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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중세 문명 - 개정판 ㅣ 현대의 지성 65
자크 르 고프 지음, 유희수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8년 11월
평점 :
'장기 중세', 그 '혁신'이자 '연속'으로서의.
- [서양중세문명], 자크 르고프, 1964~1984.
"어느 누구보다도 나는 중세 사회의 움직임이, 비록 '계급'이라는 개념이 중세 사회구조에 딱 들어맞지는 않겠지만, 주로 적대감이나 '계급투쟁'을 통해서 밝혀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른 어떤 사회와 문명도 '총체성'과 전체에 대한 열망을 중세보다 더 강하게 가져본 적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중세는 가장 좋은 의미에서건 가장 나쁜 의미에서건 '전체주의'적이었다. 중세의 통일성을 인식하는 것, 그것은 바로 중세에 그 자체의 '총체성'을 되돌려주는 일이 될 것이다."
- [서양중세문명], <프롤로그>, 자크 르고프, 1984.
15세기 동로마 비잔틴 제국이 오스만 투르크의 술탄에 의해 멸망했을 때, 콘스탄티노플을 탈주한 문명이 서유럽에 대거 유입되면서 '르네상스'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단순한 '고대'의 부활이라기 보다는 새로운 '인문주의'로서 '근대성'을 열고자 했던 이 근대인들은 새로운 시대와 대비되는 어두운 터널과 같은 한 시대를 구분해 냈다.
이 암흑의 시대가 바로 '중세'다.
프랑스 역사학자이자 '사회사' 중심의 역사관의 계보를 잇는 '아날학파' 학자인 자크 르고프(Jacques Le Goff : 1924~2014)는 [서양중세문명](1964~1984)에서 '중세'는 근대 르네상스인들이 만들어낸 구분법 속에서 '어두운 터널' 같이 묘사되었지만, 사실 '중세'는 4~5세기 게르만족에 의한 서로마의 점차적인 멸망부터 19세기 유럽의 산업혁명기까지를 관통하는 시대와 문명 일체라고 규정한다.
이른바, '장기(長期) 중세(Long Moyen Age)'다.
1964년 자크 르고프의 '장기(長期:long)' 시대 개념은 1962년 영국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Eric Hobsbawm)이 [혁명의 시대](1962)에서 19세기를 1789년 프랑스혁명으로부터 1914년 제1차대전 이전의 '좋은 시절(벨라 에포크 : Belle Epoque)'까지 규정한 '장기 19세기'로 익숙한 개념이다.
자크 르고프의 '장기 중세'는 9~14세기의 구간만이 아닌, 4~5세기 고트족과 반달족, 프랑크족과 롬바르드족 등의 게르만 왕조로부터 19세기 산업혁명까지 이어지는 문명과 '계급투쟁'의 역사 전체다. 또한 고대의 개인주의의 반명제로서 '전체주의'와 '총체성'의 시작이기도 하다
"인문주의자들은 중세, 달리 말하면 과학과 예술과 문학을 통해 빛을 발하던 찬란한 두 시대 사이의 일종의 어두운 터널인 중세를 창조했다. 그런데 그들이 이러한 중세를 창조한 것은 그리스-로마, 성경의 시대 등 참된 고대로 복귀하는 것이 '근대적'이라는 주장을 통해서다. 그것은 하나의 '문화혁명'이었다... 보다 일반적으로 말하면 근본적인 구조들은 4세기부터 19세기까지 유럽 사회에서 지속되었으며, 이를 통해 우리는 이러한 1,500년 동안의 단일성을 파악할 수 있다... 봉건제도가 지배했던 '장기 중세'는 악마와 선한 신의 투쟁의 역사다. 사탄은 '장기 중세'의 초기에 태어나서 말기에 죽었다."
- [서양중세문명], <시론 - 장기 중세를 위하여>, 자크 르고프, 1983.
자크 르고프의 [서양중세문명]의 초판은 1964년에 나왔고 저자는 도판과 <에필로그>를 빼고 <프롤로그>를 다시 쓴 개정판을 1984년에 다시 내기 전인 1983년에 이 '장기 중세'에 관한 시론 '장기 중세를 위하여(Pour un Long Moyen Age)'를 통해 중세를 장기적으로 4세기부터 19세기까지의 1,500년으로 잡아보고 있다. 9세기와 14세기 등의 몇 번의 '르네상스'적 혁신을 거쳤으나 기본적으로는 이 흐름은 '단절'이 아닌 '연속'의 역사라는 관점이다.
"중세초가 고대세계의 종말인가, 아니면 새로운 시대의 시작인가...를 알기 위한 고전적 논쟁에서 '연속'이 종종 '단절'보다 우세해 보일 정도로 서양이 로마제국 말기 이래로 '연속'으로 기운 것처럼 보인다."
- [서양중세문명], <1-1. 게르만족의 정착(5~7세기)>, 자크 르고프, 1964.
이러한 '연속'의 '장기 중세' 관점에서 저자는 <1부. 중세사의 전개>를 통해 5~10세기 게르만족 사회의 정착 및 재편과 11~15세기 기독교 세계의 형성 및 위기를 사회구성체의 물적토대(하부구조)로부터 살펴본다. 중세 계급관계의 기초인 토지소유관계와 봉건적 봉신계약, 상부구조로서 주요한 지배 이데올로기로서의 기독교 사상의 물적 토대를 우선 배경으로 고려하는 중세 '사회사'의 역사관이다.
이어지는 <2부. 중세 문명>에서는 상부구조인 사상적 문명을 여러가지로 서술하는데, 고대 로마의 광활하고 열린 군사교역도로가 막힌 채 숲과 덤불 속에 갇혀 각각 고립된 중세의 성채들과 농촌, 도시의 발전이라는 '공간'과 신에 의해 시작과 끝이 정해진 중세의 '비관'적 '시간' 관념, 이에 따른 '종말론'과 공동체 및 조합이나 코뮌 등의 집단주의적 삶이 지배한 중세의 '망탈리테(사고방식)' 등을 두루 고찰한다.
[서양중세문명]이라는 야심찬 제목이 말해주듯, 유럽에 국한되기는 했지만 '장기 중세'라는 레테르에 걸맞게 고대와 근대까지 '연속'으로 아우르는 중세의 모든 것을 망라하고자 하는 역사학자 자크 르고프의 학문적 의지가 돋보인다.
"신의 시간은 연속적이고 직선적이다... 중세적 사고는 순환적 시간을 거부하고 시간에 비순환적인 직선적 의미를 부여했다. 역사가 시작과 끝을 갖는다는 것, 이것은 매우 중요한 주장이다. 이러한 시작과 끝은 실증적인 동시에 규범적이고, 역사적인 동시에 신학적이다."
- [서양중세문명], <2-6. 공간과 시간의 구조(10~13세기)>, 자크 르고프, 1964.
4~5세기 중세 초 마니교와 같은 선악이분법 '이단'에 의해 태어난 '사탄'은, 자크 르고프에 의하면 19세기 근대 산업혁명기에 죽었다는데, 기독교 사상이 자본주의적 물신숭배에 지배이념 자리를 내준 이후 자본이 신이자 악마의 강력한 복합체로 등장했기 때문이겠다.
기아와 전염병 등의 극한상황이 일상이었던 '자크리(Jacquerie)'들의 농민반란이 내세운 '천년왕국'은 19세기 대다수가 된 노동계급이 이어받았다. 20세기까지민 해도 프롤레타리아트의 역사적 임무는 공산주의적 무계급사회인 '천년공화정'의 건설이었다.
혁명의 '단절' 속에도 장기 중세의 '연속'이 있다.
"대다수 농민은 영양실조와 기아와 전염병 등으로 극한상황에 처해 있었다. 후대에 프랑스에서 '자크리(Jacquerie)난'이라 불렀던 농민반란이 엄청난 절망적인 힘을 분출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러한 극한상황에서 연유했다."
- [서양중세문명], <2-8. 기독교 사회(10~13세기)>, 자크 르고프, 1964.
중세사와 중세문명을 고찰하면서 '아날학파'답게 '사회사'의 계보를 잇는 자크 르고프의 역사관은 역시, '계급투쟁'이다.
"삼분체계(성직자-전사-농민)는 오직 상층계급만, 즉 성직자 계층, 전사 계층, 생산자 계층 중 상위계층만을 나타낸다... 그것이 프랑스에서는 세 신분으로, 즉 성직자-귀족-제3신분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이 제3신분은 평민 전체와 동일시될 수 없다. 그것은 심지어 부르주아지 전체를 의미하지도 않는다. 그것은 부르주아지 중 상위계층, 즉 유력자들로 구성되었다... 이 제3신분의 본성에 대해 중세 이래로 존재하는 모호함은, 프랑스혁명 때 제3신분 중 엘리트의 승리로 혁명을 종식하고자 했던 1789년의 사람들과, 혁명을 전인민의 승리로 끝내려 했던 사람들 사이의 투쟁으로 표현되었다."
- [서양중세문명], <2-8>, 자크 르고프, 1964.
그러나, 중세의 '계급투쟁'이 자본주의 초기처럼 부르주아-프롤레타리아 같은 단순 이분법일 수는 없다.
자크 르고프의 '계급투쟁'이나 '지식인' 같은 개념은 후학인 자크 베르제에 의하면 다소 '시대착오적'이다. 왜냐하면 당시는 '현대'라 불렸을 중세 당대에는 그런 개념들이 없었기 때문이다. 다시 강조하지만 '중세' 당시는 후대인 우리가 지금 구분하는 것처럼 '중세'가 아니라 여전히 '현대'였을 것이고 시대정신에 맞는 개념들이 따로 있었거나 아직 등장하기 전이었다.
자크 베르제는 중세 후기의 '지식인' 대신 '식자(識者)'라는 포괄적인 개념을 쓴다.
어쨌든, '계급투쟁' 개념이 없었을 중세에도 실질적으로 '성직자-전사(기사)-농민'의 계급이 있었고, 이후 도시공동체의 발전과 함께 상인과 대지주 같은 부르주아지가 탄생하면서 이 중세적 '삼분체계'가 '성직자-귀족-부르주아'의 체계로 전환되었다. 농민 또는 농노들의 삶은 더욱 비참해졌다. 기근과 전염병 등의 극단적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들고 일어난 다수 농민반란은 지속되었겠지만, 중세 '계급투쟁'의 최종 전선은 '귀족-부르주아지'로 끝맺는다.
한편으로 자크 르고프는 '계급투쟁'의 고질적 형태로서 '계급 내분'을 지적하는데, 중세 도시 장인조합(길드) 내부의 장인 및 도제 부류와 아직은 소수에 불과했던 비숙련 임금노동자 간의 계급내 분열과 갈등을 서술한다. 농민 사이에도 지주가 된 부농과 농노 간의 분열이 있었다. 현대사회의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동자, 재벌 및 대기업과 자영업 간의 분열과 갈등구조가 비춰진다.
'장기 중세'의 '연속'과도 같다.
1789년 프랑스대혁명과 1848년 유럽혁명은 부르주아지 상층부들만의 승리로 혁명을 종식시키려는 세력과 다수 민중들의 승리로까지 궁극적으로 이어가려는 세력간의 끝나지 않는 투쟁으로 이어진다.
이 또한 '장기 중세'의 '연속'이다.
"14세기 위기로부터 새로운 세계가 탄생하는 듯 했다. 그러나 외형의 새로움에도 불구하고 기독교 세계의 육체와 영혼은 그 '지속적인 것들'로 인해 특히 주목을 받을만 하다... 인쇄술, 그것은 혁명적이고 위대한 발명이었다... 인쇄술이 즉각 전파시킨 것은 '인문주의'다... 그것은 고대로의 단순한 복귀가 아니라, '새롭게 생각하고 느끼는 방식'이다... 인간이 만물의 척도... 중세에는 인간의 세계의 모방 또는 축도, 즉 소우주였다. 이제 이 관계는 뒤바뀌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인간은 세계의 모형이다'라고 썼다. 그리고 인간은 자기 자신을 찾아 나섰던 것이다."
- [서양중세문명], <에필로그 - 지속되는 것과 새로운 것(14~15세기)>, 자크 르고프, 1964.
중세가 4~19세기까지 포괄하는 1,500년 간의 '장기 중세'로서 '연속'의 역사로 이해되어야 한다지만, 문화혁명으로서 '르네상스', 그 중 대표적인 이념인 '인문주의'를 상기하지 않을 수 없다.
중세 기독교사회에서는 세계가 이미 신의 필연적인 시공간으로 정해졌기에 인간은 이에 복종하면서 하나의 '소우주' 또는 세계의 축도라고 여겨졌다. 그러나 인쇄술 혁명 및 문자의 보급과 발전으로 인해 지적으로 깨어난 인간은 본인들이 만물의 영장으로서 세계관의 척도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당대의 선구자들은 항상 시대의 '모더니스트'였고 '현대인'이었지만, 15세기 중세말 인쇄술 혁명으로 인해 정통 기독교적 세계를 벗어나 동서양의 공간적 교차 및 고대와의 시간적 교류를 경험한 르네상스인들은 인류역사의 위대함을 새삼 믿게 되면서 인간을 '만물의 척도'이자 '세계의 모델'로 상정했다.
이러한 '인문주의'는 인류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발견이자 '혁신'이었다.
물론 현대사상은 '인문주의'의 오만함을 경계한다. 그럼에도 인문학의 자기확신없이 이 급격한 기후생태위기와 비참한 불평등착취구조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겠는가.
'인문주의' 또한 모든 것이 그렇듯 양날의 검이며, '인문주의'를 이해하고 어둠의 중세를 벗어나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장기 중세'를 다시금 돌아봐야 한다.
미래는 현재의 '혁신'이자 '연속'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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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양중세문명](1964~1984), Jacques Le Goff, 유희수 옮김, <문학과지성사>, 1992.
2. [공부하는 인간 - 중세 후기 유럽의 식자들](1997), Jacques Verger, 문성욱 옮김, <읻다>, 2024.
3. [혁명의 시대](1962), Eric Hobsbawm, 정도영/차명수 옮김, <한길사>, 1998.
4. [자본의 시대](1975), Eric Hobsbawm, 정도영 옮김, <한길사>, 1998.
5. [제국의 시대](1987), Eric Hobsbawm, 김동택 옮김, <한길사>, 19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