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조각맞추기 ㅣ 87분서 시리즈
에드 맥베인 지음, 홍지로 옮김 / 피니스아프리카에 / 2013년 10월
평점 :

#1. 애드 맥베인의 87분서 이야기를 드디어 만나다.
그 유명한 애드 맥베인의 87분서 이야기를 미루고 미루고 있다가 드디어 읽게 되었습니다. 저의 성격상 피니스아프리카에 책 중에서만이라도 출간순서로 읽어야 마음이 편한데 계속 미루다 끝이 없을 듯하야 최근 출시작부터 읽고 보자하는 마음으로 조각맞추기를 집어들었습니다. 우선 내용을 떠나서 피니스 아프리카에의 87분서 시리즈는 책 자체가 마음에 쏙 들었습니다. 책크기, 제본 및 편집 상태, 종이질, 표지 디자인 그리고 시리즈의 일관적인 디자인 컨셉 등이 아주 좋습니다. 앞으로 언제까지 얼마나 출간해주실지 모르겠지만 일관성을 유지한 채로 계속 출간해주시면 좋겠습니다.
다른 분들이 애드 맥베인이 경찰소설의 효시라고 하시더군요. 읽어보니 역시나 명성대로 디테일한 수사방식 등이 잘 묘사되어 있는걸 알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한권으로는 그 진면목을 파악하기는 조금 무리라는 생각이 들었네요. 왜냐면 사실상 책 내용 전반에 주인공 아서 브라운 형사의 좌충우돌 수사기가 잘 나타나 있었지만 미국의 경찰조직이라든가, 경찰문화 등이 특별히 잘 나타나 있는지는 잘 모르겠더라구요. 오히려 혼다 테츠야의 시리즈물이 훨씬 더 일본 특유의 경찰조직 문화나 특성을 잘 표현하고 있는 듯하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참, 그러고보니 이 책과 비교해보면 미국과 일본의 경찰 문화차이를 볼 수 있어서 다채롭기도 하고 좋군요.
#2. 조각맞추기와 직쏘 퍼즐의 사이...
이 작품의 원제는 [Jigsaw]입니다. 말 그대로 직쏘 퍼즐을 말합니다. 그런데 직쏘라고 출간하기도 뭣하고 지그쏘 라고 출간하기도 애매했겠죠. 그래서 가장 비슷하게 뜻이 통하면서도 적절한 선택이 [조각 맞추기]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직쏘와 조각맞추기 사이의 뉘앙스 간극은 살짝 커보입니다. 출판사 입장에서는 최선의 선택이었다는 생각은 분명 있지만 말입니다.
제가 참여해서 독자펀드로 진행중인 혼다 테츠야의 [Hang] 같은 경우도 비슷한 문제에 봉착했었는데, '행'이라고 하기에도 외자라 좀 거시기하고 지그쏘 처럼 "헝그"라고 하기에도 일본식 표기라 더 거부감이 생길테고 해서 아마도 "교살자-행" 뭐 이런식으로 나오지 않을까 싶습니다. 원제를 충분히 살리지 못하는 한국식 제목은 약간의 아쉬움이 남습니다만 의미상 일맥상통하니까 뭐...
#3. 인간 본성과 사람들 사이의 민감한 부분을 유연하게 잘 다루는 작품의 묘미
이 작품의 주인공인 아서 브라운 형사는 다른 시리즈에서 그다지 두각을 보이는 캐릭터는 아니라고 들었습니다. 특정 주인공을 전면에 내세운 시리즈물이 사실상 큰 장점이 있죠. 사람들은 익숙한 것을 편안해하고 좋아하니까요. 기본은 먹고 간다고나 할까? 하지만 저는 아시다시피 1인의 스타체제 이런걸 상당히 싫어합니다. 그런 점에서 이 시리즈의 구성방식이 참 마음에 들었습니다.
애드 맥베인은 이 작품속에서 "아서 브라운"이라는 이름과 안어울리게 거구의 흑인 경찰을 주인공으로 내세우며 곳곳에 인종차별에 관한 시사점을 심어 두었습니다. 우리나라가 미국만큼 인종차별에 대해서 피부에 와닿을 만한 환경일 수는 없겠습니다만 민감한 상황에서도 유연하게 대처하는 주인공 브라운 형사의 태도를 통해 이 문제를 한번 더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학력차별이건, 남녀차별이건, 경제적인 차별이건 어떤 종류의 차별이든 간에 사고의 유연함과 다양성에 대해 인정하는 열린 태도가 차별을 극복하는 핵심이 되겠지요. 작가가 이번 시리즈에 흑인 형사를 주인공으로 내세우며 슬그머니 이런 이야기를 해주려고 하는게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4. 추리소설로서의 재미는 글쎄...
지금에 와서 오래전에 쓰여진 이 작품을 읽으면서 무언가 엄청 참신한 것을 기대한다면 그것은 그것대로 무리한 기대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뭐랄까? 이 작품속에 녹아있는 추리소설 특유의 특징들이 이미 다른 수많은 작품들을 통해 소진되어 버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거든요. 그만큼 수사의 진행이나 결론부분이 쇼킹하거나 생각지도 못했던 반전이거나 그런식의 재미는 그다지 없었습니다.
이 작품을 수식하는 표현들처럼 워낙 경찰소설의 효시같은 작품이다보니 이 작품의 구성이나 아이디어, 캐릭터 등이 수 많은 후기작품들에 의해 차용되고 발전되지 않았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이런 명작을 대할 때는 세이초옹의 작품을 대할 때와 비슷한 태도로 거장의 작품을 놓고 먼저 그 당시의 시선으로 바라보며 음미하고 한편으로는 지금 이시대에 이 작품의 가치와 시사하는 바를 생각해보는 방식을 동시에 활용하는 것이 유용한 것 같습니다. 한번 읽고 두번 즐기는 효과도 있고, 쉽게 재미없다고 평가해버리는 실수를 피할 수가 있으니 말입니다.
그러나 저러나 사실대로 말씀드리자면 너무 흥미진진하고 재미지지는 않았습니다. 개인적으로 띄엄띄엄 읽은 영향도 크고, 집중이 어려웠던 탓도 있습니다만, 한편으로는 읽지도 않은 책에 대한 지나친 배경지식과 기대감이 상대적으로 만족도를 떨어뜨린 부분도 있는 거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꼭 읽어볼만한 가치는 있는 것 같습니다. 같은 시리즈인 [살의의 쐐기]나 [킹의 몸값]도 읽어봐야 뭔가 개인적으로 이 시리즈에 대하는 태도가 결정될 듯 합니다.
#5. 은은하게 뭍어나는 본질에 대한 고찰에 감탄하다.
뜬금없는 부분이라고 할지도 모르겠습니다만 후반부에 등장하는 '범죄의 본질이 오락성에 있다'는 애드 맥베인의 통찰에 깊이 동의했습니다. 사람들의 행동을 규정하는 동력 중에 가장 큰 부분은 오락성, FUN입니다. 이 즐거움을 위해서라면 무슨짓이든 마다하지 않는 것이 바로 인간이니까요.
"범죄라는 행위에 재미를 빼 보시라. 온 세상의 감옥들이 텅텅 빌 것이다. 누가 범죄자의 마음을 알 수 있으리오? 정말이지 경찰은 모른다. 그들은 왜 어빙 크러치가 뻔뻔하게 자신들을 찾아와 돈을 찾도록 도와 달라고 했는지도 알 수 없었다. 이 역시 오락성, 즉 경찰과 도둑 간의 게임에서 우러나는 순수한 재미를 노린 행동이 아니라면 말이다." p.223
인간과 인간세상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형태의 행동유형에 대한 원인을 잘 요약한 통찰이 아닌가 감탄했습니다. 이런 통찰이라면 시리즈를 재미있게 구성해내지 않았을까 기대하며 다음 작품을 읽을 날을 기대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