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 2 - 진실로 용기있는 자는 가볍게 죽지 않는다
사마천 지음, 김진연 옮김 / 서해문집 / 200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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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삼장(法三章)’, 그 개혁(改革)의 정신으로

-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를 통해 보는 고사성어(故事成語)(8)

: ‘항우본기(項羽本記)’, ‘고조본기(高祖本記)’를 통해 본 초한전쟁(楚漢戰爭) - 1

 

어느 사회에든, ()이 있다. 어떤 이에게 이 은 외부의 어떠한 개입이나 간섭으로부터 독립되어 가치중립적으로 사회 구성원들의 행동기준을 설정하고 제약하는 규범인 반면, 어떤 이는 지배-피지배계급의 국가권력 관계와 결부시켜 이 을 피지배계급에 대한 지배계급의 의지의 표현이라 규정하기도 한다.

지금 우리 사회, 국가보안법(國家保安法)이 있다. 어떤 이에게 이 은 남북의 체제대립 하에서 국가의 안보(安保)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장치인 반면, 어떤 이에게 이 은 사회적 부와 권력을 독점한 세력들이 허위적인 국가안보가 아닌 실질적인 자신들의 오랜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존치(存置)시키려는 낡은 지배기제로 작용할 뿐이다. 우리 사회 민주화 과정에서 기득권 세력들이 자신을 비판하는 세력들을 탄압하여 수많은 빨갱이들을 양산하는데 주요한 무기가 되었던 이 국가보안법의 존폐(存廢)를 두고 벌어지는 쟁투(爭鬪)의 전선(戰線)은 이 에 대한 시각의 다름에 따라 합치될 수 없는 커다란 차이를 두고 그어진다.

기원전 206년, 진()나라 말기 억압적인 중앙권력에 반기를 든 중국 최초의 농민봉기 지도자 진승(陣勝)과 오광(吳廣)이 반란(反亂)을 일으킨 지 3년이 지난 해이자, 진시황(秦始皇)을 이은 2세황제 호해(胡亥)가 환관 조고(趙高)에게 죽임을 당한 이듬해인 그 해, 이후 한()나라를 세워 중국을 다시금 통일하여 한고조(漢高祖)로 추존(推尊)되는 유방(劉邦;劉季)은 패상(覇上)이라는 지역에서 진왕(秦王) 자영()의 항복을 받고 함곡관을 넘어 진나라 수도 함양(咸陽)에 입성하게 된다. 진왕 자영은 2세황제 호해를 시해하고 자신을 황제로 세우려 하던 진나라 간신 조고를 제거하고 스스로 진왕이 된 자로서 그 해 얼마 후 진나라 최후의 맹장 장함()과의 고전(苦戰)으로 유방보다 조금 늦게 함양에 도착한 유방의 숙적(宿敵), 항우(項羽;項籍)에 의해 죽음을 맞는다. 그리고 나서 항우는 함양을 온통 불바다로 만들어버리고 항복한 진나라 사람들을 도륙한 후에 초회왕(楚懷王)을 의제(義帝)로 내세우고 공()이 있는 장수들을 각 지역의 제후로 봉한 후(논공행상;論功行賞), 스스로 서초패왕(西楚覇王)이 되어 자신의 고향인 팽성(彭城)으로 돌아간다. 함양에 남아 천하통일의 기반을 다져야 한다는 항우측 책사(策士) 범증(范增)의 헌책을 무시한 항우의 이와 같은 처사는 이후 돌이킬 수 없는 후회로 남는데, ‘성공하여 고향에 돌아가지 않는 것은 밤에 비단옷을 입고 가는 것과 같다’고 하는 금의야행(錦衣夜行), 성공하여 고향으로 돌아간다는 금의환향(錦衣還鄕) 등의 고사는 여기서 유래한다고 한다. 

어쨌든, 한고조 유방의 함양 점령은 전국시대(戰國時代)가 진시황에 의해 통일된 후 십여년 동안 진나라 법가체제(法家體制)의 폭정(暴政)에 시달린 당시 민중(民衆)들이 진승과 오광의 봉기를 기폭제로 하여 난을 일으킨 후 처음으로 진나라 수도를 함락한 사건이었다. 한 해 전, 장초(張楚)의 왕을 칭하던 진승이 죽음으로써 초()나라를 다시 세우기 위해 항우의 숙부 항량(項梁)이 옹립한 초회왕이 부활한 초나라의 장수로서 수많은 군현을 함락시키며 활약하던 항우와 유방 등의 장수에게 진나라 수도 함양에 먼저 들어가는 자에게는 관중왕(關中王)의 작위를 내리겠다고 약속하였고 항우와 유방, 두 장수의 경쟁에서 보다 쉬운 길을 택한 유방측은 순전히 운이 좋은 덕에 항우보다 먼저 관중에 들어서게 된 것이었다. 그러나 패()현의 시골 저잣거리에서 삼십대 후반까지 건달노릇을 하던 한고조 유방은 옛 초나라의 뿌리깊은 무장(武將) 집안의 유일한 자손인 서초패왕 항우와 달리 금욕이나 강철 같은 규율 같은 것과는 거리가 먼 인물이었다. 항우보다 먼저 함양에 이르러 진왕의 자발적인 항복까지 받아낸 그는 자신이 마치 천하를 다 얻은 듯한 착각에 빠져 진시황 시절부터 갖추어진 수도 함양의 재물과 아방궁(阿房宮)과 같은 호화로운 궁전 등의 온갖 사치함에 넋을 잃고 그 자리에 안주하려 한다. 이에 유방의 오른팔 격인 장사(壯士) 번쾌(樊噲)가 그를 설득하였으나 수포로 돌아간다. 그러나 유방측 최고의 책사(策士) 장량(張良)의 충언(忠言)을 듣고 다시 패상(覇上)으로 돌아오게 되는데, 여기서 장량의 유명한 고사 양약고어구 충언역어이(良藥苦於口 忠言易於耳)가 유래한다. 즉 몸에 좋은 약은 입에 쓰고, 옳은 말은 귀에 거슬리지만 결국 도움이 된다는 의미이다. 또한 유방은 함양의 재물과 유산, 행정서류들을 고스란히 봉인하고 패상으로 돌아가며 기존 진나라의 엄격한 법제도는 모두 폐지하고 간략한 법제도만 포고하는데, 법삼장(法三章), 혹은 약법삼장(約法三章)은 이를 두고 이른다.

法三章 (:법 법 / :석 삼 / :문장 장)
세 장의 법.

 

민중들의 생활을 어우르는 올바른 통치를 위해서는 복잡하고 엄격하기만 한 법보다는 단순한 법이 더 긴요하다는 의미이다. 이는 유방이 관중을 지나 진나라 수도 함양을 점령한 후 기존의 법을 폐지하고 사람을 죽인 자, 사람을 상해한 자, 도둑질을 한 자 등의 처벌에 관하여 단순히 세 가지 법만을 공표하여 민심(民心)을 사로잡은 고사로부터 유래한다.

이와 같이 엄격한 법제도 아래서 억압받던 민중들을 해방시킨 유방은 관중의 부로(父老)들로부터 패상의 진인 유방(覇上之眞人 劉邦)이라 불리게 되는데, 이들 앞에서 행한 그의 연설을 들어보자,

여러분은 오랫동안 가혹한 억압에 시달려 왔습니다. 국정을 비판했다가는 일족이 몰살당해야 했고, 길에서 쑥덕거리기만 해도 잡혀가서 사람들이 많이 모인 거리에서 참수를 당할 정도였습니다. 제후들은 약속했습니다. 관중에 먼저 들어간 자가 왕이 되기로 말입니다. 그러므로 관중의 왕은 바로 나 자신입니다. 왕의 자격으로 나는 여러분과 약속합니다.

우선 법은 세 가지만 정합니다(법삼장;法三章). 즉 사람을 죽인 자, 사람을 상해한 자, 도둑질을 한 자는 그 죄에 따라 처벌한다는 것입니다. 그 외에 진나라가 정한 모든 잔인하고 복잡한 법령들은 모두 즉시 폐지합니다. 앞으로는 모두 편안하게 지내시기를 당부합니다.

우리가 관중에 들어온 목적은 오직 여러분을 위하여 학정(虐政)을 없애자는 데에 있으며, 결코 난폭한 짓은 하지 않을 것이니 안심하십시오. 또한 우리 군사가 다시 패상으로 철수한 것은 여기서 제후들의 도착을 기다려 그들과 정식으로 협의를 하기 위한 것일 뿐 다른 뜻은 없습니다.

이 사실을 안 항우가 거록(鉅鹿)에서 진나라 최후의 맹장 장함의 항복을 받고 거세게 함양으로 쳐들어 온 후, 언급했듯이 진왕을 비롯한 진나라 사람들을 살육하고 함양의 모든 유산들을 모조리 파괴함으로써 민중들을 위한 정치는 파탄이 나지만, 민심을 바로 읽은 유방이 내건 법삼장의 개혁(改革)정신은 이후 천하패권(天下覇權)을 둔 쟁패(爭覇)에서 항우에 대항할 때마다 민중들이 유방의 깃발 아래 모이게 되는 확실한 기반이 되었음에는 틀림이 없다. 

물론, 세 가지 법, 첫째, 사람을 죽인 자는 사형에 처한다. 둘째, 남을 다치게 한 자는 그 죄에 따라 처벌하며, 셋째 남의 물건을 훔친 자 또한 그에 따라 처벌한다, 는 법삼장(法三章)은 온갖 엄격한 법령에 시달리던 진나라 치하의 민중들을 해방시켜 진제국 체제 이전의 평화롭던 시절로 돌아간다는 뜻이었기는 하나 또 다른 제국(帝國)을 건설하여 민중들을 지배하려 했던 한고조 유방의 정치적 의도가 다분히 깔려 있는 일종의 이데올로기적 선언에 불과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오랜 전쟁과 폭정으로 억눌리기만 하던 사회구성의 기반인 대다수 민중들에게 은 과연 어떠해야 하는가를 보여주는 보기 좋은 한 일례가 되기도 한다.

()은 사회 구성원들의 갈등을 조정하여 더불어 살아갈 수 있게끔 행동규범을 설정하는 것을 주된 존재이유로 한다. 나름의 역사적 필요에 의해 탄생한 국가권력(國家權力)이 시대가 흐르면서 사회구성원들의 위에 군림하면서 독립된 정치적 생명체가 된 현대사회에서, 국가권력의 유지를 위한 또한 갈수록 사회구성원들로부터 소외(疎外)되는 경향이 있다, 그럼에도 권력투쟁의 정점에는 언제나 을 중심으로 하는 헤게모니 투쟁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우리 사회에서 이 지니는 중요한 존재가치를 정확히 증명해 준다, 그런 만큼 다시 기본으로 돌아가서 생각해 보자. 국가권력의 기반이 되는 거대한 토대가 그 국가의 구성원이고 그들의 생활이듯이, 이 사회구성원들의 정치사회적 생활 자체를 억압하거나 구속하는 기능을 하고, 해당 사회의 지배적인 사상과 다른 다양한 생각들이 공개적으로 경쟁하여 보다 나은 대안들을 창출하는 것을 방해함으로써 결국에는 사회의 발전에 질곡(桎梏)으로 작용하는데 그 존재목적을 두어서는 안되지 않겠는가.

반세기 이상 냉전체제를 통해 사회적 부와 권력을 독점해 온 소수 기득권 세력들의 안위만을 위해 존재했던 낡을 대로 낡은 국가보안법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수 밖에 없는 이유는 다름 아닌 바로 이 지점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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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베스피에르, 혁명의 탄생 문제적 인간 1
장 마생 지음, 최갑수 머리말, 양희영 옮김 / 교양인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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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베스삐에르와 중도개혁 세력의 한계, 그리고 민주노동당

 

근대혁명의 시작을 알린 1789년 프랑스대혁명은 현재까지도 진보적 희망을 이야기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혁명 또는 개혁의 이상적 모델로 회자되고는 한다. 하지만 현재형이 아닌 역사적 과거로 기억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그렇게나마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의 서곡인 프랑스대혁명이 기억되는 이유는 계급불평등 사회의 깊은 질곡을 넘어서려는 의지가 아직까지 부르주아 민주주의혁명의 단계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프랑스대혁명은 분명 중세의 봉건적 계급관계에 대한 확실한 반란이었다. 그 양태와 규모가 너무도 확실하여 그 이후 1848년 2월 혁명이나 1871년의 파리코뮌을 통해 표출된 노동계급의 반란과는 다르게 대혁명으로 불리고 있는 듯 하다. 하지만 대혁명으로 추앙받는 본질에는 바로 지금 이 사회의 계급적 역관계가 투영되어 있다. 계급의 철폐와 노동해방을 목표로 했던 사회주의체제의 패배, 신자유주의로 무장한 초국적 자본의 광범위하고도 철저한 계급지배를 통해 갈수록 이 사회는 자본가만이, 부르주아지만이 자신의 존재론적 정당성을 확보하고 있는 듯 하기 때문이다. 사회진보의 최고가치로서 계급철폐와 노동해방을 주장하는 세력이 갈수록 약해져만 가는 지금, 다른 혁명들에 비해 프랑스대혁명은 대혁명으로서 더욱 찬란하게 기억되고 있다.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의 중심에 바로 막시밀리앙 드 로베스삐에르(Maximilien de Robespierre)가 있다. 공포정치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인물, 좀더 깊이 파고 들어가 알아보면 독재적 권력에 대한 편집증세로 인해 부르주아 혁명을 말아먹은 인물 등으로 알려진 바로 그 인물이다. 그러나, 진정 제대로 알게 된다면, 민중을 배반한 채 루이16세와 밀거래를 했던 왕당파 오노레가브리엘 미라보, 혁명을 더 이상 지속하지 않으려 했던 관용파의 조르주 당통과 같은 정적들을 제거함으로써, 고단한 민중의 해방과 애국에 대한 열정을, 외부의 왕정복고주의자들로부터 프랑스의 혁명정신을 지키기 위해 민중중심의 원칙을 고수한 부르주아 최후의 인물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794년 7월, 혁명을 배반한 의원들의 이른바 테르미도르 반동 쿠데타로 인해 단두대 이슬로 사라질 때까지 그는 꿈을 버리지 않았다. 기층 민중이 주인되는 세상을 향한 꿈을. 그러나 그 꿈은 그 자체로 실현될 수 없었다. 봉건주의 타파를 기치로 왕족과 성직자에 비해 정치적으로 소외되었던 제3신분으로서 부르주아들의 정치적 권력 쟁취와 자본주의적 체제를 정착하면서 근대사회 창출의 역사적 임무를 지닌 1789년 프랑스대혁명을 당시의 기층 민중, 노동자와 농민은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못했고, 그렇기 때문에 혁명의 주체가 될 수 없었으며, 필연적으로 부르주아 혁명에 의해 배반당하게 되어 있었던 것이다. 노동자, 농민이 대다수인 민중이 주인되는 세상이 꿈에 머물 수 밖에 없었던 그 지점, 장 자끄 루소의 정치적 아들이라 자처했던 로베스삐에르의 한계는 바로 거기까지였다.

민중… 민중의 교육을 가로막는 장애물로는 또 무엇이 있는가? 빈곤이다. 그렇다면 민중은 언제 계몽될 것인가? 민중이 빵을 갖게 될 때, 그리고 부자들과 정부가 더 이상 민중을 속이기 위해 신의없는 펜과 혀를 매수하지 않게 될 때, 그리고 그들의 이익이 민중의 이익과 합치될 때이다. 언제 그들의 이익이 민중의 이익과 합치될 것인가? 그런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

- Maximilien de Robespierre, 1793년의 노트 중

 

테르미도르 반동을 이끈 부르주아 의원들은 로베스삐에르의 개인적 문건들을 모두 강탈했다고 하지만, 그가 처형되기 1년 전의 노트에서 그는 민중의 빈곤을 끈질기게 문제삼았고, 부자들과 정부로 대변되는 신의없는 부르주아 계급을 비판했으며, 그럼에도 그들의 이익은 민중의 이익과 결코 합치될 수 없음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우리 사회, 노무현 정권은 새삼스레 양극화 문제를 화두로 삼고 있다. 오래 전부터 이 사회 노동자, 농민 등 대다수 민중들이 해결하고자 했던 그 문제를 가지고 신년에 국민들 앞에서 연설을 했다. 그러나 그 해법은 정규직 노동자와 비정규직 노동자의 차이를 부각시키고, 대기업 노동자와 중소기업 노동자의 차이를 강조하면서, 같은 피지배계급으로서 노동자를 분열시켜 어느 한 쪽의 양보만을 통해 상대적으로 처우가 낮은 다른 한 쪽의 차별을 해소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같은 노동자이면서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에게 양보의 결단을 촉구하는 그 정권은 정작 스스로 비정규직과 빈곤해결에 대해 어떠한 정책을 내어놓았는가. 현재 국회 계류 중인 비정규직 확대 법안의 조속한 입법화를 강조했고 정부 스스로 비정규직 공공일자리 창출을 통한 실업문제 해소를 주장했다. 정규직 노동자들이 투쟁을 통해 스스로 쟁취했던 고용안정과 권익확보의 성과를 허물고 노동자끼리만 나누어 대다수 노동자 모두가 비정규직이 되고 빈곤해지라는 것이다. 양극화 문제를 해소하고 빈곤의 격차를 해소하겠다는 이 정권의 해법은 결국 모든 노동자의 비정규직화와 모든 노동자의 빈곤평준화였던 것이다.

지금까지 이 사회 모든 정권이 외면했던 양극화와 민중빈곤의 문제들을 신자유주의적 계급지배가 사회 전체에 확산되고 뿌리내린 지금 현정권도 더 이상 모른 채 할 수 없었고, 이 사회를 보는 시각이 어떠한지를 나름의 정책으로 드러내고 있다. 역시 대다수 노동자계급이 바라보는 시각과 같을 수 없다. 하지만 양극화 문제를 공론화하면서 이제 비로소 비정규직 문제와 민중빈곤의 문제를 전면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 노무현 정권과 중도개혁 세력은 자신의 임무를 본격적으로 수행하는 일만 남았다. 이 사회 부르주아 민주주의 개혁을 완수하는 것, 가능하면 수구보수세력과의 대립각을 더 날카롭게 세워서 스스로가 자처하는 중도개혁의 위치를 굳히는 것, 18세기의 로베스삐에르처럼 강고할수록 더 좋을 것이다. 대다수 노동자와 민중의 이익에 기반하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양극화와 민중빈곤의 문제를 전사회적으로 공론화시켜야 하는 지점, 민주적 부르주아 정권, 중도개혁 세력으로서 노무현 정권의 한계는 바로 여기까지이다. 

대다수 노동자와 민중의 유일한 대변자인 민주노동당은 더 이상 이 양극화 문제, 비정규직 문제, 이 사회 민중빈곤의 문제를 노무현 정권을 마지막으로 마감되어야 할 중도개혁 세력에게 선점당해서는 안될 것이다. 노동자, 농민을 비롯한 대다수 민중의 입장에 더더욱 충실하게 동일노동 동일임금이 관철되고, 파견노동을 더 엄격하게 제한하며, 비정규직의 권리보장 법안을 더욱더 대다수 노동계급의 입장을 옹호하면서 관철해 나가야 한다. 대다수 노동자, 농민의 이익에 기반한 민주노동당의 독자적인 시각을 전면적으로 보여줘야 한다.

바로 이것이 대다수 민중이 민주노동당에게 부여한 역사적 임무이며, 대다수 노동자, 민중의 한계는 아직, 도달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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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의 호민관 차베스
리처드 고트 지음, 황건 옮김 / 당대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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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자의 평전?

- 리처드 고트의 [민중의 호민관, 차베스]

우리는 존엄성에 대한 투쟁을 사회주의라 부르지만, 베네수엘라 사람들은 이를 볼리바르주의라 부릅니다.

- 피델 카스트로

우고 차베스가 베네수엘라 공화국을 베네수엘라 볼리바리안 공화국으로 국호까지 고치면서 집권한 해가 1998년이었다고는 하나, 저 개인적으로 그 인물에 대해 듣게 된 것은 재작년부터인가 베네수엘라 연구회라는 곳이 중심이 되어 당내에서 차베스를 홍보할 때부터였던 것 같습니다.


1995년부터 어렴풋이 이름을 들었던 브라질의 손가락 아홉개인 노동자 룰라 다 실바는 2001년인가에  브라질의 노동자대통령이 되었으니 차베스는 룰라보다도 먼저 집권을 한 것이었지요.

독서 편식이 약간 있는 저로서는 아마도 볼리바리안 민족주의자보다는 노동자 대통령을 더 갈망했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르지만, 작년부터 한 번 읽어보고 싶었던 차베스 관련 책을 이제서야 읽게 되었습니다. 서두에 인용한 말은 차베스가 집권 후에 쿠바를 방문했을 때, 카스트로가 연대를 과시하면서 한 말이라고 하더군요. 

영국의 저널리스트이자 쿠바 혁명, 체 게바라의 죽음, 아옌데를 살해한 칠레의 피노체트 쿠데타 등의 격변의 현장을 직접 목격한 라틴아메리카 전문가라는 리처드 고트의 책, [민중의 호민관, 차베스]를 먼저 선택한 이유는 차베스 관련 서적을 먼저 읽은 분과 서로 바꿔보면 더 폭넓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는 이유와, 저명하다는 저널리스트가 썼다면 좀더 객관적이지 않을까 하는 이유였습니다만, 결론부터 말하면, 이 책은 우고 차베스라는 인물의 생애를 중심으로 저술된 살아있는 자의 평전이었기에 아쉬웠다는 점입니다. 책의 후반부로 갈수록 무엇보다 우리 현실에서 출발하여 차베스를 이해하는 것이 더 중요하리라는 생각이 깊이 들었는데요, 그래도 기억에 남는 세 가지 정도는 소개해야겠지요.

1. 베네수엘라의 현실 국유화 경험, 제헌의회;

라틴아메리카의 동북부에 위치한 베네수엘라는 석유수출국으로 국가적으로 본다면 부유한 국가이지만, 그러한 부의 편중으로 인한 양극화는 심각하다고 하더군요. 차베스는 군장교 출신으로 1992년에 이미 진보적 쿠데타를 기도했다고 하는데요, 이 당시부터 베네수엘라의 석유회사에는 민영화의 프로그램이 도입되고 있었다고 합니다. 우리 현실과 비슷한데요, 이러한 현상은 미국패권의 초국적 자본이 신식민지 또는 개발국에게 강조하고 있는 글로벌 스텐다드입니다. 하지만, 베네수엘라와 남한의 차이점은 큽니다. 신자유주의를 선택했다던 베네수엘라 페레스 대통령도 국영 석유회사를 고수했고 그로 인해 지지를 받았던 대통령이라고 하더군요. 남한의 민중들은 신자유주의의 주요한 형태 중 하나인  민영화를 당연시하는 경향이 있지만, 적어도 베네수엘라 민중들에게 국영레드콤플렉스에서 좀더 자유롭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국가에서 공공적 성격을 지니는 산업에 대한 국영이 편견에서 자유로운 현실이라면 민중의 삶을 개선하는 진보적 개혁의 토대는 더욱 탄탄하겠지요.

또 하나는 제헌의회였습니다. 올해로 20주년을 맞는 1987년 민주화투쟁 국면에서도 남한에서 제헌의회(이른바, CA) 운동이 있었다지요. 물론 저는 전설로만 들었지만. 직선제로의 개헌에 머물지 않고 민중적 헌법을 쟁취하기 위한 민중들의 의회를 통해 새로운 세상을 건설하자는 급진적인 노선이었다고 알고 있습니다. 남한에서 부르주아 민주주의자들에 의해 좌절되었던 제헌의회의 기도는 약 10여년 후 베네수엘라에서 현실화되고 있었습니다. 대선에서 승리한 차베스는 제헌의회를 소집하여 민주적인 헌법을 쟁취하고 베네수엘라의 민주주의를 질적으로 발전시켰습니다


2. 군대의 지위


차베스는 노동자도, 진보적 정치인도, 사회주의자나 공산주의자 등의 좌파도 아닌 군장교 출신이었습니다. 칠레의 피노체트가 아옌데 대통령의 좌파연합정권을 무너뜨린 군부 쿠데타 이후로 라틴아메리카에서도 군부 쿠데타라고 하면 검은색 선글라스에 극우보수의 반동적 기도로 이해되어 왔다는데요, 이는 남한 민중들이 군부 쿠데타를 이해하는 것과 동일합니다. 물론 러시아혁명 전에 애국적 군인들의 역할과 러시아혁명 과정에서 병사소비에뜨의 역할에 대해서도 간접적으로 듣기는 했어도, 남한에서는 결코 불가능한 일이라 생각하고 있었고, 개인적으로는 대한민국 군대에서 썩는다는 것이 너무 끔찍해 입대 전날 머리 깎고 와서 소련의 유물변증법, 사적유물론 교과서였다던 빅토르 아파나셰프의 [대중철학론]을 다시 읽으며 잠을 이루지 못했었습니다. 반공이 국시인 남한의 군대는 역시 저의 예상에서 한치도 벗어남이 없이 극우 사상의 요람 자체였습니다.

19세기 스페인으로부터 라틴아메리카를 해방시키고자 했던 시몬 볼리바르를 영웅으로 모시는 베네수엘라와 남한의 극명한 차이는 군대의 지위에서도 있었습니다. 군대의 사회개조 쿠데타에는 남한 역사에서처럼 박정희와 전두환만 가능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3. 차베스 지지의 기반 - 인종주의

1992년의 쿠데타 실패 후 방송에서의 1분간 연설(지금 당장은!)을 통해 전국민에게 각인되었던 차베스는 감옥에서 2년간 혁명을 준비하고 기존 보수정당들과 선을 그은 진보적 좌파와 교류하며 지지를 얻고 1998년 대선에서 승리합니다. 이 책의 아쉬운 점은 이런 일련의 과정을 베네수엘라 사회체제나 민중운동의 시각에서 저술하지 않고 차베스의 거취와 그의 말을 통해 그리고 있다는 점, 살아있는 자의 평전이었다는 점이었습니다만, 그래도 수도 카라카스의 빈민촌에서 소수의 백인주의자들인 부자들에게 타격을 가했던 1989년의 카라카소는 인상적이었습니다.

차베스는 1998년 집권 후 세 번의 반동쿠데타에 직면하는데, 첫번째의 우파 군부 쿠데타와 두번째의 어용노조의 석유회사 파업, 세번째 국민소환, 국민투표였습니다. 마지막 2002년도의 대통령소환은 제헌의회를 통해 쟁취한 민주적 헌법에 따라 차베스의 반대파들이 합법적으로 차베스를 끌어내리려 했다는 점에서 2004년의 노무현 탄핵과 닮아있었습니다. 역시 차베스는 인디오, 메스티소 등이 대다수인 빈민들의 절대지지를 통해 국민투표에서도 높은 지지를 얻어 대통령으로 복귀하고 현재 라틴아메리카 반미전선, 신자유주의 반대전선의 선두에서 라틴아메리카의 통합을 외치고 있습니다. 그리고 백인주의에 반대하는 대다수 토착빈민들은 변함없이 차베스를 지지하고 있다고 리처드 고트는 말하고 있습니다. 

물론, 저의 독서기술이 모자라 차베스혁명의 위대한 업적을 더 부각시키지 못함은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객관적 사회체제의 운동이 아닌 우고 차베스 개인의 인생편력을 중심으로 베네수엘라 혁명을 그리고 있는 한, 국영공공산업의 민중적 의미와 제헌의회의 위대한 업적, 군대 내에서의 진보운동의 가능성이나 인종주의를 넘어선 민중적 지지기반에 관한 그 어떤 타당한 설명도 불가능하리라 감히 생각합니다. 

라틴아메리카 통합의 기치를 건 차베스는 쿠바를 의식한 듯 자신의 정책노선을 설명하면서 기존 볼리바르주의에 사회주의를 포함시키고 있다고 하지만, 그러한 정치적 수사가 중요한 것이 아니겠지요. 석유를 쿠바에 반값으로 공급하고 쿠바로부터 예방의학으로 훈련된 의사들을 지원받아 민중들에게 의료지원과 교육지원 등을 하는 대외정책은 라틴아메리카 통합을 위해 앞으로 더욱 발전시켜야 할 차베스의 과제일 것입니다. 

살아있는 자의 평전으로서의 리처드 고트의 책은 아쉬운 점이 있었지만, 그렇다고 차베스의 반신자유주의 라틴아메리카 통합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졌으면 하는 바램에 영향을 미치지는 못하였습니다. 


 

 

***

 

 

1. [민중의 호민관, 차베스], 리처드 고트 지음,  황건 옮김, <당대>, 2006.

: 서점에서 차베스 관련 책을 찾아보았는데, 짧은 시간에 찾다보니 [차베스, 미국과 맞짱뜨다]와 이 책 두 권 외에는 찾아보지를 못했습니다. 평전은 고인이 된 역사적 인물에 대한 기록이기 때문에 인물중심으로 저술될 수 밖에 없는 한계가 있지만, 그래도 그 인물이 살아온 역사는 묻어나게 마련입니다. 하지만, 이 책은 평전으로 그려질 수 없는 살아있는 인물을 그 인물중심으로 저술하고 있는 관계로 인물에 투영되는 역사적, 사회적 현실이 잘 부각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 [레닌], 로버트 스미스 지음, 정승현, 홍민표 옮김, <시학사>, 2001.

: 개인적으로 평전을 주로 찾아서 읽지는 않습니다만, 그래도 레닌은 위대한 인물이라는 생각에 평전까지 찾아 읽었습니다. 레닌의 부르주아적 가계와 그의 편집증적이고 신경질적인 성격까지 굳이 알고 싶지 않았음에도 이 평전이라는 장르는 친절하게 개인적 편력을 강조해주고 있더군요. 소비에뜨의 10월 혁명을 알고 싶다면 레닌의 평전보다는 다른 책([10월혁명사], 이완종 지음, <우물이 있는 집>, 2004.와 같은)을 읽는 게 좀더 바람직합니다. 

 

 

 

3. [체 게바라 평전], 장 코르미에 지음, 김미선 옮김, <실천문학사>, 2000.

 

: 워낙 유명인사라 한 번 읽어봤던 책입니다. 저자는 체 게바라 전문가로 유명한 프랑스 저널리스트이고 그렇기 때문에 체 게바라의 일생에 대해서 관심이 있으신 분은 장 코르미에의 이 책을 읽으심이 어떨까 하여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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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을 넘어선 자본 리라이팅 클래식 2
이진경 지음 / 그린비 / 200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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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을 넘어선 자본

- 맑스로 다시 돌아온 이진경의 역작, [자본을 넘어선 자본] 소개

 

80년대 학번들에게 익숙했던 논쟁이 하나 있었습니다. 이른바 '사구체' 논쟁. '사구체'는 '사회구성체'의 약자로 우리 사회의 구조 혹은 성격을 규정하기 위한 논쟁이었다지요. 가장 오른쪽 노선은 우리 사회를 '식민지봉건국가'로 규정하거나 이와 비슷하게는 '신식민지반봉건국가'로, 다른 한편에서는 '신식민지국가독점자본주의국가'(일명 '신식국독자')로 규정하면서 세상을 개조하기 위한 각기 다른 시각과 프로그램을 펼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90년대 초반 학번인 우리에게는 그다지 익숙하지 않았던 개념들이었습니다. 물론, 학회 세미나 시간이나 술자리에서는 선배들로부터 '사구체' 관련된 많은 이야기를 듣기는 했지만, 선배들은 한결같이 오래된 이야기를 하듯 했던 것 같습니다. 그 시기는 이미 '사구체'보다는 '포스트모더니즘' 등이 보다 회자되던 시기였습니다. 

98년도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학교 도서관에서 오래된 책냄새와 함께 조용히 자리하고 있던 책을요. [사회구성체론과 사회과학방법론]이라는 제목의, 이전 '사구체' 논쟁을 본격적으로 촉발시켰다던, 한 시기를 풍미한 유명한 그 텍스트였습니다. 저는 [자본]Ⅱ권과 함께 학교 도서관 4층에 틀어박혀서 무협지 보듯 읽었습니다.

엥겔스에 의해 출판된 [자본]Ⅱ권의 저자는 주지하다시피 칼 맑스였고, [사회구성체론과 사회과학방법론]의 저자는 이진경이었습니다.

그 때문이었는지, 저의 뇌리에 [자본]Ⅱ권과 [사회구성체론과 사회과학방법론]은 항상 공존했었는데요. 당시의 제가 보기에 이진경은 [자본]으로 대변되는 '사회과학방법론'을 우리 사회에 이론적으로 적용한 탁월한 이론가였습니다. 그로부터 약 5년간 그는 고전적 인식론에서 '탈주'하여 '근대성'을 화두로 '포스트모더니즘'의 골치아픈 영역에서 '사유'를 하였고, 질 들뢰즈니 펠릭스 가타리 등을 운운하는 이진경은 조금씩 저의 관심에서 멀어져 갔습니다. 

그랬던 이진경이 2004년도에 [자본]을 들고 다시금 맑스로 돌아왔습니다.

그 책의 제목이 바로, [자본을 넘어선 자본]입니다.

오래 전 기억의 편린을 잡고 저는 바로 책을 구입했고, 이해를 했는지 아닌지도 잘 모른 채 소설책 보듯 읽었습니다.

서두가 길었는데요, 아마도 지금까지 제가 본 몇 안되는 [자본] '해설서' 중에서 제일 재미있는 책이 아닐까 합니다. 물론, [자본] 자체가 어렵기 때문에 이해하기가 쉽지는 않습니다만.

단 한 가지, 독자인 제 입맛에 맞지 않은 점이 있다면, 책의 말미에서 저자는 고전적 [자본]의 '외부'를 사유하고자 하지 않았나 싶은 점, 이는 저자가 '탈주'의 습성으로 [자본]을 독해하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어쩌면, 이 책 내내 그랬을지도 모르지만, 저는 제 식대로 그냥 [자본]의 '해설서'로 읽고 말았으며, 나름 만족스런 책이었기에 강력 추천합니다.

아래, [자본] 관련한 책들을 소개합니다.

 

***

 

1. [자본을 넘어선 자본], 이진경 지음, <그린비>, 2004.
: 저자는 자본주의 '이후'가 아닌, 현재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 그 '외부'를 사유하고, 미래의 '공산주의'가 아닌, 현재의 '꼬뮤니즘'을 그리고 있습니다. 이념을 떠나서 고전으로서의 [자본]의 내용이 뭔지 궁금하다면 일독을 권하고 싶은 책입니다. 

 

2. [자본]Ⅰ,Ⅱ, 칼 맑스 지음, 김수행 번역, <비봉출판사>

: [자본론]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원어 그대로 번역하면 [자본]이 맞다고 하더군요. [자본]Ⅰ권은 상권과 하권을 가지고 있는데, [자본]Ⅱ권은 학교도서관에서 읽으면서 요약했던 노트 형태로 가지고 있습니다. 다른 번역본과 비교할 정도로 제가 똑똑하지 못하기 때문에 김수행 교수가 번역을 잘 하셨는지는 전혀 모릅니다. Ⅲ권은 어려워서 읽을 엄두를 못내고 포기했습니다.
 

3. [디지털시대 다시 읽는 자본론], 가와카미 노리미치 지음, 최종민 옮김, <당대>, 2000.

: 상품, 가치와 가격, 화폐 등 [자본]1권에서 분석한 개념들을 중심으로 현재적인 해석을 가한 책

 

4. [두 경제학의 이야기], 이정전 지음, <한길사>, 1998.

: 주류 경제학과 맑스의 '정치경제학'을 비교한 책인데요, 다분히 이론적인 텍스트이오니 주의하셔야 합니다.

 

5. [자본론을 읽는다], 루이 알뛰세 지음, 김진엽 옮김, <두레>, 1991.

: 군에서 제대하고 나서 아마도 처음 읽은 사회과학서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자본]을 원전으로 읽어야 한다고 결심하게 한 책이지요. [자본]을 나름 정치경제학 텍스트나 경제학 텍스트가 아닌 '철학'적 텍스트로 독해하게끔 했던 책이기도 합니다. 즉, 자본주의를 실재적 대상이 아닌 지식의 대상으로 상정하고 계급투쟁의 이론적 무기로서 철학적 사유를 결합시킨 알뛰세의 시도. 역시 쉽지않은 책입니다. 

 

6. 짜골로프 감수 [정치경제학 교과서] 제Ⅰ권 2분책, 짜골로프 외 지음, 윤소영 편역, <새길>, 1990. 

: 구 소련에서 편찬한 정치경제학 교과서인데, 사회주의 이전의 생산양식들 중 자본주의체제에 대해 연구, 분석했다는 책입니다. 제가 대학 2학년때인가, 이른바 '사구체' 논쟁의 부스러기 같은 연속선 상에서 우리 사회를 '신식국독자' 체제로 규정했던 선배들로부터 추천받아서 읽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물론, [자본]의 내용을 소비에뜨식으로 해석했다는 점에서 참고서적이지 추천하고 싶은 책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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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랑캐로 사는 즐거움
이상수 지음 / 길(도서출판) / 200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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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의 중심에 관한 심각한 오해

- 한겨레신문 기자 이상수의 글모음집, [오랑캐로 사는 즐거움] 

"엥겔스는 '운동 그 자체가 하나의 모순이다'([반뒤링론]에서 인용}라고 말했다. 레닌은 대립과 통일의 법칙을 '자연계(정신과 사회 양자도 포함하여)의 모든 현상과 과정이 서로 모순하고 서로 배척하고 대립하는 경향을 지니고 있음을 승인하는 것'([변증법의 문제에 관하여]에서 인용)이라 정의했다. 이러한 견해는 옳은가? 옳다. 모든 사물 속에 포함되어 있는 모순되는 측면들의 상호의존과 상호투쟁은 모든 사물의 생명을 결정하고 모든 사물의 발전을 추진한다.
어떠한 사물도 모두 모순을 포함하고 있으며 모순이 없으면 세계도 없다.' 
                                                                    - 마오쩌뚱, [모순론] 제2장 모순의 보편성 중

스스로가 세상의 '중심'이라고 오해하는 세력들은 항상 있어왔습니다. 현재 '초국적 자본의 무한증식운동'으로 표현되는 신자유주의 신봉자가 아닌 세력을 '테러리스트', '악의축' 등으로 일축해버리는 미국이 그렇고, 게르만순혈주의인 히틀러의 나찌즘, '닛뽄'의 대동아공영권이 그랬으며, 동북공정으로 다시금 준동하는 오래된 '중화사상'이 그렇습니다. 그들의 오해는 중심이 아닌 타자에게 언제나 심각한 영향을 미쳤지요.

형이상학적 논리학에서는 '모순'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변증법적 논리학은 사물의 본질은 상호대립, 상호투쟁하는 모순관계의 운동이라고 인식합니다. 마오쩌뚱의 [모순론]에 나오는 '일분이이(一分而二)', 즉 세상만물은 모순되는 양자로 나뉜다는 시각이 그렇습니다. 

'중심'적이지 않은 시각으로 동양철학을 해석하는 한겨레신문 이상수 기자의 글모음집 [오랑캐로 사는 즐거움]은 바로 이 '모순론'적 시각에 근거하여, 세상의 '중심'으로서 '나' 뿐만이 아닌 '다른 존재'들을 인정하면서 출발합니다. 하늘에 태양만 있는 게 아니라 밤에만 볼 수 있는 우주도 함께 존재하며, 밤이 없었다면 우주의 발견은 없었을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머리말부터 그렇습니다. 

스스로를 세상의 '중심'이라고 오해하는 시각에서 보면, 공자와 노자, 묵자와 손자는 엄연히 다른 철학입니다. 하지만, 이는 5대10국이라는 전란의 시대를 거쳐 조광윤이 건국한 송나라의 '유학중심사상', 궁극적으로 '중화민족주의'를 이데올로기적으로 정당화시켰던 그 시대 이후에 나온 시각이라는 게 이상수 기자의 해석입니다. 아닌게 아니라 춘추전국의 백가쟁명 시대, 한(漢)족이 아닌 수많은 '오랑캐'들이 중원을 번갈아가며 지배했던 5호16국, 위진남북조 시대에는 이 모든 사상들이 서로를 배척하지 않고 결국 덕(德)을 바라는 같은 사상이었다는 것인데요, 실제로 그 시기들을 거쳐 동양의 문화는 더욱 번영하게 되었습니다.  아무튼, 이 책에서는 공자를 '중용의 철인'으로, 노자를 '급진적 관용철학'으로, 묵자를 '사랑의 사회과학'으로, 손자를 '평화'주의자로 그리고 있습니다. 2000년과 2001년 사이에 [한겨레21]에 연재되었던 <이상수의 동서횡단>이라는 글들을 엮은 이 책을 통해 우리는 지금까지 우리가 보아왔던 사상의 일면을 벗어나 서로 교집합을 이루는 '다른 모습'에 주목하게 됩니다. , 공자는 더 이상 편협한 신분주의자가 아니고, 노자는 알듯 말듯한 신비주의자가 아니며, 노동과 인간평등을 중시했던 묵자가 되살아나고, 전쟁광이 아니라 평화를 위해 전쟁을 기술했던 손자가 재조명됩니다. 

스스로가 세상의 '중심'이라는 심각한 오해에서 살짝 비껴나온 시각으로 보면, 나와 다른 존재로서의 남들을 인정하고 그 다양성 속에서 나름대로의 존재이유를 지닌 '나'를 존중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랑캐'로 사는 것도 그리 나쁜 것만은 아니겠지요.

이 다양성 속에서 세상의 '중심'들이 많아지면, 이 땅에는 신자유주의를 신봉하는 수구세력 못지않게 신자유주의를 거부하는 진보세력도, 평등한 세상을 건설하고 싶어하는 사회주의자도 모두가 사회를 구성하는 중요한 존재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어떠한 사물이든 모순을 포함하고 있으며, 모순이 없으면 세계도 없기 때문입니다.

 ***

1. [오랑캐로 사는 즐거움], 이상수 지음, <길>, 2001.

: 젊은 시절, 과학적 사회주의를 신봉했고, 위장취업으로 노동운동도 했으며, 한겨레신문 기자로서 세상의 모든 교조적 시각에서 벗어나고자 하면서 동양철학을 주제로 삼은 저자의 짧은 글들을 통해 공자와 노자, 묵자와 손자의 사상을 새롭게 해석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다만, 모든 사상이 결국은 동일하다는 막연한 통합주의적 결론이 도출될 위험성도 약간 있습니다. [한겨레21]을 구독할 시기에 열심히 읽다가 글모음집이 나온 후 다시 읽게 된 책입니다.

2. [영웅시대의 빛과 그늘(중국역사기행1)], 박한제 지음, <사계절>, 2003.

: 동양사학자인 저자가 중국 현지답사를 통해 생생하게 서술한 중국역사서 삼부작 중 1권입니다.  많은 사진자료와 함께 삼국시대부터 5호16국 시대까지 소개하고 있는데, 특히 전통적 중화사상을 거부하고 5호16국 시대를 중국역사에서 문화적 번영기로 해석하는 시각에 많이 동감하게 됩니다. 

3. [모순론], 마오쩌뚱 지음, 이등연 번역, <두레>, 1989. /
[모택동선집], 김승일 번역, <범우사>, 2001.


: 만물은 보편적 모순으로 이루어져 있고, 이는 계급투쟁으로서의 기본모순과 각 사회발전 단계에서의 주요모순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적대적 모순과 비적대적 모순은 상대적이지만, 결국 모든 사물의 발전을 추진하는 것은 모순의 상호대립과 투쟁이라고 하는 변증법적 인식론을 간결한 문체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보다 조금 먼저 나온 [실천론]은 '모든 사상에는 계급의 낙인이 찍혀있다'는 규정을 통해 계급투쟁이라는 정치적 실천을 강조함으로써 마오쩌뚱의 변증법적 유물론과 역사적 유물론은 공식화됩니다. '93년 맑스와 엥겔스, '94년 레닌을 거쳐, '95년에 탐독했던 마오쩌뚱의 대표저서가 바로 [실천론]과 [모순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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