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이든 발 12시 30분 동서 미스터리 북스 77
프리먼 윌스 크로프츠 지음, 맹은빈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도서(倒敍;inverted) 추리소설'에 발목을 잡히다
- 프리먼 크로프츠, [통]/[크로이든발 12시30분], 1920~1934.


추리소설을 좋아했지만 영국작가 '크로프츠(Crofts)'는 처음 들었다.

어린 시절의 나를 책으로 유인한 게 '추리소설'이었다지만, 사실 난 코넌 도일과 애거서 크리스티, 엘러리 퀸의 팬이었지 다른 작가들에게는 별 관심을 두지는 않았다. 코넌 도일이나 애거서 크리스티와 함께 영국 유명 추리소설 작가로 꼽힌다는 길버트 체스터튼의 '브라운 신부'나, 엘러리 퀸의 전형과 같은 S.S. 반다인은 그래도 들어는 봤더랬지만, '프리먼 크로프츠'는 진심 처음 듣는 작가였다.

'크로프츠'는 역시 격주 토요일 동네 뒷산 초안산 종주를 하고 마을 도서관에서 본 <동서미스터리북스>의 각종 '작품해설'을 통해 접하게 된 영국의 추리소설 작가였는데, 
내가 그를 알게 된 '테마' 또는 '키 워드'는 '도서(倒敍;inverted) 추리소설'이다.


"'슬픈 당신의 에이미로부터'라고 서명한 편지, 커튼에 꽂혔던 굽은 핀, 압지에 남은 틀림없는 필적의 자국, 경감은 이러한 세 가지 발견으로 훼릭스의 유죄를 결정지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와는 반대로 '통(The cask)'을 열었던 흔적에 대해서는 끝내 아무런 단서도 얻지 못했는데, 번리(경감)로서는 이토록 철저한 수사를 한 이상 '통'을 연 것은 여기가 아니라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번리는 자기의 수사가 바야흐로 정확한 궤도로 나아가고 있다는 자신을 얻어 더욱 그러한 생각으로 밀고 나갔다..."
- [통], <제1부. 런던>, 프리먼 크로프츠, 1920.


'도서(倒敍;inverted) 추리소설'이란 '거꾸로 뒤집어서 역행적으로 서술한다'로 번역될 수 있겠는데, 사실관계의 퍼즐을 맞추면서 퀴즈를 풀듯 범인을 추적하는 기존 추리소설의 서술방식을 '뒤집어(倒) 서술하는(敍)' 방식으로 보면 된다.

영국의 철도회사 토목기사였던 프리먼 윌스 크로프츠(Freeman Wills Crofts:1879~1957)의 추리소설에서는 다른 추리소설 작가들의 주인공 같은 '천재 명탐정'이 없다. 크로프츠의 '프렌치 경감'이나 '번리', '르빠르쥬' 경감은 그냥 좀더 부지런하고 유능한 '민완형사'이고, 사립탐정 '라 튀슈' 또한 갈피를 영 잡지 못하다가 우연히 실마리를 잡고는 '머리'가 아닌 '발'로 끝까지 추적하는 '프롤레타리아' 탐정에 가깝다.

계명대 영문과 계정민 교수는 [범죄소설의 계보학](2018)을 추적하며, 주인공의 변천 과정을 '범죄자-부르주아(또는 귀족) 탐정-프롤레타리아 탐정'의 계보로 정리한다. 

18세기 영국 초기 자본주의 시대 '뉴게이트 소설'은 중죄인 수감소 '뉴게이트' 감옥의 범죄자들의 악행을 고발하는 내용의 글이었다는데 오히려 이런 찌라시들이 당대의 불평등한 체제를 반증하는 '영웅소설'로 반전되는 과정이었고,
이런 흐름에 맞서 보수주의 귀족(또는 부르주아 지배계급) 층에서 내세운 '반(反) 영웅'들이 바로 셜록 홈즈와 에르큘 포와로, 오귀스트 뒤팽과 파일로 번스 또는 엘러리 퀸 같은 명문대 출신 '천재 탐정'들이었다. 내 어린 시절의 영웅이었던 이 탐정들의 임무는 '체제 수호'였고, 성인이 되어 이 사실을 알게 된 나는 잠시 실망하기도 했더랬다.
이후 레이먼드 챈들러 같은 미국식 모험소설로 이행되면서 주인공은 부패비리로 짤린 전직 형사와 같은 '생계형' 탐정, 즉 '프롤레타리아 탐정'으로 변화한다. 007 같은 특수요원의 전신이 아닐까 싶은 이 '프롤레타리아 탐정'은 두뇌는 '천재' 수준이 아니지만 성실과 근면, 무엇보다 목숨을 걸 정도의 끈기와 투지로 사건을 해결한다.

항상 이행과 변천 과정에서 '과도기' 또는 '이행기'에 집착하는 나는 여기에 또 '크로프츠'를 먼저 대입해 본다.


"'몹시 빙 돌려서 말씀하시는 것 같군요. 분명히 말한다면 내가 아내를 죽였다고 말하고 싶으신 겁니까?'
'결코 그런 뜻으로 말씀드린 것은 아닙니다. 이런 사건의 경우, 누구를 막론하고 일단 모든 관계자의 행동을 조사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할 당연한 직무로서, 우리의 뜻은 그렇지 않습니다만,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 [통], <제2부. 파리>, 프리먼 크로프츠, 1920.


이제 '크로프츠'의 '도서 추리소설' 영역에 들어서기 전에, 그의 첫 작품 [통(The Cask)](1920)을 읽어보자.

프랑스로부터 영국으로 건너온 화물이 담긴 '술통(cask)' 속에서 여인의 시체가 발견되면서 전개되는 이야기는 런던의 '번리' 경감과 파리의 '르빠르쥬' 경감의 멋진 케미로 범인을 거의 잡을 뻔한 1~2부와, 누명을 쓴 프랑스계 영국인 훼릭스(희생자 아네트의 전남친)가 변호사와 사설탐정를 고용하면서 진범인 피살자 아네트의 남편 보와라크의 혐의를 잡고 누명을 벗는 3부로 구성된다. 런던과 파리 경시청의 협조를 통해 밝혀지는 범인은 고전적 의미의 '누명'을 쓴 게 되고 이에 반전을 가하면서 진범을 잡는 탐정은 그럼에도 '천재'가 아닌 일단 두 경감들 못지않게 부지런하고 끈기있는 인물이다.

독자들은 '크로프츠'를 읽으며 '천재 탐정'들로 인해 좌절하지 않아도 된다. 그저 함께 쫓아다니고 같이 회의하면서 좌충우돌하면 된다. 
결국 '범인'은 밝혀지게 되어 있으니.

내가 생각하기로 '미스터리소설'에서는 최후에 범인이 드러나지 않아도 좋으나, '추리소설'에서는 범인이 밝혀져야 한다.
범인을 반드시 잡아야 하는 소설이 바로 '추리소설'인 것이다.


"그랬었구나! 센트 캐더린 부두로 간 '통(The cask)'-시체를 넣은 '통'-은 북 정거장에서가 아니라, 보와라크의 집에서 직접 나왔었구나! 이 점을 깨닫지 못했다니, 이 무슨 실수랴! 겨우 서광이 보이기 시작했다. 보와라크가 자기 아내를 죽인 것이다. 그녀가 살고 있던 그 집에서 죽인 것이다. 그리고 거기서 시체를 '통'에 넣어 훼릭스에게 직접 보낸 것이다. 마침내 (탐정) 라 튀슈는 애타게 바랐던 증거를 파악했다. 훼릭스의 억울한 혐의를 풀고 보와라크를 교수대로 보낼 결정적인 증거를 잡은 것이다."
- [통], <제3부. 런던과 파리>, 프리먼 크로프츠, 1920.


그렇게 '크로프츠'의 영국과 프랑스계 혼혈 사립탐정 '라 튀슈'는 매우 성신근면한 활약을 통해 진범 보와라크(피살자 아네트의 남편)를 잡는다. 결말에서 범인은 저택을 불싸지르는 한바탕 활극을 연출하고는 스스로 생을 마감하지만, 결국 '라 튀슈'의 활약으로 댓가를 치르게 된 것인데, 20세기 초 '추리소설'의 끝은 법에 의한 '공적 응징'보다 대부분 '자살'하게 만드는 '사적 응징'이 많다.

'크로프츠'의 데뷔작이자 대표작 [통](1920)의 결론도 그렇다.


"... 그러나 '살인' 뒤에 오는 것은 무엇인가? 아무것도 없다! 불쾌한 결과가 생기는 것은 '살인'이 발각되었을 때뿐이다. 그런데 이 '살인'은 발각당할 리가 없다. 만일 예기치 않았던 사태가 일어나 일이 발각된다 해도 자살이라고 생각될 것이다. 그것으로 모든 일은 끝아다. 찰스는 죽은 다음의 세계 따위는 믿지 않았다. 이리하여 찰스는 마음 속으로는 의론의 논거가 빈약하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자신에게 납득시키려고 애썼다."
- [크로이든발 12시 30분], 프리먼 크로프츠, 1934.


18세기부터 20세기까지 산업발전과 문명교류 및 문화진보의 중추가 되었던 철도산업에 종사했던 이공계 토목기사 '프리먼 크로프츠'가 부업으로 '추리소설'을 썼다는 건,
21세기 지금으로 치면 첨단 통신산업 또는 AI 기반 산업의 '본캐' 종사자가 '부캐'로 'SF 공상과학소설'을 쓰는 격 아닐까 싶다.

그 한 사례로, 중국계 미국인 작가 테드 창(Ted Chang)이 있다.

나로 말할 거 같으면, 온갖 계산과 협상이 난무하는 손해보험회사의 보상직원이 온갖 인류의 '고전'을 읽고 '서평'을 써보겠다며 독후감을 남발하고 있어, '크로프츠' 같은 본업과 부업의 시너지를 별로 못보고 있기는 하지만.

'크로프츠'의 인물들이 활약하는 성실과 근면의 현장은 이공계 토목기사 '크로프츠'다운 세밀한 묘사와 현실감 있는 '리얼리즘'으로 가득하다. 

아일랜드 출생 영국 추리소설가 '크로프츠'의 '리얼리즘'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이 지점에서 등장하는 것이 바로,
'도서(倒敍;inverted) 추리소설'이다.

1920년 리얼리즘' 추리소설 [통]으로 데뷔한 크로프츠'의 15번째 작품인 [크로이든발 12시30분](1934)은 '도서 추리소설'의 '세계 3대 고전' 중 하나로 꼽힌다고 한다.

영국에서 프랑스로 건너가는 '크로이든 출발 ' 0시 30분 비행기에서 독살당한 희생자 앤드루 클라우드 이야기로부터 1장을 시작하여 바로 2장부터 그를 독살한 조카 찰스 스윈번이 주인공이 되어 범죄를 계획하고 실행하며 이를 덮기 위해 또 다른 살인을 결행하는 과정이 찰스의 심리 묘사와 함께 리얼하게 전개된다. 찰스의 심리적 공포와 자기합리화를 따라가다 보면 독자는 더 이상 범인을 쫓는 '추리소설'의 독자가 아니다. 작가가 애초에 서술을 뒤집었듯(倒敍;invert), 독자 또한 전통적인 추리소설의 독법을 뒤집게 된다(倒敍;inverted)'.


"'다음에 또 한 가지 머리에 떠오르는 것이 있었습니다. 즉 알약을 쓰면 범인은 절대로 안전하다고 여길 만한 알리바이를 만들 수 있다는 것입니다. 병 속에 독이 든 알약을 넣기만 하면 희생자가 죽었을 때 범인은 얼마든지 멀리 떨어져 있을 수 있으니까요.'
...
'범죄 장소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다는 것이 결정적인 알리바이처럼 보이지만, 실은 그렇지 않았다는 말씀이지요?'
'그렇습니다. 하지만 평범한 두뇌를 가진 사람에게는 이것이 무난히 통용되었겠지요. 현장에 없었는데 어떻게 혐의가 걸리겠는가 생각할 테니까요. 그리고 현장에서 멀리 떨어져 있을수록, 완전히 모습을 감출수록 완벽한 것처럼 생각되겠지요. 이치에 맞든 맞지 않든 그것이 사람의 생각 아닙니까?'"
- [크로이든발 12시 30분], 프리먼 크로프츠, 1934.


[크로이든발 12시30분](1934)은 살인자의 관점에서 '완전범죄'를 구성하는 과정을 서술하다가 마지막에 런던 경시청 조제프 프렌치 경감의 의심과 수사로 되밝혀지는 이중 플롯의 서사를 보여주는데, 범인 찰스의 '자기합리화' 과정에서는 헛점이 없어 보였을지 모르지만, 런던 경시청 프렌치 경감의 노련한 수사기법으로 무너지는 '불완전범죄'의 진상을 볼 수 있다. 아마도 이공계 토목기사 '크로프츠' 작가는 이 '도서(倒敍;invert)' 서술기법을 위해 당시 경찰당국의 과학수사 기법을 열심히 취재하고 면밀하게 연구분석했으리라, 소설을 읽는내내 독자로서 나는 추측해 마지 않았다.

이러한 점에서 이번에 비록 처음 알게 되었지만, 20세기 초 영국의 추리소설가 프리먼 크로프츠의 '리얼리즘' 추리소설에 깊은 경의를 표하며, 이제 그만 다른 쟝르로 옮겨갈까 싶다가 '도서(倒敍) 추리소설'의 '세계 3대 고전'은 그래도 읽어봐야 하지 않겠는가, 라는 생각에,

'프랜시스 아일즈'의 [살의](1931)와,
'리처드 헐'의 [백모 살인사건](1935)을,
마을 도서관에서 대출하게 된다.

이렇게 난 또 다시, 그리고 여즉,
'도서(倒敍:inverted)' 추리소설에 발목을 잡힌 채,
당분간 '미스터리소설'의 숲을 거닐게 되었다.

***

1. [통(The Cask)](1920), Freeman W. Crofts, 오형태 옮김, <동서문화사>, 1977~2015.
2. [크로이든발 12시30분(The 12:30 from Croydon)](1934), Freeman W. Crofts, 맹은빈 옮김, <동서문화사>, 1977~2003.
3. [범죄소설의 계보학], 계정민, <소나무>, 201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전자책]
F. W. 크로프츠 / 프리디우스 / 2025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도서(倒敍;inverted) 추리소설'에 발목을 잡히다
- 프리먼 크로프츠, [통]/[크로이든발 12시30분], 1920~1934.


추리소설을 좋아했지만 영국작가 '크로프츠(Crofts)'는 처음 들었다.

어린 시절의 나를 책으로 유인한 게 '추리소설'이었다지만, 사실 난 코넌 도일과 애거서 크리스티, 엘러리 퀸의 팬이었지 다른 작가들에게는 별 관심을 두지는 않았다. 코넌 도일이나 애거서 크리스티와 함께 영국 유명 추리소설 작가로 꼽힌다는 길버트 체스터튼의 '브라운 신부'나, 엘러리 퀸의 전형과 같은 S.S. 반다인은 그래도 들어는 봤더랬지만, '프리먼 크로프츠'는 진심 처음 듣는 작가였다.

'크로프츠'는 역시 격주 토요일 동네 뒷산 초안산 종주를 하고 마을 도서관에서 본 <동서미스터리북스>의 각종 '작품해설'을 통해 접하게 된 영국의 추리소설 작가였는데, 
내가 그를 알게 된 '테마' 또는 '키 워드'는 '도서(倒敍;inverted) 추리소설'이다.


"'슬픈 당신의 에이미로부터'라고 서명한 편지, 커튼에 꽂혔던 굽은 핀, 압지에 남은 틀림없는 필적의 자국, 경감은 이러한 세 가지 발견으로 훼릭스의 유죄를 결정지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와는 반대로 '통(The cask)'을 열었던 흔적에 대해서는 끝내 아무런 단서도 얻지 못했는데, 번리(경감)로서는 이토록 철저한 수사를 한 이상 '통'을 연 것은 여기가 아니라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번리는 자기의 수사가 바야흐로 정확한 궤도로 나아가고 있다는 자신을 얻어 더욱 그러한 생각으로 밀고 나갔다..."
- [통], <제1부. 런던>, 프리먼 크로프츠, 1920.


'도서(倒敍;inverted) 추리소설'이란 '거꾸로 뒤집어서 역행적으로 서술한다'로 번역될 수 있겠는데, 사실관계의 퍼즐을 맞추면서 퀴즈를 풀듯 범인을 추적하는 기존 추리소설의 서술방식을 '뒤집어(倒) 서술하는(敍)' 방식으로 보면 된다.

영국의 철도회사 토목기사였던 프리먼 윌스 크로프츠(Freeman Wills Crofts:1879~1957)의 추리소설에서는 다른 추리소설 작가들의 주인공 같은 '천재 명탐정'이 없다. 크로프츠의 '프렌치 경감'이나 '번리', '르빠르쥬' 경감은 그냥 좀더 부지런하고 유능한 '민완형사'이고, 사립탐정 '라 튀슈' 또한 갈피를 영 잡지 못하다가 우연히 실마리를 잡고는 '머리'가 아닌 '발'로 끝까지 추적하는 '프롤레타리아' 탐정에 가깝다.

계명대 영문과 계정민 교수는 [범죄소설의 계보학](2018)을 추적하며, 주인공의 변천 과정을 '범죄자-부르주아(또는 귀족) 탐정-프롤레타리아 탐정'의 계보로 정리한다. 

18세기 영국 초기 자본주의 시대 '뉴게이트 소설'은 중죄인 수감소 '뉴게이트' 감옥의 범죄자들의 악행을 고발하는 내용의 글이었다는데 오히려 이런 찌라시들이 당대의 불평등한 체제를 반증하는 '영웅소설'로 반전되는 과정이었고,
이런 흐름에 맞서 보수주의 귀족(또는 부르주아 지배계급) 층에서 내세운 '반(反) 영웅'들이 바로 셜록 홈즈와 에르큘 포와로, 오귀스트 뒤팽과 파일로 번스 또는 엘러리 퀸 같은 명문대 출신 '천재 탐정'들이었다. 내 어린 시절의 영웅이었던 이 탐정들의 임무는 '체제 수호'였고, 성인이 되어 이 사실을 알게 된 나는 잠시 실망하기도 했더랬다.
이후 레이먼드 챈들러 같은 미국식 모험소설로 이행되면서 주인공은 부패비리로 짤린 전직 형사와 같은 '생계형' 탐정, 즉 '프롤레타리아 탐정'으로 변화한다. 007 같은 특수요원의 전신이 아닐까 싶은 이 '프롤레타리아 탐정'은 두뇌는 '천재' 수준이 아니지만 성실과 근면, 무엇보다 목숨을 걸 정도의 끈기와 투지로 사건을 해결한다.

항상 이행과 변천 과정에서 '과도기' 또는 '이행기'에 집착하는 나는 여기에 또 '크로프츠'를 먼저 대입해 본다.


"'몹시 빙 돌려서 말씀하시는 것 같군요. 분명히 말한다면 내가 아내를 죽였다고 말하고 싶으신 겁니까?'
'결코 그런 뜻으로 말씀드린 것은 아닙니다. 이런 사건의 경우, 누구를 막론하고 일단 모든 관계자의 행동을 조사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할 당연한 직무로서, 우리의 뜻은 그렇지 않습니다만,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 [통], <제2부. 파리>, 프리먼 크로프츠, 1920.


이제 '크로프츠'의 '도서 추리소설' 영역에 들어서기 전에, 그의 첫 작품 [통(The Cask)](1920)을 읽어보자.

프랑스로부터 영국으로 건너온 화물이 담긴 '술통(cask)' 속에서 여인의 시체가 발견되면서 전개되는 이야기는 런던의 '번리' 경감과 파리의 '르빠르쥬' 경감의 멋진 케미로 범인을 거의 잡을 뻔한 1~2부와, 누명을 쓴 프랑스계 영국인 훼릭스(희생자 아네트의 전남친)가 변호사와 사설탐정를 고용하면서 진범인 피살자 아네트의 남편 보와라크의 혐의를 잡고 누명을 벗는 3부로 구성된다. 런던과 파리 경시청의 협조를 통해 밝혀지는 범인은 고전적 의미의 '누명'을 쓴 게 되고 이에 반전을 가하면서 진범을 잡는 탐정은 그럼에도 '천재'가 아닌 일단 두 경감들 못지않게 부지런하고 끈기있는 인물이다.

독자들은 '크로프츠'를 읽으며 '천재 탐정'들로 인해 좌절하지 않아도 된다. 그저 함께 쫓아다니고 같이 회의하면서 좌충우돌하면 된다. 
결국 '범인'은 밝혀지게 되어 있으니.

내가 생각하기로 '미스터리소설'에서는 최후에 범인이 드러나지 않아도 좋으나, '추리소설'에서는 범인이 밝혀져야 한다.
범인을 반드시 잡아야 하는 소설이 바로 '추리소설'인 것이다.


"그랬었구나! 센트 캐더린 부두로 간 '통(The cask)'-시체를 넣은 '통'-은 북 정거장에서가 아니라, 보와라크의 집에서 직접 나왔었구나! 이 점을 깨닫지 못했다니, 이 무슨 실수랴! 겨우 서광이 보이기 시작했다. 보와라크가 자기 아내를 죽인 것이다. 그녀가 살고 있던 그 집에서 죽인 것이다. 그리고 거기서 시체를 '통'에 넣어 훼릭스에게 직접 보낸 것이다. 마침내 (탐정) 라 튀슈는 애타게 바랐던 증거를 파악했다. 훼릭스의 억울한 혐의를 풀고 보와라크를 교수대로 보낼 결정적인 증거를 잡은 것이다."
- [통], <제3부. 런던과 파리>, 프리먼 크로프츠, 1920.


그렇게 '크로프츠'의 영국과 프랑스계 혼혈 사립탐정 '라 튀슈'는 매우 성신근면한 활약을 통해 진범 보와라크(피살자 아네트의 남편)를 잡는다. 결말에서 범인은 저택을 불싸지르는 한바탕 활극을 연출하고는 스스로 생을 마감하지만, 결국 '라 튀슈'의 활약으로 댓가를 치르게 된 것인데, 20세기 초 '추리소설'의 끝은 법에 의한 '공적 응징'보다 대부분 '자살'하게 만드는 '사적 응징'이 많다.

'크로프츠'의 데뷔작이자 대표작 [통](1920)의 결론도 그렇다.


"... 그러나 '살인' 뒤에 오는 것은 무엇인가? 아무것도 없다! 불쾌한 결과가 생기는 것은 '살인'이 발각되었을 때뿐이다. 그런데 이 '살인'은 발각당할 리가 없다. 만일 예기치 않았던 사태가 일어나 일이 발각된다 해도 자살이라고 생각될 것이다. 그것으로 모든 일은 끝아다. 찰스는 죽은 다음의 세계 따위는 믿지 않았다. 이리하여 찰스는 마음 속으로는 의론의 논거가 빈약하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자신에게 납득시키려고 애썼다."
- [크로이든발 12시 30분], 프리먼 크로프츠, 1934.


18세기부터 20세기까지 산업발전과 문명교류 및 문화진보의 중추가 되었던 철도산업에 종사했던 이공계 토목기사 '프리먼 크로프츠'가 부업으로 '추리소설'을 썼다는 건,
21세기 지금으로 치면 첨단 통신산업 또는 AI 기반 산업의 '본캐' 종사자가 '부캐'로 'SF 공상과학소설'을 쓰는 격 아닐까 싶다.

그 한 사례로, 중국계 미국인 작가 테드 창(Ted Chang)이 있다.

나로 말할 거 같으면, 온갖 계산과 협상이 난무하는 손해보험회사의 보상직원이 온갖 인류의 '고전'을 읽고 '서평'을 써보겠다며 독후감을 남발하고 있어, '크로프츠' 같은 본업과 부업의 시너지를 별로 못보고 있기는 하지만.

'크로프츠'의 인물들이 활약하는 성실과 근면의 현장은 이공계 토목기사 '크로프츠'다운 세밀한 묘사와 현실감 있는 '리얼리즘'으로 가득하다. 

아일랜드 출생 영국 추리소설가 '크로프츠'의 '리얼리즘'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이 지점에서 등장하는 것이 바로,
'도서(倒敍;inverted) 추리소설'이다.

1920년 리얼리즘' 추리소설 [통]으로 데뷔한 크로프츠'의 15번째 작품인 [크로이든발 12시30분](1934)은 '도서 추리소설'의 '세계 3대 고전' 중 하나로 꼽힌다고 한다.

영국에서 프랑스로 건너가는 '크로이든 출발 ' 0시 30분 비행기에서 독살당한 희생자 앤드루 클라우드 이야기로부터 1장을 시작하여 바로 2장부터 그를 독살한 조카 찰스 스윈번이 주인공이 되어 범죄를 계획하고 실행하며 이를 덮기 위해 또 다른 살인을 결행하는 과정이 찰스의 심리 묘사와 함께 리얼하게 전개된다. 찰스의 심리적 공포와 자기합리화를 따라가다 보면 독자는 더 이상 범인을 쫓는 '추리소설'의 독자가 아니다. 작가가 애초에 서술을 뒤집었듯(倒敍;invert), 독자 또한 전통적인 추리소설의 독법을 뒤집게 된다(倒敍;inverted)'.


"'다음에 또 한 가지 머리에 떠오르는 것이 있었습니다. 즉 알약을 쓰면 범인은 절대로 안전하다고 여길 만한 알리바이를 만들 수 있다는 것입니다. 병 속에 독이 든 알약을 넣기만 하면 희생자가 죽었을 때 범인은 얼마든지 멀리 떨어져 있을 수 있으니까요.'
...
'범죄 장소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다는 것이 결정적인 알리바이처럼 보이지만, 실은 그렇지 않았다는 말씀이지요?'
'그렇습니다. 하지만 평범한 두뇌를 가진 사람에게는 이것이 무난히 통용되었겠지요. 현장에 없었는데 어떻게 혐의가 걸리겠는가 생각할 테니까요. 그리고 현장에서 멀리 떨어져 있을수록, 완전히 모습을 감출수록 완벽한 것처럼 생각되겠지요. 이치에 맞든 맞지 않든 그것이 사람의 생각 아닙니까?'"
- [크로이든발 12시 30분], 프리먼 크로프츠, 1934.


[크로이든발 12시30분](1934)은 살인자의 관점에서 '완전범죄'를 구성하는 과정을 서술하다가 마지막에 런던 경시청 조제프 프렌치 경감의 의심과 수사로 되밝혀지는 이중 플롯의 서사를 보여주는데, 범인 찰스의 '자기합리화' 과정에서는 헛점이 없어 보였을지 모르지만, 런던 경시청 프렌치 경감의 노련한 수사기법으로 무너지는 '불완전범죄'의 진상을 볼 수 있다. 아마도 이공계 토목기사 '크로프츠' 작가는 이 '도서(倒敍;invert)' 서술기법을 위해 당시 경찰당국의 과학수사 기법을 열심히 취재하고 면밀하게 연구분석했으리라, 소설을 읽는내내 독자로서 나는 추측해 마지 않았다.

이러한 점에서 이번에 비록 처음 알게 되었지만, 20세기 초 영국의 추리소설가 프리먼 크로프츠의 '리얼리즘' 추리소설에 깊은 경의를 표하며, 이제 그만 다른 쟝르로 옮겨갈까 싶다가 '도서(倒敍) 추리소설'의 '세계 3대 고전'은 그래도 읽어봐야 하지 않겠는가, 라는 생각에,

'프랜시스 아일즈'의 [살의](1931)와,
'리처드 헐'의 [백모 살인사건](1935)을,
마을 도서관에서 대출하게 된다.

이렇게 난 또 다시, 그리고 여즉,
'도서(倒敍:inverted)' 추리소설에 발목을 잡힌 채,
당분간 '미스터리소설'의 숲을 거닐게 되었다.

***

1. [통(The Cask)](1920), Freeman W. Crofts, 오형태 옮김, <동서문화사>, 1977~2015.
2. [크로이든발 12시30분(The 12:30 from Croydon)](1934), Freeman W. Crofts, 맹은빈 옮김, <동서문화사>, 1977~2003.
3. [범죄소설의 계보학], 계정민, <소나무>, 201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밀실 황금시대의 살인 - 눈의 저택과 여섯 개의 트릭
가모사키 단로 지음, 김예진 옮김 / 리드비 / 2025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밀실트릭'의 '고전'적 요소들
- [노랑방의 수수께끼], 가스통 르루, 1907.


추리소설의 '본격파'로 분류되는 '밀실살인'의 거장 존 딕슨 카(John Dickson Carr : 1906~1977)의 작품 몇 권을 읽다 보니, 이 '밀실트릭'에도 '고전'이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찾아봤다. 

미스터리소설의 원조격인 에드거 앨런 포의 뒤팽 탐정 3부작 중 첫 편인 [모르그 가의 살인](1841)에서 설정된 모녀 살인 현장도 어찌보면 '밀실'의 형태였지만, 범인이 황당하게도 오랑우탄이었으니, 소설 속 사후 '밀실'은 사전 계획된 트릭이 전혀 아닌 우연한 살인 현장에 불과했다.

추리소설의 계보를 보면, 18세기 영국의 '뉴게이트 소설'로 불리던 범죄자가 주인공인 잡소설들이 그 기원이다. 그 찌라시들은 시민 계몽용으로 '이렇게 살면 안된다'라는 교훈집이었다. 그러나 불평등하고 부조리한 세상을 살던 다수 민중들의 눈에는 '뉴게이트' 감옥에 갇힌 중범죄자들이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등장하면서 일종의 세상에 균열을 내는 '영웅'이 되어버리는 '역설'을 드러내고 말았다. 

이에 대한 '반작용'이 바로 지배계급에 속하던 코넌 도일과 애거서 크리스티의 19세기 영국식 '탐정' 소설이었는데, 탐정소설의 시조새인 에드거 앨런 포의 탐정 오거스트 뒤팽도 귀족 풍이었지만, 포의 괴기담은 오히려 몰락해 가는 전근대적 귀족사회를 비판적으로 보는 편이었다([어셔가의 몰락]). 
한편, 코넌 도일의 탐정 셜록 홈즈나 애거서 크리스티의 탐정 에르퀼 포와로는 본격적인 '탐정'으로서 지배질서를 저해하는 범죄자들을 심판하는 당대 지배계급의 '부역자'에 가까워지고 있다. 실례로 코넌 도일과 애거서 크리스티의 세계관은 다분히 보수적이었다. 잉글랜드인 탐정 홈즈의 최대 적수는 아일랜드인 모리어티 교수였고, 영국 제국주의 '본국' 사람 크리스티의 수작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에서 불길한 노래의 소재는 '인디언'인데 원래는 '검둥이(nigger)'였다.

20세기 초 미국의 S.S. 반 다인과 엘러리 퀸의 미스터리 추리소설은 '추리기법'은 직관적이고 논리적으로 뒤집어 버린 '연역소거법'으로 색다르지만 기존 영국의 지배계급 탐정들을 어느 정도 답습하는 형태였다. 일단 반 다인의 탐정 파일로 번스와 엘러리 퀸의 탐정 엘러리 퀸은 상류 계층의 자제에 하버드를 나온 천재다. 오거스트 뒤팽이나 셜록 홈즈의 후예다.

그럼에도 현실에는 있을 수 없는 살인사건의 '트릭'을 구성하면서 '현실파' 추리소설이 '본격파' 추리소설로 이행하는 가교 역할을 하고 있다는 생각을 나는 한다.

그렇게 '리얼리즘'을 떠나 '본격파'로 넘어오게 되면, 현실의 살인사건이 아닌, 오로지 추리소설만을 위한 살인사건들을 다루는 '본격파' 추리소설의 단골 소재로 등장하는 것이 바로 '밀실살인' 또는 '밀실트릭'이다.


"... 눈에 보이는 사실은 그것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여러가지로 받아들여지는 것이므로 종종 판단을 그르치는 원인이 됩니다! 누차 말하지만 그것을 추리의 근거로 하면 안됩니다! 우선 추리를 해야 합니다. 그리고 눈에 보이는 사실이 자기 '추리(이성)의 동그라미' 속에 잘 들어가느냐 여부를 조사해 보는 것입니다. 지금 수중에 있는 것은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의 극히 작은 '(이성의) 동그라미'입니다.
다시 말해 범인은 '노랑방'에는 전혀 없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면 왜 모든 사람은 범인이 방에 있었다고 생각했을까요? 범인이 있었던 흔적 때문입니다! 그러나 범인은 훨씬 전에 방을 나가 버릴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아니 그보다도 범인은 아무래도 훨씬 전에 방을 나가지 않으면 안되었을 것입니다. 저의 '이성'이 범인은 훨씬 전에 나가 있었어야만 한다고 일러주고 있습니다."
- [노랑방의 수수께끼], <이성이 지시한 원>, 가스통 르루, 1907.


'밀실트릭'의 '고전'인 [노랑방의 수수께끼](1907)를 쓴 작가, '가스통 르루(Gaston Leroux : 1868~1927)라...
어딘가 낯익다 싶은데 바로 [오페라의 유령](1910) 원작자다. 

뮤지컬로 유명한 이야기의 소설 원작자인데, [오페라의 유령]도 극장 지하공간에 사는 '팬텀'이라는 괴기성이 있지만, 가스통 르루가 저널리스트 직업을 접고 본격 소설을 쓰게 된 첫 작품 [노랑방의 수수께끼]는 '본격파' 미스터리 소설의 '원조'와도 같다.

살인을 당하지는 않았지만 두세번 살해 위험에 처했던 피해자 마띨드 스땅제르송 양의 별채 침실 '노랑방(La Chambre Jaune)'이 '밀실'이다. 

그녀가 거의 죽음 직전에 구해진 그 '노랑방'은 도저히 범인이 나갈 수 없는 구조, 즉 사건 직후 나갈 문도 안에서 잠겼고 창문 또한 열린 흔적이 없는 등의 전형적인 '밀실'의 요소를 갖추고 있다.

18세의 천재소년이자 <에뽀끄> 신문기자인 조제프 '룰르따비유(둥글고 큰 머리)'는 파리 경찰국 소속 민완 탐정 프레드릭 라루상과 두뇌 경쟁을 하며 "범인은 이 안에 있다!"는 가정 하에 '이성(머리)'을 '올바로 쓰기 위해' 노력한다. 룰르따비유는 본인의 말에 의하면 이성이 지시한 '동그라미(논리구조)' 안에 각 사실관계를 앞뒤가 맞물리도록 배치하기 위해 피해자의 과거 행적까지 쫓아 본국인 프랑스에서 미국행도 불사하는 열혈청년이다. 직관과 논리를 우선시하는 점에서 오거스트 뒤팽, 파일로 번스와 엘러리 퀸 등 천재 탐정의 면모가 얼핏 보인다.

그렇게 '노랑방'의 첫번째 '완전밀실'과 두번째 사건현장인 '복도'의 '광의의 밀실' 등을 거치면서 룰르따비유는 좌층우돌은 하지만 범인을 추적해 간다.

'고전'은 아니지만, 최근의 '본격파' 밀실트릭 추리소설 중 하나로서 일본 작가 가모사키 단로(1985~)는 아주 대놓고 '본격 밀실살인'만 다룬 [밀실황금시대의 살인](2022)이라는 소설에서 '밀실'을 다음과 같이 분류한다.


"이 나라에서 '밀실살인'이 빈번히 일어나게 된 후로 (일본) 법무성에서는 '밀실'의 정의를 셋으로 분류했다. '완전밀실'과 '불완전밀실', 그리고 '광의의 밀실'이다. '완전밀실'과 '불완전밀실'은 합쳐서 '협의의 밀실'이라고도 불린다.
'완전밀실'의 정의는 실내에서 살인이 일어나고, 방 안의 모든 문과 창문이 잠긴 상태를 가리킨다. 말하자면 가장 표준적인 타입의 밀실이다.
그에 반해 '불완전밀실'의 정의는 실내에서 살인이 일어나고, 방 안의 모든 문과 창문이 잠긴 상태에 준하는 상황을 말한다. 안으로 열리는 문 앞에 장애물이 놓여 있어서 그 장애물 때문에 문이 열리지 않는다거나, 창문은 열려 있지만 워낙 높은 층이어서 도저히 아무도 드나들 수 없었다거나, 이런 타입의 밀실이 '불완전밀실'이라 불린다.
그리고 '광의의 밀실'의 정의는 '완전밀실'과 '불완전밀실', 양쪽의 정의에 모두 들어맞지 않는 상태를 가리킨다. 예컨대 눈 밀실로 대표되는 발자국 없는 살안이나, 살인 현장이 된 광장으로 침입하는 경로가 카메라로 감시당하고 있어 지나갈 수 없는 상황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 [밀실황금시대의 살인], <2장. 밀실트릭의 논리적 해명>, 가모사키 단로, 2022.


일본 최초로 '밀실살인'이 일어난 후 '밀실트릭'이 완벽하게 구성되어 풀리지 않을 경우 '무죄'가 된다는 판례에 따라 일본 법무성이 분석한 '밀실'의 정의라는 설정과 전혀 진지하지 않고 범인의 살인 의도 또한 별 개연성도 없이 오직 '밀실트릭'만 난무하는 가모시키 단로의 소설 [밀실황금시대의 살인](2022)에는 온갖 '밀실트릭'의 요소들이 등장한다. '비밀통로', '원격살인', 금세 물을 얼리는 '액체질소', 고무줄과 플라스틱 병 등등... 결코 현실적이지 않지만 소설에서는 있을 법한 트릭들이다.

그럼에도 '밀실살인'에서 변함없이 단연 으뜸으로 꼽는 최고의 '고전'적 트릭 하나가 있다. 바로 '시간'이다. '밀실'이라는 폐쇄된 '공간'을 넘어설 수 있는 것은 '시간' 밖에 없다. 즉, '시간차'인데, '밀실'이라는 동일 '공간'에서 사건 당시가 아닌 그 이전의 '시간'에 이미 사건이 발생했거나 예정되는 방식이다. 
따라서, '밀실'이라는 '공간'을 초월하는 최고의 트릭은 '시간'이 된다.


"프레드릭 라루상, 역시 대단한 솜씨군. 정말 훌륭한 솜씨야... 정말 진심으로 존경하는 바이다. 그러나 오늘 필요한 것은 단순한 탐정을 한발 앞선 그런 일을 하는 것이다. 경험이 가르쳐 주는 일에서 한발 앞선 그런 일을 하는 것이다. 어쨌든 '논리적'이어야 한다. 그 '논리적'이라는 것도 즉, 2+2=4라고 할때 신(神)이 논리적인 것과 뜻이 같은, 그런 '논리적'인 것이 되어야 한다. 중요한 것은 '이성(理性)'을 바르게 쓰는 일이다!"
- [노랑방의 수수께끼], <사건의 현장>, 가스통 르루, 1907.


가스통 르루의 '밀실트릭' 고전 [노랑방의 수수께끼](1907)의 결론도 바로 '시간차'였다. 
'노랑방'의 '완전밀실'은 '시간차' 공격으로 간단히 해결하고, 복도와 같은 '광의의 밀실'에서는 '범인은 이 안에 있다'는 요소로 단박에 해결해 버린다.

물론 이야기의 앞뒤가 맞게 전개되도록 하기 위해 다소 우연적인 요소들이 포함되어 독자들의 추리를 방해하는 점이 있기는 하다. 그래도 어떤가. 21세기 현대적 '본격파' 미스터리 소설가인 가모사키 단로의 '밀실트릭'처럼 도저히 현실에서는 일어날 수 없을 것 같지는 않다. 소설과 달리 현실에서는 온갖 우연적 요소들이 도사리고 있으니 말이다. 가스통 르루의 [노랑방의 수수께끼]를 '본격파' 추리소설로 보기 어려운 지점이다.

그런 점에서 가스통 르루의 '밀실트릭' 고전 [노랑방의 수수께끼](1907)는 비현실적인 '본격파' 이전의 현실적 '밀실트릭'의 면모를 지닌다.

오래된 '고전'이니 스포일러도 해보자.

[노랑방의 수수께끼]의 범인은 피해자 스땅제르송 양이 미국에서 잠시 동거했던 귀족 사기꾼 프레드릭 라루상이다. 신분을 위조하여 프랑스 경찰국에 들어가 본인이 저지른 범죄를 다른 사람에게 누명 씌우며 사건을 해결해 온 이 가명의 형사 탐정 라루상은, '밀실트릭'의 '고전'적인 두 가지 조건인 '시간차'와 '범인은 모여있는 우리들 중 하나'라는 요소들을 여지 없이 보여주고 있다.

여기에 '밀실살인'의 대가 존 딕슨 카가 '마술'적 요소로 도입한 '공범'([해골성], [세 개의 관] 등)까지 가미해 볼 수도 있겠다.

혹시 모를 '밀실트릭'을 만나게 된다면, 과학적 수사에 착수하기 전에 직관적으로 '밀실트릭'의 '고전'적인 세 가지 요소들을 가정해 보자.

1) '시간차' 공격 : '밀실'의 제한된 '공간'을 초월하는 건 '시간'이다.
2) '범인은 이 안에 있다' : 범인은 늘 우리들 중 누구이며, 어느 누구는 초반에 진범에 의해 누명을 쓴다.
3) '공범' : 또 우리 중 어느 누구는 마술의 조수와 같이 외부에서 범행을 도와줄 '공범'의 가능성이 있다.

이제 미스터리 소설의 계보에서 매우 중요한 주제 중 하나인 '본격파' 밀실트릭을 일괄해 보았으니, 
다음으로는 추리를 역으로 거슬러 짚어간다는 '도서(倒敍;inverted)' 미스터리 소설로 넘어가봐야겠다.

아마도 비현실적 '본격파' 추리소설에서 다시금 리얼리즘 '현실파' 추리소설로 되돌아 오는 여정이 되리라.

그래서 이번주는 마을 도서관에서 아일랜드와 영국의 미스터리 소설가 프리먼 윌스 크로프츠(Freeman Wills Crofts : 1879~1957)의 소설 두 권을 빌려온다.

***

1. [노랑방의 수수께끼(Le Mystere de la Chmbre Jaune)](1907), Gaston Leroux, 민희식 옮김, <동서문화사>, 1977~2003.
2. [오페라의 유령(Le Fantome de l'Opera)](1910), Gaston Leroux, 성귀수 옮김, <문학세계사>, 2001.
3. [밀실황금시대의 살인 - 눈의 저택과 여섯 개의 트릭](2022), 가모사키 단로, 김예진 옮김, <디앤씨미디어>, 202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노랑방의 수수께끼 동서 미스터리 북스 91
가스통 르루 지음, 민희식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6월
평점 :
품절


'밀실트릭'의 '고전'적 요소들
- [노랑방의 수수께끼], 가스통 르루, 1907.


추리소설의 '본격파'로 분류되는 '밀실살인'의 거장 존 딕슨 카(John Dickson Carr : 1906~1977)의 작품 몇 권을 읽다 보니, 이 '밀실트릭'에도 '고전'이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찾아봤다. 

미스터리소설의 원조격인 에드거 앨런 포의 뒤팽 탐정 3부작 중 첫 편인 [모르그 가의 살인](1841)에서 설정된 모녀 살인 현장도 어찌보면 '밀실'의 형태였지만, 범인이 황당하게도 오랑우탄이었으니, 소설 속 사후 '밀실'은 사전 계획된 트릭이 전혀 아닌 우연한 살인 현장에 불과했다.

추리소설의 계보를 보면, 18세기 영국의 '뉴게이트 소설'로 불리던 범죄자가 주인공인 잡소설들이 그 기원이다. 그 찌라시들은 시민 계몽용으로 '이렇게 살면 안된다'라는 교훈집이었다. 그러나 불평등하고 부조리한 세상을 살던 다수 민중들의 눈에는 '뉴게이트' 감옥에 갇힌 중범죄자들이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등장하면서 일종의 세상에 균열을 내는 '영웅'이 되어버리는 '역설'을 드러내고 말았다. 

이에 대한 '반작용'이 바로 지배계급에 속하던 코넌 도일과 애거서 크리스티의 19세기 영국식 '탐정' 소설이었는데, 탐정소설의 시조새인 에드거 앨런 포의 탐정 오거스트 뒤팽도 귀족 풍이었지만, 포의 괴기담은 오히려 몰락해 가는 전근대적 귀족사회를 비판적으로 보는 편이었다([어셔가의 몰락]). 
한편, 코넌 도일의 탐정 셜록 홈즈나 애거서 크리스티의 탐정 에르퀼 포와로는 본격적인 '탐정'으로서 지배질서를 저해하는 범죄자들을 심판하는 당대 지배계급의 '부역자'에 가까워지고 있다. 실례로 코넌 도일과 애거서 크리스티의 세계관은 다분히 보수적이었다. 잉글랜드인 탐정 홈즈의 최대 적수는 아일랜드인 모리어티 교수였고, 영국 제국주의 '본국' 사람 크리스티의 수작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에서 불길한 노래의 소재는 '인디언'인데 원래는 '검둥이(nigger)'였다.

20세기 초 미국의 S.S. 반 다인과 엘러리 퀸의 미스터리 추리소설은 '추리기법'은 직관적이고 논리적으로 뒤집어 버린 '연역소거법'으로 색다르지만 기존 영국의 지배계급 탐정들을 어느 정도 답습하는 형태였다. 일단 반 다인의 탐정 파일로 번스와 엘러리 퀸의 탐정 엘러리 퀸은 상류 계층의 자제에 하버드를 나온 천재다. 오거스트 뒤팽이나 셜록 홈즈의 후예다.

그럼에도 현실에는 있을 수 없는 살인사건의 '트릭'을 구성하면서 '현실파' 추리소설이 '본격파' 추리소설로 이행하는 가교 역할을 하고 있다는 생각을 나는 한다.

그렇게 '리얼리즘'을 떠나 '본격파'로 넘어오게 되면, 현실의 살인사건이 아닌, 오로지 추리소설만을 위한 살인사건들을 다루는 '본격파' 추리소설의 단골 소재로 등장하는 것이 바로 '밀실살인' 또는 '밀실트릭'이다.


"... 눈에 보이는 사실은 그것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여러가지로 받아들여지는 것이므로 종종 판단을 그르치는 원인이 됩니다! 누차 말하지만 그것을 추리의 근거로 하면 안됩니다! 우선 추리를 해야 합니다. 그리고 눈에 보이는 사실이 자기 '추리(이성)의 동그라미' 속에 잘 들어가느냐 여부를 조사해 보는 것입니다. 지금 수중에 있는 것은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의 극히 작은 '(이성의) 동그라미'입니다.
다시 말해 범인은 '노랑방'에는 전혀 없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면 왜 모든 사람은 범인이 방에 있었다고 생각했을까요? 범인이 있었던 흔적 때문입니다! 그러나 범인은 훨씬 전에 방을 나가 버릴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아니 그보다도 범인은 아무래도 훨씬 전에 방을 나가지 않으면 안되었을 것입니다. 저의 '이성'이 범인은 훨씬 전에 나가 있었어야만 한다고 일러주고 있습니다."
- [노랑방의 수수께끼], <이성이 지시한 원>, 가스통 르루, 1907.


'밀실트릭'의 '고전'인 [노랑방의 수수께끼](1907)를 쓴 작가, '가스통 르루(Gaston Leroux : 1868~1927)라...
어딘가 낯익다 싶은데 바로 [오페라의 유령](1910) 원작자다. 

뮤지컬로 유명한 이야기의 소설 원작자인데, [오페라의 유령]도 극장 지하공간에 사는 '팬텀'이라는 괴기성이 있지만, 가스통 르루가 저널리스트 직업을 접고 본격 소설을 쓰게 된 첫 작품 [노랑방의 수수께끼]는 '본격파' 미스터리 소설의 '원조'와도 같다.

살인을 당하지는 않았지만 두세번 살해 위험에 처했던 피해자 마띨드 스땅제르송 양의 별채 침실 '노랑방(La Chambre Jaune)'이 '밀실'이다. 

그녀가 거의 죽음 직전에 구해진 그 '노랑방'은 도저히 범인이 나갈 수 없는 구조, 즉 사건 직후 나갈 문도 안에서 잠겼고 창문 또한 열린 흔적이 없는 등의 전형적인 '밀실'의 요소를 갖추고 있다.

18세의 천재소년이자 <에뽀끄> 신문기자인 조제프 '룰르따비유(둥글고 큰 머리)'는 파리 경찰국 소속 민완 탐정 프레드릭 라루상과 두뇌 경쟁을 하며 "범인은 이 안에 있다!"는 가정 하에 '이성(머리)'을 '올바로 쓰기 위해' 노력한다. 룰르따비유는 본인의 말에 의하면 이성이 지시한 '동그라미(논리구조)' 안에 각 사실관계를 앞뒤가 맞물리도록 배치하기 위해 피해자의 과거 행적까지 쫓아 본국인 프랑스에서 미국행도 불사하는 열혈청년이다. 직관과 논리를 우선시하는 점에서 오거스트 뒤팽, 파일로 번스와 엘러리 퀸 등 천재 탐정의 면모가 얼핏 보인다.

그렇게 '노랑방'의 첫번째 '완전밀실'과 두번째 사건현장인 '복도'의 '광의의 밀실' 등을 거치면서 룰르따비유는 좌층우돌은 하지만 범인을 추적해 간다.

'고전'은 아니지만, 최근의 '본격파' 밀실트릭 추리소설 중 하나로서 일본 작가 가모시키 단로(1985~)는 아주 대놓고 '본격 밀실살인'만 다룬 [밀실황금시대의 살인](2022)이라는 소설에서 '밀실'을 다음과 같이 분류한다.


"이 나라에서 '밀실살인'이 빈번히 일어나게 된 후로 (일본) 법무성에서는 '밀실'의 정의를 셋으로 분류했다. '완전밀실'과 '불완전밀실', 그리고 '광의의 밀실'이다. '완전밀실'과 '불완전밀실'은 합쳐서 '협의의 밀실'이라고도 불린다.
'완전밀실'의 정의는 실내에서 살인이 일어나고, 방 안의 모든 문과 창문이 잠긴 상태를 가리킨다. 말하자면 가장 표준적인 타입의 밀실이다.
그에 반해 '불완전밀실'의 정의는 실내에서 살인이 일어나고, 방 안의 모든 문과 창문이 잠긴 상태에 준하는 상황을 말한다. 안으로 열리는 문 앞에 장애물이 놓여 있어서 그 장애물 때문에 문이 열리지 않는다거나, 창문은 열려 있지만 워낙 높은 층이어서 도저히 아무도 드나들 수 없었다거나, 이런 타입의 밀실이 '불완전밀실'이라 불린다.
그리고 '광의의 밀실'의 정의는 '완전밀실'과 '불완전밀실', 양쪽의 정의에 모두 들어맞지 않는 상태를 가리킨다. 예컨대 눈 밀실로 대표되는 발자국 없는 살안이나, 살인 현장이 된 광장으로 침입하는 경로가 카메라로 감시당하고 있어 지나갈 수 없는 상황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 [밀실황금시대의 살인], <2장. 밀실트릭의 논리적 해명>, 가모시키 단로, 2022.


일본 최초로 '밀실살인'이 일어난 후 '밀실트릭'이 완벽하게 구성되어 풀리지 않을 경우 '무죄'가 된다는 판례에 따라 일본 법무성이 분석한 '밀실'의 정의라는 설정과 전혀 진지하지 않고 범인의 살인 의도 또한 별 개연성도 없이 오직 '밀실트릭'만 난무하는 가모시키 단로의 소설 [밀실황금시대의 살인](2022)에는 온갖 '밀실트릭'의 요소들이 등장한다. '비밀통로', '원격살인', 금세 물을 얼리는 '액체질소', 고무줄과 플라스틱 병 등등... 결코 현실적이지 않지만 소설에서는 있을 법한 트릭들이다.

그럼에도 '밀실살인'에서 변함없이 단연 으뜸으로 꼽는 최고의 '고전'적 트릭 하나가 있다. 바로 '시간'이다. '밀실'이라는 폐쇄된 '공간'을 넘어설 수 있는 것은 '시간' 밖에 없다. 즉, '시간차'인데, '밀실'이라는 동일 '공간'에서 사건 당시가 아닌 그 이전의 '시간'에 이미 사건이 발생했거나 예정되는 방식이다. 
따라서, '밀실'이라는 '공간'을 초월하는 최고의 트릭은 '시간'이 된다.


"프레드릭 라루상, 역시 대단한 솜씨군. 정말 훌륭한 솜씨야... 정말 진심으로 존경하는 바이다. 그러나 오늘 필요한 것은 단순한 탐정을 한발 앞선 그런 일을 하는 것이다. 경험이 가르쳐 주는 일에서 한발 앞선 그런 일을 하는 것이다. 어쨌든 '논리적'이어야 한다. 그 '논리적'이라는 것도 즉, 2+2=4라고 할때 신(神)이 논리적인 것과 뜻이 같은, 그런 '논리적'인 것이 되어야 한다. 중요한 것은 '이성(理性)'을 바르게 쓰는 일이다!"
- [노랑방의 수수께끼], <사건의 현장>, 가스통 르루, 1907.


가스통 르루의 '밀실트릭' 고전 [노랑방의 수수께끼](1907)의 결론도 바로 '시간차'였다. 
'노랑방'의 '완전밀실'은 '시간차' 공격으로 간단히 해결하고, 복도와 같은 '광의의 밀실'에서는 '범인은 이 안에 있다'는 요소로 단박에 해결해 버린다.

물론 이야기의 앞뒤가 맞게 전개되도록 하기 위해 다소 우연적인 요소들이 포함되어 독자들의 추리를 방해하는 점이 있기는 하다. 그래도 어떤가. 21세기 현대적 '본격파' 미스터리 소설가인 가모사키 단로의 '밀실트릭'처럼 도저히 현실에서는 일어날 수 없을 것 같지는 않다. 소설과 달리 현실에서는 온갖 우연적 요소들이 도사리고 있으니 말이다. 가스통 르루의 [노랑방의 수수께끼]를 '본격파' 추리소설로 보기 어려운 지점이다.

그런 점에서 가스통 르루의 '밀실트릭' 고전 [노랑방의 수수께끼](1907)는 비현실적인 '본격파' 이전의 현실적 '밀실트릭'의 면모를 지닌다.

오래된 '고전'이니 스포일러도 해보자.

[노랑방의 수수께끼]의 범인은 피해자 스땅제르송 양이 미국에서 잠시 동거했던 귀족 사기꾼 프레드릭 라루상이다. 신분을 위조하여 프랑스 경찰국에 들어가 본인이 저지른 범죄를 다른 사람에게 누명 씌우며 사건을 해결해 온 이 가명의 형사 탐정 라루상은, '밀실트릭'의 '고전'적인 두 가지 조건인 '시간차'와 '범인은 모여있는 우리들 중 하나'라는 요소들을 여지 없이 보여주고 있다.

여기에 '밀실살인'의 대가 존 딕슨 카가 '마술'적 요소로 도입한 '공범'([해골성], [세 개의 관] 등)까지 가미해 볼 수도 있겠다.

혹시 모를 '밀실트릭'을 만나게 된다면, 과학적 수사에 착수하기 전에 직관적으로 '밀실트릭'의 '고전'적인 세 가지 요소들을 가정해 보자.

1) '시간차' 공격 : '밀실'의 제한된 '공간'을 초월하는 건 '시간'이다.
2) '범인은 이 안에 있다' : 범인은 늘 우리들 중 누구이며, 어느 누구는 초반에 진범에 의해 누명을 쓴다.
3) '공범' : 또 우리 중 어느 누구는 마술의 조수와 같이 외부에서 범행을 도와줄 '공범'의 가능성이 있다.

이제 미스터리 소설의 계보에서 매우 중요한 주제 중 하나인 '본격파' 밀실트릭을 일괄해 보았으니, 
다음으로는 추리를 역으로 거슬러 짚어간다는 '도서(倒敍;inverted)' 미스터리 소설로 넘어가봐야겠다.

아마도 비현실적 '본격파' 추리소설에서 다시금 리얼리즘 '현실파' 추리소설로 되돌아 오는 여정이 되리라.

그래서 이번주는 마을 도서관에서 아일랜드와 영국의 미스터리 소설가 프리먼 윌스 크로프츠(Freeman Wills Crofts : 1879~1957)의 소설 두 권을 빌려온다.

***

1. [노랑방의 수수께끼(Le Mystere de la Chmbre Jaune)](1907), Gaston Leroux, 민희식 옮김, <동서문화사>, 1977~2003.
2. [오페라의 유령(Le Fantome de l'Opera)](1910), Gaston Leroux, 성귀수 옮김, <문학세계사>, 2001.
3. [밀실황금시대의 살인 - 눈의 저택과 여섯 개의 트릭](2022), 가모사키 단로, 김예진 옮김, <디앤씨미디어>, 202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황제의 코담뱃갑 동서 미스터리 북스 108
존 딕슨 카 지음, 전형기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밀실살인' 미스터리소설의 거장, 존 딕슨 카
- 존 딕슨 카, [해골성]/[세 개의 관]/[황제의 코담뱃갑]/[제3의 총탄], 1931~1954.


마을도서관이 대량으로 새로 들여놓은 <동서미스터리북스(DMB)> 시리즈 덕분에 요즘 잠시 '미스터리소설'에 빠져 지내고 있는 중에, 어린 시절 영국의 코넌 도일과 애거서 크리스티, 미국의 엘러리 퀸(그리고 바너비 로스)만 읽어대면서 말로만 들었던 S.S. 반 다인까지 읽게 되었다.

그렇게 요즘 휴일이면 어김없이 동네 뒷산인 초안산을 종주하고는 마을도서관에 들러 지난 주에 빌린 책을 반납하고 <동서미스터리북스> 시리즈를 둘러보다가 또 빌려가는 게 일상이 되었다. 여기까지 온 김에 '미스터리소설'과 '탐정소설'의 원조로 불리는 에드거 앨런 포의 중단편집도 다시 읽고 짧았던 '미스터리북스' 여정을 접으려고 했더랬다.

그런데 도서관 책장에 늘어선 수십 권의 '미스터리북스' 책들이 휴일의 나를 놓아주지 않는다. 그렇게 나를 반 다인에서 에드거 앨런 포로 거슬러 오르게 했다가 다시 곁가지로 뻗어가게 만들고 있다. 

그래서 만난 작가가 바로 '밀실살인' 미스터리소설의 거장, 존 딕슨 카(John Dickson Carr : 1906~1977)다.

반 다인과 엘러리 퀸의 탐정들이 구사하는 이른바 '연역소거법'은 내가 읽기로는, 
탐정소설의 시조새인 미국의 에드거 앨런 포, 그리고 그의 후예인 영국의 코넌 도일과 길버트 체스터튼, 애거서 크리스티의 '열린' 추리에서 이후 20세기 중반 미국의 닫힌 '밀실추리'로 이행하는 일종의 과도기로 보이는데, 도일과 크리스티의 작품들은 귀납적 추리를 통해 범인을 쫓아간다는 점에서 '열린' 개방형인데 반해 '밀실추리'는 엄격히 한정된 공간에서만 이루어지는 사건과 추리의 과정이기 때문이다.

개방된 공간인 현실에서 일어날 법한 전자는 소위 '리얼리즘' 또는 '현실파' 추리소설인 것이고, 
'밀실'처럼 제한된 공간에서 시작하여 오로지 그곳에서 마무리되는 후자는 이른바 '본격파' 추리소설로 분류된다고 한다.

반 다인과 엘러리 퀸의 '연역소거' 추리기법은 내가 보기엔 열린 '현실' 추리소설에서 밀실로 대표되는 '본격' 추리소설로 넘어가는 가교와도 같다는 말이다.
'연역소거법'과 '밀실살인'은 현실에는 없는 제한된 공간과 그 속의 사실관계만을 모두 제시하고는 독자들에게 '문제(수수께끼/미스터리)'를 내고는 대놓고 풀어보라 제안한다. 그래서 이 '밀실살인' 추리소설은 '현실'적이지 않은 '본격파' 추리소설로 불리는 것이며, 그 정점에 바로 '존 딕슨 카'가 있었던 거다.

존 딕슨 카의 추리소설에 등장하는 탐정은 실로 여러 명인데, 대표적인 인물은 '앙리 방코랑', '기디언 펠', '다모트 킨로스', '마키스 대령' 등이 있다.


1. [해골성(The Castle Skull)](1931) : 앙리 방코랑

"제프, 내가 예언을 해주지. 폰 아른하임 남작은 나를 앞지르고 싶은 생각으로 가득 차 있네. 자기의 계획대로 일찍이 명배우 마일런 아리슨(피살자)이 화려했을 무렵 무대에서 관중을 깜짝 놀라게 했던 것처럼, 아니, 그 이상으로 모두를 놀라게 하고 싶어하는 걸세. 그의 성격은 나도 잘 알고 있네. 그는 우리 앞에서 연극을 한 거라네. 튜턴 인종이 세계에서 으뜸가는 민족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은 거지. 그 훌륭한 연극을 구경하고 싶은 기분도 없지는 않네. 그러나 내게도 반항심이라는 것이 있거든. 멍하니 그의 연기를 바라보고만 있을 수는 없지 않겠는가!"
- [해골성], 존 딕슨 카, 1931.

1930년에 작가로 데뷔한 딕슨 카의 초기작인 [해골성](1931)은 실제 살인범으로서 마술사가 등장하고 그의 '조수'인 여성 등장인물을 배치하여 오래된 성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의 비밀을 풀어나가는 내용으로, 프랑스인 예심판사인 '앙리 방코랑(Henry Bencolin)'이 활약한다. 

그에게는 에드거 앨런 포의 탐정 뒤팽과 코넌 도일의 셜록 홈즈와 같이 역시 '조수'인 소설가 제프리 마르가 소설의 화자로 등장하고 있는데, 그가 묘사한 아마추어 탐정이자 천재인 방코랑 판사는 이미 모든 것을 처음부터 다 알고 있다. 다만, 누구에게도 본인이 이미 아는 것을 발설하지 않고 하나하나 증거를 수집하면서 본인의 가설을 '연역법'으로 증명하고 완성해 나간다.

제1차 세계대전 중 적국인 독일과의 스파이 전쟁에서 만난 경쟁자 폰 아른하임 남작(현직 독일 고위급 경관)을 라인강변의 해골성' 사건현장에서 다시 만나 새삼 두뇌경쟁을 하면서도 방코랑은 느긋하다. 반 다인의 파일로 번스와 엘러리 퀸의 엘러리 퀸처럼 범인이 누군지 이미 다 알고 있기 때문이다.

딕슨 카의 초기작에서 활약하는 탐정 '앙리 방코랑'은 아직까지 반 다인의 탐정 '파일로 번스'와 엘러리 퀸의 탐정 '엘러리 퀸' 같은 '연역소거법' 탐정의 모습을 그대로 투영하고 있는 것이다.


2. [세 개의 관(The Three Coffins)](1935) : 기디언 펠

"그 세 가지 요점이란 이런 거네. (1) 동생 '앙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실제로 있는 건 두 형제 뿐이라는 것, (2) 그 형제는 둘 다 진실을 말했다는 것, (3) 시간 문제가 사건을 잘못된 방향으로 이끌고 말았다는 것, 등이네.
이 사건에서는 많은 일들이 매우 짧은 시간과 관련되어 있었네. 참으로 짧은 시간이지. 사건의 난관이 시간 착오에 있었다는 것은, 우리의 살인범을 '그림자 없는 남자'라고 명명한 것과 같은 아이러니의 일부였어."
- [세 개의 관], 존 딕슨 카, 1935.

'본격파 밀실살인' 소설의 대표작으로 평가받는 [세 개의 관](1935)은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두 개의 살인사건을 얽히고 설키게 만들어 결말에서 명쾌하게 풀어 설명한다. 

이 작품의 탐정 '기디언 펠(Gideon Fell)' 박사는 영국인 법학박사로서 런던경시청의 '자문' 역할을 하는 인물안데, 동료와도 같이 함께 사건을 해결하는 런던경시청 해드리 경감과의 경쟁 과정에서 뜻밖의 추리로 사건을 해결한다.

물론 '본격파' 추리소설인 '밀실살인'은 추리소설을 위한 소설이라 전혀 현실적일 수가 없다. 범인은 항상 제한된 공간에 있는 제한된 인물 중 하나다. 소설의 전개과정은 이미 작가의 머릿속에서 완성된 퍼즐이 초반에는 전부 해체되어 있다가 원래의 구성대로 재조립되는 '연역법'의 증명과정 실현에 불과하다. 독자는 '귀납적' 또는 과학적으로 이 퍼즐을 풀어보고 싶겠지만 이는 거의 불가능하다. 작가의 머릿속을 알 수 없으니 하나하나 메모하고 시간표를 작성해서 수학문제 풀듯이 읽을 열정이 없다면 수수께끼는 끝까지 미궁이다.

고장난 시계, 인물의 숨겨진 과거 같은 예상하지 못한 사실들을 간과하면 이 수수께끼는 절대로 풀 수 없는데, 기디온 펠 박사 같은 천재들은 귀신같이 이 복잡한 문제를 결말에서 하나의 이야기로 엮으면서 사건을 해결해 보인다. 
특히, [세 개의 관]은 기디언 펠 박사의 '밀실강의'로 유명하단다.

영국에 정착하여 활동했던 미국 출신 작가 딕슨 카는 마치 유럽 작가 같이 무대도 유럽, 등장인물들도 유럽 각국의 사람들을 끌어들여 이 '밀실살인'을 자유자재로 만들고 풀어낸다.

"거기에 대해서는 조금 설명할 수 있을 거네. 하지만 풀릴 가망이 없는 수수께끼도 있어. 이해하겠지? (피살자) 그리모와 뒤몽은 나(펠 박사)와 같은 프랑스인이 아니네. 그런 광대뼈를 가진 여자, 정직하다(honest)는 말의 묵음인 'h'를 발음하는 여자는 절대로 라틴 민족일 수가 없어. 하지만 그런 건 중요하지 않네. 그 두 사람은 '마지르' 인일세. 정확하게 말하면 그리모는 원래 헝가리 출신이고, 진짜 이름은 카롤리, 다른 이름은 샤를 그리모 호바트. 이 남자의 어머니는 아마 프랑스인이었을 거네. 원래는 헝가리 왕국의 일부였지만 제1차 세계대전 뒤 루마니아에 병합된 트란실바니아 공화국 출신이지. 1890년대 말이나 1900년대 초에 두 형제와 함께 카롤리 그리모 호바트는 형무소에 들어갔네. 두 형제가 있었던 것을 내가 얘기하지 않았나? 한 사람은 본 적이 없지만, 다른 한 사람은 지금 피에르 플레이라고 자처하고 있는 남자일세."
- [세 개의 관], 존 딕슨 카, 1935.


3. [황제의 코담뱃갑(The Emperor's Snuff-box)](1942) : 다모트 킨로스

"아투드는 갈색 장갑을 낀 사람은 토비였다고 증언하고 사건을 마무리 지으려고 몹시 열심이었죠. 사랑하는 아내를 되찾고 라이벌을 형무소에 밀어 넣겠다 그것이었습니다. 그 정도의 중환자가 침대에서 일어나 옷을 입고 시청으로 바톨 검사를 만나러 가겠다고 나섰으니까요. 그것을 그 사나이는 해냈습니다. 꼭 가겠다고 고집을 세워서요... 
... 심리학의 문제...
... 정확하게 말하면 내가 그 사나이를 죽였다고 말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너 죽이지 말지어다. 그러나 억지로 살해할 필요는 없도다.' 결국은 들쑤셔서 그 사나이를 죽게 한 것이나 같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그 사나이는 건강을 되찾고 단두대가 적절히 결말을 지었겠죠. 그러나 나는 별로 그런 생각은 하지 않았소."
- [황제의 코담뱃갑], 존 딕슨 카, 1942.

일설에 의하면 '추리소설의 여왕'이자 그 역시 '밀실살인'의 내용과 같은 [오리엔트 특급살인](1934)과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1939)를 쓴 애거서 크리스티조차도 속았다는 또 하나의 '밀실살인'의 정점인 작품, [황제의 코담배갑](1942)에는 '다모트 킨로스'라는 정신분석의사가 등장한다. 

제목이 왜 '나폴레옹 1세(황제)'가 아꼈다던 작은 '코담배갑(snuff-box)'이었는지 좀더 세심하게 알고 간파했다면 독자는 초반에 이미 살인범을 킨로스 박사처럼 알 수 있었을는지 모르겠지만, 작가가 전개시키는 의문의 살인사건만을 쫓아가다 보면 십중팔구 실마리를 놓치고 만다.

그리고는 결국 '본격파' 추리소설 작가 존 딕슨 카의 농간이 놀아나고 마는 거다.

물론, 반 다인과 엘러리 퀸처럼 확실한 법적, 물적 증거 없이 '연역법'으로만 접근하게 될 때는 범인을 스스로 또는 우연한 계기를 만들어 죽게 만드는 방법으로 단죄하기도 한다. 

'다모트 킨로스' 박사는 이러한 심리전을 통해 누명을 쓰게 된 미녀를 구하고 악당인 범인을 심판하는 반 다인의 고전적 수법을 쓰고 있다.


4. [제3의 총탄(The Third Bullet)](1954) : 마키스 대령

"'전 (마키스) 국장보님께서 진상을 좀 알고 계실 줄 알았는데요?' 
페이지 경위가 완곡하게 말했다. 전혀 악의가 없는 말이었지만 이 말이 마키스 (대령)의 감정을 건드렸다.
'자네 말은 전적으로 옳아. 난 살인범이 누구인지도 알고, 범행이 어떻게 저질러졌는지도 잘 알고 있으니까. 하지만 내겐 사실과 증거가 필요해. 그러니 사실을 밝혀 보자구. 오늘 새 사실을 알아낸 게 있는가?'"
- [제3의 총탄], 존 딕슨 카, 1954.

내 개인적으로 그 중 가장 깔끔한 결말의 작품은 [황제의 코담배갑]에 같이 실린 [제3의  총탄](1952)이라는 중편이다. 개중 나중에 발표된 작품이라 완성도가 더 있을 수도 있겠고, 무엇보다 경찰국장보로 나오는 퇴역군인 '마키스 대령'이 군더더기가 없다. 물론 장편보다 분량이 적은 중편소설이라 더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모틀레이크 판사를 별채라는 '밀실'에서 죽인 총탄은 각기 다른 세 개의 권총에서 발사되었다는 설정도 흥미롭고, 한정된 공간의 제한적 인물들 사이에서 억울한 누명을 쓰게 될 인물을 구제하는 방식, 용의자의 숨겨진 과거와 그를 돕는 묘령의 여인이 누구인가 하는 존 딕슨 카의 모든 전작 소설들에 나오는 각종 요소들이 적절하게 작동하는 완성미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존 딕슨 카의 '밀실살인' 작품 하나를 읽으라 한다면,
나는 [제3의 총탄](1954)을 권하고 싶다.


5. '밀실살인' 미스터리소설의 거장, 딕슨 카

'밀실살인' 미스터리소설의 거장으로서,
'본격파' 추리소설의 대가로 평가받는,
존 딕슨 카(John Dickson Carr)'를 만나 '밀실살인'의 정점을 읽었으니,
이제 다시 마을도서관에 들러 '밀실살인'의 고전이라는 '가스통 르루'의 [노란방의 수수께끼](1907)를 빌려와야겠다.

그리고 시간 나면 딕슨 카의 다른 '밀실살인' 추리소설을 또 읽어보고 싶기도 하다.

역시 내게는,
시간 보내기에 '추리소설'만한 게 없고,
'현실파'든 '본격파'든 뭐니뭐니 해도 역시나 '고전'을 따를 게 없다.

아마도,
나의 '미스터리소설' 고전 여행은 좀더 지속될 것 같다.

***

1. [해골성(The Castle Skull)](1931), John Dickson Carr, 전형기 옮김, <동서문화사>, 1977~2003.
2. [세 개의 관(The Three Coffins)](1935), John Dickson Carr, 김민영 옮김, <동서문화사>, 1977~2003.
3. [황제의 코담뱃갑(The Emperor's Snuff-box)](1942)/[제3의 총탄(The Third Bullet)](1954), John Dickson Carr, 전형기 옮김, <동서문화사>, 1977~201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