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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야, 너는? ㅣ 보름달문고 34
남찬숙 지음, 한성원 그림 / 문학동네 / 2009년 11월
평점 :
시험지옥, 입시지옥.. 물론 지옥을 체험해 보지 않아 그곳에서의 생활이 얼마나 고달플지 알지 못하지만 요즘 아이들이 내뿜는 고통스런 말과 글들을 보면서 가슴이 뜨거워질 때가 많습니다.
주말에 가끔 대중교통을 이용하는데 일요일 출근길에 버스를 타면 보충수업 하러 가는 아이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하나같이 다크 서클로 줄넘기를 할 수 있을 만큼 피곤에 찌든 얼굴이었습니다. 생기 없는 얼굴, 축처진 어깨, 자리에 앉자마자 고개를 떨구며 이리저리 흔들리는 머리... 저의 학창시절을 되돌려 보면서 달라지지 않은 교육 현실 때문에 답답했습니다.
엄마의 관심을 끄기 위한 방편으로 멍청함을 선택한 아이, 심한 우울로 몸도 마음도 닫아버린 아이, 性 일탈을 위해 학교 성적은 상위를 유지하는 아이 등 우리 아이들의 실상을 낱낱이 기록한 <대한민국 부모>를 보고 난 후라 더 마음이 쓰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누구야, 너는?> (남찬숙 글 / 한성원 그림. 문학동네. 2009)은 <괴상한 녀석> <받은 편지함> <사라진 아이들> 등 우리 아이들이 놓인 처지를 현실적으로 그려내면서도 따뜻하고 진지한 태도로 희망을 이야기 하는 작가 남찬숙의 작품입니다.
일곱 살 되던 해까지 엄마 아빠를 대신해 외할머니 댁에서 자란 현우는 엄마 아빠랑 살게 된 첫날, 다른 아이들처럼 부모님과 함께 살 수 있다는 생각에 기뻤고 행복한 기분으로 잠들었지만 한밤중에 거실에서 들려오는 큰 소리에 잠이 깨고 말지요. 그리고 '그 아이'를 만납니다.
사법고시를 준비하는 아빠에게 가족의 생활을 책임지고 있던 엄마가 공부를 포기하고 취업을 해야 한다고 말한 것이 화근이었습니다.
부모님 집이지만 아이에게는 완전히 낯선 집이었을 터. 현우가 무서움에 떠는 순간 '무서워 하지 마'라고 그 아이가 나타나 위로합니다.
그때부터 현우는 엄마가 다시 외할머니나 다른 누구의 집으로 보낼까 겁이나 최대한 엄마 말을 잘 들으려고 노력합니다. 그 아이는 외롭거나 슬플 때 나타나서 위로해 주는 좋은 친구였지요.
시간이 흘러 6학년이 된 현우. 언제나 예의바르게 인사 잘하고 말썽부리지 않는 현우는 지금까지 모든 선생님께 칭찬을 받았지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지금 담임선생님은 그런 현우를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반 전체가 학예회 춤 연습 때문에 남아 있을 때 현우는 수학경시대회 준비를 위해 배가 아프다고 핑계를 대고 집으로 와 공부를 합니다.
물론 현우에게는 친구가 한명도 없습니다. 친구 만들 시간에 공부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으니까요.
공부로 지쳐가는 현실에서 현우에게 위로가 되어주던 그 아이도 요즘은 사사건건 트집을 잡습니다. 그리고 담임선생님과 같은 표정으로 딱하다는 듯 현우를 바라보지요. 그럴 때면 현우는 점점 그 아이가 싫어집니다.
팽팽하게 긴장된 생활 속에 아슬아슬 살얼음판을 걷던 현우는 엄마가 현우 공부를 위해 이사를 결단하면서 위기를 맞습니다. 엄마가 소리 지르며 야단치지도, 매를 들지도 않지만 그런데도 현우는 엄마가 조용조용 야단치는 게 세상에서 가장 무섭다고 느낍니다.
새 학교에서 기말고사를 치르게 된 현우는 당장 열두 시까지 학원에서 쉴틈없이 공부를 해야 했고 거기다 독서퀴즈 대회까지 온 힘을 다해 자신을 지킵니다. 하지만 결국 현우는 시험 당일 시험지의 글자를 읽을 수 없습니다. 거기다 불쑥 나타난 그 아이에게 꺼지라고 소리까지 지르고 말지요.
병원치료를 받게 되면서 현우는 자신의 주위를 돌아보게 됩니다.
남들 앞에서는 늘 당당하지만 외할머니 앞에서는 움츠러들어 말 한마디 제대로 못하는 엄마.
외국에서 자리 잡아 교수하는 외삼촌과 이모를 비교하며 엄마의 삶을 실패라고 서슴없이 말하는 외할머니.
지방에서 1,2등 했다 지금 학교에서는 20등을 한다고 힘들어 하면서도 현우를 따뜻하게 위로할 줄 아는 민철이.
같은 병원에 다니는 뭐든지 일등이고 당당하다고 생각했던 수민이.
공부를 포기하고 학원 강사로 일하지만 현우에게 관심도 없고 도움도 되지 않는다고 여겨지는 아빠.
그리고 '그 아이'
과연, 현우에게 '그 아이'는 어떤 존재일까요?
어느 하나 가벼울 것 없는 현실. 팽팽한 긴장감. 수많은 책상 속에 우두커니 혼자 앉아 있는 책표지 속 아이의 모습에서 쉽게 읽혀질 내용이 아니 구나라는 짐작을 할 수 있습니다. 부모님께 인정받기 위해 죽을힘을 다해 오로지 공부만 하는 세상의 수많은 현우가 진정한 자아를 찾아 스스로 당당해지길 응원합니다.
대한민국에서 아이 교육을 해야만 하는, 할 수 밖에 없는 부모님과 초등학교 고학년 학생들이 꼭 한 번 읽어보기를 원합니다. 공부만으로 아이들의 능력을 평가하고 인정하는 고통스러운 우리 교육의 현장을 돌아보면서 자신만의 건강한 나침반을 찾는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