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락 댄스
앤 타일러 지음, 장선하 옮김 / 미래지향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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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설로 만나는 미국인들의 삶


앤 타일러의 장편 소설 "클락 댄스"는 1960년대 이전에 태어난 미국 여성의 삶 전반을 다룬 소설입니다. "클락 댄스"란 여러 명이 겹치게 서서 서로 다른 각도로 손을 뻗으며 추는 춤을 말합니다. 앞사람이 양팔로 2시와 10시를 가리키면 그 뒤 사람은 3시와 9시를 다음 사람은 4시와 8시를 가리키는 식으로 하는데 서로 손의 각도를 엇갈리게 계속 바꿔가며 추면 리드미컬하게 보이는 효과를 노리는 춤입니다.


클락 댄스에 대해 이렇게 장황하게 설명하는 이유는 이 소설의 전반을 설명하는데 "클락 댄스"라는 단어가 매우 효과적일 뿐 아니라 생각할수록 여러 가지로 해석하기 좋은 단어기 때문입니다. 소설에서는 주인공 윌라의 소녀 시대부터 노년까지의 삶을 조망하고 있습니다. 초등학생이던 1967년의 한때, 대학생이던 1977년의 한때, 그리고 시간을 훌쩍 뛰어넘어 2017년의 한 시기를 특정해 삶의 변곡점을 중심으로 보여주는 방식입니다. 마치 클락 댄스에서 특정 각도만 절도 있게 바꾸는 것처럼 말입니다.


소설의 스토리를 따라가다 보면 미국인의 전형적인 삶을 묘사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됩니다. 그건 아마도 한국의 유명 작가 소설을 읽을 때 소설 속 인물을 통해 한국적 삶의 한 단면을 보게 되는 것과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일반적인 미국인의 삶이 이렇지 않았을까?'라는 상상과 기대를 충족시켜주는 듯한 이야기입니다. 대체로 여성의 삶이 주체적이지 못한 경우가 많았을 1960년대 이전에 태어난 주인공 윌라는 삶의 중요한 변곡점에서 만나는 선택의 순간마다 안타깝게도 수동적인 태도를 취합니다.


그 선택의 결과는 그다지 만족스럽지 못합니다. 그렇다고 아주 나락으로 떨어지지도 않지만 내세울 것 없는 인생이 되어 그저 그렇게 삶을 마무리할지도 모를 상황으로 흘러갑니다. 원하는 방향으로 물길을 내며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그저 중력이나 주변인의 간섭으로 방향이 결정되는 그런 삶과도 같습니다. 감정을 컨트롤하지 못하는 엄마와 평범하지만 공감 능력이 부족한 아빠 사이에서 자란 윌라는 자기중심적이고 사려 깊지 못한 남자를 만나 결혼하게 됩니다. 하나밖에 없는 동생도, 힘들 게 키운 두 아들도 모두 윌라와 좋은 관계를 맺지 못합니다.


비슷한 시기를 살아낸 국내 소설 속 여주인공 캐릭터와 비교해보면 오히려 무난하고 특별할 것이 없어 보이기까지 합니다. 그럼에도 윌라의 삶의 궤적을 따라가다 보면 감정이입을 하는 저를 발견하게 됩니다. 작가의 필력이 빛나는 부분이 아닐 수 없습니다. 윌라가 만나는 독특한 주변 인물들을 보며 느끼는 감정 또한 신선합니다. "클락 댄스"는 소설을 통해 느낄 수 있는 타인의 삶에 대한 공감과 저항감이 공존하는 간접 체험의 즐거움을 최대치로 느끼게 됩니다.


 


2. 낯선 곳에서 찾은 생소하고 기분 좋은 변화


우리 인생은 항상 선택의 연속이며 그 속에 기회가 오기도 달아나기도 합니다. 좋은 선택은 좋은 기회와 결과를 동시에 얻을 확률을 높여줍니다. 앤 타일러는 "클락 댄스"를 통해서 주인공 우리 삶에서 종종 찾아오는 이례적인 사건과 선택의 상황을 생각하게 합니다. 주인공 윌라는 어린 시절 일관성 없고 무책임하며 감정의 기복이 도를 넘어 롤러코스터처럼 불안정한 엄마와 자신의 마음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아빠 사이에서 고통스러워하지만 이렇다 할 표현을 하지 못하고 수동적으로 받아들입니다.


대학교에 가서는 열심히 준비하던 전공 공부와 미래의 커리어를 포기하고 남자친구의 의도대로 이끌려 결혼하게 됩니다. 이 파트를 읽으면서 윌라에게 숨이 턱턱 막히는 답답함을 느끼게 됩니다. '너의 공부를 선택하라고! 남자에게 인생을 맡기지 마!'라고 소리치게 되는 것이죠. 이렇게 결혼하고 아이를 키우며 살던 그녀는 차 사고로 남편을 잃습니다. 상당히 드라마틱 한 일련의 상황이 펼쳐지는 과정이 생생하고 상황 묘사는 디테일합니다. 그래서인지 이야기에 한껏 빠져들게 됩니다. 독자지만 마치 주인공 주변 인물이 된 것만 같은 착각이 일어납니다. 그래서인지 주인공 옆에서 조언을 해주고 싶은 마음이 생깁니다.


윌라는 노년이 된 2017년에 와서야 수동적이던 일상에 균열이 생깁니다. 이상한 일이 발생하고 낯선 곳에 가야 할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됩니다. 오랫동안 수동적인 삶을 살아온 주인공은 묘한 호기심에 전에 없던 선택을 하게 됩니다. 일상을 벗어나는 결정입니다. 이렇게 평소와 다른 한 번의 선택으로 벌어지는 낯선 곳에서의 모험과도 같은 이야기가 이 소설의 핵심 스토리가 됩니다.


소설 속 주인공 윌라는 기존의 방식을 고수하고 원래의 자리로 돌아오라고 닦달하는 두 번째 남편과 스스로의 선택으로 벌어지는 미지의 세계 간에서 망설입니다. 내면에서 보이지 않는 줄다리기를 합니다. 그리고 그 변화에 대한 선택은 윌라만의 고유한 것이자 특권입니다. 인생에서 나에게 익숙한 것에는 사실 기회가 별로 없습니다. 기회가 있었다면 이미 무언가를 성취했겠지요. 보통 기회는 내가 모르는 낯선 것으로부터 발생합니다. 그리고 그런 기회를 잡기 위해서는 평소 하지 않던 낯선 선택을 해야만 합니다. 아무런 의무도 없는 사람을 위해 먼 곳으로 떠나는 윌라의 모습처럼 말입니다.


 


3. 변화를 즐기는 삶의 유익


소설 클락 댄스는 한 여성의 삶을 시간 순으로 조망하는 어쩌면 잔잔한 이야기입니다. 가만히 그녀의 삶을 함께 걷다 보면 노년이 되도록 인생에 별다른 기쁨과 즐거움, 환희의 순간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아마도 수동적으로 환경에 순응하는 삶을 살아왔기 때문일 것입니다. 어떤 이는 내 삶 또한 별반 다르지 않다 여길 것이고, 혹자는 왜 이렇게 사느냐며 화를 낼지도 모르겠습니다.


주인공 윌라는 삶의 변화를 선택합니다. 그녀의 삶이 활력이 넘치고 재미있게 변하는 순간은 새로운 환경을 두려워하지 않고 기꺼이 선택한 순간입니다. 그로 인해 생소한 환경, 독특하고 유별난 인물들을 여럿 만나며 서서히 변화를 받아들이고 삶의 즐거움을 찾습니다. 사실 변화는 즐거움을 선사하지만 지속하기는 쉽지가 않습니다. 제자리로 돌아가려는 관성은 매우 강력합니다. 그렇기에 지속적으로 변화를 즐기는 사람이 아닌 이상 인생에서 몇 번 경험하기 힘든 순간이 됩니다.


더 이상 새로운 시도를 하기 어려운 노년이 되어서야 윌라가 새로운 시도를 해 보게 된 이유가 어디에 있을지 생각해 봐야 합니다. 윌라는 염려가 많고 걱정을 사서 하는 소심한 성격으로 묘사됩니다. 수동적이기까지 하다 보니 되도록 보수적으로 행동할 수밖에 없습니다. 행동의 근간은 기존 사회의 매뉴얼이라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서 자기 자신에 대해 발견하고 변화를 즐기는 단계까지 가게 된 것입니다.


결국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힘은 스스로를 돌아보고 자신을 찾아나가는 과정을 통해 가능해집니다. 윌라는 다소 많이 늦었지만 인생을 마무리하기 전에 그 삶의 즐거움을 깨닫습니다. 삶의 주체성과 환희의 순간을 통해 살아있음을 느낍니다. 사회적 통념과 행동 규범에 얽매이지 않고 스스로 결정하는 삶은 아름답습니다. 노년의 윌라가 멋있어 보이는 것은 스스로 변화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놓치지 않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좋은 소설은 읽는 것만으로도 즐겁습니다. 읽으면서 자신과 사회를 고민하게 합니다. 비록 가상의 이야기일지라도 타인의 스토리를 통해 자아성찰을 하도록 해줍니다. 삶을 깊이 있게 만들어줍니다. 그렇기에 앤 타일러의 "클락 댄스"는 매우 훌륭한 소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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