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그 가의 살인 - 추리.공포 단편선 시공 에드거 앨런 포 전집 1
에드거 앨런 포 지음, 권진아 옮김 / 시공사 / 2018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미스터리' 탐정 추리소설의 원조
- [모르그가(街)의 살인]/[마리 로제 수수께끼]/[도둑맞은 편지], 에드거 앨런 포, 1841~1844.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는 봉준호 감독의 [살인의 추억](2003)이었다.

그냥 1980년대 한적한 시골 마을의 정경이 좋았고, 음울하지만 '연쇄살인사건'이라는 주제도 관객인 나에게는 극적이었으며, 심지어 내 어린 시절 한 때 한참 회자되던 '화성 연쇄살인사건'이라는 현실적 모티브를 통해 연상되던 그 시절의 풍경들이 뜬금없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던지, TV 영화채널을 돌리다가 우연히 그 영화가 방영되면 무조건 끝까지 보았다.

한참 후 알게 된 일이었지만, '화성 연쇄살인사건'의 진범이 밝혀졌을 때 나는 소름 같은 게 돋았는데, 영화 [살인의 추억]에서 무죄로 놓친 그 자가 바로 범인이었다.

영화의 원작인 희곡을 보지는 못했지만, 영화는 오리무중의 장기미제 살인사건의 범인을 이미 알고 있었던 듯 했던 거다.

과연,
영화적 '추리'의 쾌거라는 생각이 든다.

"분석력을 단순한 재간과 혼동해서는 안된다. 분석가는 반드시 재간이 있지만, 재간 있는 사람은 종종 놀라울 정도로 분석력이 부족하다... '재간'과 '분석력'의 차이는 공상과 상상의 차이보다 훨씬 더 크지만 그 차이의 성격은 극히 유사하다. 사실 재간이 있는 사람은 항상 기발하지만 진정으로 상상력이 풍부한 사람은 분석적일 수 밖에 없다는 것...
이제부터 할 이야기는 독자들이 보기에는 방금 제시한 주장에 대한 일종의 논평처럼 보일 것이다.
나는 18**년 봄과 여름 잠깐 동안 파리에 머물면서 'C. 오귀스트 뒤팽'이라는 신사를 알게 되었다..."
- [모르그가(街)의 살인], 에드거 앨런 포, 1841.


어린 시절 영국 코넌 도일의 셜록 홈즈 단편 이야기와 애거서 크리스티, 미국의 엘러리 퀸의 장편들을 통해 추리소설을 배운 나는 한참 후 중년에 들어서서 우연한 기회로 엘러리 퀸의 원형이 되었다는 S.S.반 다인까지 거슬러 올라 읽게 되었다. 다섯 작품을 읽고는 더 이상 반 다인의 [OO살인사건] 시리즈를 구하지 못해 아쉬워하던 차, 그럼 이 참에 '미스터리' 소설의 진짜 시조새라는 '에드거 앨런 포'까지 역주행해보자 싶었다. 워낙 유명한 고전작가라 [모르그가의 살인](1841)과 [검은 고양이](1843)는 어린 시절 읽기는 했더랬지만, 지금 다시 탐정 '뒤팽' 시리즈 단편을 읽어보고 싶었던 것이다.

19세기 초 미국 작가 에드거 앨런 포(Edgar Allan Poe : 1809~1849)는 시인이자 문학비평가로도 알려져 있지만, '공포', '추리' 등 '미스터리' 소설의 원조로 유명하다. 

1833년 24세의 데뷔작 [병 속의 수기]는 난파를 당한 주인공이 우연히 마주친 유령선에 올라타고는 함께 사라져 가는 기괴한 공포를 선사한다. 이후 19세기 초 무너져 가는 명문 귀족가문의 실제적이고 직접적인 붕괴를 그린 [어셔가(家)의 몰락](1839), 엽기적 살인행각을 과감하게 1인칭으로 그린 [검은 고양이](1843)나, 해적 보물지도의 암호를 파헤치고 분석한 [황금벌레](1843) 등의 기괴하고 기묘한 단편소설들은 프랑스 작가 보들레르, 포스트모던 작가 보르헤스, 화가 르네 마그리트와 영국 록밴드 앨런 파슨즈 프로젝트 등의 예술가들에게 깊이 영향을 끼쳤다고 한다. 또 한편으로 포의 '공상'적 이야기는 쥘 베른, 웰스, 아시모프 등 후대의 'SF 공상과학' 소설가들에게도 큰 영감을 주었다고 포의 <시공사> 전집 번역자인 권진아 교수는 해설한다([에드거 앨런 포 추리공포 단편선], <해설>, 권진아).

그리고 여기, 
에드거 앨런 포의 명탐정 '오귀스트 뒤팽'을 빼놓을 수 없다. 

프랑스 귀족으로 화자가 '슈발리에(기사)'라고도 부르는 뒤팽은 19세기까지 여전히 놀고먹는 한량으로, 아마도 선대부터 '기사(슈발리에)' 작위를 세습받은 귀족청년으로 추정된다. 막대한 유산을 기본으로 생계를 위한 노동으로부터 자유로워 한가롭고 게으르지만 머리가 비상하여 '분석력' 하나는 기가 막히다고 소설의 화자이자 뒤팽의 같이 놀고먹는 한량 친구인 나는 말한다.

뒤팽의 첫번째 활약극 데뷔작인 [모르그가(街)의 살인](1841)은 실제로 단순한 '재간'을 넘어서는 '분석력'의 대가로서의 이러한 뒤팽의 면모를 길고 상세하게 소개하면서 이야기를 시작하고 있다. 뒤팽의 캐릭터와 그를 지켜보며 기록으로 남기는 친구로서 화자의 관계는 이후 코넌 도일의 명탐정 셜록 홈즈와 친구 왓슨, 반 다인의 아마추어 탐정 파일로 번즈와 화자인 반 다인, 엘러리 퀸의 작품에 그대로 투영되고 복사된다. 
그렇게 포의 원시적 탐정 '뒤팽'과 그의 '분석적' 추리결과를 듣고 받아적는 친구의 구도는 적어도 그후로 1백년 이상 동안 '탐정추리소설'의 진짜 원조이자 고전이 된다.

단, 단편소설 [모르그가의 살인] 속 파리에 사는 레스파나예 모녀를 '밀실'과도 같은 집에서 잔인하게 살해한 '범인'이 밝혀지는 순간 다소 어처구니 없는 경악이 있을 수 있으니 주의가 요망된다. 
결과보다는 뒤팽의 분석추리를 쫓아가는 데 묘미를 두면 되겠다.


"... 모르그가 사건에서 내 친구(뒤팽)가 한 역할이 파리 경찰에 깊은 인상을 남긴 것... 파리 경찰들 중 '뒤팽'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없게 됐다. 그 수수께끼(미스터리)를 푼 단순한 '귀납적' 추리 방법을 뒤팽이 나(화자) 말고는 누구에게도, 심지어 (파리경찰국) G국장에게조차 설명해주지 않았기 때문에, 놀랍지 않게도 그 일은 기적이나 다름없이 간주되었고 '슈발리에(뒤팽)'의 '분석능력'은 직관이라는 명성을 얻게 되었다. 뒤팽은 솔직한 사람이라 사람들이 물어봤다면 그 편견을 바로잡아줬겠지만, 게으른 성격 탓에 이미 오래전 흥미를 잃은 일을 더 이상 들쑤시고 싶어하지 않았다. 그래서 어쩌다 보나 그는 경찰이 주목하는 대상이 되어버렸고, 그의 도움을 받으려는 시도가 적지 않았다. 그 중 가장 주목할 만한 경우가 '마리 로제'라는 젊은 아가씨가 살해된 사건이었다."
- [마리 로제 수수께끼], 에드거 앨런 포, 1842.


미스터리 추리소설의 '원조'이자 고전으로, 지금으로부터 무려 2백년도 훨씬 전에 발표된 소설임을 잊지 말고 포의 탐정 뒤팽을 만나야 한다.

[모르그가의 살인]으로 파리 경찰당국 사이에 유명해진 '명탐정 뒤팽'을 세상은 가만두지 않았는데, 파리 시내에서 예쁘기로 소문난 담배가게 젊은 아가씨 '마리 로제'의 살인사건 또한 미궁에 빠지면서 뒤팽이 소환된다.

이 이야기는 실제로 뉴욕의 '담배가게 아가씨'였던 메리 세실리아 로저스라는 젊은 여성의 살인사건을 전한 신문기사들을 에드거 앨런 포가 분석하면서 범인을 추적해 보는 내용이다. 
신문기사들의 선정적이지만 섣부른 추측과 과학적이지 못한 억측을 뒤팽은 낱낱이 분석하고 반박하면서, 당시 유력 용의자였던 마리 로제의 남자 친구의 무죄를 분석해내고, 파리 외곽 불량배들의 집단적 행위도 아님을 증명하면서, 비록 범인을 특정하지는 않고 있지만 마리 로제가 비밀리에 만났을 외항 선원의 단독 범행임을 추리하고 있다. 만일 소설속 파리의 마리 로제, 현실의 메리 로저스 살인사건의 진범이 나중에라도 잡혔다면, 포의 [마리 로제의 수수께끼]에도 영화 [살인의 추억]처럼 현실의 범인을 추적하고 밝혀낸 공을 돌릴 수 있지 않을는지.

[마리 로제의 수수께끼(The Mystery of Marie Rose)]의 제목에서 '수수께끼'의 원문이 '미스터리(Mystery)'다. 굳이 번역하자면, '수수께끼', '비밀', '추리' 등이 되겠는데, 포가 이후의 '미스터리' 추리소설의 원조임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실제로 후예 작가 엘러리 퀸의 유명 시리즈의 제목은 [국적+사물+'미스터리'](이집트 십자가 미스터리, 로마 모자 미스터리 등)였다. 그리고 엘러리 퀸은 모든 사실을 다 드러내 놓은 다음 독자들에게 '이제 범인을 맞춰보라'며 '수수께끼(미스터리)'를 내기도 한다.


"난 추상적 논리가 아닌 특수한 형태로 계발된 논리의 유효성과 가치가 의심스럽네. 특히 수학 연구를 통해 추출된 이성이 의심스러워. 수학은 형식과 수량의 과학이야. 수학적 추론이라는 것은 단지 형식과 수량의 관찰에 적용되는 논리에 불과하거든. 그런데 크나큰 오류는 이른바 순수 대수학의 진리를 추상적이거나 일반적인 진리로 간주하는 걸세. 이건 정말 너무 터무니없는 오류여서 그게 이렇게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졌다는 게 당혹스러울 지경이야. 수학적 공리는 일반적 진리의 공리가 아니야. 예를 들어, 형식과 수량의 관계 문제에서는 진리인 공리도 윤리 문제에서는 턱도 없이 틀리는 일이 종종 있거든. 윤리학에 있어서는 부분들의 합이 전체와 일치하는 경우가 거의 없으니까 말일세."
- [도둑맞은 편지], 에드거 앨런 포, 1844.


뒤팽 3부작 시리즈의 마지막 편 [도둑맞은 편지](1844)는 사람을 죽이지는 않는다. 

소설은 프랑스 왕족으로 추정되는 고위층 부인의 중요한 편지를 빼돌린 'D장관'의 집에서 그 '도둑맞은 편지'를 찾아내는 과정을 그리고 있는데, 경찰 당국의 '수학적'이고 치밀한 추리와 탐색 과정의 헛점을 노린 범인의 관점에서 추리를 한 뒤팽이 어이없게도 아주 단순한 곳에 숨겨져 있던 편지를 찾아내 바꿔치기하는 결과로 끝이 난다.

편지를 훔친 장관은 수학자이자 시인이었다. 즉, 그가 '수학'적 사고를 통해 편지를 숨긴 것으로 보고 경찰이 '과학' 수사로 추적했지만, 범인은 오히려 '시인'의 기질을 활용해 경찰의 허를 찌르고는 아주 단순하고 평범한 장소에 편지를 숨겼다는 것.

뒤팽은 장관의 심리와 기질을 파악하고는 가위바위보에서 상대방을 읽으면서 매번 이기는 심리를 이용해 '등잔 밑이 어둡다'는 진리를 다시금 상기시킨다.

[도둑맞은 편지] 역시 지금의 눈으로 보면 결과가 좀 어이없기도 하다. 그러나 혹시 모를 일이다. 19세기 중반 당시는 획기적 반전이었을지도.


뒤팽의 분석적 추리는 다분히 '귀납적'이다.
모든 사실관계를 나열하고 퍼즐처럼 짜맞춰 어디 있을지 모를 진실 또는 범인을 밝혀낸다. 이러한 '귀납적 추리'는 이후 같은 19세기 중후반 코넌 도일의 셜록 홈즈나 애거서 크리스티의 포와로 등의 탐정들에게 전승된다. '과학수사'의 대원칙이다.

한편 20세기 초 미국에서 부활한 새로운 뒤팽인 반 다인의 파일로 번스와 앨러리 퀸의 앨러리 퀸 또는 바너비 로스의 드루리 레인 등의 사변적 탐정들은 게으른 귀족한량 같은 면모는 그대로 이어받았으나, 추리방식은 '귀납적'이지 않다. 이들은 뒤팽와 달리 범인을 먼저 심리적으로 지목한 후 수많은 사실들을 논리적으로 대입하여 부실한 논리구조를 보이는 용의자들은 하나씩 소거해 나가면서 탄탄하고 완벽한 논리구조로 완성된 최종 용의자를 결국 범인으로 확정하는 '연역적' 방법를 구사한다. 소설로는 재미있지만 전혀 현실적이지 않은 이른바 '연역소거법'이다. 심지어는 '법률적 정의'를 실현하는 법적 증거의 효력이 다소 떨어져 범인을 자살하게 만드는 '사적 복수'로 결말을 짓기도 한다.

반 다인과 엘러리 퀸의 살인사건 현장에서 범인은 늘 한정된 공간에 있다. 일본만화 [소년탐정 김전일]에서 주인공 김전일이 문을 잠그며 "범인은 이 안에 있어"라고 외치는 서사의 전형이다.

어쨌든 좋다.
미스터리 추리소설의 원조,
에드거 앨런 포와 그의 탐정 오귀스트 뒤팽을 이제서야 제대로 만났으니.

그리고 아직 '미스터리' 안에 더 머무르고 싶어,
한정된 공간의 오로지 이야기만을 위한 이야기인 '밀실살인'의 대가, 존 딕슨 카(John Dickson Carr : 1906~1977)의 소설을 두 권 더 마을도서관에서 빌려 간다.

***

- [모르그가(街)의 살인 외 - 에드거 앨런 포 추리공포 단편선](1833~1844), Edgar Allan Poe, 권진아 옮김, <시공사>, 201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