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토박물관 순례 1 - 선사시대에서 고구려까지 국토박물관 순례 1
유홍준 지음 / 창비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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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국토가 박물관이다"
- [국토박물관 순례 1], 유홍준, 2023.


1.

내가 KBS 1TV 대하역사드라마를 좋아했던 이유는 그 많던 역사극 중 철저한 역사 고증을 했다고 믿어서였다. 
2000년대 초반 '태조 왕건', '대조영'이나 '정도전' 등을 보면 극 중간에 역사문헌을 인용하거나 지도를 보여주며 시청자들에게 '정사'에 기반한 역사적 사실들을 친절하게 설명해주는 대목이 가장 좋았다. 
다른 상업방송국에서 방영하던 퓨전역사극보다 무대도 세트도 후졌지만 나는 오래된 역사고전을 읽는 듯 한 기분에 오히려 그런 배경에 더 이끌렸다.

오래 기다렸던 KBS의 새 대하역사드라마 '고려거란전쟁'을 처음 한 편 보고 다시 안 보게 된 건, 내가 좋아했던 문헌 인용과 구식 세트가 없어서였다. 

내용에는 흥미가 가는데 막상 찾아 보지 않게 되는 걸 보면, 
역시 내 취향은 후지고 구식이다.

취향은 구석기 시대인 거다.


2. 

"환인과 집안의 고구려 유적과 연길의 발해 유적에 대한 한국인의 관광을 철저하게 통제하여 출입을 막는 것은 물론이고 사진조차 찍지 못하게 하는 것을 보면 동북공정의 진짜 목적이 무엇이었는가를 의심하게 되는 것이다. 이럴수록 우리는 고구려와 발해가 잃어버린 역사가 되지 않게 우리의 공정을 진행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내가 '국토박물관 순례' 고구려편의 답사처를 만주 땅 환인과 집안으로 잡은 것은 우리 역사와 문화유산에 대한 내 나름의 공정이다."
- [국토박물관 순례 1], <고구려 3>, 유홍준, 2023.


한편으로 30대가 된 21세기 벽두의 내가 사찰을 좋아했던 이유는, 불교를 믿어서가 아니라 전적으로 유홍준 교수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시리즈 때문이었다.

내가 스무살이었던 1993년에 처음 나온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는 동학농민전쟁의 고장부터 시작하여 우리 국보와 보물들의 대부분을 소장하고 있는 천년 고찰들을 멋지게 소개해주고 있었음에도, 이십대의 나의 관심을 별로 끌지는 않았더랬다.

"나이 서른에 우린 어디에 있을까~"라고 이십대에 노래 부르다가 막상 나이 서른이 되니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가 눈에 들어왔다. 그렇게 나는 21세기 들어 20세기 말의 답사책을 역주행하며 틈날 때마다 국내의 온갖 절들을 찾아다녔다. 오래된 사찰의 구석구석을 돌아보고 모든 문자와 유물을 눈과 마음으로 읽으며 숲과 절의 냄새에 코를 킁킁거리는 나를 아내와 어린 아들딸은 멀리하기 시작했다. 어쩌다 처자식과 콧바람 쐬며 놀러 갈 때는 혹시라도 절에 가자고 할까봐 내가 입만 열면 가족들은 "안 가~"라고 일단 대답 먼저 하고 나서 대화는 시작되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오래된 사찰의 향을 맡듯 유홍준 선생님이 알려준 대로 천년고찰들을 돌아다녔고, 선생의 <논제명찰(論題名刹)>을 금과옥조처럼 섬겼다.

사찰 뿐만 아니라 우리 국토와 역사를 깊이 있게 돌아보게 하는 유홍준 교수의 글쓰기는 작문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필사'를 하고싶을 정도로 깊은 감명을 주기도 했다.
선생 또한 자신의 글쓰기를 이끌어준 선학들에 대한 존경의 마음을 자신의 글 곳곳에서 잊지 않고 밝힌다.


그런 유홍준 선생께서 2023년 초겨울에 [국토박물관 순례] 시리즈로 다시 돌아왔다.
시리즈는 우리 역사의 시대별 연대기 순으로 구석기와 신석기의 선사시대부터 청동기와 철기로 넘어오며 고구려-백제-신라 및 가야의 삼국시대 등의 분야별로 대표적인 지역을 '박물관'처럼 '순례'한다.
그렇다고 꼭 해당 시기의 이야기만 들려주는 것이 아니라 해당 지역의 역사와 현재의 모습에 관한 전반적인 답사기를 덧붙인다.
역사 이야기 뿐만 아니라 '답사기'의 형식은 그대로 유지하되 우리의 전 국토를 '박물관' 삼아 경외하는 마음으로 '순례'를 다시금 시작하는 노학자의 모습이 아련하다.


구석기 시대는 해당 시기의 첨단기술이었던 '아슐리안 주먹도끼'가 발견되면서 동양 또한 유럽(서양)과 다르지 않은 구석기 역사로서 세계 역사학계에 인식되도록 만든 구석기 유적지의 세계적 대표지역 경기도 연천 전곡리 이야기로 시작한다.
신석기 시대는 서울 암사동 같은 대표 유적지를 제치고 부산 영도의 조개더미(패총) 이야기를 하지만 오래전 '절영도'부터 시작하여 부산육지와 연결되면서 '영도'가 된 근현대 이야기도 곁들인다.
청동기와 철기 시대는 울산 언양을 거치며 신석기 시대 반구대 암각화와 추상적 문양으로 선조들의 미학적 감각의 발전을 증명하는 천전리각석 및 국내에서 두번째로 큰 언양 고인돌 등을 돌아 '선사시대' 이야기를 마무리한다.

역시 "알고 보면 보인다"는 사실을 답사와 글쓰기로 보여준 유홍준 교수의 진면목은 '역사시대'로 접어들며 더욱 빛나기 시작한다. 

고구려 시대를 이야기하며 평양이 아닌 만주의 환인과 집안을 소개한 이유는 짐작하다시피 중국의 '동북공정'에 맞선 우리식의 역사 찾기라는 유홍준 선생 나름의 역사공정이다.

704년 고구려 역사에서 첫 수도 환인(같은책, <고구려 2>)은 고구려 시조인 추모왕 고주몽부터 유리왕까지 40년 역사, 두번째 수도 집안(같은책, <고구려 3>)은 420년의 역사를 지닌다. 터가 좁고 중국 한사군과의 접경에 위치했던 첫 수도 환인으로부터 집안의 국내성으로 천도한 고구려는 유리왕부터 고대국가의 틀을 마련한 미천왕과 소수림왕, 광개토대왕과 장수왕까지 고구려 역사의 60%를 차지한 전성기였다. 

<고구려 1>편은 만주 압록강변을 따라 오골성 및 박작성 등의 고구려 옛성으로 비정된 지역을 돌아, <고구려 2>편의 고구려 첫 수도 환인의 오녀산성, <고구려 3>편에서는 고구려 전성기의 수도 집안 국내성에서 광개토대왕릉으로 추정된다는 태왕릉과 광개토대왕릉비, 장수왕릉으로 알려진 장군총 등을 고구려의 하이라이트 답사지로 소개하고 있다. 

물론, 현재가 아닌 2000년대 초반의 답사기록를 현재에 맞도록 재구성한 답사기일 수 밖에 없는 것이, 중국의 '동북공정'이 강화되면서 현재는 중국이 고구려 유적과 유물을 독점하고 한국인의 접근을 막고 있는 엄연한 현실 때문이다.
오래전 답사기에 의존하고는 있지만 역사문헌을 통해 고구려 역사와 유물 및 유적을 소개하고 설명하는 유홍준 교수의 글쓰기는 그럼에도 여전히 내게는 빛난다.

그의 미려한 글쓰기가 여전히 빛나는 한,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의 1권 <서문>의 첫 문장이었다는 다음과 같은 이 말은 진리가 된다.


"전 국토가 박물관이다."
- [국토박물관 순례 1], <책을 펴내며>, 유홍준, 2023.


3.

나의 취향이 후지고 구식이어도 별 수 없다.

화려한 액션과 영화 같은 신(scene)이 난무한들, 
내게는 문헌과 유적유물을 직접 인용하고 소개하는 역사고증이 없는 대하역사드라마는 별로 매력이 없다.

새로 시작한 대하드라마보다 유홍준 교수의 다음 이야기 [국토박물관 순례] 2권에 더 이끌려 펼쳐드는 이유다.

그렇게 나는 유홍준 교수님의 글쓰기 펜의 행적을 따라서 만주의 고구려를 떠나 백제의 두번째 수도 부여로 간다.

***

1. [국토박물관 순례 1 - 선사시대에서 고구려까지], 유홍준, <창비>, 2023.
2. [국토박물관 순례 2 - 백제, 신라, 그리고 비화가야], 유홍준, <창비>, 2023.
3.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1~3], 유홍준, <창비>, 1993.~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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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인간의 증명 - 합본판 해문 세계추리걸작선 29
모리무라 세이치 지음 / 해문출판사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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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증명'의 추리
- [인간의 증명], 모리무라 세이치, 1975.


1.

책 한 권을 오롯하게 읽을 수 있게 된 건,
당시 국민학교 4학년인가 5학년,
지금 우리집 막내딸과 같은 나이가 되어서였던 걸로 기억된다.

어머니가 일하시던 이문시장 통에서 알게된 동갑내기 다른 학교 친구집에 있던 '셜록 홈즈 단편전집'을 우연히 발견하지 않았다면 나는 한참이나 더 지나서야 책 한 권을 겨우 읽게 되었을는지도 모른다.

당시 우리집에는 '세계명작동화'와 '세계위인전집'이 있었지만, 나는 TV에서 방영해주던 '어린이 명작동화'를 주로 보았고, 만화영화를 통해 노란색 표지의 '세계명작동화'와 위인전을 주로 삽화 위주로 펼쳐보았다. 
국민학교 4학년 특활시간에 전집 중 뽑아간 알렉상드르 뒤마의 [삼총사]를 한 학기 내내 매번 앞장부터 펼쳤던 걸 보면 당시까지 나는 책 한 권을 다 읽는 방법을 몰랐다.

그랬던 내가 '셜록 홈즈'를 만나 별로 친하지도 않던 그 친구 집에 들락거린 건, 단편 추리소설을 한 권 씩 빌려서 보기 위해서였다. 코넌 도일의 '셜록 홈즈' 단편집은 어린 내가 얇지만 책 한 권을 다 읽을 수 있게 해 주었다.
순식간에 난, 셜록 홈즈의 열성 독자가 되었고, 중학생이 되어서는 오락실을 전전하다가 만난 동네 형의 집에서 또 우연히 발견한 애거서 크리스티의 장편 추리소설을 통해 장편소설 한 권을 읽을 수 있게 된다.

그렇게, '셜록 홈즈'는 내게 '단편'을 읽는 힘을, 탐정 포와로와 미스 마플, "그리고 아무도 없는" 밀실살인자와 엘러리 퀸은 '장편'의 바다에서 헤쳐나오는 힘을 내게 주고 떠났다.

그리고 중년이 된 지금 내 손에는 언제나 책 한 권이 들려져 있다.


2.

"야스기 교코는 자기 안에 '인간'의 마음이 남아 있음을 '증명'하기 위해서 모든 것을 잃었다. 무네스에는 교코가 자백한 뒤, 자기 마음의 모순을 알고 놀랐다. 그는 인간을 믿지 않고 있었다. 아니,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결정적 증거를 손에 쥐지 못한 채 교코와 대결했을 때 그는 그녀의 '인간'적인 마음에 승부를 걸었다. 마음 한구석에서는 그 역시 '인간'을 믿고 있었던 것이다."
- [인간의 증명], <18. 인간의 증명>, 모리무라 세이치, 1975.


보통 19세기 말 영국의 코넌 도일과 애거서 크리스티, 20세기 초 미국의 엘러리 퀸 또는 바너비 로스는 범인이 누구인지를 두고 독자와 추리대결을 한다. 즉, 살인사건이 일어나고 범인이 누군지 모른 채 사건을 전개시키면서 독자로 하여금 살인자를 추리하도록 한다. 엘러리 퀸은 아예 모든 증거를 다 풀어놓은 다음 "자, 이제 모든 증거를 늘어놓았으니 어디 한 번 문제를 풀어보시라"며 독자에게 공개 도전장을 소설의 중간에 내걸기도 한다.
물론, 문제 풀기나 머리 쓰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는 굳이 작가와 추리대결 따위는 하지 않는다. 그저 작가가 풀이해 나가는 과정을 즐길 뿐이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 같은 일본 추리소설은 약간 결이 다르다.
물론, 독자와 함께 살인자를 추적하는 전통적 추리소설 기법도 있지만, 이미 사건의 전말을 다 풀어놓고는 그 조각들을 엮는 방식도 있다.


모리무라 세이치(森村誠一 : 1933~2023)의 1975년작 [인간의 증명(人間の証明)]은 서로 무관한 듯한 두 건의 살인사건의 전말을 여기저기 플어놓은 후 독자로 하여금 살인자가 누구인지 전지적 시점에서 다 알 수 있도록 해놓고는 경찰관이나 탐정 비슷한 민간인들을 풀어 증거조각들을 하나씩 맞춰간다. 

일본 도쿄에 와서 살해당한 미국인 조니 헤이워드는 흑인이지만 동양인의 흔적이 있다는 사실 하나로 전후 패전국 일본에 주둔한 미군 흑인병사와 일본여인 사이의 혼혈인임을 여러 차례 암시하고 동시에 등장하는 유명인 야스기 교코는 그녀가 살해된 혼혈흑인 청년의 어머니임을 역시 충분히 암시한다. 
한편으로 유명 정치인의 부인이자 자녀와의 소통과 육아의 달인으로 유명세를 탄 야스기 교코에게는 아들과 딸이 있는데, 그녀의 아들 교헤이는 착실한 아들을 연기해주며 어머니의 유명세 유지를 돕지만, 자기를 '장사' 도구로만 이용하지 엄마로서 부양하지 않는 야스기 교코에 대한 반항심으로 뒤에서 방탕하고 음란한 삶으로 시간을 허비하다가 뺑소니 교통사고 및 사체유기까지 저지른다. 
'인간'에 대한 환멸로 살아온 도쿄 형사 무네스에와 뉴욕 형사 켄은 각자의 자리에서 범인을 잡기 위해 활약하나 잡을 듯 말 듯 사건의 실마리들은 나타나자 마자 끊어지기를 반복한다. 
결국 미국인 조니의 살인사건을 쫓던 경찰과 뺑소니 범인을 추적하던 피해자의 남편 및 불륜남의 증거들이 교차하면서 살인범 야스기 교코와 도주범인 그녀의 아들 고오리 교헤이가 잡히고 마는데, 마지막에 친자살인범 야스기 교코를 잡은 결정적 증거는 물질적 확증은 아니었다.

소설의 제목 그대로,
'인간'의 '증명'이었던 거다.


"어머니, 내 그 모자 어찌되었을까요?
그래요, 여름날 우스이에서 기리즈미로 가는 길에,
골짜기에 떨어뜨린 그 밀짚모자 말이에요..."
- 사이조 야소, '밀짚모자'


일본의 근대 상징주의 시인 사이조 야소의 '밀짚모자' 시가 모리무라 세이치의 대표작 [인간의 증명]의 주요 매개다.
이 시에서는 엄마가 준 밀짚모자를 바람에 날려 잃어버린 아이가 역시 떠나버린 어머니와 밀짚모자를 동일한 상징으로서 등치시키고 있다. 

어릴 때 엄마를 떠나 밀짚모자만 품고 있던 조니 헤이워드를 없애야 하는 비정한 모성과 인간 자격과의 모순을 건드려 살인자로 하여금 자백토록 하는 소설의 결말과, 모리무라 세이치 자신이 대표작으로 꼽는 이 소설 [인간의 증명]을 쓰기 20년 전 기리즈미의 온천에서 우연히 접한 '밀짚모자' 시는 소설 전체를 관통하는 주요한 매개체다.

살인자로 하여금 모성과 '인간'으로서의 '증명'을 요구하는 매개체이자, 작가가 20년 후 소설을 쓰도록 이끌어 준 또 하나의 매개체가 된 것이다.

모리무라 세이치는 일본의 대표적 '사회소설'가였고, 1975년작 [인간의 증명]은 제3회 가도카와소설상을 수상하며 그의 대표적 추리소설이 되었다고 한다.


3.

스무살 넘어 나도 일종의 '사회소설'을 쓰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당시의 나는 불평등한 현대 자본주의 사회체제를 고발하는 '리얼리즘' 소설을 쓰고 싶었다.
1970년대 일본 도쿄와 미국 뉴욕의 '기계문명'과 '물질만능주의'를 비판적으로 묘사하며 광범위하게 퍼지는 '인간'으로서의 실격현상을 드러내는 세이치의 소설 [인간의 증명]이 '사회소설'이었다면, 20세기말 불평등의 계급투쟁이 극으로 치닫는 후기 자본주의 정치경제체제는 역시 대량의 인간실격을 양산하며 우리에게 '인간의 증명'을 여전히 요구하고 있다고 생각했고, 소설가의 희망이 멀어진 지금도 여전히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그 '증명'의 방식은 달라질지라도,
'인간의 증명'을 요구해 온 사회적 배경은 그 때나 지금이나 변함없기 때문이다.

***

1. [인간의 증명(人間の証明)](1975), 森村誠一, 강호걸 옮김, <해문출판사>, 2011.
2.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황금가지>, 2002. / <해문>, 1985.
3. [이집트 십자가 미스터리](1932), 엘러리 퀸, 주영아 옮김, <검은숲>, 2012. (그리고 1980년대 <해문출판사>판.)4. [그리스 관 미스터리](1932), 엘러리 퀸, 김희균 옮김, <검은숲>, 2012.5. [로마 모자 미스터리](1929), 엘러리 퀸, 이기원 옮김, <검은숲>, 2011.
6. [프랑스 파우더 미스터리](1929), 엘러리 퀸, 이제중 옮김, <검은숲>, 2011.7. [네덜란드 구두 미스터리](1931), 엘러리 퀸, 정영목 옮김, <검은숲>, 2011.8. [미국 총 미스터리](1933), 엘러리 퀸, 김예진 옮김, <검은숲>, 2012.
9. [XYZ의 비극](1932~1933), 엘러리 퀸, 서계인 옮김, <검은숲>, 2017.
10. [드루리 레인 최후의 사건(Drury Lane's Last Case)](1933), Barnaby Ross/Ellery Queen, 서계인 옮김, <검은숲>, 2013.
11. [범죄소설의 계보학], 계정민, <소나무>,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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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강의 2 - 역사와 문학을 넘나들며 만난 삼국지의 진실, 그 마지막 이야기!
이중텐 지음, 홍순도 옮김 / 김영사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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殊塗同歸(수도동귀) : 방법은 달라도 결과는 같다
- [삼국지강의(品三国)-2](2007), 이중텐, 홍순도 옮김, <김영사>, 2007.


"... 어떤 인물을 분석할 때 '조건과 정세'를 먼저 분석하는 것이 '도덕적인 분노'를 표시하는 것보다 더 중요합니다.
마르크스의 이런 역사관과 방법론은 보편적으로 적용할 수 있습니다. 즉 루이 보나파르트의 정변에도 적용되고 삼국시대의 역사를 분석할 때도 적용이 가능합니다...
...
그들 모두는 잘 알고 있었습니다. 위-촉-오가 삼국정립을 이미 형성한 이상 어느 누구도 다른 누구를 삼켜버릴 수 없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 이중텐, [삼국지강의(品三国)-2], <결문 : 장강은 여전히 동으로 흐른다>, 2007.


제갈량이 별볼일 없는 유비를 만나 '융중대책'을 건의했을 때, 후한 말기 천하를 유비와 조조, 그리고 손권이 '삼국' 구도를 정립하여 그 누구도 다른 누구를 쉽게 제압할 수 없는 정세를 만들자는 이른바 '천하삼분지계(天下三分之計)'는 새로운 대책은 아니었다.
손권의 책사 노숙 또한 같은 책략을 제출했는데, 손권-조조-유비의 '삼국'에서 유비 대신 형주자사 유표를 상정한 점이 달랐다.

유표는 한(漢)나라 황족이었으나 천하통일의 웅대한 기개는 없었다. 노숙이 유표를 상정한 이유는 삼국의 주요 전략적 요충지가 바로 형주였고, 유표가 이 지역에 할거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제갈량이 융중에서 '천하삼분'을 유세할 때 유표 대신 유비가 우선 형주를 장악하고 이를 기반으로 하여 강동의 손권과 화해하고 중원의 조조와 대치하면서 서쪽의 익주를 차지한 후 근거지를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 '융중대'의 요지였다. 실로 제갈량은 동오의 노숙과 뜻을 같이 하여 형주를 빌리고 조조가 도발한 적벽대전에서 승리하면서 관우가 형주를 굳건히 지키는 가운데 서쪽의 파촉지역인 익주의 유장 세력을 진압하면서 근거지를 확보한 후에 조조 사후 그의 아들 조비가 한나라 헌제로부터 선양받아 황제를 칭하고 조위를 건국한 이듬해 유비는 파촉땅에서 황제로 즉위한다. 촉한의 건국이다. 얼마 후 천하통일의 뜻은 크게 없이 강동 지역에 웅거하려던 손권까지 황제를 칭하면서 조위-촉한-동오의 삼국시대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나관중의 소설 [삼국연의] 전반부에서 활약하는 후한 말기 군벌들은 사실 '삼국지' 이야기의 서막이었다. 조조와 유비, 손권이 피터지게 경쟁하던 시기는 북방의 원소도 있었고, 남방의 원술, 형주의 유표, 떠돌이 여포 등도 쟁쟁했다. 
'삼국지' 3대 대전쟁은 원소와 조조의 북방 '관도대전', 조조와 유비-손권 연합군의 중원 '적벽대전', 조조 사후 조위-촉한-동오 시기 촉한 황제 유비와 동오 황제 손권의 '이릉대전' 세 전쟁이다. 마지막 이릉대전에서 대패한 유비가 죽은 후 삼국 정세에서 촉한 승상 제갈량이 굳은 의지로 조위에 대항해 수차례 시도한 '북벌' 전쟁이 [삼국연의]의 후반부 이야기다.
조위의 사마의와 대결하던 제갈량이 오장원에서 별이 된 후 사마씨의 진나라가 조위를 멸망시키고 손권의 자식들이 지키던 동오까지 접수하면서 사마의의 손자 사마염이 '진(晉)나라' 황제가 되어 천하통일을 이루는 장면이 소설 [삼국연의]의 마지막 장이다.

그렇게 청나라 모종강 판 [삼국연의]의 첫 문장, '천하대세 분구필합 합구필분(天下大勢, 分久必合, 合久必分)'은 실현된다. 한나라로 통일된 천하가 삼국으로 분열하고 또 다시 진나라로 재통일된다는 역사의 경향을 보여주는 것이다. 
즉, 천하는 분열이 오래되면 반드시 통일되고 통일이 오래되면 또 필히 분열된다.
이것이 역사의 '변증법'적 경향성이며, 우리가 아는 중국 '삼국지'의 주요 정세다.


"... (관도-적벽-이릉대전)... 이 세 전쟁은... 모두 전쟁을 개시한 쪽의 실패로 끝났다는 것... 이들의 실패 원인... 정답은 '시대의 변화' 때문이었습니다."
- 이중텐, [삼국지강의(品三国)-2], <결문>, 2007.


중국의 역사가 이중톈(易中天)은 2006년 [품삼국(品三国)]이라는 제목의 책으로 '삼국(三国)'을 '품평(品評)'했다. 이 책은 2007년 국역 [삼국지강의]로 소개되었고, 이중톈은 2007년에 [품삼국] '하(下)권'을 출간한다. 2권은 같은해 우리나라에 [삼국지강의-2]로 번역된다.

[삼국지강의-1], 즉 [품삼국] '상(上)권'은 진수의 [삼국지]를 비롯한 정사와 나관중의 [삼국연의] 소설을 오고가며 역사와 문학의 경계에서 '삼국' 시대를 평가했다.

[삼국지강의-2], 즉 [품삼국] '하(下)권'은 이중톈의 본격적인 역사관을 바탕으로 한다.
이중톈의 역사관이란 단도직입적으로 마르크스주의 역사유물론이다.
역사적 사건과 인물을 현상적인 '도덕적' 관점에서가 아니라 '조건과 정세'([삼국지강의-2], <결문>)에 철저히 기반하여 '품평'한다.

위에서 설명한 대중적인 역사적 경향성은 물론 이중톈 본인의 전공인 '위-진 남북조'와 '제2 제국'인 '수-당' 시대의 특징인 '사족(士族)'과 조조와 유비, 손권의 특징인 '서족(庶族)'간에 벌어진 일종의 '계급투쟁' 또는 '계급전쟁'으로 규정한다. 이중톈이 [삼국지강의] 2권의 <결문>에서 삼국지의 역사를 평가하면서 칼 마르크스의 [프랑스혁명사] 3부작 중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을 떠올린 이유가 바로 그의  유물론적 역사관을 웅변해준다.
1848년 프랑스 2월 혁명 후 부르주아 '제2 공화국'이 들어섰으나 금세 나폴레옹의 조카 나폴레옹 3세가 뜬금없이 대통령에서 황제가 되는 사건은 그저 '비극'의 '희극'적 재현만이 아니라 1848년 혁명 후 부르주아 계급이 혁명의 동력이었던 프롤레타리아 계급을 배반하고 양대 계급의 세력이 어느 한쪽의 압도적인 승리 없이 세력 균형을 이루고 있던 '조건과 정세'에서 등장하는 독재권력의 결말이었던 것이다.
안토니오 그람시가 [옥중수고]에서 말한 '케사리즘'의 배경인 고대 로마 제정과 공화정의 조건에서 등장한 '시저(케사르)'가 그랬고, 우리나라 독재자 딸 박근혜 정권의 등장이 그랬다.


"삼국시대 지도자들의 용인술 특징을 다음의 열두 자로 정리하고자 합니다. 바로 '조이지(操以智), 권이정(權以情), 비이의(備以義), 양이법(亮以法)'입니다. 해석하면 조조는 지혜, 손권은 정, 유비는 의리, 제갈량은 법으로 사람을 썼다는 얘기가 됩니다."
- 이중텐, [삼국지강의(品三国)-2], <45강. 하늘 같은 정, 바다 같은 한>, 2007.


후한 말 황제 중심의 '제국'이 무너지면서 '사족', 즉 사대부 선비와 '명사' 등이 사회적 영향력을 떨치게 되고 원소 같은 '사족지주계급'이 구체제를 복원하고자 할 때 등장한 조조와 유비, 손견이나 손책-손권 형제는 일종의 '혁명가'였다. 그들 삼국지 영웅들은 '사족' 기득권이 아니었다. 환관의 양자 집안 조조와 황실의 후예라고는 하나 짚신과 돗자리를 팔던 유비, '사족' 집안 원술의 수하였던 손견은 '사족'보다 아래인 평민 '서족'이었다. 


"동오의 손권이 마주쳤던 사족(士族), 명사(名士)들과의 모순 관계는 조조의 조위나 유비, 제갈량의 촉한에도 존재했다. 왜냐하면 위-촉-오 삼국은 모두 사족 출신이 아닌 인물이 건국했기 때문이다. 물론 그들 역시 사족지주계급의 정권을 건국할 뜻이 없었다. 이것은 결과적으로 그들의 건국 역정을 평탄하지 못하게 했다. 더 나아가 그들의 정권을 멸망으로 이끌었다."
- 이중텐, [삼국지강의(品三国)-2], <48강. 방법은 달라도 결과는 같다> '서문', 2007.


'서족' 조조가 '사족' 원소를 관도대전에서 이긴 사건은 '사족지주계급'과 권문세가의 기득권을 제압한 일종의 '혁명전쟁'이었다. 
'사족' 유표 세력을 누르고 형주를 차지한 후 '형주 그룹'을 주력으로 서진하여 '익주 세력'의 '사족'들을 흡수한 유비와 제갈량 또한 '사족지주계급'에 대항한 '서족' 평민 혁명군 지도자였다.
북방에서 내려와 강동의 '사족지주계급'과 타협하여 동오를 건국한 후 관우와 유비를 패배시킨 육손과 같은 '사족'을 결국 숙청한 손권 또한 '혁명가'는 아닐지라도 '서족' 정권의 대표자였다.

그렇게 '사족지주계급'의 기득권에 대항한 이들 '삼국지 서족 혁명가'들은 결론적으로 사마씨의 '사족지주계급'에 의해 차례로 패퇴되는 동일한 최후를 맞게 되지만, 각자의 방법은 달랐다.

이중톈의 '품평'에 의하면, 이들의 용인술은 '조이지(操以智), 권이정(權以情), 비이의(備以義), 양이법(亮以法)'의 열두 글자로 정리되는데, 조조는 '사족' 모사 순욱은 물론 여러 세력을 두루 아울러 쓰는 지혜, 손권은 자기 세력 내 끈끈한 정, 유비는 관우와 장비 등 의형제간의 의리, 제갈량은 군대를 부리는 데는 미흡했으나 변방의 파촉 지역에서 그나마 법치에 의한 공정한 정치를 통해 '사족'인 익주 세력을 제압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결국, 이들의 다른 길은 같은 결말을 향했다. 다시금 '사족지주계급'인 사마씨에 의해 싹쓸이를 당했던 것이다.
이후 5호16국의 역동적 시기를 지나 위-진 남북조 시대가 되면 완연한 '사족'의 시대가 온다. 이중톈은 이를 '위진풍도'라는 문화로 소개하기도 한다.


"투쟁의 결과는 당연히 서로 달랐습니다. 조위는 사족을 방치했습니다. 손오는 적당하게 타협했습니다. 촉한은 사족과의 충돌을 끝까지 견지했습니다. 촉한이 가장 먼저 멸망한 것은 그래서였습니다. 조위 역시 방치했기 때문에 멸망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나마 손오는 조금 나았습니다. 타협한 탓에 목숨은 겨우 연명해 나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멸망이라는 운명을 되돌릴 수는 없었습니다. 그 다음 들어선 (사마씨의) 진(晉)나라가 철저한 '사족지주계급 정권'이었기 때문입니다."
- 이중텐, [삼국지강의(品三国)-2], <48강. 방법은 달라도 결과는 같다>, 2007.


이중톈의 [삼국지강의-2]는 <48강>으로 끝난다. 여기서 저자는 [주역]에서 인용한 '수도동귀(殊塗同歸)'를 마지막 강의 제목으로 한다. 즉, 길은 다르지만 결과는 같다는 의미로 조위-촉한-동오의 '삼국'이 모두 '사족지주계급'과 투쟁한 '서족평민계급'이었고 그 투쟁 방식은 달랐지만, 다시금 천하통일 후 제국의 '사족지주계급' 정권의 흐름에 역행할 수 없었다는 사실이다.

이들의 '조건과 정세'가 '사족지배계급' 또는 '사족지주계급' 승리의 '필연'적 '경향성'을 입증한다는 말은 아니다.
오히려 이들 삼국지 영웅들의 실패는 '서족' 같은 평민계급을 결코 대표할 수 없는 군주제나 제국제의 '필연'적 한계의 역사적 '경향성'을 증명한다.
유비와 제갈량은 이 중 더욱 심한 모순을 보이는데, 한나라 황실을 재건하겠다는 이들의 정치적 이상으로서의 '촉한정통론'은 '서족' 평민계급의 '혁명성'을 담보하기에는 너무도 보수적이었다.
조조의 조위 정권 또한 상대적으로 가장 개혁적이었으나 조비의 황제 등극 후 '구품중정제'의 도입으로 '사족지주계급'의 기득권과 타협하면서 '사족'의 권력을 강화시키는 반동을 낳고 말았다. 조위가 '사족' 사마의에 의해 멸망당한 것은 필연이었다.
손권의 동오는 조위나 촉한과는 달리 천하통일의 정치적 이상은 없이 강동 지역할거 정권에 불과했다. 그들이 마지못해 천하통일 전쟁에 돌입했을 때는 이미 사마씨의 천하통일 정권이 공고해진 후였다.

[삼국지] '수도동귀(殊塗同歸)'의 '경향성'은,
'조건과 정세'에 기반한 역사유물론의 정수다.

***

1. [삼국지강의(品三国)-2](2007), 이중텐, 홍순도 옮김, <김영사>, 2007.
2. [삼국지강의(品三国)-1](2006), 이중텐, 김성배/양휘웅 옮김, <김영사>, 2007.
3. [위진풍도 - 이중톈 중국사 11](2015), 이중톈, 김택규 옮김, <글항아리>, 2018.
4. [삼국지(三國志], 나관중, 황석영 옮김, <창작과비평사>, 2003.
5. [삼국지 인재전쟁](2019), 와타나베 요시히로, 노만수 옮김, <더봄>,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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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짧은 소련사 - 러시아혁명부터 페레스트로이카까지, 순식간에 사라진 사회주의 실험의 역사적 현장
실라 피츠패트릭 지음, 안종희 옮김 / 롤러코스터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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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한 혁명이란 없다
- [아주 짧은 소련사], 실라 피츠패트릭, 2022.


"나는 인류역사를 구성하는 개개인의 삶이 그렇듯이, 인류역사에서 불가피한 사건은 거의 없다고 본다. 우연한 만남, 세계적인 대변동, 죽음, 이혼, 세계적인 유행병을 제외하면 상황은 항상 다르게 전개될 수 있었다. 더욱이 소련의 경우 우리는 마르크스주의 혁명가들과 상대해야 한다. 이들은 특정 역사단계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대략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자연적, 경제적 환경을 인간의 계획에 따라 개조해야 한다는 사상에 투신한 마르크스주의 혁명가들은 1917년 10월에 권력을 잡고 자신들도 놀랐다. 이것은 당시 상황에 대한 그들의 이론적 분석과 반대로 거의 우발적으로 이루어진 사건이었다."
- [아주 짧은 소련사], <서론 : 가장 짧은 역사(1922~91년)>, 실라 피츠패트릭, 2022.


마르크스주의 유물론적 역사관에서 인류역사는 경제관계의 물적 토대를 기반으로 한 정치와 문화 등 상부구조의 변천과 이행과정이다. 
즉, 생산력이 발전하면서 '사유재산'과 '생산수단'의 소유형태를 나타내는 생산관계가 우선 변화하고, 그에 따라 제도와 관념 등의 변화가 뒤따른다.
자본주의 체제로의 이행은 생산력 발전의 주요동력인 생산수단과 자본을 소수의 지배계급이 배타적으로 소유하는 특수한 생산관계의 물적토대가 형성된 후에, '사유재산'을 보호하는 국가와 법, '사유재산'을 신성시하는 종교, 체제순응 노동자들을 대량양산하는 교육 등 제도와 이데올로기가 새롭게 등장한 것이다. 

이와 같은 역사유물론에 의하면 만물의 변화와 발전의 변증법을 기반으로 특정 역사단계는 해당 '사회구성체(경제적 하부구조와 이데올로기적 상부구조)'의 내적 모순에 의해 다른 역사단계로 이행하는 '필연성'을 지닌다. 
자본주의 사회구성체에서 토대의 내적 모순은 '사회적 생산'과 '사적소유' 간의 모순이다. 즉, 생산의 '사회성'과 생산수단 소유의 '소수배타성'은 상호모순의 질곡에 빠진지 오래다. 이는 '공동소유'와 '집단소유'의 '경향성'을 지닌다. 

다만, 사회과학은 자연과학이 아니기에, '필연'적인 '법칙'으로 정립될 수 없고, 특정한 방향과 흐름을 예측하는 '경향성'으로 표현된다.
내가 보기에 역사의 '필연성'과 '경향성'은 같은 말이다.

그럼에도, 인류역사 속에서 수많은 별처럼 명멸해간 위인과 인물들은 중요하다. 그들이 없다면 역사무대는 주인공 없는 연극이 된다. 그러나 '우연'하게 등장한 인물의 위업과 사건들에는 반드시 배경이 있다. 
나는 이 배경을 역사의 '경향성'으로 본다.

이렇게 역사의 '우연성'과 '필연성(경향성)'이 조화되기를 바라던 중에 '우연'하게 호주 역사학자 실라 피츠패트릭의 책을 읽게 되었다.


소련과 현대 러시아 역사를 연구하는 실라 피츠패트릭은 [아주 짧은 소련사]라는 책을 통해 1917년 10월 러시아소비에트혁명부터 레닌의 사후 스탈린의 승계 및 제2차 세계대전, 국제적 연쇄혁명의 불발로 인한 소련의 '일국사회주의' 및 계획경제 발전 과정, 스탈린 이후 소련의 몰락까지 "아주 짧게" 서술한다. 
저자는 마르크스-레닌주의 혁명의 산물인 소련의 역사를 다루고 있지만, 마르크스주의 역사유물론에 입각하고 있지는 않다.

그녀의 역사관을 역시 '아주 짧게' 요약하면, 
역사를 구성하는 개개인의 인생이 뜻대로 되는 게 없는 것처럼, '역사는 우연성의 연속'이다.

저자는 "소련 역사는 아이러니로 가득"하다면서, 이는 부분적으로 "마르크스주의를 통해 보편적인 역사해석 도구를 갖췄다는 혁명가들의 확신에서 비롯된다"(같은책, <서론>)고 말한다. 

마르크스주의 혁명가들은 역사유물론을 통해 세계를 본다. 그러므로 특정 정치경제 체제는 '필연'적으로 붕괴되며 새로운 체제로 이행한다고 믿는다.
칼 마르크스의 제자들인 이 혁명가들은 이러한 체제이행을 과학적으로 분석하고 예측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소수의 자본가와 다수 노동자들의 계급투쟁이 첨예해지는 자본주의 체제는 '필연(경향)'적으로 다른 체제로의 이행을 부르는데 이것이 바로 역사유물론에 입각한 '과학적 사회주의'인 것이다. 그러나 칼 마르크스와 그의 동지 프리드리히 엥겔스를 비롯한 이 과학적 예언가들은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정확하게 예측할 수는 없었다. 단지, 이행의 '경향성'만을 보았다. 
여기서도 역시 역사의 '필연성'은 '경향성'의 다른 말이다.

실라 피츠패트릭은 바로 이 점에 주목한다.
즉, 역사는 그저 '우연'한 사건의 연속인 것이고, 역사의 '필연'을 믿는 마르크스주의 혁명가들의 과학적이고 굳은 신념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계획한 방향대로 흘러가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체제이행의 '필연'적 경향성'을  믿고 시작했으나 자본주의적 생산력 발전이 고도로 이루어지지 못했던 러시아에서 실제로 1917년 10월에 혁명이 성공한 후 이들 혁명가들조차도 놀랐고, 내친 김에 자본주의 이후 체제인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를 실현할 수 있다고 믿었지만 그들의 예측과 계획과는 달리 소련은 멸망했다.
결국, 소련역사를 보아도 역사는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사실의 확인이다.

과연, 
자본주의가 성숙하지 못한 19세기말과 20세기초의 러시아에서 제1차 세계대전 참전이라는 '우연'한 '세계적 대변동'이 없었더라도 1917년 10월 소비에트혁명이 즉각 가능했을까.
"모든 권력을 소비에트로!"라고 슬로건을 바꾸고 집요하게 권력투쟁을 했던 레닌이라는 '우연'한 인물이 아니었다면 볼셰비키 혁명이 가능했을까.
오랜 내전과 내부 권력투쟁으로 취약했던 스탈린의 리더십이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또 한 번의 '세계적 대변동'이 없었다면 수십년 간 그리 공고할 수 있었겠는가.
1930년대의 중앙계획적 소련경제정책이 고유가라는 '우연'한 사건이 아니었어도 그만큼의 비약적인 경제성장률을 달성할 수 있었을까.

저자는 그 외에도 소련역사에서 '우연'한 인물과 사건들로 인한 뜻하지 않은 방향으로의 역사전개를 서술하며, 이런 "우연한 만남과 세계적인 대변동"이 없었다면 "상황은 항상 다르게 전개될 수 있었다"(같은책, <서론>)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다시 한 번 생각해 본다.
자본주의 초기 발전과정에서 계급모순과 19세기말 러시아 대기근에 대해 무능했던 차르권력, 민중들을 대거 전쟁터로 내모는 현실에서 다수 민중들이 혁명을 선택하는 것은 '필연'이다. 계급투쟁과 억압적인 독재권력, 자본주의가 필연적으로 벌인 세계대전은 인류역사에서 '우연'한 사건이 아니다. 물론 비슷한 시기 서유럽처럼 의회민주주의란 '우연성'이 혁명의 '필연성'을 막았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민주주의' 또한 분명한 인류역사의 '필연'적 '경향'이고, 러시아의 특수한 억압적 상황에서의 혁명 또한 '필연'이었다.
레닌이 아니었더라도 위와 같은 억압적인 러시아의 조건과 정세가 변함없다면 다른 지도자가 혁명을 이끌었을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
스탈린의 경제정책과 농업집산화는 이후의 중국공산당도 거의 그대로 따랐으며, 이념만 뺀다면 우리나라 1960~70년대 계획경제와 다르지 않다. 사회주의든 자본주의든 실패한 농업정책은 역시 '필연'적으로 다수 농민들을 농토로부터 쫓아내고 도시노동자가 되도록 내몰았다. 이 또한 생산력 발전을 도모하는 국가(독점)자본주의 체제의 역사적 '경향성'이다. 이데올로기를 떠나 경제발전을 통해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현대 국가의 의무도 역시 '필연'이었다. 장하준 교수가 주장했듯, 전세계 자본주의 발전에서도 계획경제는 '필연'이었다. 
결국 이 모든 것의 동력은 다수 민중이었다.

다수 민중의 막강했던 '이중권력'인 소비에트에게 권력을 집중하며 혁명을 성공했고 다수 민중의 욕구를 해결하기 위해 분투했지만, 역시 다수 민중들의 열망에 부합하지 못하여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소련은 결코 '우연'한 역사적 사건이 아니다.
다수 민중들의 삶을 책임지지 못하는 체제나 권력의 몰락은 다시 강조하건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역사의 '필연'인 것이다.
소련도 그러했고, 그 이전의 제국과 왕조 시대에도 그러했으며, 지금의 자본주의 체제 또한 이러한 역사의 '필연'적 '경향성'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러므로 나는,
다수 민중의 역사는 '필연성(경향성)'의 역사로 규정하며, 다음 책으로 중국 역사가 이중톈의 [삼국지강의(品三国)] 2권을 펼친다. 수년 전 1권을 읽을 때는 미처 몰랐으나, 2권에서 이중톈 선생은 마르크스주의 역사유물론 관점에서 '조건과 정세'에 기반한 역사해석을 선언하고 있다. 
[삼국지]의 마르크스주의적 해석이 사뭇 궁금하다.
삼국시대 등장한 '우연'한 영웅들의 '혁명' 또한 '필연'이었을 것이다.

인류의 역사에서,
'우연'한 혁명이란 없다.

***

1. [아주 짧은 소련사(The Shortest History of the Soviet Union)](2022), Sheila Fitzpatrick, 안종희 옮김, <롤러코스터>, 2023.
2. [E.H.카 러시아 혁명 1917~1929](1979), E.H.카, 유강은 옮김, <이데아>, 2017. 
3. [1917년 러시아혁명 – 노동계급이 권력을 잡다](1976), A.라비노비치, 류한수 옮김, <책갈피>, 2017. 
4. [러시아혁명사](1932), L.트로츠키, 볼셰비키그룹 옮김, <아고라>, 2017.
5. [혁명의 러시아 : 1891~1991](2014), Orlando Figes, 조준래 옮김, <어크로스>,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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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플한 세계사 - 바이킹에서 브렉시트까지 사건과 인물로 읽다
우이룽 지음, 박소정 옮김 / 역사산책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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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우연성'과 '필연성'
- [심플한 세계사], 우이룽, 2021.


역사란 오랜 시간 동안 사람들 관계에서 만들어진 온갖 사건들과 그 속에서 드러난 인간군상의 집합이다. 

나는 이 흐름 저변에 깔린 필연적 '법칙' 또는 일정한 경향성을 읽고자 한다. 이는 마르크스가 발견한 '역사'라는 '과학'에 기반한 역사유물론이다. 
이를테면, 수많은 사람들이 아주 오래전부터 사유재산을 보호하기 시작했고 이를 기반으로 구축한 사회체제는 어떤 특정인이 의도했든 아니든 계급사회의 경향으로 흘러왔으며 현대 자본주의 체제 또한 그 흐름 위에 있다는 관점이다. 
역사유물론은 그 어떤 위인이나 영웅이 우연하게 만든 역사보다는 거대한 시대정신을 담지한 다수 민중들의 역사를 더 강조한다.
한편으로 우리가 제도권 교과서로 배워 온 역사는 경향성 없는 시대구분 속에서 특정 위인과 사건을 중심으로 서술된다. 교과서의 이 간략함과 무미건조함을 위인전기를 읽으며 보충할 수도 있다.
그 과정에서 '역사는 가정이 없다'는 전제 하에 해당 위인이 없었다면 그 사건 또한 없었다는 식으로 역사가 보일 수도 있겠다. 예를 들면 고려 태조 왕건이 아니었다면 고려는 없었을지도 모른다는 식인데, 이런 방식이라면 고대 중앙집권체제에서 중세 지방호족연합체제로의 권력형태 이행의 필연성을 설명할 수 없다. 

내적 모순이 심화된 특정 체제는 다른 체제로 필연적인 이행을 겪고, 이 체제 또한 자기모순에 기반하여 운동하다가 또 다시 다른 체제로 이행한다.
이것은 세상만물의 필연적 운동이며, 역사는 이러한 '경향적 법칙'의 서술이다.


"바이킹은 룬 문자라는 자기만의 독특한 문자체계가 있었다. 지금도 스칸디나비아 반도에서는 신비한 부호가 새겨진 부문석을 발견할 수 있고, 룬 문자로 쓰인 장편시와 영웅전기를 볼 수 있다. 하지만 바이킹은 룬 문자로 역사를 쓰지 않았다. 당신이 역사를 쓰지 않으면 다른 사람에게 대신 쓰라고 할 수 밖에 없다. 바이킹이 몇 세기에 걸쳐 약탈을 했는데 그때 살아남은 피해자들의 발언이 유럽 각국의 편년사, 군왕전기, 교회 수도사들의 일기에 널리 퍼졌다. 그때마다 항상 바이킹은 야만적이고 흉폭하며 비인간적인 해적으로 묘사되었다."
- [심플한 세계사], <2-9. 바이킹>, 우이룽, 2021.


또 한편으로 역사는 그런 사실들의 나열이 아니라, 특정 사건과 인물의 행적에 관한 기록으로 남는다. 
역사학에서 1차 사료는 문헌이고 그 다음이 유물이라고 한다. 우리 실증사학자들 주장의 근거가 중국의 역사서인 이유도 그것이다. 고대의 요동과 한반도는 고유의 문자 기록을 남기지 않았고 대륙의 한자로 적힌 오랜 기사들만 남았다. 이런 중국 사서의 기록에 관한 해석과 지역 비정 등의 이견을 중심으로 민족사학과 실증사학의 역사투쟁이 치열하지만, 어쨌든 그 1차 사료는 어쩔 수 없이 중국의 사서라는 문헌이다.

이 대목에서 우리의 문자로 기록된 역사서가 없음이 다소 아쉽기는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이러한 기록들이 드러낸 '우연성'을 통해 역사의 '필연성'으로서 '경향적 법칙' 같은 교훈을 추출하고자 한다.


대만의 역사교사 우이룽은 [這様的歷史課我可以](2021)라는 대중역사서를 통해 무미건조한 역사교과서의 서술을 탈피하고 '사건'과 '인물' 중심으로 그 이면에 숨겨진 이야기들을 소개한다. 
국역으로 [심플한 세계사](2023)로 나온 이 책의 원제는 대략 '낱개의 사례들로도 역사교과서를 서술할 수 있다' 정도로 해석해 볼 수 있겠다.

우이룽은 <서문>에서 "인성(人性)을 지나치게 간소화해서 사건을 단조롭고 재미없게" 만든 "역사교과서의 부족한 설명"에 아쉬워하며, "역사교과서 속 중요한 사건들 이면에 있는 이상야릇하고 어쩔 수없는 것, 역사적 인물들이 느낀 방황과 고민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이 책의 <1장>에서는 역사 속의 몇 가지 주요 '사건'들을 다룬다.
'마녀사냥'은 중세 소빙하기 농촌사회 붕괴의 배경에서 가톨릭에 반기를 든 종교개혁 정파들이 신성을 강조하기 위해 경쟁적으로 치른 포퓰리즘 의식이기도 했다.
'십자군 전쟁'의 광기와 용기는 부를 누리려는 세속적 욕망과 원죄를 한꺼번에 씻고자 하는 대중적 열망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신항로 개척' 시대 선구자 포르투갈은 희대의 사기꾼이자 뛰어난 모험가인 콜럼버스의 무모한 제안을 거절한 반면, 후발주자 스페인의 후원으로 신대륙 아메리카 발견과 뒤이은 문명파괴가 가능했다.
'계몽주의'는 어차피 정답은 없는 인간사에 그럼에도 인간 이성을 무기로 답을 찾아보려는 인문학의 숙명을 일깨웠다.
'산업혁명'은 제임스 와트의 증기기관 발명을 통해 18세기 당시 저렴했던 석탄의 대량 사용과 노동자들에 대한 비인간적인 착취를 자행했던 영국을 보며, 기후와 인간에게 돌이킬 수 없는 타격을 안긴 번영이 과연 '인성(人性)'에 부합한 것인가 자문도 던진다.
'남극 탐험'의 경쟁에서 남극점이라는 목표만 보고 달려간 노르웨이의 로알 아문센이 승리했지만, 그 경쟁 과정에서 남극의 자연과 생태에 관한 연구자료를 남긴 영국의 로버트 스콧이 과연 역사의 패배자인가 되묻기도 한다.
'베를린 장벽'은 우연히 무너졌지만 현재 이스라엘과 미국, 유럽이 다른 종교와 민족, 인종 사이에 더욱 높이고 더 길게 연장하는 장벽은 어떤가 질문한다. 이스라엘은 지금 이 시각에도 팔레스타인 민중들을 살상하고 있다.
'브렉시트'는 영국의 EU 탈퇴라는 그 정치적 이슈는 차치하고 원래부터 다른 나라는 신경 안쓰고 살아온 영국 본성의 발로라고 저자는 쓰고 있다.

<2장>은 역사 속 몇 명의 특이한 '인물'들에 관한 이야기다.
'바이킹'은 고대 유럽의 전문명을 파괴하기도 했지만 교류시킨 개척자이기도 했다.
중세 종교개혁 시기 언쟁의 신 '마르틴 루터'의 꺾이지 않는 투지를 강조하기도 하고,
'카우보이'는 소 키우는 '본업'에 충실하지 않은 낭만적 총잡이가 아니라 시대를 개척한 부지런한 미국정신의 기본 모델이 되었음을 소개하기도 한다.
2차 대전 중 영국 '처칠'의 고집스런 의지와 독일 '히틀러'의 뒤틀린 '예술'적 광기를 비교하며,
'고흐'의 집념어린 예술혼은 생전에는 가난했지만 '피카소'의 예술능력은 당대의 처세와 맞물려 막대한 부를 누렸음을 대비시킨다.
마지막으로 '팽크허스트'의 전투적 여성운동이 아니었다면 여성 참정권은 쟁취할 수 없었다는 사실을 통해, 억압받는 자의 권리는 점잖게 얻어지는 것이 결코 아님을 새삼 상기하게 된다.


다시 '역사유물론'과 '역사교과서'로 돌아와 보자.

낡은 '역사교과서'를 통해 알게 되는 연대기적 사실의 나열로부터,
그 흐름 속의 특정 '사건'과 '인물'들 이야기의 '우연성'들을 거치면서,
다시금 역사 연표를 펼치고는 역사를 이루는 다수 민중들의 열망이라는 배경으로부터 '경향적 법칙'으로서 '필연성'으로 돌아온다.

'바이킹' 뿐만 아니라 동서양의 북방 유목민들과 최초의 상인들이 개척한 인류 전문명의 교류를 기억한다.
'마르틴 루터'의 굳센 투지는 물론 당시 농민들의 열망을 받아안고 불 속에 뛰어든 다른 종교개혁가들 또한 기억한다.
'십자군 전쟁'이라는 수백년 광기의 이면에는 가톨릭과 세속왕권의 이익투쟁의 욕망이 도사리고 있었음도 기억한다.

그렇게 나의 역사공부는,
'필연성'을 담보하는 다수 민중에 의해 규정되는 것이지,
일부 '사건'과 '인물'의 '우연성'으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다음 책으로는,
"인류 역사에서 불가피한 사건은 거의 없다"며 1917년 러시아 소비에트혁명을 마르크스주의 혁명가들의 "이론적 분석과 반대로 거의 우발적으로 이루어진 사건"이라는 관점에 입각하여 분석한 호주 역사가 실라 피츠패트릭의 [아주 짧은 소련사](2022)를 읽어보기로 한다.

역사의 '우연성'과 '필연성'이 잘 조화를 이루기를 바라며.

***

1. [심플한 세계사(這様的歷史課我可以)](2021), 우이룽, 박소정 옮김, <역사산책>, 2023.
2. [유럽민중사](2016), 윌리엄 펠츠, 장석준 옮김, <서해문집>, 2018.
3. [아주 짧은 소련사](2022), 실라 피츠패트릭, 안종희 옮김, <롤러코스터>,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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