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책] 독초콜릿 사건 동서 미스터리 북스 75
앤소니 버클리 콕스 지음, 손정원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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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리 소설은 언제나, '반전' - 1
- [독초콜릿 사건], 앤서니 버클리 콕스, 1929.


그냥 흘러가는 대로의 서사는 이야기는 될 수 있을지언정, 작품으로 남을 수는 없다. 
그러니 대부분의 소설은 '반전'을 동반한다. 
그리고 소설 중 다른 작품들보다 더 '반전'이 필수적인 분야는 '미스터리' 소설일 게다.

어쩌면, 역으로 '반전'이 극적일 때, 
그 소설은 일종의 '미스터리'가 된다.


"나(로저 셀링검)는 당신들(런던 경시청)의 수사활동을 비웃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생각해 보십시오. 훌륭한 수사활동에 의해 거의 해결단계에 이르러 마지막 결정적인 순간에 '행운(우연)'- 운도 실력에 포함되지만, 운은 역시 운이지요-의 힘으로 비로소 완전히 해결해 낸 경우가 얼마나 많았는지. 나는 그 예를 몇십 가지나 들 수 있습니다... 
.... '복수'는 언제나 '우연'이나 '신의 섭리'가 아닐까요?"
- [독초콜릿 사건], <제4장>, 앤서니 버클리 콕스, 1929.


에드거 앨런 포의 오거스트 뒤팽이나 코넌 도일의 셜록 홈즈, 애거서 크리스티의 에르퀼 포와로 같은 탐정들이 '귀납적'으로 사실관계를 추적하고 조립하여 결론을 도출하는 전통적인 추리소설을 지나, 
S.S.반다인의 파일로 번스와 엘러리 퀸의 엘러리 퀸 같은 20세기 초 신인탐정들의 '연역적' 추리기법을 거치면서, 
추리소설은 사실적이고 '리얼리즘'에 기초한 '현실파' 추리소설에서 오로지 추리소설을 위한 소설의 상황만을 가정하는 '본격파' 추리소설로 이행되거나, 
혹은 '현실파'와 '본격파'로 양분된다.

'본격파' 추리소설은 '밀실트릭'과 같은 가상의 상황을 전제하면서 현실과 동떨어지게 되는데, 범인은 항상 등장인물 안에서만 존재하게 되는 '한정형' 살인사건으로 구성된다. 그러나 우리가 뉴스에서 접하는 많은 사건들은 어느 누구나 용의자가 될 있는 '개방형' 사건으로부터 출발할 수 밖에 없다. 아마도 현실의 형사나 탐정들이 맡게 되는 사건의 처음은 '개방형'에서 차츰 용의자들을 좁혀나가며 '한정형' 서사로 구축되어야 해결이 되는 것일게다. 

이렇게 고전적인 추리소설의 서술방식의 한계를 탈피하고 넘어서고자 노력한 흔적은 이른바 '도서(倒敍;inverted)' 추리소설의 형식으로도 나타난다. 20세기 초 잠시 등장했던 이 '도서 추리소설'은 천재탐정 1인극으로 흘러가는 기존의 전통적인 추리소설의 서술방식을 비판하면서 아예 범인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하고 마지막에 형사나 탐정으로 하여금 그 주관적 '완전범죄'의 헛점을 캐고 사건의 전말을 '역으로 서술(倒敍;inverted)'하여 밝혀내는 추리소설의 이례적 방식이었다. 

앤서니 버클리 콕스(Anthony Berkeley Cox;1893~1971)는 '도서 추리소설' 3대 고전의 첫번째 작품인 [살의](1931)를 쓴 프랜시스 아일즈(Francis Iles)의 본명이다. 평소 작가 본인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던 콕스는 본인이 아일즈였다고 시인한 적도 없었다지만 모두들 두 작가가 동일인임을 알고 있었다고 한다. 동 시대에 청년탐정 엘러리 퀸으로 유명한 작가 '엘러리 퀸'이 '바너비 로스'라는 또 다른 필명으로 드루리 레인이라는 노년 탐정이 활약하는 작품을 낸 것과 비슷하게 보면 되겠는데, 엘러리 퀸은 한 발 더 나아가 두 작가가 동일인들임을 숨기고는 대놓고 둘을 비교하고 대결시키기까지 했단다. 

밀실트릭'의 대가 '존 딕슨 카' 또한 '카터 딕슨'이라는 또 다른 필명으로 활동하기도 했는데, 콕스는 아일즈와 동일작가 여부에 대해서는 아예 언급이 없었다는 거다.

아무튼, 미국의 S.S.반다인과 엘러리 퀸이 '연역소거 추리법'으로 전통적인 추리소설 서술방식에 변화를 꾀하던 20세기 초 동시대에, 미국 출신으로 영국에서 활동한 딕슨 카와 같은 '밀실트릭' 대가들은 오로지 추리소설에서만 존재할 법한 상황을 가정하는 '본격파' 추리소설의 길을 닦았고, 한편으로 영국의 프리먼 크로프츠 같은 작가는 더욱더 사실적인 '현실파' 추리소설을 추구하기도 했다.

프랜시스 아일즈가 [살의](1931)를 통해 '도서 추리소설'로 새롭게 시도하기 전, 1929년에 앤서니 버클리 콕스라는 본명으로 발표한 [독초콜릿 사건(The Poisoned Chocolates Case)]은 '본격파'와 달리 좀더 사실적인 '현실파' 추리소설의 시도를 했던 작품 중 하나로 읽힌다.

[독초콜릿 사건](1929)에는 과연 등장인물 중 누가 범인일지 갈피를 잡기 힘든 '개방형' 사건과도 같이 출발한다. 피살자인 벤딕스 부인 조안, 그리고 살인자를 쫓는 모리스비 경감과 범죄연구회원들 외에 용의자는 세 명(유스티스, 폴링, 벤딕스) 뿐이다. 
그러나 결국, 범인은 이들 모두 중 한 명인 '한정형' 사건의 대반전로 끝난다.

소설은 런던 경사청이 포기한, 독이 든 초콜릿으로 인해 귀부인이 살해된 미제사건을 로저 셸링검이라는 소설가가 조직한 6인의 '범죄연구회' 회원 여섯명이 돌아가며 각자의 추리를 통해 진실에 접근하는 과정으로 전개된다. 이들의 추리는 귀납적이기도 하고 순전히 연역적일 경우도 있으며 귀납과 연역의 혼합양상으로 여섯명의 회원이 각자의 결론을 도출하는데, 마지막 가장 지명도가 낮은 회원인 앰블러즈 치터윅이 사회적으로 저명한 다른 다섯명의 회원들의 추리를 종합하고 불필요한 요소들은 소거하면서 범인을 지목하고 최초 '개방형' 사건과도 같던 사건을 이야기에 맞게 '한정형' 사건으로 되돌린다. 


"그래요, 이 (독초콜릿) 살인은 결국 동료 사이에서 비밀리에 행해진 작은 사건이지요. 이른바 '한정형' 살인이에요. 블래드리 씨, 그건 그렇고, 나는 지금 좀 비약한 것 같군요. 내 추론을 세우기 전에 우선 (로저) 셸링검 씨의 추리를 완전히 뒤엎어야 하지요."
- [독초콜릿 사건], <제15장>, 앤서니 버클리 콕스, 1929.


위의 말은 다섯번째로 추리발표를 맡은 여류작가의 말인데, 마지막 주자 치터윅은 결국 그녀를 범인으로 지목하게 되는 대단한 '반전'을 보여준다.


"전체적인 분위기가 아주 천천히 (앰블러즈) 치터윅의 의견을 지지하는 방향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적어도 앨리시어 더머즈와 같을 정도의 설득력을 가지고, 더욱이 미묘한 심리적 추론이니 '가치' 따위를 들먹이지 않고서였다. 다만 앨리시어 더머즈만은 회의에 찬 표정을 바꾸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은 처음부터 알고 있었던 일이었다.
찰스 경이 엄숙하게 물었다.
'동기는 무엇입니까, 치터윅 씨? 질투라고 하셨지요? 아직 그 점을 분명히 하지 않았는데, 그렇잖습니까?'
치터윅은 얼굴을 붉히며 대답했다.
'그야 물론 뚜렷하게 밝혀져 있습니다. 처음에 그것을 분명히 밝혀둘 생각이었는데, 역시 이야기 솜씨가 서툴렀군요. 아니, 어쩌면 질투라기보다 복수라는 표현이 더 적절할지 모릅니다. 유스티스 경에게는 복수가 될 테고, 벤딕스 부인에 대해서는 질투가 되겠지요. 내가 아는 한 그녀는...'"
- [독초콜릿 사건], <제18장>, 앤서니 버클리 콕스, 1929.


앤서니 버클리 콕스의 [독초콜릿 사건](1929)에는 더 이상 '천재탐정'이 없다. 런던 경시청의 유능한 모리스비 주임경감은 사건해결에 실패했고, 범죄연구회장 셸링검 또한 논리적 추리보다는 '우연'이나 '행운'적 요소를 강조하기도 하다가 범인에 관해 완전히 헛다리 짚기도 하며, 오히려 최후에 실제 살인자로 지목되는 질투의 여인 앨리시어 더머즈에 의해 처절하게 반박된다. 

마지막 발표자 치터윅은 변호사나 작가와 같이 저명한 다른 다섯 회원에 비해 사회적으로 특별한 지위도 없지만, 다른 회원들의 추리와 실패를 토대로 '질투'와 '복수'를 살인동기로 하여 다른 사람에게 누명을 씌우려는 범인으로 엘리시어 더머즈를 지목한다.


"'이제 범인이 누구인지 알고 있다고 말할 차례입니다, 치터윅 씨.'
치터윅은 마주보며 웃고는 대답했다.
'네, 알고 있습니다.'
다섯 사람의 목소리가 입을 모아 외쳤다.
'그래요!'
치터윅은 조용히 말했다.
'물론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가르쳐준 거나 다름없습니다. 마지막으로 발표하게 된 덕에 나의 작업은 꽤 간단히 끝났습니다. 나는 여러분의 의견이 옳은지 그른지 가려내기만 하면 되었거든요. 그리하여... 그렇습니다, 나는 확실히 진상을 파악했습니다.'"
- [독초콜릿 사건], <제17장>, 앤서니 버클리 콕스, 1929.


이처럼 앤서니 버클리 콕스의 [독초콜릿 사건](1920)은 전혀 유명하지도, 그렇다고 천재도 아닌 우리와 같은 '보통사람'이 다른 사람들의 추리를 통해 어쩌면 운 좋게도 범인을 지목하게 되는 '리얼리즘'적 '현실파' 추리소설의 '반전'을 보여준다.

역시,
'미스터리소설' 또는 '추리소설'은, 
어떤 식으로든, 그리고 언제나, 
극적인 '반전'으로 결말지어져야 한다.

그렇다면 이제,
'본격파' 추리소설에서는 또 어떤 '반전'이 일어나는가 다시 또 읽어봐야겠다.

다음 책은,
존 딕슨 카의 대표작, 
[화형법정](1937)이다.

***

- [독초콜릿 사건](1929), Anthony Berkeley Cox, 손정원 옮김, <동서문화사>, 1977~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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