 주는 흥미보다 좀더 이 책을 성심성의껏 읽게 된 것이었습니다.

 

   디자이너 홍지연 님의 작품이더군요. http://herblotus.blog.me/130180222947 작가블로그에 가보시면 이 책의 표지, 속표지, 내지까지 디자인을 상세히 구경하실 수 있습니다. 이런 표지느낌 매우 좋아라 합니다. 소장하고 픈 책이되겠습니다.

 

   그간 북스피어의 행보를 봤을때 이 책을 필두로 한 박람강기 프로젝트 책들은 비슷한 스타일로 유지될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그러니까 저는 이 시리즈의 디자인을 계속 좋아할테고 곧 나오는 족족 사재낄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더 재밌고 흥미진진한 책들이 발간되기를 바랍니다.

 

 

#4. 짬짜면도 그릇을 나눠서 담는건데 말이죠...

 

   그래도 사기쳤다는 사람이 생길까봐 굳이 이 책에서 아쉬운 점이 있다면, 각 챕터 하나하나가 다른 매체에서 하는 방송인 듯이 5개의 챕터가 일관된 흐름은 없었던거 같습니다. 그러니까 여행을 떠났으면 어딜 갔는데 뭐가 좋더라 이런 식이어야 하는데 갔는지 말았는지 귀신이야기가 번갈아 나오기도 하고 이것 참, 혼란, 짬뽕 그자체였습니다. 잡지에 연재되는 글이라 끊어치기 한거라 그런걸지도 모르겠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단편 5편을 연속으로 읽는 느낌마저 받았습니다.(계속 얘기하는데 그렇다고 재미없었다는 건 아니라고...)

 

   참, 두 작가가 공동으로 쓴 글이라길래 저는 한번에 짬짜면을 동시에 먹는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짬짜면이란 모름지기 한번에 오더라도 서로 분리된 공간에 반씩 담겨 있어 짜장면도 먹었다가 짬뽕도 먹었다가 하는 맛이 아닐까요? 마찬가지로 딕킨스의 글과 콜린스의 글이 독자적인 문체를 나름 유지한 채로 엎치락 뒤치락 나오도록 해서 두 사람의 특징, 차이, 개성 등을 비교하는 재미를 느끼고 싶었습니다. 근데 이건 마치 짜장과 짬뽕을 한그릇에 부어놓은 듯이 어디가 누구의 글인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서사라 입안에서 오묘한 맛이 났다고나 할까...

 

   허허 그참, 재밌는데, 개성있는데 특색있는데... 참으로 묘한 희한한 글인데 이거 딱 뭐라고 표현할 길이 없네 그려... 읽어보는 수밖에 없겄지..... (시비는 이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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