귓속말 금지 구역 살림어린이 숲 창작 동화 (살림 5.6학년 창작 동화) 5
김선희 지음, 정혜경 그림 / 살림어린이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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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아들 녀석이 친구들을 집으로 데리고 와 좁은 아파트에서 로봇을 부쉈다 다시 만들었다, 바쿠간 놀이를 했다가, 고~ 슌~~ 팽이를 돌렸다가, 몇 발짝 되지도 않는 거실에서 잡기 놀이를 했다가...
정신 없는 통에 모처럼 여유로운 시간을 어지럽게 해 잠시 베란다에 앉아있었습니다.
조금 있다보니 정리가 되었는지 마법천자문 카드를 가지고 게임을 하고 있었습니다. 아들이 심판을 보고 두 친구가 게임을 하는 식으로 룰을 정한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게임 중에 아들 친구 녀석 하나가 아들한테로 가 귓속말로 뭐라 뭐라 그러는 겁니다. 그것을 다른 편에서 바라보는 아이의 얼굴을 보니 아차 싶었습니다. 좀 더 지켜보자 싶어 일단 읽던 책을 내려놓고 신경을 안 쓰는 척하며 옆 눈으로 온 신경을 집중시켰습니다.
친구의 귓속말을 받은 아들 녀석이 다른 아이한테 누구야, 너는 이 카드를 내라는 식으로 말을 했고, 그 아이가 아들이 말한 그 카드를 내자 귓속말을 한 그 친구와 한 편이 되어 마구 웃어대는 것입니다. 공정함을 유지해야 하는 심판의 역할은 온데 간데 없고 귓속말을 한 아이의 편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억울함을 느꼈던지 그 아이는 저에게 와 누구랑 누구가 자기를 놀려요 하고 일러줍니다.
일학년들이라 다른 사람에게 미칠 수 있는 영향력까지 고려하면서 의도된 행동을 하지 않았을테고, 어린 시절을 떠 올려보면 친구들 사이에서 그런 일이 흔히 일어났었던 것으로 기억하지만 그 당시 느꼈었던 누구에게 말할 수 없었던 참담한 기분과 얼마 전 읽은 책 내용이 뒤엉켜 아들 녀석과 친구들을 불러 나름 훈계를 하고 말았습니다.
<귓속말 금지구역 / 김선희. 살림어린이>


새학년이 된 세라는 웃음이 넘치는 반으로 만들겠다는 당찬 포부로 학급 회장에 당선이 됩니다. 여기서부터 세라는 고난의 길로 들어서게 된 것이지요.같이 회장 선거에 나와 한 표 차이로 떨어진 예린이는 그 날부터 회장인 세라보다 한 발 앞서 학급의 모든 일에 솔선수범하는 부회장이 됩니다.

물론 그 솔선수범이라는 것이 선생님과 친구들한테 보여지기 위한 것이었지만 묵묵히 자기의 일을 하는 세라보다 예린이가 훨씬 더 인정받는 결과를 가져오지요.
게다가 세라가 회장인 것을 못마땅하게 여긴 예린이는 세라가 보란 듯이 귓속말을 합니다. 예린이의 귓속말이 세라에게 안긴 상처의 정도를 책 속에서 인용하자면
'예린이는 지현이와 귓속말을 하면서 나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꼭 내 얘기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내 몸속으로 송충이들이 기어 올라왔다.
예린이가 귓속말을 하는 순간,
어떤 마법 같은 힘이 나를 꼼짝 못하게 옭아맸다.
그건 거미줄 같았다. 도망치려고 발버둥치면 오히려 더 꽁꽁 몸을
조이는 말의 거미줄.
예린이는 거미줄을 쳐 놓고 먹이를 기다리는 거미였다.
거미는 먹이를 먹을 수도 있고,
살려 줄 수도 있다.
나는 예린이가 쳐 놓은 거미줄을 피해 갈 수 없을 것 같은 불안한
예감이 들었다.'
행동을 주눅들게 만들어 버리는 마법같은 예린이의 귓속말과 세라를 궁지로 빠뜨리려는 이간질, 예린이가 발행하는 휘황찬란한 쿠폰, 드디어 터져버린 회장 탄핵 사건... 이 모든 것들이 세라에게 상처로 남습니다.
하지만 꼬리가 길면 잡히는 법. 지능이 모자란 태주를 잘 보살펴 준다는 이유로 착한 어린이상까지 받았던 예린이가 태주에게 바보 병신이란 소리를 서슴치 않으며 매로 손바닥을 때리는 것을 봐 버린 세라. 그날 본 그 한 장면이 모든 것을 바꿔 놓습니다.
예린이가 옆에 지나가는 아무 애나 붙잡고 힐끔거리며 귓속말을 해도 더 이상 두렵지 않았고, 무시하고 그 앞을 당당하게 지나갈 수 있게 되었던 거지요. 드디어 예린이도 더 이상 세라 앞에서 귓속말을 하지 못합니다. 아이러니 하게도 대신 세라에게 귓속말을 해 오기 시작했습니다.

고작 떡볶이 먹으러 가자는 아주 사소한 귓속말. 자신을 그렇게도 괴롭히던 귓속말들이 그런 내용들이었다니 똥물을 뒤집어 쓴 기분이 듭니다.

예린이의 잘못된 행동으로 태주가 정신과 치료를 받게 된 것, 학부모 회장인 차예린 엄마의 횡령사건이 터지면서 전학만 일곱 번을 다녔다는 예린이는 결국 다른 학교로 전학을 가게 됩니다.
그리고 학급 회의 시간에는 반에서 귓속말을 금지시키는 규칙을 만들자는 의견이 나오고 귓속말 금지가 통과가 되지요.
이것으로 나름 모든 문제의 해결법을 제시했다고 느끼는 순간
소식통이 전해오는 소식.
전학 간 학교에서 예린이는 회장에 예린이의 엄마도 학부모 회장에 당선되었다고 합니다. 이 문장으로 책장을 덮게 되지요.
그렇습니다. 아픈 곳을 직접 소독하지 않고 치료를 미룬 채 서둘러 봉합해 버린 기분. 이것이 나중에 곪아터질 것 같은 불길한 예감.
아마 그것 때문에 저도 아이들을 쭉 불러 세웠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꼭 한 마디 필요할 것 같은 순간에도 나 아니면 다른 사람이 하겠지.
이런 말까지 하면 기분이 나쁠텐데. 이런 저런 이유를 갖다 대며 말을 삼키곤 했었습니다. 아마 상대방에 대한 배려보다는 저 자신의 안위를 위한 것이었으리라 생각됩니다.
사실 아직도 어떤 방식이 정답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내 자신, 내 아이, 내 가족만을 위한 행동이 아닌 적어도 사회의 어른으로 반드시 해야할 역할 분담은 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침묵이 개인적인 문제로 그칠 때는 그나마 나 하나만 고통받으면 되겠지만 사회성을 띨 경우에는 문제가 좀 다르다고 봅니다.
뉴스에서 사건 사고가 터질 때마다 사건의 경위는 있지만 결과에 대한 명확한 제시는 없는. 그래서 늘 같은 일을 반복하고 그에 따라 같은 질량의 감정 노동에 시달려야 하는. 이제 이런 악순환의 고리는 조금씩 아래서부터 끊어 나가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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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는 괴물이 아니야 벨 이마주 42
베레나 발하우스 그림, 로테 킨스코퍼 글, 최가희 옮김 / 중앙출판사(중앙미디어) / 200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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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사람들 속에서 끊임없는 비교와 경쟁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친구들 속에서도... 남과 비교하는 마음을 가지다 보면 마음 저편에서는 나는 늘 부족한 사람, 모자란 사람이라는 생각이 싹을 틔워 나무를 이루고 숲을 이루게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나는 다른 사람보다 이 부분이 좀 부족하고 못하지만 그래도 나대로 멋 있고 괜찮은 사람이야.’라는 스스로를 인정하고 믿는 마음의 당당함. 누군가의 인정이나 배려의 말에 휘둘리지 않는 마음의 건강함. 자아존중감을 가진다면 다른 사람의 시선이나 인정에 목말라 자신을 생채기 내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의학박사이자 국제정신분석학자인 이무석의 <나를 사랑하게 하는 자존감>이라는 책에 이런 문구가 있습니다.
"우리는 지구상에 살고 있는 60억 인구 중 유일한 존재이다. 지구가 창조되고 지구상에 인류가 등장한 이래로 우리는 각자 이 시대에 최초로 나타났다. 그리고 우리의 몸으로 인생의 역사를 쓰다가 어느 날 죽을 것이다. 거기까지가 우리의 일생이다. 다시는 반복되지 않는다. 유일무이하고 독특한 일생이다. 아무도 대신 살아 줄 수 없는 것이고, 내가 사는 나의 인생일 뿐이다."
이런 귀한 인생을 남의 인정에 목말라 무기력하게 살아간다면 정말 억울할 것 같습니다. 우리 아이들도 마찬가지지요. 엄마 아빠, 주위 사람들의 판단과 비교 때문에 아이들이 마음 아파하고 스스로 무기력해진다면 너무 안타까울 것 같습니다.
<마리는 괴물이 아니야> (로테 킨스코퍼 / 중앙출판사)에서는 친구의 사소한 말 한마디 한마디에 따라 점점 흉칙한 모습으로 변해가는 마리를 만날 수 있습니다. 친구들과 가족들은 마리의 배, 손, 코, 목소리, 심지어 머리카락까지 트집잡고 그때마다 마리는 점점 더 괴물처럼 변하는 것 같아 숨게됩니다.
그런 마리를 엄마는 얼마나 사랑스러운 모습을 가졌는지 알려줍니다. 엄마의 따뜻한 말과 사랑으로 마리는 다친 마음을 치유받게 되지요.
친구들과 주위 사람들이 했던 아픈 '말'에 상처받고 힘들어 하는 아이들, 부모님들이 꼭 함께 읽기를 권합니다.
<너는 특별하단다> (맥스 루케이도 / 고슴도치)에서는 금빛 별표와 잿빛 점표가 든 상자를 들고 다니면서 매일 서로에게 별표와 점표를 붙이면서 생활하는 작은 나무사람 웸믹이 등장합니다. 주인공 펀치넬로는 잘하는 것도 없고, 외모도 사랑스럽지 않아 온통 잿빛 점표 뿐이지요. 그래서 늘 언제나 외롭고 의기소침합니다.
조그마한 실수에도 의기소침해지는 아이, 남들보다 무능력한 것이 아닌가 싶어 주눅 든 아이. 나만 못난 것 같아 고민하는 아이에게 단지 '너'라는 이유만으로 특별하다고 말해주는 그림책입니다.
우리는 아이들이 마음의 건강함을 가질 수 있도록 해 줄 책임이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우리 부모들이 자기 자신을 존중하는 마음, 즉 자아존중감을 가질 수 있어야 합니다.
지금 거울 앞으로 가 조금 쑥스럽고 민망하겠지만 가슴에 손을 놓고 원을 그려주면서 ‘여태껏 살아온다고 많이 힘들었지. 잘했어. 고마워.’ 하고 자신을 격려하고 위로하는 시간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 마음을 돌아보고 위로해 줄 수 있는 자가치유서와 함께 자신을 진정으로 만나는 시간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스스로를 만나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 나를 돌아보고 위로하는 일이 처음에는 많이 서툴고 힘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앞으로 살아갈 시간이 아직 많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 사랑하는 우리 아이들에게 내가 가진 마음의 상처 DNA를 대물림하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자아존중감을 가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스스로를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을 때 다른 사람을 있는 그대로 인정할 수 있는 마음이 생깁니다. 오늘은 아내의, 남편의, 아이의 손을 꼭 잡고 눈을 바라보면서 “사랑한다. 내 옆에 있어줘 고맙다”는 말을 전해주세요. 덤으로 오랫동안 잊었던 마음이 놀라 울컥하고 뻐근할 수 있는 부작용이 생길 수 있습니다.
사랑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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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이 빨개져도 괜찮아!
로르 몽루부 지음, 이정주 옮김 / 살림어린이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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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이가 친구들 앞에서든 학교에서든 자기의 소신을 당당하게 말할 수 있고 어디 가서나 어깨 쫙 펴고 자기 몫을 다하는 것 또한 우리 부모님들의 바램 중 하나라 생각됩니다.
아이가 유치원 시절, 큰 소리로 씩씩하게 선생님께나 친구들에게 인사를 하면 좋으련만 내 마음과는 달리 나의 뒤에 숨어 삐죽이 얼굴 내미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었습니다. 물론 지금이라고 더 나아보이지는 않습니다. 아직까지 친구들이 “oo야, 안녕” 하고 먼저 말을 건네면 너무 쑥스러워하면서 그 아이의 얼굴을 똑바고 쳐다보지 않은 채 허공에 대고 손만 쓰윽 올려서는 “크~ 안녕”이것이 전부입니다.
이럴 때면 또 마음이 급해져 아이에게 친구가 반갑다고 인사하는데 태도가 그래서 되겠니, 다음부터는 이렇게 해라는 식의 계몽 훈시가 이어지지요.

그런데 돌이켜보면 저 또한 어린 시절 숫기가 부족하다는 말을 참 많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조금 낯선 장소에서는 선뜻 사람들 쳐다보기도 겁이나 땅바닥에 그려진 무늬에 집착했고, 엄마 친구 분들이나 동네 어르신들이 집에 찾아오시면 엄마 등에 딱 달라붙어 목만 내미는 거북이 인사가 전부였습니다.

<얼굴이 빨개져도 괜찮아> (로르 몽루부 / 살림어린이) 여기에 나오는 주인공 미리암은 누군가 자기의 이름만 부르기만 해도 얼굴이 토마토처럼 빨개질 정도로 부끄러움을 아주 많이 타는 아이입니다. 학교에서 발표는 꿈도 꿀 수 없죠. 쉬는 시간이면 아이들이 미리암을 놀리며 장난을 친답니다. 그러면 3초 만에 얼굴이 빨간 색으로 변해 ‘못난이 토마토’가 되지요.
선생님의 질문에도, 친절한 동네 빵집 아줌마에게도, 옆집에 사는 놀러온 친구에게도 수줍어하는 미리암. 그런 미리암이 선생님의 도움으로 친구들의 놀림을 극복하고 멋진 시를 외우면서 ‘노래하는 새 미리암’으로 거듭나게 되는 이야기를 담은 그림책입니다.
부끄러움이 많은 아이들에게 자신감을 가질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책입니다. 아이들을 무릎에 앉히고 이 책을 한번 읽어 주세요. 아이가 표현은 하지 않겠지만 마음의 위로를 받고 용기를 가질 수 있을 거에요.

<소심쟁이 김건우> (고정욱 / 랜덤하우스코리아) 이 책에는 학교에서 선생님이 질문을 하면 마음은 이미 답을 좔좔 말하고 있는데 입은 꼭 붙어 떨어지지 않는 주인공 김건우가 등장합니다.
유치원 때 제일 발표도 잘하고 씩씩하던 건우를 질투한 친구 민욱이의 조롱과 비난 때문에 사람들 앞에만 서면 얼굴이 빨개지고 말문이 턱 막혀버리는 일종의 사회공포증, 대인공포증을 가지게 됩니다.
건우는 이런 자신의 모습이 창피하고 답답하기도 하고 자신을 믿고 아껴주는 짝꿍 희재에게도, 사랑하는 엄마에게도 부끄럽고 미안합니다.
희재가 보낸 적극적인 용기 응원과 친구 민욱과의 마음을 터놓는 대화, 부모님의 사랑과 응원에 힘입어 점차자신의 단점을 극복하고 자신감을 되찾는 건우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 동화책입니다.

부모의 과보호, 잘난 아이와의 지나친 비교, 어린 시절에 받은 마음의 상처 등으로 자존감에 깊은 상처를 입은 아이들이 소심해 지는 경향이 많다고들 합니다. 자신을 추스르고 마음을 다잡는 것은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만 주위에서 따뜻한 마음의 위로와 격려로 아이가 건널 징검다리를 놓아준다면 물살에 휩쓸리지 않고 강 건너편 아름드리 나무 아래에 도착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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쌈쟁이 에드가 지그재그 19
로제 푸파르 지음, 마리 라프랑스 그림, 이정주 옮김 / 개암나무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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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오클랜드에 위치한 신학대학에서 일어난 끔찍한 총기난사 사건. 자세히는 알 수 없지만 가해자가 영어를 못 한다고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왕따시킨 것에 격분해 아무 관계 없는 사람들을 일곱 명이나 희생시킨 비극이었습니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요? 무엇이 그가 그런 극단적인 선택을 하도록 만들었을까요?
가해자의 사이코패스 적 인격 파탄이 끔찍한 사건의 주범이라고 하기에는 뭔가 미진해 보입니다. 그가 따뜻하게 사랑받지 못하고 상처 입었을 어린 시절, 시린 벌판에 홀로 서 있는 듯한 춥고 힘든 청년기, 어느 하나 따뜻한 곁을 내어 주지 않아 아픈 현실. 이 모든 것들이 그 사건과 함께 떠오르는 건 왜인지 모르겠습니다.
세상 사람 모두 외면해도 단 한사람 당신을 믿어주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를 물었던 함석헌 선생님의 싯구가 오늘 계속 떠돕니다. 세상에 주눅 들고 위축되어 살아가기 힘들더라도 단 한사람만이라도 자신의 편이 되어주고 믿어주는 사람이 있었더라면 어땠을까, 그런 극단적인 선택을 했을까, 안타까운 마음에 머릿속이 복잡합니다.
최근 지역에 있는 기관 아이들에게 도서관 독서프로그램을 몇 주에 걸쳐 진행한 적이 있었습니다.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프로그램에 같이 따라 온 중학교 남자 아이 때문에 첫 시간이 무척 힘겨웠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옆에 앉아 있는 동생들과 장난치고 수업 도중에 불쑥 끼어들어 동생들의 귀한 시간을 방해하고 있다는 생각에 살짝 화가 나는 것을 누르고 수업을 마쳤습니다. 중학생이니까 다음 주는 안 오겠지 하면서.
그런데 그 다음 주 아이들을 만나는 시간, 떡 하니 자리 잡고 앉아 있는 그 중학생을 보니 아, 어쩌나 하는 생각이 앞섰습니다. 그래서 아이를 따로 불러 특별 임무를 맡겼습니다. 제일 큰 형이니까 동생들을 보호하고 보살펴 달라고. 오늘 선생님의 특별 조수로 임명한다고.
그날 그 아이는 두 시간 내내 저와 눈을 맞추면서 수업 시간에 같이 온 동생들을 독려하기도 하고 쉬는 시간에 동생들을 데리고 화장실도 다녀오고 제 몫을 거뜬히 해냈습니다. 그 아이의 행복한 모습을 지켜보면서 제가 더 뿌듯하고 행복했습니다.
<에드와르도 세상에서 가장 못된 아이>
(존 버닝햄 글.그림 / 비룡소)에는 주위에서 아이들이 흔히 하는 행동을 어른들이 저마다의 잣대로 판단하고 재단하여 세상에서 가장 말썽쟁이고 못된 아이가 되어버린 평범한 아이 에드와르도가 등장합니다.
이를테면, 기분 나빠 인형을 발로 차자 버릇 없는 녀석이라 야단 맞고, 시끄럽게 군다고 야단 맞고, 동물을 괴롭힌다고 야단 맞고, 동생들 못살게 군다고 야단 맞고... 모두가 못된 아이라고 말하기 때문에 에드와르도는 점점 더 못된 아이가 되어갑니다.
그러던 어느 날 화가 난 에드와르도가 화분을 차버렸을 때 "에드와르도야, 정원을 가꾸기 시작했구나."라고 말해주는 어른을 만나게 되면서 에드와르도는 화단을 잘 가꾸는 멋진 아이로 변신하게 됩니다. 이후 에드와르도의 행동을 긍정적으로 보아주는 어른의 칭찬이 에드와르도를 세상에서 가장 착한 아이로 만들어 주게 되지요.
어른들의 따뜻하고 긍정적인 시각과 칭찬이 아이들을 얼마나 다르게 변화시킬 수 있는지 보여주는 멋진 그림책입니다.
<쌈쟁이 에드가>
(로제 푸파르 글 / 개암나무)에는 태어날 때부터 잠시도 가만 있지 못하고 부산하고 말썽 심한 주인공 에드가가 등장합니다.
끊임없이 말썽을 피우는 에드가 때문에 엄마와 아빠는 10년은 더 늙어 버린 것 같다고 합니다. 학교에서도 표지에 나오는 것처럼 자신이 툭툭 치고 때려도 맞받아 칠 수 있는 싸울 상대를 찾게 되면서 친구들이 모두 에드가를 피하기 시작합니다.
심리 상담가 선생님이 에드가에게 태권도나 유도 같은 에너지를 발산할 수 있는 운동을 시킬 것을 권유하게 되면서 쌈쟁이 에드가의 새로운 해결점을 찾아냅니다. 다른 사람을 조금 더 생각하고 싸우기 전에 좀 더 참아 보려 애쓰는 에드가의 모습에 친구들은 조금씩 마음을 열어줍니다.
하루도 바람 잘 날 없는 장난꾸러기 두 아들을 보고 이 이야기를 썼다는 작가는 부산하고 말썽 심한 아이에게 중요한 것은 적절한 균형점을 찾는 것이며, 친구를 존중하는 마음과 기본 규칙을 지키는 자세를 길러 극복할 것을 조언합니다. 물론 부모의 이해와 사회의 따뜻하고 긍정적인 시선이 더해져야겠지요.
아이를 바라보는 어른들의 시선이 그 아이의 미래 모습을 좌우하게 될 수 있습니다. 비판과 비교의 기름기를 쫙 뺀 사랑과 애정으로 된 산뜻한 안경을 하나 끼고 싶어지는 아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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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친구 하자 알이알이 명작그림책 1
앤서니 브라운 지음, 하빈영 옮김 / 현북스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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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년간 독서지도에 매진하여 독보적인 위치를 확보하고 이제는 자신의 이름을 건 교정독서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는 한복희님이 최신작 <엄마 공감> 말미에 아이와 함께 하는 행복한 길을 찾기 위한 일곱 가지 지침을 적어두고 있습니다.
그 중 하나가 '건강한 관계 맺기를 원합니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저자는 아이와 있어도 늘 거리감이 있다거나 늘 명령만 하고 하달만 받는 관계를 맺고 있다거나 무언가 주고받는 것이 있어야 유지되는 느낌이 든다면 친밀하지 않는 관계라고 했습니다. 함께 있어도 불편하지 않고 서로에게 요구하지도 않는 있는 그대로의 존재를 수용받는 것이 친밀한 관계라고 했지요. 저는 친밀한 관계 맺음을 위한 첫 출발이 서로간의 소통에 있다고 생각됩니다.
맞벌이 부모를 둔 아들 녀석은 여태 동네에서 친구들과 함께 놀 시간이 거의 없었습니다. 어제는 마침 엄마가 집에 있는 것을 확인하고 놀이터로 냉큼 놀러 나갔습니다. 저도 여유로운 시간을 좀 가질 수 있겠다는 생각에 내심 기뻐 나가는 아들에게 잘 놀다오라는 따뜻한 인사도 건넸습니다.
그런데 생각과는 달리 얼마 지나지 않아 문을 여는 소리가 들려 나가보니 아들은 처음 보는 아이를 데려와서는 아주 당연하다는 듯
"어머니, 저 친구랑 같이 왔어요."하고는 방으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무방비 상태로 나름 휴일의 여유를 즐기고 있던 저는 순간적인 아들의 출현에 당황스러웠습니다.
잠깐 정신을 수습하고 아들이 집으로 초대한 첫 친구를 위해 냉장고 문을 열어 간식거리를 마련했습니다. 그리고는 간식을 가져다 주면서 초대한 친구를 순간적으로 스캔하고 나왔습니다.
한참동안 둘은 방에 있는 소품으로 바쁘게 놀았습니다. 약간의 시간이 흘러 친구는 또 놀러오마는 공약을 남기고 자기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저는 아들을 불러 친구의 이름을 물어보고, 학교에서 둘 사이의 관계에 대해서도 물었습니다. 그런데 아들은 엄마의 그런 깐깐한 질문에 불편을 느꼈는지 시종일관 잘 모르겠다는 시큰둥한 대답으로 일관했습니다.
저녁 식사를 준비하면서 오늘 내가 느낀 불편함과 아들의 입장에 대해 곰곰 생각해 보았습니다. 늘 시간과 장소 약속을 하고 누군가를 만나는 것에 익숙한 어른인 나는 아들의 친구 만남에도 똑 같은 나만의 잣대를 들이대어 왜 아들이 나에게 친구를 데려오겠다는 한 마디 의논도 계획도 없이 행동했을까에 순간적으로 당황했던 것 같습니다.
반면, 아들은 놀이터에서 만난 같은 반 친구가 반가웠고, 그 친구가 집으로 놀러가고 싶다고 하니 당연히 집으로 데리고 왔을 뿐이고. 정말 감정에 충실하게 행동한 것 밖에 없었는데 친구와의 관계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보는 엄마의 질문에 불편을 느꼈던 것 같습니다.
<공원에서 일어난 이야기 > (앤서니 브라운 / 곧은나무)

<우리 친구하자 > (앤서니 브라운 / 현북스)
위 두 그림책은 우리나라도에 잘 알려진 영국의 그림책 작가 앤서니 브라운의 작품입니다. 1982년부터 시작된 글과 그림의 상호작용을 통해 아이들의 상상력을 키워준 책에게 수여하는 Kurt Maschler 상을 수상한 <공원에서 일어난 이야기> 는 공원에 산책 나온 네 사람의 관점과 시선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갑니다.
우아한 모자를 쓰고 옷차림도 그럴듯한 중산층 부인 찰스 엄마와 아들 찰스, 그리고 같이 데리고 나온 개 빅토리아. 다른 한쪽에는 실업 상태로 취업 정보지를 옆에 낀 스머지의 아빠와 유쾌하고 발랄한 아이 스머지, 그리고 데리고 나온 개 알버트가 등장합니다.
개 두 마리는 끈을 풀어주자 마치 오래된 친구처럼 달리기를 시작합니다. 제일 먼저 친구 맺기를 시작한 것이지요. 그 다음은 두 아이. 처음엔 서로 어색해 하지만 점차 곁을 내어주고 나무 타기를 가르쳐주기도 하고 시소를 같이 타기도 하면서 친하게 놀게 됩니다.
하지만 두 어른은 끝끝내 서로에게 무관심한 채로 산책을 마무리 합니다. 심지어 찰스의 엄마는 빅토리아가 앨버트와 뛰어노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고, 찰스가 험하게 생긴 여자 아이와 이야기 나누는 것도 싫습니다. 아이들의 마음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지요. 찰스 엄마가 찰스와 빅토리아의 손을 잡아 끌고 공원을 나서는 뒷 배경으로 그려진 공원의 활활 불타오르는 나무가 찰스 엄마의 마음을 대변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 친구하자>는 비슷한 내용을 찰스와 스머지의 이야기로 이끌어 가고 있습니다. 작가의 초창기 작품이라고는 하지만 전달력에 있어 결코 뒤떨어지지 않습니다. 처음 만났지만 오랜 친구처럼 뛰노는 개들. 처음엔 약간 어색해하지만 서로를 이해하고 받아들여 놀이를 공유할 수 있는 열린 마음의 아이들.
그와는 달리 벤치의 양쪽 끝을 차지하고는 시종일관 무관심한 태도로 서로에게 등을 돌린 어른의 모습이 우리 사회의 단면을 보여주는 것 같아 내내 안타까운 마음이었습니다.
우리는 수 없이 많은 사회적 관계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람들 사이에서 함께 호흡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을 줄 아는 힘이 있고, 이야기를 전할 수 있는 능력이 있을 때 건강한 사회적 관계 맺기가 이루어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사람을 이해하려는 배려나 관심없이 나의 이야기만 쏟아내고 이해를 구하려는 것은 이기적인 태도라 생각됩니다.
내 아이, 내 가족, 내 이웃의 이야기에 관심을 가지고 귀를 기울인다면 나의 이야기 또한 소롯이 그들에게 전달되고 이해받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오늘은 나의 이야기 보다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 귀를 빌려주는 것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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