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판본 프랑켄슈타인 - 1886년 오리지널 초판본 표지디자인 더스토리 초판본 시리즈
메리 셸리 지음, 구자언 옮김 / 더스토리 / 2018년 7월
평점 :
품절


인간의 '확신'에 대한 경고
- [프랑켄슈타인], 메리 셸리, 1818.


고등학교 시절에는 토요일 방과 후 친구들 중 빈 집에 떼거지로 몰려가 천원 짜리를 모아서 라면을 사다 끓여먹고 비디오 대여점에서 영화를 빌려봤다. 우리 집은 반지하에다가 어머니가 늘 안방에서 악세사리 같은 걸 만드는 등 부업을 해서 집이 비어 있지도 않았거니와 결정적으로 비디오 플레이어가 없어서 친구들이 몰려올 일은 없었다. 당시 라면은 인당 두 세 개 기준에 비디오는 대놓고 성인물을 빌릴 만한 친구가 없어 남녀 애정행각이 잠시라도 꼭 나오던 '13일의 금요일' 류의 슬래셔 무비를 주로 시청했다.

제목도 기억 안 나고 주제는 더 기억 안 나지만 여배우가 예뻤던 어느 미국 공포영화는 비행청소년 본분에 충실하다가 죽은 여친을 살리기 위해 여기저기 시체들의 쓸만한 부분을 이어 붙여 되살린다는 내용이었는데, 다시 살아난 여친은 정신머리도 없고 자력행동이 불가했음에도 남친이 헌신적으로 애정애정하며 데리고 다니다가 결국 다시 골로 보낼 수 밖에 없던 슬픈 결말은 어렴풋이 기억난다. 

역시 예쁜 여자는 누더기로 부활해도 여전히 예뻐서 비디오가 다 돌아간 후에도 나의 사춘기적 감성에 오래 각인되었다.


"자연철학은 내 운명을 지배했다."
- [프랑켄슈타인], <1-1>, 메리 셸리, 1818.

시체들을 이어 붙여 생명을 (다시) 만든다는 발상은 '프랑켄슈타인'이었다. '90년대 초 당시 나는 드라큘라나 늑대인간 등 유럽의 괴물들과 같이 노는 덩치 큰 괴물로 알고 있었는데 그 이미지는 오락실과 만화 등을 통해 본 대로 초록색 피부에 머리통에는 긴 나사가 관통해 있으며 기럭지가 짧은 누더기 양복이나 멜빵바지 같은 걸 입은 '헐크' 비슷한 거였다. 이런 비슷한 이미지는 1931년 미국 헐리우드 영화 [프랑켄슈타인]이 원조라고 한다.

이 '시체접합부활 활극'의 원작자는 19세기 영국의 여성 작가 메리 셸리(Mary Shelley : 1797~1851)다.
영국 3대 낭만주의 시인 퍼시 셸리의 두번째 아내로서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을 하기 위해 제네바로 도피행각을 벌이는 동안 친구들과 무서운 이야기를 주고받던 중 영감을 얻어 메리 셸리가 19세가 되던 1818년에 쓴 소설이라고 한다. 세간에는 공상과학 SF 소설의 시조새 정도로 알려져 있다.

18세기 이후 영국 소설은 대부분 주인공의 이름이 바로 제목이었다. 찰스 디킨스의 [올리버 트위스트] 같은 소설이 대표적이다. 
'프랑켄슈타인' 역시 주인공 이름이다. 이 소설의 원 제목은 [프랑켄슈타인, 혹은 현대판 프로메테우스(Frankenstein, or the modern Prometheus)]인데, '프랑켄슈타인'은 피조물인 괴물의 이름이 아니라 창조자, 즉 괴물을 만든 사람의 이름이다.

주인공의 이름은 '빅터 프랑켄슈타인', 제네바 고위직 정치관료의 아들이다. 귀족 가문의 자제인 그는 19세기 초 당대의 과학에 관심이 많았다. 아마도 화학 같은 첨단 과학의 태동기로서 당시의 '과학'은 '자연철학'에서 갓 분류되어 나오던 시기 아니었을까 싶다. 어린 시절 우연히 중세 연금술사들의 책을 접하고 이에 심취했던 주인공 빅터는 과학공부를 위해 다른 지역에 가서도 이 연금술사들을 흠모했는데 훗날 비극의 주인공이 된 후 반추하길 부친을 포함한 많은 선생들이 이 중세의 연금술을 '쓰레기'니까 보지 말라는 말 대신 화학과 같은 '현대과학'에 의해 타파된 오래전 '자연철학'임을 상냥하게 지적했더라면 본인은 그런 괴물을 만들지 않았을 거라 변명을 하고 있다.


"게다가 나는 현대의 '자연철학'을 경멸했다. 예전의 학자들이 불멸과 힘을 쫓던 시대와는 너무 많이 달랐다. 당시 학자들의 시각은 현실적으로 헛되기는 했지만, 적어도 원대했다. 하지만 지금은 판도가 확 바뀌어 버린 것이다."
- [프랑켄슈타인], <1-2>, 메리 셸리, 1818.

이게 중세 연금술 '자연철학'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빅터의 주된 생각이었다. 과학자로서 재능은 있어 현대 과학의 성과를 누구보다 먼저 습득했으나, '원대'하게 '불멸'을 쫓던 예전 과학의 꿈을 버릴 수가 없었던 거다.

결혼도 했고 아이도 낳았으나 아무리 19세기라도 19세에 불과한 어린 소녀가 쓴 소설이라 과학을 다루되 과학적이진 않다. 어떤 원리와 기술로 생명이 창조되었는지 단서 따윈 없다. 그냥 우수한 과학자인 빅터 프랑켄슈타인이 어느 11월 밤에 시체 조각들을 이어붙여 생명을 창조했고, 생각보다 추한 몰골의 괴물이 일어난 걸 보고는 대책없이 도망쳐 버린다. 과학이고 뭐고 선택의 기준이 바로 '미(美)'였던 거다. 빅터 프랑켄슈타인이 추구한 '자연철학'의 본질이 아마도 '미학(美學)'이었나 싶어 나도 모르게 책을 덮고 이중톈의 책  [미학강의(講美學)]를 주문하고 말았다.


"바로 그때 꺼져 가는 희미한 불빛 아래에서 내 창조물이 그 누런 눈을 뜨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숨을 거칠게 쉬더니 사지는 경련을 일으키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근육과 혈관들이 누런 피부 위로 훤히 내비쳤다. 새까만 머리카락은 풍성하고 윤기가 흘렀으며 이빨은 진주처럼 새하얀 빛이었다. 그러나 그런 화려한 치장은 오히려 허연 눈동자와 창백한 흰자위, 쭈글쭈글한 얼굴, 일자로 쭉 찢어진 시커먼 입술과 대조를 이루어 더욱 끔찍할 뿐이었다."
- [프랑켄슈타인], <1-4>, 메리 셸리, 1818.

세부적이지는 않아 또렷하세 이미지화 될 수는 없지만 원작에서 그려진 괴물의 형상은 동양인의 특징인 누런 피부에 검은 머리, 부분부분 아주 좋은 시체의 재료들을 골라서 모았다지만 합쳐보니 결국 무섭고 일그러진 얼굴에 불균형하게 긴 팔과 덩치 등으로 묘사된다. 더욱 놀라운 건 이 피조물이 도바리 치는 창조자 빅터를 쫓아 초인적인 신체능력으로 산과 바다를 넘고 건너며 전 유럽을 헤집고, 믿을 수 없는 지능으로 단 몇 달만에 인간의 언어와 글을 익혀 플루타르코스의 [영웅전]이나 존 밀턴의 [실낙원] 등을 독파하며 삶과 죽음, 인생을 자신의 창조주 앞에서 상당히 유창하게 논하게 된다는 거다. 
빅터는 여친 괴물을 하나 더 만들어주면 그녀와 함께 남미의 미개척지로 가서 아예 속세를 떠나겠다는 자신의 피조물의 말에 설득되어 그의 여친을 새로 만들기 위해 제네바에서 영국까지 건너가기도 하지만, 한참 만들던 중 이내 정신차리고는 작업을 중단하면서 괴물의 분노를 사게 되고 그 결과 영국행에 동행한 절친을 잃기도 한다.

창조주 빅터가 어디에 있건 그의 가족과 친구, 연인을 차례로 죽이며 그의 앞에 나타나는 괴물에게 빅터는 불타는 증오와 복수심으로 저주를 퍼붓고 죽기살기 결판을 짓기 위해 도망치는 괴물을 되쫓길 반복하지만, 사실 알고 보면 이 초인적인 괴물이 그런 빅터를 쫓는 형국은 변함이 없다. 
프로메테우스가 인류를 창조하고 불을 주었지만 이 불은 유용하면서 위험한 것처럼, '현대판 프로메테우스'인 '빅터 프랑켄슈타인'이 창조한 이 생명체는 초인적인 능력을 지녔음에도 너무도 몰골이 추해서 인간세상으로부터 배척당하면서 그 잘난 초인성을 썩히고 있는 것은 물론 오히려 살인이라는 악행으로 몰린다.

괴물이 원래 악마였는가, 아니면 배척과 고립, 그리고 못생겨서 미움받았기에 악당이 되었는가 되짚어보면, 원래 선한 생명이 왕따를 당해서 악당이 된 게 맞다. 
과학이고 뭐고 원초적 기준은 역시 '외모'인 슬픈 현실이다.

소설은 자신의 피조물에게 복수를 하지 못한 채, 실은 그 괴물의 손아귀에서 놀아나다가 죽음을 맞는 빅터 프랑켄슈타인의 비극으로 끝난다. 그의 주검 앞에 나타난 괴물은 이제 자기의 할 일은 다 했으니 세상의 북쪽으로 가서 셀프 화형으로 자살을 하겠다고 선언하고는 사라진다.
창조주나 피조물이나 서로 거울 같이 살던 두 주인공 모두의 파멸이 소설의 결말이다.


오래 전 '시체접합괴물'이라도 예쁘면 용서하던 나는, 공상과학소설의 '고전'이라는 메리 셸리의 소설 [프랑켄슈타인]을 이제야 읽고는 무엇을 다시 잔상으로 남겼던가.

어떤 이는 인간세상은 물론 창조주로부터도 배척당한 괴물의 모습에서 소외된 '여성성'을 보기도 하고(같은책, <작품 해설>), 세간에는 '과학' 발전에 대한 맹신은 비극을 낳을 수도 있다는 평도 많다지만, 고전을 읽은 독자로서 내 생각은 인간의 '확신'에 대한 경고였다.

당시 최신 과학에 정통했지만 '원대한 불멸의 힘'을 바라던 '자연철학자' 빅터 프랑켄슈타인의 '확신', 즉 완벽한 신인류를 창조할 수 있다는 망상적인 그 '확신'이 괴물을 창조했고, 신체적으로나 지능적으로 초인성을 '확신'하게 된 괴물은 본인을 저버린 창조주를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파멸로 몰아 너도 죽고 나도 죽는 비극을 낳고 말았다.

그래서,
'과학'이고 뭐고, 
'미학(美學)'이고 뭐고,
'확신'은 뜻하지 않게 망상 또는 비극이 될 수도 있다는 경고를,
고전소설 [프랑켄슈타인]을 통해 읽는다.

***

- [프랑켄슈타인, 혹은 현대판 프로메테우스](1818), Mary Shelley, 구자언 옮김, <더스토리>, 201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