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즈가 보낸 편지 - 제6회 대한민국 디지털작가상 수상작
윤해환 지음 / 노블마인 / 2012년 12월
평점 :
품절


 

1. 어린시절 동네앞 서커스의 추억... 

 

내가 아주 어릴적에 가끔 동네 바닷가에 천막이 설치되고 유랑 서커스단의 공연이 벌어지곤 했다. 명절이면 러시아나 중국의 유명 기예단의 서커스 공연을 TV로 방영해주던 시절이라 내 머리속에는 그런 멋진 공연을 상상하고 있었다. 마침 그 서커스 공연에 들어갈 수 있게 되어서 부모님과 함께 설레는 마음으로 그곳으로 향했다. 그러나 막상 들어간 천막안에는 십수명의 관객이 있을 뿐이었고, 공연 내용도 TV에서 보던 그런 멋진 서커스와는 너무나 동떨어져 있는 수준낮은 공연으로 어린 출연자들을 혹사한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어린 마음에 실망과 충격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던 것이 지금도 생각이 난다. 

 

적어도 최근까지 나에게 있어 국내 추리소설에 대한 막연한 생각이란 것은 러시아, 중국 서커스 단과 그 때의 허접한 동네 서커스단의 차이 정도의 인식이었다. 아니 아예 생각을 안했었다는 것이 맞겠다. 추리소설 자체에 대한 관심도 아주 최근에 생긴 것이 사실이지만 국내 추리소설이라니 말이다. 얼쩡얼쩡 저자의 블로그를 들락거리다 호기심반, 예의반으로 이 책을 샀다. 그리고 김내성을 만났다. 천천히, 이 책을 읽는 사이 마츠모토 세이초와 동갑이라는 이 사람에게 빠져버렸다. 사실 셜록 홈즈를 잘모르는 나는 이책의 초반이 좀 힘들었다. 잘 안넘어갔다고 해야하겠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지만 생소하기도 했고, 집중해서 읽을 수 없는 환경의 탓도 있었다. 그러나 이 책의 마지막 책장을 넘길 무렵엔 마음에 상당히 묵직한 울림과 감격이 남았다.

 

 

2. 사실은 소설보다도 기이하다.  

 

이런 통찰력과 임팩트 있는 표현력은 최초의 정탐소설가 김내성에 대해 궁금하게 하기에 충분했다. 저자도 아마 이런 호기심으로 역사속의 인물 김내성을 자신의 소설속으로 불러들인 것이 아닐까?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이 책속에서 김내성을 알아봐달라고 설득하는 저자의 부름에 응답했다. 벌써 김내성이란 인물을 더 알고 싶고, 그의 작품을 읽고 싶어졌다. 더불어 이 책 한권으로 국내 추리소설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다.

 

[홈즈가 보낸 편지]는 조선 최초의 정탐소설가 김내성이 어떻게 서양의 탐정소설과 만나게 되었는지, 어떻게 정탐소설가가 되었는지, 어떻게 조선의 설록홈즈와 같이 되었는지를 '널다리골 교회 살인 사건'을 뼈대로 풀어나간다. 그러나 단순히 사건이 무엇이고 범인이 누구며 범행 방법은 어떠했는지에 그치지 않고, 적절한 호흡을 유지하는 가운데 그 당시를 살아가는 개인들의 뼈아픈 인생사와 나라 잃은 선조들의 설움은 물론 기억해야할 역사적 현실들을 절절하고 생생하게 표현하고 있다.

 

그 옛날 김내성의 첫 소설 "타원형의 거울"에서 이미 간파한데로 '사실은 소설보다도 기이'하다. 추리소설은 독자들이 안심하고 즐길 수 있는 전형적인 구조가 있다. 반드시 범인이 존재하고 종국에는 범인과 범행수법이 밝혀진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현실은 그렇지 않고 그럴 수도 없다. 모든 것이 불규칙한 궤도를 밟고 있고, 이 사회는 아무리 머리가 좋은 사람이라도 도저히 답을 낼 수 없는 문제들, 이해할 수 없는 문제들 투성이다. 그러기에 나는 누가 '범인일까? 식의 잘 짜여진 전형적인 미스터리 소설'을 그다지 선호하지 않는다. 우리가 살아내고 있는 이 알 수 없는 사회의 복잡하게 얽히고 설킨 모순과 현실을 다룬 소위 사회파 미스터리에 더 관심이 가고 집중하게 된다. 바로 이 작품 [홈즈가 보낸 편지]에서처럼 말이다. 이 작품 곳곳에 그 시대적 현실과 슬픔이 잘 표현되어 있다.

 

"한복 저고리 바지에 구두를 신은 남자가 있는가 하면, 게다짝에 상투를 튼 이가 지나갔다. 여자들은 또 어떠하고, 무릎 바로 아래까지 떨어지는 한복 치마에 하이힐을 신었는가 하면 단발머리에 한복을 입은 이도 있었다. 조선하고도 경성, 한 나라의 수도이자 중심인 종로건만 어찌하여 이리도 촌스러운가. 저리 치졸하기 짝이 없는 유행만을 좇는가. 조선에는 조선만의 멋이 있거늘 저들은 어찌 속절없이 일본 것을, 양인 것을 따라 하느라 안달을 하는가." p.228

 

"내가 열 살 되던 해 보릿고개가 심했어. 밭을 갈고 산을 헤매도 먹을 게 나올 리 없는데도 엄마와 나는 밭일을 하러 가야 했어. 헌데 집에 돌아와 보니 묘한 냄새가 났어. 먹고 죽을 쌀도 없는데 술이며 누룩 냄새가 집 안에 가득했어. 할머니랑 아버지, 오빠가 막걸리를 마시고 있더군. 막걸리를 한 주전자 끊어온 것이야. 어디서 났느냐고 물었더니 아버지가 '널 팔았다'고 말했어. 일본이나 만주서는 여자가 귀해 좋은 값을 쳐준다고 하기에 날 팔았대." p.319

 

"나는 놀랐어. 아무것도 안 하고 그저 살아도 된다니. 처음 듣는 말이었어. 우리 집에서는 누구나 일을 해야 했으니까. 돈이 필요했으니까. 내 여동생이랑 남동생들은 아침부터 나루터로 엿을 팔러 다녔고 나와 엄마는 밭일을, 아빠와 오빠도 어덯게든 몸을 써서 돈을 구하러 돌아다녔어." p322

 

 

3. 우리가 할 수 있는 일...  

 

일제 치하에서 조선을 장악한 일본의 협박과 압제에 굴한 나라가 비겁한 것일까? 이윤을 남기고 정치적 입지를 곤고히 하려 전쟁을 선택하고 남의 나라를 유린한 장본인들이 비겁한 것일까? 내가 살고 있는 이 땅에서 지금도 변함없이 벌어지고 있는 파렴치한 일들을 대하며 나는 종종 내 자신의 비겁함에 대해 고민하고 부끄러워 한다. 이 작품에서 내성의 일본인 친구 쥬니치로는 아버지 나카무라 준장이 속해있는 일본군 수뇌부가 쿠데타가 일어날 것을 알면서도 모른척 한 뒤 본보기로 처형을 시키고는 전쟁의 명분으로 삼으려 하는 것을 보며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이 가장 비겁하다고 고백한다. 왠지 정치적 명분과 경제적 이득을 위해 다수를 희생시키는 지금의 현실과 너무나도 정확히 맞닿아 있다. 그리고 그 속에서 내 밥벌이를 위해 모른채 전전긍긍하고 있는 우리네 소시민들의 내적 갈등을 쥬니치로가 대변하고 있는 것 같아 마음이 쓰렸다. 작품안에서 내성은 이 문제를 두고 이렇게 말한다.

 

"어떻게든 흐르겠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이 길을 정면으로 바라보는 것밖에 없으이." p.271

 

한편, 우리의 언론에 관련된 문제도 고민해 볼 만한 대목도 등장한다. 내성과 카트라이트와 함께 조선일보 기자인 이인규가 홈즈가 보낸 편지를 두고 암호를 풀고자 고민하다가 짜증을 내며 본인은 뛰어난 앵무새라고 말한다. 생각을 하는게 아니라 다른 사람이 하는 말을 듣고 그대로 따라하는 앵무새, 구관조라고 말이다. 이에 카트라이트가 입을 연다.

 

"이형은 뛰어난 앵무새야. 다른 이의 말을 그대로 전하는 것이 어디 보통 일이던가." p.278

 

거기에 PSI 산온도 한마디 거든다.

 

"어쩌다 이리되었을까. 누군가의 마음을 있는 그대로 전하려면, 진실을 있는 그대로 말하려면 목숨을 걸어야 하는 세상이 되어버렸어." p.279

 

그때야 일제의 신문 검열과 통제시대라 그렇다고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그 때와 다를게 무엇인가? 지금은 진실을 말하면 목숨을 빼앗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생계인 생업을 위협하는 방식으로 사실상 목숨을 걸어야 하는 세상이긴 마찬가지가 아닌가 말이다. 여전히 언론과 미디어에는 진실이 아닌 통제되고 검열된 사실아닌 사실이 넘쳐난다. 이런 환경하에서 의식있고 뜻있는 언론인이라면 그 때의 인규처럼 생각하고 있지는 않을까 궁금하다.

 

"진실의 한가운데 있잖은가. 심수 년이 넘도록 밝혀지지 않았던 하나의 진실, 그 수수께끼를 밝히는 과정을 계속 지켜보고 있잖은가. 그저 가슴이 두근거릴 따름이네. 나는 이 과정을 앵무새로서, 전서구로서 세상에 전하고 싶으이." p.279

 

 

4. 우리의 추리소설...  

 

[홈즈가 보낸 편지]를 통해 나는 우리나라 추리소설이 가져야할 미덕을 보았다.  개인적인 생각일 뿐이지만, 그저 훌륭한 추리와 반전만으로는 이미 기반이 탄탄한 미국, 유럽, 일본 추리소설 시장과 상대하는 것 자체가 어렵다. 그러므로 우리 추리소설만의 독특한 경쟁력이 필요하다. 당장은 국내 독자가 읽었을 때, 외국 소설이 도저히 담을 수 없는 한국적인 것이 녹아있어야하고 그것이 재미와 강한 울림을 동시에 주어야만 한다. 매우 어려운 일이다. 당연한 얘기지만 [홈즈가 보낸 편지]는 성공적으로 해내었고 이 작품이 하나의 표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미 나온 많은 국내 작가의 작품들이 훌륭하지만 상대적으로 독자들에게 높은 평가를 받지 못하는 것은 비교우위가 없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책을 즐김에 있어 국내작가의 것이냐 외국작가의 것이냐를 따지는 것은 적절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홈즈가 보낸 편지]를 써낸 훌륭한 작가가 더 좋은 작품을 위해 매진해야할 시간에 바리스타라는 이름으로 카페에서 일을 하고 있는 현실 자체가 안타깝다. 언제까지 우리가 라면만 먹은 헝그리 정신으로 뛰던 임춘애 선수를 추억할 것인가? 엄청난 판매고와 인기를 안고 다양한 작품활동을 통해 선순환을 이어가는 외국의 스타작가들을 바라보며 좋은 작품을 써도 생업에 종사하느라 다음작품을 쓰기도 급급한 우리네 작가들의 모습이 안타까운 것은 나만의 생각이던가...

 

이 작품은 그저 '재미있다'라고 하기엔 너무 많은 것들이 담겨 있었고 나는 그저 홈즈에 대한 애정과 추억으로 이 작품을 바라볼 생각은 전혀 없었기에 이 책을 읽는 내내 마음이 복잡했다. 역사적인 배움도 주었고, 인문학적인 고민도 하게 해주었으며, 작금의 현실과 대비해 고민할 거리도 던져주었다. 책 한권이, 그것도 추리소설이라는 형식으로 독자들에게 던져주는 메시지가 묵직하다. 좋은 작가에 좋은 작품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작가에게 사회파 추리소설을 빨리 내놓으라고 닥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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