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우 3 - 신세계 질서(NWO)
혼다 테쓰야 지음, 한성례 옮김 / 씨엘북스 / 2013년 10월
평점 :
품절




#1. 정신없이 폭팔하는 서사와 거대한 사건의 결착, 그속에 놓치지 않는 디테일의 절묘한 조화

 

   드디어 지우 시리즈의 마지막권입니다. 마지막권까지 바로 집어들고 읽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연결고리를 촘촘히 잘 짜놓은 저자 혼다 테쓰야는 어떤 면에서는 낚시의 제왕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1편 마지막에 지우의 독백을 슬쩍 밀어넣어 꼬리를 남김으로써 2권으로 넘어가지 않을 수 없게 만들더니 이야기의 폭을 넓히며 점점 더 결말을 궁금해 하도록 유도합니다. 게다가 그 와중에도 정작 주인공(주인공이라기보다 책의 제목인 인물) 지우는 거의 등장하지 않음으로써 3권에 대한 갈급함을 더하게 만드는 이야기 구조라고 할 수 있습니다(일본 원작에서 어떻게 나눠 놓았는지 몰라 작가의 의도라고 하기도 뭐하고 안하기도 뭐하다....)

 

   여튼 일단 두마리의 토끼를 잘 잡았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1권, 2권, 3권으로 넘어가면서 이야기가 점점 확장되어 스케일이 제곱근의 함수같은 흐름으로 증폭됩니다. 거기에 인물의 심리묘사는 물론 각 장면 장면의 디테일까지 이태리 장인정신이 느껴지도록 한땀 한땀 놓치지 않았다는 느낌입니다. 3권에 이르러 이야기가 상상하지 못했던 사건이 터지면서 판이 커집니다. 그러면서 여러 조직과 각 개개인의 이해관계가 상충되며 충돌이 생기고 숨겨진 의도가 드러나기도 하면서 숨가쁘게 전개됩니다. 사건 자체도 쇼킹하고 전개도 쇼킹한데다 마지막 결착에서의 반전이랄까? 결론도 상당히 예상범위를 벗어나는 부분도 있고 흥미넘치는 요소가 가득합니다.

 

   한편으로는 살아있는 디테일 덕에 3권에 와서는 가부키초 동네 경찰까지 화자로 등장하는데도 불구하고 막 바뀌는 화자때문에 어수선하거나 혼란스럽거나 하는 느낌은 전혀 없습니다. 오히려 그 반대로 한가지 사건이나 상황에 대해서 다양한 인물의 시선에서 묘사해줌으로해서 마치 360 배치된 수많은 카메라로 대상물을 훑어 입체화시켜주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아, 아까 이자키가 겪었던 이 장면이 가도쿠라 시선으로는 이렇게 보여서 이 부분에서 서로 만나게 되는 것이었구나...'하고 대상물의 이면을 보게 된다는 것이죠. 복잡한데 복잡하게 느껴지지 않도록 안배하는 능력은 참으로 놀랍습니다.

 

 

#2. 이책은 분명 3권으로 구성된 '지우'인데 '지우'는 도데체 어디갔'지우?'...

 

   이 책 제목은 [지우]입니다. 심지어 시리즈입니다. 그런데 3권 1,250페이지에 달하는 전체 내용중에 주인공 '지우'가 등장하는 장면은 몇 장면 안됩니다. 드라마 찍은 인피니트의 엘은 아마도 촬영이 별로 없었을 듯 합니다. 다 읽고 나서야 지우가 주인공인데 주인공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습니다. 상징적인 캐릭터에 훨씬 가까운 듯 합니다. 여튼 존재감은 초반부터 대단하지만 결국 끝까지 이야기 점유율로 따지면 실제 등장 장면이 매우 낮다는 것은 아이러니 합니다. 여하튼 "내가 여기에 있다"라고 틈날 때마다 말하는 지우의 의도를 뒤늦게 깨닫고 나서는 상당히 불쌍하기까지 했습니다. 두렵고 강력한 느낌의 존재감이었는데 말입니다.

 

   이 '지우'라는 캐릭터를 통해 중요한 메시지가 담긴 설정이나 대사들을 조금씩 조금씩 구축해서 후반부 장면에서 눈물을 쏙 빼놓을 듯이 메시지를 설득력 있게 던져줍니다. 그러니까 '지우'가 아이들을 유괴했던 이유가 부모에게 자신의 존재, 자신의 위치를 알리기 위해서가 아닐까 하는 의도를 드러날 때 말입니다. 뜬금없이 부모와 생이별한 '지우'가 부모에게 자기존재를 알릴 수 있는 방법은 딱히 없는데 부모가 자신을 알아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쌓이다보니 점점 잔인해지는 것입니다. 극단적인 행동을 저지르게 되는 또 한가지는 '지우' 스스로 보상심리로 확인하고픈 것에 연관되어 있는데, 아이를 유괴하고 부모를 협박하고 여기저기 끌고 다니면서 그 부모가 자신의 아이를 끝까지 무슨 댓가를 치르더라도 찾으려고 하는 그 태도와 표정을 보고 싶은 것이죠. 그 모습을 통해서 자신을 놓고 떠났던 부모님의 행동에 대한 대리만족하고자 했던 것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어린 시절의 지우 이야기를 읽으면서 성경인물인 요셉의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12형제 중 11번째인 요셉은 자신만 특별히 사랑해주는 아버지로 인해 형들에게 미움을 받고 애굽 장사꾼들에게 몸이 팔리게 됩니다. 그런데 그 시간을 잘 보내서 나중에 애굽의 총리가 되고 기근이 몰려와 애굽으로 곡식을 사러온 친형들을 알아보고는 자기 존재를 알리지 않고 형들을 시험해서 막내를 데려오라고 하는 둥, 형들이 이제는 자기를 팔아버린 사실을 후회하는지, 막내를 보호하기 위해 헌신하는지 등을 확인하려고 합니다. 그런 일련의 행위를 통해서 자신의 어린시절 상처를 회복하고자 하는 것이지요. 이 이야기를 처음으로 돌아가서 잘 생각해보면 결국은 해피엔딩이기는 하지만 부모의 편애가 낳은 웃지 못할 사건입니다.

 

   한편 부모의 편애라는 것에 생각이 이르자 반지에 제왕에서 곤도르의 섭정왕 데네소르의 멍청한 짓거리가 연이어 떠올랐습니다. 첫째 보르미르만을 편애하는 모습을 보이는 데네소르의 태도 때문에 둘째 파라미르를 거의 죽음에 이르게 만듭니다. 이렇게 부모의 편애, 부재 등으로 인한 아이의 상처는 참으로 심각한 상황에 이를만큼 파괴력이 있습니다. 이 작품 '지우'에서도 단순히 부모에게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싶다는 생각이 멀쩡한 남의 아이를 유괴하고 돈을 빼앗고, 그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을 살해합니다.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키는 살인사건 등이 사실은 사소한 아이와 부모의 왜곡된 관계에서 파생한 것이라는 주제는 사실 굉장히 진부한 것이지만 그것은 또 그것대로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주제이기는 합니다. 그리고 이 작품에서 중요한 한 파트로 이 관계에서 출발한 파생사건들을 통해 잘 표현되고 있습니다.

 

 

#3. 이들이 구축한 신세계는 어쩌면 우리 사회가 낳은 사생아 같은 것, 게다가 결국 범인은 가까이 있다... 

 

   이 작품에서 사건이 전개되면서 지속적으로 갈등세력으로 등장했던 '신세계 NWO'는 자유를 표방하지만 그 실상을 들여다보면 무책임하고도 부도덕하게 마구 살육하고 공격하고 파괴하는 자유구역을 구축하는 것이고 결국에는 그 이면에 불법 각성제의 제조단지 쯤 되는 시설을 확보하기 위한 이상한 짓거리 정도가 되고 맙니다. 그러나 왜 이런 말도 안되는 일이 일어나고 이런 일을 일으킨 장본인 '미야지'를 따르는 수많은 사람이 생기게 될까요? 저자가 말하는 이런 현상에 대한 이유는 이자키의 다른 동료 시라이시의 대사를 통해 설명합니다.

 

"일종의 사회불안 때문이 아닐까요? 오랫동안 지속된 불황을 탈출해도 상황은 조금도 호전되지 않고, 정신을 차려보니 눈앞에는 양극화 사회라는 새로운 수렁이 펼쳐져 있더란 말이죠. (중략) 약자가 되면 누구나 '다 확 뒤집어엎고 싶다'는 생각을 한번쯤은 합니다. (중략) 경제건 지배건 법률이건 학력이건 전부 없던 일로 하고 제로에서 다시 시작하자, 이도저도 없는 셈 치고 새로운 세계의 질서를 만들자. (중략) 이제 더는 방법이 없다. 아무래도 상관없다. 그렇담 차라리 전부 파괴하는 쪽에 붙을까?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꽤 많았다는 의미겠죠." p260~1

  

   순수하게 사는게 희망이 없고 힘들어서 이런 신세계라는 그럴듯한 허울에 가담하는 사람이 무척 많은 것으로 그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어떨까요? 지금 이시대는 능력있고 잠재력 있는 수많은 청년들을 잠정 실업자로 만들어 버리고 있습니다. 각자가 꿈을 꽃피워 보기도 전에 좌절을 경험합니다. 이들이 극단적인 생각을 하게 된다면 철저하게 기득권 위주로 구축된 사회의 공고한 벽을 뒤집어 엎고 깨부수고 싶어하지 않을까요? 우리나라에도 이 작품에서 나타난 이런 대혼란은 얼마든지 일으킬 동기는 충분하다고 생각됩니다. 이런 생각에 이르르면 참으로 착찹함을 감출 수가 없는 것이지요.

 

 

#4. 둘러치고 메어치고 넉다운되는 [지우] 리뷰... 

 

   이 '지우'라는 작품을 읽고 정리하면서 왜 이렇게까지 장황해지는지 모르겠습니다. 결론은 명확합니다. "매우 재미있음" 입니다. 그냥 '아따, 재미지게 읽었다'라고 하면 끝날 일인데 왜 이리 이 작품은 유독 '주저리주저리 열매 능력'을 쓰게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저자가 중요한 사회문제에 대한 포인트를 잘 잡았기 때문인 것도 같습니다. 저는 저자의 의도와 그 의도를 풀어가는 방법에 감탄을 하는 경향이 강하니까요.

 

"액션과 미스터리는 물론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야기와 폭력이 담긴 최고의 오락 작품이라고 자부한다. 조직과 조직의 대립, 여자들 사이에 존재하는 알력도 그렸다."

 

라고 말하는 혼다 테쓰야의 자평을 곰곰히 읽어보면 허언이 아님을 인정하게 됩니다. 이 작품은 최고의 오락 작품임에 틀림없습니다. 거기에다 조직내부의 알력다툼은 물론이고 개개인의 공적다툼 등 조직의 문제를 잘 녹여내었습니다. 불법체류자 문제, 외국인 문제, 마약류 문제, 빈부격차 문제 등등 사회문제를 깊이있게 담았습니다. 여기에 한 인간의 근원적인 존재론적인 문제, 살인과 관련된 도덕적인 문제까지 다양하게 담아내었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여기에 담긴 이 모든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고민하지 않더라도 그저 재미있게 스토리와 캐릭터에 몰입해서 후루룩 읽어낼 수도 있다는 점입니다. (아, 너무 길고 졸려서 그만쓰기로 하자..) 혼다 테쓰야의 필력에 감탄하면서 앞으로 이양반 책은 빼먹지 않고 꼭 챙겨 읽기로 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