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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한 길의 왼쪽 - 황선미 산문집
황선미 지음 / 창비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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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때 내가 유일하게 알았던 출판사는 창비뿐이었다. 학교에서 한 달간 독서진흥을 하기 위해 독후감 대회를 열었었다. 엄청나게 많이 읽었던 책들의 출판사가 바로 창비였다. 성인이 되고, 창비를 다시 만나게 되었다. 그 사이 출판사는 엄청 많이 생겼다. 하지만 창비를 보면 어릴 때의 열심히 독후감을 썼던 내가 떠오른다.

 

'익숙한 길의 왼쪽' 솔직히 제목을 보고 서평에 지원했었다.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굉장히 와닿았다. 무엇인가가 나를 끌어당겼다. 고로 나는 읽게 되었다.

 

처음 파트를 읽었을 땐, 지어낸 얘기인 줄 알았다. 계속 읽어보니 작가의 실화였다. 나는 가끔 생각한다. 나의 이야기를 소설처럼 써 놓은 것도 재밌지 않을까?라는.

 

주로 '어머니'가 언급이 되었다. 어머니. 그 이름만 들어도 감정이 요동치는, 벌컥 울음이 쏟아져 버릴 것 같은 어머니. 나는 작가의 세대와 다른 세대에 태어났다. 외동이다. 집안에서 경쟁상대도 없었으며 모든 것이 내 뜻대로 였고 부모님은 항상 내가 먼저였다. 그렇지만 이것은 타인의 눈에 보이는 그저 외동이니까~라는 타이틀의 겉모습일 뿐이고 나도 나름대로 고충이 있다. 하물며 식구가 많은 집에서, 그것도 장녀로 태어난 고충이란 말하기도 힘들 정도겠지.

작가는 그러했다. 내가, 내 몸이 어머니의 유전자와 똑같은 것도 싫고, 나이 들수록 점점 어머니와 똑같아지는 목소리도 싫어했다. 당신이 되지 않기 위해 발버둥 치며 살았다.

마음이 아팠다. 작가의 마음을 다 헤아려 주는 것은 어렵다. 나는 단지 타인일 뿐이니까. 하지만, 만약 내가 작가를 잘 아는 친구라면, 오빠나 언니였다면, 그 시절 작가를 보듬어 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숭늉을 배달하는 일은 항상 장녀가 해야 했다. 무겁고 뜨거운데 조심히 긁어서 양푼에까지 담고 배달까지 해야 하는 어린 8살 소녀로서는 감당하기 힘든 매일 같은 노동이다. 계속해서 왜 본인이 해야 하는지도 의문이었고, 아마 죽을 때까지 이걸 해야 하지 않을까라고 한숨 섞이게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저 반항기가 들어 하기 싫음을 내비치며 발등에 쏟아버렸다. 나 걱정 좀 하라고.

어머니는 걱정하기는커녕 욕지거리를 하며 오히려 타박한다.

-. 한숨을 쉬었다. 내가 살던 시절이 아니지만 적나라하게 그려져서. 정말 그 한없이 어렸던 아이의 존재는 가족에게 대체 무어란 말인가. 라며 원망 섞인 마음을 내비치었다.

 

'틀림없이 내 인생의 마지막까지 함께해줄 나의 가장 낮은 몸'. 이 문구를 보고 울컥했다면 진심이다. 문득 나의 발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나도 운동을 했었다. 초등학생부터 중학생까지. 매일 같이.

중학생 때는 운동부 선수였다. 매일 잔디구장에서 , 햇빛을 쬐며 까맣게 타버린 나의 얼굴. . 눈동자보다 더 까맣던 시절. 콤플렉스였지만 콤플렉스가 아니었다. 외모에 관심이 없어서였을까. 하지만 어울리지 않는다 쯤은 알고 있었다. 그래도 원망은 안했다. 긍정적인 편이었다.

한쪽 다리가 없는 소녀. 한쪽 다리를 잃었을 땐 얼마나 힘들고, 마음이 아팠을까. 그 가족들은?

'참 아름답다! 산다는 게 뭔지 잘 몰라도 살아 있음이 경이롭다는 걸 처음 느낀 날이었다'.

누구나 우울하다. 매일 같이 환하게 웃는 사람도 그 마음속 내면의 어둠은 있을 터. 하지만 살아야 한다. 나는 살고 있는 중이다.

 

친구 얘길 해보겠다.

중학생 때부터 알아온 친구는 장녀다. 밑으로 여동생 한 명, 남동생 한 명. 부모님은 이혼하셨고 새아버지가 들어왔다. 어릴 땐 그 친구의 가정사나, 집안사에 대해 전혀 묻지도 않았고, 굳이 묻질 않으니 친구도 꺼낸 적 없다. 난 어릴 때부터 개인 가정사에 묻는 것은 예의에 어긋난 일이라 생각하고 묻질 않았었다. 시간이 지나 친구가 결혼할 즈음. 본인 얘기를 스스럼 없이 하더라. 10년 넘게 묻지 않았던 나에게 말이다. 그러다가 문득 궁금한 것이 생겼다. '너는 장녀잖아. 혹시 장녀로서의 책임감은 있었니? 동생들을 챙겨준다거나, 네가 양보한다거나 흔히들 드라마 소재로 많이 나오는 것들 있잖아. 희생까진 아니지만 네가 손해 봐도 동생들 챙기는 그런 거 말이야' 친구는 대답했다. '나는 장녀여도 여태껏 그런 생각들을 하지 않고 살았어. 그냥 동생은 동생일 뿐이지 내가 챙겨줘야 한다는 그런 것도 없었지. 오히려 동생들이 날 도와준 적도 있어. 장녀로서의 역할은 안했 던것 같아'. 그렇구나. 장녀지만 장녀 역할은 한 번도 한적이 없다는 친구. 가족들과의 관계를 생각하면 그럴 만도 했었다. 단순히 외동으로 태어나서 호기심이었을 것이다.

 

엄마의 한 조각.

외할머니는 오래전에 돌아가셨다. 20년이 넘었다. 어릴 때 돌아가셨지만 다행히도 외할머니와의 추억을 아직도 간직하고 있다. 20년이 넘는 그전엔 어머니도 젊었었다. 40대 였었다. 하지만 지금은 어머니가 외할머니가 되어 있다. 어릴 땐 몰랐는데, 외할머니와 어머니의 얼굴이 겹쳐 보인다. 비슷하다. 난 우리 엄마가 좋다. 외할머니로도 보이고, 그냥 우리 엄마 얼굴로도 보여서.

외적인 것이라면 난 엄마를 닮지 않았다. 목소리도 닮지 않았다. 체질도 닮지 않았다. 대체 뭐가 닮은 걸까. 세심함이 닮았다, 생각이 깊은 것이 닮았다, 좋아하는 영화 장르가 비슷하다, 머리 굴리는 게 닮았다, 사람 말을 경청해주는 태도가 닮았다, 입맛이 비슷하다 그리고... 어쩔 때의 목소리도 닮았다. 엄마와의 나이 차이는 엄청 많이 난다. 나를 늦게 낳으셨으니까. 하지만 우리 엄마는 항상 젊다. 목소리가 30대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 다들 전화 목소리만 들으면 그렇게들 안다. 그냥 그러려니 한다. 나 또한 엄마의 한 조각이다.

 

책 속의 우체통 8마리의 새끼새 죽었다. 그 새끼 새가 나와 연은 없을지라도 생명이 죽는 것은 당연히 슬프다. 읽다 보니 작가와 나의 경험에 의한 비슷한 점이 많다는 것을 느꼈다.

현재 나는 중 시골에 산다. 수도권도 아닌 완전 깡촌도 아닌 그렇다고 중간도 아니라 시골인데 지하철이 있는. 그냥 내가 중 시골이라 이름 붙였다. 작가는 평택에서 계속 거주하였다. 난 평택에서 14년간 거주하였다. (중간에 유학 기간과 서울에서 지냈던 것을 빼면 줄어들지만 주소 거주지는 14년이라 하겠다) 작년 찌는듯한 더위에 탄복하며 6월에 현재 주소로 이사 왔다. 이사하기 전까지의 얘기를 해본다면, 우리는 이 중 시골로 다시 돌아오게 되었다. 15년 만에 금의환향했다. 15년 전까진 그냥 깡촌이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더니 15년이나 지나서인지 효력을 본 듯하다. 세상에. 브랜드 마트와 영화관이 생기다니. 놀라운 발전이다. 아버지는 매일같이 <나는 자연인이다>라는 프로그램을 즐겨 보시더니 2월부턴가. 갑자기 집을 지으셨다. 보일러실도 만들었다. 이사 오기 전부터 나는 내방을 보기 위해 들락거렸다. 가끔가다 샤워도 하였다. 어느 날도 왔었는데, 아버지가 보일러실에서 새 한 마리가 죽어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왜 그런가 싶었더니 저번에 보일러실을 열고 갔었는데, 따듯하니 보일러실에 둥지를 트고 어미 새가 알을 품었나 보다. 헌데 우리는 그런 줄도 모르고 보일러실 문을 잠그고 다시 오니 먹이를 구하러 나가지 못한 어미새는 보일러실에서 죽은 채 발견되었다. 너무나 안타까웠다. 그 어미 새의 알도 대략 5개쯤 발견하였는데, 우리는 어찌할 방법이 없어 자연으로 보냈다. 집이 숲에 위치한 터라 공기도 맑아 우리가 품어주거나 보듬어주진 못하지만 만약 살아남는 새끼들이 있다면 살아남을 수가 있다고 생각해서였다. 작가의 우체통 8마리 새끼 새 이야기를 읽으니 떠올랐었다.

 

 

끝으로.

진정한 작가의 글을 읽었다고 느낄 수 있었다. 읽는 내내 문학작품이라는 게 진정 무엇인지 깨달았다. 표현 한마디, 단어의 쓰임, 명언 같은 구절에 대해 감명 깊게 봤다. 요새는 책 시장이라는 표현이 옳다고 본다. 너무나 많은 잡학이 깔려져 있고 너무나 많은 작가가 있으며 너무나 많은 출판사가 있다. 도대체 어떤 것을 읽어야 마음의 양식을 쌓는지, 나에게 도움이 되는지 모르는 현시점이다.

오랜만에 신의 소금과 같은 존재가치가 있는 책을 만난 듯하다. 읽으면서 나는 아직 미숙하고 부족한 점이 많다는 것을 느꼈다. 무조건 책의 판매량만을 늘리려 하고, 문학의 가치는 존중하지 않은 채 베스트셀러만 만들어내는 이 시대에서 필요한 존재의 글이라고 본다.

 

그런 작가님의 글 솜씨에 탄복하였습니다. 작가라면? 황선미처럼.

개인적인 견해지만 표지도 너무 마음에 든다. (정말 예쁘다!)

이런 훌륭한 작품을 먼저 읽게 선물해주신 창비출판사에게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앞으로도 작가님과 창비출판사의 행복을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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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 AI 공존 패러다임 - 인공지능 시대 서바이벌 리포트
김송호 지음 / 물병자리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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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한 서평을 쓰려고 한다.

난 책을 보자마자 표지를 넘겨 작가의 프로필부터 봤다. 우와... 박사님이 쓰신 글이네. 대학원에서 논문을 보며 논문에 대해 글을 쓰라고 하는 과제에서는 비평하는 부분도 있는데, 그럴 때마다 생각한다. 석사를 밟고 있는 내가 어떻게 박사논문을 가지고 평을 할 수 있단 말인가. 그것도 비평을 말이다.

그것이랑 같다. ... 상당히 어렵겠다라는 생각부터 서평을 어찌할지 두뇌회전을 해봤다.

 

어렸을 때부터 과학 시험 성적도 별로 좋지 않았고 이과도 아니었으며 전공도 인문과 교육학이다. 한마디로 과학에 대해 문외한이다. 전문인도 아닌, 전공자도 아닌 그냥 보통 사람이 AI에 대해 생각을 나열하고자 한다. 그렇지만 세상에는 나 같은 사람이 더 많을 터. 오히려 이게 역으로 도움이 될 수도 있다.

 

1) 스마트폰

- . 스마트폰이 인공지능이었구나.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내게 있어서 스마트폰은 그저 문명의 기계에 불과했다. 작은 컴퓨터 정도. 스마트폰 얘기하기 전 마이마이부터 얘기해야 하나. 이것도 내가 어느 정도 나이를 먹어서 얘기할 수 있지, 요즘 애들은 마이마이니 워크북이니 이런 거 아는 애들이 있으려나 모르겠다. 그 시절 마이마이는 거의 모든 애들의 부러움에 대상이었다. 갓 출시되니 비싼 것도 있었지만 싼 것도 있었다. 음원 테이프 모으기가 유행이었는데, 집마다 카세트는 있어도 휴대용 카세트인 마이마이는 없었다. 반에서도 가지고 있는 애가 3명 미만이었다. 난 초등학교 6학년 때 샀었다. 하지만 듣고 돌리는 과정이 너무 지루하고 귀찮았었다. 그러다 중3 때 아이리버 MP3를 어머니가 사주셨다. 난 원래 얼리어답터도 아니고 기계에 별 관심도 없고 그걸 떠나 유행에 아예 관심이 없다. 없다고 해서 뒤쳐진다고 생각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멘탈이 남달랐다) 당시 가세는 기운 편이었는데, 사달라고 한 적도 없었고 MP3 얘기조차 한 번도 한 적 없던 나에게 신세계 상품권을 주시더니 MP3를 사서 선물해 주셨다. 상품권이면 충분히 시장을 보고도 남을 액수였다. 난 처음엔 당연히 죄송해서 괜찮다고 했는데, 요새 최신 유행이라고 사주신 거다. 그때 당시 하도 선풍적인 인기를 끌어서 솔깃 하기도 했었지만 솔직히 이걸 어떻게 쓸 것인가 난감했었다. 그래도 친구 덕분에 사용법을 알아서 그때부터 대략 6년 정도 사용했다. 7년째만에 내 아이리버 군청색 MP3는 세상을 떠났다. 중학생 때만 해도 무료 콘텐츠가 찾아보면 있었다. 무료 음원을 다운로드했었다. 그러다가 어느순간부터 다 막히더라. 하지만 역시 유행에 하나도 민감하지 않았던 난 가수 자우림의 마니아여서 자우림 음악만 듣고 다녔다. 그러다 세월이 한참 흘러 스마트폰이 출시되더라. 2010년에 처음 스마트폰을 봤었는데, 들고 다니는 사람이 없어 그때까진 터치폰을 사용했었다. 그러다 운 좋게 최초로 출시된 갤럭시탭에 당첨이 되어 (1) 1년 반 정도 사용했었다. 그때부터 계속 스마트폰을 이용 중인데, 물론 음원은 막혔다. 무조건 돈 주고 다운로드 해야 한다. 하지만 난 중국 노래만 좋아하여 중국 어플로 중국 음악만 다운로드한다. 중국도 무료가 많다. 음원뿐만이 아니다. 스마트폰은 플레이스토어에서 어마어마하게 많은 무료 콘텐츠가 있다. 정말 좋은 세상이다. 개발자님들 감사합니다~ 스마트폰 콘텐츠를 이용하여 우리는 이 좋은 세상에 좋은 서비스를 받으며 살고 있다. AI는 정말 좋은 기술이구나!

 

2) 기술발전

- 기술발전은 당연히 좋은 것이다. 발전함에 따라 인류는 부를 축적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공동체적인 삶은 파괴되었다. 하긴, 세상엔 돈이 다가 아니다. 더 값진 것을 놓쳤다. 이 또한 기술발전으로 메꾸어야겠다.

 

3) 일자리

- 솔직히 일자리만 생각하면 동의를 못하겠다. 요새 마트에 가더라도 불편하다. 물론 나는 젊으니까 괜찮지만 나이 드신 분들은 많이 불편하시겠다고 생각한다. 솔직히 이게 AI의 발전 때문인지는 모르겠다만 내 생각으로는 인건비 아끼기 위함이다. 곳곳에 키오스크가 배치되어있다. 영화티켓도 사고 마트에서 식사도 주문하고 박물관에 지도도 보여준다. 안내해줄 사람이 없기에 사용법을 모르는 사람들은 묻지도 못하고 발만 동동 구르는 사람도 있다. 게다가 마트에서 계산할 때 캐셔들이 거의 없다. 장 보는 사람은 많은데, 캐셔 배치는 너무 안되있어서 기다리는데 허비하는 시간이 많다. 셀프계산대도 등장했다. 셀프계산은 할 수 있지만 완성도가 높진 않다. 어떤 상품은 직원을 부르란다. 그럼 또 직원을 불러서 물어야 한다. 이럴 거면 그냥 캐셔가 해주는 게 낫겠다. 셀프주유소. 내가 자주 이용하는 곳이다. 물론 셀프가 아닌 곳이 시간은 절약해준다. 하지만 셀프가 한가해서 더 편하다. 빨리빨리 서두름이 없어 좋긴 하다. 하지만 불편한 것이 더 많다. 경제성, 효율성, 유동성이 나아졌다고 표현할 수 있을까? 인건비를 줄인 것은 기업일 뿐이라 기업만 이득이다. 효율성은 진짜 의문이다. 유동성은 기계를 잘 조작하면 모르겠지만, 그런 게 힘드신분들은 빨리 사람들이 안 빠진다. 시간만 간다. 과연 이게 좋은 것일까?

 

4) 어떤 일자리가 줄어들고 늘어날 것인가?

- 요새 그런 게 있지 않나? 미래의 사라질 직업, 유망한 직업.

예전엔 은행원이 되면 돈은 꼭 손에 쥔다고 하였다. 책에서는 주산만 잘해도 은행원이 됐었다고 하는데 현재는 은행원 되기가 힘들다고 알고 있다. 하지만 '미래 사라질 직업'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은행원은 미래에 사라질 직업 중 하나다. 그 외 심판, 농부, 텔레마케터, 사서 등이다. 진짜 사람이 필요로 한 직업 외에는 10~30년 안에 거의 사라진다고 하니 슬픈 현실이다.

유망한 직업은 교사, 운동선수, 판사, 정신건강전문가, 심리상담가 + 과학을 다루는 분야 등인데 교사는 화상강의로도 가능하여 중립 입장이다.

내가 생각하기엔 미용사도 유망 직업 중에 하나일 것 같다.

요샌 자율 주행 자동차에 대한 관심도가 높은 편인데, 솔직히 사고 위험률이 낮다고 생각할 수 있을지 미지수다. 내가 보기엔 엄청 높을 것 같은데. 기계가 고장 나면 큰일이니까.

 

5) 기업에서 원하는 상

- 이 주제는 AI와 상관없을 것 같지만 한번 넣어봤다. 대한민국의 모든 직원들. 문서작성, 서류, 결제에 관해 도가 트였을 것이다. 나 역시도 많이 작성해봤다. TV에서 본 적이 있다. 문서작성을 맡겼을 때 꼼꼼하면서 조금 느린 직원과 대충 하면서 빠른 사람 중에 어떤 사람을 더 선호하냐는 말에 기업은 후자를 선호한다고 답변하였다. 로봇청소기가 있다고 치자. 먼지는 빨아들이지만 먼지를 털 수도, 구석구석 빨아들일 수도 없다. 기업에서 원하는 상은 바로 로봇청소기 같은 게 아닐까. 그래서 AI는 살아남을 수 있다고 본다. 기계이기 때문에 자기가 할줄 아는게 제한이 있다. 여러 가지를 못한다. 하지만 그 제한에서만큼은 잘 한다.

 

6) 중산층의 기준

- 우리나라와 프랑스의 중산층의 기준을 보면서 부끄러워졌다. 털어놓고 얘기하자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보이는 것만을 추구한다. 겉보기가 번드르르 한 것을 말이다. 돈 만 많아 보이면 좋다는 주의 같기도 하다. 헌데 프랑스는? 인간주의다. 내 면에 살이 꽉 차있다. 남을 도울 줄도 알고 그것을 당연시 여기며, 자기개발을 위해 노력한다. 외유내강이다. GDP가 높다거나, 개개인 소득이 높다거나 해서 행복의 지수와 비례하진 않는다.

 

내가 생각하는 핵심적인 내용을 언급하였다. 옛날부터 이런 말이 있다. 대학가지 말고 기술을 배우라고. 그러다가 몇십 년이 지나고 너도 나도 대학에 안 들어가면 이상하게 되는 현실이 되었다. 유행은 돌고 도는지 오늘날인 현재, 대학을 가든 안 가든 본인의 선택이지만 대학가도 별반 다를 게 없다는 현실 앞에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기술을 배우는 청년들이 많아졌다.

교육을 하는 사람 입장에선, 대학 진학을 포기하는 것에 대해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어쨌든, 그 기술이란 게 옛날 흔히들 말하는 공장에 들어가서 하는 것만은 아닐 것이다. 바로 '기술발전'이란 것이다. 기계를 만든다고 해서, 다 같은 기술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난 컴퓨터는 필요할 정도만 할 수 있고 스마트폰 사용하고 태블릿 사용하는 다른 사람들과 비슷한 기술에 대해 보통을 지식을 갖고 있는 사람이다. 별다른 재능은 없는 대신 중국어를 할 수 있어서 출강을 다니며 가르치며 살아가고 있다. 이것 또한 기술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러니까, 기술이란 것이 비단 AI와 같은 것만은 아니라는 뜻이다.

현재 세계의 기술은 하루가 다르게 비약적인 발전을 이룩하고 있다. 스마트폰을 또 예로 들어보자. 스마트폰 초창기 시절에 어떠하였나? 시리즈가 많이 나오면서 현재는? 솔직히 내 생각으로는 이만하면 됐다 싶다. 너무나 빨리 돌아가는 세상에 발맞춰가기 힘들다. 나만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노트북 하는 법을 익혔더니 스마트폰 사용법 익혀야 하고 디지털 TV, 태블릿에, 이젠 인공 로봇하고 대전까지 해야 한다. 스마트폰은 종류도 너무 많고 작용법도 너무 많아 어차피 뭐가 뭔지도 다 모르겠고 익히기까지 시간도 걸리고 다 익힌다 해도 다 사용하지도 않을 것이다. 매일매일이 새롭고 이렇게 급하게 변하는 세상에서, 과학에만 박차를 가하고 있으니 옛날이 그리울 때가 많다.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범죄율도 많아지는 듯하다. 인터넷이 없던 시대, 정보가 없던 시대, 공중전화를 사용하며 검색 기능이 없어 백과사전을 뒤지고, 전화번호를 뒤졌던 그 아날로그 시대 말이다. AI는 나라를 강국으로 만들어주고 삶에 질적인 편안함을 제공해주고 생활을 윤택하게 해주며 느린 것을 빠르게 해주는 아주 좋은 장점들이 존재하나, 사람 간의 소통, 서로 간의 화합, 친구 간의 사귐, 추억, , 공동체적인 역할이 계속하여 사라지고 있는 추세다. 발맞춰 나아 갈 순 없는 걸까? AI로 이용한 기술이 너무 높아 이제 의학에까지 손이 미치는데 걱정을 하는 이유는 무어란 말인가.

책 제목이 <인공지능 AI공존 패러다임>인 것처럼, AI와 인간이 공존하여 아름다운 세상을 만드는 것은 욕심인 것일까?에 대한 의문을 남기고 마친다...

 

물병자리출판사에서 책을 선물해 주셨기에 과학에 대해 잘 모르던 제가 깊은 관심도 가지고, 생각에 잠겨도 보았습니다. 지식의 창을 넓혀 주셔서 감사 합니다. 항상 행복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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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의 힘으로 교직을 디자인하라 - 대한민국 교사로 살아남기
최선경 지음 / 프로방스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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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받고 정말 기분이 좋았다. 봉투에 정성껏 포장되어 예쁘장한 보라색 표지가 나를 반겨주는 책. 표지를 넘기니 주황색 바탕에 정성스러우면서 멋지게 글귀를 써주신 나를 응원하는 작가님의 예쁜 마음. 나도 모르게 괜스레 미소가 지어졌다.

 

그래서, 위와 같은 이유로 다른 때보단 서평이 늦어졌다. ... 나 역시 작가님을 만족시켜 드리고 싶어서일까. 왠지 고민을 많이 해서 써야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사실 저런 이유도 있고, 또 다른 이유도 있었다. 나의 전공분야다. 상당히 관심 있는 '교직' 이란 단어. . . 현재 나 또한 그쪽으로 달려가고 있다. 어려운 걸 알기에, 내용 또한 당연히 어려울 것 같다는 것은 지레짐작이었을 뿐. 크나큰 오산이었다. 그래서 일부러 미루고 이제야 봤다.

긴 생각에 잠겨야 할 것 같으므로...

 

,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자. 나의 느낌을 나열해보자.

정성껏 쓰기 위해, 작가님께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다는 마음으로 한 단락 읽을 때마다 무엇을 써야 할지 노트에 필기를 해두며 꼼꼼히 읽어나갔다. (그렇기에 시간이 많이 걸렸을 수도 있다. 하지만 생각보다 시간이 별로 걸리지 않았다는 것은 함정이 아니다 ^^)

 

재미있다

'교직'이라는 말에 나는 겁을 먹고 나중에 읽어야겠다고 생각했었다. 후회했다. ...진작에 읽을걸. 진짜 재미있는 책이다. '교직' 은 재밌다 라고 성립될 정도로. 작가는 왜 본인이 교사가 되었는지, 그것도 왜 하필 '영어교사'가 되었는지를 어릴 때부터의 이야기로 거슬러 올라가 소개하고 있다. ~ 다른 사람의 옛날이야기다. 것도 개인적인. 정말 재밌었다. 그래서 나의 어릴 적 꿈과 비교 해 보았다. 나는 어릴적부터 운동을 했었다. 수영선수. 골프선수. 심지어 하키 선수. 스쿼시 선수. 다양한 '선수'만을 생각했었다. 근데 결코 '갈망'까진 아니었다. 그냥 그땐 그걸 했었으니까. 이 정도다. 좋아하는 것이 아닌, 잘하는 것을 택하였다. 책은 진짜 부담 없게 읽힌다. 술술 읽히니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집중해서 읽지 않아도 된다. 이미 빠지길 마련이다.

 

한국인은 다른 사람(주위) 신경을 많이 쓴다

이것은 진짜 맞는 말이다. 작가도 공감하고 나도 공감하고 여러분들도 공감할 것이다. 책 속에 언급되어 있는 오바마 대통령이 한국 기자들에게 질문을 건넸을 때 누구도 선뜻 나서지 못하였다. 그 유명한 기자들이 말이다. 한국에서는 잘만 질문하면서. 그걸 치고 중간에 중국 기자가 그럼 본인이 질문을 해도 되냐고 그랬더니 오바마 대통령은 일단 한국 기자에게 먼저 질문 기회를 주었으니 계속해서 한국 기자의 질문을 기다리는 배려를 베풀었다. 하지만 그래도 질문이 없자 중국 기자에게 기회가 넘어갔다. 그런걸 보더래도 한국인들은 너무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본다. 틀리면 좀 어때. 대체 뭐가 부족해서 그러는 건데. 특히 외국어를 가르치다 보면 겪는 흔한 일이다. 틀렸다고 아무도 뭐라 하는 사람 없다. 선생으로서는 교정만 해 줄 뿐이다. 그것은 당연하니까. 교정도 안 해주면 계속 틀리길 마련일 테니까. 정말 많은 공감을 얻은 부분이었다.

 

교육의 효과

62~63쪽이다. 겨우 한 페이지 분량으로 절실한 깨달음을 얻었다.

"교육의 효과는 당장 나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지금 당장 내가 지도하고 있는 학생이 바뀌지 않는다고 조바심 내지 말자.“

너무 공감하는 명언이다. 짧다면 짧고, 오래되었다면 오래된 기간 동안 많은 사람들을 가르쳐 왔다. 한국인에게는 중국어를, 중국인에게는 한국어를. 기업체 출강이었기 때문에 학습자들은 대부분 나보다 나이가 많다. 그리고 아버지뻘 되는 분들이 많이 있었다. 아버지뻘 되는 분들도 어쨌든 나한테 배우는 학습자다. 학생이다. 하지만 연세가 지긋하셔서 그런지 본인만의 생각과 고집이 있다. 중국 출장을 몇 번 다녀왔다고, 혹은 중국어를 예전에도 배웠다고 하시면서 내가 강조하는 부분을 대충 넘기는 분들도 많다.

내가 강조하는 것은 중요하고 상용구이니 강조하는 것이다. 헌데 별거 아니라는 듯 자기보다 어린 선생의 말을 헛되이 듣는 분들이 많다는 것이다. 그리고 열심히 가르쳐도 예습 복습을 안 하면 무용지물이다. 그냥 수업시간만 공부하는 것이다. 그럴 땐 내가 가르치는 선생으로서가 아니라 한 명의 인간으로서 생각할 때는 당연히 힘들다. 그래도 계속할 수 있다고, 조금만 더 노력하면 된다고 아버지뻘 되는 분들을 응원해주는 선생 역할을 한다. 나는 가르칠 때 진짜 최선을 다한다. 잘 들리게끔 마이크로 말하는데도 목이 항상 아프다. 내 목은 항상 부어있다. 그래도 다음 날 강의를 나가면 열심히 강의한다. 내 노력이 그들에게 닿을까. 그들이 알아줄까. 못 알아줘도 상관없다. 나는 부끄럼 없이, 나 스스로에게 만족할 만큼 노력을 했다. 나머지는 그들의 몫이다. 설령 현재 그들에게 교육의 효과가 나타나지 않더라도 언젠가는 생각이 날 것이다. 무조건적으로 배우면 도움이 되길 마련이다.

 

전공

저자는 전공이 불어 교육이다. 부전공은 영어교육인데, 정말 부럽다. 불어는 아직도 우리나라에서 호황 되진 못하고 있다. 영어 임용을 치른 것에 대해 신의 한 수라고 책을 읽는 내내 생각했었다.

그러면서, ? 우리 학과 교수님도 예전엔 본인 전공과 맞지 않는 것을 가르쳤다고 하셨 는데...라고 생각했다. 전공이 국어교육인 교수님은 카투샤 제대 후 그때 영어교사가 없던 시절 본인이 영어를 담당하셨다고 하셨다. 게다가 한문교육까지. 3과목이나 한 학교에서 말이다. 완전 만능 교수님이다. <아프니까 청춘이다>의 저자, 김난도 교수는 법학/행정학을 전공했지만 현재는 서울대학교에서 소비자 학과 교수다. <나의 동양 고전 독법 강의>의 저자, 신영복 교수는 경제학을 전공했지만 성공회대에서 인문학을 가르쳤다. ... 본인 전공이 아닌 다른 전공의 가르침을 교육하는 분들이 생각보다 많구나 라고 감탄했다. 그럼 나도 비슷한 입장인가. 난 학부는 중어중문이고 대학원은 한국어교육이다. 저자는 본인의 전공과, 전공에 얽힌 '인생관'을 소개한 듯 하다. 솔직한 심정으로, 재밌게 읽으면서, 다른 분들을 떠올려봤고, 나와의 비교도 했었다.

 

휴식

부제 대한민국 교사로 살아남기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 현재 한국 현실. 난 교사가 아니지만 현재 '교육'을 전공하는 사람으로서, 어림짐작으로도 알 수 있다. 내가 초등학교 1학년에 입학했던 시절, 한 반에 53명이었다. 그렇게 많은 학급 인원으로 어떻게 지냈는지... 지금 생각하면 신기하다. 하지만 그때가 나았다. 그렇게까지 사교육 열풍이 아직 불지 않았을 적이니까. 초등학교 6학년때는 서른몇 명이었다. 아마 졸업 직전 몇 명이 전학 와서 40명 되기 직전이었을 것이다. 내가 그때 33번인가 그랬으니까. 몇 달 전 오랜만에 내가 졸업한 초등학교 홈페이지를 봤더니 6학년 반이 반으로 줄어있었다. 3반까지다. 나 때는 6반까지였는데... 무언가 씁쓸함을 느꼈다. 사회 경제가 너무 어려워져서 그런가. 아이들은 계속 줄고 있는 현실이 암담하긴 하다. 이게 휴식과 무슨 상관이냐고 의문이 들을 수도 있다. 그냥 내 생각일 뿐이다. 아이들이 줄으니, 각 가정마다 아이에게 엄청난 사랑과 관심을 쏟아붓는다. 학교에서 어떻게 지낼지, 학원에서는, 친구를 만나서는... 등등. 아이의 성장과 교육을 케어해야 할 부모들은 허구한 날 학급 선생님만 들들 볶는다. 어떤 기사를 봤다. 교사들이 한밤중에 학부모들 연락 때문에 너무 힘들다고. 정말 이건 아니지 않나. 진짜 극구 반대하고 싶다. 선생님들은 휴식 권리도 없단 말인가? 왜 본인들 편하자고 본인들 편한 시간에 선생님한테 안부를 물어보는지, 선생님 입장에선 괴롭히는 것밖에 더하겠나. 선생님 한 명 존중 못해주면서 애들 인성을 기대하는 부모들이 어리석다고 생각이 되었다. 교사도 사람이다. 휴식시간이 필요하다. 충전시간이 있어야지 아이들에게 사랑으로 보답할 수 있다.

 

 ⑥ 왕따문제

 다들 담임하기를 기피한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다. 당연히 좋은 것도 있겠지만 왕따, 따돌림 문제는 심각하기 때문에 담임이 되지 않는 게 어쩌면 더 수월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책 중에 있었던, 어떤 아이에 관한 이야기- 반에서 한 아이를 모든 아이들이 다 싫어한다. 그러면 당연히 한 아이가 문제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선생님은 그 아이는 인사도 잘하고 밝고 전혀 문제가 없는 아이라 생각했었다. 그러면 뭐가 문제지?라고 나도 생각했다.

 어떤 사람은 그런다. 왕따인 애도 문제가 있고, 주동자도 문제가 있고.  또 어떤 사람은 주동자인 애가 나쁘다고 한다.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만약에 AB 하고 싸웠다. 이것은 둘만의 문제이지 않는가? 그러면 둘이서만 서로 간에 감정이 좋지 않은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B가 너무 싫은 나머지 A가 보는 친구마다 B에 대해 험담을 하고 다닌다. BA에 대해 아무 말도 없었고 그냥 A에 대해 안좋은 감정만 있을 뿐이다. A가 그리 열심히 B에 대한 안좋은 유언비어를 퍼트리고 다닌 결과, B는 결국 왕따가 되었다. 하지만 그 누구의 도움의 손길도 받지 못했다.

 그렇다면? B에 대해 잘못이 있는가? 그 정답은 B를 왕따로 만든 A도 알고 있는 것일 거다. '왕따'는 있을 리가 없다. 처음부터 모든 사람이 한 명만 집중 공격하고 싫어할 리는 없단 것이다.

 결국엔 그런 것들이 '왕따'를 만들게 되었고, 그걸 지켜보는, 중재자인 입장의 담임은 힘들 뿐이다. 내가 담임이었다면?라고 생각을 했다. 어떤 선택을 내리든지 간에 본인 몫이고 본인 생각이다. 정말 힘든 중재겠지만 나 같으면.. 정황을 열심히 알아본 뒤, 피해자의 편에 설 것이다.

 

선생님 말씀

 대한민국인이라면 어렸을 때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던 말! '학교 가면 선생님 말씀 잘 들어라~'라는 가족의 당부. 현재도 배우는 학생의 입장이지만 난 다른 건 몰라도 선생님이 싫어하는 말이라던가, 행동은 절대로 안 하려고 노력했었다. 선생님 말씀을 잘 듣는 것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당연히 해야 되는 거 아닌가? 어른의 말이다. 나보다 오래 살았고, 경험도 훨씬 많으신. 그런 분의 말씀을 잘 들어서 나쁠 건 하나도 없고 오히려 뼈가 되고 살이 된다.

 난 아직도 중학생인 것 같은데 나보다 10살 이상 어린애들이 중학생이고 고등학생이다. 하지만 시대가 바뀌어서 그런지 너무나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내가 나온 중학교는 여중이었는데, 교복이 항상 무릎 밑이었으며 머리는 귀밑 3센치였다. 묶어서는 7센티까지 가능했다. 좌측통행을 고수해야 했으며 지각이나 교칙을 위반하면 운동장 10바퀴를 돌아야 했다. 

 교칙은 운동화는 무조건 검정/흰색을 신어야 하며 구두는 검은색인데 장식이 하나도 없는 민무늬 구두고 굽도 3센티까지다. 가방 또한 검정/흰색만 고수하였고 머리핀도 검은색만이 허용됐고 리본이나 이런 것은 교칙 위반이었다. 교복도 절대적으로 줄여서는 안되며 추운 날에 교실에서 떡볶이 코트도 벗고 교복만 입은 채 여야 했다. 화장은 절대 안 했으며 발라도 썬크림이 다였다. 교칙 위반할 시 옐로카드로 벌점을 매기며, 3장이 될 때는 레드카드가 되어서 평가점수가 깎였다. 물론 선행을 하면 그린카드를 주었다. 슬리퍼 신고 건물 외를 밟아도 안되었다.

 난 이렇게 중학시절을 보냈는데, 현재 애들은 만약 이렇게 한다면 당장 학교 그날로 자퇴 할 수도 있다고 웃으며 생각한다. 학교가 보수적이었지만 난 만족하며 살았다. 교칙은 엄격했지만 그 시절이 좋았다. 현재도 보수적이어서 그런지 그다지 유행에 민감하지도 않게 내 개성대로 산다. 현재도 대학원생이지만 교수님이 강의하실 때 교수님만 바라보며 집중한다. 모자도 안 쓴다. 군것질도 안한다.(다른 선생님들은 한다) 그것이 강의자에 대한 존중이자 예의라고 생각한다. 나도 강의하면 졸고 있는 학습자, 핸드폰 하는 학습자, 서로 얘기하는 학습자가 훤히 다 보인다. 하지만 그중에 일찍 오고, 앞에 앉아서 집중 똑바로 하고 내가 묻는 것에 또박또박 답을 하는 학습자 보면 예뻐죽겠다. 나 또한 강의자의 입장으로서 이렇게 느끼기에, 내가 교육을 받을 때면 최대한 선생님이 신경 안쓰게, 선생님께 피해 안 가게끔 열심히 수업을 받는다.

 

원하는 선생님 기준

 224쪽을 참조하면 원하는 선생님이 너무 많다. 선생님은 만능 엔터테이너라도 되는 것일까. 요새는 선생님과 학생들 간의 교류가 우리때 보다 더 많아 보이긴 한다. 하지만 우리 때는 먹을 것 많이 사주는 선생님이 최고기는 했었다. 학기 초에 우리 반의 전체 평균이 어떤지를 몰랐을 때, 담임선생님은 이번에 중간고사에서 전교에서 우리 반이 1등 하면 피자를 쏘겠다고 하셨다. 솔직히 우리도 자신이 없었기에 일단 알겠다고 대답을 했다. 결과는. 1등이었다. 알고 봤더니 전교에서 내로라하는 아이들이 우리 반에 많이 몰려있던 결과였다. 선생님도 기쁘게 웃으시며 피자를 쏘셨다. 그러다가 2학기 중간까지 1등을 했다. 선생님이 그러셨다. '너희들이 하도 1등만 해서 내 지갑이 남아나질 않네 이제 그만 1등 좀 해라' 웃으며 얘기하셨다. 아마도 농담이시겠지?라고 생각한 우리들이었다.

 재밌었던 때였다. 학부모들, 학생들은 선생님에게 원하는 게 많아 보인다. 선생님은 한 명인데, 모두를 상대하려니 버겁기도, 힘들기도 하겠다는 생각. 하지만 본인 반을 맡은 이상 학생 한 명씩 잘 케어하며 절대로 무슨 일이 있어도 학생을 포기하지 않으시는 선생님들. 그런 선생님의 마음을 다들 알아주었으면 한다... 최소 선생님의 개인생활은 존중해주어야 하지 않을까.

 

 

 쓰다보니 스크랩 압박을 탄생하게 했다. 책 한 권에 옛날 일까지 끌어내며 그 시절 학교 다녔을 때와, 담임선생님, 모든 선생님, 친구들을 떠올렸다. 행복한 시간이었다.

 출판의 제약, 작가의 제약이 없는 요즘 같은 시대. 책 판매 부수를 찍기 위해 열을 올리는 것과 달리 최선경 선생님은 솔직한 본인의 심정을 고백하며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글을 쓰셨다. 진정한 지도자의 모습인 듯하다.

 책을 읽는 내내 재밌다는 느낌을 받았으며, 예전을 회상하며 깊은 추억에 잠기게 해준 최선경 선생님께 감사드린다. 이 감사를 서평으로 보답 드리고 싶어 나름 열심히 썼는데 선생님께 잘 전달이 되었으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최 선생님, 최 선생님의 글을 읽고 펜이 되었습니다. 저는 현재 교육대학원 한국어교육 석사학위를 밟고 있는 학생인데, 여러 나라에서 외국인 학습자에게 한국어교육 및 한국 역사/문화, 한국에 모든 것에 대해 교육을 하고 싶은 나름의 꿈을 가지며 공부하고 있습니다. 선생님의 책을 읽고,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으며 선생님의 직업에 대한 사명감으로 저 또한 그러고 싶다고 본받았습니다.

 

 선생님의 책을 읽게 되어 정말 행복했고, 영원히 책을 간직한 채 항상 선생님을 응원하며 살아갈 것입니다. 선생님의 하시는 모든 일에 꽃길만 가득하시길 바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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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 콜링 100일 묵상집 - 오늘, 일터에서 하나님을 만난다 직장인을 위한 콜링 북 시리즈 5
원용일 지음 / 브니엘출판사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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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임이 아님을 밝히며, 종교가 없는 입장에서 책을 읽었으며, 서평을 쓰게 되었다.

아무런 배경 지식이 없던 터라 어떤 것이 그르고 옳은 것인지 나 역시 알길은 없다. 막막한 심정으로 읽었으며 서평을 쓰는 입장인데, 허나 이 또한 여러 가지 관점에서 보는 것이어서 나름 괜찮은 서평을 쓸 수도 있다는 근자감이 들었다.

단순한 생각을 나열해보자면.

책 크기는 여성이 한 손에 잡을 만한 아담한 크기며, 가벼우며, 적당히 두꺼워 읽기 편했다. 또한, 하느님의 말씀을 옮겨 적은 글도 드문드문 보이고, 교리를 익히는 것도 많이 보인다. 하지만 그 교리를 알 턱이 없는 비종교인 입장에서는 약간의 이해성은 결여되나 정말 다행이게도, 한 단락, 한 페이지씩 짧게 끊어지는 토막 단위의 글과 밑 장에 쓰여있는 '일하는 사람의 기도' 덕분에 자연스레 이해가 되어 좋았다.

그중에서 내가 꼽았던 문구를 나열해보며 본인만의 생각을 써보겠다.

 

 

소명_PART. 1 일의 소명을 세상 속에서 구원하라

 

- p.10 [001] 일을 통해 이루는 소명

"하나님께서 제게 맡기신 일의 소명" / "인생의 비전

어디까지나 직장인의 입장에서 생각해봤다. 그래, 지금 내가 하는 일도 하늘에서 정해진 운명적인 일이야. 물론 이 일을 하기까지 내가 살아온 삶에 대해 연관성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현재 나는 이일을 선택하게 되었으니 앞으로 잘 해 나가야돼. 그래야지 인생의 비전이 생기는 거야. 비전이 있는 것은 목적이 있는 것과 동일시 돼. 나는 하늘에서 인도해주시니 잘 할 수 있을 거야.

 

- p.16 [004] 세상의 고민에 집중해라!

"세상의 고민을 피하지 않겠습니다

요새 고민이 유행인 듯하다. <고민이 고민입니다>라는 서적도 있고, 고민하고 살면 사람이 스트레스받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말인가. 고민이 없다면 그것도 고민 아니겠는가? 만사 천하태평한 것을 싫어하는 사람은 당연 없겠지만, 고민이 있으면 본인이 생각을 하며, 어떤 방식으로든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본인을 찾게 된다. 그렇다. 세상의 고민을 피하지 말라. 이것 또한 하느님이 정해주신 운명일 터.

 

 

균형_PART. 4 일과 여가, 교회-가정-직장의 조화

 

- p.89 [037] 스트레스를 극복하게 하소서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

이 세상을 살아갈 때는 누구나 늘 스트레스를 겪는 게 당연하다. 그렇기 때문에 스트레스가 없다고 믿는 사람도, 스트레스를 인정하고 바람직한 방법으로 해소하는 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흔히들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 자극적인 것, 위협적인 것을 원하며 뛰어드는 경향이 있다. 예수를 믿는다고 해서 스트레스가 없는 것은 아니니, 최대한 본인이 추구할 수 있는, 건전한 의식을 가지고 건강한 마음으로 삶을 영위하는데 집중해야 한다.

 

- p.94 [040] 어떤 취미를 가지고 있는가?

"최선을 다하는 삶

앞서 스트레스랑 동률 시 되는 주제다. 취미생활은 사치일까? 그러기엔, 사치라는 뜻부터 이해해야 한다. 사치라는 것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다. 상대적이다. 그리고 대부분 경제력에 의해 결정되지만 혹 그러지 않은 경우도 있다. 내 취미를 말하겠다. 나는 강의와 대학원의 일 때문에 항상 바삐 살았으며 자율적인 나만의 시간을 갖기는 힘들었었다. 대학원 지난 학기 끝나고 나서 새로운 취미가 생겼는데, 내가 읽고 싶은 책을 마음껏 읽고 서평을 쓰는 서평단이 되었다. 내가 봐도 좋은 취미인데, 다른 사람이 보면 오죽하겠는가? 정말 좋은 취미다. 어떤 사람은 골프를, 어떤 사람은 낚시를, 어떤 사람은 바둑을, 어떤 사람은 드라이브를, 어떤 사람은 요리를 등등... 사람마다 특색도 다르고 취미도 다르다. 나의 또 다른 취미는 영화 감상이다. 최신 영화를 보거나, 다운을 받아 보거나 둘 다 한다. 솔직히 영화에 대한 취미는 돈이 아깝지 않다. 장면마다 시각적인 효과도 있으며 지루하지도 않고 게다가 사람들과 영화로 인한 소통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이 두 가지 취미에 대해 정말 만족한다. 앞서 말했듯이 취미는 상대적이다. 사치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스트레스를 덜어주고 나도 만족할 수 있기에 그런 취미 정도는 하느님도 이해해주시지 않을까?

 

 

사명_PART. 10 일터를 천국으로 바꾸는 일터사역자

 

- p.208 [091] 당신에게 '매력' 이 있는가?

"일터에서 사람들의 칭찬을 받아야 한다

매력이란 무엇일까? 나는 거기에 대해선 물음표를 남기고 싶다. 사람을 끌어당기는 힘? 이런 것일까?

직장은 누구에게나 힘든 곳이다. 단체생활이기 때문에 본인의 주장을 펼치지 못한다. 그러면 일만 묵묵하게 하면 될까? 그러면 누군가 알아주지 않을까? 그것도 아니라고 본다. 나 또한 직장생활을 여러 해봤다. 일단 직장에 가면 가면을 쓴 채 출근해야 한다. 본인을 숨긴 채, 내가 ''가 아닌 채 말이다. 굉장히 답답함을 느낀다. 그렇다면 매력은? 그런 걸 발산할, 혹은 느낄 여유라도 있는가? 그런 것도 없다. 직장은 그저 먹고살기 위해 다닐 뿐, 이도 저도 아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여기에선 이런 구절이 있다. "일터에서 자신 있고 바람직한 모습으로 일하겠습니다. 사람들이 저를 부러워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사람들에게 매력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인도해주소서." 정말 좋은 구절이다. 당연히 내가 열심히 한다고 해서 알아주는 이는 1도 없을 것이다. 그런 드라마틱 한 내용을 기대하며 살진 말자. 하지만, 저 구절을 인용해서 살면 본인이 행복해질 것이다. 자신 있게, 바람직하게 일하면 겉으론 내색 안 하지만 마음속으로 부러워하는 사람은 생길 것이고, 그 사람을 본받아야겠다고 생각하는 사람 또한 생길 것이다. 다른 사람에게 좋은 귀감이 될 수 있는 매력적인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자.

 

- p.220 [097] 사람을 살리는 기쁨

"부득불 할 일

해마다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는다. 강물에 뛰어든 소년을 구하려다 오히려 목숨을 잃은 사고, 불이 난 집에 혼자 사시는 치매 걸린 아비를 구하려다 둘 다 세상을 떠난 사고 등등 본인이 의도치 않은 사고인데 게다가 구하려는 사람까지 죽게 되면 이거야말로 아비규환이 아닐 수 없다.

부득불不得不 한마디로 어쩔 수 없다이다. 내키지 않는 데도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것이다. 혹은 본인도 모르게 라던가.

세상에는 내가 원치 않아도, 하고 싶지 않아도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일이 무수히 많다. 직장인들은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이 구절에서 내포되는 정확한 뜻은 인지하지 못하겠으나 내 생각은 그렇다. 그래, 내가 좀 손해 보면 어때. 그래, 나한테는 다음에도 기회가 있을 거야, 언젠간 내 노력이 헛되이 되지 않을 날이 올 거야. 아까울 때도 있고, 섭섭할 때도 있다. 소방관들은 소방관이 되고 싶어 소방관이 된 사람도 있고, 그저 사람을 구하는 것이 멋있고 용감해 보여서, 그 모습이 너무 '매력'적이라 되고 싶은 사람도 있고 또 그 밖에 이유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위험한 직업을 그들은 자처한 것이다. 하지만 본인의 땀방울로, 본인의 목숨으로 사람을 구하는 직업은 정말 멋진 직업이다. 그들은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비록 어쩔 수 없는 사건에 휩쓸려도 본인들은 그 사건을 멋지게 헤치며 임무를 완수할 것이다. 그것 또한 하늘에서 내려주신 하나의 사명 아닐까.

 

비종교인인 나는 이러한 식으로 생각을 했고, 나열을 하게 되었다. 솔직히 내 서평이 도움이 되리 라고는 그것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비종교인인 내가 이 책을 나름 재밌게 읽었다면 모든 사람들도 그러하리라 생각한다.

 

책은 북코스모스에서 선물을 주셨기에 덕분에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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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드 인 강남
주원규 지음 / 네오픽션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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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케팅엔 문외한이지만 제목 하나 기똥차구나.라고 생각했다. 본론으로 들어가자면, 진짜 처음에는 장르가 뭐지? 추리소설인가? 범죄심리학? 드라마? 이것저것 생각했었다. 어느 정도 보니 알겠다. ~ 다 틀렸구나.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범인이 누군가' 가 아니라, '강남' 그 자체구나.

그래, 추리도 아니었어. 솔직히 범인은 찾기 쉬웠다. 추리소설도 좋아하고, 명탐정 코난을 봐서 그런가? 어차피 '추리 소설' 같은 내용은 범인은 80% 이상이 본인이 생각하는 바로 그 사람이다. 그래. 이게 문제가 아니다.

그냥 강남이라는 것에 대해 작가는 말하고 싶은 것이다. 사회에 호소하고 싶은 것이다. '까발리고 싶은 것이다'라는 표현이 맞는진 모르겠지만, 내가 보기엔 그렇다.

 

실물을 보기 전까지는, 좀 두꺼운 책이겠지?라며 지레짐작했는데, 생각 외로 많이 얇은 페이지에 마음의 부담이 덜했다. 왜냐? 중요한 부분을 놓칠까 봐.

숨죽이며 봤다. 다른 건 몰라도 정말 충격적이었던 부분은, '치매를 앓고 있는 아버지의 취미 및 변하지 않는 그것'이다. 따로 언급은 안 하겠다.

 

책을 보며 이상하게... 내가 생각해도 이상하지만 왜 난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이 생각났을까? 이 또한 정말 재밌게 본 소설이었다. 공통점이 있다. 너무 쉽게 죽이네?라는 말이 가장 적당할 듯 싶다. 읽었던 사람은 공감하는 부분이기는 할 것이다. 알다시피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은 계속 누군가 죽으므로 내용이 전개된다. 당연히 거기에 코믹 요소를 담고 있기에 재밌는 것이지, 실제적으로 일어났으면 그야말로 대혼란, 끔찍한 광경이 연출될 것이다. <메이드 인 강남> ? 너무 많은 사람이 이미 죽어있었다. 그리고 계속 죽는다. ... 사람 목숨이 장난인가? 씁쓸하기 그지없다.

 

당연히 현실적인 내용이다. 일어날법하다. 소설은 허구적인 얘기를 다룬 내용이다. 작가의 상상력이 가미되어 있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사실을 토대로 썼다면? 상상력보단 현실이고, 이미 현실인 것이 수면에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라 설정한 뒤 지은 것이다.

 

내 얘기를 해보겠다. 학교 다닐 때는 강남에서도 살아봤고, 학기 때는 주말을 틈타 강남으로 학원을 다녔으며, 방학 때도 강남에서 학원을 다녔다. 나 역시 강남이 어떻게 보면 익숙하다. 난 내 친구들과 달리 비교적 도시생활을 많이 했었고 어렸을 때도 도시에서 살았다. 그래서 그런지는 모르겠으나 서울을 좋아하는 편도 아니고 특히 강남을 싫어하는 축에 속한다. 그냥 복잡한 것도 싫고, 사무적인 느낌도 싫고 그렇게 숨쉬기도 힘들게 바삐 오가는 사람들 속에 있는 것도 질색이다. 현재는 마냥 시골도 아닌, 그렇다고 도시도 아닌 이도 저도 아닌 중간지점쯤에 있는 공기 좋은 곳에서 살고 있는데, 정말 조용하고 상쾌하며 매일같이 부드러운 바람을 맞이하며 여유롭게 살고 있다. 이런 내 생활과 강남의 생활을 비교했을 때, 현재의 내 삶을 정말 존중하며, 만족해하는 나를 볼 수 있다. 나만이 느끼는 감정일 수도 있는데, 항상 강남에만 가면, 서울에만 가면 외로운 느낌을 받는다. 친구와 가도, 부모님과 동반해도 그런 느낌은 이상하게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솔직히 외국인이 한국에 오면 서울 주요 지역부터 찾는데, 그 이유를 모르겠다. 화려해 보여서? 좋아 보여서? 그냥 개인적인 견해일 뿐이다.

 

강남하면 뭐가 떠오르겠나. 한국인들에겐 부자동네, 사교육 열풍, 엄마 치맛바람, 스카이, 번화, 발달, 명품 그리고 돈. . ...

 

외국인들에겐? 이건 한국인들에게도 떠오르는 거지만 일단, 싸이의 강남스타일, 그리고? 이건 외국인들에게 물어봐야 할 것 같다.

 

전 세계인들이 돈에 살고 돈에 죽는다지만 한국으로 치면 특히나 강남은 더 그렇다. 돈에 영웅 탄생하고 돈에 역적이 돼버리는 아주 무서운 땅이다. 그리고 강남에 태어난 이상 민사고는 물론이고 좋은 고등학교에, 일명 스카이라 부르는 대학까지. 당연한 절차라고 해야 하나? 시도 아닌 서울시 안의 구일 뿐인데 대한민국의 노른자인 것만은 확실하다.

 

책에서의 캐릭터는 특징이 다들 없다. 소개가 없으니까?는 아닐 것이다. 내가 말하는 특징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뜻의 특징이 아니라, 감정이 없어 보인다는 것이다. 내색도 안 한다. 생각을 모르겠다. 특히나 민규는 가장 그렇다. 왜 사는걸까?라고 생각되기까지... 유명한 로펌의 7년 차 변호사? 그게 다 무슨 소용인가. 매일 기계처럼 일하는 그냥 기계에 불과한 인조인간과 다름이 없어 보이는데.

 

영화에서 흔히 다루는 내용을 가지고 더 구성 있게 한마디로 맛깔나게 꾸며졌다.

 

보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난 보통 이런 한마디로 혼탁하게 물들어버린 색을 가진 내용에 대해 살면서 궁금하지도, 알고 싶지도 않았고 오직 예쁘고 싱그러우며 도덕적인 내용만을 보고 기억하며 자랐다. 그렇기 때문에 성인이 되어서 저런 내가 싫어하는 부류의 것들에 대해 알긴 하나, 현재보다 더 알고 싶지도 않고, 또한 그것을 가지고 심도 있게 다루고 싶지도 않다.

 

그러면 괜히 나까지 그 혼탁한 물에 발을 담굴 것 같은, 한마디로 생각하기도 싫은 내용이니까 말이다.

 

영화 <강남1970>을 본 적이 있다. 영화관까지 가서 봤는데, 정말 '그런 내용' 일 줄 모르고 본 것이어서 후회했었다. 그렇다. 나의 비주류인 내용이었다. 그 허허벌판인 한마디로 풀때기만 있던 땅이 노른자로 급부상하자 너도나도 서로 달려들고 때리고 죽고 한마디로 난장판인 내용이었다. 별로 연관은 안되지만 인간의 탐욕은 어디까지인가. 왜 이리 잔인한가?에 대한 사색을 한 적이 있다. 소설을 보는 내내 떠오르더라.

 

또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난 항상 다른 사람보다 늦는 게 한가지 있다. 드라마 유행. 사람들에게 인기 있는 드라마는 안보며 인기 없는 드라마만 봐서 할 얘기가 없다. 또한 인기 있었'' 드라마는 어쩔 때는 그냥 할 일 없을 때 드라마 종영하고 나서야 보게 된다. 종영한지 얼마 안 된 'SKY 캐슬'. . 정말 할 말 많다. 이것 또한 강남에서 벌어진 일 아닌가?

물론 소설은 재미있었다. 재미있었지만 더욱 기억에 나는 건 끝장에 있는 '작가의 말'이다. 당연히 SKY 캐슬을 언급하였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을 정도로 그런 생각이 간절하게 들었고, '강남의 잉여들의 좀비'라고 언급하시니 떠오른 게 있다면, 내 친구는 중국 북경에서 산다. 중국 사람인데, 본가는 안휘성에 있다. 대학을 졸업하고 북경에 있는 대학원에 가기 위해 대학원 재수까지 했다. 하지만 2년에 걸친 시험은 운이 따라주지 않았고, 난 이 아이가 안휘성에서 취직할 줄 알았는데, 북경에서 살게 된 것을 보고 축하는 해줬지만, 옳은 선택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북경은, 강남과 비슷하게 사람에게 냉대하고 차가운 도시다. 물론 난 이 아이의 기분을 다 헤아리지도 못하고, 나에게 말하지 않으면 이 아이가 무슨 일을 겪는지도 모른다. 그저 빨리 본가로 돌아가기만 바랄 뿐이다. '북경 잉여들의 좀비'라는 생각이 들었다. 북경에서 살면서 쥐꼬리만한 월급에 반은 본인 혼자 사는 것도 아닌 셰어하우스 같은 데에서 월급의 반 이상을 내고 숨죽여 살아간다. 끼니도 거르면서.

 

또한 중국은 '마이주' 라고 해서, 한국어로는 '개미족'이라고 하는데 대략 몇 년 전의 신조어다. 자잘한 개미들이 땅속에서 굴을 계속 파면서 수백 수천마리의 동무들과 같이 지낸다. 그런 이치다. 북경 같은 노른자 땅에서 월세 아끼려고 10평도 안되는 조그마한 집에서 다닥다닥 붙어서 10명이 넘게 지낸다. 서로 다 모르는 사람이다. 우리나라로 치면 노량진과 흡사하다. 물론 그것보다 더 열악한 것 같다. 거기서 뭐 하나? 그 역시 노량진과 같다. 시험에 합격하기 위해 위생도, 음식도 불량한 그런 속에서 외롭게 여러 사람들과 고군분투한다. 운에 맞기며, 또 물론 목적을 이루면 좋겠지만, 허황된 것도 한몫하는 듯하다. 언급한 것 또한 보이지 않는 강남의 현실이라 할 수 있다.

 

친구들은 강남이나, 뭐 하여튼 도시에 가는 거라면 사족을 못 쓴다. 그게 뭐가 좋다고.라며 나는 볼멘소리를 한다. 그냥 아직도 익숙지 않은 강남의 여운이 남아있다고 할까.

 

제목도, 내용도, 작가님의 생각도 모두 하나의 주제로 흘러간다. 이것은 바로 <메이드 인 강남>이다. 범인은 중요하지 않은, '강남'만 중요한 것이다.

 

다시 한번 강남, 강남을 떠난 한국 사회, 강남을 떠난 인간 사회 및 내면을 통찰하게 해주신 모든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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