샐러드를 좋아하는 사자 - 세번째 무라카미 라디오 무라카미 라디오 3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권남희 옮김, 오하시 아유미 그림 / 비채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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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무라카미 하루키 에세이란...

 

 "굳이 말할 필요도 없겠지만, 나의 정신은 온갖 잡다한 것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마음이란 정합적이고 계통적이면서 설명 가능한 성분으로만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나는 그러한 내 정신 안에 있는 세세한, 때로는 통제되지 않는 것들을 긁어모으고, 그것들을 쏟아부어 픽션 =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다시 보강해갑니다. 그러나 동시에 이처럼 것인 형태로 그것들을 아웃풋하는 일도 가끔은 필요합니다 픽션이라는 형식으로는 다 주워담을 수 없는 자잘한 세상사도 조금씩 찌꺼기로 남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소재를 에세이 형식으로 조금씩 주워담게 됩니다." - 무라카미 하루키 잡문집 p15 -

 

 

하루키 스스로가 에세이를 쓰는 이유를 이런 식으로 설명하고 있다. 소설과 비교해서 "맥주 회사가 만드는 우롱차"라는 표현으로 본업 외 가볍게 슬쩍슬쩍 쓰는 정도의 스탠스를 유지하고 있지만 개인적으로 하루키가 꼭 소설가 인가 싶을 정도로 에세이가 더 마음에 드는 이유는 그 누구보다 쓸데없는 소위 "후까시"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유명한 사람들이 흔히 빠지는 "그럴듯함"의 함정에 빠지는 일이 거의 없다. 딱 동네 아저씨가 실없는 소리를 하는 것을 유심히 지켜보는 느낌으로 읽기 좋은 글들이란 뜻이다. 그러다보니 별 생각없이 읽다보면 나도 모르게 '푸훗'하고 웃다가 '뭔 소리래?' 하며 혼잣말을 하게 되는 그런 류의 글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다.

 

 

#2. 미디어 기피증 하루키와 힘든 동판화 작가 아유미씨

 

글쟁이나 삽화 그림쟁이 둘다 대단하다. 이미 여러차례 다양한 에세이나 단편 등을 통해 미디어를 극도로 싫어하는 모습을 자주 드러낸 바 있는 책쟁이 하루키씨,  [TV 피플] 같은 단편에서는 TV라는 미디어가 가지고 있는 일방성에 대한 우회적인 비판을 잊지 않았고, [가난한 숙모 이야기] 같은 단편에서도 TV프로그램 출연에 대한 불편함을 적나라하게 드러내었다. 재밌게도 미디어를 싫어하면서 '무라카미 라디오'라는 타이틀을 달고 글을 연재했다니... 라디오보다 글이라는 의미이던가? 삽화는 또 어떤가? 간단히 슥슥 그릴 수 있을 법한 삽화들을 동판을 긁어내는 어려운 작업을 통해 동판화로 그리는 오하시 아유미씨라니... 음각 동판화로 작업하다보니 잘 보면 모든 삽화는 배경이 연한 그레이 톤으로 이루어져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림 자체는 단순하지만 하루키의 글을 읽고 특징을 잘 잡아내고자 얼마나 고민을 했을까 싶다. 하루키 특유의 허무개그 같은 독특한 위트를 잘 잡아낸 그림들 임이 틀림없다.

 

 

#3. 소소한 일상의 재미진 이야기 들을 살리는 묘한 능력자

 

나란 인간이 소소한 일상을 중요시 하는 인간임은 여러차례 밝힌 바 있다. 뭐 중요한 건 아니지만 말이다... 그나저나 하루키 센세는 요런 소소 발랄스러운 느낌을 정말 잘 살려준다. 그리고 독특한 용어들도 잘 사용한다. 내용이 풍성한 것은 하루키느님이 워낙 여러곳에 옮겨다니거나 여행을 다닌 전력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날 때부터 일본에서 먹고 자라왔으면 소설이야 상상력과 문헌을 동원해 어떻게든 쓴다손 치더라도 이런 류의 에세이는 실제 경험이 아니면 디테일한 감정이나 감상을 살리기 힘들기 때문에 다양한 문화에 대한 체험은 하루키느님의 큰 재산이 아닐 수 없다. 미국의 배심원 참석에 대한 이야기 등을 읽다보면 진심 여행을 가거나 단기 거주를 하고 싶어진다. 그러면 하루키처럼 겸손할리 없이 질릴만큼 엄청 자랑질을 해댈텐데 말이다.

 

 

#4. 하루키느님... 천상 작가 맞네 맞아!! 그리고 참 일본스럽다.

 

이 책에 담겨져 있는 글들을 읽으면서 계속 생각했던 건 바로 하루키의 작가스러움이다. '어떻게 이런걸 생각했을까?' 라든가,  '이딴건 왜 고민하는 걸까?' 등등 말이다. 참, 그리고 정말 여류작가들과 마찬가지로 하루키를 생각하면 깊이가 있고 없고를 떠나 내용만 보면 참 가볍다. 어쩌면 그의 대중성의 많은 부분이 수많은 사람들을 아우를 수 있는 적당한 가벼움에 있는 건 아닐까 싶다. 우리나라 작가가 한국적 정서에서 이렇게 가볍고 발랄한 에세이 모음을 썼을 때, 과연 정상적으로 출간이 될라나... 잘 모르지만 국내 소설과 마찬가지로 국내 에세이의 경우 적당히 묵직하거나, 아니면 내용이 특정한 타킷(대체로 여행과 여행감상)에 정해져 있거나 끝을 알 수 없는 오글거림으로 점철되어 있거나 등등의 특징을 가지는데 비하면 하루키의 에세이는 나름 내용이 다채롭다. 그리고 의외로 정치적인 발언도 무척 조심스럽지만 담겨 있다. 엄청 흥미롭게 읽은 '헌욕수첩'편에서는 원자력관련 문제가, '팁은 어렵다' 에서는 세금문제가 살짝 언급된다. 또한 '컵에 반'편에서는 총리의 뇌를 들먹이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너무 무겁지 않고 조심스러운 것이 그야말로 일본스럽다는 생각이 절로 들게 만들었다.

 

 

#5. 색다른 재미와 웃음을 더해주는 태그 개그

 

이 연재글 모음의 끝에는 늘 본문과 하등 상관이 없는 재미있는 태그 글이 등장한다. 솔직히 고백하건데 이 태그 글을 읽을 때면 거의 대부분 '아, 이양반 뭔 헛소리를 또 하는거야?'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야말로 엉뚱한 소리가 엄청많다. 예를 들면 투우와 목장 이야기를 하는 글에서 '육식녀, 초식남은 있는데 어식 아주머니는 없나요?' 뭐 이딴 이상한 질문을 태그로 남기는 것이다. 이게 워낙 엉뚱하고 본문과 상관성도 없지만 이 것 때문에 매 글이 상큼하게 넘어갈 수 있는 좋은 장치이다. 우리 블로그 포스팅도 내용이 개뿔 없어도 아이디어 뿜는 태그글 하나만 있어도 빵 터지는 것과 같이 말이다. 여러가지 이유로 나에게는 이런 하루키의 태그 성공률은 그다지 높지는 않았다. 오히려 이런 포맷 자체가 흥미로웠다.

 

 

#6. 하루키니까 넘어간다... 그냥 읽어준다...

 

유쾌하고 즐거운 글들임은 분명하다. 개인적으론 소설보다 에세이를 더 좋아라 하는 것도 사실이다. 작가에 대한 관심을 늘 가지고 있는 나에게는 소설보다는 작가와 상대적으로 밀접한 에세이가 더 와 닿는달까? 그런데 말이다. 만약 이와 똑같은 글을 국내에서 신인작가가 내놓겠다고 원고를 내밀었다면 어땠을까? 이름도 모를 신인작가가 인터넷에 글을 배포했다면 어땠을까? 모르긴 해도 아무도 안찾았을 듯하다. 그렇다. 뭐니 뭐니 해도 하루키라는 견고한 타이틀이 '이게 뭐지?' 할만한 글들을 살아 숨쉬는 글들로 만들어 주는 비법양념과 같다. 돈도 어느정도 모이면 스스로 굴러 간다고 하지 않았던가?(나야 뭐 실증적 경험이 없어서 원...) 딱 까놓고 말해 하루키니까 무조건 사고 읽는 것 반, 이왕 샀으니(그리고 남들이 다 재밌다니) 엄청 재미지다고 하는 거 반 해서 "양념반 후라이드 반" 케이스라 할 수 있다. 내가 하루키를 무척 좋아라 하면서 빠를 자처하지만 하루키가 썼기 때문에 더 재미지다고 느끼는 부분이 있음은 분명하다. 요정도로 살짝 딴죽을 걸어주는 센스는 발휘해야 저 평점이 납득이 되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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