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톈 미학강의
이중텐 지음, 곽수경 옮김 / 김영사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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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학은 곧 미학사, 미학사는 곧 미학
- [미학강의], 이중톈, 2006.


"헤겔의 말처럼 이전 시대의 철학의 성과 위에 새로운 시대의 철학이 발전하는 형태를 띠었기 때문에 어떤 철학도 소멸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각각의 철학의 관점은 모두 합리적이었고 어떤 역사 시기나 역사단계에서는 필연적으로 출현해야 했던 것들이었습니다... 철학과 미학은 사상이자 사상의 사상... 철학사를 이야기하는 것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자신의 철학적 관점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한 권의 미학사 역시 반드시 미학이어야 합니다. 미학사를 이야기하는 것은 자신의 미학적 관점을 이야기하는 것이니까요."
- [미학강의], <1-4. 미학은 곧 미학사, 미학사는 곧 미학>, 이중톈, 2006.


1.

빅터 프랑켄슈타인이 최고의 시체 부위들을 엄선하여 인간을 닮은 피조물을 만들었던 그 밤에, 이 창조자는 무책임하게 고향으로 내빼고 말았다.
자신이 최고로 만들 줄 알았던 것이 생각과 다르게 무서웠던 거다.

이 '괴물'은 그러나 의외로 신체적 능력 뿐만 아니라 지능적으로도 매우 초인적인 존재였는데, 창조자 빅터는 본능적으로 자신의 창조물을 싫어했다. 그리하여 메리 셸리의 소설 [프랑켄슈타인](1818)은 비극이 된다.

빅터가 자신의 창조물을 본능적으로 싫어했던 이유는 못생겨서였다.

소설을 읽으며 나는 갑자기 '미학(美學)'을 읽고 싶어졌다. 
그래서 생각난 것이 중국의 역사가 이중톈(易中天)이었고, 그의 책 [미학강의]를 바로 주문했다.


2.

"미학의 기본 문제는 바로 '미(美)란 무엇인가'입니다...
... 철학과 예술은 모두 문제를 제기하려고 하며 위대한 철학가와 위대한 예술가는 모두 위대한 문제제기자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제기하는 문제는 모두 인생에 관한 것들이며 최종적인 결론은 없습니다. 최종적인 결론이 없기 때문에 철학과 예술은 영원히 시대착오적일 수 없고 영원히 생명력을 가지게 됩니다... 더군다나 미학은 원래 철학의 검으로 예술의 의혹을 풉니다. 그러니 어떻게 미학이 미학이기 이전에 철학이 아닐 수 있겠습니까?"
- [미학강의], <2-1. 플라톤, 객관미학의 기초를 세우다>, 이중톈, 2006.


2006년 [삼국지강의(品三国)]로 유명해진 중국의 대중역사가 이중톈은 같은해 [미학강의(講美學)]를 통해 미학과 미학사를 설명하고 있다. [삼국지강의]의 원제는 '품삼국'으로서 '삼국지를 품평하다'로 번역할 수 있겠는데, [미학강의] 또한 원제가 '강미학'으로 '미학을 강의하다' 정도가 되겠다.

국역 [이중톈 미학강의]의 정확한 원제목은 '파문이입:이중톈강미학(破門而入:易中天講美學)'인데, 저자는 짧은 <서문>에서 '비판적으로 문을 부순다'는 태도로 미학사를 통해 미학의 문제제기를 하고 '미학의 문제와 역사'를 새롭게 건설했다는 의미에서 '문을 부수고 들어간다(破門而入)'고 선언하고 있다.
그러나 철학이든 미학이든 '문제제기'의 역할이지 '결론도출'의 역할을 부여받지 못했기에 이중톈이 부순 문 너머에도 '미란 무엇인가'에 대한 명확한 결론은 없다.


"미학(美學)은 '문제의 문제', '기준의 기준'을 연구하는 학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미학을 연구하는 것은 예술과 심미 중에서 '근본성'과 '보편성'을 띤 문제들입니다."
- [미학강의], <1-1. 입장권을 제공하지 않는 미학>, 이중톈, 2006.


우선, 미학(美學)의 근본 질문은 '미(美)란 무엇인가?'이다. 미학은 특정 예술을 대상으로 하는 기술적 영역이 아니라 전체 예술을 아우르는 근본적이고 보편적인 '미(美)' 자체가 대상인 것이다. 그러므로 '세계 또는 우주란 무엇인가?'를 대상으로 하는 철학과 같이 근본적이고 보편적인 문제제기로부터 시작한다. 

내가 보기에 미학은 철학의 영역에 속하는 하위범주다. 보편적인 '미' 자체를 한마디로 규정할 수 없는 것처럼, 미학의 역사 속에서 '미'의 양상도 지속적으로 변해왔다.


"... 세계는 절대이념의 자아실현 과정이 아니라 인류가 자신의 '실천'을 통해서 자아를 창조하고 실현하는 과정입니다. '실천'은 마르크스주의의 과학적 세계관의 핵심입니다... 마르크스는 새로운 유물론의 발판은 인간사회 혹은 사회화된 인간이고, 인간의 본질은 결코 개인의 고유한 추상물이 아니며 그 현실성 위에서 모든 사회관계의 총화라고 선포했습니다... 예술철학만 이야기하고 일반예술학은 이야기하지 않는다면 '실재'적인 이야기를 계속해 나갈 수가 없습니다."
- [미학강의], <5-5. 헤겔 미학을 되돌아보다>, 이중톈, 2006.


미학의 결론은 없다고 했지만, 이중톈이 [미학강의]를 통해 전하고자 하는 대략의 결론은 이렇다. 

보편성을 지향하는 '미(美)'는 고정된 것이 아니라 인류 예술의 역사를 통해 변화해 왔다는 것이다.

고대 그리스의 피타고라스 학파는 수학과 같은 미의 '규칙성'을 주장하면서 미학사의 문을 열었고 소크라테스의 제자 플라톤은 '이데아론'과 같이 미의 '객관성'을 규명하려 했다. 플라톤의 제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스승을 넘어 이데아로서의 본질은 물론 속세의 형상도 중시했기에 플라톤보다 '모방론'의 현실성을 한층 강조했지만 역시 고대 미학은 미의 '객관성'의 단계였다.

미의 '객관성' 규명은 한계에 다다랐는데, 이중톈에 의하면 여기서 미학은 양갈래길에 서게 된다. 즉, 미가 인간의 '주관성'의 길로 갈 것인지, 아니면 신의 길로 갈 것인지 둘 중 하나였다. 중세는 신의 길이었고, 칸트로부터 시작한 근대 인문학적 미학은 미의 '주관성'으로서 '심미 철학'이 된 것이다. 
하나의 독립된 학문으로서 미학의 '생일'은 1750년 독일 철학자 알렉산더 바움가르텐이 '에스테티카'라는 명칭으로 미학을 독립시켰을 때라고 하는데, 인간사에서 '진선미'를 놓고 보면 '진'은 '진위'를 구분하는 '논리학', '선'은 '선악'을 따지는 '윤리학', '미'는 '미추'를 가르는 '미학'의 구분이 완성된 때였다. 그러나 진정한 미학의 '아버지'는 미의 '주관성'으로서 '심미 철학'을 발전시킨 임마누엘 칸트라고 이중톈은 말한다. 
'주관적 보편성'으로서 근대 미학의 미는 "객관적인 것도 주관적인 것도 아니고 주객관의 통일도 아니며, '주관이 객관으로 표상된 것'이고 '객관적 상징의 형식으로 표현되어 나온 주관적인 것'이며, 미의 가장 본질적인 특징은 '공리를 초월하고 개념을 갖지 않으면서 목적을 갖지 않는 '주관적 보편성'이다"(같은책, <3-4>)라는 칸트 철학에서 미학이 비로소 한층 더 발전했다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칸트에게서 미는 인식의 주체로서 개인이 그 누구든 보편적으로 이익이나 목적 여부를 떠나 쾌감을 느끼게 되는 것 그 자체였다.

그러나 주관적 관념론인 영국 경험론 철학과 칸트의 심미 철학 또한 한계에 도달하는데, 철학은 인식의 주체 뿐만 아니라 거대한 객체로서 세계도 그 대상으로 삼기 때문이다.
그래서 철학의 하위범주인 미학 또한 게오르그 헤겔을 피해갈 수 없게 된다.
그렇게 고대 미학의 '객관성'이라는 정명제는 근대 주관적 관념론의 '주관성'이라는 반명제의 '부정'을 거쳐 근대 관념론 철학의 종결자인 헤겔 철학의 체계에서 '부정의 부정' 단계로 들어선다. 
바로 헤겔의 '예술 철학'이다.


"예술은 정감의 '내용'에게 대상화라는 '형식'을 주었고, 미는 대상화라는 '형식'으로 구현되고 있는 '내용'입니다."
- [미학강의], <7-5. 미와 추를 나누는 기준은 무엇인가>, 이중톈, 2006.


헤겔의 에술 철학은 그 자체로 변증법적 전화 과정을 거치는데, '형식'과 '내용'이 맹아로 존재하던 '상징형' 원시 예술에서 '형식'과 '내용'이 통일된 '고전형'으로 '부정'되고, 또 다시 '부정의 부정'으로서 '형식'과 '내용'의 모순에 봉착하는 '낭만형'으로 변화한다. 원래 헤겔 철학의 귀결점은 '절대정신'이므로 헤겔에게 미는 '절대정신의 감성적 현현'이며, 첫 단계인 감각적 '예술'의 정명제는 그 자체의 모순에 의해 '종교'의 '부정' 단계로 이행하며, '종교' 또한 내적인 변증법 과정을 거친 후 최후의 단계인 '철학'에 도달한다. '철학'에서 '이성'은 즉자 단계와 대자 관계를 거치며 즉자-대자로서 '절대정신'이라는 최종적인 단계에 이르는데, 이것이 바로 헤겔의 주저 [정신현상학](1806)의 결론이다.
아무튼, 헤겔에게 미는 '절대정신의 감성적 현현'으로서 거대한 변증법적 관념론 체계의 가장 첫 단계인 '예술 철학'의 영역이다.


"정감을 대상화하는 형식은 예술의 특징이고, 정감의 전달은 예술의 기능이며, 인간의 확증은 예술의 본질입니다."
- [미학강의], <7-3. 예술은 인간임을 증명하는 증거일까>, 이중톈, 2006.


이중톈의 방향은 마르크스주의 유물론적 미학론이다. 그는 이를 '실천 미학'이라 명명하는데, 마르크스가 그랬듯, 관념론 철학의 종결자 헤겔 철학을 상세하게 연구하고는 이를 뒤집어 유물론적 실천 미학을 새롭게 건설하고자 한다. 즉, 고대의 미학이라는 광대한 영역에서 근대에 이르러 '미학(美學/Aesthetics)'의 독립으로 '심미'와 '예술 철학'으로 이행하였지만, 이 추상성에 그치는 관념론적 사고방식이라는 '문'을 부수고 '예술 철학'을 넘어 '일반 예술학'의 '실재'를 이야기해야 한다는 것이다. 
마르크스주의가 제시한 '사회'와 '역사'에 기반한 인간의 '실천' 중 하나로서 각종 예술 행위들을 통해 미학을 정립하고 그러한 미학사 속에서도 미학의 근본 질문인 "미란 무엇인가?"의 문제제기를 계속 던져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결론은 없다.
미(美)라는 개념은 역사 속에서 지속적으로 변해왔고 앞으로도 계속 변할 것이다.
그러나, '미학(美學)'은 철학과 마찬가지로 그 보편성을 지향하는 근본적 문제제기를 멈추지 않는다.

역사 속 질문들은 모두 결론은 아니었을지라도 그 시대에 유효했고 '필연적'인 문제제기였다.

그래서 이중톈 [미학강의]의 결론 아닌 결론을 한 문장 뽑으라면,
"미학은 곧 미학사, 미학사는 곧 미학"(같은책, <1-4>)이다.


3.

결국, 내가 보기에,
빅터 프랑켄슈타인이 애써 만든 창조물을 외면한 '미'의 기준은,

첫째, 미학 여부를 떠나서 당시 기준으로 잘생긴 외모가 아니었다는 단순한 이유였고,
둘째, 19세기 초의 그 기준이 21세기인 지금과 같을 수는 없다는 새삼스럽지도 않은 결론을 내린다.

미와 추의 기준은 시대에 따라 변한다.
그 증거는 유물변증법에 기반한 '실천 미학'의 과학적 사고 방식에 의하면 당대의 예술적 '실천'들이며,  미는 천상에서 내려와 사회관계를 토대로 한 현실의 다양한 작품들을 통해 '실재'적으로 반영되는 것이다.

물론,
이 또한 결론이 될 수는 없다.

다만,
"'미(美)'란 무엇인가?"라는,
'미학(美學)'의 근본적 '문제제기'만이 언제나 유효할 뿐이다.

***

- [이중톈 미학강의(破門而入:易中天講美學)](2006), 易中天, 곽수경 옮김, <김영사>,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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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리얼리즘 - 대안은 없는가
마크 피셔 지음, 박진철 옮김 / 리시올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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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안'없는 냉정한 '현실', '자본주의 리얼리즘'
- [자본주의 리얼리즘], 마크 피셔, 2008.


"자본주의의 종말을 상상하는 것보다 세계의 종말을 상상하는 것이 더 쉽다는 프레드릭 제임슨과 슬라보예 지젝의 구절... 이 슬로건은 내가 '자본주의 리얼리즘(Capitalist realism)'이라는 표현으로 의미하는 바를 정확하게 포착하고 있다. 자본주의가 유일하게 존립 가능한 정치경제 체계일 뿐 아니라 이제는 그에 대한 일관된 대안을 상상하는 것조차 불가능하다는 널리 퍼져있는 감각이 그것이다."
- [자본주의 리얼리즘], <1. 자본주의 종말보다 세계의 종말을 상상하는 것이 더 쉽다>, 마크 피셔, 2008.


1.

'90년대 초반, 
한때 '신세대'였던 나는 젊은이답게 새로운 유행을 따라갈 수가 없었다.
대학 신입생이 되어 가난하고 위축되어 보이지 않으려고 일부러 불량하게 담배를 꼬나물거나 최신유행 랩송을 외워서 불러제꼈지만 돌이켜보건대 내겐 어울리지 않았을 게다.
사실 앞뒤 꽉막히고 외골수에 가까웠던 난 유행의 흐름을 타느니 복고를 동경했는데, 그 대상이 '80년대였다.

실제로 '80년대 청춘이었다면 반체제를 외칠 결기도 없었을 나는, 이미 철지난 유행을 탔는데, 그 흐름이란 사회과학적으로는 '과학적 사회주의'였고 문학적으로는 '사회주의 리얼리즘'이었다.

적어도 '90년대 초반의 젊은 내겐,
'80년대 그때 그 시절처럼,
"다른 세상은 가능했고",
'대안'이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2.

보통 '자본주의'의 '대안'이란,
에둘러 말할 것 없이 '사회주의'다.

현실 공산주의의 몰락 앞에 내가 동경했던 수많은 '80년대 학번 형님들이 좌절하고 뜻을 접었지만, 나는 그래도 아직 도래하지 않은 진정한 '평등세상'을 바라며 나름대로 책을 읽으며 자습을 했고 대안세상을 그려내는 '사회주의 리얼리즘' 소설가가 되기 위해 글을 끄적였다.

젊은 내가 습작하던 '사회주의 리얼리즘'은 현실 공산국가들의 체제 선전 홍보물이 아니었다.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자본주의 현체제의 부조리와 모순을 내 주변의 인물군상과 사건들을 통해 '사실(realism)'적으로 묘사하면서 아직 오지 않은 '대안세계'를 암시하는 '리얼리즘(realism)' 소설이고자 했다.
결국, 나는 '사회주의 리얼리즘' 소설가가 되는 것에 실패했다. 실력이 부족했고 나 자신 체제에 철저히 포섭되었으며 더욱 중요한 건 사람들이 내 글을 읽어주지 않았다. 
그러나 '대안체제'까지 포기할 수는 없었다. 
적어도 불평등이 극심화되는 '자본주의' 체제가 존재하는 한.


"... 녹색 쟁점들은 이미 논쟁적인 지대며 이미 '정치화'를 위한 싸움이 벌어지고 있는 장소다. 이제부터 나는 '자본주의 리얼리즘'이 품고있는 두 개의 상이한 아포리아를 강조하고 싶다. 첫째는 '정신건강'이라는 쟁점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정신건강 질환'이 유행한다는 사실은 자본주의가 제대로 작동하는 사회체계이기는커녕 내재적으로 고장나 있으며, 그것이 잘 작동하는 듯이 보이도록 만드는 비용이 아주 크다는 것을 시사한다... 둘째 현상은 '관료주의'다... 후기 자본주의에서... '관료주의'는 사라진 것이 아니라 형태가 변했으며, 이 새롭고 탈중심화된 형태를 통해 오히려 증식했다..."
- [자본주의 리얼리즘], <3. 자본주의와 실재>, 마크 피셔, 2008.


영국의 저술가이자 문화비평가 마크 피셔(Mark Fisher : 1968~2017)는 자본주의 체제를 비판하는 블로그 글쓰기로 유명하다는데, 글쓰는 영화인인 나의 조카의 소개로 읽어보게 되었다. 
마크 피셔의 첫 단행본 저서는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시기에 나온 [자본주의 리얼리즘(Capitalist realism)]으로 2018년에 우리말로 번역되어 나왔다.

마크 피셔의 '자본주의 리얼리즘'은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패러디를 넘어 한층 포괄적인 의미를 지닌다고 이 책의 역자는 말한다. 
끝없는 '시차적 관점'으로 테제와 반테제가 교차하는 일은 없다는 현대식 '변증법적 유물론'을 설파한 동유럽 마르크스주의자 슬라보예 지젝과 '포스트모더니즘'에 기반한 마르크스주의를 전개했다는 프레드릭 제임슨의 사상에 기반하여 자본주의를 대체할 '대안은 없다'는 것이 피셔의 '자본주의 리얼리즘'이다. 
제임슨과 지젝의 문장으로 표현하면, "자본주의의 종말을 상상하는 것보다 세계의 종말을 상상하는 것이 더 쉽다"는 '현실주의(리얼리즘)'다.

그렇다고 '역사의 종언'을 말한 프랜시스 후쿠야마 같은 자본주의 승리파가 아니라, 사회비판 헐리우드 영화의 배경처럼 '자본주의 리얼리즘'은 음울하다. 아마도 영화 문외한인 내가 보지 못한 수많은 영화들을 인용하는 바람에 저자의 주장이 이해가 잘 안되는 구절이 다소 있기에 음울한 영화배경이 더 겹쳐졌는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피셔의 반체제적 영감의 소재 중 하나가 영화인 듯도 하다. 또한 지금이십대 초반의 영화인인 내 조카가 극찬한 이유이기도 할게다.

이 책의 제목은 [자본주의 리얼리즘(Capitalist Realism)]이고 부제는 "대안은 없는가?(Is There No Alternative?)"인만큼, 마크 피셔의 '자본주의 리얼리즘'에서 '대안체제'는 대놓고 없다. 
그는 기존 좌파가 소비에트식 옛 노래를 흥얼거리는 통에 헷갈려 왔지만, '사회주의' 같은 다른 세상이나 대안체제를 주장하기 보다, 우리들 개인에게 오랜 시간 체화되고 내면화된 '욕망'에 주목한다. 


"이제 우리는 '신자유주의'는 필연적으로 '자본주의 리얼리즘'이어야 했지만 '자본주의 리얼리즘'이 '신자유주의'적일 필요는 없음을 알 수 있다... 자본주의에 대한 일관되고 신뢰할 '대안'이 없다면 '자본주의 리얼리즘'은 앞으로도 정치경제적 무의식을 지배할 것이다."
- [자본주의 리얼리즘], <9. 마르크스주의적 슈퍼 보모>, 마크 피셔, 2008.


정치경제적으로 자본주의 체제는 굳건하고 신자유주의가 2008년에 위기를 맞았지만 그렇다고 자본주의가 몰락하지는 않는다는 이 책 주장의 근거는 자본가도 아니고 부르주아 정치가도 아닌 바로 우리 다수 대중의 '욕망'인 것이다. 즉, 우리들 다수대중들은 이제 다시 자본주의 '이전'으로 돌아가거나 '외부'로 넘어가서 살 수 없다는 '현실주의(리얼리즘)'가 바로 마크 피셔의 '자본주의 리얼리즘'의 냉정한 본질이다.

개인의 '욕망'에 집중하다 보니, 기후 위기나 생태 문제 등의 외부 문제보다는, 자본주의 체제의 내재적 문제에 집중하게 되는 피셔는 자본주의 체제의 두 가지 병리현상에 주목한다.

첫째는 개인의 '정신건강' 문제고,
둘째는 체제의 '관료주의' 문제다.

'정신건강'은 체제의 '정신분열'은 개인적 문제가 아닌 체제의 구조로 인한 것이라는 주장이다. 다시 말해 자본주의 체제는 수많은 '정신병자'들을 구조적으로 양산한다는 것인데, 이미 20세기 후반으로 치닫던 1960~70년대 포스트마르크스주의자인 질 들뢰즈와 포스트모더니즘의 선구자 미셸 푸코 등이 분석한 바 있다.

'관료주의'는 본연의 생산적 노동에서 벗어난 비생산적 노동이 주류가 되면서 그 자체가 실적경쟁을 이루는 '시장주의적 스탈린주의'(같은책, <6장>)로 은유된다. 
'자본주의 리얼리즘'에서의 이러한 비생산적 관료주의 '노동'은 다수 대중의 정치경제적 투쟁으로 분쇄되어야 할 대상이라고 한다.

피셔의 결론은 '정신건강'에 시달린다 해도 이는 자본주의 체제의 구조적 문제에 기인한 것으로 '개인적' 문제들을 포함한 구조적 '관료주의' 문제 일체를 '정치화'하여, 새롭게 조직된 '정치행위주체'들에 의해 이들 문제들이 통제되어야 한다는 거다.

즉, '욕망'으로 뭉친 자본주의 체제의 소비자 또는 전유자로서 다수대중이 다양한 '정치주체화'를 통해 이 자본주의를 통제하자는 제안이며, 이를 위해 '대안체제' 같은 꿈이 아니라 자본주의 '현실'을 직시하자는 것이,
마크 피셔의 '자본주의 리얼리즘'이다.


"새로운 반(反)자본주의가 출현할 하나의 공간이 마련되었고 여기서는 반드시 옛 언어나 전통에 묶여있을 필요가 없다... 전(前)자본주의적 영토들로 돌아갈 수 있는 길은 없다. 반자본주의는 그 자체의 진정한 보편성을 통해 자본의 세계화에 대항해야 한다... '정치화'는 당연하게 여겨지는 것을 누구나 차지할 수 있는 것으로 변형시킬 수 있는 '정치적 행위주체'를 필요로 한다. 1968년 이후 노동계급의 '욕망'을 병합함으로써 승리했다면, 새로운 좌파의 실천은 신자유주의가 만들었으나 만족시킬 수는 없었던 '욕망'들에 기반해 시작될 수 있을 것이다... 좌파는 신자유주의의 실패가 두드러지는 사안인 관료제의 대규모 축소를 이룰 수 있다고 주장해야 한다. 필요한 것은 노동 및 누가 노동을 통제할지를 둘러싼 투쟁이다... 새로운 정치적 주체가 구축될 때만 그럴 수 있다."
- [자본주의 리얼리즘], <9. 마르크스주의적 슈퍼 보모>, 마크 피셔, 2008.


이 새로운 '정치주체'는 기존 노동조합일 수도 있고 새로운 조직일 수도 있다며, 마크 피셔는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는데, 그의 결론 또한 '파시즘'을 만든 원인으로서 '대중심리'가 결국 그 '파시즘'에게 파산을 선고한다는 빌헬름 라이히처럼, 자본주의 체제 내 '정신분열'의 '혁명성'에 주목한 질 들뢰즈와 펠릭스 가타리처럼, '다수대중'의 권력화와 전략적 리더십을 주장한 안토니오 네그리와 마이클 하트처럼,
'노동'에 기반한 '민주주의', 즉
'노동민주주의'로 수렴된다.


3.

한 때,
'90년대 '신세대'였던 내가 어느덧,
'쉰세대'가 되었지만,

사실 나는,
1993년 스무살 때도 이미,
'신세대'가 아니라 '쉰세대' 같다는 말을 들었다.

20세기가 지나고,
21세기가 되어도,
'사회주의 리얼리즘'이라는 '대안'적 전망이 사라진 자리에,
'자본주의 리얼리즘'이라는 냉정한 현실이 굳건히 들어선다 해도, 
'노동'하는 '다수대중'의 '민주주의',
'노동민주주의'는 여전한 이 체제의 '대안'인가보다.

***

1. [자본주의 리얼리즘 - 대안은 없는가(Capitalist Realism - Is There No Alternative?)](2008), Mark Fisher, 박진철 옮김, <리시올>, 2018.
2. [시차적 관점(The Parallax View)](2006), 슬라보예 지젝 지음, 김서영 옮김, <마티>, 2009.
3. [지식의 고고학](1969), 미셸 푸코, 이정우 옮김, <민음사>, 2000.
4. [파시즘의 대중심리](1933), 빌헬름 라이히, 황선길 옮김, <그린비>, 2006.
5. [앙띠오이디푸스](1972), 질 들뢰즈/펠릭스 가타리, 최명관 옮김, <민음사>, 1997.
6. [어셈블리(Assembly)](2017), 안토니오 네그리/마이클 하트, 이승준/정유진 옮김, <알렙>,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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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동화 1~2 세트 - 전2권
그림 형제 지음, 오토 우벨로데 그림, 전영애.김남희 옮김 / 민음사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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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는 '멸종'하지 않는다
- [그림 동화], 그림 형제, 1812~1819.


"... 동화를 읽는 인간은 멸종해 가지만, 인간에게는 동화가 결코 멸종하지 않기 때문...  
바로 그러한 점을 '시(詩)'가 모든 영원한 것과 공유한다...
그것(동화)은 좋은 말 한 마디와 똑같이 우리 심성의 증언이다."
- [그림 동화], <2판 서문>, 그림 형제, 1819.7.3.


신기했다.
오래 전인 19세기 초에도 '동화'를 읽는 인간들이 '멸종'해 갔다니.
그런데 다시 생각해 보니,
예나 지금이나 아이들은 언제나 어른이 되어 왔고,
어른이 된 인간은 대부분 '동화'를 읽지 않았다.


1.

내가 '동화'를 다시 읽게 된 건,
초등학교 4학년인가 대략 열살이 넘었을 때부터 친다면,
첫 아이를 만난 서른셋까지 대략 20년 이상이 지난 후였다.

어린 시절,
책을 좋아했던 건 아니었고,
그림 그리는 걸 좋아했으니 책 속의 삽화를 보기 위해 '동물백과사전'을 들고 다녔고 '세계문학전집'을 펼쳤다. 
몇몇 이야기는 TV에서 방영해 주던 일본 애니메이션 '세계명작동화'를 통해 대강 알았고, 오랜 시간 노란색 표지의 전집 앞에서 책등에 적힌 제목들을 주로 바라보며 앉아 있었다. 그러다 집어든 동화책의 흑백삽화를 보며 어린 나는 상상을 펼쳤다.
초등학교 4학년 특활시간 독서반에 알렉상드르 뒤마의 [삼총사]를 한 학기 내내 들고 다녔던 이유는 그 나이까지 책 한 권을 이어서 읽을 줄을 몰라서였다.

이후 초등학교 5학년 때 같은 반 친구의 집에서 코넌 도일의 셜록 홈즈 단편들을 빌려 읽으면서 나는 비로소 단편이나마 책 한 권을 온전히 읽을 수 있게 되었으니, 사실 어린 시절에 제대로 읽은 동화책은 없었는지도 모른다.

내가 좋아했던 로버트 스티븐슨의 [보물섬]조차도 아마 나중에서야 온전히 읽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세계명작동화' 전집에 수록된 아주 짧은 이야기들은 그 어린 나이에도 몇 편 읽기는 했으리라.

[이솝 우화]나 [그림 동화] 같은.


2.

내 아이들에게 동화책을 읽어주었지만,
실은 내가 제대로 읽어보고 싶었다.

애기들 잠들기 전 40페이지 짜리 어린이용 '애니메이션 세계명작동화'를 주로 읽어주다가, [보물섬]이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빨간머리 앤], [오즈의 마법사] 등은 성인판으로 구해서 다시 읽었다. 국역으로도 읽고 영문판을 보기도 했다. 

한스 안데르센을 포함하여 장편 동화들은 비단 어린이들만을 위한 서사가 아니었다. 

이들 고전동화들은 인류의 귀중한 문화유산이라 해도 손색이 없다.

그럼에도,
이솝이나 그림 형제의 동화는 그닥 관심이 가지 않다가,
어느날 문득 유럽의 [신데렐라]와 우리의 [콩쥐팥쥐] 사이에서 동서양 구전동화의 '양자역학'을 떠올렸다.
서로 접촉이 없었을 것 같은데도 동일하게 전개되는 이야기.

[신데렐라]는 프랑스 동화수집가 샤를 페로를 통해서도 전한다지만, 독일의 학자 그림 형제의 수집본에서도 볼 수 있다. 
제목은 [재투성이]다.


법학을 공부했다는 독일의 인문학자 야코프 그림(Jacob Grimm : 1785~1863)과 빌헬름 그림(Wilhelm Grimm : 1786~1859)은 독일 각 지역의 방언으로 구전되는 민담을 수집했다. 이들은 '그림 형제'로 불렸고 그림 형제가 모아서 엮은 이야기는 [그림 동화]로 우리에게 알려져 왔다.
독일 최초의 이 동화 모음집의 독일어판 원제는, 
[아이들과 가정의 동화(Kinder und Hausmärchen)]다.

1812년에 1권을, 1815년에 2권을 출간한 그림 형제가 [그림 동화] 2판을 내던 1819년 7월에 쓴 '서문' 격의 글 <민중문학의 바탕은 초록풀밭과 같다>에서 19세기 초반 당시에도 "동화를 읽는 인간은 멸종해 가지만..."이라는 요즘 들어도 익숙한 문장을 읽었다. 더 읽어보니 당시에도 시대의 급격한 변화와 함께 이야기 전승의 풍속이 사라지고 있는 풍토가 염려되었던 거다.
고대 그리스 시대에도 어른들은 당시 젊은 것들이 싸가지가 없어서 세상 말세라고 했다더니, 어쨌건 간에 오래 전부터 '동화를 읽는 어른'들이 이미 '멸종'해 가고 있었다니 새삼스럽기도 하다.

하지만 그런 세태에도 불구하고 그림 형제는 동화 같은 구전 이야기가 '초록풀밭'의 이삭과 씨앗들처럼 '시(詩)'의 모습으로 노래처럼 구비구비 전해져왔다고 쓰고 있다.
문자보다는 입에서 입으로 이어진 이야기들은 기독교적 세계관에 입각한 교훈을 담고 있기도 하고 흐지부지한 결론의 전개 후에 뭔가 여운을 남기는 '동화'로 남기도 하는데, 그림 형제는 이런 이야기들이 인간의 맑은 영혼과 심성을 '증언'한다고 말한다.

추운 겨울에 화롯불 앞에서 할머니와 어머니가 아이들에게 들려주시던 독일 '가정의 동화(hausmärchen)'는 내 어머니가 어린 나를 아랫목에 앉혀놓고 조곤조곤 이야기해 주시던 동아시아의 도깨비불이나 구미호 이야기와 같이 따뜻하고 포근하다.

그림 형제의 [아이들과 가정의 동화(Kinder und Hausmärchen)]는 19세기 당시 독일 각 지역의 방언을 그대로 살리고 표준어를 두루 쓰면서 이후 독일어사전 편찬 작업 등에 큰 기여를 했단다. 그림 형제는 인문학자답게 1~2권은 이야기 모음집으로, 3권은 구전민담에 관한 방대한 연구논문으로 남겼다는데, [그림 동화]는 독일어 뿐만 아니라 독일문학에서도 아마 중요한 문헌일 수도 있겠다.

우리의 독문학자인 서울대 전영애 명예교수와 경북대 김남희 교수가 함께 지금껏 우리에게 익숙해 온 각색된 내용이 아닌 그림 형제가 채집하여 편찬한 독일어 원본 이야기 1~2권을 그대로 우리말 번역한 [그림 동화]를 펼치면 '날 것 그대로'의 동화를 접하게 된다.


[재투성이]에서 신데렐라의 가짜 언니들은 유리구두에 발을 맞추기 위해 발가락과 뒷꿈치를 잘라 피바다를 연출하다가 악의 축이었던 새엄마의 거취는 온데간데 없이 새언니들만 신데렐라와 왕자의 결혼식에 가서 아양을 떨던 중 비둘기들에게 두눈을 쪼이고,

[눈처럼 하얀]에서 백설공주의 간과 심장이라고 착한 사냥꾼이 거짓으로 가져다 준 걸 남김없이 먹어치운 새엄마는 몇 차례 '미녀살해' 시도를 실패한 후 궁극에는 백설공주와 왕자의 결혼식에 굳이 또 구경갔다가 갑자기 나타난 불에 달궈진 쇠구두를 뜬금없이 신더니 뜨겁다고 춤추다 죽는다.

[라푼첼]의 결말은 라푼첼을 탑에 가둔 새엄마에게 속아 왕자님은 역시 두눈을 멀게되고 권선징악은 건너뛴 채 그냥 버려진 황무지에서 어쩐 일인지 이미 쌍둥이의 엄마로 살고 있던 라푼첼과 왕자가 다시 만나 심봉사와 심청이 부녀처럼 광명 찾고 잘 산다고 하면서 '갑분싸'로 끝나기도 하고,

[가시장미]에서 잠자는 숲속의 공주를 깨운 건 왕자의 목숨을 건 용맹이 아니라 마녀의 예언대로 공주가 물레에 손을 찔려 잠든지 100년이 지나 마법이 풀린 순전한 운발이었는데 그 전에는 수많은 왕자들이 잠든 왕국의 문을 열다가 죽어갔지만 주인공인 운좋은 왕자는 하필 왕국이 잠에서 깰 때 들어간 거였다.

[헨젤과 그레텔]이 다시 집에 돌아왔을 때 애초에 식량이 없다며 남매를 숲에 버리자고 했던 새엄마가 이미 죽었다는 사실이 한 줄로만 적힌 건 권선징악일 수도 있겠지만 아마도 당시 기근의 무서움을 은연 중에 보여주는 것일 수도 있는데 아동 유기로 입을 줄였음에도 역시 굶어죽을 수밖에 없었던 비참한 현실의 은유일 수도 있겠다.

그 외에도 [브레멘 시립음악대]나 [빨강 모자] 같이 우리에게 익숙한 많은 에피소드들을 담고 있는 그림 형제가 수집한 구전이야기 원작은, 그럼에도 우리가 읽어 온 '세계명작동화'와 다르다.
인위적인 훈육의 내용으로 수렴된다거나 명확하게 남기는 교훈의 메시지 같은 건 없다.


3.

그렇게 '교훈'이란 근엄한 지시와 통제 같은 기제로 전해지지 않는다.

아무리 '동화'의 교훈을 읽는 인간들이 멸종의 위기에 매번 봉착한다 해도,
날 것 그대로의 그림 형제 구전동화는,
노래처럼 수세기를 전해져 내려온 서사의 힘을 증거해주고 있다.

때 되면 흥얼거리는 시처럼 노래처럼,
'동화' 같은 인류의 옛날 이야기는,
'초록풀밭'처럼 결코 '멸종'하지 않는다.

***

- [그림(Grimm) 동화 : 아이들과 가정의 동화(Kinder und Hausmärchen)](1812~1815), 야코프/빌헬름 그림 형제, 전영애/김남희 옮김, <민음사>,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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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진화 - 아프리카에서 한반도까지, 우리가 우리가 되어 온 여정
이상희 지음 / 동아시아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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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설'은 깨지라고 있는 것이다
- [인류의 진화], 이상희, 2023.


과학은 '가설(假說)'로부터 시작한다.
연역적이라는 말이 아니다. '과학'은 일차적으로 자료조사를 통해 어떤 대상을 설명하는 명제를 구성한다. 이 명제가 '가설'로 상정되어 본격적인 조사와 발굴, 비교검토를 통해 이 주장을 검증한다. 반증이 없다면 이 '가설'은 현재의 증거들을 통해 하나의 과학적 '사실'로 확정된다.
그러나 다른 과학적 성과가 새롭게 이뤄지면 이 오래된 '진리'는 깨진다.
따라서 엄밀하게 '과학적 진리'는 모두 '상대적 진리'다.
'가설'은 깨질 수 있다는 사실만이 유일한 '절대적 진리'다.
레닌은 자연과학 뿐만 아니라 사회과학에서도 이러한 '진리의 상대성'이라는 '절대적 진리'가 적용된다고 주장했다.

'과학'적 '가설'은 깨지라고 있는 것이다.


"계단(사다리)이 아닌 나뭇가지(덤불)처럼 뻗어나가는 모습이 20세기 후반에 자리잡은 인류의 진화에 대한 이미지입니다... 작은 물줄기에서 큰 물줄기로 모여 지구 전체를 덮고 있는 우리 호모 사피엔스는 다양한 집단의 다양한 기원이 만들어낸 모습입니다."
- [인류의 진화], <들어가며 : 흐르는 강물처럼>, 이상희, 2023.


캘리포니아 리버사이드대학교 인류학과 이상희 교수는 2018년 한마음평화연구재단으로부터 동북아시아와 한반도의 고인류를 연구해보라는 제안을 받고 2023년 [인류의 진화]라는 책을 출간했다.
호모 사피엔스로 분류되는 현생 인류의 기원을 연구하는 고인류학계의 유럽식 주류에서 탈피해 연구를 아시아로 확장하는 시도 중 하나다.
다른 말로는 유럽이 발상지인 '네안데르탈인'과 '크로마뇽인(호모 사피엔스)'의 관계에 관한 고인류학계의 오래된 '가설'에 대한 도전이기도 하다.

이상희 교수의 [인류의 진화]를 읽기 전,
일반인 독자들은 우선 기본 '가설'부터 깰 준비를 해야 한다.

인류 진화를 과학자가 아닌 일반 독자인 나 같은 사람이 이해하기 쉽게 도식화한 '가설'이 있다.

대략 600만년 전 동아프리카에서 등장한 '오스트랄로 피테쿠스'가 300만년 정도 아프리카 초원지대에서 살다가 200만년 전에는 '직립보행'을 하면서 유럽으로 이동했다.
100만년 전에는 석기로 대표되는 '도구 사용'의 '호모 하빌리스'가 등장하고, 그 즈음 '불'을 발견한 고인류는 70만년 전에는 '의무 직립보행'의 '호모 에렉투스'로 진화하면서 지구에서 최상위 포식자가 되었다.
40만년 전 쯤 되면 유럽의 '네안데르탈인'이 등장하고 10만년 전부터는 '호모 사피엔스'로 진화되어 거의 그대로 현생인류로 이어져 왔다.

'계단'이나 '사다리'처럼 한 줄로 이어지는 인류 진화의 '가설'인데,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오스트랄로 피테쿠스(600만년 전) - 호모 하빌리스(100만년 전) - 호모 에렉투스(70만년 전) - 네안데르탈인(40~20만년 전) - 호모 사피엔스(15~10만년 전) 
2. 구석기 시대 및 수렵채집사회(200~3만년 전) - 신석기 시대 및 농경정착사회(1만년 전) 
3. 플라이스토세(5~1만년 전 대빙하기) - 홀로세(1만년 전~현재까지 간빙기) 등.

일반인들이 대중적으로 공개된 유물조사 결과를 통해 이해한 '가설'이다.

그런데 이 책을 읽는 동안 이 도식화된 '가설'은 얽히고 설킨다.


"고인류학의 역사는 어떻게 보면 '사람이 다른 동물에 비해 얼마나 특별하지 않은지'를 밝혀온 역사이기도 합니다."
- [인류의 진화], <1장. 네 이름은 호미닌>, 이상희, 2023.


이와 같은 '가설'의 주요 배경은 19세기 찰스 다윈의 '진화론'에 기반한 '사람도 진화의 산물'이라는 고인류학의 대전제였다. '창조론'이 사람은 원래부터 이 상태로 창조되었다는 과학적 반증을 하지 못하는 한 '인류 진화'의 '잠정적 가설'은 '상대적'일지라도 아직 '진리'다.
'진화는 사다리가 아니라 덤불'이라고 논증한 미국의 고인류학자 도널드 프로세로에 의하면, 진화는 '잠정적 가설'이기도 하지만 현재도 진행되는 '사실'이다.


"'중력'이 일어나는 방식을 우리는 아직도 정확히는 알지 못한다. 그래도 물체가 땅으로 떨어진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진화'가 어떤 식으로 일어나는지 어쩌면 완전히는 알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래도 생명은 계속 '진화'하고 있다... '진화'를 설명하는 이론은 '신다윈주의'가 전부는 아니다. '진화'는 과거에도 일어났고 바로 지금도 일어나고 있다."
- [화석은 말한다], <4. 진화론의 진화>, 도널드 프로세로, 2017.


이상희 교수에게도 고인류학의 역사는 인류도 특별하지 않게 진화해 왔다는 것을 증명하는 과정이었다.


"네안데르탈인이 호모 사피엔스의 조상이냐 아니냐의 논란은 더 이상 의미없는 질문인지도 모릅니다. 21세기에 밝혀진 팩트는 우리 안에 네안데르탈인의 유전자가 남아있다는 것입니다... 네안데르탈인은 지극히 '사람다운' 고인류종이었습니다."
- [인류의 진화], <12장. 또! 네안데르탈인>, 이상희, 2023.


고인류학의 과학에서도 '가설'은 계속 깨진다.

원래 제2차 대전 이전까지는 인류 기원이 동아프리카가 아닌 아시아였다.
호모 에렉투스로 분류되던 인도네시아 '자바원인'과 중국 북경의 '베이징 원인'이 한때 인류의 '기원'으로 여겨졌다. 오스트랄로 피테쿠스는 인류와는 다른 존재였다.

그러던 중 유럽 고인류학계에서 '네인데르탈인' 유물에 대한 조사연구가 발전했다.
1960년대 즈음에는 그 동안의 유물조사 결과를 토대로 아프리카의 오스트랄로 피테쿠스가 유럽에서 네인데르탈인이 되었고 이후 크로마뇽인이라는 호모 사피엔스로 진화했다는 '가설'이 우세하면서 인류의 '기원'은 아시아에서 아프리카로 옮겨진다.

'가설'은 또 다시 깨진다.

1990년대에는 '네안데르탈인'이 현생 인류에게 유전적 영향을 남기지 않았다는 유물연구가 진전되면서 '네안데르탈인'은 '호모 사피엔스'와 다른 종이라는 주장이 '가설'이 된다. 유발 하라리가 [사피엔스]에서 '호모 사피엔스'를 '네안데르탈인'을 비롯하여 다른 종들을 멸종시킨 '학살자'로 규정한 주요 근거다. '네안데르탈인'은 현생 인류의 '조상'이 아니라는 '가설'이다.

그러다가 21세기가 되어 유전자 연구가 발전하면서 현생 인류 유전자 중 1~4퍼센트 정도 '네안데르탈인' 유전자가 발견된다는 사실에 기반하여 '호모 사피엔스'와 '네안데르탈인' 사이의 이종교배설이 등장한다.

즉, 교배를 통해 후손을 생식하는 것이 동종 뿐만 아니라 다른 종끼리 가능하다는 '가설'로 인해 '네안데르탈인'이 다시금 인류의 '조상' 범위에 들어오게 된다.

20세기 초에 '필트다운인'이라는 조작된 인류 '조상' 유물까지 내세우며 유럽인의 인류기원설을 주장하려던 유럽식 고인류학계에 또 다시 '네안데르탈인'이 등장하게 된 배경이다.

고인류학이라는 과학의 '가설' 또한 여지없이 깨질 수 있다고 논증하는 이상희 교수가 이 책 [인류의 진화]를 통해 동북아시아와 한반도의 고인류학을 재조명하고자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부제가 '아프리카에서 한반도까지 우리가 우리(인류)가 되어온 여정'인 이 책 [인류의 진화]의 목적 중 하나가 유럽 주류 '네안데르탈인 불패의 신화'(같은책, <나가며>)에 대한 도전이기도 하다.

'가설'은 깨졌다가 다시 '불패의 신화'로 되살아날 수도 있지만, 예전과 같을 수는 없다.
과학적 성과는 무한하게 진보하기 때문이다.

유럽의 '네안데르탈인'이 인류의 조상으로 다시금 부활한들, 예전처럼 '사피엔스'의 전단계가 아니라 우리 안의 소량의 유전자로 부활한다.
이 '불패의 신화'는 옛날처럼 배타적일 수 없다. '호모 사피엔스'에게 유전자를 남긴 종이 유럽의 '네안데르탈인'(40~20만년 전) 뿐만 아니라 더 오래전 아시아 알타이 산맥의 '데니소바인'(80만년 전)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리고 아직 마저 발굴되지 못한 다른 종들도 있을 수 있다.

'가설'이 깨진 자리에 다시 부활한 '가설'이 예전의 그 '가설'일 수는 없는 것이다.


"... 우리는 지난 17세기부터 동의한 '종(種)'의 개념을 다시 생각해야 하는 시점에 와 있습니다. 다양한 '종'이 섞여 하나의 새로운 '종'을 탄생시킨다는 관점은 하나의 '종'에서 두 '종'으로 분화해야만 새로운 '종'의 탄생으로 인정한다는 입장에 전면적으로 도전합니다. 20세기의 중요한 문제 중 하나였던 호모 사피엔스의 기원이 21세기에서는 사라질지도 모릅니다."
- [인류의 진화], <14장. 사피엔스의 기원>, 이상희, 2023.


인류의 '기원'이나 '종(種)'의 개념도 필연적으로 깨질 운명의 '과학적 가설'처럼 다시금 재정립된다.

아시아를 거쳐 동북아시아와 한반도의 고인류학을 조명한다는 말이 아프리카와 유럽의 고인류학을 대체한다는 것일 수는 없다. 
인류의 '기원'이나 '조상'으로서의 아직 미지의 수많은 종들이 지구의 기후환경 변화에 따라 각지로 퍼지는 과정에 대한 확장된 연구인 것이다. 
아시아는 추위를 피하고 대형사냥감을 쫓아 이동하던 우리 조상들이 한때는 육지였던 북극의 베링해협을 통해 아메리카로 건너가거나 남방의 오세아니아로 내려가던 중간지대였고, 아직은 미약하지만 한반도 지역의 고인류학 연구는 '한민족'의 '조상'을 찾기 위함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명멸하면서 우리 인류에게 '유전자'를 남긴 수많은 종들을 찾는 작업 중 하나인 것이다.


"'조상'이나 '민족'이라는 개념은 과학적이고 생물학적이라는 인상을 주지만 그것은 사실 '허상'일 뿐입니다. 생물학적 개념이라기 보다는 사회적, 문화적 개념입니다. 
한반도의 고인류를 찾고 연구하는 일은 단일민족의 기원을 찾는 일이라서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국경이 없던 시절, 바다(서해/남해)가 땅이었던 시절에 지금의 한반도에서 살고 있던 고인류는 '한민족'이 아니라 '인류'였다는 사실을 다시 살펴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 [인류의 진화], <19장. 단군의 자손>, 이상희, 2023.


'가설'도 '약속'처럼 깨지라고 있는 것이다.

과학은 '가설'을 깨고 다시 세우기 위해 미지의 땅을 계속 발굴해 가는 과정이다.

인류진화사도 그렇고,
이를 연구하는 과학인 고인류학도 그렇다.

***

1. [인류의 진화 - 아프리카에서 한반도까지 우리가 우리가 되어온 여정], 이상희, <동아시아>, 2023.
2. [화석은 말한다 - 화석이 말하는 진화와 창조론의 진실(EVOLUTION : What the Fossils Say and Why It Matters)](2017), Donald R. Prothero, 류운 옮김, <바다출판사>, 2019.
3.  [루시의 발자국](2020), 후안 호세 미야스/후안 루이스 아르수아가, 남진희 옮김, 김준홍 감수, <틈새책방>, 2021.
4. [사피엔스], 유발 하라리, 조현욱 역, <김영사>, 2011.
5. [기후의 힘], 박정재, <바다출판사>, 2021.
6. [로마의 운명(The Fate of Rome)](2017), Kyle Harper, 부희령 옮김, <더봄>, 2021.
7. [지정학의 힘], 김동기, <아카넷>,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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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시우행 2023-10-19 23: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가설은 깨진다는 과학적 접근에 동의합니다.

beatrice1007 2023-10-19 2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서 과학이 어려운 것 같습니다.
당최 우길 수가 없잖아요. ^^*
 
초판본 프랑켄슈타인 - 1886년 오리지널 초판본 표지디자인 더스토리 초판본 시리즈
메리 셸리 지음, 구자언 옮김 / 더스토리 / 2018년 7월
평점 :
품절


인간의 '확신'에 대한 경고
- [프랑켄슈타인], 메리 셸리, 1818.


고등학교 시절에는 토요일 방과 후 친구들 중 빈 집에 떼거지로 몰려가 천원 짜리를 모아서 라면을 사다 끓여먹고 비디오 대여점에서 영화를 빌려봤다. 우리 집은 반지하에다가 어머니가 늘 안방에서 악세사리 같은 걸 만드는 등 부업을 해서 집이 비어 있지도 않았거니와 결정적으로 비디오 플레이어가 없어서 친구들이 몰려올 일은 없었다. 당시 라면은 인당 두 세 개 기준에 비디오는 대놓고 성인물을 빌릴 만한 친구가 없어 남녀 애정행각이 잠시라도 꼭 나오던 '13일의 금요일' 류의 슬래셔 무비를 주로 시청했다.

제목도 기억 안 나고 주제는 더 기억 안 나지만 여배우가 예뻤던 어느 미국 공포영화는 비행청소년 본분에 충실하다가 죽은 여친을 살리기 위해 여기저기 시체들의 쓸만한 부분을 이어 붙여 되살린다는 내용이었는데, 다시 살아난 여친은 정신머리도 없고 자력행동이 불가했음에도 남친이 헌신적으로 애정애정하며 데리고 다니다가 결국 다시 골로 보낼 수 밖에 없던 슬픈 결말은 어렴풋이 기억난다. 

역시 예쁜 여자는 누더기로 부활해도 여전히 예뻐서 비디오가 다 돌아간 후에도 나의 사춘기적 감성에 오래 각인되었다.


"자연철학은 내 운명을 지배했다."
- [프랑켄슈타인], <1-1>, 메리 셸리, 1818.

시체들을 이어 붙여 생명을 (다시) 만든다는 발상은 '프랑켄슈타인'이었다. '90년대 초 당시 나는 드라큘라나 늑대인간 등 유럽의 괴물들과 같이 노는 덩치 큰 괴물로 알고 있었는데 그 이미지는 오락실과 만화 등을 통해 본 대로 초록색 피부에 머리통에는 긴 나사가 관통해 있으며 기럭지가 짧은 누더기 양복이나 멜빵바지 같은 걸 입은 '헐크' 비슷한 거였다. 이런 비슷한 이미지는 1931년 미국 헐리우드 영화 [프랑켄슈타인]이 원조라고 한다.

이 '시체접합부활 활극'의 원작자는 19세기 영국의 여성 작가 메리 셸리(Mary Shelley : 1797~1851)다.
영국 3대 낭만주의 시인 퍼시 셸리의 두번째 아내로서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을 하기 위해 제네바로 도피행각을 벌이는 동안 친구들과 무서운 이야기를 주고받던 중 영감을 얻어 메리 셸리가 19세가 되던 1818년에 쓴 소설이라고 한다. 세간에는 공상과학 SF 소설의 시조새 정도로 알려져 있다.

18세기 이후 영국 소설은 대부분 주인공의 이름이 바로 제목이었다. 찰스 디킨스의 [올리버 트위스트] 같은 소설이 대표적이다. 
'프랑켄슈타인' 역시 주인공 이름이다. 이 소설의 원 제목은 [프랑켄슈타인, 혹은 현대판 프로메테우스(Frankenstein, or the modern Prometheus)]인데, '프랑켄슈타인'은 피조물인 괴물의 이름이 아니라 창조자, 즉 괴물을 만든 사람의 이름이다.

주인공의 이름은 '빅터 프랑켄슈타인', 제네바 고위직 정치관료의 아들이다. 귀족 가문의 자제인 그는 19세기 초 당대의 과학에 관심이 많았다. 아마도 화학 같은 첨단 과학의 태동기로서 당시의 '과학'은 '자연철학'에서 갓 분류되어 나오던 시기 아니었을까 싶다. 어린 시절 우연히 중세 연금술사들의 책을 접하고 이에 심취했던 주인공 빅터는 과학공부를 위해 다른 지역에 가서도 이 연금술사들을 흠모했는데 훗날 비극의 주인공이 된 후 반추하길 부친을 포함한 많은 선생들이 이 중세의 연금술을 '쓰레기'니까 보지 말라는 말 대신 화학과 같은 '현대과학'에 의해 타파된 오래전 '자연철학'임을 상냥하게 지적했더라면 본인은 그런 괴물을 만들지 않았을 거라 변명을 하고 있다.


"게다가 나는 현대의 '자연철학'을 경멸했다. 예전의 학자들이 불멸과 힘을 쫓던 시대와는 너무 많이 달랐다. 당시 학자들의 시각은 현실적으로 헛되기는 했지만, 적어도 원대했다. 하지만 지금은 판도가 확 바뀌어 버린 것이다."
- [프랑켄슈타인], <1-2>, 메리 셸리, 1818.

이게 중세 연금술 '자연철학'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빅터의 주된 생각이었다. 과학자로서 재능은 있어 현대 과학의 성과를 누구보다 먼저 습득했으나, '원대'하게 '불멸'을 쫓던 예전 과학의 꿈을 버릴 수가 없었던 거다.

결혼도 했고 아이도 낳았으나 아무리 19세기라도 19세에 불과한 어린 소녀가 쓴 소설이라 과학을 다루되 과학적이진 않다. 어떤 원리와 기술로 생명이 창조되었는지 단서 따윈 없다. 그냥 우수한 과학자인 빅터 프랑켄슈타인이 어느 11월 밤에 시체 조각들을 이어붙여 생명을 창조했고, 생각보다 추한 몰골의 괴물이 일어난 걸 보고는 대책없이 도망쳐 버린다. 과학이고 뭐고 선택의 기준이 바로 '미(美)'였던 거다. 빅터 프랑켄슈타인이 추구한 '자연철학'의 본질이 아마도 '미학(美學)'이었나 싶어 나도 모르게 책을 덮고 이중톈의 책  [미학강의(講美學)]를 주문하고 말았다.


"바로 그때 꺼져 가는 희미한 불빛 아래에서 내 창조물이 그 누런 눈을 뜨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숨을 거칠게 쉬더니 사지는 경련을 일으키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근육과 혈관들이 누런 피부 위로 훤히 내비쳤다. 새까만 머리카락은 풍성하고 윤기가 흘렀으며 이빨은 진주처럼 새하얀 빛이었다. 그러나 그런 화려한 치장은 오히려 허연 눈동자와 창백한 흰자위, 쭈글쭈글한 얼굴, 일자로 쭉 찢어진 시커먼 입술과 대조를 이루어 더욱 끔찍할 뿐이었다."
- [프랑켄슈타인], <1-4>, 메리 셸리, 1818.

세부적이지는 않아 또렷하세 이미지화 될 수는 없지만 원작에서 그려진 괴물의 형상은 동양인의 특징인 누런 피부에 검은 머리, 부분부분 아주 좋은 시체의 재료들을 골라서 모았다지만 합쳐보니 결국 무섭고 일그러진 얼굴에 불균형하게 긴 팔과 덩치 등으로 묘사된다. 더욱 놀라운 건 이 피조물이 도바리 치는 창조자 빅터를 쫓아 초인적인 신체능력으로 산과 바다를 넘고 건너며 전 유럽을 헤집고, 믿을 수 없는 지능으로 단 몇 달만에 인간의 언어와 글을 익혀 플루타르코스의 [영웅전]이나 존 밀턴의 [실낙원] 등을 독파하며 삶과 죽음, 인생을 자신의 창조주 앞에서 상당히 유창하게 논하게 된다는 거다. 
빅터는 여친 괴물을 하나 더 만들어주면 그녀와 함께 남미의 미개척지로 가서 아예 속세를 떠나겠다는 자신의 피조물의 말에 설득되어 그의 여친을 새로 만들기 위해 제네바에서 영국까지 건너가기도 하지만, 한참 만들던 중 이내 정신차리고는 작업을 중단하면서 괴물의 분노를 사게 되고 그 결과 영국행에 동행한 절친을 잃기도 한다.

창조주 빅터가 어디에 있건 그의 가족과 친구, 연인을 차례로 죽이며 그의 앞에 나타나는 괴물에게 빅터는 불타는 증오와 복수심으로 저주를 퍼붓고 죽기살기 결판을 짓기 위해 도망치는 괴물을 되쫓길 반복하지만, 사실 알고 보면 이 초인적인 괴물이 그런 빅터를 쫓는 형국은 변함이 없다. 
프로메테우스가 인류를 창조하고 불을 주었지만 이 불은 유용하면서 위험한 것처럼, '현대판 프로메테우스'인 '빅터 프랑켄슈타인'이 창조한 이 생명체는 초인적인 능력을 지녔음에도 너무도 몰골이 추해서 인간세상으로부터 배척당하면서 그 잘난 초인성을 썩히고 있는 것은 물론 오히려 살인이라는 악행으로 몰린다.

괴물이 원래 악마였는가, 아니면 배척과 고립, 그리고 못생겨서 미움받았기에 악당이 되었는가 되짚어보면, 원래 선한 생명이 왕따를 당해서 악당이 된 게 맞다. 
과학이고 뭐고 원초적 기준은 역시 '외모'인 슬픈 현실이다.

소설은 자신의 피조물에게 복수를 하지 못한 채, 실은 그 괴물의 손아귀에서 놀아나다가 죽음을 맞는 빅터 프랑켄슈타인의 비극으로 끝난다. 그의 주검 앞에 나타난 괴물은 이제 자기의 할 일은 다 했으니 세상의 북쪽으로 가서 셀프 화형으로 자살을 하겠다고 선언하고는 사라진다.
창조주나 피조물이나 서로 거울 같이 살던 두 주인공 모두의 파멸이 소설의 결말이다.


오래 전 '시체접합괴물'이라도 예쁘면 용서하던 나는, 공상과학소설의 '고전'이라는 메리 셸리의 소설 [프랑켄슈타인]을 이제야 읽고는 무엇을 다시 잔상으로 남겼던가.

어떤 이는 인간세상은 물론 창조주로부터도 배척당한 괴물의 모습에서 소외된 '여성성'을 보기도 하고(같은책, <작품 해설>), 세간에는 '과학' 발전에 대한 맹신은 비극을 낳을 수도 있다는 평도 많다지만, 고전을 읽은 독자로서 내 생각은 인간의 '확신'에 대한 경고였다.

당시 최신 과학에 정통했지만 '원대한 불멸의 힘'을 바라던 '자연철학자' 빅터 프랑켄슈타인의 '확신', 즉 완벽한 신인류를 창조할 수 있다는 망상적인 그 '확신'이 괴물을 창조했고, 신체적으로나 지능적으로 초인성을 '확신'하게 된 괴물은 본인을 저버린 창조주를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파멸로 몰아 너도 죽고 나도 죽는 비극을 낳고 말았다.

그래서,
'과학'이고 뭐고, 
'미학(美學)'이고 뭐고,
'확신'은 뜻하지 않게 망상 또는 비극이 될 수도 있다는 경고를,
고전소설 [프랑켄슈타인]을 통해 읽는다.

***

- [프랑켄슈타인, 혹은 현대판 프로메테우스](1818), Mary Shelley, 구자언 옮김, <더스토리>,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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