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문 고등학교, 수상한 축제 블랙홀 청소년 문고 20
정명섭 외 지음 / 블랙홀 / 2021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 귀문 고등학교 미스터리의 화려한 귀환

 

<귀문 고등학교 미스터리 사건 일지>가 나왔을 때만 해도 재미있는 스토리는 분명하지만, 이 책이 시리즈로 출간될 줄은 몰랐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그 당시에 미스터리 소설 작가들이 의기투합해 앤솔로지를 다양하게 출간하는 시기였고, 그런 여러 실험작들 중 하나로 생각했었기 때문입니다. 후에 많은 앤솔로지 중에 <귀문 고등학교 미스터리 사건 일지>는 유독 판매 스코어가 좋았던 것을 보고 반가웠던 기억이 납니다.

 

작가님들과 팟캐스트 방송 녹음까지 하면서 즐거운 캐미를 뽐냈던 장면을 돌이켜보면 특히 잘 기획된 앤솔로지가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고등학교가 배경인데다 소설 속 주인공들도 거의 학생이다 보니 학생 독자들뿐 아니라 다양한 연령층에 두루두루 많은 사랑을 받았을 거라 판단됩니다. 이 소설이 시리즈로 출간될 수 있었던 큰 힘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 흥미로운 이야기가 살아남아 또 다른 재미있는 스토리로 꽃 피는 모습이 반가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전편에서 다섯 가지 이야기들이 독립적으로 잘 마무리되었기는 하지만, 짧은 단편으로 마무리하기에는 너무 아까운 설정과 캐릭터들이었습니다. 작가들의 뛰어난 역량을 고려하면 이 매력적인 캐릭터들이 다른 이야기 속에서 반드시 다시 등장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아마도 이 소설을 읽었던 독자들이라면 저처럼 새로운 이야기로 귀환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두 번째 이야기 <귀문 고등학교, 수상한 축제>는 이전 이야기를 읽지 않아도 전혀 무리가 없을 만큼 독립된 이야기로써 완성도가 높은 단편들입니다. 첫 번째 이야기를 기억하고 있는 독자라면 더욱 즐겁고 익숙하게 읽을 수 있어 더 풍성한 느낌과 반가움으로 읽을 수 있는 이야기기도 합니다. 뭔가 짜이지 않은 자유분방한 느낌의 글들이 느슨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느꼈던 시리즈 첫 편을 생각하면 이미 손발을 맞춰본 프로 작가들이 내놓은 두 번째 이야기들은 훨씬 서로 합이 잘 맞았습니다. 조화로운 바탕 속에 개성과 필력을 뽐내는 듯한 느낌을 많이 받았습니다. 환영할 만한 귀환이 아닐 수 없습니다.

 

 

2. 확실히 자리 잡은 시리즈의 개성만발 스토리

위에도 잠시 언급했지만 이번 책은 첫 번째 시리즈에 비해 뭔가 짜임새 있게 자리를 잘 잡았다는 느낌입니다. 이미 익숙해졌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작가들이 각자 애정 하는 소설들을 더 업그레이드해 내놓았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내용을 재미있게 써 냈을 뿐만 아니라 전작의 이야기나 설정을 잘 유지해 연속성도 잘 살렸습니다.

 

전작들에 비해 보다 전반적인 배경의 톤과 이야기의 매너도 서로 더 잘 어울리도록 조정이 된 느낌입니다. 첫 작들은 설정 공유 외에는 서로 되도록 자유롭게 집필해서 인지, 스타일이 지나치게 개성적이라 하나의 앤솔로지로 엮기에 부족한 부분도 있어 보였습니다. 학교 밖에서 일어나는 일도 있었을 만큼 자유로운 느낌이었습니다.

 

확실히 이번 편은 다섯 편의 단편이 모두 같은 공간, 비슷한 시간에 벌어지고 있다는 느낌이 확 살아서 짜임새 좋은 앤솔로지 같았습니다. 하나의 시공간에 서로 다른 다섯 명의 화자가 서로 동시다발로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한 입체적인 느낌으로 읽었습니다. 각각의 소설 들은 모두 같은 학교의 축제일이라는 구체적인 공통점으로 묶여 있습니다. 그렇기에 다섯 개의 단편을 하나의 장편처럼 한 호흡에 쭉 읽기에 너무 편했습니다. 어느 단편을 읽어도 '이건 또 무슨 이야기지?'라는 의아한 생각이 들지 않았습니다. 서로 호응을 이루는 가운데 개성도 있는 이야기였습니다.

 

모든 이야기 속에 경찰차의 사이렌 소리가 들리며 교내로 경찰차가 질주해 들어오는 장면이 사용됩니다. 여기에도 톤 앤 매너가 통일감 있게 펼쳐지는데, 다들 경찰차 소리가 각자 이야기의 메인 스토리와는 관련이 없는 것처럼 사용됩니다. 이런 설정은 지금 읽고 있는 스토리 자체도 흥미롭지만, 각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귀문 고등학교 자체의 미스터리함을 돋보이게 함으로써 서로 서로의 이야기를 살려주는 역할을 합니다. 다른 이야기에 놀랄만한 사건이 등장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을 지속적으로 느끼게 하는 장치로 잘 활용되고 있습니다. 상당히 스마트한 설정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3. 균형감 좋은 앤솔로지를 대하는 즐거움

<귀문 고등학교, 수상한 축제>에 등장하는 이야기는 하나같이 학원 미스터리 물이고, 주요 등장인물들이 교사 또는 학생입니다. 이렇게 되면 사실 표현할 수 있는 범위가 상당히 제한될 수밖에 없습니다. 학생들이 겪는 일상과 고민 등이 생각보다 진부하고 스테레오 타입으로 드러날 위험성이 상당히 큽니다. 자칫하면 '또 이런 이야기야?'라는 반응이 나오기 십상입니다.

 

개인적으로 학원물을 별로 즐기지 않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이 소설집은 그런 진부함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다섯 가지 이야기를 읽어나가는 데 있어서 뭔가 불편하게 느껴지거나 걸리는 부분이 하나 없이 후루룩 읽을 수 있었습니다. 때로는 가볍게 웃으면서, 때로는 가슴 아픈 마음으로 읽었습니다.

 

10대의 직접적이고 투박한 감정 표현이라든가, 무모한 행동 등의 특징이 그대로 드러나는 사건들을 대하면서 추억도 떠오르고 부모의 심정으로 읽기도 했습니다. 정명섭 작가님이 풀어낸 소년 탐정 안상태의 "축하 공연을 사수하라!"라는 귀엽기도 하고 제법 정직한 정통 추리 소설이었습니다. 지난 작품보다 조금은 더 밝은 톤으로 전체적인 이야기와 분위기를 잘 맞추면서 첫 작품으로 포문을 잘 열어주었습니다. 걸그룹 이야기 속에 팬과 안티팬 등의 문제가 잘 드러나고, 중간에 톡 소설 같은 장면이 사용된 점도 흥미로웠습니다.

 

정해연 작가님의 "찢어진 드레스"는 기존 작품 속 설정이 그대로 잘 살아나 반가웠던 작품입니다. 유일하게 선생님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데 주인공이지만 사건의 관찰자 같은 포지션이라 학생들의 심리가 잘 드러나도록 하는 역할을 수행합니다. 이런 포지션을 무척 현명한 선택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상대방의 죄책감을 읽는 능력은 상당히 독특한 능력입니다. 이를 최대한 잘 활용할 수 있는 스토리를 잘 풀어냈고, 모든 소설 중 가장 감정의 폭발을 잘 표현한 작품이었습니다.

 

조영주 작가의 "아무도 모르게"는 역시 독특한 이야기를 창조해 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작가가 애정 하는 사이코패스 애리가 돌아와 흥미로운 스토리를 잘 풀어나가는 이야기였습니다. 이번 작품에서는 과연 사이코패스가 맞는가의 고민이 별로 들지 않을 정도로 맵지만 훈훈한 역할을 하고 유유히 사라집니다. 이런 미스터리한 캐릭터의 특징을 그대로 유지한 점이 무척 좋았습니다. 역시나 캐릭터의 내면 묘사에 특화된 작가의 장점이 고스란히 살아있는 작품이었습니다.

 

전건우 작가의 "탐정은 가면을 쓰지 않는다"는 전작에서 유일하게 정통 탐정 추리소설을 패기 있게 써냈던 그 스토리가 그대로 이어진 이야기입니다. 하나의 이야기로 연결해도 좋을 만큼 잘 짜인 설정이 그대로 유지되었습니다. 어떤 작품보다 전작의 스토리, 캐릭터, 배경을 더 적극적으로 활용한 느낌입니다. 그러면서도 사회적 이슈를 잘 버무려 역시나 훌륭한 단편 추리소설이 완성되었습니다.

 

김동식 작가의 "역보물 찾기"는 역시나 가장 독특한 소설이었습니다. 보물 찾기를 시작도 전에 찾아내 감추고 문제 출제자가 보물을 역으로 찾게 만든다는 설정도 신선했고, 이 과정에서 전혀 다른 사회파적 메시지가 드러나도록 짧은 분량에 담아낸 것도 훌륭했습니다. 소설 속에서 문제를 푸는 과정에 등장하는 애너그램도 신기했습니다. 머리가 나쁜 저에게는 정말 괴로운 부분이었는데 등장인물이 풀어내도록 포기하고 편한 마음으로 이야기를 즐겼습니다. 학교 속 괴롭힘 이야기도 역설적으로 더 선명하게 와닿았습니다.

 

너무 심각하지 않고, 그렇다고 아무 생각 없이 읽을 만큼 가볍지도 않은 균형감각이 좋은 앤솔로지 미스터리 소설을 좋아하신다면 무조건 추천해 드릴 소설집입니다. 부담 없고 불호가 거의 없을 거라 판단되는 만큼 10대 아이들부터 전 연령대에 모두 즐겁고 편안하게 즐기기 좋은 책이 아닐까 싶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