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리짓 존스의 일기 브리짓 존스 시리즈
헬렌 필딩 지음, 임지현 옮김 / 문학사상사 / 199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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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살인적인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요즘.
도서관 한켠에서 혼자 킥킥거리며 책을 읽는 기분이 무척이나 좋다. 에어컨 바람만큼이나 시원하게 짜증을 날려보낼 수 있는 책으로 이만한 책을 찾기가 쉽지 않으리란 생각이 든다.

사실 서른이 되기엔 아직 젊다는 이유로 브리짓을 조금은 안타까운 시선으로 바라보던 나도 8월 '참을 수 없는 실연의 가벼운 후유증'은 마치 내 이야기가 되는양 느껴졌다.
바로 8월이 시작되는 어제(8월은 실연의 계절인가?) 연락두절을 선고받은 나는 브리짓이 말한 실연의 아픔으로 혼자 끙끙대던 참이었다.

'실연이란 것이 실제의 상실감보다는 자아나 상처받은 자존심과 훨씬 더 많은 관계가 있다는 병적이고 시니컬한 감상'이라는 브릿지처럼 혼자 웃다가 울다가 고개를 파묻고 잠이 드는 나의 모습이란... 참 '브리짓꼴이다.'

하는 일마다 짜증으로 점철되는 우리의 일상에 유쾌함으로 다가오는 책.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으며 삶에 다시금 의욕을 갖게 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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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림의 시인을 찾아서 - MBC 느낌표 선정도서
신경림 지음 / 우리교육 / 199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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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읽는 것은 고등학교 때가 절정(?)이다. 읽고 싶어 읽었겠는가? 읽기 싫어도 문제를 풀기 위해 꼼꼼히 떪은 감을 먹듯 조심스럽게 읽어야했다. 한행 한행 선생님의 설명을 들으며 비유된 모든 것들을 머릿속에 집어넣으려 무던히도 애를 썼다. 그리고 고민하는 시인의 표정을 지어보이며 이런 말도 해본다. '아.... 시란 참으로 어렵구나.(솔직한 표현- 시문제는 참으로 풀기 어렵구나.)'

고등학교를 졸업한지 꽤 된 지금 다시 한번 한국의 명시들과 만나게 되었다. '신경림의 시인을 찾아서'를 읽은 첫 느낌은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와 비슷하였다. 단지 전자가 후자보다 느낌이 덜하다. 똑같이 현대를 사는 우리들에게 교과서 외에는 접할 기회가 없는 시랑 문화재를 소재를 하였는데 그 방법에서의 유사점이 직접 그 모든 곳을 돌아다녔다는 것이다. 또한 그 목적이 우리에게 조금이나마 애정을 갖게 하려는 것임을 쉽게 알 수 있다.

물론 차이점은 신경림이 찾은 곳에 시인 대신 시비만이 서 있고, 그 시라는 것이 탑이나 불상처럼 그곳에서만 직접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나의 문화문화유산답사기'를 읽은 사람들은 이 책을 끼고 정신없이 남도로, 경주로 달려갔지만 '신경림의 시인을 찾아서'는 달려갈 곳이 없다. 아니 달려갈 대상이 다르다. 우리가 이 책을 끼고 달려가야 할 곳은 신경림 시인이 접하였던 그 넓고도 풍부한 우리나라의 시인들의 시세계이다.

각각의 시인마다 3,4편의 대표적인 시들이 소개되어 있어, 시인의 개성을 느낄 수 있지만, 시인의 시세계에 대한 간략한 설명만으로는 무언가 부족하다. 그래서 신경림 시인의 긍정적이며 조곤조곤한 설명에도 왠지 허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가 펼쳐놓은 시세계는 넓지만 얇다. 풍덩 빠지기에는 주춤주춤, 그냥 그가 보여준 것에만 만족하고 시의 바다에 빠지기엔 망설여진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가 강력한 흡인력을 가지고 사람들을 문화재의 바다로 풍덩풍덩 빠뜨린 것과 대조되는 부분이다.

느낌표에 소개되는 책들이 진지하거나 강력한 매력은 갖추지 못하되 쉽게 평이하게 읽힌다는 공통점이 있다.쉽게, 편안한 마음으로 읽기를 원한다면.... 얼마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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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수
밀란 쿤데라 지음, 박성창 옮김 / 민음사 / 200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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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의 제목을 통해 떠올리게 되는 시가 있다. 정지용의 '향수' 어렴풋한 고향의 이미지는 늘 우리를 충분히 감상적으로 만들며 내가 돌아가야만 하는 회귀의 본능을 불러일으킨다. 그곳에서라면,,,, 나는 충분히 행복할 것이다... 라는... 생각은 착각이라는 사실을 이 책을 통해 깨닫게 된다.

체코가 공산주의화 된 후 망명길에 올랐던 이레나와 조제프가 고향 보헤미아에 향수를 갖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어쩔 수 없이 망명길에 올라야 했던 슬픔과 고통, 고향을 떠나 새로운 곳에 정착해야 하는 막막함.... 그러나 그들은 각각 프랑스와 덴마크에서 정착했으며 그곳이 그들의 실제적인 삶이 이루어진다. 그리고, 20년이 지난 후 공산주의 시대가 막을 내리면서 그들은 고향에 돌아가지만 결국 남겨진 것은 고향에 대한 환상. 결코 공유될 수 없는 20년간의 시간적 공백만을 느낀다.

저자가 소설의 서두에서 언급한 율리시스의 이야기는 이 소설의 전체적인 모티브가 된다. 율리시스가 그의 고향 이타카로 돌아가기까지 20년의 세월이 걸렸으며 그를 사랑하여 그를 볼모로 잡은 칼립소와 고향에서 그를 기다리는 페넬로페.. 고향에 돌아가기까지 20년의 세월이 걸렸다는 것과 고향에서 짧은 삶과 타향에서의 길었던 삶(혹은 실제적인 삶) 다시 귀향했을 때 20년의 공백이 가져다주는 참혹한 괴리감 등...

고향, 귀향, 추억, 옛 사랑... 조금씩 나이가 들면서 이 단어들이 주는 아련한 감성을 느끼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이 모든 감정은 스스로 그렇게 느끼고자 할 뿐 실제하는 감정이 아닌듯 하다. 내가 떠난 고향, 떠난 그 이후의 변화는 낯설고 생경하다. 그래서 귀향에서 느끼는 감정은 서운함. 고향은 그저 기억 속에서 존재한다. 그리고 고향에서의 추억, 아니 과거의 모든 추억들... 단편적인 이미지들일 뿐인 추억이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가? 흔히 젊은이는 꿈을 먹고 살며 노인은 추억을 먹고 산다고 한다. 그래서 나는 그 노후를 대비하여 일기를 쓰고, 나의 흔적들을 남기며 살아갔다. 그런데, 책 속의 조제프는 20년 전 자신의 일기를 읽은 후 일기장을 잘게잘게 찢어버렸던 것처럼 분명히 존재했던 조무래기와 자신이 동일한 존재라는 사실에 분개한다.

똑같은 필체를 가지고 시간적 차이를 두고 존재하는 하나이지만 유사성이 없는 두 존재.
세상에.... 난 일기를 통해 나의 모습을 더욱 깊이 느끼고 보존하고 있다고 여겼는데 작가의 이러한 서술에 충격을 받았다. 난 결국 순간적으로 존재하는 나의 편린들만을 소중한 보물인양 보관하고 있는 것일까? 아무래도 나는 또다른 그의 책들을 읽어봐야겠다.
어떤 해답을 찾을 수 있기를...

ps. 이전에 그의 책 '정체성'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읽어보았지만 전혀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 때에는 역시 진지함을 가지고 읽었으나 모든 기억은 강물에 실려 떠내려가듯 깨끗히 지워져있다. 맙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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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 깊은 이성 친구 (작은책)
장 자끄 상뻬 글 그림,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0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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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자크 상뻬의 책을 좋아하기 때문에 무턱대고 사서 읽은 책. 그런데 아직도 잘 모르겠다. 왜 제목이 '속 깊은 이성친구일까?' 궁금증을 풀 길이 없는 이유는 이 책이 줄거리를 가진 책이 아니며 한 페이지를 미처 채우지 못한 글과 한 페이지의 그림이 단편적으로 나오기 때문이다. 우리 나라 정서와는 사뭇 다른 내용 때문에 가끔씩은 고개를 갸우뚱한다. 그러나 가끔씩은 너무나 깊은 인상을 받는 글과 그림들로 인해 하루종일 그 인상에서 헤어나오질 못한다.(나는 네명의 남자와 세명의 여자가 마주오는 그림과 바람부는 창가에 서 있는 연인들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상뻬가 추구하는 소묘와 그에 너무나도 적절히 부응하는 짧고도 의미심장한 말들. 상뻬의 책을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이 책 역시 기쁜 마음으로 읽어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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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낌없이 주는 나무 생각하는 숲 1
셸 실버스타인 지음 / 시공주니어 / 200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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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내 '아낌없이 주는 나무'는 누구에게나 감동을 선사하는 좋은 책 중의 좋은 책임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아낌없이 주는 나무'를 '벨도 없는 나무'라고 평한 친구가 있었으니 그 친구 왈. '나도 처음에 감동적으로 읽었어. 어쩜 이렇게 희생적일수가.. 하지만 다음에 읽어보니까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 이런 벨도 없는 나무 같으니라고...'

천사같이 순진한 얼굴에 어린아이같은 목소리를 가진 그 친구의 이 서평에 나는 그야말로 충격을 받았지만 다시금 이 책을 읽으면서 그 친구의 말을 동감하였다. 주고 또 주고, 진정 아낌없이 주는 나무는 우리의 눈에 감동적으로 보이는데 실상 감동을 받았다는 것은 현실에서 이와 같이 아낌없는 베품을 볼 수가 없기 때문이며 아낌이 없다는 것은 곧 욕심이 없음을, 욕심이 없다는 것은 곧 바보스러움으로 여겨진다.(너무 심한가?)

너무나 이기적인 사람들 속에서 바보스러울 정도의 베품을 바라보면서 나는 인간들에 대한 냉랭해진 나의 태도를 다시금 확인하게 되었고, 이 책을 읽으며 감동스러워지는 만큼 사람들이 베품을 할는지 베품을 받고자 할는지 궁금해진다. 누구나 한번쯤 읽어보았을 책이지만 지금, 바로 지금 다시 한번 읽어보기를 권한다. 그리고 생각해 보기를... '아낌없는 나무는 과연 벨도 없는 나무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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