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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것들의 나라
가쿠타 미츠요 지음, 임희선 옮김, 마츠오 다이코 그림 / 시드페이퍼 / 2013년 2월
평점 :
품절

#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의외로 많은 것들을 잃어버리며 살아간다. 흔하게 우산이나 장갑, 목도리 따위의 잡화류나 시계, 핸드폰, 반지 등의 고가품, 심지어 지갑까지..
사실 따지고 보면 그다지 특별하지 않은 물건들말이다. 나의 경우는 깜빡깜빡 잊는 경우가 많아서 실수가 많고 그러니 당연히 물건 잃어버리기는 일상생활이었다. 한번은 백화점에서 값비싼 선물을 사고는 그 쇼핑백을 잠깐 올려놓고 두고오는 경우도 있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이런 경우들은 흔히 일어나기도 하거니와 그다지 우리의 기억에 오래 남지 않는다. 정작 기억을 맴돌며 아쉬움과 그리움을 남기는 물건들은 값비싼 물건이 아니라 추억과 지난날의 기억이 깃든 손때 묻은 물건들이다.
비단 물건들만일까? 물건보다는 오히려 더 애틋한 감성을 자극하는 것은 지난날 사랑했던 사람, 울고 웃던 친구들, 떠나보낸 가족과 애완동물들, 그리고 나의 동심이 아닐까? 잃어버린 것이 사물이건 사람이건 추억이건 내 삶에 소중한 의미였을수록 꺼내보기 조심스럽기 마련이다. 이 책 [잃어버린 것들의 나라]는 바로 그런 우리네 삶의 소중한 기억들을 떠올리게 하는 책이다.
# 책이 만들어지는 독특한 과정에 감탄하다.
가쿠다 미츠요가 참여했던 "치즈랑 소금이랑 콩이랑"에서도 그랬지만 이 책 역시도 참 독특한 컨셉과 기획으로 만들어진 책이구나 하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일본 사람들은 어떻게 이런 희안한 방식으로 책을 만들어 낼 생각을 했을까? 나의 상식으로 책에 글과 삽화가 들어갈 때는 기본적으로 글이 완성되고 교정하고 디자인하는 과정에서 삽화를 넣는다. 글에 어울리는 그림과 디자인을 찾는 방식이 상식이 아닐까? 이 작품은 마츠오 다이코씨의 그림이 먼저 그려지고 그 이미지에 어울릴법한 이야기가 이 후에 만들어지는 방식으로 제작되었다. 마츠오 다이코가 그림을 그려서 가쿠타 미츠요에게 보내고 그녀가 그 그림에서 얻은 영감으로 글을 써서 책을 완성했다는 것이다. 하기야, "치즈랑 소금이랑 콩이랑"보다야 훨씬 상식적이기는 하다.
# 평범해 보이는 것들에서 감동을 찾다.
"치즈랑 소금이랑 콩이랑"의 첫번째 이야기 [신의 정원]에서 만났던 가쿠타 미츠요는 에쿠니 가오리나 요시모토 바나나 같은 작가들에 비하면 우리나라에서 엄청난 인기를 끌었던 작가라고 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인지 그 이야기도 크게 기대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4명의 이야기를 담았는데 가장 먼저 첫 이야기로 배치되었다는 것에 대한 선입견과 신의 정원을 반쯤 읽었을 때 예상되던 뻔한 결말 때문이었다. 그러나 나의 예상을 깨고 평범하고도 너무나 뻔한 스토리에서 놀랄 만한 감동을 선사해주었다. 평범하고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이야기들을 정교하게 엮어내는 작가의 능력이라고 생각되었다.
이 작품 [잃어버린 것들의 나라]에서도 그녀의 이런 장기는 여실히 드러난다. 사물이나 동물들과 소통하는 능력과 염소 유키, 전생의 기억을 가진 주이치로, 뜬금없는 생령의 등장, 그리고 정말 애틋하게 묘사된 잃어버린 소중한 아이와 다시 만난 새로운 아이, 오래된 사진을 통한 지난날의 추억들까지 유기적으로 잘 배치되어 무난하게 흘러가다가 뜻하지 않게 곳곳에서 감동을 던져준다. 특히 네번째 이야기 "떠나는 안녕과 만나는 안녕"에서 잃어버린 딸의 죽음을 대하는 주인공에 대한 묘사와 새로운 아이와 다시 찾은 유실물 보관소를 덜덜떨며 찾아가는 남편에 대한 묘사를 대하면서 작가의 탁월함을 인정하게 되었다. 내가 같은 내용을 글을 썼다면 얼마나 직설적이고 재미없게 표현했을까를 생각하며 웃었다. [잃어버린 것들의 나라]는 흐트러지지 않고 잔잔히 감정선을 따라가도록 부드럽게 이끌어가는 작가의 감성이 최고의 장점인 작품이다.
# 잃어버린 것들의 나라를 찾아가다.
주인공이 잊고 지내다가 오래된 사진을 통해 기억해내는 지난날들을 대하면서 나의 지난 시절을 추억하게 되었다. 나는 대학시절 그다지 사교적인 사람이 아니었다. 그럴수밖에 없는 것이 대학시절의 나는 주변 친구들에 비해 너무나 촌스러웠고 꽉 막혀있는 사람이었다. 나는 너무 착하고 규격화된 삶을 살았을뿐 아니라 그 당시 대부분이 친구들이 경험한 것들을 겪어보지 못한 것이 많았다. 술도 안마셨고 담배도 안폈고 당구 따위도 치지 않았으니까..
그런데 대학입학전 첫 OT때 버스 옆자리에 앉은 나의 소울메이트 "상원"이는 그날부터 나의 단짝이 되어주었다. 우리가 단짝이 될 수 있었던 유일한 이유는 "상원"이가 착하고 매력적인데다가 사교성이 넘치도록 좋았던데 있었다. 그 친구는 대부분의 선후배와 동기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술을 좋아하고 잘생기고 세련되고 친절한데다 보는 사람을 기분좋게 하는 매력적인 웃음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나는 상원이를 통해서 학교 동기들과 선후배들과 교류를 조금이나마 할 수 있었다.
사람 좋아하고 술을 좋아하고 이야기하는 것을 너무나 좋아하던 그 친구는 방학내내 호프집 아르바이트를 하며 밤새 술을 마시고 노는 날이 지속되었고 우리가 잠시 멀어진 사이에 간이 급격히 나빠져 가슴부터 배밑까지 세로로 개복하는 대수술을 받았고 수술후 정말 열심히 삶을 가꾸었지만 졸업후 1년쯤 후엔가 세상을 떠나버렸다. 그 당시 나는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도 모를만큼 회사일로 정신없이 보냈다. 그야말로 잃어버린 시간이라고 해야할 정도로 말이다. 그 사건이 나에게 얼마나 큰 충격이었던지 1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종종 그 친구가 생각난다. 내가 충격을 받은 이유는 너무나 바쁜 직장을 얻어 정신없이 살면서 병원에 입원해 있다는 소식을 듣고도 설마설마하며 찾아가지 않았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정말 그랬다. 정말 그렇게 떠날 줄은 생각도 못했다. 너무나 몸서리쳐지게 미안해서 어쩔 줄 몰랐다. 오랜 입원기간 동안 메일도 주고받고 통화도 했지만 사태의 심각성을 몰랐다. 한번쯤은 찾아가봤어야 했다. 그랬다면 그렇게 보내지 않았으리라...
# 소중한 우리의 지난날들.
이 책이 끝나갈 무렵 나는 내 삶에서 나의 지난날을 소중하게 생각하지 못하고 너무 소홀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바꾸어 말하면 지금 이 순간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다는 말이기도 하다. 나의 지난날은 지금 매 순간순간이 차곡차곡 쌓아진 결과물들이니 말이다. 나의 지난날을 소중히 기억하고 간직하자. 그리고 행복이건 아쉬움이건 아픔이건 지난날 잃어버린 것들에 대해 예의를 갖추기로 결심한다. 그러니 지금 이순간을 소중히 보내기로 하자. 주인공처럼 머지않아 잃어버린 것들의 나라에 나 또한 들어가 그 모두와 재회하게 될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