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내가 다시 좋아지고 싶어 - 지금껏 애써온 자신을 위한 19가지 공감과 위로
황유나 지음 / 리드리드출판(한국능률협회)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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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누구나 겪을 법한 아픈 경험의 종합병원


   이명박 전 대통령은 재임 시절에 어떤 이슈를 만나건 "내가 해 봐서 아는데..."라는 멘트를 반복해서 사람들에게 회자되었습니다. 다 안다 태도에 대한 비아냥이 담긴 장난스러운 말이지만 사실 해봐서 안다는 건 아주 중요합니다. 한 분야에서 괄목할 만한 성과를 낸 성공자에게 성공 노하우를 배우려 열광하는 이유가 바로 그 사람이 먼저 "해 봐서 알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냥 해 본 정도가 아니라 깊이 경험하고 노하우를 터득하고 성공한 경험이 있어야 합니다.


   누군가를 위로하는 일 역시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누구보다 깊은 상처를 입고 방황하다 이를 극복해낸 경험을 한 사람의 위로는 남다를 수밖에 없고, 이는 타인에게 진심 어린 공감과 위로를 줍니다. <내일, 내가 다시 좋아지고 싶어>의 저자 황유나씨가 바로 여기에 해당하는 분인 것 같습니다. 만약 이 책에 담겨 있는 여러 가지 에피소드가 거짓이 아니라면 이 양반은 그 누구보다 다양한 아픔과 실패를 뼈져리게 겪은 분입니다. 아픔과 상처로 따지면 굴지의 종합병원 수준이라 종목만 따져도 올림픽을 열어도 되겠다 싶습니다.


   이런 형편이다 보니 이 양반이 뭘 위로할 의도를 가지지 않아도 그저 자신의 경험을 담담히 열거하는 것만으로도 '그래 나는 이 정도는 아니야...'라며 오토매틱 자동 위로가 되는 것입니다. 의도하지 않아도 위로가 되는 글이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심각하달까. 그런 글들의 대 향연입니다. 이런 이유로 이 책은 그냥 일상 에세이인데 독자 입장에서는 힐링 에세이로 받아들여지는 묘한 책인 것입니다.


   이 분이 겪은 일들을 몇 가지만 예를 들어봅니다. 어린 시절 아버지가 만성신부전으로 투병하게 되면서 외할머니 밑에서 백수 삼촌과 생활합니다. 할머니와 백수 삼촌의 갈 때까지 가는 극한 갈등 속에서 정서적으로 안정되게 자라났을 리가 있을까요? 그래서인지 늘 주눅 들고 자신감이 없어 사회불안장애 증세를 겪었습니다. 대학시절에는 한창 이데올로기적 학생운동을 왕성하게 하던 시기라 운동권 학생들의 완고함과 교조적 문화에서 갈등하다 결국 학교를 떠납니다.


    회사 생활 중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지만 정규직이 되지 못하고 해직당하는 일을 겪습니다. 이 일로 자살 시도까지 하는 큰 아픔을 겪습니다. 그뿐 아니라 다른 회사에서는 상사에게 성추행을 당합니다. 이 일 이후 조직적으로 이 일을 덮으려는 상황을 직접 겪습니다. 사실 이 경험은 쉽게 언급하기도 어려운 충격적인 일입니다. 이런 일련의 과정이 영향을 준 것인지 아이에게 애정을 가지고 헌신하는 일에도 큰 어려움을 겪습니다. 한 번은 바로 눈앞에서 동네 이웃이 추락 자살하는 장면을 목도하기도 합니다. 상상만으로도 트라우마가 생길 만한 일입니다.


   책 속에는 더 많은 일들이 담겨 있습니다. 저자가 이런 경험 속에서도 버텨낼 수 있었던 것은 그 와중에도 긍정적인 부분을 보고 삶의 일부분으로 소화해낼 능력을 갖추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능력이 그냥 생기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어린 시절부터 크고 작은 아픔을 겪어내면서 견디는 삶에 대한 예방주사를 맞아왔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렇기에 그 삶의 과정을 엿보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고 힘이 되는 것입니다.




2. 아픔을 이겨내는 비결, 태도의 힘


   이 책이 가치가 있는 지점은 저자의 다양한 경험도, 남다른 극적인 순간도 아닙니다. 나였다면 좌절하고 포기하고 말았을 삶의 여정을 만났을 때 저자가 하나하나 이겨나가는 그 태도의 힘을 배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현실 속에서 우리가 만나는 어려운 순간마다 이런 태도를 취하는 것은 생각보다 아주아주 어렵습니다. 그래서인지 사회 속에서 커리어를 쌓아나가기는 힘들어도 무너지는 건 한순간입니다.


   저자는 평균적보다 훨씬 더 빈번하게 삶의 암초에 부딪치는 경험을 겪습니다. 이 책의 글로 미루어 짐작했을 때 결과적으로 하나하나 잘 이겨내온 것 같습니다. 그 과정이 이 책에 챕터 하나하나마다 차곡차곡 담겨 있습니다. 책을 넘기면서 조금씩 더 놀라움이 커지다가 어느 순간 존경스러운 마음이 들며 저자를 응원하게 되는 묘한 감정을 주는 이유는 그만큼 진솔하게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담아냈기 때문일 것입니다.


   “나는 자존감에도 성장판이 있다고 믿는다. 이제부터라도 사소한 기특함을 벽돌 삼아 차곡차곡 쌓아 가려 한다. 끔찍한 치과 치료를 무사히 마치고 나왔을 때의 내가 기특하다. 문득 친구에게 책을 선물할 때의 기특함이나 안부 전화를 먼저 걸어주는 기특함 등 순간순간 ‘나 좀 괜찮은데’라는 생각도 잊지 않겠다. 스스로 대견한 일을 할 때마다 속이 꽉 찬 벽돌이 하나씩 만들어질 것이다. 그게 쌓이다 보면 곧 ‘자존감’이라는 집의 재료가 되지 않을까. 불쑥 나타나 철없이 떼쓰는 ‘나’가 자라날 견고한 쉼터가 되어줄 곳 말이다.”


   긍정의 힘은 말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기질을 타고났거나 훈련에 의해 가능합니다. 저자는 기질적으로 마냥 긍정적인 분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저 생존 본능으로 어느 정도 체득한 것 같습니다. 여기에 책 읽기와 글쓰기로 이 능력을 키워 나간 것 같습니다. 그리하여 자존감을 높이고 의미 부여를 해 나가며 성장해 나간 것 같습니다. 이 지점이 바로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이 배워야 할 삶의 힌트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공감하고 감정의 정화를 느끼는 것도 좋습니다만, 자기 계발서가 아닌 일상 에세이에서 삶의 지혜를 배운다면 꽤나 괜찮은 장사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3. 표현 방식의 중요성, 서정적 품위의 힘


   <내일, 내가 다시 좋아지고 싶어>는 특히 좋은 느낌으로 기억에 남을 것 같은 책입니다. 다 털어놓으면 안 될 것만 같은 남다른 개인사가 담겨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런 어려움들을 차근차근 극복해 나가며 더 나은 내일을 기대하는 전체적인 메시지도 너무 좋습니다. 여기에 또 하나 정말 무시할 수 없는 중요한 장점이 있는데, 표현 자체가 너무 품위 있고 수준이 있다는 점입니다. 요즈음 찾아보기 쉽지 않은 글 잘 쓰는 분입니다.


   글을 잘 쓴다는 것이 무엇이냐라고 묻는다면 정답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이 책이야말로 너무 무겁지도 부담스럽지도 않으면서 또 가볍지도 않은 균형감이 너무 좋은 데다가 문장 하나의 완성도는 물론 글 전체의 짜임새와 운율이 살아있는 아주 좋은 글입니다. 아마도 이런 이유에서 글이 너무 잘 읽히면서도 특정 장면에서는 몰입하게 되고, 저자가 겪은 일이 마치 지금 나에게 일어나듯 생생하게 와닿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소설을 잘 쓰는 것과는 또 좀 다른데, 일상 에세이인데도 불구하고 적당히 문학적인 서정성이 잘 버무려져 있어서 글의 품위를 확보하고 있는 형국입니다. 거 뭐, 에세이가 다 그렇지라고 할 수도 있지만 저처럼 대충 감으로 뭉뚱그려 느끼는 사람이 중간중간에 '아, 뭔가 표현이 너무 좋은데'라거나 '문장이 너무 훌륭한데' 같은 생각을 계속하면서 읽었기 때문에 리뷰의 한 꼭지를 글 솜씨에 할애할 정도니 개인적으로는 꽤나 마음에 들었던 모양입니다.


   문학적인 서정성이라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전문적인 유명 작가가 아닌 경우 소설을 쓸 때, 문학적인 문장과 표현을 의도적으로 쓰려고 노력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이런 경우 독자 입장에서는 고민에 빠지게 되는데, 소설을 소설적 문장으로 쓰려는 노력 즉, 현실에 없는 단어와 표현을 굳이 넣은 것에 대해 받아들이고 인정해 줄 것인가 짜증을 낼 것인가의 기로에 서게 되는 것이죠. 이게 어설프거나 불편한 수준에 이르면 정말 스트레스를 받는 문장이 됩니다. 그러나 똑같이 생소한 단어나 표현을 쓰더라도 문장이 유려하고 흐름이 좋아 운율을 즐길 수 있다면 오히려 극찬을 받는 문장이 됩니다.


   소설의 경우와 다르게 논픽션의 경우는 상대적으로 문학적 표현을 사용하기가 용이하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서간체처럼 뭔가 지나치지 않은 수준에서 문학적인 표현을 섞어서 문장을 써내기가 더욱 어려운 것이죠. 이걸 해내면 아주 좋은 글이 되는 것이겠지요. <내일, 내가 다시 좋아지고 싶어>는 문학적이고 서정적인 데다가 진솔한 문장이 아주 멋진 책입니다. 필력이 아주 뛰어난 분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었던 것입니다.


   지금 책을 읽기 힘들 정도로 삶의 어려움을 겪고 계시면서 억지로 위로하거나 힘을 내라고 격려하는 글이 부담스럽고 싫으신 분이 계시다면 이 책 <내일, 내가 다시 좋아지고 싶어>를 권해드리고 싶습니다. 읽다 보면 독자의 처한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아마도 대체로 '아, 이런 여러 가지 험한 일을 겪은 사람도 있구나. 이런 사람도 이렇게 긍정적으로 노력하고 담담하게 살아가고 있구나!'라는 생각에 전자동 오토매틱 위로와 격려 타임을 경험하게 되실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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