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토의 새로운 세상
구로야나기 테츠코 지음, 권남희 옮김, 이와사키 치히로 그림 / 다우출판사 / 2002년 4월
평점 :
절판


창가의 토토를 읽은 직후 바로 읽은 책이다. 창가의 토토를 읽으며 토토의 행동에 놀라기 일쑤였는데 토토가 어른이 되어 다시금 그녀의 삶을 이야기하다니... 마치 한 사람을 어린시절부터 쭉 봐왔던 기분이다. 그러나,, 창가의 토토를 읽고 테츠코의 근황에 궁금해하는 것이 아니라면 그리 권하고 싶지는 않다. 글의 느낌도 비슷하고, 중복되는 내용도 간혹 있으며 뚜렷한 감흥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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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가의 토토 - 개정판
구로야나기 테츠코 지음, 김난주 옮김, 이와사키 치히로 그림 / 프로메테우스 / 2004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깜찍스런 어린날의 모습이다. 보통 아이와는 뚜렷히 구별되는 토토의 모습을 보며 어린아이 때의 나는 어땠었는지 불현듯 궁금해진다. 호김심 많고 도출행동을 수시로 하는 토토. 그러나 그의 따뜻한 마음만은 뚜렷히 느낄 수 있다. 토토의 어린시절은 태평양전쟁이 한참 이루어지던 시기. 책의 내용과는 상관없이 나는 식민지 시절, 비참했던 우리나라의 상황을 떠올렸고, 지금도 흔하지 않는 대안학교가 있었던 일본을 보며 우리나라와 일본의 시대적 격차를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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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의 선물 - 제1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은희경 지음 / 문학동네 / 199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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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삶의 이면을 파악하는 시선으로 어린이의 눈은 종종 그 진가를 발휘한다. 삶에 추악한 면을 지닌 것이 어른이므로 어른은 자기정당화를 위해 어른의 눈으로 그 모습을 떳떳히 말하기 두려워한다. 그래서 작가들은 어린아이의 눈을 빌어 사실을, 진실을 말하나보다.

은희경은 삶에 대한 기대수준을 낮춤으로써 삶을 조금더 포용하고자 노력하는 것 같다. 거기에 해학적인 말투와 삶의 이모저모에 대한 구체적이면서도 신랄한 시선이 소설 곳곳에 드러난다. 작가와 함께 동조할 수밖에 없는 인물묘사가 뛰어난 작품이다. 책을 읽으며 어디에나 있을법한, 그래서 미워하기도 하고 좋아하기도 하는 인물군상들을 보며 씁쓸하게 웃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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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에게 말걸기
은희경 지음 / 문학동네 / 199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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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그녀의 세번째 남자] 사랑이라는 이름의 유효기간은 3년이라고 한다. 한 사람의 애인으로 8년을 보낸 그녀에게 사랑이라고 이름붙일만한 감정이 남아 있을는지... 삶의 익숙한 부분을 박차고 나온 그녀에게 열흘 간의 탈선은 결국 익숙한 부분으로의 회귀로 끝이 난다.

[특별하고도 위대한 연인] 동상이몽. 연인이라는 이름 앞에 거창한 수식어는 아무 소용이 없다. 양성을 지니지 않는 한 오해하고 오해하고 오해하는 한 남자와 한 여자. 특별하고도 위대한 사랑이란 한낱 감정의 장난에 불과하다.

[연미와 유미] 사랑이 깊을수록 상처는 오래남는다. 사랑으로 만족할 수 없다면 혼자서라고 꿋꿋히 살아가야겠지... 결혼은 변하지 않는 것을 기준으로 결정하라고 하는데.. 이는 감정이란 변하고 사라지기 때문이란다.

[타인에게 말걸기] 단조로움 속을 생뚱맞게 파고드는 여자. 짜증이 난다. 그러나 이해할 수는 있을 것도 같다. 거절에 대한 두려움은 모든 여자들의 고질병. [먼지 속의 나비] 나비의 불안스런 비행. 그러나 그것은 나비의 확고한 의지. free sex를 하는 여자는 걸레인가 나비인가? '못견디겠다'는 느낌에서 벗어나려는 목적있는 행동이다.

[이중주] 모녀의 삶이 완벽한 이중주를 이룬다. 외롭고 쓸쓸하고 고단하다. [빈처] 남편을 남편이 아닌 애인으로 삼는 그녀. 애인이 있다면 애인은 친구로 여길 것이다. 마땅한 사랑의 권리를 기대할 수 없는 모든 여자들의 대변인이 되어 준 그녀의 일기. 우리는 기대수준을 낮춤으로써 하루하루를 살아가야만 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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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
은희경 지음 / 문학동네 / 199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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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은희경식의 사랑을 좋아한다. 사랑에 대한 감상을 배제할 수 있는 시니컬한 말투에서 배어나오는 어쩔 수 없는 허전함. 사랑에 대해 많은 기대를 하지 않아야겠다는, 실상 너무나 많은 기대 속에서 실망을 느낀 나에게 내가 바라던 사랑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너무나 극명하게 보여주기에 나는 그녀의 소설을 좋아한다.

기대하고 기대고 어쩔 수 없는 높아지는 기대의 수준을 감당할 수 없어 미리 피하는 진희가 어리석어 보이지는 않는다. 또한 자신의 감정에 휩싸여 누가 보아도 뻔한 불륜을 비련으로 만드는 윤선의 모습 또한 이해가 된다. 누구에게나 자신의 사랑은 정당하고 이유가 있는 법이며 사랑의 감정이란 누군가에게서 선물처럼 던져지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서 만들어지는 나의 창조물이기 때문이다. 창조물에 대한 권리는 창조주에게 있는 법, 모두 다 자신의 창조물 사랑에 대해 할 말이 있다.

그리고 그 사랑이 만족스럽지 않을 수도 있지만,,,, 정당화할 이유는 얼마든지 말들 수 있는 것이 창조주의 권리다. 또한 사랑이라는 감정이 영원한 것도 아니며, 절대적인 누군가를 향한 일방통행의 화살도 아니라면 매번 각각의 사랑에는 이유와 의미가 부여될수도, 도매금으로 몽땅 넘길 수도 있다. 은희경의 사랑은,,, 나에게 이렇게 다가온다. 그래서 나는 은희경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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