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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로 씻어 낸 가슴에는 새로운 꽃이 피어나리 - 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 폴리카르포 신부님 묵상, 무심의 다스림
김종필 지음, 김혜남 그림 / 포르체 / 2022년 11월
평점 :
1. 무심의 다스림, 자연스레 흘러가게 두다.
<눈물로 씻어 낸 가슴에는 새로운 꽃이 피어나리>는 근래 들어 가장 고풍스러운 제목을 단 책입니다. 사실 처음 이 책을 접했을 때, '음... 요즘 트렌드에 좀처럼 나올 만한 책 제목이 아닌데...'하는 생각 때문에 일면 당황했다가 바로 호기심으로 바뀌면서 책을 읽게 되었습니다. 역으로 관심을 끄는데 성공했으니 좋은 제목이라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결과적으로 무척이나 솔직한 제목입니다. 책 제목이 이 책의 핵심 주제와 맞닿아 있습니다.
한때는 제 인생이 소설이나 영화에서 보는 수많은 인생들과는 달리 아무 일도 없고, 너무 무탈해 심심하다고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는 정말 별일 없이 사는 인생이었습니다. 아마 그 시기에 이 책을 대했다면 책 내용을 공감하기 어려웠을 수도 있겠습니다. 인간이란 누구나 자기가 겪거나 이해하는 범위 안에서만 관심을 가지고 납득하는 존재가 아닙니까? 그리하여 이 책을 쓴 저자의 일상 이야기들이 오히려 소란스럽게 여겼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지금에 와서 인간이란 누구나 인생의 기복이 있고, 삶의 희로애락이 파도처럼 넘실대며 고통의 순간을 겪기도 한다는 것을 이해합니다. 어떤 부분은 나의 잘잘못의 문제를 넘어서 누구의 탓으로 돌릴 수조차 없는 순간도 종종 마주하게 됩니다. 낙심해 슬픔이 올 때, 좌절해 한없이 가라앉을 때 상황을 객관적으로 관조하며 스르륵 넘기기란 무척 힘든 일입니다. 그럴 때면 이론은 이론일 뿐이란 사실을 뼈져리게 느끼게 됩니다.
성 베네딕도회 수도원의 폴리카르포 김종필 신부님이 쓰신 이 책 <눈물로 씻어 낸 가슴에는 새로운 꽃이 피어나리>는 무심의 경지에 오르기 가장 유리한 성직자의 입장에서 쓴 일상 시와 에세이 모음집입니다. 신부님의 글은 너무나 종교적이고 거룩해 부담스럽다고 짐작하실 수 있습니다만, 막상 이 분의 글을 읽어보니 평범한 일상을 사는 사람들과 별반 다르지 않음을 깨닫게 됩니다. 그저 직업이 성직자이고 그리하여 직업적 유익을 누리는 부분이 없지 않지만, 이 분 역시 기쁨과 슬픔의 일상 속에서 오르내리는 감정의 파도를 어떻게든 다스리며 살아가고자 애쓰는 한 인간이라는 점을 새삼 느낄 수 있습니다.
책을 통해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하시지만 굳이 한 문장으로 짜내 정리를 해보자면 "인생의 여러 희로애락에 흔들림 없는 무심의 다스림을 깨우치자" 정도가 아닐까 싶습니다. 물론 이런 주장을 하시지만 정작 저자께서도 무심보다는 유심의 경계 깊숙이 들어와 계신 거 같기는 합니다. 리더십 강의를 주로 하는 강사인 제 친구도 정작 자신은 강의 내용처럼 살지 못한다고 고백하는 것을 보면 좋은 이야기는 좋은 마음으로 좋게 읽고 마음에 새기는 것이 최선인 것 같습니다.
2. 기도하고 일하라(Ora et Labora)
저는 모태신앙으로 살아서 가톨릭은 뭔가 좀 익숙하기는 합니다만, 가톨릭 사제의 삶은 잘 알지 못합니다. 원래 모든 가톨릭의 교리가 그런 건지 모르겠으나 적어도 이 책의 저자이신 김종필 신부님은 "기도하고 일하라(Ora et Labora)"라는 좌우명으로 살아오신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일상 고백 중에 뭔가 노동을 하거나 소일거리를 하시는 장면이 자주 등장합니다.
책 속 저자의 "일" 하는 장면을 대하게 되면 이 분이 가톨릭 사제인지 불교 스님인지 헷갈릴 때가 있습니다. 스님들이 절에서 바닥을 쓸거나 뭔가 일을 하는 장면이 각인이 되어서 그런가 봅니다. 저는 책을 읽는 중에 진짜 반복적으로 착각이 들었습니다. 그만큼 종교 생활 안에서 기도하고 뭔가 사역하는 일은 비슷한 느낌을 주는 것 같습니다.
기도와 일을 병행할 수 있다면 꼭 직업인으로 사제가 아니더라도 삶을 더 건강하고 규모 있게 살 수 있을 것만 같습니다. 정신뿐 아니라 육체 건강에도 큰 도움이 되겠지요. 기도는 절대자에게 드리는 고백이나 찬양 같은 것이 되겠지만 차분히 생각해 보면 자기 스스로의 마음을 돌아보는 행위로도 해석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므로 기도를 반복하는 건 자신의 본질을 찾아가는 여정으로도 치환할 수 있습니다. 기도의 대상이 없는 분들은 명상으로 대체해도 비슷한 효능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책 속에 등장하는 다양한 시와 산문에 저자의 모토가 잘 표현됩니다. 저는 시와 너무 거리가 있어서 시집을 읽어도 멍해지는 시알못인데도 너무나 솔직하고 고백적인 시를 대할 때면 약간의 울림이 있었습니다. 저도 모르게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어 잘 살아왔는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 점검해 보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딱히 답을 얻지 못해도 쉬어가는 듯한 힐링을 얻을 수 있는 글이었습니다. 글을 읽다 보면 무해함의 결정체를 대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3. 의외의 포인트, 김혜남 삽화
이 책 의외의 포인트가 바로 <서른 살이 심리학에 묻다>, <어른이 되면 괜찮을 줄 알았다> 등의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정신분석 전문의이신 김혜남 박사님이 삽화를 그렸다는 점이었습니다. 이 분이 심리학 계통에서 엄청 유명하시다는 것만 알고 있었지 그림을 이렇게 그리시는지 상상도 못했는데 정말 많은 작품이 책 속에 삽화로 들어가 있어 또 다른 큰 재미를 주고 있습니다.
시집이나 에세이집에서 삽화의 역할은 상당히 큽니다. 책 속 삽화는 그리는 작가의 그림 실력은 물론 책 내용에 대한 이해도에 따라 수준이 크게 달라집니다. 그렇기에 김혜남 박사님의 삽화는 책의 내용, 흐름, 분위기와 얼마나 잘 어우러지느냐? 책의 내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느냐? 등으로 따져봤을 때 무척 훌륭하게 역할을 다한 것 같습니다.
삽화 자체가 한 페이지를 가득 채우는 경우는 거의 없고 글의 여백 한쪽 1/4페이지 정도를 차지하는 크기로 다소곳이 책의 곳곳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존재감을 지울 수 없어 그림을 감상하는 맛이 쏠쏠합니다. 일관된 스타일은 있으나 본문 내용에 따라 알맞게 표현한 그림이 정말 특별합니다. 이 책을 읽는 큰 재미 중 하나였습니다.
이자는 오르고 집값은 떨어지며 주식도 코인도 어렵기는 매한가지인데다 인플레이션으로 삶이 팍팍하기 그지없습니다. 정치적으로 시끄럽고 정신이 사나우며 이태원 참사로 분노와 상심, 좌절과 실망 등의 복잡한 감정이 뒤엉키는 시점에 와 있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더욱 마음을 다잡고 추스르며 각자도생해야 할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내 스스로를 다스려야 타인을 돌아보고 연대할 수 있는 최소한의 힘이 생겨나지 않겠습니까. 이 책 <눈물로 씻어 낸 가슴에는 새로운 꽃이 피어나리>는 읽는 이의 마음을 부드럽게 씻어주며 차분히 돌아보는데 큰 도움을 주는 책입니다. 속는 셈 치고 한 번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