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초삼걸 - 천하 최강의 참모진
쉬르훼이 외 지음, 장성철 옮김 / 지식노마드 / 2011년 1월
평점 :
절판


'서한삼걸(西漢三傑)' 평전
- [한초삼걸], 장따커/쉬르훼이, 2002.


"그대들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구려. 군막 속에서 계책을 짜내 천 리 밖에서 승리를 결판내는 것은 내가 '자방(子房/張良)'만 못하오. 나라를 어루만지고 백성들을 위로하며 양식을 공급하고 운송도로를 끊기지 않게 하는 것은 내가 '소하(蕭何)'만 못하오. 백만 대군을 통솔해 싸우면 어김없이 이기고 공격하면 어김없이 빼앗는 것은 내가 '한신(韓信)'만 못하오. 이 세 사람은 모두 빼어난 인재이지만 내가 그들을 임용할 수 있었으니 이것이 내가 천하를 얻을 수 있었던 까닭이오. 항우는 범증 한 사람만 있었으면서도 그를 중용하지 않았으니 이것이 그가 나에게 사로잡힌 까닭이오."
- [사기], <고조본기>, 사마천, 기원전 1~2세기.


'칭기스 칸의 위대한 장수'였던 용장(바투르) '수부타이'를 통해 역사의 '2인자'에 대해 새삼 상기하게 되면서, 몽골제국사에서 칭기스 칸 일족에게 있어 '수부타이'라는 존재가 비록 그 최후는 달랐을지라도 중국 한(漢)나라 고조 유방 진영의 '한신'과 같다 생각했었다. 

기원전 3세기 중국 초한전쟁에서 한왕 유방이 초왕 항우에게 승리할 수 있었던 이유는 건달유협 유방이 유능한 참모들을 적재적소에 기용했기 때문이었다. 이 참모진은 유방의 건국 후 치열하게 서로 '2인자'를 다투었겠지만, 진나라 붕괴 직후 건곤일척의 초한전쟁이 한창이던 시기에는 이 참모진 전체가 '2인자'였다.

5년간의 초한전쟁이 대단원의 막을 내린 해하결전에서 패한 항우가 오강에서 자결함으로써 초나라가 멸망한 한나라 5년, 
그 해 5월에 낙양의 승전 축하연에서 유방이 한나라 승리의 원인을 신하들에게 물으니 고기와 왕릉이라는 신하가 유방은 비록 거만하나 항우와 달리 신하들과 공을 나눌 줄 알았기 때문이었다고 대답하였다. 이에 대해 유방은 그들이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른다며, 승리의 원인은 유방 본인이 유능한 인재 3인을 잘 기용했기 때문이라고 다시 답한다.

이 3인이 바로 이른바, 
'서한삼걸(西漢三傑)' 또는 '한초삼걸(漢初三傑)'로 불리는 '장량(張良)'과 '소하(蕭何)' 그리고 '한신(韓信)'이다. 
유방이 '삼걸(三傑)'을 규정한 후 장량은 은거했고, 소하는 장수했으며, 한신은 요절을 당했다. 

비록 최후는 달랐지만, 과연 이들은 '한나라 초기(서한/한초) 3인의 영웅(삼걸)'이었다.


1. '포의장상(布衣將相)'의 계급전쟁


"진나라와 한나라의 천하통일은 춘추전국시대 이후 '생산력의 발전'과 '계급모순'에 따라 형성된 역사적 국면이며 역사발전의 법칙이다... 경제기초의 변화는 계급관계의 변화를 초래하였다. '공경의 대물림'이라는 귀족의 세습제도가 붕괴되면서 평민세력이 점차 역사의 무대 위로 등장하게 되었다... 유방 집단의 승리는 유민계층이 주축이 된 농민봉기군의 승리라 할 수 있다. 즉 춘추전국 시기 이래 장기간 형성된 방대한 유민계층이 '한초 포의장상(布衣將相)의 형국'이 탄생할 수 있었던 '계급적 기초'였다."
- [한초삼걸], <2장. 난세가 인재를 단련하다>, 장따커/쉬르훼이, 2002.


춘추전국시대를 끝내고 중국 최초 통일제국을 세운 진시황의 진(秦)나라는 폭압적인 정치로 15년 만에 전국적 반란을 야기했다. 항우 같은 초나라 귀족가문도 있었지만, 진승과 오광, 유방과 경포, 팽월 같은 농민반란군들은 대부분 유협 중심의 민중들로 구성된 평민세력이었다.

중국 역사가이자 고전문헌학자 장따커와 쉬르훼이는 [한초삼걸(漢初三傑)](2002)이라는 책에서 이러한 중국사 최초의 '계급전쟁'의 원인이 춘추전국시기의 제후와 귀족들을 거의 전멸시킨 진나라의 중앙집권체제로 본다. 황제와 측근 외 다른 지배계급을 탄압한 결과 그들의 힘이 약화되면서 '포의(布衣)', 즉 거친 옷을 입은 민중들이 '장상(將相)', 즉 장군과 재상 같은 지배계급이 되는 '난세'가 온 것인데, 진나라 말기의 민중봉기를 개시한 진승과 오광의 난은 중국 역사상 첫 농민반란이었다.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없다'고 선언한 진승을 사마천은 [사기]에서 제후들의 전기를 다룬 <세가>로 기록했는데, 바로 <진섭세가>다.

고대사회 농민반란의 본격적 계급투쟁이 전개되기 시작한 '진말한초(秦末漢初)'의 난세는 진승과 오광, 유방 같은 민중 영웅들을 불러 일으켰고, 평민 출신의 영웅들이 주체적이고 적극적으로 자신의 군주를 선택했다.


2. '한초삼걸(漢初三傑)' 또는 '서한삼걸(西漢三傑)'


1) 장량(張良) - 장막 안에서 천리 밖 승부를 결정짓는 전략가([한초삼걸], <4장>)


"항우는 제후왕을 봉함으로써 스스로 무덤을 팠지만, 유방은 제후왕을 봉해 그들의 충성을 얻어냈으니, 상황에 따라 책략의 효과도 크게 달랐다. 장량은 유방에게 여섯 나라의 후예들을 왕으로 봉하지 말 것을 권유했고, 가장 중요한 시기에는 '세 영웅(한신/경포/팽월)'을 왕으로 봉할 것을 권유했다. '장막 안에서 천리 밖의 승부를 결정' 짓는 데서는 아무도 그(장량)를 따르지 못했다."
- [한초삼걸], <4장. 장량, 장막 안에서 천리 밖 승부를 결정짓는 전략가>, 장따커/쉬르훼이, 2002.


한고조 유방의 책사 장량(장자방)은 민중 출신은 아니었다. 진나라에 의해 멸망한 전국시대 한(韓)나라 재상 집안 출신으로 본래 주(周)나라 왕족의 '희(姬)'씨 성을 썼는데, 박랑사 계곡에서의 진시황 저격 작전 실패 후 수배생활을 하면서 이름을 '장량'으로 바꿨다. 이후 유방의 책사가 되었지만 부귀공명을 위해 합류한 다른 참모들과 달리 조국의 복수와 새로운 세상을 기획하며 유방의 동지이자 '제왕의 스승'으로 자리매김했다.

유방과 항우의 마지막 전투에서 홍구의 동서강화조약을 바로 폐기하면서 항우의 등을 친 해하결전은 평소 도인 또는 선비같던 장량답지 않은 계책으로 평가받기도 하지만, 오랜 전란을 끝내고 세상을 구제하려는 최고 책사의 마지막 한 수였을 수도 있다.

한고조의 천하통일 후 장량은 부귀영화를 더 바라지 않았다. 건국의 논공행상에서 유방이 내린 3만호의 최고 식읍을 거절하고는 '68등 공신'인 1만 식읍의 '유후'로 만족하였으며, 권력투쟁에 관여하지도, 한신 같은 다른 개국공신의 숙청에도 참여하지 않은 채, 도인 '적송자'의 삶을 조용히 살다 갔다.


"한니라가 수립되면서 장량은 자연스럽게 '제왕의 스승이 되었다. 모든 것을 이룬 유방이 장량을 묶어둘 수 없었던 것은 장량에 대한 유방의 수요에 변화가 생겼기 때문이다. 더이상 전시처럼 절박하지 않았다. 장량은 자신의 처지를 정확히 알았고 공명과 이익에 초연했기 때문에 공명과 이익을 쫓던 사람들이 맞았던 비극적 운명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참으로 고명하고 지혜로운 사람이라 아니할 수 없다."
- [한초삼걸], <9장. 유방과 한초삼걸>, 장따커/쉬르훼이, 2002.


2) 한신(韓信) - 천하의 절반을 경략한 군사천재([한초삼걸], <5장>)


"정말 사람들의 말에 '날랜 토끼가 죽으면 훌륭한 사냥개를 삶아 죽이고(狡兎死走狗烹/兎死狗烹), 높이 나는 새가 모두 없어지면 좋은 활은 치워 버리며(高鳥盡良弓藏), 적을 깨뜨리고 나면 지모있는 신하는 죽게 된다(敵國破謀臣亡)'라고 하더니, 천하가 이미 평정되었으니 내가 삶겨 죽는 것은 당연하구나!"
- [사기], <회음후열전>, 사마천, 기원전 1~2세기


유방이 항우를 이길 수 있었던 힘은 책사이자 스승인 장량(자방)의 원대한 계책은 물론, 대장군 한신의 신출귀몰한 군사정책에서 나왔다.

중국 오천 년 군사역사상 최고의 군사이론가이자 군지휘관으로서 한신의 전략전술이야말로 '실정에 맞는 물과 같은 무형의 대책으로 유형의 적을 제압'하는 '출신입화(出神入化)'의 정점으로 평가된다.
'다다익선(多多益善)'으로 수백만의 군대라도 지휘할 수 있었다는 한신은 '먼저 계획을 세운 후 출병(선계후병:先計後兵)'하고, '기이한 책략으로 승리(출기제승:出奇制勝)'하며, '적을 유인해 허를 찌르는(의병시형:疑兵示形)'까지 '5대 군사사상'의 대가로 정리된다([한초삼걸], <6장>).

한신은 온갖 '병법'에 능통했고 군사정책에도 능수능란했는데, 그는 꾸준한 독서를 통해 천시와 지리는 물론 인문학적 소양도 두루 지닌 무인이자 지식인이었다.

초나라 회음 민중 출신의 한신은 아마도 전국시대에 몰락한 귀족 가문이었을 수도 있지만 정확히는 알 수는 없고 청년 시절 빌어먹다가 전란의 시기를 맞아 항우의 보초병이 되었다. 큰 뜻을 품었기 때문이었기도 하겠지만 한신 같은 거구의 건장한 청년이 빌어먹거나 평민 다수가 소작농이나 유민으로 내몰리는 상황 자체가 반란의 객관적인 필수요소다. 진나라 말기가 바로 그랬으며, "진섭(진승)의 탄식과 한신의 분노는 고된 세상에 대한 분노와 원망으로서, 이들이 진나라에 항거했던 사상적 출발점"([한초삼걸], <1장>)이라고 이 책의 저자들은 평가하고 있다. 
어쨌든, 항우로부터 중요하게 기용되지 못한 한신이 유방의 진영으로 귀순했을 때 그의 재능을 알아본 승상 소하의 추천으로 한신은 대장군이 되었다. 

한중에서 대장군으로 제수된 한신이 유방에게 제출한 '한중대책'(기원전 206년 5월)은 항우진영과 유방진영의 객관적 정세비교와 공신들의 성과에 따른 봉읍을 권하면서, 장차 제후가 되고 싶었던 본인의 뜻을 이루고자 한 정치전략이었다. '한중대책'은 1년이 지나 팽성전투에서 유방군의 대패 후 장량이 제출한 '하읍대책'(기원전 205년 4월)과 함께 유방의 한나라가 승리할 수 있게 한 매우 중요한 정치전략이었다. 장량의 '하읍대책'에서 항우를 포위하여 고립시키는 군사작전(북쪽의 제왕 한신, 남쪽의 구강왕 경포, 배후의 위왕 팽월)은 '한중대'를 통해 중국 동북부 일대를 제패한 한신의 백만대군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했다.


"한신은 군사이론과 지휘재능을 겸비한 위대한 군사가다. 5년 간의 초한전쟁에서 그가 이룩한 업적은 중국 군사역사상 전무후무하다. 유방은 한신을 얻었기 때문에 통일전쟁의 과정을 대폭 단축할 수 있었다. 한신의 '성동격서', '명수잔도 암도진창', '배수진'. '십면매복' 등의 전략전술은 2천년 동안 군사가가 이루기 어려웠던 전쟁의 기적이다. 한나라의 건국에 기여한 한신의 군공은 실로 거대했다. 그러나 삼족이 멸족되는 비운을 맞았기 때문에 후대인들은 그에 대해 무한한 동정심을 나타냈다."
- [한초삼걸], <9장. 유방과 한초삼걸>, 장따커/쉬르훼이, 2002.


대장군 한신은 옛날의 중원인 '삼진(조/위/한)' 지역을 장악하고 동북의 연 땅을 항복시키며 동쪽 끝의 제나라까지 정복하는데, 유방은 한신을 견제하기 위해 그의 정예군을 계속 빼앗아 갔고 한신은 정벌한 지역의 오합지졸과 신병부대를 양성해 가면서 중국 동북부를 장악하고는 제왕이 되어 항우군을 포위하는 '천하삼분지세'를 만든다. 향우와 유방의 초한전쟁의 전장은 실상 한신의 제나라까지 독립하였다면 초-한-제 '삼국전쟁'이 될 수도 있었다. 그러나 한신은 제후의 욕심은 강했지만 섣불리 주군인 유방를 배신하지 않고 '의리'를 지키고자 했다. 한신의 책사 괴통(괴철)을 비롯한 혹자들은 그의 우유부단함을 비난하고 지적했는데, 
결과적으로 한신의 '반역'은 한고조 유방의 공신 숙청작업 제1의 과제였다. 제왕에서 초왕으로, 또 회음후로, 왕에서 제후로 강등되며 죽음을 앞두게 된 한신이 뒤늦게 반란을 획책했을 때는 이미 늦은 후였다.

한신의 '토사구팽'은 역사 속 '2인자'의 운명이란 어떤 것인지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이기도 하다.


3) 소하(蕭何) - 나라의 근본을 안정시킨 명재상([한초삼걸], <7장>)


"승상으로서 소하의 핵심 임무는 유방이 전선에서 전투를 수행하는데 필요한 군수품을 원활하게 공급하고, 파촉의 식량과 군수물자를 개발하여 유방을 도와 천하를 평정하는 것이었다."
- [한초삼걸], <7장. 소하, 나라의 근본을 안정시킨 명재상>, 장따커/쉬르훼이, 2002.


그리하여 정치의 달인 '소하'가 소환된다.
'한초삼걸' 중 가장 장수한 소하는 유방이 패현의 정장 시절 현의 말단 사무직 공무원으로서 오래전부터 유방과 함께 했고, 아마도 유방이 반역을 하게 만든 초기의 지식인 책사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장따커와 쉬르훼이의 [한초삼걸]에서는 유방의 고향 패현의 동지였던 소하가 유방보다 한 살 많은 기원전 248년생이었다고 한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그에 따라 유방은 기원전 247년생(?)으로 추정되었고, 장량은 유방보다 네 살 많은 기원전 251년생, 한신은 기원전 228년생으로 유방보다 열아홉 살 가량 어리다. 참고로 항우(기원전 232년생)는 유방보다 열 다섯 살 적고 한신보다 네 살 많은 것으로 추산된단다([한초삼걸], <1장>).

소하는 유방이 본인보다 네 살 많은 '스승'이자 최고 책사인 장량을 대동하여 전장에 나가고, 한편으로 젊은 대장군 한신이 전선을 넓히는 동안 유방의 본거지(패현, 관중 등)에서 후방 지원과 정국 안정을 수행한 정치가였다.
유방은 자신보다 한 살 많은 소하를 평생 존중했다고 하며, 소하는 이 '삼걸' 중 가장 오래 살아 남았다.


"유방은 때때로 소하에게 경고를 보냈고 곳곳에서 경계하였다. 이에 대해 소하는 평생 지나치게 조심하고 신중했으며 '전전긍긍'하였다. 참으로 애석하고 가련한 일이었다."
- [한초삼걸], <9장. 유방과 한초삼걸>, 장따커/쉬르훼이, 2002.


장량은 제왕이 될 유방의 '스승'으로서 근신했고, 한신은 군주인 유방보다 군공이 더 컸기에 억울하게 숙청을 당했던 한편, 소하는 유방이 전투에서 패배하고도 계속 재기할 수 있도록 후방에서 지원한 큰 공을 세우고도 절대로 유방을 넘어서려 하지 않으면서 항상 유방의 뒷편을 조용히 지켰다. 소하의 속내는 알 수 없지만 그는 자신을 존중하기는 하나 권력이 공고해질수록 본인을 감시하고 견제하게 된 유방에게 계속 몸을 낮추며 '전전긍긍'하는 삶을 살았다. 한나라의 승상으로, 즉 정치적 '2인자'로 만족하고 살았지만 국가의 안정과 본인의 안위를 위해 '전전긍긍'하며 평생을 지낸 '가련한' 영웅으로 [한초삼걸]의 저자들은 소하를 평가한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초한전쟁 승리를 가능케 한 '서한삼걸' 중 하나인 소하의 공이 폄하되지는 않는다. 한고조 유방은 공식적으로는 함께 전장을 누빈 동지 조참을 식읍 1만6천호의 '1등 공신'으로 세웠지만, 항상 자신의 후방을 지켜준 승상 소하를 비공식적인 '1등공신'으로 추천했다.


3. '한초삼걸(漢初三傑)'의 최후


"장량은 유방을 섬기며 '스승이면서 또한 벗'의 관계를 유지했고, 소하는 유방을 수행하며 늘 '전전긍긍'했으며, 한신은 유방의 명성을 능가하여 '토사구팽(兎死狗烹)' 당했다. 이것이 '한초삼걸(漢初三傑)'의 결말이다."
- [한초삼걸], <9장. 유방과 한초삼걸>, 장따커/쉬르훼이, 2002.


과연, '한초삼걸' 중 누가 유방의 뒤를 이어 '2인자'가 될 수 있는지 알 수는 없다.
사실, 의미도 없는 것이 이들 '서한삼걸' 모두가 적재적소에서 유능하게 자기 역할을 해냈고, 설령 견제는 했지만 유방이 이들로 하여금 역량을 펼쳐 자신의 대업에 기여할 수 있도록 장을 펼쳐 주었기에 '한초삼걸'은 중국사 최초의 '천하 최강의 참모진'이 되었다.

그들의 최후를 되짚어보는 건,
한참 후대인 나에게 있어, 
한낱 '서정(抒情)'에 지나지 않을지 모르겠다.

장량의 '도인' 같은 말년은 그 자체로 인간의 욕심과 욕망을 초월한 넘사벽의 사례이고,
한신의 우유부단한 '의리'는 비록 역사에서는 소인배들에게 패배했지만 그럼에도 대인배의 잔영을 남기기도 하며,
소하의 '전전긍긍'은 국가를 안정시킨 명재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천하제일 음모가 진평과 함께 한신과 여태후 등 잠재적 정적을 숙청하는 정치적 장수(長壽)의 구차한 이면을 씁쓸하게 보여주기도 한다.

다만, 
한 시절을 구가한 '삼걸(三傑)'을 기릴 뿐이다.

장따커와 쉬르헤이의 [한초삼걸](2002)의 원제는 [중국사상가평전-장량,소하,한신평전]이다.

***

1. [한초삼걸(漢初三傑) / 중국사상가평전-장량,소하,한신평전](2002), 장따커/쉬르훼이, 장성철 옮김, <지식노마드>, 2011.
2. [사기(史記)], 사마천 지음, 김원중 편역, <민음사>, 2007.
3. [원본 초한지(서한연의)], 견위 지음, 김영문 옮김, <교유서가>, 2019.
4. [유방(劉邦)](2005), 사타케 야스히코 지음, 권인용 옮김, <이산>, 2007.
5. [제왕의 스승, 장량(張良傳:風神謀士)](2008), 위리 지음, 김영문 옮김, <더봄>, 2021.
6. [초망(楚亡) - 항우에서 한신까지](2015), 리카이위안, 김영문 옮김, <글항아리>, 2021.
7. [진붕(秦崩) - 진시황에서 유방까지](2015), 리카이위안, 이유진 옮김, <글항아리>,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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