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봤어 - 김려령 장편소설
김려령 지음 / 창비 / 2013년 6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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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좋은 문장, 훌륭한 가독성, 그리고 편치 않은 마음...

 

   저는 김려령 작가의 작품은 처음입니다. 물론 대부분 작가의 작품이 처음이기는 하지만... [너를 봤어]는 성인잔혹동화같은 느낌입니다. 아주 빠져들어 읽었습니다. 그러면서도 계속 그만 읽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계속 읽고 싶었습니다. 달리 표현할 길이 없는 묘한 감정을 가져가도록 만든 작품입니다. 작품속에 녹아있는 작가의 세계관은 이해할만한 것이었고, 그러면서도 동시에 징글징글한 것이었습니다.  작품 속에 그려진 인간과 사랑의 모습이 사실은 당연하다, 마땅히 그러하다 인정하면서도 너무 싫어 지긋지긋한 것이었습니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주인공은 번듯한 작가입니다만 폭력으로 얼룩진 과거를 감추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폭력의 진원지는 잘 붙지도 떨어지지도 않는 질낮은 돼지표 본드가 들러붙은 것만 같은 가족력입니다. 주인공은 이런 과거에 휘청이는 존재입니다. 멀쩡하고 번듯한 그의 일상은 가끔 이런 과거와 만날 때 한순간 일그러지고 맙니다.

 

   그 와중에 결혼에도 실패합니다. 사랑의 시작이자 완성으로 선택한 결혼이 아니라 지긋지긋함에서 도피처로 선택한 결혼이었기에 시작부터 어긋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진심이라 할만한 운명적 사랑을 만납니다. 이렇게 써놓고 보면 참으로 지질이도 진부한 사랑이야기인 것입니다. 그런데 진부하다 할 수 없는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서사자체의 힘도 있지만 저자의 문장의 힘이 아닐까 합니다. 읽는 사람이 이 부분을 잘 관통하면 이 작품은 높은 공감대를 형성할 만한 깊이있고 파괴력 있는 작품이 됩니다. 그러나 공감에 실패하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있겠다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이 작품을 읽으면서 다시한번 저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아 나는 참으로 고지식하고 답답한 스테레오타입인가보다'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주인공이나 등장인물들의 생각이나 행동들이 읽으면서 내내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저에게는 불편한 대화와 행동양식과 사고방식이었습니다.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뭔가 좀더 평범하고 무난한 것이 편안합니다. 중간 중간 품어나오는 어둠의 기운과 잔인함이 참으로 싫었습니다. 다 읽고나도 따스한 사랑의 느낌보다는 스산하고 불편한 마음을 쓸어내릴 따름입니다.

 

 

#2. 나는 죽으면 어떤 사람으로 기억될까? 

 

   주인공의 실패한 결혼은 사실은 주인공 자신에게 문제가 있는 것이지요. 누구의 선택도 아닌 자신의 선택으로 이루어진 결혼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고지식하다보니 사랑도 결혼도 헐리우드식 환상으로 접근해선 결말이 비극적이라는 생각을 늘 하고 있습니다. 사랑은 반드시 의무와 책임을 동반합니다. 그도 그의 아내도 그 부분을 외면합니다. 그리고 아내는 자살합니다. 아내의 과거를 알아가는 과정에서 만난 모든 사람은 그녀를 철저하게 나쁜 인간으로 기억하고 증언합니다. 주인공 스스로도 그 과정에서 참담하겠으나 어쩌면 스스로 아내를 받아들이지 않았던 자신에 대한 면제부를 스스로에게 받는 과정으로 삼은 것은 아닌가 생각되었습니다.

 

   모두에게 철저하게 나쁜 사람으로 기억된다는 것이라... 내가 죽으면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기억하고 증언할지 궁금했습니다. 내 아내가 나의 과거를 따라 사람들을 만나면 나란 인간이 어떤 인간이었다고 회상할지, 어떻게 평가할지 궁금했습니다. 아니, 두려웠습니다.

 

"사람을 저렇게 대할 수도 있구나. 전에 개천에서 나오려는 사람은 손을 잡아줘야 한다고 한 말은 진심이 아니었다. 아내는 개천에서 나오려는 사람 손 뿌리치고, 끌어당기려는 사람 손 잘라내고, 홀로 올라오는 사람 짓밟는 사람이었다." p.157

 

"아내가 아끼고 믿는 사람들은 그녀의 작품 속에만 있다. 자신이 만든 세계에서 자신이 만든 인물과만 소통했다. 그러니 밑바닥까지 내려간 처절한 삶이라도 기어이 손잡아 끌어올리는 것이다." p.158

 

    길게 말할 것도 없이 훌륭한 교훈을 받습니다. 이 말도 안되는 평가들을 반면교사 삼아 똑바로 살아야 겠습니다.

 

 

#3. 사랑은 세상을 바라보는 창문과도 같다. 하지만..

 

   무겁고 딱딱하기만 했던 주인공은 운명적인 사랑을 만나고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변합니다. 당연히 스스로도 놀랄만한 일일 분더러, 가까운 사람들도 금방 느낄 만한 변화입니다.  

 

"나와의 만남은 늘 무겁고 어떤 재미없는 강의처럼 눅눅했다. 내가 그러하니 독자들도 그럴 수밖에. 농담이라도 하면 큰일 나는 줄 알고, 소설, 소설, 소설에 관한 이야기만 했다. 정수현을 보러 온 사람들에게 소설만 보여준 것이다. 그런 나를 윤도하, 서영재, 이 두사람이 변화시켰다. (중략) "내 것은 다 가졌으면 좋겠는 사람이, 지금 있습니다." 뜻밖의 대답이었나. 예상치 못한 큰 박수를 받았다." p162~3

 

   "The power of love"라는 곡이 머리속에 맴돌았습니다. 가사 내용도 모르면서 말입니다. 역시 사람을 바꾸는 것은 사랑입니다. 세상을 바라보던 견고한 창이 틀째 바뀌는 계기가 됩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커다란 함정이 존재합니다. 이런 사랑의 창은 유리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참으로 깨지기 쉬운 창문입니다. 사람은 가까이하다보면 반드시 바닥을 드러내는 순간이 오기 마련이지요. 그러니 좋지만 하던 순간은 어느새 서로의 바닥을 드러내는 순간 복잡한 문제로 돌변합니다. 이것을 잘 극복하느냐 아니야에 따라 튼튼한 창이 되기도 하고 깨어져 바람이 숭숭불어드는 창이 되기도 합니다.

 

 

#4. 마지막은...

 

   재미있고 괴롭게 잘 읽었습니다. 개인적으로 마지막 에필로그는 조금 사족이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임팩트 있게 끝난 이야기를 작가가 너무 자세히 설명하고 친절하게 끝내고 싶었던거 같습니다. 파괴력 있는 이야기를 쓴 작가가 너무 섬세하고 따뜻한 사람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주인공이 넋이 되어서라도 그 이후 상황을 친절히 중계방송하는데 불필요한 친절함이라 느꼈습니다. 강하고 묵직하게 맞고 넉 다운 된채로 끝났으면 좋았을 것을 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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