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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화로 읽는 영국 역사 ㅣ 역사가 흐르는 미술관 3
나카노 교코 지음, 조사연 옮김 / 한경arte / 2023년 3월
평점 :
'여성' 추리소설 작가의 신비와 공포 - 3
- [진리는 시간의 딸], 조세핀 테이, 1951.
올해 3월에 마을 도서관에서 <동서문화사>의 오래된 시리즈인 '동서미스터리북스' 서가를 발견하고는 약 8개월 동안 서성이고도 그래도 아쉬워 더 머물기 위해 요즘 생각해낸 주제어가 '여성' 추리소설 작가였다.
진정으로 '여성' 작가가 '여성' 주인공을 앞세워 그 세부적이고 구체적인 심리묘사로서 특유의 '신비'와 '공포'를 남긴 헬런 매클로이와 까뜨린느 아를레이의 작품들을 먼저 골라서 읽다가,
내 장편 추리소설 읽기의 원천이었던 '여성' 작가 애거서 크리스티를 새삼 읽어보기도 했다.
결국, 애거서 크리스티는 '여성' 주인공 '미스 마플'과 함께 읽었음에도 내게는 '여성' 작가보다는 그냥 위대한 추리소설 작가로 다시금 다가왔다.
그렇기에 내친 김에 '남성' 주인공 탐정 에르퀼 포와로가 등장하는 '마지막' 소설까지 가보기 위해 [코끼리는 기억한다](1972)를 읽고는, 어릴적 읽던 <해문출판사> 판으로 포와로의 진정 '마지막' 작품인 [커튼](1975)까지 주문하고 기다리는 동안 그 사이를 참지 못하고 마을도서관으로 가서 '여성' 추리소설 작가의 작품 한 권을 또 대출해 왔다.
얼마전 보아 두었던 영국 작가 조세핀 테이(Josephine Tey : 1896~1952)의 [진리는 시간의 딸(The Daughter of Time)](1951)이다.
"(1066년 정복왕 윌리엄이 연) 노르만 왕조는 백 년 가까이 계속되다가 몰락하고, 마침내 잉글랜드인에 의한 플랜태저넷 왕조가 12세기 중반부터 250년 정도 이어진다. 플랜태저넷 왕조 말기에 영불 '백년 전쟁'이 발발하는데, 잔 다르크의 활약으로 기세가 오른 프랑스에 패한 잉글랜드는 칼레만 남기고 과거에 차지한 대륙의 영토를 모조리 빼앗기고 만다.
왕관은 플랜태저넷의 분가 '랭커스터' 가문이 차지했지만, 패전의 어수선함 속에서 또하나의 분가인 '요크' 가문이 대두하고, 결국 집안 싸움으로 번져 1455년부터 30년에 걸친 격렬한 내분이 시작된다. 이것이 그 유명한 '장미 전쟁'이다. 이름이 로맨틱한 이유는 양가의 문양과 관련이 있다. '랭커스터'가가 붉은 장미, '요크'가가 흰 장미 문장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 [명화로 읽는 영국 역사], <현재진행형 역사, 영국 왕가>, 나카노 교코, 2017.
런던 경시청의 앨런 글랜트 경감은 사고로 다쳐서 병원 침대에 누웠으나, 직업적 본성을 쉬지 못하고 역사 속 '진범'을 추적해보기 시작한다.
움직일 수 없어 머리로만 추리하는 '안락의자 탐정', 아니 '침대 탐정'의 등장이다.
본업이 형사이다 보니 인물의 얼굴을 보고는 관상 보듯 추리하는 습성이 있어, 애인인 연극배우 마타 핼러드가 역사 속 인물들의 초상화를 병실의 그에게 가져다 준다.
15세기 말 영국 왕가의 집안 싸움인 '장미 전쟁(1455~1485)' 속 희대의 악마로 남은 '리처드 3세'의 초상화를 본 글랜트 경감의 주변사람들은 서로 다른 평가들을 내리는데, 각자의 선입견 또는 직관에 입각한 다양하고도 상이한 의견들로 나뉜다.
그만큼 '리처드 3세'의 역사적 평가는 다면적이다.
"글랜트는 다시 (리처드 3세) 초상을 돌아다보았다.
'마타는 이 얼굴을 가리켜 위인 로렌초를 조금 닮았다고 했소. 그녀의 친구 제임스는 성자의 얼굴이라 했고, 내 외과의사는 불구자의 얼굴이라고 말했으며, 윌리엄즈 형사는 훌륭한 판사 같다고 했소. 그러나 나는 수간호원의 말이 가장 핵심에 가까운 곳을 찔렀다고 생각하오.'
'그녀는 뭐라고 했습니까?'
'참으로 끔찍한 괴로움에 찬 얼굴이라는 것이오.'"
- [진리는 시간의 딸], 조세핀 테이, 1951.
조세핀 테이의 소설 [진리는 시간의 딸(The Daughter of Time)](1951)의 마지막 장면에서 글랜트 경감은 영국 역사 속에서 실제로는 무척이나 성실하고 신실했던 '리처드 3세'를 왕좌를 찬탈하기 위해 자신의 친형인 에드워드 4세의 아들이자 정당한 왕위 계승자인 조카들을 죽인 '희대의 악마'로 만든 이후 권력자 '헨리 7세'의 정치적 공작을 새삼 밝혀낸 후, '리처드 3세' 초상의 다면성을 다시 강조하고 있다.
결국 '리처드 3세' 초상의 특징은 역사 속 억울함으로 인해 '끔찍한 괴로움에 찬 얼굴'인 것이다.
30년 '장미 전쟁'에서 '흰 장미' 문양의 요크 가문 마지막 왕 '리처드 3세'를 조카들을 런던탑에 가둬 죽인 '악마'로 만들어낸 정치적 공작으로 권좌를 차지한 '붉은 장미' 랭커스터 계열의 '헨리 7세'가 사실은 요크 가문 왕자들을 죽인 '진범'임을 믿는 사람들에게 '리처드 3세'는 역사의 오명이라는 "끔찍한 괴로움에 찬" 인물이 된다.
랭커스터(붉은 장미)와 요크(흰 장미) 가문 간의 '장미 전쟁'은 '플랜태저넷' 가문의 일파들 사이의 집안 싸움이었다. 그러나 요크 가문 '리처드 3세'의 보즈워스 전투에서의 패전과 전사 후 왕이 된 '헨리 7세'는 랭커스터 계열이기는 했지만 '왕의 남동생 아들의 사생아의 증손'으로 방계 서출이었으니 아예 새로운 가문인 '튜더' 왕조를 연다.
이 '튜더' 왕가가 이후 영국사에서 절대 전제정치 권력자 '헨리 8세'와 '블러드 메리', '엘리자베스 1세' 여왕 등으로 이어진 바로 그 가문이다.
'침대 탐정' 앨런 글랜트는 오귀스트 뒤팽'(E.A. 포)이나 '파일로 번즈'(S.S. 반 다인), '엘러리 퀸'(엘러리 퀸)으로 대표되는 '연역소거법'의 '안락의자 탐정'들의 후예답게 오로지 역사책과 두뇌 추리만으로 결론에 도달한 것 같지만, 한편으로 '물적 증거'를 필수로 여기는 형사답게 부단한 '과학수사'를 수행한다. 본인이 거동할 수 없으니 애인 마타 핼러드가 소개해 준 미국인 역사 연구가 브렌트 캘러다인을 '조사원'으로 삼아 당대의 서신과 기록 등을 면밀히 조사하도록 한다.
'안락의자 탐정'답게 침대에 누워 '연역적' 추리로 시작하면서도 형사다운 물적 '과학수사'를 통해 귀납적 추리를 연결하여 역사적 '진실'을 밝혀낸다.
"'... 어째서 리처드 3세에게 흥미를 갖게 되셨습니까?'
'몸이 다 나을 때까지는 어차피 직접 수사활동을 할 수 없으니까. 그때까지는 학문적인 조사를 하면 좋지 않겠느냐고 마타가 제안했지요. 그리고 내(앨런 글랜트 경감)가 사람의 얼굴에 대해 흥미를 갖고 있다는 것을 알고 그녀(마타)가 여러 가지 초상사진을 가져다 주었소. 여러 가지 미스터리의 주역 말이오. 이 리처드는 얼마쯤 우연히 그 사진들 속에 잘못 끼어 있었는데, 그것이 실은 가장 큰 수수께끼의 주인공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지요.'
'리처드 3세가 말입니까? 어떤 이유로?'
'사상 최대 최악의 범죄를 저지른 장본인이면서 위대한 재판관 같은 얼굴을 하고 있기 때문이오. 위대한 정치가의 얼굴을 말이오. 여러 가지 관점에서 볼 때 그는 정상적인 교양을 지닌 사람이며 생활도 훌륭했었소... 재능있는 고급장교이며 훌륭한 무인이었소.'"
- [진리는 시간의 딸], 조세핀 테이, 1951.
물론 요크 가문 마지막 왕 '리처드 3세'가 토머스 모어나 셰익스피어 같은 대문호들의 '악마적' 묘사와 달리, 사실은 튜더 가문의 창업자 '헨리 7세'의 정치적 공작으로 인한 희생양이었다는 평가는 오래 전부터 있어 왔다.
그럼에도 조세핀 테이의 [진리는 시간의 딸](1951)에서 앨런 글랜트 경감이 '침대 탐정'이 되어 새삼 밝혀낸 '진실'은 탐정과 같은 역할을 해내는 '역사학'의 묘미를 재조명해주고 있다.
비록 소설 속 글랜트 경감과 브렌트가 '역사의 승자'인 '헨리 7세'가 만들어낸 기존 역사 기록을 답습하면서 '역사의 패배자'였던 '리처드 3세'를 악마화하는 다수 역사학자들을 비웃고 있기는 해도,
'역사학'이란 본래 오래된 문헌과 유물이라는 '물적 증거'를 토대로 새로운 역사적 진실을 끊임없이 밝혀내는 일종의 '탐정' 역할과 다르지 않은 것이다.
역사가 항상 새롭게 밝혀져야 하는 이유다.
이제 '여성' 추리소설가의 작품 몇 권을 읽어보니 알겠다.
'여성' 추리작가 특유의 '신비'와 '공포'는 그만의 특성이 아닌, 내가 억지로 만들어낸 관념에 불과했다는 것을.
그나마 '여성' 작가를 새삼 생각하게 되면서,
내가 읽고 싶게 된, 또 읽어봐야 할,
작품의 폭은 더 넓어졌다.
이제, '여성' 작가의 다른 작품들은 마을도서관에서 다음에 다시 빌려보기로 하고,
애거서 크리스티 여사의 명탐정 에르퀄 포와로의 '마지막' 횔약을 마저 읽으러 간다.
포와로의 죽음으로 끝난다는 [커튼](1975)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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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진리는 시간의 딸(The Daughter of Time)](1951), Josephine Tey, 문용 옮김, <동서문화사>, 1977~2003.
2. [명화로 읽는 영국 역사](2017), 나카노 교코, 조사연 옮김, <한경arte>, 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