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익숙한 길의 왼쪽 - 황선미 산문집
황선미 지음 / 창비 / 2019년 3월
평점 :

초등학교 때 내가 유일하게 알았던 출판사는 창비뿐이었다. 학교에서 한 달간 독서진흥을 하기 위해 독후감 대회를 열었었다. 엄청나게 많이 읽었던 책들의 출판사가 바로 창비였다. 성인이 되고, 창비를 다시 만나게 되었다. 그 사이 출판사는 엄청 많이 생겼다. 하지만 창비를 보면 어릴 때의 열심히 독후감을 썼던 내가 떠오른다.
'익숙한 길의 왼쪽' 솔직히 제목을 보고 서평에 지원했었다.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굉장히 와닿았다. 무엇인가가 나를 끌어당겼다. 고로 나는 읽게 되었다.
처음 파트를 읽었을 땐, 지어낸 얘기인 줄 알았다. 계속 읽어보니 작가의 실화였다. 나는 가끔 생각한다. 나의 이야기를 소설처럼 써 놓은 것도 재밌지 않을까?라는.
주로 '어머니'가 언급이 되었다. 어머니. 그 이름만 들어도 감정이 요동치는, 벌컥 울음이 쏟아져 버릴 것 같은 어머니. 나는 작가의 세대와 다른 세대에 태어났다. 외동이다. 집안에서 경쟁상대도 없었으며 모든 것이 내 뜻대로 였고 부모님은 항상 내가 먼저였다. 그렇지만 이것은 타인의 눈에 보이는 그저 외동이니까~라는 타이틀의 겉모습일 뿐이고 나도 나름대로 고충이 있다. 하물며 식구가 많은 집에서, 그것도 장녀로 태어난 고충이란 말하기도 힘들 정도겠지.
작가는 그러했다. 내가, 내 몸이 어머니의 유전자와 똑같은 것도 싫고, 나이 들수록 점점 어머니와 똑같아지는 목소리도 싫어했다. 당신이 되지 않기 위해 발버둥 치며 살았다.
마음이 아팠다. 작가의 마음을 다 헤아려 주는 것은 어렵다. 나는 단지 타인일 뿐이니까. 하지만, 만약 내가 작가를 잘 아는 친구라면, 오빠나 언니였다면, 그 시절 작가를 보듬어 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숭늉을 배달하는 일은 항상 장녀가 해야 했다. 무겁고 뜨거운데 조심히 긁어서 양푼에까지 담고 배달까지 해야 하는 어린 8살 소녀로서는 감당하기 힘든 매일 같은 노동이다. 계속해서 왜 본인이 해야 하는지도 의문이었고, 아마 죽을 때까지 이걸 해야 하지 않을까라고 한숨 섞이게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저 반항기가 들어 하기 싫음을 내비치며 발등에 쏟아버렸다. 나 걱정 좀 하라고.
어머니는 걱정하기는커녕 욕지거리를 하며 오히려 타박한다.
하-아. 한숨을 쉬었다. 내가 살던 시절이 아니지만 적나라하게 그려져서. 정말 그 한없이 어렸던 아이의 존재는 가족에게 대체 무어란 말인가. 라며 원망 섞인 마음을 내비치었다.
'틀림없이 내 인생의 마지막까지 함께해줄 나의 가장 낮은 몸'. 이 문구를 보고 울컥했다면 진심이다. 문득 나의 발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나도 운동을 했었다. 초등학생부터 중학생까지. 매일 같이.
중학생 때는 운동부 선수였다. 매일 잔디구장에서 , 햇빛을 쬐며 까맣게 타버린 나의 얼굴. 몸. 눈동자보다 더 까맣던 시절. 콤플렉스였지만 콤플렉스가 아니었다. 외모에 관심이 없어서였을까. 하지만 어울리지 않는다 쯤은 알고 있었다. 그래도 원망은 안했다. 긍정적인 편이었다.
한쪽 다리가 없는 소녀. 한쪽 다리를 잃었을 땐 얼마나 힘들고, 마음이 아팠을까. 그 가족들은?
'참 아름답다! 산다는 게 뭔지 잘 몰라도 살아 있음이 경이롭다는 걸 처음 느낀 날이었다'.
누구나 우울하다. 매일 같이 환하게 웃는 사람도 그 마음속 내면의 어둠은 있을 터. 하지만 살아야 한다. 나는 살고 있는 중이다.
친구 얘길 해보겠다.
중학생 때부터 알아온 친구는 장녀다. 밑으로 여동생 한 명, 남동생 한 명. 부모님은 이혼하셨고 새아버지가 들어왔다. 어릴 땐 그 친구의 가정사나, 집안사에 대해 전혀 묻지도 않았고, 굳이 묻질 않으니 친구도 꺼낸 적 없다. 난 어릴 때부터 개인 가정사에 묻는 것은 예의에 어긋난 일이라 생각하고 묻질 않았었다. 시간이 지나 친구가 결혼할 즈음. 본인 얘기를 스스럼 없이 하더라. 10년 넘게 묻지 않았던 나에게 말이다. 그러다가 문득 궁금한 것이 생겼다. '너는 장녀잖아. 혹시 장녀로서의 책임감은 있었니? 동생들을 챙겨준다거나, 네가 양보한다거나 흔히들 드라마 소재로 많이 나오는 것들 있잖아. 희생까진 아니지만 네가 손해 봐도 동생들 챙기는 그런 거 말이야' 친구는 대답했다. '나는 장녀여도 여태껏 그런 생각들을 하지 않고 살았어. 그냥 동생은 동생일 뿐이지 내가 챙겨줘야 한다는 그런 것도 없었지. 오히려 동생들이 날 도와준 적도 있어. 장녀로서의 역할은 안했 던것 같아'. 그렇구나. 장녀지만 장녀 역할은 한 번도 한적이 없다는 친구. 가족들과의 관계를 생각하면 그럴 만도 했었다. 단순히 외동으로 태어나서 호기심이었을 것이다.
엄마의 한 조각.
외할머니는 오래전에 돌아가셨다. 20년이 넘었다. 어릴 때 돌아가셨지만 다행히도 외할머니와의 추억을 아직도 간직하고 있다. 20년이 넘는 그전엔 어머니도 젊었었다. 40대 였었다. 하지만 지금은 어머니가 외할머니가 되어 있다. 어릴 땐 몰랐는데, 외할머니와 어머니의 얼굴이 겹쳐 보인다. 비슷하다. 난 우리 엄마가 좋다. 외할머니로도 보이고, 그냥 우리 엄마 얼굴로도 보여서.
외적인 것이라면 난 엄마를 닮지 않았다. 목소리도 닮지 않았다. 체질도 닮지 않았다. 대체 뭐가 닮은 걸까. 세심함이 닮았다, 생각이 깊은 것이 닮았다, 좋아하는 영화 장르가 비슷하다, 머리 굴리는 게 닮았다, 사람 말을 경청해주는 태도가 닮았다, 입맛이 비슷하다 그리고... 어쩔 때의 목소리도 닮았다. 엄마와의 나이 차이는 엄청 많이 난다. 나를 늦게 낳으셨으니까. 하지만 우리 엄마는 항상 젊다. 목소리가 30대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 다들 전화 목소리만 들으면 그렇게들 안다. 그냥 그러려니 한다. 나 또한 엄마의 한 조각이다.
책 속의 우체통 8마리의 새끼새는 죽었다. 그 새끼 새가 나와 연은 없을지라도 생명이 죽는 것은 당연히 슬프다. 읽다 보니 작가와 나의 경험에 의한 비슷한 점이 많다는 것을 느꼈다.
현재 나는 중 시골에 산다. 수도권도 아닌 완전 깡촌도 아닌 그렇다고 중간도 아니라 시골인데 지하철이 있는. 그냥 내가 중 시골이라 이름 붙였다. 작가는 평택에서 계속 거주하였다. 난 평택에서 14년간 거주하였다. (중간에 유학 기간과 서울에서 지냈던 것을 빼면 줄어들지만 주소 거주지는 14년이라 하겠다) 작년 찌는듯한 더위에 탄복하며 6월에 현재 주소로 이사 왔다. 이사하기 전까지의 얘기를 해본다면, 우리는 이 중 시골로 다시 돌아오게 되었다. 15년 만에 금의환향했다. 15년 전까진 그냥 깡촌이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더니 15년이나 지나서인지 효력을 본 듯하다. 세상에. 브랜드 마트와 영화관이 생기다니. 놀라운 발전이다. 아버지는 매일같이 <나는 자연인이다>라는 프로그램을 즐겨 보시더니 2월부턴가. 갑자기 집을 지으셨다. 보일러실도 만들었다. 이사 오기 전부터 나는 내방을 보기 위해 들락거렸다. 가끔가다 샤워도 하였다. 어느 날도 왔었는데, 아버지가 보일러실에서 새 한 마리가 죽어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왜 그런가 싶었더니 저번에 보일러실을 열고 갔었는데, 따듯하니 보일러실에 둥지를 트고 어미 새가 알을 품었나 보다. 헌데 우리는 그런 줄도 모르고 보일러실 문을 잠그고 다시 오니 먹이를 구하러 나가지 못한 어미새는 보일러실에서 죽은 채 발견되었다. 너무나 안타까웠다. 그 어미 새의 알도 대략 5개쯤 발견하였는데, 우리는 어찌할 방법이 없어 자연으로 보냈다. 집이 숲에 위치한 터라 공기도 맑아 우리가 품어주거나 보듬어주진 못하지만 만약 살아남는 새끼들이 있다면 살아남을 수가 있다고 생각해서였다. 작가의 우체통 8마리 새끼 새 이야기를 읽으니 떠올랐었다.
끝으로.
진정한 작가의 글을 읽었다고 느낄 수 있었다. 읽는 내내 문학작품이라는 게 진정 무엇인지 깨달았다. 표현 한마디, 단어의 쓰임, 명언 같은 구절에 대해 감명 깊게 봤다. 요새는 책 시장이라는 표현이 옳다고 본다. 너무나 많은 잡학이 깔려져 있고 너무나 많은 작가가 있으며 너무나 많은 출판사가 있다. 도대체 어떤 것을 읽어야 마음의 양식을 쌓는지, 나에게 도움이 되는지 모르는 현시점이다.
오랜만에 신의 소금과 같은 존재가치가 있는 책을 만난 듯하다. 읽으면서 나는 아직 미숙하고 부족한 점이 많다는 것을 느꼈다. 무조건 책의 판매량만을 늘리려 하고, 문학의 가치는 존중하지 않은 채 베스트셀러만 만들어내는 이 시대에서 필요한 존재의 글이라고 본다.
그런 작가님의 글 솜씨에 탄복하였습니다. 작가라면? 황선미처럼.
개인적인 견해지만 표지도 너무 마음에 든다. (정말 예쁘다!)
이런 훌륭한 작품을 먼저 읽게 선물해주신 창비출판사에게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앞으로도 작가님과 창비출판사의 행복을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