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지마 인턴
나카야마 유지로 지음, 오승민 옮김 / 미래지향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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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마음 따뜻하고 여린 인턴 의사의 좌충우돌 성장기



  나카야마 유지로의 [울지마 인턴]은 익숙한 의사들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하얀 거탑]이나 [의사 요한]같은 작품에서 등장하는 카리스마 넘치고 천재적인 의사들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의사 자격은 얻었지만 아직 경험이 일천한 의사 준비생 초보 인턴의 성장기입니다.

 

  주인공 류지는 어린 시절 형을 잃은 아픔을 마음에 품고 있습니다. 류지가 악착같이 의사가 되려고 했던 이유는 형에 대한 죄책감과 속죄의 감정이 크게 자리하고 있음을 쉽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전형적인 일본인들의 정서가 아닐까 싶습니다. 다행히 의사면허를 따고 고향 가고시마를 떠나 도쿄의 한 병원에서 인턴 생활을 하게 됩니다. 경험이 없는 류지는 모든 일들이 버겁고 힘들기만 합니다. 특히 생명을 다루는 일이다 보니 여러 가지 갈등 상황에 빠지기도 하고 감정적인 대응으로 고생하기도 합니다.

 

  마음만 앞서는 초보의사라는 설정 자체가 좋은 이유는 독자들이 익숙하지 않은 시선에서 익숙한 상황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독자는 환자나 환자 가족의 입장에서 병원 생활을 기억하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이 소설은 초보 인턴의 시선으로 병원을 바라보기 때문에 신선하고 흥미롭게 느껴집니다. 수술 전후, 회진을 돌 때, 가족과 마주 앉아 상황 설명을 할 때 의사들의 심리상태와 입장이 어떤지는 알 길이 없는데, 의사 출신 작가의 세밀한 묘사 때문에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어 즐겁습니다.

 

  환자의 목숨을 걸고 일하는 프로페셔널 의사들에 비해 부족함이 많은 주인공은 몇 가지 사건을 겪으면서 의사로서의 마음가짐과 자세를 배워나갑니다. 이 과정 중에 마음은 간절하지만 실력이 부족한 초보 시절의 안타까움과 속상함 등이 너무 절절히 잘 표현되어 있어 소설에 몰입할 수 있었습니다. 무척 세심하고 섬세한 감정 표현과 현실적인 설정으로 인해 이야기에 빠져들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소설에서 주인공 류지는 대단한 성취나 성장을 이루지는 않습니다. 그랬다면 너무 전형적이라는 느낌을 받았을 듯합니다. 그저 인턴 생활 몇 달에 거쳐 최소한의 소양을 갖추고 과거의 아픔을 극복해 내는 정도의 매우 현실적이고 바람직한 스토리가 전개됩니다. 그렇기에 부담 없고 공감하기 좋은 밸런스가 잘 잡힌 소설이라는 느낌을 받았고 기분 좋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2. 의사라는 특수 직업을 효과적으로 다룬 소설


  베테랑 의사인 저자가 완전 초짜 인턴 이야기를 다룬 점은 상당히 효과적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치열한 의료 현장에서 촌각을 다투는 극한 상황을 헤쳐나가는 베테랑 의사의 이야기였다면 이 소설의 가장 큰 장점인 섬세한 감정묘사와 감동을 느끼기는 힘들었을 것 같습니다. 전문 용어가 난무하며 휘몰아치는 이야기였다면 쾌감은 있었겠지만 차분하게 인간의 생명에 대해 생각해 보기 어려웠을 것 같습니다.

 

  이 소설은 약간 느리게 돌아가는 시계처럼 몽환적이고 동화적인 느낌이 있습니다. 왜 그럴까 생각해 보니 주인공부터 등장인물들이 너무 좋은 사람들이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거의 의인들 수준입니다. 소설 속 갈등 상황을 유발하는 악인이 없습니다. 그렇기에 현실성이 없고 밋밋하냐면 그렇지는 않습니다. 교통사고로 크게 다치거나 암이 심각해졌거나 하는 목숨이 경각에 달한 상황 자체가 긴장과 갈등을 유발하는 요소이기 때문에 굳이 악한이 등장할 필요가 없을 뿐입니다.

 

  의사라는 직업은 타인의 생명을 유지하거나 지키는 직업입니다. 저자는 주인공 류지를 통해 의사가 환자를 대하는 바람직한 태도에 대해 말하고자 합니다. 현실과 쉽사리 타협하지 않고 어디까지 최선을 다할 수 있는지, 그것이 반드시 해야 하는 노력인지에 대해 질문을 던져 줍니다. 류지가 실제 환자를 만난 지 몇 개월 안되었기에 소설 속 고민이 더 현실적으로 다가옵니다.

 

  실제로 류지는 환자를 냉정히 대하지 못하고 계속 감정이입을 합니다. 인간적으로 친해지고 가까워지면서 냉정하게 말과 행동을 하는 선배 의사의 태도를 비인간적이라고 못마땅해 합니다. 왜 가망이 없어도 하루라도 더 살도록 조치하지 않는지 의문을 가집니다. 소설은 이런 방식으로 의사는 어떤 자세와 태도를 취하는 것이 옳은지, 우리가 생명을 어떤 입장으로 바라봐야 하는지 생각하게 합니다. 의사라는 특수 직업을 능숙하게 다룸으로써 주제의식이 선명하게 드러난 큰 장점을 가진 소설입니다.

 


3. 휴머니즘이 바탕을 이룬 소설의 효용


  [울지마 인턴]을 읽으면서 유독 소설 속에 드러나는 휴머니즘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됐었습니다. 인간의 소중함, 삶의 중요함에 대해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며 긍정적으로 다룬 소설이 독자들에게 주는 효용이 크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병원은 특히나 삶과 죽음의 경계선에 놓은 사람들이 많은 공간입니다. 이런 공간에 휴머니즘이 결여된다면 인간의 존엄성을 크게 해치는 공간으로 변모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병원이라는 공간과 환자, 그리고 의사를 그리는 저자의 시선이 어떠한 가는 매우 중요한 요소입니다.

 

  통상 소설과 저자는 분리해서 생각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만, 저자에 대한 정보 중에 예사롭지 않은 부분이 있었습니다. 원전 사고 때문에 모두가 기피하는 후쿠시마 지역의 유일한 의료 시설이었던 타카노 병원이 원장의 사망으로 의료 부재 상황이 발생하자, 이미 다른 병원에 이직이 결정된 상태였던 저자가 임시지만 2개월간 병원장으로 근무했던 경력이 있는 것입니다. 그게 뭐 대단한 일이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굳이 나설 마음을 먹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입니다.

 

  한 사람의 인격이나 생각은 말보다 실제 행동으로 알 수 있습니다. 하나의 사건이지만 이런 결정과 행동으로 저자의 사고방식을 유추해 볼 수 있습니다. 사람에 대한 존엄과 애정이 없으면 불가능한 결정입니다. 이런 사고가 토대가 되어 소설의 근간을 이루는 휴머니즘이 자연스럽게 표현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비슷한 이유로 어려운 의학 용어가 난무하지 않고 쉽고 편안한 용어와 문장으로 독자들도 배려하는 것 역시 큰 장점입니다.

 

  바쁘고 생존하기 힘든 세상입니다. 자칫 사람들 사이에 예의와 매너를 지키기 어려울 수 있는 위기의 시기입니다. 코로나라는 전례 없는 전염병의 창궐로 스트레스 지수가 한없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마음이 척박할 때 위로와 감동을 느낄 수 있는 소설이 필요한 시기입니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인간의 존엄을 잃지 않고 따뜻한 배려를 놓치지 않는 아름다운 이야기를 만나고 싶으신 독자님들에게 일독을 권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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