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책] 해골성 동서 미스터리 북스 110
존 딕슨 카 지음, 전형기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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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실살인' 미스터리소설의 거장, 존 딕슨 카
- 존 딕슨 카, [해골성]/[세 개의 관]/[황제의 코담뱃갑]/[제3의 총탄], 1931~1954.


마을도서관이 대량으로 새로 들여놓은 <동서미스터리북스(DMB)> 시리즈 덕분에 요즘 잠시 '미스터리소설'에 빠져 지내고 있는 중에, 어린 시절 영국의 코넌 도일과 애거서 크리스티, 미국의 엘러리 퀸(그리고 바너비 로스)만 읽어대면서 말로만 들었던 S.S. 반 다인까지 읽게 되었다.

그렇게 요즘 휴일이면 어김없이 동네 뒷산인 초안산을 종주하고는 마을도서관에 들러 지난 주에 빌린 책을 반납하고 <동서미스터리북스> 시리즈를 둘러보다가 또 빌려가는 게 일상이 되었다. 여기까지 온 김에 '미스터리소설'과 '탐정소설'의 원조로 불리는 에드거 앨런 포의 중단편집도 다시 읽고 짧았던 '미스터리북스' 여정을 접으려고 했더랬다.

그런데 도서관 책장에 늘어선 수십 권의 '미스터리북스' 책들이 휴일의 나를 놓아주지 않는다. 그렇게 나를 반 다인에서 에드거 앨런 포로 거슬러 오르게 했다가 다시 곁가지로 뻗어가게 만들고 있다. 

그래서 만난 작가가 바로 '밀실살인' 미스터리소설의 거장, 존 딕슨 카(John Dickson Carr : 1906~1977)다.

반 다인과 엘러리 퀸의 탐정들이 구사하는 이른바 '연역소거법'은 내가 읽기로는, 
탐정소설의 시조새인 미국의 에드거 앨런 포, 그리고 그의 후예인 영국의 코넌 도일과 길버트 체스터튼, 애거서 크리스티의 '열린' 추리에서 이후 20세기 중반 미국의 닫힌 '밀실추리'로 이행하는 일종의 과도기로 보이는데, 도일과 크리스티의 작품들은 귀납적 추리를 통해 범인을 쫓아간다는 점에서 '열린' 개방형인데 반해 '밀실추리'는 엄격히 한정된 공간에서만 이루어지는 사건과 추리의 과정이기 때문이다.

개방된 공간인 현실에서 일어날 법한 전자는 소위 '리얼리즘' 또는 '현실파' 추리소설인 것이고, 
'밀실'처럼 제한된 공간에서 시작하여 오로지 그곳에서 마무리되는 후자는 이른바 '본격파' 추리소설로 분류된다고 한다.

반 다인과 엘러리 퀸의 '연역소거' 추리기법은 내가 보기엔 열린 '현실' 추리소설에서 밀실로 대표되는 '본격' 추리소설로 넘어가는 가교와도 같다는 말이다.
'연역소거법'과 '밀실살인'은 현실에는 없는 제한된 공간과 그 속의 사실관계만을 모두 제시하고는 독자들에게 '문제(수수께끼/미스터리)'를 내고는 대놓고 풀어보라 제안한다. 그래서 이 '밀실살인' 추리소설은 '현실'적이지 않은 '본격파' 추리소설로 불리는 것이며, 그 정점에 바로 '존 딕슨 카'가 있었던 거다.

존 딕슨 카의 추리소설에 등장하는 탐정은 실로 여러 명인데, 대표적인 인물은 '앙리 방코랑', '기디언 펠', '다모트 킨로스', '마키스 대령' 등이 있다.


1. [해골성(The Castle Skull)](1931) : 앙리 방코랑

"제프, 내가 예언을 해주지. 폰 아른하임 남작은 나를 앞지르고 싶은 생각으로 가득 차 있네. 자기의 계획대로 일찍이 명배우 마일런 아리슨(피살자)이 화려했을 무렵 무대에서 관중을 깜짝 놀라게 했던 것처럼, 아니, 그 이상으로 모두를 놀라게 하고 싶어하는 걸세. 그의 성격은 나도 잘 알고 있네. 그는 우리 앞에서 연극을 한 거라네. 튜턴 인종이 세계에서 으뜸가는 민족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은 거지. 그 훌륭한 연극을 구경하고 싶은 기분도 없지는 않네. 그러나 내게도 반항심이라는 것이 있거든. 멍하니 그의 연기를 바라보고만 있을 수는 없지 않겠는가!"
- [해골성], 존 딕슨 카, 1931.

1930년에 작가로 데뷔한 딕슨 카의 초기작인 [해골성](1931)은 실제 살인범으로서 마술사가 등장하고 그의 '조수'인 여성 등장인물을 배치하여 오래된 성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의 비밀을 풀어나가는 내용으로, 프랑스인 예심판사인 '앙리 방코랑(Henry Bencolin)'이 활약한다. 

그에게는 에드거 앨런 포의 탐정 뒤팽과 코넌 도일의 셜록 홈즈와 같이 역시 '조수'인 소설가 제프리 마르가 소설의 화자로 등장하고 있는데, 그가 묘사한 아마추어 탐정이자 천재인 방코랑 판사는 이미 모든 것을 처음부터 다 알고 있다. 다만, 누구에게도 본인이 이미 아는 것을 발설하지 않고 하나하나 증거를 수집하면서 본인의 가설을 '연역법'으로 증명하고 완성해 나간다.

제1차 세계대전 중 적국인 독일과의 스파이 전쟁에서 만난 경쟁자 폰 아른하임 남작(현직 독일 고위급 경관)을 라인강변의 해골성' 사건현장에서 다시 만나 새삼 두뇌경쟁을 하면서도 방코랑은 느긋하다. 반 다인의 파일로 번스와 엘러리 퀸의 엘러리 퀸처럼 범인이 누군지 이미 다 알고 있기 때문이다.

딕슨 카의 초기작에서 활약하는 탐정 '앙리 방코랑'은 아직까지 반 다인의 탐정 '파일로 번스'와 엘러리 퀸의 탐정 '엘러리 퀸' 같은 '연역소거법' 탐정의 모습을 그대로 투영하고 있는 것이다.


2. [세 개의 관(The Three Coffins)](1935) : 기디언 펠

"그 세 가지 요점이란 이런 거네. (1) 동생 '앙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실제로 있는 건 두 형제 뿐이라는 것, (2) 그 형제는 둘 다 진실을 말했다는 것, (3) 시간 문제가 사건을 잘못된 방향으로 이끌고 말았다는 것, 등이네.
이 사건에서는 많은 일들이 매우 짧은 시간과 관련되어 있었네. 참으로 짧은 시간이지. 사건의 난관이 시간 착오에 있었다는 것은, 우리의 살인범을 '그림자 없는 남자'라고 명명한 것과 같은 아이러니의 일부였어."
- [세 개의 관], 존 딕슨 카, 1935.

'본격파 밀실살인' 소설의 대표작으로 평가받는 [세 개의 관](1935)은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두 개의 살인사건을 얽히고 설키게 만들어 결말에서 명쾌하게 풀어 설명한다. 

이 작품의 탐정 '기디언 펠(Gideon Fell)' 박사는 영국인 법학박사로서 런던경시청의 '자문' 역할을 하는 인물안데, 동료와도 같이 함께 사건을 해결하는 런던경시청 해드리 경감과의 경쟁 과정에서 뜻밖의 추리로 사건을 해결한다.

물론 '본격파' 추리소설인 '밀실살인'은 추리소설을 위한 소설이라 전혀 현실적일 수가 없다. 범인은 항상 제한된 공간에 있는 제한된 인물 중 하나다. 소설의 전개과정은 이미 작가의 머릿속에서 완성된 퍼즐이 초반에는 전부 해체되어 있다가 원래의 구성대로 재조립되는 '연역법'의 증명과정 실현에 불과하다. 독자는 '귀납적' 또는 과학적으로 이 퍼즐을 풀어보고 싶겠지만 이는 거의 불가능하다. 작가의 머릿속을 알 수 없으니 하나하나 메모하고 시간표를 작성해서 수학문제 풀듯이 읽을 열정이 없다면 수수께끼는 끝까지 미궁이다.

고장난 시계, 인물의 숨겨진 과거 같은 예상하지 못한 사실들을 간과하면 이 수수께끼는 절대로 풀 수 없는데, 기디온 펠 박사 같은 천재들은 귀신같이 이 복잡한 문제를 결말에서 하나의 이야기로 엮으면서 사건을 해결해 보인다. 
특히, [세 개의 관]은 기디언 펠 박사의 '밀실강의'로 유명하단다.

영국에 정착하여 활동했던 미국 출신 작가 딕슨 카는 마치 유럽 작가 같이 무대도 유럽, 등장인물들도 유럽 각국의 사람들을 끌어들여 이 '밀실살인'을 자유자재로 만들고 풀어낸다.

"거기에 대해서는 조금 설명할 수 있을 거네. 하지만 풀릴 가망이 없는 수수께끼도 있어. 이해하겠지? (피살자) 그리모와 뒤몽은 나(펠 박사)와 같은 프랑스인이 아니네. 그런 광대뼈를 가진 여자, 정직하다(honest)는 말의 묵음인 'h'를 발음하는 여자는 절대로 라틴 민족일 수가 없어. 하지만 그런 건 중요하지 않네. 그 두 사람은 '마지르' 인일세. 정확하게 말하면 그리모는 원래 헝가리 출신이고, 진짜 이름은 카롤리, 다른 이름은 샤를 그리모 호바트. 이 남자의 어머니는 아마 프랑스인이었을 거네. 원래는 헝가리 왕국의 일부였지만 제1차 세계대전 뒤 루마니아에 병합된 트란실바니아 공화국 출신이지. 1890년대 말이나 1900년대 초에 두 형제와 함께 카롤리 그리모 호바트는 형무소에 들어갔네. 두 형제가 있었던 것을 내가 얘기하지 않았나? 한 사람은 본 적이 없지만, 다른 한 사람은 지금 피에르 플레이라고 자처하고 있는 남자일세."
- [세 개의 관], 존 딕슨 카, 1935.


3. [황제의 코담뱃갑(The Emperor's Snuff-box)](1942) : 다모트 킨로스

"아투드는 갈색 장갑을 낀 사람은 토비였다고 증언하고 사건을 마무리 지으려고 몹시 열심이었죠. 사랑하는 아내를 되찾고 라이벌을 형무소에 밀어 넣겠다 그것이었습니다. 그 정도의 중환자가 침대에서 일어나 옷을 입고 시청으로 바톨 검사를 만나러 가겠다고 나섰으니까요. 그것을 그 사나이는 해냈습니다. 꼭 가겠다고 고집을 세워서요... 
... 심리학의 문제...
... 정확하게 말하면 내가 그 사나이를 죽였다고 말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너 죽이지 말지어다. 그러나 억지로 살해할 필요는 없도다.' 결국은 들쑤셔서 그 사나이를 죽게 한 것이나 같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그 사나이는 건강을 되찾고 단두대가 적절히 결말을 지었겠죠. 그러나 나는 별로 그런 생각은 하지 않았소."
- [황제의 코담뱃갑], 존 딕슨 카, 1942.

일설에 의하면 '추리소설의 여왕'이자 그 역시 '밀실살인'의 내용과 같은 [오리엔트 특급살인](1934)과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1939)를 쓴 애거서 크리스티조차도 속았다는 또 하나의 '밀실살인'의 정점인 작품, [황제의 코담배갑](1942)에는 '다모트 킨로스'라는 정신분석의사가 등장한다. 

제목이 왜 '나폴레옹 1세(황제)'가 아꼈다던 작은 '코담배갑(snuff-box)'이었는지 좀더 세심하게 알고 간파했다면 독자는 초반에 이미 살인범을 킨로스 박사처럼 알 수 있었을는지 모르겠지만, 작가가 전개시키는 의문의 살인사건만을 쫓아가다 보면 십중팔구 실마리를 놓치고 만다.

그리고는 결국 '본격파' 추리소설 작가 존 딕슨 카의 농간이 놀아나고 마는 거다.

물론, 반 다인과 엘러리 퀸처럼 확실한 법적, 물적 증거 없이 '연역법'으로만 접근하게 될 때는 범인을 스스로 또는 우연한 계기를 만들어 죽게 만드는 방법으로 단죄하기도 한다. 

'다모트 킨로스' 박사는 이러한 심리전을 통해 누명을 쓰게 된 미녀를 구하고 악당인 범인을 심판하는 반 다인의 고전적 수법을 쓰고 있다.


4. [제3의 총탄(The Third Bullet)](1954) : 마키스 대령

"'전 (마키스) 국장보님께서 진상을 좀 알고 계실 줄 알았는데요?' 
페이지 경위가 완곡하게 말했다. 전혀 악의가 없는 말이었지만 이 말이 마키스 (대령)의 감정을 건드렸다.
'자네 말은 전적으로 옳아. 난 살인범이 누구인지도 알고, 범행이 어떻게 저질러졌는지도 잘 알고 있으니까. 하지만 내겐 사실과 증거가 필요해. 그러니 사실을 밝혀 보자구. 오늘 새 사실을 알아낸 게 있는가?'"
- [제3의 총탄], 존 딕슨 카, 1954.

내 개인적으로 그 중 가장 깔끔한 결말의 작품은 [황제의 코담배갑]에 같이 실린 [제3의  총탄](1952)이라는 중편이다. 개중 나중에 발표된 작품이라 완성도가 더 있을 수도 있겠고, 무엇보다 경찰국장보로 나오는 퇴역군인 '마키스 대령'이 군더더기가 없다. 물론 장편보다 분량이 적은 중편소설이라 더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모틀레이크 판사를 별채라는 '밀실'에서 죽인 총탄은 각기 다른 세 개의 권총에서 발사되었다는 설정도 흥미롭고, 한정된 공간의 제한적 인물들 사이에서 억울한 누명을 쓰게 될 인물을 구제하는 방식, 용의자의 숨겨진 과거와 그를 돕는 묘령의 여인이 누구인가 하는 존 딕슨 카의 모든 전작 소설들에 나오는 각종 요소들이 적절하게 작동하는 완성미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존 딕슨 카의 '밀실살인' 작품 하나를 읽으라 한다면,
나는 [제3의 총탄](1954)을 권하고 싶다.


5. '밀실살인' 미스터리소설의 거장, 딕슨 카

'밀실살인' 미스터리소설의 거장으로서,
'본격파' 추리소설의 대가로 평가받는,
존 딕슨 카(John Dickson Carr)'를 만나 '밀실살인'의 정점을 읽었으니,
이제 다시 마을도서관에 들러 '밀실살인'의 고전이라는 '가스통 르루'의 [노란방의 수수께끼](1907)를 빌려와야겠다.

그리고 시간 나면 딕슨 카의 다른 '밀실살인' 추리소설을 또 읽어보고 싶기도 하다.

역시 내게는,
시간 보내기에 '추리소설'만한 게 없고,
'현실파'든 '본격파'든 뭐니뭐니 해도 역시나 '고전'을 따를 게 없다.

아마도,
나의 '미스터리소설' 고전 여행은 좀더 지속될 것 같다.

***

1. [해골성(The Castle Skull)](1931), John Dickson Carr, 전형기 옮김, <동서문화사>, 1977~2003.
2. [세 개의 관(The Three Coffins)](1935), John Dickson Carr, 김민영 옮김, <동서문화사>, 1977~2003.
3. [황제의 코담뱃갑(The Emperor's Snuff-box)](1942)/[제3의 총탄(The Third Bullet)](1954), John Dickson Carr, 전형기 옮김, <동서문화사>, 1977~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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