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자본 (양장)
토마 피케티 지음, 장경덕 외 옮김, 이강국 감수 / 글항아리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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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가 미래를 먹어치우는’ 자본주의의 ‘자유주의적’ 재구성

 

- [21세기 자본], 토마 피케티 著, 장경덕 외 譯,<글항아리>, 2014.

 

 

​경제학은 어렵다. 각종 수치들과 수학공식들이 난무하는 가운데 경제학자들은 ‘순수과학자’임을 자처하는데 [21세기 자본]이라는 저서로 ‘불평등’ 문제를 세계사적으로 고찰하는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에 따르면 불평등이 가장 극심하여 21세기의 구유럽이 되어가고 있는지도 모를 현재 미국의 소득계층 구조에서 ‘선망받는 자리를 점하고 있는 경제학자들’이 그런 것이다. 토마 피케티는‘정치적이고 역사적인 경제학’을 자신의 학문적 배경으로 하는데 이런 점에서 아담 스미스, 데이비드 리카도의 고전주의 경제학과 칼 마르크스의 정치경제학의 계보를 잇고 있다.

 

 

불평등… 핵심적인 문제는 불평등의 크기 자체라기보다는 불평등을 정당화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따라서 불평등의 구조를 분석하는 일이 필수적이다.

 

- [21세기 자본], 제3부 제7장 <불평등과 집중:기본적 지표>

 

 

[21세기 자본]의 주제는 ‘불평등’이다. 피케티는 마르크스 정치경제학의 사회구성체론, 즉 경제적 토대와 상부구조의‘추상적 개념’을 버리고 구체적으로 ‘사회적 국가’, ‘누진적 자본세’,‘국가 공공부채’ 등을 연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불평등’의 구조를 분석하는 작업은 분명 경제학자가 정치적이고 역사적인 시각으로 수행해야 한다는 것 역시 보여주고 있다. 고대로부터 현대까지의 자본수익률과 경제성장률, 저축률 등의 방대한 통계자료(주로 근현대 약 300년간)를 바탕으로 ‘불평등’의 구조를 분석하는 토마 피케티는 역시 칼 마르크스 정치경제학의 계보를 잇고 있다.

 

 

자본은 결코 조용한 법이 없다. 자본은 적어도 형성기에는 언제나 위험추구적이고 기업가적이다. 그러나 충분히 축적되면 자본은 늘 지대로 바뀌는 경향이 있다. 이는 자본의 사명이자 논리적 귀결이다… 자본의 성격은 변했다. 과거에 주로 토지였던 자본은 이제 부동산, 산업 및 금융자본(자산)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그 중요성은 전혀 잃지 않았다.

 

- 제2부 제3장 <자본의 변신>

 

 

프랑스와 영국의 역사적 데이터들을 주요 근거로 하여 불평등의 역사를 파헤치는 토마 피케티에 의하면 칼 마르크스는 의회보고서의 애독자였음에도 당시의 구체적 데이터 조차도 제대로 인용하지 못한 한계를 지닌다고 한다. 그러나 프랑스 철학자 루이 알튀세르 등이 20세기에 철학적으로 ‘다시 읽은’ 칼 마르크스의 [자본]은‘순수이론서’이다. 즉, 19세기 당시 최고의 자본주의 발전단계에 있던 영국을 배경으로 하였지만 영국의 정치경제체제를 분석하지는 않는다. 다만 영국으로부터 추출한 ‘추상적 개념’을 발전시켜 ‘순수이론적인 자본주의 자체’를 상정한다. 칼 마르크스의 [자본]이 ‘상품’이라는 ‘가장 단순한 현상 속에서 현대사회의 모든 모순을 폭로’하는 서술형태를 따르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레닌의 [철학노트]는 “가장 단순하고 가장 평범하고 가장 대량적인 것 등등으로부터 시작하면… 이미 이 속에는 (헤겔이 천재적으로 지적하였듯이) ‘개별은 보편이다’라는 변증법이 존재한다… 이리하여 대립물(개별적인 것은 보편적인 것에 대립한다)은 동일적이다… 변증법은 다름아닌(헤겔과) 마르크스의 인식론이다”라고 적고 있다. 마르크스는 가장 단순한 개별로서 ‘상품’에서 시작하여 가장 총체적 보편으로서 ‘자본주의’ 자체를 분석하고 있다. 우리나라 최초로 칼 마르크스의 [자본]을 번역한 김수행 교수는 최근 발간한 [자본론 공부]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자본론] 1권‘자본의 생산과정’에서 자본의 축적 과정이 실업자를 점점 더 증가시키는 ‘경향’이 있다고 말한 마르크스는 3권 ‘자본주의적 생산의 총과정’에서는 자본의 축적 과정이 이윤율을 저하시키는 ‘경향’이 있다고 말합니다. 전자가 자본주의의 발달이 노동자계급에게 주는 영향을 집약한 것이라면, 후자는 자본가계급에게 미치는 영향을 요약한 것입니다.

 

- [자본론 공부], 제8장 <평균이윤율의 형성과 이윤율의 저하,상승 경향>, 2014.

 

 

마르크스의 자본주의 분석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이 ‘계급투쟁’이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발생하는 모든 잉여가치과 이윤의 원천은 노동이며 이는 자본의 원시축적에서부터 일체의 생산수단에서 분리된 대다수 노동계급만이 담지한다. 자본에 대하여도 마르크스의 [자본] 3권에서 지대는 이자, 이윤, 세금 등과 같이 노동으로부터 생산된 잉여가치에서 배분된 형태 중 하나로 다루어지고 있으나 피케티는 ‘자본은 늘 지대로 바뀌는 경향이 있다’면서 자본의 흐름을 현대적으로 분석하고 있다. 어쨌든 마르크스는 [자본] 1권에서 대다수가 되는 노동계급의 ‘산 노동’이 [자본] 3권에 이르면 자본가의 ‘죽은 노동’을 대체할 수 밖에 없는 구조를 분석하는데 피케티는 자본을 ‘비인적 자본’, 노동을 ‘인적 자본’으로 호명하며 ‘인적 자본’인 노동을 ‘주도적 형태의 자본’이라 규정한다. 보통 선진국 또는 피케티가 부르는 ‘부유한 국가’는 국민소득에서 노동이 차지하는 비율인 노동소득분배율이 70%는 되어야 한다고 하는데 피케티 역시 방대한 자료를 통해 국민소득에서 자본이 차지하는 비율인 ‘자본/소득 비율’을 약 30%인‘1/4 또는 1/3’ 정도로 본다. 여기서 피케티가 자본주의 분석에 사용하는 공식 몇 개는 차치하고 ‘자본주의의 가장 중요한 모순’이자 ‘양극화의 근본요인’으로 보는 공식은 ‘자본수익률(r)>경제성장률(g)’이라는 부등식이다. 역사적으로 제1,2차 세계대전을 겪은 후 누진적 소득세 등을 통해 자본주의 위기를 사회복지국가 형태로 극복한 호황기를 제외하고 세계대전 이전이나 현재는 자본수익률(r)은 4~5%인데 반해 경제성장률(g)은 장기적으로 1~1.5%이므로 이 부등식은 불평등과 양극화가 극심해지는 자본주의 체제를 단적으로 보여준다는 것이다.

 

 

생산성의 향상과 지식의 확산에 기초한 현대의 성장은 마르크스가 예견한 대재앙을 피해 자본축적 과정이 균형을 이루도록 만들었다. 그러나 뿌리깊은 자본의 구조를 변화시키지는 못했다. 혹은 적어도 노동에 비해 자본의 거시경제적 중요성을 진정으로 축소시키지는 못했다. 그러므로 이제는 소득과 부의 분배에서 나타나는 불평등도 이와 마찬가지인지를 고찰해야만 할 때다.

 

- [21세기 자본], 제2부 제6장 <21세기 자본-노동의 소득분배>

 

 

피케티는 자신은 마르크스나 공산주의, 사회주의와 다름을 역설하고 있다. ‘마르크스가 예견한 대재앙’은 빗나갔고 소련 공산주의 실험은 실패했으며 전후 사회민주주의 정책 또한 ‘현대화’되어야 한다고 판단하는 토마 피케티는 그럼에도 사이먼 쿠즈네츠처럼 자본주의가 발전할수록 불평등이 완화되고 균형을 이룬다고 예견하고 있지도 않다. 한편으로 장하준 교수처럼 보호무역과 국민국가적 시장통제를 궁극적으로 주장하는 것도 아니다.

 

계급 없는 완전평등사회 같은 것은 불가능하지만 누진적 글로벌 자본세를 통해 자본주의를 통제하고 불평등을 완화하면서 자본주의를 재구성해야 한다는 것이 토마 피케티의 ‘자유주의적’ 결론이다.

 

 

(글로벌) 자본세의 주된 목적은 사회적 국가의 재원을 조달하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를 규제하는 것이다. 첫번째 목적은 부의 불평등이 끝없이 증가하는 것을 막는 것이고, 두번째 목적은 금융 및 은행제도의 위기를 피하기 위해 금융과 은행 시스템에 효과적인 규제를 가하는 것이다. 이 두 가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자본세는 우선 민주적 투명성과 금융투명성을 확보해야 한다. 즉 누가 전세계에 어떠한 자산을 소유하고 있는지가 명확해야만 한다… 자본세는 자본통제의 자유주의적인 형태이며 유럽의 비교우위에도 더 잘 맞는다.

 

- [21세기 자본], 제4부 제15장 <글로벌 자본세>

 

 

r>g라는 부등식은 과거에 축적된 부가 생산과 임금보다 더 빨리 증가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부등식은 근본적인 논리적 모순을 드러낸다… 자본은 한 번 형성되면 생산 증가보다 더 빠르게 스스로를 재생산한다. 과거가 미래를 먹어치우는 것이다… 올바른 해법은 매년 부과하는 누진적 자본세다… 자본에 대한 누진세는 높은 수준의 국제협력과 지역별 정치적 통합을 요구한다… 우리가 자본주의에 대한 통제력을 되찾으려면 민주주의에 모든 것을 걸어야 한다… 돈이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이익을 지키는데 결코 실패하지 않는다. 숫자를 다루기를 거부하는 것이 가난한 이들의 이익에 도움이 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 [21세기 자본], <결론>

(2014년 10월)

***

 

 

1. [자본론] 칼 마르크스 지음, 김수행 옮김,<비봉출판사>

: [자본론]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원어 그대로 번역하면 [자본]이다.

[자본]Ⅰ권은 ‘상품’에서부터 시작하여 ‘화폐’로 전환되고 다시 ‘상품’으로 재전환하는 다분히 도식적이지만 가장 단순한 과정을 분석하면서 생산적 ‘노동’이 잉여가치를 창출하지만 이 가치가 전부 ‘지불’되지 않은 채 ‘부불노동’의 형태로 자본에 의해 착취된다는 결론을 내리며 ‘자본의 인격화된 형태’로서 자본가는 이 잉여가치를 확대하기 위해 노동시간을 늘리는 ‘절대적 잉여가치 생산과정’에서 기술발전과 자본투자를 통해 ‘상대적 잉여가치 생산과정’을 거치기도 하지만 ‘자본의 축적’은 결국 ‘노동을 생산수단으로부터 분리시키는 과정’이었다고 한다. 선학들인 아담 스미스, 데이비드 리카도 등 고전주의 경제학자들의 개념인 ‘가치’ 개념을 ‘사용가치’와 ‘(교환)가치’로 구분하고, ‘노동’ 개념을‘노동’과 ‘노동력’으로 구분하는 ‘문제의식 변경’의 철학적 사유를 통해 자본주의 체제 분석에 있어 중요한 역사적 유산을 남기고 있다.

마르크스가 [자본론]Ⅰ권에서 ‘자본의 생산과정’을 분석하면서 자본이 노동에 대한 착취를 통해 잉여가치를 생산하는 과정에서 자본 스스로 가치를 창출하면서 축적되는 단계를 분석했다면, 마르크스 사후 그의 초고들을 가지고 엥겔스가 편찬한 [자본론]Ⅱ권은 ‘자본의 유통과정’을 분석하면서 자본이 운동하는 방식을 추적하는데 이러한 자본의 유통은 “잉여가치가 생산된 사실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생산과정에서 발생한) 잉여가치가 자본화된 것, 즉 자본이 축적된 것을 표현”함으로써 자본유통과 회전의 결과는 “최초의 자본가치와 그것의 운동을 통해 축적된 자본의 가치로 구성되어 있다”고 한다. 또한“한편에서는 화폐로 실현된 잉여가치의 일부가 유통으로부터 끌려 나와 퇴장화폐로서 적립된다면, 동시에 잉여가치의 다른 부분은 끊임없이 생산자본으로 전환된다”고 하며 ‘확대재생산’의 형태로서 자본의 축적은 잉여가치를 창출하는 원과정인 ‘단순재생산’을 포함하고 있다고 한다. 즉, 잉여가치는 ‘자본의 유통과 회전과정’이 아니라 이미 ‘자본의 생산과정’에서 생산됨을 증명하고 있다.

[자본]Ⅲ권은 ‘자본주의적 생산의 총과정’을 분석하면서 자본의 생산과정에서 노동을 원천으로 하여 발생한 잉여가치가 전 자본주의적 총생산과정에서 이윤으로 전환하는 과정과 지대와 이자 등으로 배분되는 과정을 그리면서 자본주의가 고도화될수록‘평균이윤율이 저하되는 경향’이 있음을 주장한다. “자본구성의 이러한 점진적 변화가 어떤 개별 생산분야의 특징이 아니라 거의 모든 생산분야 또는 적어도 결정적인 생산분야에서 일어나는 것이며, 따라서 그 변화가 그 사회의 총자본의 평균적 유기적 구성을 변화시킨다고 가정한다면, 가변자본에 대비한 불변자본의 이러한 점차적 증가는-잉여가치율 또는 자본의 노동착취도가 불변이라고 가정한다면- 필연적으로 일반적 이윤율의 점차적인 저하를 초래할 것임에 틀림없다.”고 마르크스는 말한다.

레닌은 1915년 [철학노트]의 <변증법의 문제에 대하여>라는 기록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마르크스는 [자본론]에서 맨먼저 부르주아(상품) 사회의 가장 단순하고 가장 평범하고 가장 근본적이고 가장 대량적이고 가장 일상적이며 헤아릴 수 없이 목격되는 단계, 즉 상품교환을 분석하고 있다. 그 분석은 이 가장 단순한 현상 속에서(부르주아 사회의 이 ‘세포’ 속에서-개별로서의) 현대사회의 모든 모순(혹은 모든 모순의 맹아)을 폭로한다. 계속되는 서술은 이 모순의 발전(성장은 물론 운동도)과 그 개별 부분들의 총합(Σ) 속에서 이 사회의 발전을 처음부터 끝까지 우리에게 보여준다. 이 방식은 또한 변증법 일반의 서술(내지 탐구)의 방법임에 틀림없다… 가장 단순하고 가장 평범하고 가장 대량적인 것 등등으로부터 시작하면,… 이미 이 속에는 (헤겔이 천재적으로 지적하였듯이) ‘개별은 보편이다’라는 변증법이 존재한다… 이리하여 대립물(개별적인 것은 보편적인 것에 대립한다)은 동일적이다. 변증법은 다름아닌(헤겔과) 마르크스의 인식론이다.”

 

 

2. [자본론공부], 김수행 지음, <돌베개>, 2014.

: 우리나라 최초로 칼 마르크스 [자본론]을 번역하여 출간한 김수행 교수가 세월호 정국에서 새롭게 출간한 [자본론] 해설서. 김수행은 <서문>에서 “이 책은 방대한 [자본론] 1~3권의 내용을 단순히 요약한 것이 아닙니다. 마르크스가 자본주의 사회를 어떻게 비판했고 어떻게 찬양했는가를 알려드리려고 합니다. 다시 말해 이 책은 ‘미래 사회의 태아를 자본주의가 잉태하고 있다’는 엄연한 사실에 주목할 것을 강조합니다.”라고 적고 있다. ‘자본의 생산과정’을 분석한 [자본론]Ⅰ권에 대한 해설, ‘자본의 유통과정’을 분석한 [자본론]Ⅱ권에 대한 해설, ‘자본주의적 생산의 총과정’을 분석한 [자본론]Ⅲ권에 대한 해설을 하고 있으며, 특히 [자본론]에서 가장 논란이 되고 있는 ‘평균이윤율 저하 경향’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자본론]1권 ‘자본의 생산과정’에서 자본의 축적 과정이 실업자를 점점 더 증가시키는‘경향’이 있다고 말한 마르크스는 3권 ‘자본주의적 생산의 총과정’에서는 자본의 축적 과정이 이윤율을 저하시키는 ‘경향’이 있다고 말합니다. 전자가 자본주의의 발달이 노동자계급에게 주는 영향을 집약한 것이라면, 후자는 자본가계급에게 미치는 영향을 요약한 것입니다. 그리고 실업자의 증가 경향과 이윤율의 저하 경향은 모두 자본가들이 상대적 잉여가치를 증가시키기 위해 기계화∙자동화∙로봇화를 도모하기 때문에 생기는 것입니다. 마르크스가 즐겨 사용하는 ‘경향’이라는 용어는 ‘법칙’과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지만… 하나의 경향을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두 개의 상반되는 경향을 만들어 낸다는 것을 우리가 분명히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자본의 축적 과정에서 상대적 잉여가치를 생산하기 위해 기계화가 진행되는 것은 필연적입니다. 그런데 이 기계화는, 한편에서는 면방적 기계가 물레를 돌리는 노동자들을 축출하여 실업자를 만들어내는 경향이 있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면방적업을 크게 확장시킬 뿐 아니라 면방직업과 의류업을 활성화시켜 수많은 노동자들을 고용하는 경향도 낳는다는 점을 항상 기억해야 합니다. 다시 말해 기계화는 한편에서는 실업자를 만들어 내는 경향을 가지고, 다른 한편에서는 취업자를 증가시키는 경향을 가지는데, 마르크스는 이 두 경향 그 자체를 각각의 법칙으로 인정한다는 것입니다. 예컨대 기계화는 노동자를 기계로 대체함으로써 실업자를 증가시키는 ‘경향’ 또는 ‘법칙’을 가지며, 기계화는 투하자본의 규모를 증가시켜 실업자를 감소시키는 ‘경향’ 또는 ‘법칙’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기계화가 실업자를 증가시킬 것인가,아니면 감소시킬 것인가는 이론 차원에서는 판명할 수가 없고, 현실에서 판명될 수 있는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이윤율의 저하 경향’도 ‘이윤율의 상승 경향’과 나란히 각각의 법칙으로 제출된 것이고, 현실적으로 이윤율이 저하한다고 예측한 법칙은 아니라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3. [자본을 넘어선 자본], 이진경 지음, <그린비>,2004.

: 1980년대 남한사회 ‘사회구성체’ 논쟁을 촉발한 [사회구성체와 사회과학방법론]의 저자인 이진경이 1990년대 들어 고전적 인식론에서 ‘탈주’하여 ‘근대성 탈피’를 화두로 하고 ‘포스트모더니즘’의 영역과 미셸 푸코, 질 들뢰즈 등의 유목주의(노마디즘)적 철학의 우회로를 통해 다시 마르크스에게로 돌아오면서 발간한 책. 자본주의 '이후'가 아닌, 현재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 그 '외부'를 사유하고, 미래의 '공산주의'가 아닌, 현재의 '꼬뮤니즘'을 그리고 있다. 고전으로서의 [자본론]을 공부하고자 할 때 해설서로서 참고할 만한 책이다.

 

 

4. [자본론을 읽는다], 루이 알튀세르 지음, 김진엽 옮김, <두레>, 1991.

: 칼 마르크스 사후 [자본]Ⅱ권과 Ⅲ권을 편찬한 프리드리히 엥겔스는 1884년 [자본론] Ⅱ권 <서문>에서“선학들이 해답을 본 곳에서 그(마르크스)는 문제만을 보았다.”고 하였다. 프랑스 철학자 루이 알튀세르는 그의 제자 에티엔 발리바르와 함께 [자본론을 읽는다](1965년)라는 연구작업을 통해 “마르크스의 이론적 혁명은 그 답의 변경에 있는 것이 아니라 ‘문제의 변경’에 있다는 것, 따라서 마르크스의 역사이론의 혁명은 마르크스가 이데올로기의 지형으로부터 과학의 지형으로 옮긴 ‘제요소의 변경’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이다.”라면서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정치경제학’ 텍스트가 아닌 ‘철학적’ 텍스트로 다시 독해하고 있다. 알튀세르는 “[자본론]에 대한 철학적 독해는 우리의 연구대상 그 자체인 마르크스주의 철학으로 적용해야만 가능할 뿐이다. 이 원환이 인식론적으로만 가능한 이유는 마르크스주의 저작 속에 마르크스주의 철학이 실존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것은 정확한 의미에서 생산한다는 문제이다. 생산한다는 말의 의미는… 실제로는 이미 어떤 의미에서 실존하고 있는 것을 (목적에 적합한 대상의 형태를 이미 존재하는 원료에 부여하기 위해) 변형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 생산은 생산작업에 원환이라는 필연적인 형태를 준다는 이중적인 의미에서 ‘지식의 생산’이다”라고 하면서 마르크스가 [자본론]에서 다루는 ‘인식의 대상’을 ‘실재적 대상’과 ‘지식의 대상’으로 구별하는데 [자본론]에서 탐구하는 영국은 실제 자본주의 선진국으로서의 영국의 정치경제체제가 아니라 “추상적으로 분석되어지는 자본주의 체제의 ‘모델’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또한 알튀세르는 구조주의 철학자답게 “정치경제학의 진실된 ‘주체’는… 생산관계들, 그리고 정치적 및 이데올로기적 사회관계들”이라는 전제 하에 마르크스가 [자본론]에서 논하는 자본주의적 생산제 양식의 ‘이상적 평균’은 “현실에 대한 (이론적) 개념을 의미”하며 “마르크스의 이론적 대상은 영국이 아니라 그 ‘핵심적 형태’와 그 ‘핵심적 형태’의 결정에 있어서의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이며 자본주의 생산양식 연구에 있어 완전히 ‘순수’할 수는 없으나 하나의‘모델적 사례’로 다루어지는 영국과 관련하여 “영국 자본주의의 불순성은… 생산양식들의 이론과 관련한 대상을 구성하는 것이며, 그 중에서도 특히 한 생산양식으로부터 다른 하나의 생산양식으로의 이행이론과 관련된 대상을 구성하는 것이다. 이 이론은, 모든 각각의 생산양식이 이전의 한 생산양식의 존재형태들로부터만 구성되기 때문에 하나의 일정한 생산양식의 구성과정에 대한 이론인 것이다.”라고 쓰고 있다.

즉, 마르크스의 [자본론]은 당시, 특히 자본주의 ‘선진국’으로서의 영국의 자본주의 현실 체제를 분석한 것이 아니라 영국이라는 ‘이상적 평균모델’을 통해 ‘상품’이라는 가장 단순하고 개별적인 형태로부터 시작하여 ‘자본주의 총생산’의 가장 복잡하고 보편적인 ‘생산양식의 구성과정’을 서술하고 있다는 것이다.

 

 

5. [철학노트], 블라디미르 일리치 레닌 지음, 홍영두 옮김, <논장>, 1989.

: 1914년 제국주의 세계전쟁과 유럽 사회민주주의자들의 배신 국면에서 마르크스주의의 새로운 출구를 찾기 위해 레닌은 마르크스가 [자본론]을 저술할 때 그러했듯 망명지의 도서관에서 틀어박혀 헤겔로 되돌아간다. 이전 [유물론과 경험비판론]의 주제도 ‘철학’이었지만 이는 경험주의, 상대주의인 오스트리아 마흐주의식의 ‘경험비판론’에 대한 다분히 논쟁적 의도로 저술되었고, [철학노트]에서는 헤겔의 [논리학] 적요를 시작으로 ‘존재론’, ‘본질론’, ‘개념론’ 등 철학의 ‘기본개념’부터, 즉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고 있다. 레닌은 ‘헤겔 속의 유물론’을 재발견하기 위하여 아리스토텔레스, 헤라클레이토스 등 철학의 ‘대선배’들의 사상 등도 두루 재학습하고 있다. [철학노트]는 헤겔의 [논리학]은 물론, [철학사 강의], [역사철학 강의] 등에 대한 적요 등을 포함하면서 관념론 철학의 완성체로서의 헤겔을 철저히 분석하고 정리한 대량의 노트라 할 수 있다. 그람시의 [옥중수고]와 같이, 발간목적이 아닌 마르크스주의, 과학적 사회주의의 재정립이라는 확고한 목표의식을 가지고 진행한 방대한 학습노트, 수고록을 나중에 엮은 것이다. 철학학습을 시작하는 레닌의 ‘금언’은 다음과 같다.

“헤겔의 논리학 전체를 철저하게 연구하지 않고 또 이해하지 않고서는 마르크스의 [자본론], 특히 제1장(상품)을 완전하게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반세기를 경과하였지만 마르크스주의자 가운데 어느 누구도 마르크스를 이해하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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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레이] 설국열차
CJ 엔터테인먼트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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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국열차] ‘체제 외 혁명의 단절성, 체제 내 혁명의 무한성’

 

 

  "지옥의 가장 암울한 자리는 도덕적 위기의 순간에 중립을 지킨 자들을 위해 예비되어 있다."

                                                         - 댄 브라운의 [인페르노] 중 단테의 [신곡] 인용구

 

 

기차가 ‘정상 철로’를 이탈하여 뒤집어진 후 요나와 어린아이가 ‘빙하기’의 세상으로 나왔는데 북극곰이 보인다. 생명이 존재할 수 없다고 알았고 기차 밖으로 나가면 살아남을 수 없다고 배웠는데 아니었다. 어떤 사람은 “그래서?”라고 물었다 하고 어떤 사람은 ‘희망’을 보았다 하지만, 나는 ‘단절’을 보았다. 이제 인류는 이 ‘빙하기’라는 대자연을 딛고 다시 시작해야 한다. 당장 먹을 것과 잘 곳을 찾아야 할 것이다. 당연시 되던 체제를 깨고 나가는 것은 결국 ‘단절’에서 시작하는 것 아니겠는가. 그렇다 해도 이 정도의 ‘단절’은 우리의 사회과학으로 풀어나가기에는 너무도 광범위하고 막연하기만 하다.

 

[설국열차]는 지구 환경을 지키기 위해 살포된 물질로 인해 오히려 ‘빙하기’를 맞은 지구를 매년 한 바퀴씩 도는 기차가 주요 무대이다. 기차의 ‘주인’은 윌포드와 그의 엔진. ‘빙하기’로부터 살기 위해 기차에 탄 ‘마지막 인류’는 두 개의 계급으로 나뉜다. ‘머리칸’과 ‘꼬리칸’. ‘머리칸’에서 호의호식하는 사람들이 어떤 이유로 그 ‘자리’를 지키는지 알 수는 없지만, ‘꼬리칸’에서 바퀴벌레로 만든 단백질 블록으로 연명하는 비참한 사람들은 ‘무임승차자’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혁명 지도자 커티스의 증언에 따르면 이들은 꼬리칸에 타자마자 모든 것을 빼앗겼고 그들끼리 서로 잡아먹는 아비규환 속에서 살아왔다. 비인간적인 대우를 참지 못한 사람들은 ‘주기적으로’ 반란을 일으키는데 그 정신적 지주는 지옥 같은 ‘꼬리칸’에서 휴머니즘을 가르쳤던 길리엄이라는 위인이다. 길리엄을 배후에 두고 커티스가 지도하는 이번 혁명은 4년 전 ‘맥그리거 반란’보다 더 발전하여 윌포드의 엔진까지 장악하게 되는데 윌포드에 의하면 이러한 반란은 폐쇄된 기차 내 ‘균형’을 맞추기 위해 윌포드와 길리엄의 협력 하에 ‘주기적으로’ 조장되어 왔으며 이러한 ‘주기적 반란’으로 기차 내 혹은 ‘꼬리칸’ 인구의 70% 이상이 사라짐으로써 인구의 균형이 이루어진다.

한편으로 오로지 윌포드 엔진 장악만을 목표로 하는 커티스는 열차칸의 문을 열기 위해 보안설계자 남궁민수의 도움을 받게 되는데 ‘크로놀’에 집착하는 남궁민수의 목표는 결국 기차 밖으로 나가는 것이며 ‘크로놀’이라는 인화물질은 종국에 기차벽을 깨부수는 역할을 하게 된다. 여기서 우리는 혁명의 두 가지 관점을 보는데, 즉 ‘체제 외 혁명’과 ‘체제 내 혁명’이다. 남궁민수의 혁명은 ‘체제 외 혁명’이고 커티스 또는 ‘주기적’ 혁명은 ‘체제 내 혁명’인 바, 전자는 ‘단절’을 특징으로 하고 후자는 ‘무한반복’을 그 특징으로 한다.

 

[설국열차]에서 ‘체제 외 혁명의 단절성’은 너무도 극적이고 극단적이어서 우리는 또 다른 인류의 출현을 몇 백만년이든 기다려야 할 상황까지도 설정해야 하지만 역사발전 단계에서 ‘체제간 단절과 연속’은 필연의 계기일 것이고, ‘체제 내 혁명의 무한성’은 장면마다 드라마틱함에도 불구하고 큰 줄기 자체는 체제 질서 유지의 각본에 너무도 충실한 나머지 현 체제의 권력이나 자본으로 상징될 수 있는 ‘엔진’을 장악한 후 더 이상 할 일이 막연해 지지만 그래도 조금씩 ‘체제의 역사가 무한히 전진한다’는 위안은 삼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아무튼, 양자간 한 가지 공통점은 그 어느 것도 계획한 대로 종결되지 않으며 그 누구도 의도하지 않았던 방식으로 ‘역사’가 흘러간다는 것일텐데, 이런 식의 결론이라면 여러 ‘체제’들의 연속인 ‘인류의 역사’가 너무 기계주의적이고 진화론적으로 흘러 결국 헤겔이 말한 ‘역사의 간지’만 남을 것이다. 그러니 거창한 역사는 차치하고 어떤 선택을 하든 허무하게 죽어나가는 ‘도덕적 위기의 순간’의 설정 속에서 행운아가 아닌 다수는 ‘중립’이 아닌 무엇을 택해야 할 것인가. ‘꼬리칸’인가 ‘머리칸’인가, ‘체제 외’인가 ‘체제 내’인가.

 

적어도 ‘체제 외 혁명’인가 ‘체제 내 혁명’인가는 애당초 주체의 설정이 아닐까 싶기도 하지만, 이 또한 결국 ‘혁명’의 전개 과정에서 객관적 조건에 의해 규정되는 것 아닐는지 모를 일이다.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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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서울
최종현.김창희 지음 / 동하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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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묵은 길’을 품은 ‘오래된 서울’과 ‘야망의 터전’ ‘서촌’

- [오래된 서울], 최종현/김창희 共著, <동하>, 2013.

 

 

조선 초에 서울 도성을 쌓을 때 북서쪽 소문인 창의문을 왜 그 자리에 냈겠는가? 그 고개에 본래 길이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바로 고려시대 남경에서 개성으로 가는 길의 출발점이자 개성에서 남경에 이르는 마지막 고갯길이었던 것이다. 이성계가 서울 도읍의 자리를 살피기 위해 무학과 함께 건너왔던 길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이 길은 고려시대와 조선시대를 이어주는 길이다…

 

- [오래된 서울], ‘제1부 서울의 탄생 – 고려시대의 길을 찾아서2’ 중

 

 

서울의 역사는 조선이 건국되고 2년이 지난 1394년에 수도로 정해진 이후로부터 ‘600년’으로 보는 것이 통설이다. 서울시도 1994년에 ‘정도 600주년 기념식’을 치렀다니 관(官)에서도 인정하는 ‘공식 역사’라 볼 수도 있다. 그러나 도시공학과 교수를 지낸 최종현과 언론인 김창희가 공저(共著)한 [오래된 서울]은 우리 역사를 좀더 거슬러 올라간 ‘서울의 원점’에서 추리를 시작한다.

 

고구려를 건국한 주몽의 아들 비류와 온조 형제는 주몽의 또 다른 아들 유리가 왕위에 오르자 남쪽으로 내려왔다. 비류는 미추홀에 자리 잡고, 온조는 위례에 자리 잡았다. 온조는 나라를 세운 후 나라 이름을 십제라 하였다. 미추홀은 지금의 인천 지역으로 땅은 습하고 물은 짠 곳이었고, 위례는 지금의 서울 지역으로 매우 기름진 곳이었다. 그 뒤 비류가 죽자 그를 따르던 무리들이 온조를 따랐다.

 

- [오래된 서울], ‘제1부 서울의 탄생 – 서울의 원점을 찾아서’ 중, [삼국사기] 재인용

 

서기전 18년 백제를 건국한 온조가 서울 위례 지역에 터를 잡고 건국한 기록이라고 한다. 그러나 위례성 지역은 지금의 경기도 하남 지역으로 경기도 광주에서 서울로 행정구역이 바뀐 지 몇 십년 밖에 안된 지역에다가 조선의 수도 한양은 ‘사대문’ 안의 구역을 의미하니 양자의 ‘서울’은 현재의 서울로 통합되어 있기는 하지만 역사적으로 보면 전혀 다른 지역이다. 그렇다면 서울의 역사를 백제 건국 시기인 2000여년 전부터 시작하는 것은 무리가 있으니 ‘600년 통설’을 그대로 따라야 할 것인가.

 

[오래된 서울]은 고대 삼국과 근세 조선의 중간에 위치한 고려시대에서 그 해답을 추적해 나간다. 즉, 지금의 ‘사대문’ 지역은 고려시대 한양부 ‘남경(南京)’으로서 지금의 경기도 양주(楊州) 이남으로 천도를 준비하기도 했던 고려 숙종대인 1100년대 전후에 경복궁 후원 한 귀퉁이에 임금의 또 하나의 별궁인 ‘남경행궁’을 지었다는 것까지 [고려사]와 [조선왕조실록] 등의 기록을 통해 추적해 나간다. 이후 무신정권과 몽골지배기를 거쳐 고려 말에서 조선으로 넘어가는 100여년 시기에도 인도 승려 지공화상과 그의 고려 제자 나옹화상이 나누었다는 선문답에서 ‘삼산양수(三山兩水)’, 즉 삼각산과 한강-임진강 사이의 명당이라 하여 개창된 경기도 양주 회암사를 고려 말에서 조선 초까지의 명찰로 보면서 역시 지공화상의 제자 중 하나였으며 한양 천도에 지대한 역할을 했다는 조계종파의 무학대사가 공민왕대 화엄종의 신돈이 실권한 후 회암사에 머물렀다는 사실까지 추적해 낸다. 따라서 서울은 조선의 ‘한양’ 이전인 고려 중기 ‘한양부 남경’ 시절부터 하나의 수도로서 역사를 추리할 수 있으니 이쯤 되면 서울의 역사는 600년이라기보다는 1000년 정도로 볼 수 있게 된다.

 

[오래된 서울]은 추리에서 끝나지 않고 고려 중기 이후 ‘천년묵은 길’을 소개한다. 모든 길은 자연이 만든 길, 즉 물길을 기준으로 생기기 마련인데 조선 태종이 종로와 교차하여 창덕궁 앞으로 통하는 돈화문로와 양쪽의 피맛길을 만들기 이전부터 존재하던 길을 보여준다. 현재 지하철 종로3가역 6번 출구에서 나와 ‘갈매기집’ 좌측으로 비스듬히 올라 삼일로 삼환기업 건물 길까지 이어지는 골목이 바로 [오래된 서울]이 이야기하는 ‘천년묵은 길’이라고 하는데 책을 읽은 후 찾아간 골목길은 두리번 거리며 걷는 내내 예사롭지 않다는 생각이 계속 들게 한다.

또 하나의 길은 고려시대 수도 개경(개성)에서 남경행궁으로 내려오는 유일한 길인 ‘창의문(彰義門)’에 이르는 길이다. 현재 경복궁 서쪽으로 종로구 옥인동과 청운동 부근을 지나 올라가면 조선시대 ‘사소문’ 중 북문이었던 ‘창의문’이 나오는데 이 ‘북소문’은 조선이 만든 문이지만 여기로 통하는 길은 위에서 인용했듯이 ‘천년묵은 길’이라는 것이다. 조선시대 ‘북대문’이었던 ‘숙정문(肅靖門)’으로 통하는 길은 없었다고 하니 ‘창의문’이 북쪽과 남쪽을 잇는 실질적인 북문이었던 것이다. ‘창의문’은 임진왜란 때 일부 소실되어 1740년대에 중창되었으나 ‘사소문’ 중 유일하게 그 자리에서 300년 가까이 제 모습을 보존한 문이라고 한다.

 

서울에서 ‘천년묵은 길’을 추적한 [오래된 서울]의 본래 주제는 ‘서촌(西村)’이다. ‘서촌’은 조선 초기 왕실군락지로서 경복궁 서쪽으로 해서 자하문로 따라 위로 올라가면 나오는 지역으로서 책은 세종이 태어난 ‘준수방 잠저(임금이 되기 전 살던 집)’로 추정되는 지금의 우리은행 효자동 지점과 그 뒷편길로 해서 서북쪽으로 예전 청계천 물길을 따라 올라가면 세종의 3남 안평대군이 살았다는 수성동 계곡 일대를 소개하고 있다. 이 곳 수성동 계곡은 안평대군이 어느날 문득 꿈에서 본 풍경을 화가 안견을 불러 ‘몽유도원도’를 그리게 한 지역이라고도 하는데 아마도 서촌 수성동 계곡 어딘가에서 삼각산 쪽으로 바라본 풍경 아닐까 추정된다고 한다. 이후 ‘단종복위사건’으로 안평대군이 형인 세조에 의해 사사된 후 수성동 계곡에는 세종의 둘째 형이자 안평대군의 삼촌인 효령대군이 옮겨와 천수를 누리며 살았다고도 한다.

‘서촌’은 임금이 되지 못한 왕자들 외에도 겸재 정선과 같은 화가가 살면서 ‘서촌’의 배경인 ‘인왕제색도’를 포함하여 그 특유의 화법을 발전시킨 곳이기도 하고, 병자호란 때 ‘주전파(主戰派)’로 이름날린 김상용, 김상헌 형제의 ‘장동 김씨’류의 권신들의 터전이었으며 조선 중기로 넘어오면서 신분사회에 대한 절망을 시(詩)로 승화시킨 중인들이 ‘송석원’ 등의 절경을 배경으로 ‘동인회’를 만들어 활동하던 지역이라고도 한다. 조선시대 법궁인 경복궁을 뒤에서 바라보며 실현될 수 없는 야망을 태우던 일종의 ‘야망의 터전’ 아니었을까 싶다.

 

이후 ‘서촌’은 일제강점기에 이르러 친일파의 거두 이완용과 그에 못지 않았던 윤덕영 등이 현재 옥인동 일대를 강탈하여 호의호식하며 살았던 지역이기도 하다. 특히 조선의 마지막 왕후의 큰아버지이자 이완용과 친일을 경쟁하던 ‘1급 친일파’ 윤덕영 같은 자는 현재 옥인동 47번지 일대와 ‘송석원’ 등의 지역에 벽수산장이라는 서양식 호화별장을 짓기도 했다는데 이쯤 오면 권력을 향한 ‘폭력적 야망의 터전’이기도 하였다. [오래된 서울]은 서촌 옥인동 일대에서 편안하게 숨을 거둔 이완용에 대하여 당시만 해도 ‘민족정론’이었던 <동아일보>의 1926년 사설 ‘무슨 낯으로 이 길을 떠나나’ 중 다음의 명문을 소개하기도 한다.

 

“팔지 못할 것을 팔아서 누리지 못할 것을 누린 자…”

 

아마도 이완용과 친일부역자들의 삶을 가장 명료하게 정의한 테제가 아닐까 싶다.

 

조선 후기 ‘서촌’은 작가 이상과 화가 구본웅, 시인 윤동주와 국문학자 정병욱, 민족사회주의 화가 이여성과 이쾌대 형제 등이 시대를 고민하면서 ‘동행’했던 터전이 되었고, 김수임, 노천명, 앨리스 현 등의 역사의 파고에 쓸려간 여성들이 살던 지역으로도 소개된다. [오래된 서울]은 이들 모두를 포함하여 화가 이중섭이 작품을 생산하던 집까지 추적하여 소개하고 있다.

 

날씨 좋은 휴일에 [오래된 서울]의 추적을 따라 ‘천년묵은 길’과 ‘서촌’ 일대를 둘러보는 산책길은 이미 관광상품화된 ‘서울성곽길’과는 또 다른 상념을 선사할 지도 모른다. ‘동행’이 없다 한들 어떤가. 우리에게는 ‘천년묵은 길’을 품은 ‘오래된 서울’의 역사라는 동행이 있으니.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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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노동 운동사 3 ㅣ 세계 노동 운동사 3
김금수 지음 / 후마니타스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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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집단적 대화’

- [세계노동운동사 1,2,3], 김금수 著, <후마니타스>, 2013.

 

 

역사는 오늘날 우리가 영위하고 있는 삶을 이끌어 낸 사건들의 연속이다. 역사는 우리가 어떻게 오늘날의 우리 자신을 만들게 되었는지에 관한 이야기다. 역사를 이해한다는 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를 변혁할 수 있는지, 또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는지를 파악하기 위한 열쇠다.

 

- Chris Harman, [민중의 세계사], 재인용.

 

 

역사는 개별 사건들의 집합 만이 아니라 일정한 경향이다. 근대적인 시각일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인류의 역사는 진보와 발전이라는 경향을 나타낸다. 역사라는 ‘절대정신’의 의지에 경향이 내포되어 있다는 관념론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집단적으로 삶을 영위하는 인간들이 다수의 힘으로 모두가 인간답게 사는 삶을 지향하며 만들어온 시간의 흐름이 바로 역사라는 유물론적 의미이다. 그래서 연대기별 사건을 나열한 역사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본질적으로 인간 부류의 어떤 힘이 그 사건과 모순을 초래했고 또 어떤 부류의 힘이 그 모순을 뒤집어 엎고 새로운 조건과 질서를 만들어내었는지를 봐야 한다. 항상 다수가 만든 질서를 소수가 유지했고 그 모순은 다시금 다수가 새로운 질서로 바꿔온 것이 바로 역사인 것이다. 그리하여 인류의 역사는 ‘계급투쟁의 역사’이다.

 

한국 노동운동의 원로 김금수 선생이 노동운동의 위기 국면에서 노동운동, 사회운동가들과 세계 노동운동의 역사를 함께 공부하고 토론한 후 서구 및 소련과학아카데미의 자료들을 참고하여 [세계노동운동사] 1,2,3편을 엮었다. 자본주의 시초축적, 즉 맑스에 의하면 ‘노동자로부터 생산수단을 분리시킨 원시축적 시기’인 16~17세기부터 시작하여 18~19세기 유럽 혁명, 20세기 소비에트러시아 혁명을 거쳐 제국주의와 파시즘의 복합체로서 국가독점자본주의가 본격적으로 득세하기 시작한 2차 세계대전까지 노동운동의 역사를 일괄했다. 유럽 뿐만 아니라 조선을 포함한 아시아와 라틴아메리카, 아프리카의 식민지, 종속국가들 역사까지 두루 서술하고 있어 말 그대로 ‘세계노동운동사’로서의 내용을 포괄한다.

역시 현재의 위기를 타개하고 새로운 미래를 열기 위해서는 과거를 참고하는 길이 필수이다.

 

현재 한국 진보운동, 노동운동의 위기 또한 현재의 안경으로 과거를 투영하지 않으면 안될 듯 하다. 책의 내용 중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20세기 초 파시즘의 대두와 1935년 제7회 코민테른 대회에서 결의된 ‘인민전선’.

자본주의의 필연적 발전형태로서의 제국주의와 그 병폐적 현상으로서의 파시즘이 전염병처럼 퍼지던 시기, 각국에서 노동자계급과 공산당의 주도로 ‘인민전선’, ‘민족전선’, ‘통일전선’ 등의 명칭으로 이루어진 반파시즘 연대는 최근 우리 현대사에서 군부파시즘에 대항한 ‘비판적 지지’와 민간파시즘에 대항한 ‘반이명박근혜 전선’을 닮아 있었다.

 

인민전선은 수세적인 재조직화였다. 파시즘의 확산을 막는 장애물을 세우고, 파시즘이 승리한 곳에서는 저항을 고무하기 위한.

인민전선은 좌파의 공통 지반을 찾음으로써 공산당의 고립을 극복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가장 폭넓은 협력을 구축하기 위해서는 사회주의 원칙보다는 민주주의 원칙이 필요했다. 노동자계급 정당이 혼자 힘으로 승리할 만큼 강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좌파가 민주적인 신뢰를 확립하기만 하면 연합이 기존의 민주주의를 넘어서 사회주의 이행의 토대로 나아갈 수 있었다.

인민전선 전략은 ‘일시적인 수세적 전술 이상의, 궁극적으로 패배를 공세로 전환하기 위한 전략이었다. 이것은 또 사회주의로 나아가기 위한 세심하게 고려된 전략이었다.’

 

- Eric Hobsbawm, [Fifty Years of Peoples Front], 재인용.

 

1870년의 전쟁 음모는 1851년 (보나파르트)쿠데타의 개정판일 뿐이다.… 루이 보나파르트와 프로이센의 전쟁이 어떻게 진행되든 간에 제2제정의 조종(弔鐘)은 이미 파리에 울려 퍼졌다. 제2제정은 시작할 때와 마찬가지로 패러디로 끝날 것이다. 그러나 루이 보나파르트가 18년 동안 복고된 제정이라는 흉악한 소극(笑劇)을 연출할 수 있도록 한 것은 유럽의 정부들과 지배계급들이었다는 것을 잊지 말자.

 

- Karl Marx, [프랑스내전], 재인용.

 

지난 대선에서 전개되었던 굳게 단결한 보수에 대한 민주·개혁·진보주의자들의 대동단결이라는 허상은 이제는 잊어도 좋을 듯 하다. 그런 연대는 지난 역사 속에서 숱하게 많았을 것이고 앞으로 많을 테니. 다만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파시즘은 양대 계급의 무능력을 기반으로 하여 ‘계급균형’이라는 환상에서 출발하지만 본질적으로 이러한 기형적 형태를 낳는 것은 ‘정부와 지배계급들’이라는 것, ‘인민전선’은 극우보수의 폭력적 독재에 대항하여 고립을 극복하기 위해 ‘진보’가 주체적으로 선택한 전략전술이었다는 것. 앞으로 펼쳐질 갖가지 연대의 형태 속에서도 진보는 ‘일시적인 수세적 전술 이상의, 궁극적으로 패배를 공세로 전환하기 위한 전략’으로서 연대를 주도해야 할 것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사회 대다수에 기반한 힘을 토대로 해야 한다는 것이며, 이를 위해 현대사회에서는 확고한 ‘민주주의’ 원칙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 길이 사회민주주의인지, 민주적 사회주의인지 아니면 다른 무엇인지에 관한 고민 또한 더 필요하다.

 

저자도 서문에서 언급했듯, 에드워드 핼릿 카가 말한 “역사는 현재와 과거와의 끊임없는 대화”라는 표현은 너무도 적절하지만 하나 더 추가해야 할 것이다. 새로운 미래를 만드는 것은 대다수 일하는 사람들의 삶을 반영한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집단적 대화’”라고.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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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혁명사 3부작 - 개정판, 소나무총서 1
칼 마르크스 지음 / 소나무 / 199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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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한 번은 비극으로, 다음 번은 희극으로’

- K. Marx,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을 통해 본 21세기 대한민국 ‘여왕 파시즘’

 

 

 

헤겔은 어느 부분에선가 세계사에서 막대한 중요성을 지닌 모든 사건과 인물들은 말하자면 두 번 나타난다고 지적하였다. 그러나 그는 한 번은 비극으로, 다음 번은 희극으로 나타난다고 덧붙이는 것을 잊었다. 당통 대신에 코시디에르가, 로베스피에르 대신에 루이 블랑이, 1793~1795년의 산악당 대신에 1848~1851년의 산악당이, 삼촌 대신에 조카가 나타난다. 그리고 ‘브뤼메르 18일의 재판(再版)’이 나온 정세에서도 동일한 현상을 볼 수 있다.

 

- K. Marx,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 제1장 중.

 

 

변증법적 유물론과 역사적 유물론의 사유방식에 ‘역사의 순환’은 없다. 이 사유방식은 역사의 운동을 전제로 하여 그 발전과 진보를 하나의 확고한 경향으로 삼는데, 어느 시기에서는 역사적 ‘사건과 인물’의 퇴보적인 ‘반복’을 목격하기도 한다. 맑스는 이를 ‘희극’에 비유하는데 이는 진지한 역사적 ‘선행 사건’을 상대적 ‘비극’으로 보이게도 한다.

 

1789년 프랑스 대혁명으로 제정(帝政)이 민중의 힘에 의해 무너지고 공화정(共和政)이 세워졌지만 왕정복고주의와 타협하고자 했던 1794년 테르미도르 반동으로 인해 공화정은 다시 무너진다. ‘공포정치’ 초반 숙청된 자코뱅파 우파 당통의 ‘비극’이 1848년 2월 공화정 우파 민주인사 코시디에르의 ‘희극’으로 반복된다.

이 틈을 탄 공화국의 젊은 장교 루이 나폴레옹 1세가 1799년 황제로 등극하면서 ‘제1제정’이 등장했다. 나폴레옹의 퇴위 후에도 시대착오적인 전제정이 지속되다가 1830년의 민중 반란에 의해 ‘시민왕 루이 필립’을 앞세운 ‘7월 왕정’이 들어섰지만 대금융 부르주아의 횡포에 착취당하던 프랑스 민중들은 1848년 ‘2월 혁명’을 통해 왕을 몰아내고 다시금 ‘공화정’을 선포한다. 그러나 역시 테르미도르 반동 쿠데타 당시 대다수 민중을 위한 ‘공포정치’의 주역이었던 자코뱅파 로베스피에르의 ‘비극’이 1848년 2월 혁명 후 임시정부의 소시민적 사회주의자 루이 블랑의 ‘희극’으로 반복된다.

대다수 프롤레타리아의 지지로 세워진 임시정부가 정치적 타협과 정쟁으로 대다수 민중의 요구를 배신했을 때 같은 해 6월 대규모 반란이 다시 일어나지만 대동단결한 왕정복고주의자, 부르주아지, 소시민 민주파와 사회주의자들에 의해 철저히 패배당하게 되는데, 대혁명기의 좌파 ‘산악당’의 ‘비극’이 2월 혁명기 ‘산악당’의 ‘희극’으로 반복된다.

이 과정에서 역시 ‘희극적으로’ 등장한 것이 바로 나폴레옹의 조카, 루이 보나파르트 나폴레옹 3세였다. 자기계급 이익을 위해 공화정 가면을 쓰고 왕정복고의 흑심을 숨긴 부르주아지도, 혁명가인 척 하는 프티 부르주아를 대표로 내세운 결과 전혀 혁명적인 힘을 갖지 못하게 된 프롤레타리아트도 해당 시기의 지배계급이 될 수 없는 무능력한 상황에서 ‘부랑자, 거지, 퇴역군인 등의 룸펜 프롤레타리아트’를 앞세우고 군대를 장악한 조카 보나파르트가 대통령으로 당선된다. 이후 의회와 민중들을 계속 기만하고 배신하는 과정에서 그는 결국 1852년 황제의 관을 억지로 머리에 얹은 채 프랑스 ‘제2제정’을 열게 된다. 삼촌 루이 보나파르트 나폴레옹의 ‘비극’이 조카 루이 보나파르트 나폴레옹의 ‘희극’으로 반복된다.

이 시기 자본주의 발전의 법칙에 의해 자본이 팽창하면서 주변국들과의 지속적인 전쟁을 하게 되었고 더 이상 이를 참다 못한 프랑스 민중은 다시금 들고 일어나 1871년의 ‘파리 코뮌’을 건설함으로써 보나파르트 ‘제2제정’은 무너진다.

자본주의 역사발전의 법칙 속에서 정치체제는 ‘비극’에서 ‘희극’으로 반복되는 것이다.

 

 

인간은 자신의 역사를 만들어 가지만, 그들이 바라는 꼭 그대로 만드는 것은 아니다. 인간은 스스로 선택한 환경 속에서가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주어진, 물려받은 환경 속에서 역사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모든 죽은 세대들의 전통은 악몽과도 같이 살아있는 사람들의 머리를 짓누른다. 현세대는 자기자신과 만물을 개조하고 이제까지 존재한 적이 없는 무엇인가를 창출해내는 데에 몰두하는 것처럼 보이는 시기에도, 바로 그와 같은 혁명적 위기의 시기에도, 그들은 자기의 일을 도와달라고 노심초사 과거의 망령들을 주술로 불러내며, 이 망령들로부터 이름과 전투구호와 의상을 빌려 이 유서 깊은 분장과 차용한 언어로 세계사의 새로운 장면을 연출한다.

 

- K. Marx,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 제1장 중.

 

 

‘브뤼메르 18일’은 나폴레옹 1세가 황제로 등극한 1799년 11월 9일을 나타내는 공화력이라고 하는데 ‘희극적’으로 반복되는 역사적 사건을 목격한 맑스는 ‘브뤼메르 18일의 재판(再版)’ 과정을 정리함으로써 자본주의 역사에서 국가 정치체제의 구체적 실현체를 기록하게 된다. 이 저서가 바로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이다.

 

맑스는 이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을 통해 ‘케사리즘(Caesarism)’이라는 ‘교과서적인 단어’를 없애버리는 데에 기여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1869년의 제2판 서문에서 말하고 있다. 여기서 ‘케사리즘’은 안토니오 그람시의 [옥중수고] 중 1933년의 기록에 따르면, ‘갈등하는 세력들이 파국적인 방식으로 상호 균형지우고 있는 상황을 표현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으며 ‘논쟁적·이데올로기적 표현이지 역사해석의 기준은 아니다’라고 하는 바, ‘케사리즘에서 모든 새로운 역사현상이 오로지 기본적 세력들만의 균형에 의해 생긴다고 생각한다는 그것은 방법적 오류’로서 ‘기본적 계급들로 이루어지는 중요한 집단들과 그 집단들의 헤게모니적인 영향에 의해 지도받거나 종속되어 있는 보조적인 세력들 사이의 관계에서 일어나는 상호작용도 고려해야’ 하므로 ‘프랑스의 군사적 집단과 농민의 기능을 연구하지 않고는 1851년 12월 2일의 쿠데타를 이해할 수 없을 것’이라고 규정한다. 그람시에 따르면 ‘그러한 세력들이 역사적으로 유효하게 되는 것은 자신의 내재적인 힘에 의한 것이 아니라 그 세력들의 적의 무능력에 의한 것’이다.

맑스에 의해 역사 속에서 ‘계급균형’을 가장한 파시즘은 ‘케사리즘’이 아닌 ‘보나파르티즘’이 되었다.

 

이제 이 ‘희극’과도 같은 ‘보나파르티즘’에도 불구하고, 맑스에 따르면 ‘혁명은 자신의 과업을 일정한 방식에 따라 수행한다’.

1849년 12월 10일 보나파르트를 대통령으로 선출한 힘은 프랑스 대다수 국민을 차지하고 있던 ‘분할지 농민’들이었다. 21세기 대한민국에서 노동자, 농민, 영세자영업자 등의 대다수 ‘분할된 민중’들이 군부독재 유신의 딸을 대통령으로 만들어 주었듯.

 

 

… 보나파르트는 한 계급을 그것도 프랑스 사회에서 수적으로 가장 많은 계급인 분할지 농민을 대변하고 있다. 부르봉가(家)가 대토지 소유자들의 왕조였고 오를레앙가(家)가 화폐소유자들의 왕조였듯이 보나파르트 왕조는 농민, 즉 프랑스 인민대중의 왕조이다… 1848년 12월 10일 선거는 1851년 12월 2일 쿠데타에 의해 비로소 성취되었다…

 

- K. Marx,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 제7장 중.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에서 다시 한 번 발견하는 역사적 유물론의 진리는 ‘역사의 필연’이다. ‘일정한 방식에 따라’ ‘자신의 과업’을 수행하는 역사발전의 필연인 것인데, 대통령으로 당선되어 행정권력을 장악한 루이 보나파르트는 과도한 세금으로 국가권력을 강화하면서 자신을 지지해준 대다수 ‘분할지 농민’들의 욕망을 배신하고 공화정 가면 뒤에 숨은 왕정복고주의자인 대부르주아지들을 기만하면서 ‘황제의 길’을 ‘희극적’이게도 묵묵히 가게 된다. 20세기에 대다수 민중을 압살하면서 동시에 자본을 탄압하기도 했던 ‘아버지 대통령’의 ‘비극적’인 길을 따라 21세기에 ‘잘 살아 보세’ 또는 ‘국민행복시대’를 열겠다는 ‘딸 대통령’의 ‘희극적’인 길이 다시금 열렸듯.

그러므로 이러한 시공을 초월한 ‘희비극’의 반복은 계급적으로 조직되지 못한 우리 대다수 민중의 ‘무능력’이 불러온 것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 한 자루 분량의 감자들이 모여 한 자루의 감자를 이루듯이 프랑스 국민의 거대한 대중은 똑 같은 크기를 단순히 더함으로써 형성된다. 수백만의 가구가 자신의 생활 양식, 이해 관계, 문화를 다른 계급의 생활 양식, 이해 관계, 문화와 구별지으며 그것에 대해 적대적으로 대립하게 하는 경제적 조건 속에서 살아가는 한, 그들은 하나의 계급을 형성한다. 그러나 이들 분할지 농민들 사이에 단순한 지방적 연계만이 있는 한, 그리고 그들간의 이해의 동질성이 그들간에 어떠한 공통성이나 전국적 결합, 정치적 조직 등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한, 그들은 계급을 형성하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의회를 통해서나 국민공회를 통해서나 간에 자신의 이름으로 자기계급의 이해를 관철시킬 수 없다. 그들은 스스로를 대표할 수 없고, 누군가에 의해 대표되어야 한다.

… 그러나 오해는 없도록 하자. 보나파르트 왕조가 대변하는 것은 혁명적 농민이 아니라 보수적 농민이다. 분할지 경작이라는 자신의 사회적 생활 조건을 박차고 일어나는 농민이 아니라, 자신의 분할지를 확보하고자 하는 농민, 도시와 연계하여 새로운 힘으로 구질서를 타도하고자 하는 농촌의 민중이 아니라 반대로 무감각하게 구질서 속에 갇혀 자신과 자신의 보유지를 제국의 유령에 의해 보장받고 축복받고자 하는 사람들을 대변한다. 보나파르트 왕조는 농민의 계몽이 아니라 농민의 미신을 대변하고 농민의 건전한 판단이 아닌 편견을, 미래가 아닌 과거를… 대표한다.

 

- K. Marx,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 제7장 중.

 

 

19세기의 프랑스에서 맑스의 결론은 이렇다.

농민의 이해는 ‘비극적’ 나폴레옹의 ‘제1제정’과 달리 그 ‘조카’인 나폴레옹3세의 지속적인 사기와 배신에 의해 자본의 이해와 상충함으로써 ‘부르주아 질서의 타도를 외치는 도시 프롤레타리아를 자신의 자연스러운 동맹자요 지도자로 여긴다’는 것이다.

 

21세기의 대한민국에서 이렇게 치환해 보자.

모든 사람에게 모든 것을 약속하는 사기극을 통해 ‘희극적’으로 반복된 ‘여왕 파시즘’은 결국 계급으로 조직되지 못한 국민, 시민, 민중들을 배반할 것이며, 이 제정(帝政)과도 같은 파시즘을 만들어준 대중들은 결국 새로운 세상, 더 나은 세상을 스스로 외치게 될 것이라고.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은 1848년 2월 혁명에서의 계급투쟁을 다룬 [프랑스에서의 계급투쟁]과 보나파르티즘을 무너뜨린 파리 코뮌을 상세히 다룬 [프랑스 내전]과 함께 ‘프랑스 혁명사 3부작’으로 통칭되고 있다.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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