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극의 아이
장용민 지음 / 엘릭시르 / 2013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1. 잘짜여진 이야기를 완성하는 힘

 

이 책 궁극의 아이에 대한 반응이 모두 좋은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것은 이 이야기를 대하는 태도의 차이에서 기인하겠지요. 그러니까 이 책을 집어들 때, 어떤 이야기가 담겨 있을지, 어떤 재미를 안겨줄지 각자가 나름의 기대를 품고 읽기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그 속에 들어 있는 이야기가 어떠하든지 내 기대와 전혀 다른 것 이었을 때 실망을 하는 경우도 꽤나 있습니다. 저 같은 경우는 대체로 기대했던 것 이상이 들어있어 상당히 놀랐습니다. 전반적인 이야기의 뼈대가 튼튼했고, 다양한 설정과 설정들 간의 기본적인 얼개도 단단했습니다. 세부적인 이야기의 전개 역시 부드럽고 좋았습니다. 저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고 여겼지만 장면 장면에서 등장인물에 어울리지 않는 한국식 설정들이 조금씩 있었지만 아메리카 땅을 밟아본 적이 없는 저에게는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는 여러가지 생각들이 들었는데, 그 중 하나가 '어떻게 이정도 스케일의 이야기를 어설프지 않게 짜낼 수 있을까?'였습니다. 부럽다고나 할까? 물론 전체적인 배경의 설정이 자연스럽게 페어차일드가의 이야기를 차용했다는 생각이 대번에 들기는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것을 어떻게 가져다 쓰는가? 어떻게 활용하느냐의 문제인데 너무 잘 차용되어 어색함이 없었다는 점에 감탄했습니다. 단순히 책이 재미있느냐의 문제로만 접근한다면 이 책을 최고라고 말 할 수 있을지 어떨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저의 경우는 작품을 대할 때 작가가 이야기를 구성하고 짜내는 과정이 어땠을까를 늘 상상하기 때문에 '내가 작가의 자리에 가서 이 책을 썼다면?'의 가정으로 보게 됩니다. 그러니 대체로 작품들을 훌륭하다고 평가하게 되는데 이 작품은 그 중에서도 특별히 훌륭했습니다.

 

마지막 작가의 후기를 읽으면서 글쓰기를 집짓기에 비유하는 것을 대하며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집짓는 것에 비유하자면 이 분은 터를 정말 넓게 잡았고, 중심 기둥도 좋은 집에서 흔히 볼 수 있기는 하지만 좋은 재료를 사용해서 튼튼하게 잘 잡았습니다. 각 구조물들의 벽도 다양하고 단단하게 잘 세웠습니다. 크고 아름다운 집을 정말 잘 세웠다는 말이지요. 훌륭한 건축가입니다. 굳이 흠을 잡으라면 내부 인테리어 소품이 집 스타일과 살짝 안어울리는 것들이 들어가 있는 곳이 있다는 것 정도랄까? 여튼 저는 감탄하고 말았습니다.

 

 

#2. 인간의 욕망에서 파생되는 왜곡된 세상을 바라보는 작가의 냉소적인 시선

 

이 작품의 가장 큰 뼈대는 '사랑'입니다. 하지만 그것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받쳐주는 핵심 얼개는 인간의 허망한 욕망과 거기에서 파생되는 많은 사람들의 불행입니다.

 

 "돈은 피요. 돈이 있는 곳에는 꼭 피가 흘러넘치거든. 힘없고 아둔한 노예들의 피 말이야." p354

 

모든 인간은 평등하고, 각자의 생명은 소중하다고 믿고 있지만 우리가 사는 세상은 부와 권력을 선점한 이들의 욕망에 의해 크게 왜곡되고 맙니다. 그 와중에 힘없고 아둔한 노예와 같은 많은 사람들의 피는 흘러내립니다. 자연스럽게 제가 힘없고 아둔한 노예의 신세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이상한 일일까요?

 

"나는 세상이 이기주의와 탐욕 같은 악과 대항할 수 있을 만큼의 선이 저울 반대편에서 무게 중심을 이루고 있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번 조사를 하면서 내 생각이 완전히 틀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세상은 하퍼의 말처럼 몇몇 인간들을 위해 돌아가고 있었다. 이것은 내가 이제까지 보지 못한 불공정이었다." p359

 

살다보니 이런 의문이 끊임없이 들었습니다. '권력의 자리에 있는 몇몇 사람이 약간의 양심과 휴머니즘만 있으면 정말 많은 사람들이 혜택을 보고 지금보다 훨씬 살기좋은 세상이 되지 않을까? 얼마나 산다고 고작 자기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이다지도 많은 사람들을 희생시키나?'. 그런데 보면 볼수록 그들은 그정도의 양심이랄까? 그런것은 없는 것만 같습니다. 아마도 그렇기에 그 자리에 올라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작가의 시선도 비슷한거 같습니다. 이 작품에는 대체로 세상은 몇몇 인간들을 위해 돌아가고 있다고 냉소적으로 바라보는 것 같습니다.

 

"인간은 변하지 않는다. 천 년 전에도, 천 년 후에도. 우리는 음식을 위해 살인을 할 거고 눈물을 흘리며 주린 배를 채울 거다."p500

 

세상을 움직이는 권력의 꼭대기에 있는 벨몽의 목소리를 통해 이런 아이러니가 결코 변하지 않는 인간의 습성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벨몽은 여전히 자신의 권력을 위해 수많은 사람들을 전쟁을 통해 죽음으로 몰아넣으려 합니다. 하지만 작가는 인간에 대한 따스한 시선을 놓지는 않습니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라마의 말 처럼 말입니다.

 

"너희는 꼭 너희 자신이 되어라. 다른 누구도 아닌 너희 자신이 되어야해. 그게 부처의 길이다. 그게 우리가 태어난 이유야."p516

 

"롭상, 내 동포들에게 전해 다오. 원수는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다고. 내 죽음 이외에 다른 죽음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p517

 

그렇게 라마의 전언으로 벨몽이 원하던 대혼란의 상황을 피할 수 있게 됩니다. 하지만 머지않은 훗날 또 다른 벨몽으로 인해 우리는 수많은 희생과 피를 흘릴지도 모르겠습니다. 언제나처럼 우리는 라마의 전언을 금방 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3. 운명과도 같은 사랑은 냉정한 현실에서도 행복을 노래한다. 하지만... 나에게는 애가(哀歌)로 들린다.

 

이 글의 가장 큰 뼈대이자 중심기둥은 결국 사랑입니다. 과거를 철저하게 기억하는 앨리스와 미래를 기억하는 신가야. 그리고 이들의 아이 미쉘..  미래를 기억하는 궁극의 아이 가야는 사랑을 지키기 위해 앨리스를 남겨두고 홀로 죽음을 택합니다. 그리고 남겨진 많은 배려를 통해 앨리스를 지키고 자신들의 아이 미쉘을 결국은 지켜냅니다. 홀로 남겨진 앨리스의 10년의 기다림은 처참했지만 가야의 배려로 결국은 아픔을 치유하며 미래로 나아가는 아름다운 사랑의 속삭임으로 희망적인 결말을 맺습니다. 냉정하고 냉혹한 현실속에 꽃핀 아름다운 사랑의 이야기가 바로 이 작품의 기둥입니다.

 

하지만 저에게 이 사랑의 노래는 슬프고 처연한 애가로 들립니다. 그것은 사랑하는 이가 실존해 내 옆에 있을수 없는 현실 때문입니다. 사랑의 기억과 믿음만으로 일상이 행복하리라고 저는 생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내 삶이 모두 그리 고상하고 고차원적일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사랑의 아름다움과 행복은 사랑하는 이와의 시간과 공간의 공유가 동반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그렇게 사랑을 피부로 느끼며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별 볼일 없는 소소한 하루하루도 사랑하는 이의 실존앞에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오늘도 사랑하는 가족들의 건강과 안전과 행복을 지키기 위해 힘을 내어 노력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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