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러티브 뉴스
셰릴 앳키슨 지음, 서경의 옮김 / 미래지향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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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내러티브 뉴스가 무엇인가?


   이 책 <내러티브 뉴스>를 처음 접할 때, '응? 네거티브 뉴스 아니고?'라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었습니다. 제가 아는 한 "내러티브"라는 단어는 주로 소설 같은 문학 작품이나 예술 작품 등의 영역에서 사용되던 용어였기 때문입니다. 이를테면 내러티브는 소설 속에 인물 간의 사건이 어떻게 이어지고 조직되었고, 주제 등을 전달하기 위해 어떤 방식으로 스토리를 풀어나가는가를 따질 때 쓰던 용어였지요.


   뜬금없이 "내러티브"라는 단어가 "뉴스"의 영역에서 사용되다 보니 상당히 생소하게 느껴졌습니다. 한편 그렇기에 저의 흥미를 끌기도 했습니다. 미국의 탐사보도 기자이자 앵커인 저자는 책 <내러티브 뉴스>를 통해 뉴스 분야에서 점차 사라지고 있는 저널리즘의 역할과 중요성에 대해 거의 피를 토하는 느낌으로 토로를 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내러티브란 용어는 상당히 부정적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저자는 서문을 통해 내러티브의 의미와 목적에 대해 이렇게 밝히고 있습니다.


"내러티브(narrative)란 힘 있는 자들이 여러분의 견해를 규정하고 제한하기 위해 들려주고자 하는 스토리 라인을 가리킨다. 내러티브의 목적은 특정 아이디어를 사회 속에 깊숙이 심음으로써 더 이상 그에 대해서 질문이 나오지 않도록, 아니 아예 질문을 할 생각조차 못 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뉴스는 원래 세상에 일어난 일이나 사건 등을 있는 그대로 다수의 대중에게 전달하는 것인데, 여기에 부적절한 의도가 파고들면서 누군가의 특정 목적을 위해 악용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뉴스를 "내러티브 뉴스"라고 정의하고 있는 것이죠. 그러므로 이 책은 바람직하지 못한 뉴스의 현장에 대한 다양한 양상에 대해 밝히고, 다수의 사례를 통해 문제의식을 공유하는데 일차적인 목적이 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한편, 이 책의 원제는 "Slanted: How the News Media Taught to Love Censorship and Hate Journalism"입니다. 그러니까 대충 해석하면 "(미디어 환경의) 편파적인: 뉴스 미디어가 어떻게 검열을 사랑하고 저널리즘을 싫어하게 가르치는가?" 정도로 이해할 수 있겠네요. 일단 뉴스 환경이 편파적이라는 것이죠. 검열에 익숙하게 만들고 저널리즘을 싫어하게 만들고 있다는 것입니다. 저널리즘이란 다양하게 활용되는 용어기는 하지만 뉴스를 공정한 관점에서 전달하고 논평하는 활동을 의미한다고 보면, 원론적으로 중요한 기자의 뉴스 보도 태도가 변질되고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주는 제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결국 이 책은 <내러티브 뉴스>가 미국 사회의 언론 환경을 얼마나 바꾸고 파괴해 왔는지, 이를 통해 미국 국민들이 얼마나 왜곡된 뉴스 때문에 피해를 보고 있는지 고발하는 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바람직한 뉴스 환경은 어때야 하며, 기자들은 어떤 자세로 취재하고 보도해야 하는지에 대한 기준을 제시한다고도 볼 수 있겠습니다.



2. 내러티브 뉴스가 왜 문제인가?


   이 책은 언론 환경이 어떻게 변화해왔으며 누가 변화를 의도했는지, 왜 언론이 동조했고 전통 언론 이외에 어떤 환경이 영향을 미쳤는지 등에 대해 거시적인 조망은 물론 디테일한 부분까지 놓치지 않고 총망라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미국의 사례이기 때문에 미국 내에 국한된 이야기이며 특히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둘러싼 언론의 태도에 대해 매우 집요하게 파헤치고 있습니다. 탐사보도 전문 기자의 특징을 여지없이 드러내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이런 내러티브 뉴스는 특히 정치분야에서 파급력이 크게 드러납니다. 그뿐만 아니라 기업가들 역시 광고 수주를 원하는 방송 매체들의 특성을 활용해 내러티브를 적극 이용합니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뉴스의 주체들이 스스로 내러티브를 만들고 유지하는 상활까지 이르게 됩니다. 저자는 이미 내러티브로 점철되어 내러티브끼리 대결하는 상황까지 와 있다고 진단하면서 다양한 매체의 자충수에 대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내러티브는 일종의 선동에 가깝습니다. 누군가가 의도를 가지고 뉴스의 형식으로 불특정 다수에게 유포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전통적인 방식으로 노골적인 내러티브는 '에이, 저걸 누가 믿어?'라고 자연히 걸러질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다수의 힘은 무섭습니다. 다수의 언론이 같은 주장을 하면 그 주장이 진실이 되는 것이죠. 일종의 동조 효과가 작동하게 됩니다.


   문제는 이런 내러티브의 주체가 내러티브를 만들어내고 유포하는 행위에 대해 죄책감이나 자의식이 없는 경우입니다. 저자는 심지어 진실을 있는 그대로 보도하고 특정 주장을 실더라도 정확한 팩트를 확인하는 기본적인 자세조차 지켜지지 않는 현실을 개탄합니다. 여기에 더 나아가 기자들이 특정한 이념이나 사상을 덧대어 대중을 교육, 교도하는 것이 언론인의 의무라고까지 생각하고 가르치고 있다고 밝힙니다. "내러티브 뉴스"가 마치 기자의 의무이자 책무인 것처럼 변질된 것입니다.


   이쯤 되면 내러티브 없는 뉴스나 기자는 자체적으로 공격받고 배제되는 지경에 이르게 됩니다. 그리하여 대중들은 공정한 정보로 상황을 파악할 기회조차 잃게 되는 것입니다. 특정 세력의 의도에서 시작된 내러티브는 점점 사회를 극단적인 시각으로 이끌고 자정작용을 잃게 만듭니다. 이런 환경에서 내러티브는 더욱 기승을 부리게 되고 점점 그 자체로 누가 더 자극적으로 대중들의 시선을 끄는가의 대결을 펼치게 됩니다. 이미 진실, 사실은 안드로메다로 날아가고 아무도 관심이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됩니다. 책에서는 다양한 극단적인 사례를 통해 이런 일이 현실 세계에서 너무도 많이 실제 한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마치 자생력을 갖춘 것 같은 내러티브 뉴스의 작용은 사회를 점점 더 분열하고 극단화하게 합니다. 안타깝게도 특정 정치세력이나 기업 등에서는 이런 현상을 또 다른 내러티브의 재료로 활용합니다. 이런 일련의 흐름은 1장의 CBS의 사례만으로도 매우 실제적으로 다가옵니다. 그뿐만 아니라 저자는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미투 이야기, 총기 사고, 트럼프 죽이기, 러시아 활용, 엉터리 여론조사 등의 구체적인 사례로 주장을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3. 뉴스를 소비할 때 반드시 알아야 할 것들

   이 책에 소개되는 모든 현상은 미국에 국한된 이야기입니다. 특히 책의 전체를 지배하다시피 하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 관련 뉴스의 사례는 한국 독자 입장에서는 와닿지 않는 면이 있습니다. 그러나 디테일의 차이를 고려하더라도 책 속 내용이 마치 대한민국의 언론환경을 고발한 이야기 같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언론 환경의 문제는 전 세계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현상이고 대한민국도 예외는 아니기 때문입니다.


   대한민국도 특정 세력과 미디어의 결합이 심각한 수준인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정치면에서 보수는 보수 대로 진보는 진보대로 언론 환경이 정말 기울어진 운동장과 같다고 주장한다는 점입니다. 보수는 언론이 완전히 친정부적이라 주장하고 진보는 다수의 언론이 보수와 자본과 결탁해 진실을 호도하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여기에 더해 검찰이나 사법부 등도 하나의 권력으로 뉴스 미디어에 막대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습니다.


   이 책 <내러티브 뉴스>의 다양한 사례는 대한민국 현실을 돌아보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뉴스 미디어의 변화를 인지하고 뉴스에 실리는 "의도"를 충분히 감안하고 뉴스를 접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특정 뉴스 미디어만 선택적으로 받아들이는 자세는 반드시 지양해야 하겠습니다. 내 성향과 임장을 강화하는 뉴스만 취사선택할 때 잘못된 판단을 할 위험성은 점점 커집니다. 그런 의미에서 뉴스 채널을 다양화하는 노력은 무척 중요합니다. 사건은 하나인데 해석과 주장은 전혀 다른 사건처럼 늘어놓는 언론의 행태를 보면 그야말로 "내러티브의 대 향연"처럼 보일 때가 많습니다.


   저자는 맺음말에서 정보를 독점하고 내러티브를 강화하는 자들의 목적에 대해 이렇게 설명합니다.


"정보 독재자들의 궁극적인 목적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자발적으로 정보가 통제되는 환경이다. 사람들이 스스로 자기 생각과 행동을 검열하고, 무엇이 허용되고 무엇은 허용되지 않는지를 인지하게 만드는 것이다. (중략) 오웰이 제시한 암울한 미래의 모습이 점점 우리에게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우리 대중들은 미디어가 의도를 가지고 사실을 가공하기도 하고 검증되지 않은 주장을 뉴스로 둔갑시키기도 하는 현실을 반드시 염두에 두어야 하겠습니다. 그런데 상황이 이렇다 보니 뉴스를 받아들이는 행위 자체에도 상당한 에너지와 노력이 필요합니다. 이는 많은 사람들이 현실과 단절된 세계를 선호하는 이유가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저자가 결론에서 보여주는 것처럼 희망을 잃을 것은 아닙니다.


"단지 나는 다양한 형태로 접근 가능한 정보가 보장된 미래, 옳은 것과 다른 것을 자유로운 사고로 구별할 수 있는 미래가 있다고 믿고 싶은 것이다. 사람들은 마음껏 자신의 두뇌를 사용하여 원하는 것을 생각하고, 자신의 의견을 도출하며, 생각을 바꾸기도 하고, 자신의 입장을 타진하며, 논쟁하고 토의도 하는 그런 사회. 대중의 정보와 사고를 제한하려는 정치, 기업 이익집단 또는 사회적 운동가들의 억압이 없는 세상. 지식에 대한 끊임없는 탐구가 지속되는 그런 미래 말이다."


   저자가 꿈꾸는 이런 미래는 말 그대로 꿈같은 이야기로 들립니다. 그럼에도 좀 더 적극적이고 주체적인 자세만 견지한다면 더 나아질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대중은 대중대로 뉴스에 휩쓸리지 않고, 언론은 언론대로 답을 찾아가야 할 것입니다. 언론 환경이 어떤 식으로 변해 왔는지 체계적으로 알고 싶으신 분, 뉴스 미디어가 견지하는 내러티브 뉴스의 특징과 목적, 드러나는 양상은 물론 무엇을 주의하고 어떤 견해와 태도를 가져야 하는지 생각해 보는 계기를 마련하고 싶은 분들에게 이 책을 권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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