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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플한 세계사 - 바이킹에서 브렉시트까지 사건과 인물로 읽다
우이룽 지음, 박소정 옮김 / 역사산책 / 2023년 11월
평점 :
역사의 '우연성'과 '필연성'
- [심플한 세계사], 우이룽, 2021.
역사란 오랜 시간 동안 사람들 관계에서 만들어진 온갖 사건들과 그 속에서 드러난 인간군상의 집합이다.
나는 이 흐름 저변에 깔린 필연적 '법칙' 또는 일정한 경향성을 읽고자 한다. 이는 마르크스가 발견한 '역사'라는 '과학'에 기반한 역사유물론이다.
이를테면, 수많은 사람들이 아주 오래전부터 사유재산을 보호하기 시작했고 이를 기반으로 구축한 사회체제는 어떤 특정인이 의도했든 아니든 계급사회의 경향으로 흘러왔으며 현대 자본주의 체제 또한 그 흐름 위에 있다는 관점이다.
역사유물론은 그 어떤 위인이나 영웅이 우연하게 만든 역사보다는 거대한 시대정신을 담지한 다수 민중들의 역사를 더 강조한다.
한편으로 우리가 제도권 교과서로 배워 온 역사는 경향성 없는 시대구분 속에서 특정 위인과 사건을 중심으로 서술된다. 교과서의 이 간략함과 무미건조함을 위인전기를 읽으며 보충할 수도 있다.
그 과정에서 '역사는 가정이 없다'는 전제 하에 해당 위인이 없었다면 그 사건 또한 없었다는 식으로 역사가 보일 수도 있겠다. 예를 들면 고려 태조 왕건이 아니었다면 고려는 없었을지도 모른다는 식인데, 이런 방식이라면 고대 중앙집권체제에서 중세 지방호족연합체제로의 권력형태 이행의 필연성을 설명할 수 없다.
내적 모순이 심화된 특정 체제는 다른 체제로 필연적인 이행을 겪고, 이 체제 또한 자기모순에 기반하여 운동하다가 또 다시 다른 체제로 이행한다.
이것은 세상만물의 필연적 운동이며, 역사는 이러한 '경향적 법칙'의 서술이다.
"바이킹은 룬 문자라는 자기만의 독특한 문자체계가 있었다. 지금도 스칸디나비아 반도에서는 신비한 부호가 새겨진 부문석을 발견할 수 있고, 룬 문자로 쓰인 장편시와 영웅전기를 볼 수 있다. 하지만 바이킹은 룬 문자로 역사를 쓰지 않았다. 당신이 역사를 쓰지 않으면 다른 사람에게 대신 쓰라고 할 수 밖에 없다. 바이킹이 몇 세기에 걸쳐 약탈을 했는데 그때 살아남은 피해자들의 발언이 유럽 각국의 편년사, 군왕전기, 교회 수도사들의 일기에 널리 퍼졌다. 그때마다 항상 바이킹은 야만적이고 흉폭하며 비인간적인 해적으로 묘사되었다."
- [심플한 세계사], <2-9. 바이킹>, 우이룽, 2021.
또 한편으로 역사는 그런 사실들의 나열이 아니라, 특정 사건과 인물의 행적에 관한 기록으로 남는다.
역사학에서 1차 사료는 문헌이고 그 다음이 유물이라고 한다. 우리 실증사학자들 주장의 근거가 중국의 역사서인 이유도 그것이다. 고대의 요동과 한반도는 고유의 문자 기록을 남기지 않았고 대륙의 한자로 적힌 오랜 기사들만 남았다. 이런 중국 사서의 기록에 관한 해석과 지역 비정 등의 이견을 중심으로 민족사학과 실증사학의 역사투쟁이 치열하지만, 어쨌든 그 1차 사료는 어쩔 수 없이 중국의 사서라는 문헌이다.
이 대목에서 우리의 문자로 기록된 역사서가 없음이 다소 아쉽기는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이러한 기록들이 드러낸 '우연성'을 통해 역사의 '필연성'으로서 '경향적 법칙' 같은 교훈을 추출하고자 한다.
대만의 역사교사 우이룽은 [這様的歷史課我可以](2021)라는 대중역사서를 통해 무미건조한 역사교과서의 서술을 탈피하고 '사건'과 '인물' 중심으로 그 이면에 숨겨진 이야기들을 소개한다.
국역으로 [심플한 세계사](2023)로 나온 이 책의 원제는 대략 '낱개의 사례들로도 역사교과서를 서술할 수 있다' 정도로 해석해 볼 수 있겠다.
우이룽은 <서문>에서 "인성(人性)을 지나치게 간소화해서 사건을 단조롭고 재미없게" 만든 "역사교과서의 부족한 설명"에 아쉬워하며, "역사교과서 속 중요한 사건들 이면에 있는 이상야릇하고 어쩔 수없는 것, 역사적 인물들이 느낀 방황과 고민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이 책의 <1장>에서는 역사 속의 몇 가지 주요 '사건'들을 다룬다.
'마녀사냥'은 중세 소빙하기 농촌사회 붕괴의 배경에서 가톨릭에 반기를 든 종교개혁 정파들이 신성을 강조하기 위해 경쟁적으로 치른 포퓰리즘 의식이기도 했다.
'십자군 전쟁'의 광기와 용기는 부를 누리려는 세속적 욕망과 원죄를 한꺼번에 씻고자 하는 대중적 열망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신항로 개척' 시대 선구자 포르투갈은 희대의 사기꾼이자 뛰어난 모험가인 콜럼버스의 무모한 제안을 거절한 반면, 후발주자 스페인의 후원으로 신대륙 아메리카 발견과 뒤이은 문명파괴가 가능했다.
'계몽주의'는 어차피 정답은 없는 인간사에 그럼에도 인간 이성을 무기로 답을 찾아보려는 인문학의 숙명을 일깨웠다.
'산업혁명'은 제임스 와트의 증기기관 발명을 통해 18세기 당시 저렴했던 석탄의 대량 사용과 노동자들에 대한 비인간적인 착취를 자행했던 영국을 보며, 기후와 인간에게 돌이킬 수 없는 타격을 안긴 번영이 과연 '인성(人性)'에 부합한 것인가 자문도 던진다.
'남극 탐험'의 경쟁에서 남극점이라는 목표만 보고 달려간 노르웨이의 로알 아문센이 승리했지만, 그 경쟁 과정에서 남극의 자연과 생태에 관한 연구자료를 남긴 영국의 로버트 스콧이 과연 역사의 패배자인가 되묻기도 한다.
'베를린 장벽'은 우연히 무너졌지만 현재 이스라엘과 미국, 유럽이 다른 종교와 민족, 인종 사이에 더욱 높이고 더 길게 연장하는 장벽은 어떤가 질문한다. 이스라엘은 지금 이 시각에도 팔레스타인 민중들을 살상하고 있다.
'브렉시트'는 영국의 EU 탈퇴라는 그 정치적 이슈는 차치하고 원래부터 다른 나라는 신경 안쓰고 살아온 영국 본성의 발로라고 저자는 쓰고 있다.
<2장>은 역사 속 몇 명의 특이한 '인물'들에 관한 이야기다.
'바이킹'은 고대 유럽의 전문명을 파괴하기도 했지만 교류시킨 개척자이기도 했다.
중세 종교개혁 시기 언쟁의 신 '마르틴 루터'의 꺾이지 않는 투지를 강조하기도 하고,
'카우보이'는 소 키우는 '본업'에 충실하지 않은 낭만적 총잡이가 아니라 시대를 개척한 부지런한 미국정신의 기본 모델이 되었음을 소개하기도 한다.
2차 대전 중 영국 '처칠'의 고집스런 의지와 독일 '히틀러'의 뒤틀린 '예술'적 광기를 비교하며,
'고흐'의 집념어린 예술혼은 생전에는 가난했지만 '피카소'의 예술능력은 당대의 처세와 맞물려 막대한 부를 누렸음을 대비시킨다.
마지막으로 '팽크허스트'의 전투적 여성운동이 아니었다면 여성 참정권은 쟁취할 수 없었다는 사실을 통해, 억압받는 자의 권리는 점잖게 얻어지는 것이 결코 아님을 새삼 상기하게 된다.
다시 '역사유물론'과 '역사교과서'로 돌아와 보자.
낡은 '역사교과서'를 통해 알게 되는 연대기적 사실의 나열로부터,
그 흐름 속의 특정 '사건'과 '인물'들 이야기의 '우연성'들을 거치면서,
다시금 역사 연표를 펼치고는 역사를 이루는 다수 민중들의 열망이라는 배경으로부터 '경향적 법칙'으로서 '필연성'으로 돌아온다.
'바이킹' 뿐만 아니라 동서양의 북방 유목민들과 최초의 상인들이 개척한 인류 전문명의 교류를 기억한다.
'마르틴 루터'의 굳센 투지는 물론 당시 농민들의 열망을 받아안고 불 속에 뛰어든 다른 종교개혁가들 또한 기억한다.
'십자군 전쟁'이라는 수백년 광기의 이면에는 가톨릭과 세속왕권의 이익투쟁의 욕망이 도사리고 있었음도 기억한다.
그렇게 나의 역사공부는,
'필연성'을 담보하는 다수 민중에 의해 규정되는 것이지,
일부 '사건'과 '인물'의 '우연성'으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다음 책으로는,
"인류 역사에서 불가피한 사건은 거의 없다"며 1917년 러시아 소비에트혁명을 마르크스주의 혁명가들의 "이론적 분석과 반대로 거의 우발적으로 이루어진 사건"이라는 관점에 입각하여 분석한 호주 역사가 실라 피츠패트릭의 [아주 짧은 소련사](2022)를 읽어보기로 한다.
역사의 '우연성'과 '필연성'이 잘 조화를 이루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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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심플한 세계사(這様的歷史課我可以)](2021), 우이룽, 박소정 옮김, <역사산책>, 2023.
2. [유럽민중사](2016), 윌리엄 펠츠, 장석준 옮김, <서해문집>, 2018.
3. [아주 짧은 소련사](2022), 실라 피츠패트릭, 안종희 옮김, <롤러코스터>, 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