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버4/절단 ㅣ 동서 미스터리 북스 45
조이스 포터 지음, 황종호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1월
평점 :
일시품절


'개그'인가, '추리'인가
- [도버4/절단], 조이스 포터, 1967.


영국 추리소설가 크리스티아나 브랜드(Chrstianna Brand : 1907~1988)의 [제제벨의 죽음](1948)을 읽고 나니, 
추리소설에, 그것도 복잡한 '밀실트릭'을 다루고자 하는 이른바 '본격파' 추리소설에 '개그'를 저리 덧칠할 수도 있구나 싶었다. 
아마도 그래서 그녀가 '본격파'를 넘어선 '신(新;post-) 본격파'로 분류되는가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다면 이왕 <동서미스터리북스> 전집 중 '여성' 추리소설가들의 작품으로 골라두었던 책들 중 '개그'로 점철된 걸 읽어보겠다는 생각에, [제제벨의 죽음]을 반납하자마자 바로 다른 작품을 대출해 온 거다.

이번 소설은 조이스 포터(Joyce Porter : 1924~1990)의 [도버4/절단](1967)이다.


"도버라는 사나이는 공짜 담배라면 권하는 사람이 누구이건, 이를테면 뚜렷한 범인이라도 거절하는 일이 없었다. 그러므로 그는 손을 내밀어 빼앗듯이 담배함을 받았다. 그가 담배에 불을 붙이느라고 이야기가 중단되자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찰스)매글레거(경사)는 화제를 바꾸어 좀더 실제적인 방향으로 돌려버렸다. 도버(경감)은 쓸데없는 이야기를 하며 여생을 이 거리에서 보낼 작정인지 몰라도 매글레거는 그럴 생각이 조금도 없었던 것이다."
- [도버4/절단], 조이스 포터, 19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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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이스 포터 역시 20세기 영국의 '여성' 추리소설가로서, 1960년대 '도버(Dover)' 경감 시리즈(1964~1970)로 유명하다고 한다.
그 중 '도버' 4편인 [도버4/절단(Dover and the Unkindest Cut of All)](1967)이 가장 유명한 작품이라 우리말로 제일 먼저 번역되어 나왔단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도버' 경감은 '음험'과 '비열', 그리고 '무능'의 현신이자, 그럼에도 등장인물(특히 부하 경사 찰스 매글레거)이 아닌 독자로서는 미워할 수 없는 인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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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이 그 모양이다 보니, 조이스 포터의 '추리소설(그렇게 분류해도 된다면)' 또한 주인공을 따라 시종일관 '희극'적 상황의 연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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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도버'라는 인간은 아마도 5~60대 노년의 런던 경시청 주임경감으로서, 도대체 어떻게 형사가 되었을지, 그것도 대도시의 주임경감으로 승진할 수 있었을까 의문스럽게도 엉망진창인 위인이다.
뚱뚱보에 성질도 더러워서 마누라든, 부하든, 자신에게 담배나 술, 먹을 것과 앉을 의자 따위를 제공하지 않는 한 그 사람에게 욕을 하고 끈덕지게 억지부리기 일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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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설령 잔혹한 살인마 또는 진범이라 해도 도버에게 위와 같은 약간의 아부와 호의만 베푼다면,
도버는 관대하게 넘어갈 준비가 언제나 되어 있다.

이 지점에서 급 떠오른 게 있었다.
바로 21세기 초반 '오인용'이라는 인터넷 만화가 그룹이 발표했던 [중년탐정 김정일](2006~2007)이었다. 
일본 애니메이션 [소년탐정 김전일]을 분단된 한반도식으로 패러디한 만화로, 도버 같은 엉터리 탐정이 뻔히 보이는 진범을 두고 억울한 인물에게 어거지로 죄를 뒤집어 씌우지만 결말에는 항상 누가 봐도 진범이 자연스레 밝혀지게 되고 중년탐정 김정일은 쓴 담배를 물고는 스리슬쩍 내빼면서 쓸쓸하게 끝나는 시리즈다.

그래도 '중년탐정 김정일'은 현실성 하나는 있다. 
그 엉망진창 '탐정'은 그냥 혼자 탐정일 뿐 형사는 아니다. 살인사건 현장에 누가 부르지도 않았는데 어디선가 나타나서 관련자들에게 욕하고 핍박과 행패를 부리며 사건해결을 자처하는 자칭 '탐정'이다.

한편 조이스 포터의 '도버'는 엄연한 형사다. 
사건현장에서는 휴가라며 발을 빼려 하고 어려운 일은 어지간하면 안 하려고 한다. 과연 형사가 그럴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놀라운 캐릭터다. 그가 뭔가 사건 해결을 하려고 할 때는 본의 아니게 상황에 따라 떠밀려졌거나 마구 부려먹는 부하경사 매글레거가 뭔가 단서를 잡은 것을 보고는 그 성과를 가로채려 할 때다.


"이 월라튼(지역)에 한 마리 밖에 없는 스키라는 경찰견은 살찌고 횡포한 점에서는 도버와 비슷했지만 심술궂은 점에서는 그보다 더했다. 전에 혈기왕성할 때도 일을 하는데 쓰기보다는 장식용 역할 밖에 한 일이 없으므로 은퇴가 가까워진 현재는 조련사가 시킬 수 있는 일이라면 기껏해야 따뜻한 개장 안에 들어가기 전에 사진가들을 위해 포즈를 취하는 일 정도였다. 그러므로 이 개가 하는 일은 모두 사람이 떠맡아 하는 형편이었다.
도버는 이 개를 차에서 쫓아내려고 했으나 개도 호락호락 움직이지 않았다... 고약한 냄새가 나는 스키의 젖은 발톱에서 도버를 때어내는 데 자그만치 7분 반이나 걸렸다. 조련사는 알고 있는 개의 말을 총동원하여 열심히 명령을 내렸으나 허사였다. 마치 그런 말은 모르는 양 스키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 [도버4/절단], 조이스 포터, 19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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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시골 월라튼에 휴가를 갔다가 지역 순경 코클란의 바다 투신장면을 우연히 목격하면서 사건에 휘말리게 되고, 얼마전 발생한 깡패 해밀튼의 사지절단 살인사건에까지 엮여지게 되는데, 도버는 최대한 피해다니고 게으름을 피우며 런던에서 파견된 부하경사인 찰스 매글레거만 부려먹다가 사건 조사에 착수한다. 
지역의 경찰서와 부녀회 등 관련자들과의 모든 상황은 단 한시도 진지하지 않다. 소설을 읽는 내내 과연 이러다가 사건의 진상을 밝혀낼 수 있을까 의문에 휩싸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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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으름쟁이'에다가 심술쟁이 도버 경감은 월라튼 지역의 유일한 경찰견 셰퍼드 스키와 오버랩되기도 한다. 아니, 그 성질 더러운 도버는 아예 그 개만도 못한 인물로 그려진다.


"간단한 이별이었다. (월라튼 경찰)서장은 거만하게 버티고 서서 거친 콧김을 내뿜었을 뿐이다. (경찰견)셰퍼드인 스키만은 작별인사를 해야겠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도버가 나가려고 하자 느릿느릿 다가와 앞발 한쪽을 들어 도버의 손 위에 올려놓았다. 그것은 뜻밖에도 게으름쟁이가 게으름쟁이에게 보내는 동정의 표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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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뒤 한 달쯤 있다가 서장이 갑자기 모습을 감추었다. 1주일 가량 행방을 알 수 없었다. 과로로 인해 기억 상실증에 걸렸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그러나 얼마 뒤에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다시 일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어딘가 모르게 전과 모습이 달라져 있었다."
- [도버4/절단], 조이스 포터, 19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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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사건 해결을 위해 움직이기 시작한 도버의 '추리'는 그의 '치밀한' 계획과 주도 하에 전개되는 월라튼 경찰 대부대와 지역 부녀회와의 막판 활극 장면에 이르면 얼추 그럴듯 해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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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조이스 포터의 '개그' 추리소설에 그런 '대반전'은 없었다. 
도버 경감이 일련의 사건들을 음란부덕한 남성들에 대한 지역 '부녀회'의 거세소동으로 몰아가며 대작전을 통해 그녀들의 비밀회동을 덮친 장면은, 
결국 음란 포르노를 몰래 보던 부녀회원들의 현장이 걸리면서 경찰과 부녀회의 우스꽝스러운 충돌로 비화되고,
여자로부터 '안전한' 남자화장실로 대피한 경찰서장과 도버 경감, 그리고 일 안하는 경찰견 스키가 서로 책임을 묻는 어이없는 상황으로 전개되다가,
궁극에는 도버와 매글레거가 쫓겨나는 것으로 이 '개그' 추리소설은 끝이 난다.

참으로 어처구니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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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지절단 살인과 자살사건은 하나도 해결된 게 없다.
오로지 우스꽝스런 도버 경감과 함께 '개그'만 난무하다가 허무하게 이야기가 마무리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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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가 마지막 단락을 읽고는,
책을 덮고 나서 생각한다.

월라튼 경찰서의 휴버트 서장이 도버 경감 일행을 추방한 후, 일전의 피해자들과 비슷하게 일주일간 실종되었다가 좀 이상해진 상태로 되돌아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하던 일을 계속하더라,는 마지막 문단에서 어쩌면 도버 경감의 '중년탐정 김정일'과도 같이 어설펐던 그 '추리'가 결국 맞았을지도 모른다는 이상한 여운이 남은 거다.

월라튼의 사지절단과 투신사건은 결국 지역 부녀회가 저지른 거세사건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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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이 어처구니 없는 이야기는,
'개그'인가,
'추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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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버4/절단(Dover and the Unkindest Cut of All)](1967), Joyce Porter, 황종호 옮김, <동서문화사>, 1977~2003.
- [중년탐정 김정일], 오인용, 2006~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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