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틀린 집 안전가옥 오리지널 11
전건우 지음 / 안전가옥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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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뒤틀린 집에서 겪는 무시무시한 이야기


   무서운 이야기 전문 전건우 작가의 신간 [뒤틀린 집]은 집과 가족과 원혼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무섭습니다. 매우 무서운데, 호러 호러 하기도 하지만 조마조마 미치게 하는 서스펜스가 대단한 소설입니다. 한 번에 빠르게 읽었지만 읽기 싫은 마음과 앞으로 나올 이야기가 궁금해지는 양가감정을 가지게 만드는 이야기였습니다. 


   집에서 그냥 귀신이 나온다고 하면 스토리의 설득력이 없다 보니 명분을 만들어야 하는데, 집의 방위와 구조 때문이라는 설명은 상당히 그럴 듯했습니다. 특별히 방위라든가 집의 설계 원칙 따위를 공부한 사람이 아니라면 아주 생소한 설명이기 때문에 더 그런 것 같습니다. 


"대충 설명하자면 집의 방위에도 음양의 조화가 중요하다는 거야. 집, 대문, 안방, 주방, 심지어 화장실까지 동사택이면 동사택, 서사택이면 서사택으로 배치가 되어야 길한 집이지. 반대로 동사택과 서사택이 섞이면 그게 바로 뒤틀린 집, 즉 오귀택이 되는 거야."

본문 152~153페이지


   뒤틀린 집이라는 설정이 힘을 받기 때문에 이 집에서 벌어지는 사소한 일도 긴장감 있게 받아들여집니다. 작가 특유의 배경 묘사와 의성어의 활용, 독특한 어법 등이 잘 발휘되어서 인지 등장인물이 어느 위치에 가도 불편하고 불안한 마음이 들게 만듭니다. 그뿐만 아니라 등장인물은 모르는 사실을 독자들이 먼저 알게 되면서 느끼는 서스펜스의 마법이 아주 잘 작동하는 소설입니다. 


   집안도 무섭지만 창고에 무서움의 핵심이 있다는 설정도 좋았습니다. 보통 외국 소설에 등장하는 지하실의 경우 우리 정서에 좀 어색하고 익숙하지 않을뿐더러, 지하실에서 일어나는 일을 핵심으로 하면 독자와는 조금 동떨어진 경험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집 밖 창고라 하면 누구나 그러려니 하고 읽을 수 있습니다. 


   전건우 작가가 대한민국에서 집안에서 벌어지는 호러물을 쓰기 어려운 여러 가지 이유 중 하나가 외국식 독립 건물이나 지하실 등의 구조물이 한국에서 익숙지 않기 때문에 억지스러워진다는 점을 설명한 적이 있는데 이런 문제에 대해 고민 끝에 결정한 설정 같습니다.  적당히 고립된 공간에 한국식 설정에 올린 전통적인 공포 호러소설이 완성되었습니다.




2. 뒤틀린 원혼들에게 당하는 뒤틀린 가족 이야기


   [뒤틀린 집]에 등장하는 가족 이야기를 좀 해보고 싶습니다. 최근 국내 반응 보다 해외에서 호응이 좋은 드라마나 영화의 특징을 보면 어떤 식으로든 "한국형 신파"가 선보인다는 점이 특징적입니다. 국내 팬들은 한국식 신파에 대해 아주 격렬히 싫어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억지 눈물 작전 좀 그만하라거나 식상한 신파 좀 빼라는 식으로 반응하고, 해당 영상물에 대해 신랄한 비판을 쏟아 내기도 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식상한 신파가 외국에는 아직 통하는 것 같습니다. 그들은 상당히 신선해 하며 감동의 눈물을 쏟아냅니다. 예컨대 한국식 신파가 해외에서는 아직 유효기간이 다하기는커녕 이제 시작인 모양새입니다. 이런 전형적인 신파의 원형 중 하나가 호러소설에도 존재하는데, 이를테면 "뜻하지 않게 악령이 출몰하는 무서운 집으로 이사 오게 되었다. 약하고 힘없는 아이가 셋이나 딸린 약점 많은 가족이지만 그들은 끈끈한 가족애와 사랑, 희생으로 똘똘 뭉쳐 결국은 악령의 공격에서 이겨내고 가족의 사랑과 힘을 확인한다." 


   이런 방식이 전형적이기는 합니다만, 개인적으로 이 소설이 "더 파워 오브 패밀리"의 함정에서 벗어나 있기에 더 무섭고 위태로운 소설이 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이 뒤틀린 집으로 이사오는 시점에 주인공 가족은 이미 브로큰 패밀리 직전에 몰려 있습니다. 잘나가던 아빠가 사회적으로 완전히 매장된 상태고 엄마는 그 여파로 신경쇠약에 가까운 상태이며 그나마 멀쩡한 첫째는 친구들을 다 잃었고 입양한 셋째는 여전히 부모를 완전히 신뢰하지도 못합니다. 


   만약 이 가족이 너무 서로 화목하고 사랑하며 끈끈한 상황이었다면 스토리 전개 과정 내내 '서로 어떻게든 이겨내겠지 뭐..'라는 생각에 긴장감이 훨씬 덜했을 겁니다. 부모가 아이를 제대로 케어하지 못하고 심지어 공격하는 대상이 되기 때문에 어린아이의 모습이 위태위태 애처롭고 걱정되는 마음으로 읽을 수 있었습니다. 이미 분열된 상태로 문제의 집으로 이사 온다는 설정은 무척 현명했다는 생각입니다. 




3. 뒤틀린 집으로 표현하는 뒤틀린 세상 이야기


   대한민국에서 집에 얽힌 호러소설을 쓰기가 쉽지 않습니다. 한국인에게 집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아파트이기 때문입니다. 똑같은 모양으로 지어지는 아파트가 남다르게 지어져서 "뒤틀렸다"라고 설정하기는 억지스럽습니다. 아파트라는 거주 공간은 대체로 무난하고 문제없는 가정의 상징이 됩니다. 아파트 중에서 얼마나 크고 입지가 좋으냐의 차이만 있을 뿐입니다. 


   그렇기에 주인공 가족은 억울하게 세상에서 내쳐진 케이스입니다. 자연스럽게 아파트에서 나와 시골 마을 중에서도 끝자락에 자리한 외딴 집으로 내몰립니다. 그 집이 뒤틀려 있어 가족들의 삶을 위협해도 아무도 관심도 없고 알지도 못합니다. 단란하던 가족 간의 관계도 유지하지 못할 정도로 어려움에 처합니다. 당사자들이 원한 것은 아무것도 없고, 따지고 보면 잘못한 것도 없지만 세상은 그들을 단죄하고 따돌리고 외면합니다. 


   그 와중에도 아무런 조건 없이 그들을 돕는 이가 있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점은 가족을 돕는 존재 역시 사회 속에서는 인정받거나 번듯한 지위가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소외된 채 자기만의 사명으로 살아가는 사람일 뿐입니다. 잘 갖춰진 문명의 안전망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어려움에 처하고 실제로 도움을 받지도 못합니다. 


   일차적으로 가족들을 돌보는 아내 명혜가 큰 고통을 받으면서 신경쇠약에 걸려 가장 먼저 악령에게 사로잡힙니다. 사실관계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언론의 뭇매로 나락으로 떨어지는 남편은 그래도 악착같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노력하다가 결국 뜻을 이루지 못하고 두 번째 희생양이 됩니다. 마지막까지 정신줄을 잡고 결국 가족들을 구해내는 주인공은 첫째 아들 동우입니다. 전건우 작가 소설의 가장 큰 특징이기도 한 부분이지만 소설 내에서 가장 힘없고 약한 존재가 좌충우돌 고생 끝에 문제를 해결해 냅니다. 이런 구조는 독자들로 하여금 끝까지 등장인물을 응원하게 만들고 소설적 긴장감을 놓지 않게 돕습니다. 


   소설은 세 명의 화자가 등장하는 세 파트로 구분되어 있는데, 첫 번째 화자가 정신줄을 놓으면 다음 화자가 이어받는 재미있는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이런 설정이 소설을 입체적으로 이해하게 도와주고 일종의 절망감 같은 것도 선사하기 때문에 더 재미있게 읽는 요소로 작용했습니다. 


   전건우 작가의 하우스 호러 [뒤틀린 집]은 공간을 이용한 호러 소설의 정석을 보여줍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긴장감을 이어가는 텐션 유지만으로도 작가의 필력이 만개했다는 느낌이 듭니다. 은근하게 압박하는 긴장감 넘치고 기분 나쁜 호러 소설의 만끽하고 싶다면 꼭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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