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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형법정 ㅣ 동서 미스터리 북스 19
존 딕슨 카 지음, 오정환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1월
평점 :
미스터리 소설은 언제나, '반전' - 2
- [화형법정], 존 딕슨 카, 1937.
거의 모든 소설이 지니는 '반전',
그 중 '미스터리' 소설의 주요 특성으로서의 극적 '대반전'을 찾아 '존 딕슨 카'를 다시금 읽어본다.
존 딕슨 카(John Dickson Carr : 196~1977)는 미국 출신으로 스물한살 프랑스 파리에 체류할 당시부터 작가의 꿈을 안고 보헤미안적 삶을 살다가 1930년에 미국 뉴욕으로 돌아와 미스터리 작가로 데뷔했다. 다시 유럽으로 건너간 그는 영국에서 활동하며 주로 유럽 무대를 배경으로 한 미스터리 소설을 쓴 작가다.
추리소설의 계보에서 보면 존 딕슨 카는 '밀실트릭'(밀실살인)을 주로 다룬 '본격파' 추리소설의 대가로서, '마법'과 '오컬트' 등의 '신비주의'를 주제로 한 기묘한 미스터리 소설로 유명하다. 1930년부터 1972년까지 그는 약 60~70여 편의 장편을 썼다는데, 정작 '본격파' 추리소설은 10편 정도에 불과하다지만 대중에게는 마술적 '밀실트릭'으로 대표되는 '본격파' 추리소설 작가로 자리매김되었다([화형법정], 해설 <초자연적 퍼즐 게임의 매력> 참고).
'마술'적 요소와 '이단', '심령현상' 또는 '초자연적' 소재 등을 통해 현실에 있을 법 하지 않은 불가능한 '밀실트릭'을 실험한 딕슨 카의 여러 작품들이 있다.
그는 [해골성](1931), [세 개의 관](1935) 등을 거쳐 1937년에는 [화형법정(The Burning Court)]으로 '밀실'과 '마술', 그리고 시공간을 넘어서는 '초자연적 현상'의 끝까지 밀고 간다.
그렇게, 나는 '본격파' 추리소설의 대가인 존 딕슨 카의 소설 [화형법정](1937)을 통해 미스터리 소설의 '대반전'을 기대했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실망이었다.
"프랑스에서는 같은 17세기 후반에 이르러 '마법'에 의한 살인이 극에 달했다... 루이 14세의 궁정 귀부인들은 '악마주의'를 예찬하여 특히 흑미사 때 태아를 희생으로 바치는 일이 성행했다. 이들의 비밀의식은 비밀방에서 거행되었다... 이 '악마주의' 예찬자들은... (추한) 노파들이 아니라, 침모에서 궁정의 귀부인에 이르기까지 뛰어난 미모의 여성들이었다. 그리고 그녀들의 남편과 아버지들이 살해되어 갔다.
이 '비밀결사'의 존재는 한 참회자의 말에 의해 파리 대사제의 귀에까지 전해졌다. 바스티유에서 가까운 병기고에 유명한 '화형법정'이 설치되었고, 피고들은 사지가 4대의 마차에 묶여 찢어지는 형벌이나 불에 타죽는 형벌을 받았다... '비밀결사'의 전모가 세계적으로 드러나게 된 것은 1676년 브랑빌리에 후작부인의 재판에서였고..."
- [화형법정], <제3부 제16장>, '그리모의 [마술의 역사] 인용문', 존 딕슨 카, 1937.
존 딕슨 카의 [화형법정](1937)은 마일즈 데스파드 노인의 독살 의혹을 중심으로 처음 시작부터 17세기 유럽의 독살범 여인들의 이야기와 20세기 초반 현재를 사는 출판사 편집인 에드워드 스티븐스의 아내 '마리'의 외모적 흡사성 및 의문의 교차점을 상정하면서 수백년을 넘나드는 환상적이고 역사적인 배경을 이중적으로 배치한다.
'마녀'들로 유추되던 '독살자' 여인들은 사실 추한 외모와 천한 신분의 할머니가 아닌 고귀하고 아름다운 귀부인들이었고, 이들은 일종의 '비밀결사' 조직의 형태로 영원히 죽지 않는 '불사의 인간'이 되어 과거부터 현재까지 살아남거나 혹은 후계자를 통해 '독살'(주로 '비소'를 사용한)의 '전통'을 이어간다는 내용이 이야기 내내 배경음악처럼 깔린다.
결혼전 이름이 '마리 도브리'였던 브랑빌리에 후작부인의 연쇄 독살사건과 그녀와 똑같이 닮은 외모와 이름을 가진, 에드워드의 스티븐스의 아내 '마리 스티븐스'를 교차시키며, 데스파드 노인이 결정적으로 독살당하던 날 그의 방에서 유령처럼 나타났다가 마술처럼 사라진 의문의 여인에 대한 증언을 통해 모든 정황이 '마리'를 범인으로 지목한다.
"'... 그 17세기 살인마와 20세기의 데스파드(데프레) 집안에 도대체 어떤 관계가 있는가? 옛날의 '데프레 집안'에 그녀에게 희생된 자가 있기라도 한 건가?'
'아니야, 아닐세, 그런 게 아니라, 더 훌륭한, 법적으로 당당한 관계라고 할 수 있네. 데프레 집안 사람이 그녀를 체포했으니까.'
'그녀를 붙잡았다고?'
'그렇네. 브랑빌리에 후작부인은, 경찰이 혈안이 되어 자기를 추적하고 있는 파리에서 달아나 리에주의 수도원에 숨었네... 그런데 프랑스 정부가 파견한 두뇌가 명석한 데프레는... 신부로 변장하여 조용히 수도원에 잠입한 뒤, 그녀를 만나 그 마음을 흔들고... 데프레가 휘파람을 불자 경찰관이 왔고... 그녀는 마차에 감금되어 기마경관들에게 호위를 받으며 파리로 압송되었네. 그녀는 1676년에 목이 잘린 뒤 시체는 화형되었네.'"
- [화형법정], <제2부 제8장>, 존 딕슨 카, 1937.
여기에 '데스파드' 가문과 17세기 '회형법정'으로 사라진 대표적 독살자 브랑빌리에 후작부인(결혼전 본명 '마리 도브리')의 오래된 원한관계를 밝히며, 소설은 마일즈 데스파드 독살사건에서 마리 스티븐스(결혼전 이름이 역시 '마리 고브리'로 추정)가 살인자임을 독자로 하여금 더욱 짐작케 하고 있다.
단, 추리는 불가하다.
'본격파' 추리소설의 대가이긴 하나,
존 딕슨 카는 엘러리 퀸처럼 독자들에게 친절하게 단서들을 알려주지 않는데,
다른 작품들보다 [화형법정]은 더더욱 독자에게 불친절한 편이다.
아내 루시가 독살범으로 몰릴 위기를 모면하겠다는 이유를 대며 몰래 납골당에 잠입해 부검을 하려던 피살자 마일즈 데스파드의 조카이자 상속자 중 하나인 마크 데스파드가 에드워드 스티븐스를 비롯한 친구들과 하인의 도움을 받아 함께 관을 열었을 때 사라진 시체는 '밀실트릭'의 요소가 적용된 사례다.
필라델피아 경찰청의 블레넌 경위가 등장하면서 '독살자 마리'에 대한 의혹은 헷갈리기도 하면서 짙어지기도 하는 혼란의 상황으로 전개되는데 마치 '본격파'와 대비되는 '현실파' 추리소설의 형사들처럼 전개되는 듯 하다가도, 의혹의 와중에 갑자기 사라졌던 '마리'(스티븐스)가 찾아가서 불러온 범죄연구가 고던 클로스가 등장하면서 소설 [화형법정]의 '반전'은 시작된다.
고던 클로스가 등장하는 <제4부 요약>의 '제18장'.
이때부터 마일즈 데스파드의 독살사건은 극적으로 빠르게 전개된다.
출판사 편집인 에드워드 스티븐스가 교정을 보기위해 소설 시작부터 가지고 다니던 '마리 고브리' 사진이 담긴 독살사건 원고의 저자 고던 클로스는 마치 이 소설의 탐정과도 같이 데스파드 집안 독살사건의 경위와 마술적 현상의 진상을 밝히면서 일사천리로 사건을 해결하는데, 고던 클로스는 마일즈 데스파드의 조카 마크와 피살자인 마일즈의 살아생전 간호사로 위장한 마크의 전 애인 코베트를 범인으로 시원하게 지목한 것이다.
"... 하지만 역시 그녀(코베트)가 사형을 당하지 않게 된 건 유감이야. 내(마리 스티븐스) 험담을 그렇게 해댄 것만으로도 죽어 마땅한데, 그날 내가 (피살자) 마일즈에게 먹이고 있는 약에 대해 물은 건 실수였어. 오랫동안 그런 걸 사용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어쩔 수가 없었어. 그녀가 진짜 범인이 아니었던 것도 가엾지만, 우리(독살자 '비밀결사?')의 동료가 되려면 유죄가 아니면 안 되니까 하는 수 없는 일이야. 우린 지금 동료를 좀더 많이 늘려야 하거든."
- [화형법정], <제5부 '에필로그'>, 존 딕슨 카, 1937.
[화형법정]은 이렇게 마치 탐정 역할을 하는 듯 하던 범죄연구가 고던 클로스를 통해 '반전'을 한 번 시전하더니,
바로 마지막 <제5부 평결>의 '에필로그'에서 다시금 결말을 뒤엎는 '대반전'을 한 번 더 보여준다.
결론적으로, 독살자 범인은 '마리'가 맞았으며, 도망친 마크는 몰라도 코베트는 누명을 쓴 것이라는 결말이다. 아마도 마크는 마리에게 홀려 공범 역할을 했을지도 모르지만 그에 대한 명확한 언급은 없다. 소설 전반 내내 주요한 역할을 하던 마크 데스파드(피살자 마일즈 데스파드의 조카)는 피살자의 방에서 사라진 검은 옷을 입은 의문의 여인처럼 어디론가 사라진 '신비주의' 요소 중 하나가 된다.
여기에 소설 후반부에 '갑툭튀' 하면서 그 동안 독자들이 몰랐던 사실들을 마구 공개하고 거들먹거리며 탐정 역할을 하던 범죄연구가이자 미스터리 작가인 고던 클로스는 사건을 해결하던 현장인 <제4부 요약>의 '제21장'에서 사건을 완전히 '해결'했다며 누군가로부터 받은 술잔으로 건배를 했다가 독살을 강하고 마는데, 고던 클로스는 17세기 브랑빌리에 후작부인(마리 고브리)에게 '독살법'을 알려준 애인 고던 생 클루아에였다는 암시가 깔린다. 그렇다면 그 독잔은 누명을 쓴 간호사 코베트가 아니라 진범인 '마리'가 준 것일까.
역시, 추리의 단서는 없다.
'초자연'적이고 '마술'적인 온갖 신비주의적인 요소들을 총망라하여 얽혀진 시공간의 교차 속에 엮으려다 보니, 다소 복잡한 플롯이다.
[화형법정]의 마지막장인 <에필로그>에서는 시종일관 독살범으로 의심받던 마리 스티븐스(에드워드 스티븐스의 부인)의 독백으로 자신이 진범임을 밝히며 수백년 간 이어져온 독살범 여인들의 '비밀결사'가 실재함을 암시한다.
어쩌면 오래 전 브랑빌리에 후작부인(마리 고브리 또는 스티븐스)의 애인이었던 고던 생 클루아에(고던 클로스)를 소환하여 진범인 마리가 아니라 다른 인물에게 누명을 씌우도록 한 건 아닌지 모르겠다.
그녀들은 중근세 유럽의 '화형법정'에서 고문을 당하고 목이나 사지가 잘린 후 화형을 당했지만 여전히 죽지 않았다.
그녀들은 지금도 어딘가애서 남편들과 애인들을 끊임없이 독살하고 있는 것이다.
'마술'과 '초자연'적 요소, 비현실적인 '밀실트릭'의 끝을 보여주려는 듯 야심차게 밀어붙인 존 딕슨 카의 기묘한 미스터리 소설의 '대반전'은 그럼에도 내 기대에 미치지 못한 채 다소 실망을 남겼다.
복잡하지만 늘어놓은 요소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지 못한 독후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이번주 토요일에도 마을도서관 책장의 '미스터리' 숲을 서성인다.
이대로 '존 딕슨 카'를 아쉽게 기억할 수는 없다는 생각에 나는 깔끔한 '반전'을 다시금 기대하며,
이 '미스터리'의 오솔길을 떠나지 못하고 그의 [모자수집광사건(The Mad Hatter Mystery)](1933)을 대출대 위에 올려놓고 만다.
비현실적이기는 해도,
'밀실살인'의 대가 '존 딕슨 카'를,
이대로 보낼 수는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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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형법정(The Burning Court)](1937), John Dickson Carr, 오정환 옮김, <동서문화사>, 1977~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