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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실 황금시대의 살인 - 눈의 저택과 여섯 개의 트릭
가모사키 단로 지음, 김예진 옮김 / 리드비 / 2025년 5월
평점 :
'밀실트릭'의 '고전'적 요소들
- [노랑방의 수수께끼], 가스통 르루, 1907.
추리소설의 '본격파'로 분류되는 '밀실살인'의 거장 존 딕슨 카(John Dickson Carr : 1906~1977)의 작품 몇 권을 읽다 보니, 이 '밀실트릭'에도 '고전'이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찾아봤다.
미스터리소설의 원조격인 에드거 앨런 포의 뒤팽 탐정 3부작 중 첫 편인 [모르그 가의 살인](1841)에서 설정된 모녀 살인 현장도 어찌보면 '밀실'의 형태였지만, 범인이 황당하게도 오랑우탄이었으니, 소설 속 사후 '밀실'은 사전 계획된 트릭이 전혀 아닌 우연한 살인 현장에 불과했다.
추리소설의 계보를 보면, 18세기 영국의 '뉴게이트 소설'로 불리던 범죄자가 주인공인 잡소설들이 그 기원이다. 그 찌라시들은 시민 계몽용으로 '이렇게 살면 안된다'라는 교훈집이었다. 그러나 불평등하고 부조리한 세상을 살던 다수 민중들의 눈에는 '뉴게이트' 감옥에 갇힌 중범죄자들이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등장하면서 일종의 세상에 균열을 내는 '영웅'이 되어버리는 '역설'을 드러내고 말았다.
이에 대한 '반작용'이 바로 지배계급에 속하던 코넌 도일과 애거서 크리스티의 19세기 영국식 '탐정' 소설이었는데, 탐정소설의 시조새인 에드거 앨런 포의 탐정 오거스트 뒤팽도 귀족 풍이었지만, 포의 괴기담은 오히려 몰락해 가는 전근대적 귀족사회를 비판적으로 보는 편이었다([어셔가의 몰락]).
한편, 코넌 도일의 탐정 셜록 홈즈나 애거서 크리스티의 탐정 에르퀼 포와로는 본격적인 '탐정'으로서 지배질서를 저해하는 범죄자들을 심판하는 당대 지배계급의 '부역자'에 가까워지고 있다. 실례로 코넌 도일과 애거서 크리스티의 세계관은 다분히 보수적이었다. 잉글랜드인 탐정 홈즈의 최대 적수는 아일랜드인 모리어티 교수였고, 영국 제국주의 '본국' 사람 크리스티의 수작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에서 불길한 노래의 소재는 '인디언'인데 원래는 '검둥이(nigger)'였다.
20세기 초 미국의 S.S. 반 다인과 엘러리 퀸의 미스터리 추리소설은 '추리기법'은 직관적이고 논리적으로 뒤집어 버린 '연역소거법'으로 색다르지만 기존 영국의 지배계급 탐정들을 어느 정도 답습하는 형태였다. 일단 반 다인의 탐정 파일로 번스와 엘러리 퀸의 탐정 엘러리 퀸은 상류 계층의 자제에 하버드를 나온 천재다. 오거스트 뒤팽이나 셜록 홈즈의 후예다.
그럼에도 현실에는 있을 수 없는 살인사건의 '트릭'을 구성하면서 '현실파' 추리소설이 '본격파' 추리소설로 이행하는 가교 역할을 하고 있다는 생각을 나는 한다.
그렇게 '리얼리즘'을 떠나 '본격파'로 넘어오게 되면, 현실의 살인사건이 아닌, 오로지 추리소설만을 위한 살인사건들을 다루는 '본격파' 추리소설의 단골 소재로 등장하는 것이 바로 '밀실살인' 또는 '밀실트릭'이다.
"... 눈에 보이는 사실은 그것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여러가지로 받아들여지는 것이므로 종종 판단을 그르치는 원인이 됩니다! 누차 말하지만 그것을 추리의 근거로 하면 안됩니다! 우선 추리를 해야 합니다. 그리고 눈에 보이는 사실이 자기 '추리(이성)의 동그라미' 속에 잘 들어가느냐 여부를 조사해 보는 것입니다. 지금 수중에 있는 것은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의 극히 작은 '(이성의) 동그라미'입니다.
다시 말해 범인은 '노랑방'에는 전혀 없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면 왜 모든 사람은 범인이 방에 있었다고 생각했을까요? 범인이 있었던 흔적 때문입니다! 그러나 범인은 훨씬 전에 방을 나가 버릴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아니 그보다도 범인은 아무래도 훨씬 전에 방을 나가지 않으면 안되었을 것입니다. 저의 '이성'이 범인은 훨씬 전에 나가 있었어야만 한다고 일러주고 있습니다."
- [노랑방의 수수께끼], <이성이 지시한 원>, 가스통 르루, 1907.
'밀실트릭'의 '고전'인 [노랑방의 수수께끼](1907)를 쓴 작가, '가스통 르루(Gaston Leroux : 1868~1927)라...
어딘가 낯익다 싶은데 바로 [오페라의 유령](1910) 원작자다.
뮤지컬로 유명한 이야기의 소설 원작자인데, [오페라의 유령]도 극장 지하공간에 사는 '팬텀'이라는 괴기성이 있지만, 가스통 르루가 저널리스트 직업을 접고 본격 소설을 쓰게 된 첫 작품 [노랑방의 수수께끼]는 '본격파' 미스터리 소설의 '원조'와도 같다.
살인을 당하지는 않았지만 두세번 살해 위험에 처했던 피해자 마띨드 스땅제르송 양의 별채 침실 '노랑방(La Chambre Jaune)'이 '밀실'이다.
그녀가 거의 죽음 직전에 구해진 그 '노랑방'은 도저히 범인이 나갈 수 없는 구조, 즉 사건 직후 나갈 문도 안에서 잠겼고 창문 또한 열린 흔적이 없는 등의 전형적인 '밀실'의 요소를 갖추고 있다.
18세의 천재소년이자 <에뽀끄> 신문기자인 조제프 '룰르따비유(둥글고 큰 머리)'는 파리 경찰국 소속 민완 탐정 프레드릭 라루상과 두뇌 경쟁을 하며 "범인은 이 안에 있다!"는 가정 하에 '이성(머리)'을 '올바로 쓰기 위해' 노력한다. 룰르따비유는 본인의 말에 의하면 이성이 지시한 '동그라미(논리구조)' 안에 각 사실관계를 앞뒤가 맞물리도록 배치하기 위해 피해자의 과거 행적까지 쫓아 본국인 프랑스에서 미국행도 불사하는 열혈청년이다. 직관과 논리를 우선시하는 점에서 오거스트 뒤팽, 파일로 번스와 엘러리 퀸 등 천재 탐정의 면모가 얼핏 보인다.
그렇게 '노랑방'의 첫번째 '완전밀실'과 두번째 사건현장인 '복도'의 '광의의 밀실' 등을 거치면서 룰르따비유는 좌층우돌은 하지만 범인을 추적해 간다.
'고전'은 아니지만, 최근의 '본격파' 밀실트릭 추리소설 중 하나로서 일본 작가 가모사키 단로(1985~)는 아주 대놓고 '본격 밀실살인'만 다룬 [밀실황금시대의 살인](2022)이라는 소설에서 '밀실'을 다음과 같이 분류한다.
"이 나라에서 '밀실살인'이 빈번히 일어나게 된 후로 (일본) 법무성에서는 '밀실'의 정의를 셋으로 분류했다. '완전밀실'과 '불완전밀실', 그리고 '광의의 밀실'이다. '완전밀실'과 '불완전밀실'은 합쳐서 '협의의 밀실'이라고도 불린다.
'완전밀실'의 정의는 실내에서 살인이 일어나고, 방 안의 모든 문과 창문이 잠긴 상태를 가리킨다. 말하자면 가장 표준적인 타입의 밀실이다.
그에 반해 '불완전밀실'의 정의는 실내에서 살인이 일어나고, 방 안의 모든 문과 창문이 잠긴 상태에 준하는 상황을 말한다. 안으로 열리는 문 앞에 장애물이 놓여 있어서 그 장애물 때문에 문이 열리지 않는다거나, 창문은 열려 있지만 워낙 높은 층이어서 도저히 아무도 드나들 수 없었다거나, 이런 타입의 밀실이 '불완전밀실'이라 불린다.
그리고 '광의의 밀실'의 정의는 '완전밀실'과 '불완전밀실', 양쪽의 정의에 모두 들어맞지 않는 상태를 가리킨다. 예컨대 눈 밀실로 대표되는 발자국 없는 살안이나, 살인 현장이 된 광장으로 침입하는 경로가 카메라로 감시당하고 있어 지나갈 수 없는 상황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 [밀실황금시대의 살인], <2장. 밀실트릭의 논리적 해명>, 가모사키 단로, 2022.
일본 최초로 '밀실살인'이 일어난 후 '밀실트릭'이 완벽하게 구성되어 풀리지 않을 경우 '무죄'가 된다는 판례에 따라 일본 법무성이 분석한 '밀실'의 정의라는 설정과 전혀 진지하지 않고 범인의 살인 의도 또한 별 개연성도 없이 오직 '밀실트릭'만 난무하는 가모시키 단로의 소설 [밀실황금시대의 살인](2022)에는 온갖 '밀실트릭'의 요소들이 등장한다. '비밀통로', '원격살인', 금세 물을 얼리는 '액체질소', 고무줄과 플라스틱 병 등등... 결코 현실적이지 않지만 소설에서는 있을 법한 트릭들이다.
그럼에도 '밀실살인'에서 변함없이 단연 으뜸으로 꼽는 최고의 '고전'적 트릭 하나가 있다. 바로 '시간'이다. '밀실'이라는 폐쇄된 '공간'을 넘어설 수 있는 것은 '시간' 밖에 없다. 즉, '시간차'인데, '밀실'이라는 동일 '공간'에서 사건 당시가 아닌 그 이전의 '시간'에 이미 사건이 발생했거나 예정되는 방식이다.
따라서, '밀실'이라는 '공간'을 초월하는 최고의 트릭은 '시간'이 된다.
"프레드릭 라루상, 역시 대단한 솜씨군. 정말 훌륭한 솜씨야... 정말 진심으로 존경하는 바이다. 그러나 오늘 필요한 것은 단순한 탐정을 한발 앞선 그런 일을 하는 것이다. 경험이 가르쳐 주는 일에서 한발 앞선 그런 일을 하는 것이다. 어쨌든 '논리적'이어야 한다. 그 '논리적'이라는 것도 즉, 2+2=4라고 할때 신(神)이 논리적인 것과 뜻이 같은, 그런 '논리적'인 것이 되어야 한다. 중요한 것은 '이성(理性)'을 바르게 쓰는 일이다!"
- [노랑방의 수수께끼], <사건의 현장>, 가스통 르루, 1907.
가스통 르루의 '밀실트릭' 고전 [노랑방의 수수께끼](1907)의 결론도 바로 '시간차'였다.
'노랑방'의 '완전밀실'은 '시간차' 공격으로 간단히 해결하고, 복도와 같은 '광의의 밀실'에서는 '범인은 이 안에 있다'는 요소로 단박에 해결해 버린다.
물론 이야기의 앞뒤가 맞게 전개되도록 하기 위해 다소 우연적인 요소들이 포함되어 독자들의 추리를 방해하는 점이 있기는 하다. 그래도 어떤가. 21세기 현대적 '본격파' 미스터리 소설가인 가모사키 단로의 '밀실트릭'처럼 도저히 현실에서는 일어날 수 없을 것 같지는 않다. 소설과 달리 현실에서는 온갖 우연적 요소들이 도사리고 있으니 말이다. 가스통 르루의 [노랑방의 수수께끼]를 '본격파' 추리소설로 보기 어려운 지점이다.
그런 점에서 가스통 르루의 '밀실트릭' 고전 [노랑방의 수수께끼](1907)는 비현실적인 '본격파' 이전의 현실적 '밀실트릭'의 면모를 지닌다.
오래된 '고전'이니 스포일러도 해보자.
[노랑방의 수수께끼]의 범인은 피해자 스땅제르송 양이 미국에서 잠시 동거했던 귀족 사기꾼 프레드릭 라루상이다. 신분을 위조하여 프랑스 경찰국에 들어가 본인이 저지른 범죄를 다른 사람에게 누명 씌우며 사건을 해결해 온 이 가명의 형사 탐정 라루상은, '밀실트릭'의 '고전'적인 두 가지 조건인 '시간차'와 '범인은 모여있는 우리들 중 하나'라는 요소들을 여지 없이 보여주고 있다.
여기에 '밀실살인'의 대가 존 딕슨 카가 '마술'적 요소로 도입한 '공범'([해골성], [세 개의 관] 등)까지 가미해 볼 수도 있겠다.
혹시 모를 '밀실트릭'을 만나게 된다면, 과학적 수사에 착수하기 전에 직관적으로 '밀실트릭'의 '고전'적인 세 가지 요소들을 가정해 보자.
1) '시간차' 공격 : '밀실'의 제한된 '공간'을 초월하는 건 '시간'이다.
2) '범인은 이 안에 있다' : 범인은 늘 우리들 중 누구이며, 어느 누구는 초반에 진범에 의해 누명을 쓴다.
3) '공범' : 또 우리 중 어느 누구는 마술의 조수와 같이 외부에서 범행을 도와줄 '공범'의 가능성이 있다.
이제 미스터리 소설의 계보에서 매우 중요한 주제 중 하나인 '본격파' 밀실트릭을 일괄해 보았으니,
다음으로는 추리를 역으로 거슬러 짚어간다는 '도서(倒敍;inverted)' 미스터리 소설로 넘어가봐야겠다.
아마도 비현실적 '본격파' 추리소설에서 다시금 리얼리즘 '현실파' 추리소설로 되돌아 오는 여정이 되리라.
그래서 이번주는 마을 도서관에서 아일랜드와 영국의 미스터리 소설가 프리먼 윌스 크로프츠(Freeman Wills Crofts : 1879~1957)의 소설 두 권을 빌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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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노랑방의 수수께끼(Le Mystere de la Chmbre Jaune)](1907), Gaston Leroux, 민희식 옮김, <동서문화사>, 1977~2003.
2. [오페라의 유령(Le Fantome de l'Opera)](1910), Gaston Leroux, 성귀수 옮김, <문학세계사>, 2001.
3. [밀실황금시대의 살인 - 눈의 저택과 여섯 개의 트릭](2022), 가모사키 단로, 김예진 옮김, <디앤씨미디어>, 2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