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지문 - 사라진 문명을 찾아서
그레이엄 핸콕 지음, 이경덕 옮김 / 까치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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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우리가 '지문'을 남겨야 할지도
- [신의 지문], 그레이엄 핸콕, 1995.


"마지막으로 기자에서 멀리 떨어진 '남극 대륙'의 빙원 아래에 있는 지형에 대해서 엄밀한 조사를 하면 많은 성과를 얻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사라진 문명의 완전한 유적이 숨겨져 있을 가능성이 가장 높은 곳이 '남극 대륙'이기 때문이다."
- [신의 지문], <8-52. 밤의 도둑처럼>, 그레이엄 핸콕, 1995.


지도 한 장으로부터 기묘한 이야기가 시작된다.

16세기 오스만 투르크의 해군 제독이었던 피리 레이스가 제작한 지도에는 남극 대륙이 있다. 남극 대륙이 발견된 게 19세기인 1818년인데도 16세기 지도에 등장한 것인데, 아마도 피리 레이스는 남극에 가보지는 못했을 터, 오래전부터 전승된 지도를 베낀 것으로 추정된다. 이 지도가 기묘한 이유는 지도의 남극 대륙이 지금처럼 빙하에 뒤덮힌 모습이 아니기 때문이다.

적어도 1만3천년 전 플라이스토세 말기에는 온 지구가 빙하기였다는데 남극 대륙은 그렇지 않았을 수도 있다.

이 기묘한 이야기는 16세기 의문스러운 지도 한 장을 매개로 하여 '남극 대륙'에서 출발하여 다시 '남극 대륙'으로 돌아가는 이야기다.


"설명하기 어려운 것은 '대홍수' 신화 속에 기묘하지만 확실히 지성을 가진 인도하는 손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는 것이다... 피부색이 하얗고 수염을 기른 사람이 신화에 자주 등장하는데 오시리스는 이 보편적인 사람의 이집트판이다. 오시리스가 마지막으로 행한 것 가운데 하나가 나일강 유역에 사는 원시적인 사람들의 식인 풍습을 없앤 것이었다. 중앙아메리카의 비라코차는 '대홍수'가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문명을 전파하는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케찰코아틀은 제4태양이 파괴적인 '대홍수'에 의해서 사라진 후에 멕시코에서 옥수수를 발견하고 곡물을 전했으며 수학과 천문학과 세련된 문화를 전달했다.
이 신화들은 마지막 빙하시대에 살아남은 구석기의 부족들과 동시대를 빠져나온 정체를 알 수 없는 높은 지성을 가진 문명인과의 우연한 만남을 묘사하고 있는 것일까?"
- [신의 지문], <5-32. 아직 태어나지 않은 세대에게 하는 말>, 그레이엄 핸콕, 1995.


20세기말 잠시 유행했던 책의 이야기다.

영국의 기자 그레이엄 핸콕(Graham Hancock)은 '사라진 문명'을 찾아 전 세계를 다닌 기록을 [신의 지문](1995)이라는 책으로 발표했다. 세기말 당시야 종말론이 유행했지만 당시의 내게는 흥미거리도 되지 않았다. 신이든 신의 심판으로서 종말론이든  죄다 과학적이지 못한 음모론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던 내게 그레이엄 핸콕의 [신의 지문]은 어릴적 우연히 읽었던 U.F.O나 '7대 불가사의' 따위를 다룬 찌라시와 다를 바 없었다.

그렇게 잊혀졌던 [신의 지문]은 21세기에 어느덧 중년에 들어선 나의 눈에 들어왔다. 중국의 역사가 리숴(李碩)가 [전상(翦商)](2022)이라는 책에서 기원전 2세기 전 고대 중국의 은나라까지 횡행했던 '인신공양제' 이야기를 다뤘고 은나라를 멸한 주나라는 이 잔혹한 문명을 인문주의적 풍습으로 대체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읽고 있던 터라, 고대 잉카나 마야 문명의 '인신공양제'가 궁금하기도 했던 거다.

결론적으로, 
20세기 청년이었던 나는 [신의 지문]을 무시했지만,
21세기 중년이 된 나는 [신의 지문]이라는 음모론이 흥미롭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나이 들면 다시 어려진다는 말처럼.

그레이엄 핸콕은 페루 잉카 문명의 나스카의 거대한 지상 그림을 하늘에서 내려보며 거미 형상의 몸통 세 개 점에서 오리온 별자리를 보기도 하고 원숭이 그림에서 동심원 꼬리와 같은 거대 문양의 정밀성을 통해 다시금 아주 오래전 지적인 문명의 흔적을 본다. 그러나 흔히 생각하듯 '신'이나 '외계인' 등으로 쉽게 그 근원을 돌리지 않는다. 이 지점이 내가 오래전 비과학적인 관념론으로 보았던 [신의 지문]을 새로운 유물론의 시각으로 본 지점인데 '지문'을 남긴 주체는 오래전 사라졌을 것으로 추정되는 고대 문명이며 그 배경은 빙하기와 대홍수 재난을 동반한 자연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그레이엄 핸콕이 찾은 사라진 고대 문명의 일차적 증거는 남아메리카 잉카 문명의 신화속에 등장하는 '비라코차'의 등장이다. 원주민과 달리 하얀 얼굴에 긴 턱수염과 롱코트를 입고 바다로부터 와서 잉카 문명에 신문명을 전하고 다시 바다로 떠났다는 이 구세주와 같은 존재는 흡사 우리에게 익숙한 예수 그리스도의 이미지와도 겹친다. 원주민과 다른 외래종족으로서 '비라코차'는 중앙아메리카 마추픽추와 같은 마야 문명으로 가면 '케찰코아틀'이라는 신화적 존재로 다시 나타난다. 마야 문명의 인신공양제는 역시 하얀 얼굴에 긴 턱수염을 한 '케찰코아틀'로 인해 폐지되었는데 신석기 시대였던 당시에 옥수수 재배 등 신문명을 전했던 '케찰코아틀'이 '테스카틸포카'라는 내부 반란자와의 권력투쟁에서 패배한 후 아즈텍 문명에서는 또 다시 인신공양제와 같은 잔인한 문명이 부활했다고 한다. 여기서 '케찰코아틀'은 다시금 '구세주' 또는 '메시아'로 현상하는데, 아즈텍인들은 그가 다시 재림하여 잔혹한 현실을 뒤바꿔줄 거라 믿었다고 한다.

남아메리카 잉카 문명의 '비라코차'와 중앙아메리카 마야 문명의 '케찰코아틀'은 대서양 건너 이집트로 가면 '오시리스' 신화로 반복된다. 고대 이집트 나일강 유역에 농업 기술과 정밀한 건축술 등의 문명을 심어주고 역시 '인신공양제'를 없앤 죽음과 부활의 신 '오시리스' 또한 의형제 세트와 72인의 반란으로 죽음을 맞았지만 신화속에서 다시 부활한다. 

그레이엄 핸콕의 [신의 지문]의 압권은 고대 이집트 기자 지구의 대피라미드군과 스핑크스다. 기원전 2,500년경에 건설된 것으로 알려진 기자 지구 대피라미드와 중소형 피라미드 2기, 그리고 스핑크스는 핸콕에 의하면 지금으로부터 5천년 전이 아닌 1만년 전에 지어졌다는데, 이 피라미드는 다른 곳의 무너진 조악한 피라미드 무덤과 달리 인류 문명 이전의 지적인 고대 문명의 흔적('지문')이라는 주장이다. 즉, 기자 지구 대피라미드는 파라오의 무덤이 아니라 오래전 사라진 지적 문명이 빙하기였던 1만년 이후 다시금 시작될 미지의 문명에게 전하는 메시지를 담은 일종의 수수께끼 '기계'라는 말이다. 피라미드 3기는 오리온 성좌와 일치하며 피라미드 크기 및 각도와 통로 경사각 등의 비율은 천재적인 수학적 원리로 이루어진 바, 빙하기 말기의 '대홍수'라는 전 세계 공통의 재난 이후 다시금 시작될 후세 문명에게 지구 문명의 멸망과 부활의 주기로 약 1만3천년의 시간을 수학적으로, 천문학적으로 남긴 일종의 '지문'이라고 한다. 하늘의 춘분점과 추분점의 정동 방향을 바라보는 스핑크스 또한 1만년 전 빙하기 이전에 조각된 것으로 추정되는 강력한 증거가 있다. 스핑크스 몸에 새겨진 침식 흔적이 사막의 모래로 인한 게 아닌 물에 의한 그것이라는 건데, 이집트 기자 지구가 사막이 아니었던 시기에 만들어졌다는 주장이다. '대홍수'의 흔적이기도 하다.
기자 지구의 피라미드들과 스핑크스는 사라진 고대문명으로부터 온 사람들이 남긴 '지문'이다.

이 책의 제목 [신의 지문]은 원제로 보면 [Fingerprints of the Gods]로 '일자(The One)'로서의 '신(The God)'이 아닌 다수의 '신들(Gods)'이다. 하느님이나 외계인이 아닌 지구상의 오래전 다른 문명에서 온 신문명의 전파자들로 고대 이집트의 '오시리스'나 남아메리카 잉카의 '비라코차'와 중앙아메리카 마야의 '케찰코아틀'이 그들로 추정된다. 이 책에서는 나오지 않지만 황하 문명의 삼황인 수인, 신농, 복희 및 주나라 시조 후직 등 농업 문명을 전파한 자들도 1만년 전 이야기라면 역시 맞아떨어지지 않을까 싶다.


"... 나는 그 문명이 '해양 문명'으로 항해자들의 국가였음이 틀림없다고 추측하기 시작했다. 이 가설을 지지해 주는 것이 몇 가지 있다. 경이로운 고대의 세계지도, 이집트의 '피라미드의 배', 마야의 놀라운 역법체계에서 볼 수 있는 천문학적 지식, 케찰코아틀과 비라코차처럼 바다를 항해하는 신의 전설 등이 그 예이다.
... 이 건축가들이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그들은 특징적인 '지문'을 세계 각지에 남겨놓은 듯 하다."
- [신의 지문], <8-50. 헛수고를 한 것이 아니다>, 그레이엄 핸콕, 1995.


기묘한 남극 지도로 시작하여 아메리카와 이집트 문명을 돌아본 그레이엄 핸콕이 [신의 지문]의 거대한 문명 퍼즐 조각을 미쳐 다 맞추지 못하고 좌절하던 순간, '도서관의 천사'가 나타난다. 일을 그만두게 된 핸콕의 조수가 남긴 마지막 메시지가 말한 것처럼 사라진 고대 문명이 3천 킬로미터 이상의 넓은 대지와 높은 산맥들, 그리고 바다와 물 등의 자연조건이 없으면 안된다는 주장에 더불어서 핸콕은 우연히 어느 학자 부부의 '남극 대륙' 이야기를 접하게 되었던 것이다.

기자 지구의 수수께끼 문명 기계인 피라미드와 잉카 문명 나스카 거대문양, 마야 문명의 마추픽추 건축물 등은 지구의 '세차 운동'과 그로 인한 빙하기 기후변화 주기를 암시하고 있는데, 1만년 이전의 남극 대륙은 지구의 끊임없는 지각변동으로 인해 동토의 땅이 아닌 온화한 지역으로 다른 대륙의 빙하기 땅과 달리 지금의 인류와 같은 선진 문명을 구가했을지도 모른다는 가설이 결론이다.

그레이엄 핸콕이 [신의 지문]에서 찾아다닌 증거들은 이 가설을 증명하는 퍼즐 조각이었던 것이다. 
1950년대 노벨화학상 수상자 파울 크뤼천의 '인류세' 또는 21세기 일본의 젊은 마르크스주의자 사이토 고헤이의 '자본세'라고도 불리는 1만년 간의 현재의 '홀로세'는 인류의 문명 개발로 인해 기후위기가 재촉되고 있으나 한편으로 '신들의 지문'에 의하면 결국 1만3천년의 주기로 빙하기나 대홍수, 대행성 충돌 등과 함께 멸망할지도 모른다. '공룡 대멸종' 이후 인류 문명 전체가 붕괴되는 이른바 46억년 지구 역사상 '여섯번째 대학살'이다.

로마를 비롯한 수많은 문명이 지구적 기후변동으로인해 몰락했다는 학설도 있는데, 이런 '소빙기'들을 넘어 1만3천년의 주기로 전 지구적 '대빙하기'와 빙하기 말의 '대홍수'들은 공룡시대든 인류문명이든 한 시대 일체를 쓸어버렸고 또 앞으로도 그럴지도 모르겠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가 앞으로 올 미지의 문명을 위해 어떤 방식으로든 '지문'을 남겨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 출발점이 다시 남극이든 화성이든 다른 그 어디든 말이다.

***

1. [신의 지문 - 사라진 문명을 찾아서(Fingerprints of the Gods - The Evidence of Earth's Lost Civilization)](1995), Graham Hancock, 이경덕 옮김, <까치>, 1996.
2. [전상(翦商)](2022), 리숴(李碩), 홍상훈 옮김, <글항아리>, 2024.
3. [기후의 힘], 박정재, <바다출판사>, 2021.
4. [지속불가능 자본주의 - 기후위기 시대의 자본론](2020), 사이토 고헤이, 김영현 옮김, <다다서재>, 2021.
5. [로마의 운명](2017), 카일 하퍼, 부희령 옮김, <더봄>,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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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의 힘 - 인생의 무기가 되는 12가지 최소한의 수학도구
올리버 존슨 지음, 노태복 옮김 / 더퀘스트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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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은 이제 여기까지만
- [수학의 힘], 올리버 존슨, 2023.


1.

며칠 전, 
어머니가 둘째 누나한테 가보고 싶다고 하셨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홀로 남은 어머니는 팔순을 훌쩍 넘기면서 하루하루 노쇠해진 일상을 통해 사람이 별 일 없이도 죽음을 향해 한발 한발 걸어가는 과정을 내게 보여준다. 
방금 했던 말과 행동도 돌아서면 다시 반복하는 어머니 이전에, 이태 전 폐암으로 돌아가신 아버지를 통해 나는 '죽음'이라는 게 내 삶의 직접적 일부이자 궁극의 종착점임을 처음으로 실감한 바였다.

아버지라는 존재가, 내게 삶을 주었고 최초로 먹는 법과 말하는 법 등 살아가는 기본은 물론 종국에는 죽음까지도 실질적으로 가르쳐주는 그런 것이었다. 이제는 얼마 남지 않았을지 모를 앞으로 몇 년간 나는 함께 사는 연로하신 어머니를 통해 죽음에 관해 또 다시 새로 배울 차례가 오고 있다. 
모르는 남의 죽음을 애도하면서도 죽음은 내 것일 수 없었다. 나는 죽음 앞에 그저 구경꾼이었다. 심지어는 십년 전 둘째 누나의 죽음 또한, 슬픈 일이었지만 마흔넷 누이의 죽음 앞에서도 나는 방관자에 불과했었다.

이제 연로하신 어머니가 갑자기 오래전 죽은 둘째 딸이 보고싶다 한다.

내일은,
둘째 누나의 55세 생일날이다.


2.

나의 둘째 누나는 수학을 잘했다.

딸 셋에 아들이 나 하나였던 우리집은 가난하여 그나마 대학은 내 몫으로 애진작에 정해져 있었다. 큰 누나는 꿈또 꿀 수 없었고 셋째 누나는 형제들에게 양보해야 했기에 애초에 기회조차 없었다. 아마도 같은 운명이었을 둘째 누나는 아버지한테 계속 대들고 요구했다.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인문계 고등학교에 진학했고 공부를 열심히 했다. 특히 수학을 잘해서 이과를 선택했고 무려 의대에 가겠다고 했다. 아버지한테 대들다가 빰을 맞았지만 뜻을 굽히지 않았다. 나보다 네 살이 많았으니 둘째 누나가 오랜 투쟁 속에 의대는 못 갔지만 의대 편입을 꿈꾸며 생물학과에 진학했을 때 중학생이었던 난 그녀가 내 누나지만 참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누나의 등록금을 구하기 위해 백방으로 돈을 구하러 다니다가 숱하게 싸우시던 부모님을 보며 나는 덕수상고에 진학하여 빨리 졸업하고 은행에 취업해서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물론 부모님의 생각은 달랐겠지만, 특히 집안을 뒤집어 놓으며 대학에 진학한 둘째 누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하나 뿐인 남동생이었던 나만은 본인이 대학까지 가르치겠다고 장담했다.

수학을 잘했던 이과생 둘째 누나와 달리 나는 타고난 문과생이었다. 누나가 몇 번 수학 과외를 해주겠다고 나섰지만 자고로 공부와 운전은 식구한테 배우는 건 아니었기에 나는 도와주겠다는 둘째 누나의 손을 뿌리치고 나의 길을 갔다. 가난한 집이었지만 하나 뿐인 외아들을 대학까지 보내겠다는 부모님의 염원이 컸다. 그런데 평생 먹고 살 수 있는 기술직에 종사할 수 있게끔 공대를 보내고 싶었던 어머니와 천생 이과생 둘째 누나의 바람과 달리 나는 수학에 재능이 없어 그냥 기본수학의 정석 문제들을 외워야 했다. 


영국의 수학자이자 통계과학연구소장인 올리버 존슨(Oliver Johnson)이 코로나 팬데믹 시기 전염병 확산을 예측하기 위해 각종 '수학모델'을 만들었을 때, 수학자인 올리버 존슨의 자세는 'number crunch'였다. 우리말로 하면 '수학사랑' 또는 '숫자덕후' 정도 아닐까 싶다. 이를 '구조'와 '무작위성', 그리고 '정보'를 키워드를 통해 '수학모델'과 수학적 사고방식에 관한 글로 엮은 책의 제목이 [Number Crunch](2023)다. 이듬해 우리말로 번역된 책 제목은 [수학의 힘](<더퀘스트>)이다.


"수학모델은 2가지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첫째로 기존의 데이터를 설명하고, 둘째로 아직 존재하지 않는 상황을 예측하는 데 도움이 되어야 한다... 수학자는 숫자나 다른 정보들에서 패턴을 포착한 다음 그것을 설명하는 이론을 제시하는 방식으로 일한다. 뉴턴의 방정식 덕분에 닐 암스트롱은 아폴로 11호에서 달에 첫발을 내딛기도 전에 달의 중력이 어느 정도일지 알고 있었다. 미국항공우주국(NASA)이 애초에 달에 도착할 로켓을 제작할 수 있었던 것도 뉴턴의 방정식을 이해한 덕분이다."
- [수학의 힘], <들어가며: 수학의 언어로 세상을 본다면>, 올리버 존스, 2023.


나는 애석하게도 수학을 잘하지 못했지만, 고대에 인류가 세계의 근본원리를 찾고자 했던 철학의 중요한 방법으로서 수를 통해 정확히 표현하고 증명하려는 수학의 중요함은 이해했기에 수학을 잘 하고 싶어하기는 했다. 그러나 수학이나 관련 과학 전공자가 아닌 고등학교 일반수학이 그렇게까지 어려워야 하는가 싶은 의구심은 고등학생 자녀 남매를 둔 학부모인 지금도 여전하다. 그러거나 말거나 사람은 각자 다양한 법, 의대를 가고 싶어했던 둘째 누나 같은 사람들은 아마도 세상만물을 '수학모델'을 통해 이해하는 게 더 쉬웠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수학은 잘 모르지만 철학이라는 광범위한 학문의 이름으로 세계의 운동원리를 이해하고 싶어하며, 그 사유방식으로 '존재'가 '의식'보다 일차적이라는 '유물론'과 만물은 모순속에서 운동 및 변화한다는 '변증법'을 결합시킨 '유물변증법'을 채택하고 있다. 유물변증법은 항상 당대의 과학발전에 따라야 하므로 나는 이해를 다 하지는 못하더라도 '양자역학'이나 '수학' 관련 책은 가끔 펼쳐본다.

역시, 전부 이해할 수는 없다. 
그러나 지금 내 삶에서 수학은 숫자나 공식 또는 그래프가 아니다. 모든 수학 대중서들이 가리키는 방향은 혼란하고 무작위적이며 우연으로 점철된 세상만사 속에서 확률과 통계를 통해 앞으로의 방향을 예측할 수 있도록 하는 단단한 사유방식인 것이다.
미국의 수학천재 조던 엘렌버그의 [틀리지 않는 법](2014)도 그랬지만, '귀무가설'과 '대수의 법칙', '베이즈추론' 등의 개념을 중심으로 이해했다.
일본 수학자 하타무라 요타로의 [직관수학](2004)을 통해서는 딱 떨어지는 숫자가 아닌 대략의 숫자로 추산하는 접근법을 배웠다.
영국의 보험수리학자 앤드류 엘리엇의 [숫자로 읽는 세상의 모든 것](2018)을 읽고는 지수로그방식을 통해 큰 수를 보는 법과 비교수치를 통해 이해하는 법 등을 어렴풋이나마 익혔다.


"... 수학이야말로 상황을 파악하는 데 이용할 만한 올바른 도구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함수가 어떻게 증가하는지, 무작위성과 불확실성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 어떤 질문이든 수학적 기법들이야말로 감정과 개인적 편향에서 벗어난 방식으로 통찰을 준다. 구조(1부), 무작위성(2부), 정보(3부)의 핵심 도구들은 여러분의 사고과정에 위력적인 도구를 제공한다."
- [수학의 힘], <4-13. 오류에서 배우는 교훈>, 올리버 존슨, 2023.


세계는 혼란스럽고 복잡하기 그지없지만,
철학자들이 도달하지 못할지 모르는 '보편적 진리'를 향해 끊임없이 도전하듯,
수학자들도 각종의 추상적 '수학모델'을 만들어 세계운동의 원리를 파악하고자 한다.
아인슈타인도 죽기 전 책상에서 세상을 설명하는 '단 하나의 신의 방정식'을 구하고자 했단다.

숫자는 정확하고 엄말함을 추구한다. 그러니 수학이란 세상을 이해하는 가장 '올바른 도구'일 수 있다. 다만, [수학의 힘]의 저자 올리버 존슨은 선입견과 과거의 수치, 지난 시절의 수학모델을 기계적으로 적용하는 것을 경계한다. 시대는 매번 변하니 항상 조건들과 가정들을 의심하고 같은 모델을 적용하지 않으며 오류가 있다면 이를 인정하고 수정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것이 '틀리지 않고 올바른' 수학의 힘이다.


3.

언제나 지금 현재에 안주하지 않고, 늘 더 나은 자신의 미래를 개척하려던 용감했던 둘째 누나가 다시 못 올 먼 곳으로 돌아간지 십년이 훌쩍 넘어가고 있다.

수학을 잘 했지만 누나가 정확하거나 올바른 삶을 살았을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혼란하고 무작위적이었을 길지 않은 인생의 파고를 넘던 중 어느날 갑자기 떠났다.

둘째 누나는 소설가를 꿈꾸던 이십대의 나를 늘 안쓰럽게 바라보며 능력도 안되면서 본인이 책임질테니 나보고 하고싶은 거 다 하라고 말했다. 그러나 둘째 누나만큼 용감할 자신이 없던 나는 여전히 누나의 손을 뿌리쳤다. 

이제 나도 '수학'은 여기까지 하련다.
사실 몇 권을 읽고 또 읽어도 다 비슷한 내용으로 보이고 더 이상 흥미도 없다.
한편으론 수학을 잘 하던 둘째 누나의 안쓰런 눈빛과 애절한 손길이 그립다. 만일 다시 그런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땐 나의 둘째 누나에게 말만이라도 따뜻하게 전해주고 싶다.

아니, 아직 팔팔한 동생 대신 하루하루 노쇠해지고 잠들기 두려워 매일 저녁 캔맥주를 드시고 주무셔야 하는 연로하신 우리 어머니나 잘 돌봐주기를 바란다.
몇 해 남지 않았을 지도 모르는 어머니와의 무작위한 생활을 내가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도록.

오늘,
십여년 전 누나가 가던 날처럼 햇살이 눈부시다.

***

1. [수학의 힘(Number Crunch)](2023), Oliver Johnson, 노태복 옮김, <더퀘스트>, 2024.
2. [틀리지 않는 법(How Not to Be Wrong) - 수학적 사고의 힘(The Power of Mathematical Thinking)](2014), Jordan Ellenberg, 김명남 옮김, <열린책들>, 2016.
3. [숫자로 읽는 세상의 모든 것(Is That a Big Number?)](2018), Andrew Elliott, 허성심 옮김, <미래의창>, 2021.
4. [직관 수학](2004), 하타무라 요타로, 조윤동 옮김, <서울문화사>, 2005.
5. [단 하나의 방정식(The God Equation)](2021), 미치오 카쿠, 박병철 옮김,<김영사>,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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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지 않고 죽을 수 없는 철학 베스트 50 - 철학의 탄생부터 더 나은 삶을 찾는 현대에 이르기까지 세상을 이해하는 위대한 생각들을 한 권에!
히라하라 스구루 지음, 이아랑 옮김 / 더디퍼런스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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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哲學), '개념의 공예'
- [철학 베스트 50], 히라하라 스구루, 2016.





"다소 거칠게 표현하면 철학은 한마디로 '개념'을 통해 '공통의 이해'를 형성해가는 활동이다. 철학에서는 이를 '공통 이해의 언어게임'이라 부른다... 마음의 움직임을 주시하고 그것을 '개념'으로 완성하는 것. 그런 의미에서 철학은 '개념의 공예'라고 생각할 수 있다."
- [철학 베스트 50], <들어가며>, 히라하라 스구루, 2016.


1.

스무살, 대학 신입생 때 내가 가입했던 영문과 '현대철학반'은 거룩했던 그 이름과는 달리 '현대철학'을 거부했다.

1993년은 30년 이상의 군사독재를 청산하고 문민정권이 출범한 해였다.
광주항쟁의 학살자 전두환과 노태우 두 전직 쿠데타 대통령을 처벌하자는 민중들의 요구가 있었고, 공권력없는 학생들이 '전두환 체포조'를 자청하며 연희동을 순찰하던 시대였다. 문민정부 또한 이러한 거리의 요구에 부응하듯 군부 잔존세력 '하나회'를 척결하고 금융실명제를 통해 부정부패를 정화하기는 하던 시절이었다.

그 해 대학 신입생이었던 우리 '93학번은 이른바 '문민정부 학번'이었다.
한 해 선배인 '92학번까지는 군사독재에 항거했던, 더 좌측에서는 백기완 민중대통령 후보의 득표 1%를 위해 거리에서 노숙을 했다던 험한 시절이었다면 '93학번은 찬란한 세대였다. 그래서 정권과 언론은 우리를 '신세대'라 불렀고, 우리 사회 진정한 '90년대의 시작은 1993년부터였다.

철학도 '신세대'에 맞게 '현대적'이어야 했겠지만, 내가 속한 영문과 학회 '현대철학반'은 19세기말과 20세기초의 '현대'와 마르크스주의에서 멈췄다. 우리에게 철학을 가르친 '90~92학번 선배들은 자기들이 아는 게 마르크스주의 뿐이라고 했고 그래도 학회의 주교재가 고대로부터 마르크스주의까지의 철학사를 다룬 [철학의 철학사적 이해](1987)였으니 2학년 학회 '교사'가 된 우리에게 시대에 맞게 '현대철학'을 펼쳐보라 권했다.

그러나 막상, 이제 본격적으로 '현대철학'을 할 수 있게 된 우리는,
여전히 '현대철학'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2.

며칠전, 1970년대 일본 노동운동의 대부라는 타카다 모토무의 [유물론 vs. 관념론](1974)을 읽고는 우리 '현대철학반'의 주교재 [철학의 철학사적 이해](1987)의 기원을 추측하게 되었다.

내친 김에 역시 일본인의 책이라 께름직하긴 했어도 일본 철학자 히라하라 스구루의 [철학 베스트 50](2016)를 연이어서 읽어보았다. 

고대철학의 출발은 역시 고대 그리스 철학에서부터 시작했는데 타카다 모토무나 영문과 '현대철학반'(이하 '현철반')과 달리 19세기말 프리드리히 니체와 20세기 에드문트 후설을 넘어 마르틴 하이데거와 한나 아렌트를 지나 '포스트 모더니즘'의 정점인 미셸 푸코와 자크 데리다까지 철학의 고전 50권을 요약한 책이다.

나는 고등학교 시절 윤리 시간에 짧게 배웠던 철학사가 재미있었는데 고대 그리스의 소크라테스와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의 '행복론'에서 출발했던 고등학교 윤리 교과서만 알다가 대학에 들어와 '현철반' 교재 [철학의 철학사적 이해](이하 '철철사')를 통해 나는 고대 그리스 탈레스와 헤라클레이토스 등의 '유물론'적 기원을 처음 알게 되었다. 철학사를 유물론과 관념론의 전쟁터로 규정한 마르크스주의 철학적 관점에서 본 철학의 역사다. 
타카다 모토무와 '철철사'의 시점이다.

1986년생 철학자 히라하라 스구루는 다시금 우리의 고등학교 윤리 교과서처럼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에서 시작한다. 저작을 남기지 않은 소크라테스의 제자 플라톤은 스승과의 [대화편]을 통해 '보편성'으로서의 철학이라는 학문의 길을 연 사람이기 때문이다. 세계의 근원이 '물'이라 했던 탈레스, '무한'으로 본 아낙시만드로스나 '공기'라 했던 아낙시메네스, '원자론'의 헤라클레이토스 등은 "세계를 설명하는 원리를 그리스 신화에서 개념으로 바꾸었다는 점에서 커다란 업적을 남겼다"([철학 베스트 50], <1장>). 그러나 이들은 과학이라는 학문분과가 있을 수 없이 그 자체가 '철학'이라는 학문으로 뭉뚱그려져 있던 고대에 그나마 '과학자'들이었던 것이고, "세계의 근거를 '선(善-행복)'이라는 가치에 두었던 (철학자) 플라톤의 통찰은 기존 철학의 수준을 현저히 발전시킨 획기적인 것"(같은책, 같은장)이라고 저자 스구루는 적고 있다. '유물론'의 경향을 갖지 않는 철학자 히라하라 스구루는 철학사에서 과학적 발견의 기원보다는 철학이라는 '보편성'의 학문적 전통을 강조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고대 신화를 철학적 보편성으로 표현한 플라톤이나 중세 종교의 '시녀'였으나 보편성의 끈을 놓치 않았던 스콜라철학, 내용은 종교와 같으나 형식이 다르다는 근대철학자 헤겔 등의 '관념론'이 진짜 정통 철학으로 부각된다. 고대 그리스 '자생적 유물론'과 아리스토텔레스 형이상학의 '유물론'적 요소나 마르크스주의 유물변증법은 이 보편성의 철학사를 보완하는 요소가 된다. 
마르크스주의는 철학사에서 항상 '유물론'의 승리를 보려 하지만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닌 철학자 스구루는 '보편성'이라는 관념론으로 언제든 회귀한다. 물론, '관념론'에 치우치고 싶지 않은 스구루는 이 철학의 '보편성'을 '공통의 이해'(같은책, <들어가며>)로 치환하여 표현하고 있지만.

수많은 철학자들의 고전 50권을 본인만의 시각으로 쉽게 요약해주고 있는 철학자 히라하라 스구루에게 "철학은 한마디로 개념을 통해 공통의 이해를 형성해가는 활동"(같은책, <들어가며>)이다. 복잡다단한 세계와 이 속에서 일어나는 각종 개별적 현상들을 통해 보편적으로 적용할 '개념'을 도출하는 철학의 '관념론'적 요소를 저자는 이렇게 규정하면서 '현대철학'적으로 철학은 '언어의 게임'이라 부른다. 

'현대철학'은 더 이상 종교와 같은 '관념론'적 요소를 강조하지 않는다. '보편성'을 담지하는 '개념'과 '진리'를 향한 목적지향성은 철학의 불가피한 학문적 본질이겠지만, '현대철학'은 신이나 절대자 또는 '일자(一者)' 따위를 더이상 세계의 근본으로 두지 않는다. 과학의 발전이 항상 앞서고 철학은 '미네르바의 올빼미'가 황혼녘에 날개를 펴듯 늘 과학의 뒤를 따르기 때문이다. 과학자들은 언제나 '자생적 유물론자'들이고 철학자들은 과학적 성과의 '개별성'을 '보편성'으로 종합하는 지식의 총결산에 복무한다.

'현대철학'에서 과학과 철학의 학문적 구분은 더욱 명확할지 모르나, '보편성'을 지향하는 학문의 본질상 인문과 자연 각 분야의 과학자들 모두가 철학자가 된다.

"주관은 어떻게 객관을 올바로 인식하는가를 묻는 '주객일치'의 구도는 처음부터 성립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인식이란 '욕구에 상관한 가치평가'로서의 해석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니체 '인식론'의 기본 원리다."
- [철학 베스트 50], <4장. 현대 1 - 니체부터 하이데거까지>, 히라하라 스구루, 2016.

히라하라 스구루는 프리드리히 니체를 높이 평가한다. 50권 중 3권이나 니체의 저작을 소개하면서 말이다. 스구루에 의하면 니체는 철학의 전통적 '인식론'에 인간 '욕망'이라는 혁명적 요소를 도입하면서 '현대철학'을 시작했다. 스구루가 말한 인간의 '욕구'는 '욕망'이다. 철학은 '보편성'의 학문이라 주체인 인간이 객체로서의 세계를 어느정도 인식할 수 있는가 하는 '인식론'에서도 주체의 인식이 객체를 어느정도 반영할 수 있는지가 고전적 주제였다. 주체가 먼저인가 객체가 우선인가를 묻는 '존재론' 다음으로 나오는 철학의 주요 주제가 바로 '인식론'이다.

'유물론'은 '존재론'에서 객체의 일차성을 강조하다보니 '인식론'에서도 인간의 의식 자체도 두뇌라는 물질적 요소를 통한 '물질적 반영'이라고까지 주장하면서 철학의 '관념론'적 요소를 배제하고자 했다. 이에 니체는 '인식론'에서 주객일치의 '보편성'을 향한 경로를 이탈하면서 인간의 '욕망'에 의한 '가치평가'가 인식론을 좌우한다고 한 것이다. 근대의 신을 죽이고 현대를 연 니체가 철학적 '인식론'에서 인간 '욕망'을 개입시키면서 '보편성' 또한 죽이고 말았다. 이제 진리를 아는 건 철학의 '보편성'이 아니라 삶을 긍정하는 '초인'으로서 주체다. 철학사에서 '유물론'과 '관념론'의 투쟁전선을 이탈하고 주체로서의 인간(욕망)을 중심으로 하는 생의 철학과 실존주의 등 현대철학의 문을 연 것이 니체라고 철학자 스구루는 보고 있다.

[철학 베스트 50]에서 히라하라 스구루의 결론은 철학사를 통해 인간 '마음의 움직임을 주시하고 그것을 개념으로 완성'하는 철학은 '개념의 공예'라는 것이다. '현대철학'에서 '보편성'은 거추장스러워졌지만 '공통의 이해'를 지향하는 '개념'을 다듬고 또 다듬는 공예 활동이 바로 '철학'이라는 결론이다.

이를 위해 철학사의 고전 50권은 '읽지 않고는 죽을 수도 없는', 즉 인간으로 태어났다면 죽기 전에 꼭 읽어야 하는 [철학 베스트 50]이 된다.


3.

'현철반'의 선배들이 떠나고 남은 우리 현철반 4인방, 철이엄마와 정박아와 지진아와 벅스터는 결국 '현대철학'과 인간 '욕망'까지 나아가지 못했다.

실존주의는 고민했겠지만 다루지 못했고, 현상학은 무시했으며, '포스트 모더니즘'은 철학으로 보지도 않았다. 당시 1990년대 초반에 우리가 바라보는 세상이 20세기 초와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강했기 때문이리라. 1995년까지 시대는 북유럽 사민주의가 '개량주의'와 비겁한 '기회주의'로 비판받던 시절이었다.

오래전 [마르크스-레닌주의 원전학습 지침서](1989)까지는 아니지만, 철학자가 아닌 일반인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철학 고전들을 읽어주는 히라하라 스구루의 [철학 베스트 50] 같은 책은 여전히 친절하고 고맙다. 살펴보니 비록 나는 50권의 10분의 1인 5권 밖에 읽지 못했지만, 철학자 히라하라 스구루의 말마따나 '철학'은 지식의 양이 중요한 게 아니라 세계운동의 원리와 이에 대한 사고방식, 공통이해(보편성)를 향한 개념을 공유하는 것이라는 생각에 동의하면서 감사한 마음으로 책을 덮는다.

세상의 '이데아'를 꿈꾸며 '개념'을 지속적으로 다듬어 가는 '공예' 활동으로서 '철학'에 동감한다. 
결국 도달하지 못할지라도 끊임없이 도전해온 것이 인류의 역사였고, 철학사 또한 마찬가지였다.

***

1. [읽지 않고 죽을 수 없는 철학 베스트 50](2016), 히라하라 스구루, 이아랑 옮김, <더디퍼런스>, 2024.
2. [마르크스-레닌주의 원전학습 지침서], 모리스 콘퍼스, 이진영 옮김, <새물결>, 1989.
3. [유물론 vs. 관념론 - 철학의 근본문제, 유물론 대 관념론: 역사적 갈등](1974), 타카다 모토무, 최미선 옮김, <책갈피>, 2024.
4. [철학의 철학사적 이해], 이병수/우기동, <돌베개>, 1987.
5. [1990's - 모든 현재의 시작, 1990년대], 윤여일, <돌베개>,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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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의 철학사적 이해 - 돌베개인문.사회과학신서 67
이병수 외 / 돌베개 / 199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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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사의 전장 속 거대한 두 개의 진영
- [유물론 vs. 관념론], 타카다 모토무, 1974.


1.

결국, 
그 책을 돌려받지 못했다.

1993년도에 스무살 대학 신입생이 되었을 때 나는 곧바로 영자신문사에 들어갔는데, '문민정권'임에도 신문사에 버젓이 잔존하던 군사문화가 싫어서 일주일만에 때려치우고 영문과 학생회의 철학학회에 가입했다. 
이름하여, '현대철학반'.

오로지 술 얻어마시고 놀고 싶어 들어갔는데, 역시 '현대철학'을 내건 이름과는 전혀 상관없이 마르크스주의 철학까지가 커리큘럼이었다. '문학사랑반'이나 '문학이론반' 또는 '영미희곡반'처럼 학회원이 많지도 않았다. 누가 봐도 떠밀려서 맡은 우리보다 1년 선배 태범이형이 교사 역할을 했고 지도고문 역할의 보현이형과 종선이형, 60년대생 회근옹 같은 몇 안되는 복학생 선배들이 다였다.
신입회원은 나(벅스터)를 포함한 진욱이(정박아), 진영이(지진아) 남학생 3명과 홍일점 여학생 윤주 1명이었다.

옥토끼 같이 귀엽고 싶어서 스스로 지은 별명이 '벅스터(The Buckster)'였던 나와 마산에서 얼굴 철판깔고 올라온 '정박아', 그리고 나름 8학군 반포동 토박이 '지진아', '현철반' 남자 신입생 3인방은 하라는 '철학'은 안 하고 거의 매일 '정박아'의 자취방 인근에서 술추렴하고 차비가 없어 외박을 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우리 철학학회의 커리큘럼에 맞는 주교재가 하나 있었는데, 아마도 내 고등학생 시절 [성문 기본영어]보다 더 많이 봐서 책 두께가 세 배는 불었고 공자의 '위편삼절'처럼 너덜너덜해지기는 했을 정도로 펼쳐보던 책이기는 했다. 자주 읽기도 했다지만 실은 하도 들고 다니며 함께 풍찬노숙하고 술을 마셔대서 걸레짝이 된 책이라는 게 맞다.

그 교재는 제목이 무려 [철학의 철학사적 이해](1987), 우리들끼리 줄여서 '철.철.사'였다.
2학년이 된 나는 학회장을 한 번 하고 근엄한 척, 진지한 척, 철학자인 척은 혼자 다 하다가 3학년 1학기 고문까지 하고는 그 해 늦가을에 입대를 했다. 보충대 입소 전날 난 나의 가보와 같던 '철.철.사'를 쓰다듬었다. 그리고 또 1년 후 상병 휴가를 나와서 내가 군대 가던 해 1학년 신입회원이었던 여자 후배 미선이를 꼬셨다. 그리고는 다 낡아빠져 그지 같은 '철.철.사'를 그녀에게 맡기고는 홀연히 다시 부대로 복귀했다. 그렇게 그녀는 군복무 중인 나 대신 '현철반'의 후배들을 지도해야 했다. 닳고 닳은 '철.철.사'를 들고.

그리고는 몇 년 후,
그녀와 헤어지면서 수많았던 다른 책들에 묻혀 나의 '철.철.사'를 돌려받지 못했던 거다.

그녀가 '현철반' 복학생 선배 종선이형 집에 내가 준 책들을 다 맡겼다는 얘기를 나중에 들었지만, 그 땐 이미 아마도 그 형이 책들을 다 처분한 후였을 게다.

스무살 초반, 
나의 3년간 철학적 투혼이 담긴 '철.철.사'는 그렇게 잊혀졌다.


2.

"철학사의 출발을 장식한 이오니아 자연학의 자생적 '유물론'과 자생적 '변증법'은 관념론과 형이상학의 도전으로 단련되면서 갈지자 행보를 거쳐, 한편으로는 프랑스 '유물론'으로, 다른 한편으로는 헤겔의 '변증법'으로 결실을 맺었습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세운 새로운 세계관은 이런 약점과 일그러짐을 걷어내고 '유물론'과 '변증법'을 처음으로, 의식적이고 내적으로 결합시켰다는 역사적 의의가 있습니다."
- [유물론 vs. 관념론], <5장. 과학적 세계관의 등장: 마르크스주의 철학의 형성>, 타카다 모토무, 1974.

일본 노동운동의 대부로 불린다는 타카다 모토무(高田求)는 내가 태어났던 1974년에 일찍이 [유물론 vs. 관념론]이라는 책을 써서 노동계급에게 '철학사(哲學史)'를 쉽게 설명했다. 원시 사회로부터 고대 및 봉건을 거쳐 근대 부르주아 사회를 넘어 마르크스주의 철학인 '유물변증법'이 성립되는 철학의 역사를 소개한다. 마르크스의 영원한 동지인 엥겔스의 선언처럼 '철학사의 전장은 유물론과 관념론 양대 진영 사이의 거대한 투쟁'이라는 전제 아래 철학의 역사 속 관념론적 경향을 극복해 온 유물론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몰랐다.
최근 우연히 읽게 된 타카다 모토무의 [유물론 vs. 관념론]의 내용은 오래전 우리 '현대철학반'의 교재 [철학의 철학사적 이해]의 바로 그것이었다.
우리과 '현철반'은 적어도 1990년도 이전부터 '철.철.사'를 교재로 사용했을 텐데, 마르크스주의 철학서인 '철.철.사'는 민주화의 격동기였던 1987년도에 출간되었다.
오랫만에 검색해 보니 오래전 공저자 중 하나였던 우리학교 선배 철학강사 우기동 선생은 빠져있었다. '80년대 좌파 운동권 냄새 풀풀 풍기며 외국 유학 없이 국내에서만 서양철학을 공부했다던 우직한 우기동 선생이 분명히 '철.철.사'의 공저자 중 하나였는데 말이다. 그래서 난 우기동 선생의 철학강의를 찾아서 듣기도 했었는데 말이다.

그렇게 나는,
타카다 모토무의 [유물론 vs. 관념론](1974)을 통해 오랫만에 나의 첫 철학교재인 우기동 선생의 [철학의 철학사적 이해](1987)를 다시 만났다.

이 두 책의 공통점은 마르크스주의 철학인 '유물변증법'의 철저한 관점에서 2천년 철학의 역사를 '유물론'과 '관념론' 양대 진영의 투쟁으로 규정한다는 점이다.
이는 [루드비히 포이어바흐와 독일 고전철학의 종말](1888)의 엥겔스와 [철학노트](1914)의 레닌이 일관되게 견지했던 바로 그 관점이다.
세상의 운동 원리를 규명하고자 하는 철학적 세계관의 역사가 정신이 일차적이라는 '관념론'보다는 물질이 일차적 근원이라는 '유물론'의 승리의 역사라는 시각이다.


3.

"... 이런 문제제기와 답변방식은 완전히 새로운 형식의 세계관이 탄생했음을 의미합니다. 이렇게 성립된 새로운 형식의 세계관, 그것이 바로 '철학'이라고 불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스스로 던진 물음에 내놓은 답은 그 내용상 '원초적이고 자생적인 유물론'이라고 할만한 것이었습니다."
- [유물론 vs. 관념론], <2장. 고대 사회: 철학적 세계관의 형성, 유물론과 관념론의 투쟁>, 타카다 모토무, 1974.

철학은 고대 인류로부터 '세계의 근원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에서 출발했다. 원시 사회에서 언어와 말의 발전과 함께 성립된 '관념론'과 종교는 자연과학과 인류인식이 발전하면서 '유물론'에게 도전을 받는다. 결과적으로 시대 구분 없이 모든 철학적 투쟁에서 '관념론'적 경향은 과학의 발전과 함께 '유물론'적 경향에 의해 패퇴된다.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1844년에 공저한 [독일 이데올로기]에서 말한 '자생적 유물론'은 과학의 발전을 동반하면서 점점 더 '유물론'으로서의 면모를 갖춰나간다. 고대의 원자론이나 중세의 유명론 등은 직관에 기초한 '자생적 유물론이었지만, 근대 부르주아 혁명 시대의 과학 발전 과정에서는 진정한 '유물론'의 형태가 된다. 이제 중요한 것은 역사를 나선형 진보로 엮어내는 '변증법'과의 결합이다.
바로 '유물변증법'으로서의 마르크스주의 철학으로 2천년 철학사가 총결산되는 과정이다.
유물론의 진영에서는 '유물변증법'의 마르크스주의 철학적 세계관이 즉 '현대철학'인 것이다.

레닌은 [마르크스주의 세 가지 원천과 세 가지 구성 부분](1913)이라는 소논문에서, 과학적 사회주의로서 마르크스주의의 원천을,
1) 영국의 정치경제학, 
2) 프랑스의 공상적 사회주의, 
3) 독일의 관념론, 
이상 세 가지로 분류하고 있다. 

1) 영국의 정치경제학은 '노동가치론'이고, 
2) 프랑스의 공상적 사회주의는 1789년 프랑스 부르주아 대혁명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계몽철학의 '유물론'적 경향의 전통이며,
3) 독일의 관념론은 '변증법'적 나선형 진보의 사고방식을 자연과 인류사에 적용시킨 독일 고전철학의 거대한 사상체계로서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이 관념적 사변철학의 집대성체인 독일 고전철학을 '유물론'적으로 바로 세웠다는 의미다. 
이 철학의 정수가 바로 '유물변증법'이다.

'유물변증법'의 관점으로 본다면,
철학사에서 끊임없이 반복되는 '관념론'적 도전은 언제나 과학의 발견 및 진보와 함께 '유물론'의 승리로 귀결되었고, 
앞으로도 항상 그럴 것이다.


"... 여기서 다시, '어떤 관념론자가 다른 관념론자의 근거를 비판할 때 그 투쟁으로 성과를 올리는 것은 언제나 유물론이다'라는 레닌의 지적을 떠올려야 합니다."
- [유물론 vs. 관념론], <3장. 봉건 사회와 그 해체기의 유물론과 관념론>, 타카다 모토무, 1974.

레닌은 1914년 [철학노트]에서 모든 철학적 투쟁의 승리와 진보는 '유물론'적 성과라고 반복한다. 제1차 세계대전이 임박하면서 유럽 노동운동이 반동의 파도에 휩쓸려가던 1914년의 침체기에 러시아 혁명가 레닌은 아리스토텔레스와 헤겔의 거대한 '관념론' 사상체계 속에서 빛나는 '유물론'적 요소들을 발견하고, 이에 역사의 나선형 운동과 변화, 발전을 특징으로 하는 '변증법'을 결합하면서 마르크스주의 철학으로서 '유물변증법'의 정당성을 이론은 물론 실천적으로 입증하고자 한다.

현대철학 아닌 '현대철학'으로서 마르크스주의 '유물변증법'을 대중에게 설명해 주려던 타카다 모토무와 '철.철.사'의 목적도 바로 그것이었다.

나의 '철.철.사', 
나의 [철학의 철학사적 이해]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


4.

"공부 쫌 해라!"

신입생 시절 '현철반' 찌질이 벅스터와 정박아, 지진아 3인방이 여전히 돈이 없어 새우깡과 깡소주를 정박아 자취방 앞 골목에서 까고 있을 때, 지나가던 '87학번 복학생 찬우형이 일갈했다.

같지도 않은 철학 개념들을 남발하며 3인방이 서로 억지를 부리고 있는데, 다른 곳에서 한 잔 걸치고 근처 하숙집으로 올라가던 선배가 '니들, 파쇼와 독재의 차이 아나?'라고 경주 사투리로 물었고, 우리는 침묵했다. 한참을 기다리던 선배는 '폭력'이 있냐 없냐의 차이라고 개념적으로 간결히 정리해 주고는 영문과 철학떨거지 3인방을 일일이 쥐어박고 일어서서 가던 길을 갔다.

멋졌다.
나도 열심히 철학공부를 해서 그런 선배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순간이었고, 지금까지도 여전히 항상 부족하지만 끝까지 철학책들을 읽게 된 중요한 계기 중 한 장면이다.

그래서, 타카다 모토무의 오래된 철학책을 읽고, 
오래전 우리의 '철.철.사'를 추억하게 된 김에, 
'철학은 개념을 통해 공통의 이해를 형성'하는 학문이라고 규정하며 진짜로 '현대철학'까지의 고전들을요약하고 소개해 준다는 일본의 젊은 철학자 히라하라 스그루의 [읽지 않고 죽을 수 없는 철학 베스트 50](2016)을 다음 책으로 읽어보려고 한다.

우연하게도 역시 또 일본 철학자의 책이기는 하나,
그렇다고 난 전혀 '친일파'가 아니며,
일본의 좌파 지성계는 그래도 건전하면서 극우 천왕파시즘과 무관하다는 위안을 스스로 하면서 말이다.

마르크스주의 원전을 심도깊게 분석하는 일본 마르크스주의자 사이토 고헤이만 해도 나보다 젊지만 매우 뛰어난 내공과 식견을 자랑한다.

배움에는 국경도, 나이도 없지 않겠는가.


5.

책은 돌아오지 않았지만,
나는 '유물변증법'을 한 번도 떠나지 않았다.

짧은 한 시절 사랑하던 후배 미선이에게 '현철반'의 운명과 함께 '철.철.사'를 맡겼지만 시대는 더 이상, '유물변증법'의 편이 아니었다.

전역을 했고 학교로 돌아가 그녀와 이후 잠시 더 만났지만, 이미 '현철반'은 사라져 버렸다. '현대철학'을 내걸었음에도 마르크스주의에 머물렀던 학회는 20세기 말 대학 내 학회운동에서 결국 살아남지 못했다.

그 후로 나는 소설을 써서 사라져 가던 '유물변증법', 당시의 용어로 하면 '변증법적 유물론'을 설파하고 싶었다. '현대철학반'은 사라졌지만 여전히 본질적으로 변하지 않은 자본주의 체제에서 마르크스주의 철학의 정당성을 옹호하고 싶었다.

내겐 지금도, 
'문사철'의 궁극적 세계관이 '유물론'과 '변증법'의 결합인 '유물변증법'이다.

내겐 여전히,
철학의 전장에서 거대한 양대 진영의 투쟁이 보인다.

'유물론' 대 '관념론'의 투쟁이.

***

1. [유물론 vs. 관념론 - 철학의 근본문제, 유물론 대 관념론: 역사적 갈등](1974), 타카다 모토무, 최미선 옮김, <책갈피>, 2024.
2. [철학의 철학사적 이해], 이병수/우기동, <돌베개>, 1987.
3. [세계관 - 당신 지식의 한계](2018), 리처드 드위트, 김희주 옮김, <세종>, 2020.
4. [독일 이데올로기](1844), 마르크스/엥겔스, 박재희 옮김, <청년사>, 1988.
5. [루드비히 포이어바흐와 독일 고전철학의 종말](1888), F. Engels, 남상일 옮김, <백산서당>, 1989.
6. [반뒤링론(Anti-During)](1878), F. Engels, 김민석 옮김, <새길>, 1987.
7. [철학노트](1914), 레닌, 홍영두 옮김, <논장>, 1989.
8. [유물론과 경험비판론](1908), 레닌, 박정호 옮김, <돌베개>, 1992.
9. [지속불가능 자본주의 - 기후위기 시대의 자본론](2020), 사이토 고헤이, 김영현 옮김, <다다서재>, 2021.
10. [마르크스의 생태사회주의 - 자본, 자연, 미완의 정치경제학 비판](2017), 사이토 고헤이, 추선영 옮김, <두번째테제>, 2020.
11. [읽지 않고 죽을 수 없는 - 철학 베스트 50](2016), 히라하라 스구루, 이아랑 옮김, <더디퍼런스>,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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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의 근본 문제 유물론 대 관념론 : 역사적 갈등
타카다 모토무 지음, 최미선 옮김 / 책갈피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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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사의 전장 속 거대한 두 개의 진영
- [유물론 vs. 관념론], 타카다 모토무, 1974.


1.

결국, 
그 책을 돌려받지 못했다.

1993년도에 스무살 대학 신입생이 되었을 때 나는 곧바로 영자신문사에 들어갔는데, '문민정권'임에도 신문사에 버젓이 잔존하던 군사문화가 싫어서 일주일만에 때려치우고 영문과 학생회의 철학학회에 가입했다. 
이름하여, '현대철학반'.

오로지 술 얻어마시고 놀고 싶어 들어갔는데, 역시 '현대철학'을 내건 이름과는 전혀 상관없이 마르크스주의 철학까지가 커리큘럼이었다. '문학사랑반'이나 '문학이론반' 또는 '영미희곡반'처럼 학회원이 많지도 않았다. 누가 봐도 떠밀려서 맡은 우리보다 1년 선배 태범이형이 교사 역할을 했고 지도고문 역할의 보현이형과 종선이형, 60년대생 회근옹 같은 몇 안되는 복학생 선배들이 다였다.
신입회원은 나(벅스터)를 포함한 진욱이(정박아), 진영이(지진아) 남학생 3명과 홍일점 여학생 윤주 1명이었다.

옥토끼 같이 귀엽고 싶어서 스스로 지은 별명이 '벅스터(The Buckster)'였던 나와 마산에서 얼굴 철판깔고 올라온 '정박아', 그리고 나름 8학군 반포동 토박이 '지진아', '현철반' 남자 신입생 3인방은 하라는 '철학'은 안 하고 거의 매일 '정박아'의 자취방 인근에서 술추렴하고 차비가 없어 외박을 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우리 철학학회의 커리큘럼에 맞는 주교재가 하나 있었는데, 아마도 내 고등학생 시절 [성문 기본영어]보다 더 많이 봐서 책 두께가 세 배는 불었고 공자의 '위편삼절'처럼 너덜너덜해지기는 했을 정도로 펼쳐보던 책이기는 했다. 자주 읽기도 했다지만 실은 하도 들고 다니며 함께 풍찬노숙하고 술을 마셔대서 걸레짝이 된 책이라는 게 맞다.

그 교재는 제목이 무려 [철학의 철학사적 이해](1987), 우리들끼리 줄여서 '철.철.사'였다.
2학년이 된 나는 학회장을 한 번 하고 근엄한 척, 진지한 척, 철학자인 척은 혼자 다 하다가 3학년 1학기 고문까지 하고는 그 해 늦가을에 입대를 했다. 보충대 입소 전날 난 나의 가보와 같던 '철.철.사'를 쓰다듬었다. 그리고 또 1년 후 상병 휴가를 나와서 내가 군대 가던 해 1학년 신입회원이었던 여자 후배 미선이를 꼬셨다. 그리고는 다 낡아빠져 그지 같은 '철.철.사'를 그녀에게 맡기고는 홀연히 다시 부대로 복귀했다. 그렇게 그녀는 군복무 중인 나 대신 '현철반'의 후배들을 지도해야 했다. 닳고 닳은 '철.철.사'를 들고.

그리고는 몇 년 후,
그녀와 헤어지면서 수많았던 다른 책들에 묻혀 나의 '철.철.사'를 돌려받지 못했던 거다.

그녀가 '현철반' 복학생 선배 종선이형 집에 내가 준 책들을 다 맡겼다는 얘기를 나중에 들었지만, 그 땐 이미 아마도 그 형이 책들을 다 처분한 후였을 게다.

스무살 초반, 
나의 3년간 철학적 투혼이 담긴 '철.철.사'는 그렇게 잊혀졌다.


2.

"철학사의 출발을 장식한 이오니아 자연학의 자생적 '유물론'과 자생적 '변증법'은 관념론과 형이상학의 도전으로 단련되면서 갈지자 행보를 거쳐, 한편으로는 프랑스 '유물론'으로, 다른 한편으로는 헤겔의 '변증법'으로 결실을 맺었습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세운 새로운 세계관은 이런 약점과 일그러짐을 걷어내고 '유물론'과 '변증법'을 처음으로, 의식적이고 내적으로 결합시켰다는 역사적 의의가 있습니다."
- [유물론 vs. 관념론], <5장. 과학적 세계관의 등장: 마르크스주의 철학의 형성>, 타카다 모토무, 1974.

일본 노동운동의 대부로 불린다는 타카다 모토무(高田求)는 내가 태어났던 1974년에 일찍이 [유물론 vs. 관념론]이라는 책을 써서 노동계급에게 '철학사(哲學史)'를 쉽게 설명했다. 원시 사회로부터 고대 및 봉건을 거쳐 근대 부르주아 사회를 넘어 마르크스주의 철학인 '유물변증법'이 성립되는 철학의 역사를 소개한다. 마르크스의 영원한 동지인 엥겔스의 선언처럼 '철학사의 전장은 유물론과 관념론 양대 진영 사이의 거대한 투쟁'이라는 전제 아래 철학의 역사 속 관념론적 경향을 극복해 온 유물론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몰랐다.
최근 우연히 읽게 된 타카다 모토무의 [유물론 vs. 관념론]의 내용은 오래전 우리 '현대철학반'의 교재 [철학의 철학사적 이해]의 바로 그것이었다.
우리과 '현철반'은 적어도 1990년도 이전부터 '철.철.사'를 교재로 사용했을 텐데, 마르크스주의 철학서인 '철.철.사'는 민주화의 격동기였던 1987년도에 출간되었다.
오랫만에 검색해 보니 오래전 공저자 중 하나였던 우리학교 선배 철학강사 우기동 선생은 빠져있었다. '80년대 좌파 운동권 냄새 풀풀 풍기며 외국 유학 없이 국내에서만 서양철학을 공부했다던 우직한 우기동 선생이 분명히 '철.철.사'의 공저자 중 하나였는데 말이다. 그래서 난 우기동 선생의 철학강의를 찾아서 듣기도 했었는데 말이다.

그렇게 나는,
타카다 모토무의 [유물론 vs. 관념론](1974)을 통해 오랫만에 나의 첫 철학교재인 우기동 선생의 [철학의 철학사적 이해](1987)를 다시 만났다.

이 두 책의 공통점은 마르크스주의 철학인 '유물변증법'의 철저한 관점에서 2천년 철학의 역사를 '유물론'과 '관념론' 양대 진영의 투쟁으로 규정한다는 점이다.
이는 [루드비히 포이어바흐와 독일 고전철학의 종말](1888)의 엥겔스와 [철학노트](1914)의 레닌이 일관되게 견지했던 바로 그 관점이다.
세상의 운동 원리를 규명하고자 하는 철학적 세계관의 역사가 정신이 일차적이라는 '관념론'보다는 물질이 일차적 근원이라는 '유물론'의 승리의 역사라는 시각이다.


3.

"... 이런 문제제기와 답변방식은 완전히 새로운 형식의 세계관이 탄생했음을 의미합니다. 이렇게 성립된 새로운 형식의 세계관, 그것이 바로 '철학'이라고 불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스스로 던진 물음에 내놓은 답은 그 내용상 '원초적이고 자생적인 유물론'이라고 할만한 것이었습니다."
- [유물론 vs. 관념론], <2장. 고대 사회: 철학적 세계관의 형성, 유물론과 관념론의 투쟁>, 타카다 모토무, 1974.

철학은 고대 인류로부터 '세계의 근원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에서 출발했다. 원시 사회에서 언어와 말의 발전과 함께 성립된 '관념론'과 종교는 자연과학과 인류인식이 발전하면서 '유물론'에게 도전을 받는다. 결과적으로 시대 구분 없이 모든 철학적 투쟁에서 '관념론'적 경향은 과학의 발전과 함께 '유물론'적 경향에 의해 패퇴된다.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1844년에 공저한 [독일 이데올로기]에서 말한 '자생적 유물론'은 과학의 발전을 동반하면서 점점 더 '유물론'으로서의 면모를 갖춰나간다. 고대의 원자론이나 중세의 유명론 등은 직관에 기초한 '자생적 유물론이었지만, 근대 부르주아 혁명 시대의 과학 발전 과정에서는 진정한 '유물론'의 형태가 된다. 이제 중요한 것은 역사를 나선형 진보로 엮어내는 '변증법'과의 결합이다.
바로 '유물변증법'으로서의 마르크스주의 철학으로 2천년 철학사가 총결산되는 과정이다.
유물론의 진영에서는 '유물변증법'의 마르크스주의 철학적 세계관이 즉 '현대철학'인 것이다.

레닌은 [마르크스주의 세 가지 원천과 세 가지 구성 부분](1913)이라는 소논문에서, 과학적 사회주의로서 마르크스주의의 원천을,
1) 영국의 정치경제학, 
2) 프랑스의 공상적 사회주의, 
3) 독일의 관념론, 
이상 세 가지로 분류하고 있다. 

1) 영국의 정치경제학은 '노동가치론'이고, 
2) 프랑스의 공상적 사회주의는 1789년 프랑스 부르주아 대혁명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계몽철학의 '유물론'적 경향의 전통이며,
3) 독일의 관념론은 '변증법'적 나선형 진보의 사고방식을 자연과 인류사에 적용시킨 독일 고전철학의 거대한 사상체계로서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이 관념적 사변철학의 집대성체인 독일 고전철학을 '유물론'적으로 바로 세웠다는 의미다. 
이 철학의 정수가 바로 '유물변증법'이다.

'유물변증법'의 관점으로 본다면,
철학사에서 끊임없이 반복되는 '관념론'적 도전은 언제나 과학의 발견 및 진보와 함께 '유물론'의 승리로 귀결되었고, 
앞으로도 항상 그럴 것이다.


"... 여기서 다시, '어떤 관념론자가 다른 관념론자의 근거를 비판할 때 그 투쟁으로 성과를 올리는 것은 언제나 유물론이다'라는 레닌의 지적을 떠올려야 합니다."
- [유물론 vs. 관념론], <3장. 봉건 사회와 그 해체기의 유물론과 관념론>, 타카다 모토무, 1974.

레닌은 1914년 [철학노트]에서 모든 철학적 투쟁의 승리와 진보는 '유물론'적 성과라고 반복한다. 제1차 세계대전이 임박하면서 유럽 노동운동이 반동의 파도에 휩쓸려가던 1914년의 침체기에 러시아 혁명가 레닌은 아리스토텔레스와 헤겔의 거대한 '관념론' 사상체계 속에서 빛나는 '유물론'적 요소들을 발견하고, 이에 역사의 나선형 운동과 변화, 발전을 특징으로 하는 '변증법'을 결합하면서 마르크스주의 철학으로서 '유물변증법'의 정당성을 이론은 물론 실천적으로 입증하고자 한다.

현대철학 아닌 '현대철학'으로서 마르크스주의 '유물변증법'을 대중에게 설명해 주려던 타카다 모토무와 '철.철.사'의 목적도 바로 그것이었다.

나의 '철.철.사', 
나의 [철학의 철학사적 이해]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


4.

"공부 쫌 해라!"

신입생 시절 '현철반' 찌질이 벅스터와 정박아, 지진아 3인방이 여전히 돈이 없어 새우깡과 깡소주를 정박아 자취방 앞 골목에서 까고 있을 때, 지나가던 '87학번 복학생 찬우형이 일갈했다.

같지도 않은 철학 개념들을 남발하며 3인방이 서로 억지를 부리고 있는데, 다른 곳에서 한 잔 걸치고 근처 하숙집으로 올라가던 선배가 '니들, 파쇼와 독재의 차이 아나?'라고 경주 사투리로 물었고, 우리는 침묵했다. 한참을 기다리던 선배는 '폭력'이 있냐 없냐의 차이라고 개념적으로 간결히 정리해 주고는 영문과 철학떨거지 3인방을 일일이 쥐어박고 일어서서 가던 길을 갔다.

멋졌다.
나도 열심히 철학공부를 해서 그런 선배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순간이었고, 지금까지도 여전히 항상 부족하지만 끝까지 철학책들을 읽게 된 중요한 계기 중 한 장면이다.

그래서, 타카다 모토무의 오래된 철학책을 읽고, 
오래전 우리의 '철.철.사'를 추억하게 된 김에, 
'철학은 개념을 통해 공통의 이해를 형성'하는 학문이라고 규정하며 진짜로 '현대철학'까지의 고전들을요약하고 소개해 준다는 일본의 젊은 철학자 히라하라 스그루의 [읽지 않고 죽을 수 없는 철학 베스트 50](2016)을 다음 책으로 읽어보려고 한다.

우연하게도 역시 또 일본 철학자의 책이기는 하나,
그렇다고 난 전혀 '친일파'가 아니며,
일본의 좌파 지성계는 그래도 건전하면서 극우 천왕파시즘과 무관하다는 위안을 스스로 하면서 말이다.

마르크스주의 원전을 심도깊게 분석하는 일본 마르크스주의자 사이토 고헤이만 해도 나보다 젊지만 매우 뛰어난 내공과 식견을 자랑한다.

배움에는 국경도, 나이도 없지 않겠는가.


5.

책은 돌아오지 않았지만,
나는 '유물변증법'을 한 번도 떠나지 않았다.

짧은 한 시절 사랑하던 후배 미선이에게 '현철반'의 운명과 함께 '철.철.사'를 맡겼지만 시대는 더 이상, '유물변증법'의 편이 아니었다.

전역을 했고 학교로 돌아가 그녀와 이후 잠시 더 만났지만, 이미 '현철반'은 사라져 버렸다. '현대철학'을 내걸었음에도 마르크스주의에 머물렀던 학회는 20세기 말 대학 내 학회운동에서 결국 살아남지 못했다.

그 후로 나는 소설을 써서 사라져 가던 '유물변증법', 당시의 용어로 하면 '변증법적 유물론'을 설파하고 싶었다. '현대철학반'은 사라졌지만 여전히 본질적으로 변하지 않은 자본주의 체제에서 마르크스주의 철학의 정당성을 옹호하고 싶었다.

내겐 지금도, 
'문사철'의 궁극적 세계관이 '유물론'과 '변증법'의 결합인 '유물변증법'이다.

내겐 여전히,
철학의 전장에서 거대한 양대 진영의 투쟁이 보인다.

'유물론' 대 '관념론'의 투쟁이.

***

1. [유물론 vs. 관념론 - 철학의 근본문제, 유물론 대 관념론: 역사적 갈등](1974), 타카다 모토무, 최미선 옮김, <책갈피>, 2024.
2. [철학의 철학사적 이해], 이병수/우기동, <돌베개>, 1987.
3. [세계관 - 당신 지식의 한계](2018), 리처드 드위트, 김희주 옮김, <세종>, 2020.
4. [독일 이데올로기](1844), 마르크스/엥겔스, 박재희 옮김, <청년사>, 1988.
5. [루드비히 포이어바흐와 독일 고전철학의 종말](1888), F. Engels, 남상일 옮김, <백산서당>, 1989.
6. [반뒤링론(Anti-During)](1878), F. Engels, 김민석 옮김, <새길>, 1987.
7. [철학노트](1914), 레닌, 홍영두 옮김, <논장>, 1989.
8. [유물론과 경험비판론](1908), 레닌, 박정호 옮김, <돌베개>, 1992.
9. [지속불가능 자본주의 - 기후위기 시대의 자본론](2020), 사이토 고헤이, 김영현 옮김, <다다서재>, 2021.
10. [마르크스의 생태사회주의 - 자본, 자연, 미완의 정치경제학 비판](2017), 사이토 고헤이, 추선영 옮김, <두번째테제>, 2020.
11. [읽지 않고 죽을 수 없는 - 철학 베스트 50](2016), 히라하라 스구루, 이아랑 옮김, <더디퍼런스>,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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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크라 2025-07-10 2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밌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