귓속말 금지 구역 살림어린이 숲 창작 동화 (살림 5.6학년 창작 동화) 5
김선희 지음, 정혜경 그림 / 살림어린이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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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아들 녀석이 친구들을 집으로 데리고 와 좁은 아파트에서 로봇을 부쉈다 다시 만들었다, 바쿠간 놀이를 했다가, 고~ 슌~~ 팽이를 돌렸다가, 몇 발짝 되지도 않는 거실에서 잡기 놀이를 했다가...
정신 없는 통에 모처럼 여유로운 시간을 어지럽게 해 잠시 베란다에 앉아있었습니다.
조금 있다보니 정리가 되었는지 마법천자문 카드를 가지고 게임을 하고 있었습니다. 아들이 심판을 보고 두 친구가 게임을 하는 식으로 룰을 정한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게임 중에 아들 친구 녀석 하나가 아들한테로 가 귓속말로 뭐라 뭐라 그러는 겁니다. 그것을 다른 편에서 바라보는 아이의 얼굴을 보니 아차 싶었습니다. 좀 더 지켜보자 싶어 일단 읽던 책을 내려놓고 신경을 안 쓰는 척하며 옆 눈으로 온 신경을 집중시켰습니다.
친구의 귓속말을 받은 아들 녀석이 다른 아이한테 누구야, 너는 이 카드를 내라는 식으로 말을 했고, 그 아이가 아들이 말한 그 카드를 내자 귓속말을 한 그 친구와 한 편이 되어 마구 웃어대는 것입니다. 공정함을 유지해야 하는 심판의 역할은 온데 간데 없고 귓속말을 한 아이의 편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억울함을 느꼈던지 그 아이는 저에게 와 누구랑 누구가 자기를 놀려요 하고 일러줍니다.
일학년들이라 다른 사람에게 미칠 수 있는 영향력까지 고려하면서 의도된 행동을 하지 않았을테고, 어린 시절을 떠 올려보면 친구들 사이에서 그런 일이 흔히 일어났었던 것으로 기억하지만 그 당시 느꼈었던 누구에게 말할 수 없었던 참담한 기분과 얼마 전 읽은 책 내용이 뒤엉켜 아들 녀석과 친구들을 불러 나름 훈계를 하고 말았습니다.
<귓속말 금지구역 / 김선희. 살림어린이>


새학년이 된 세라는 웃음이 넘치는 반으로 만들겠다는 당찬 포부로 학급 회장에 당선이 됩니다. 여기서부터 세라는 고난의 길로 들어서게 된 것이지요.같이 회장 선거에 나와 한 표 차이로 떨어진 예린이는 그 날부터 회장인 세라보다 한 발 앞서 학급의 모든 일에 솔선수범하는 부회장이 됩니다.

물론 그 솔선수범이라는 것이 선생님과 친구들한테 보여지기 위한 것이었지만 묵묵히 자기의 일을 하는 세라보다 예린이가 훨씬 더 인정받는 결과를 가져오지요.
게다가 세라가 회장인 것을 못마땅하게 여긴 예린이는 세라가 보란 듯이 귓속말을 합니다. 예린이의 귓속말이 세라에게 안긴 상처의 정도를 책 속에서 인용하자면
'예린이는 지현이와 귓속말을 하면서 나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꼭 내 얘기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내 몸속으로 송충이들이 기어 올라왔다.
예린이가 귓속말을 하는 순간,
어떤 마법 같은 힘이 나를 꼼짝 못하게 옭아맸다.
그건 거미줄 같았다. 도망치려고 발버둥치면 오히려 더 꽁꽁 몸을
조이는 말의 거미줄.
예린이는 거미줄을 쳐 놓고 먹이를 기다리는 거미였다.
거미는 먹이를 먹을 수도 있고,
살려 줄 수도 있다.
나는 예린이가 쳐 놓은 거미줄을 피해 갈 수 없을 것 같은 불안한
예감이 들었다.'
행동을 주눅들게 만들어 버리는 마법같은 예린이의 귓속말과 세라를 궁지로 빠뜨리려는 이간질, 예린이가 발행하는 휘황찬란한 쿠폰, 드디어 터져버린 회장 탄핵 사건... 이 모든 것들이 세라에게 상처로 남습니다.
하지만 꼬리가 길면 잡히는 법. 지능이 모자란 태주를 잘 보살펴 준다는 이유로 착한 어린이상까지 받았던 예린이가 태주에게 바보 병신이란 소리를 서슴치 않으며 매로 손바닥을 때리는 것을 봐 버린 세라. 그날 본 그 한 장면이 모든 것을 바꿔 놓습니다.
예린이가 옆에 지나가는 아무 애나 붙잡고 힐끔거리며 귓속말을 해도 더 이상 두렵지 않았고, 무시하고 그 앞을 당당하게 지나갈 수 있게 되었던 거지요. 드디어 예린이도 더 이상 세라 앞에서 귓속말을 하지 못합니다. 아이러니 하게도 대신 세라에게 귓속말을 해 오기 시작했습니다.

고작 떡볶이 먹으러 가자는 아주 사소한 귓속말. 자신을 그렇게도 괴롭히던 귓속말들이 그런 내용들이었다니 똥물을 뒤집어 쓴 기분이 듭니다.

예린이의 잘못된 행동으로 태주가 정신과 치료를 받게 된 것, 학부모 회장인 차예린 엄마의 횡령사건이 터지면서 전학만 일곱 번을 다녔다는 예린이는 결국 다른 학교로 전학을 가게 됩니다.
그리고 학급 회의 시간에는 반에서 귓속말을 금지시키는 규칙을 만들자는 의견이 나오고 귓속말 금지가 통과가 되지요.
이것으로 나름 모든 문제의 해결법을 제시했다고 느끼는 순간
소식통이 전해오는 소식.
전학 간 학교에서 예린이는 회장에 예린이의 엄마도 학부모 회장에 당선되었다고 합니다. 이 문장으로 책장을 덮게 되지요.
그렇습니다. 아픈 곳을 직접 소독하지 않고 치료를 미룬 채 서둘러 봉합해 버린 기분. 이것이 나중에 곪아터질 것 같은 불길한 예감.
아마 그것 때문에 저도 아이들을 쭉 불러 세웠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꼭 한 마디 필요할 것 같은 순간에도 나 아니면 다른 사람이 하겠지.
이런 말까지 하면 기분이 나쁠텐데. 이런 저런 이유를 갖다 대며 말을 삼키곤 했었습니다. 아마 상대방에 대한 배려보다는 저 자신의 안위를 위한 것이었으리라 생각됩니다.
사실 아직도 어떤 방식이 정답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내 자신, 내 아이, 내 가족만을 위한 행동이 아닌 적어도 사회의 어른으로 반드시 해야할 역할 분담은 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침묵이 개인적인 문제로 그칠 때는 그나마 나 하나만 고통받으면 되겠지만 사회성을 띨 경우에는 문제가 좀 다르다고 봅니다.
뉴스에서 사건 사고가 터질 때마다 사건의 경위는 있지만 결과에 대한 명확한 제시는 없는. 그래서 늘 같은 일을 반복하고 그에 따라 같은 질량의 감정 노동에 시달려야 하는. 이제 이런 악순환의 고리는 조금씩 아래서부터 끊어 나가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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