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스트 라이터
앨러산드라 토레 지음, 김진희 옮김 / 미래지향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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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설적으로 완벽한 재미를 갖춘 소설

앨러산드라 토레의 <고스트 라이터>는 근래 읽은 소설 중 가장 재미있는 소설입니다. 취향을 완전히 저격당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 정도의 이야기를 테크니컬하게 완벽히 창조해낼 수 있다니 놀랍습니다. 감탄과 동시에 부러움과 질투까지 느끼게 하는 작가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앨러산드라 토레는 일반적인 소설가의 커리어를 쌓아온 작가가 아닙니다. 아마존 자비 출판 전자책 만으로 베스트셀러 작가 반열에 오른 입지전적인 작가입니다.


아마존 자비출판의 경우 국내와 달리 저변이 튼튼하고 독자층이 워낙 넓다 보니 상대적으로는 성공 확률이 높다고 할 수는 있습니다. 사실 국내에서 자비출판으로 전자책을 만들어서 베스트셀러를 만들어낼 확률은 거의 없다고 해도 무방합니다. 그런 면에서 상대적으로 확률이 높다는 것이지 아마존의 경우도 그만큼 경쟁이 치열하기 때문에 이 또한 대단한 것인데 어쨌거나 누군가는 성공을 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 부러움을 느낍니다.


뜬금없이 책 리뷰에서 작가와 아마존 자비출판을 들먹이는 것은 이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베스트셀러 작가들이고 결국 소설을 쓰는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대체로 책을 좋아하고 소설을 즐겨 읽는 독자는 글을 쓰는 행위, 작가가 되는 일에 관심이 더 많기 마련입니다. 또한 인간의 자기표현의 욕구를 감안하면 소설가로 성공하는 것에 대한 로망이 있을 확률도 높습니다. 그렇기에 소설 속에서 작가가 등장해 글을 쓰는 과정이 펼쳐지면 좀 더 관심을 가지게 됩니다.


까탈스러운 주인공, 그 주인공이 남몰래 안고 있는 감춰진 비밀, 반드시 해내야 할 과제, 과제를 해내기 불가능할 정도로 어려운 환경, 끝끝내 해내는 스토리적 완성과 그 와중에 밝혀지는 놀라운 반전의 연속 등이 이 소설의 완성도를 현저히 올리고 있습니다. 어느 한 요소도 부족하거나 과하지 않고 모든 면에서 평균 이상, 아니 월등히 높은 수준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소설을 마지막까지 읽고 나서 느끼는 먹먹함까지 더하면 극찬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개인적으로 소설을 읽을 때의 만족도가 남달리 좀 높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근래 읽은 어떤 소설보다 재미 면에서 비교불가 원탑이었습니다.




2. 완벽한 캐릭터 심리묘사와 유효 적절한 반전의 묘미


어떤 스토리 건 독자에게 공감을 얻고 몰입할 수 있도록 하려면 등장인물의 설정과 묘사가 딱 떨어지는 것이 중요합니다. 외적으로도 매력이 있어야 하지만 '캐릭터의 심리묘사가 얼마나 잘 이루어지느냐'가 소설의 성패를 가르는 가장 큰 요소 중 하나입니다. 이미지와 영상으로 모든 것을 보여주어야 하는 영화나 드라마의 경우는 행동과 대사, 미장센이 핵심인 반면 소설은 영상물이 할 수 없는 내면의 묘사를 통해 주인공의 감정이나 생각을 이해하고 공감하도록 하는데 성공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초반에 묘사되는 주인공 헬레나 로스는 사회성이 떨어지고 독단적인 인물입니다. 그러나 스토리가 진행됨에 따라 주변 환경(특히 결정적으로 사회성을 해친 엄마의 태도)과 특정 사건 때문에 원래보다 더 뒤틀린 것이라는 점이 조금씩 밝혀집니다. 그 과정에서 묘사되는 헬레나의 심리와 행동은 독자로 하여금 안쓰럽고 안타까운 마음이 들게 합니다. 헬레나의 마음속에 일어나는 여러 가지 감정의 소용돌이를 따라가다 보면 독자의 속이 뒤흔들리는 경험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만큼 심리적 동조가 크게 일어나는 소설입니다.


주인공 헬레나 로스는 비밀로 간직해야 온 사건의 순간을 소설로 남기기 위해 대필 작가를 씁니다. 헬레나가 지정한 대필 작가를 처음 만나는 순간부터 반전의 연속입니다. 스포일러를 할 순 없지만 이 반전으로 인해 스토리가 풍성해지고 흥미요소가 증폭합니다. 주인공의 태도 변화와 행동을 이끌어내는 중요한 동력원으로 작용합니다. 애초에 소설은 주인공 헬레나의 남편과 아이가 죽은 사건에 감춰진 비밀이 있음을 끊임없이 암시합니다. 그럼에도 그 비밀이 밝혀지는 순간이 오면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아, 그래서 그랬군.'하고 넘어갈 수가 없습니다. 그만큼 그날의 비밀은 큰 충격입니다.


이 소설에는 독자 입장에서 예측하기 어려운 반전이 여러 번 등장하는데 그때마다 허를 찔린 듯 놀라움을 느낍니다. 이 정도에서 약간의 반전이 있겠다는 기대를 가지고 있을 때 생각지도 못했던 사건을 던져주며 독자를 놀래 킵니다. 전체적으로 무척 무겁고 심각한 이야기임에도 어느 지점에서는 웃음이 터지는 장치도 있어 더욱 훌륭합니다.


반전을 처리하는 과정에 능숙하지 못하면 반전을 성공하더라도 독자는 끝 맛이 개운치 않은 듯한 기분을 느끼게 됩니다. 결과적으로 약간 속은 느낌을 받기도 하고, 스토리의 완성도를 오히려 해치기도 합니다. 이런 점에서 <고스트 라이터>는 반전의 적절하고 효과적인 사용만으로도 완성도 높은 이야기를 풀었다가 단도리까지 완벽하게 해냅니다. 좀처럼 만나기 힘든 소설이라는 생각이 드는 큰 이유 중 하나입니다.




3. 인간 공통의 문제의식을 잘 담아낸 소설

애초에 이 소설은 헬레나 로스라는 베스트셀러 소설가의 퍼스널 스토리입니다. 그렇기에 등장인물도 단순합니다. 주인공 헬레나 로스에게 어떤 일이 있었고, 그 일은 왜 일어났으며 어떻게 처리되어 오늘에 이르렀는지가 메인 스토리이며 그 일의 전말을 알리기 위해 소설을 써내는 것이 핵심입니다. 이 일에 필연성을 더하기 위해 주인공을 시한부 환자로 만듭니다. 더 이상 그 일을 미룰 수 없는 상황에서 일을 마무리하기 위해 행동하는 과정에서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 펼쳐집니다. 저자는 이런 사건 상황에서 묘사되는 개인의 문제, 사회 전반의 문제를 자연스레 풀어내고 있습니다.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아카데미 감독상과 작품상을 휩쓴 가장 큰 이유는 전 세계 어느 나라에 사는 관객이 보아도 공통으로 공감할 수 있는 인류 공통의 계층 문제를 감각적으로 담아냈기 때문입니다. 이 문제의식을 표현하는 방식이 과하지 않고 위트 있게 영화적 장치로 잘 구현해냈습니다. 분명 대한민국이라는 특수한 환경에서 발생한 특징적인 문제인데도 불구하고 공통의 문제로 확장할 수 있었던 것이 인류 공통의 공감대 형성이 관건이었습니다.


<고스트 라이터>가 특별한 이유도 비슷합니다. 베스트셀러 소설가이고 부유한 가정에 일어난 문제임에도 그 과정에서 겪는 주인공의 혼란과 신체적으로 무너져 내리는 과정을 보고 있으면 시대와 장소를 초월하는 공통의 아픔을 공유하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누구나 어디에도 고백할 수 없는 비밀을 하나쯤은 간직하고 있습니다. 이를 풀어내고 용서를 구해야 할 부분에 대해 용기를 내지 못하는 사람 역시 무척 많습니다. 소설 속 주인공 헬레나가 망설이듯 말입니다.


이때 공통의 과업을 위한 파트너 마크의 역할이 크게 다가옵니다. 애초에 묘한 관계로 엮인 이 캐릭터는 주인공 헬레나를 관찰하고 애정을 가지고 넓게 품어주고 기다려줍니다. 필요할 때는 푸시하고 자극하고 도전하기도 합니다. 결국 헬레나가 주어진 과업을 이루어내는데 결정적인 조력자 역할을 합니다. 마크 스스로도 말 못 할 아픔을 간직하고 있어 더욱 설득력을 확보합니다. 마크 역시 고립되어 고통받는 누군가를 보호하고 돕는 특징에서 주변에 있을 법한 인물입니다.


이런 작가의 소설적 장치들은 독자로 하여금 인간 본연의 다양한 감정의 파도를 경험하게 만들어줍니다. 소설의 효능을 충분히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미스터리한 비밀을 풀어내는 과정의 즐거움, 독특한 캐릭터의 내면 묘사와 몇 안 되는 주변 인물과의 관계에서 다이내믹한 상호작용, 목표를 향해 몰아치는 사건의 전말, 생각지도 못했던 반전에서 오는 쾌감 등을 모두 느껴보고 싶으시다면 이 소설 <고스트 라이터>를 읽어보시기 권해드립니다. 취향에 따라 전반부가 지루하게 느껴질 가능성도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즐겁게 몰입해서 읽었던 너무 좋았던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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