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쇄구역 서울
정명섭 지음 / 네오픽션 / 2012년 2월
평점 :
절판




#1. 2016년 그들이 세상을 지배할 때
...

[폐쇄구역 서울]을 읽으면서 계속 근 20년전에 나왔던 서태지와 아이들이 "1996, 그들이 지구를 지배했을 때"가 생각났습니다. 이상하게 계속 떠오른 달까? 뭐 그런 경우가 가끔 있잖아요? 1995년에 서태지는 다음해인 1996년을 상정해 그들, 즉 "돈"이 지구를 지배했을 때의 참담한 모습을 비판적으로 그려냅니다. 당시 대학에 막 들어갈 무렵인 저에게 나름 충격이었던 기억이 납니다

 
"여기저기서 찔러넣는 까맣게 썩어버린 돈들, 돈으로 명예를 사고 친구를 샀던 썩어버린 인간들
너 많은 걸 잃어가게 됐네. 우리의 일생을 과연 누구에게 바치는가
정복당해버린 지구에서 쓰러져가는 우리의 마음
돈의 노예 이미 너에겐 남은 자존심은 없었었어
그들이 네게 시키는 대로 움직여야 해"
 
<서태지와 아이들, 컴팩홈 앨범 중 "1996, 그들이 지구를 지배했을 때" 가사 중>


서태지가 돈의 노예로 전락한 인간들의 슬픈 현실을 노래했다면 정명섭 작가는 좀비에게 대한민국의 심장 서울을 내준 우리의 상실감을 이야기합니다. 2016년부터 좀비에 의해 빼앗긴 서울, 삶의 터전에 두고 나왔던 여러가지 물건들을 찾아내 구해주는 직업인 트레져 헌터들을 통해 개인의 상처와 여전히 일그러진 사회의 모순을 조명합니다.
 
대치 중인 남북관계의 위기에서 언제 발생해도 이상하지 않을 핵사태를 가정하고 그 결과로 좀비 아포칼립스 상황이 발생하는데 다행히 정부가 서울전역을 폐쇄함으로써 나라 전체로 퍼지는 최악의 사태만은 막아냅니다. 과연 실제로 이런 상황이 되면 살아남은 사람들끼리 공공의 적인 좀비를 소탕하고 서울을 되찾기 위해 노력할까요?  
 
"정부는 오직 방벽을 보수하고, 최신 감시 장비라는 것들을 뻔질나게 교체하는 일에만 몰두하고 있죠. 여기에는 한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돈이 엄청나게 많이 들고 그 돈이 다 비슷한 놈들 손아귀에 들어간다는 거죠. (중략) 이런 식으로 사람들의 두려움을 이용해서 돈벌이를 하는 세력이 존재한다는 겁니다." p73~74
 
상황은 다르지만 "1996, 그들이 지구를 지배할 때"의 인간들의 특성과 조금도 변하지 않은 듯 합니다. 여전히 타인의 불편과 불행을 등에 업고 돈벌이를 위해 혈안이 된 세력들이 상황을 조금도 나아지지 못하게 합니다. 세상의 갈등 상황이 극소수의 사람들에게는 돈을 집중시키는 엄청난 호재로 작용합니다. 언제까지 이따위 비 정상적인 구조로 세상이 돌아가게 될지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시간이 지나도 딱히 나아지지는 않으리라 봅니다. 그것이 가장 슬픈 현실입니다.
 
내용과는 상관없지만 정명섭 작가의 또 다른 작품 중에 [그들이 세상을 지배할 때]라는 책이 있네요. ebook 으로만 출간 된 듯합니다.


#2. 당신이 소중한 터전에서 되찾고 싶은 추억은?
 
이 책에서처럼 당신이 서울에 살고 있었고 핵이 터져서 좀비세상이 되었고 서울은 폐쇄되었다고 가정합시다. 탈출하는 과정에 가족들은 모두 죽거나 실종되고 당신만 살아남았습니다. 그 난리가 난지 10년이 지난 후 이제 어느정도 안정도 되고 돈도 제법 모았습니다. 그렇다면 당신은 트레져 헌터에게 무엇을 가져다 달라고 부탁하시겠습니까?
 
아마도 저는... 역시나 가족사진 정도가 되지 않을까요? 그 상황에서 다른게 뭐 대단한게 가져올 추억이란게 있겠습니까?





사람이란 존재가 참 희안한게 입에 풀질할 정도만 되면 정붙이고 마음 붙일 구석이 필요하단 말입니다. 정서적 동물이니까요. 사랑하는 사람이 없는 세상이란 좀비가 돌아다니는 세상보다 더 참혹한 곳이 될 수도 있는 거겠습니다. 그래서 늘 있을 때 잘하란 말이 나오는 거겠죠...
 
이 작품의 주인공 현준은 잘나가는 트레져 헌터인데 부하들을 계속 잃고 혼자 살아돌아오는 경우가 반복되면서 시시한 일거리를 한동안 맡게 됩니다. 그 때 만난 의뢰인 들이 대부분 사소한 추억꺼리를 의뢰합니다. 이 일반인들의 추억을 듣고, 대화하는 과정 중에 꿈을 통해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고 차츰 인간적인 면모를 회복합니다. (흠... 저는 사실 책 리뷰에 줄거리를 이야기하지 않는 편인데 언급을 하게 되는군요.) 이런 식으로 주인공의 심경변화와 과거사 등 캐릭터를 잘 살렸습니다.


#3. 잘짜여진 스토리와 하드보일드 액션의 힘...

이 작품은 사실 좀비물이기는 하지만 음모론에 근거한 스토리 전개와 휴머니즘, 그리고 하드보일드 액션 활극이 잘 버무려진 느낌의 작품입니다. 초반에는 좀비가 가득한 서울에 들어가서 의뢰품을 찾아오는 이야기가 반복되면 지루할 수도 있는데.. 하고 걱정을 했더랬는데 현준의 개인사가 등장하고 중반을 너머 이야기는 점차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면서 마치 '다이하드 시리즈"를 보는 듯한 느낌으로 바뀝니다. 그러니까 결국은 사람이 문제고 사람이 원인입니다. 좀비는 살짝 거들뿐... 좋은 이야기는 결국 그 속에 사람에 대한 고민과 사람사는 세상에 대한 통찰이 잘 녹아있기 마련인데, 이 작품 역시 이런 필수적인 부분들을 맛깔나게 잘 살렸습니다. [좀비 제너레이션] 보다 훨씬 작가의 역량이 잘 드러난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작품을 읽으면 '흠.. 이건 영화를 보는 듯한데...' 하는 생각을 많이 하실 수 있습니다. 영화 스토리로 아주 적당하다는 생각입니다. 아마도 [폐쇄구역 서울]은 머지않아 영화로 만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합니다. 마치 영화의 장면을 보는 듯한 부분들이 상당히 많이 등장합니다. 영화적 요소가 잘 녹아있어 아주 잘 어울릴 듯 합니다.
 
 
#4. 결론... 아주 재밌다.
 
그렇습니다. 아주 재밌습니다. 이 작품을 읽으면서 '좀비'에 대한 의문도 많이 생기고 '좀비'에 대해서 정의를 좀 다시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혹시나 글을 쓸 날이오면 써먹어봐야겠습니다. 하여간 지금의 좀비란 존재는 좀.. 말이 안되는 구석이 너무 많습니다. 이 작품에서 좀비는 그냥 거들기만 하니까 별 상관은 없지만...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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