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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습 중산층 사회 - 90년대생이 경험하는 불평등은 어떻게 다른가
조귀동 지음 / 생각의힘 / 2020년 1월
평점 :
'능력주의'의 덫을 벗어나는 다수 '노동'의 연대
- 미국의 [엘리트 세습]과 한국의 [세습중산층 사회]
"신소유주의(신자유주의)는 주로 과도한 '능력주의' 이데올로기와 연결된다. 일반적으로, '능력주의' 언술은 경제체계의 승자를 찬양하며 패자를 본인의 능력과 덕성과 근면의 부족 탓이라고 간주하고 매도한다. 이것은 당연히 오래된 이데올로기로, 모든 엘리트가 어떤 풍토에서든 자신들의 입지를 정당화하기 위해 이런저런 방식으로 활용해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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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평등'은 무엇보다도 '이데올로기'적이다. 현재의 신소유주의는 19세기 초의 고전시대 소유주의와는 다르게 더 이상 명시적으로 '납세유권자'적일 수 없기에 그만큼 더 '능력주의'를 고취하려 한다."
- [자본과 이데올로기], '3부 20세기의 거대한 전환 - 13장 하이퍼자본주의 : 현대성과 의고주의 사이에서', 토마 피케티, 2019.
2013년에 [21세기 자본]이라는 책을 통해 자본수익률이 경제성장률보다 갈수록 높아지는 자본주의 정치경제 체제는 "과거가 미래를 먹어치우는([21세기 자본], <결론>)" 사회라 규정하며 현대의 '불평등' 문제에 천착한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는, 2019년 [자본과 이데올로기]에서 좀더 좌파적인 시선으로 현재의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 정치경제 체제를 '신소유주의'로 부르며 분석한다. 그가 추적하는 '불평등'의 기원은 가치증식(이윤)을 위해 '형성기'에는 "위험추구적이고 기업가적([21세기 자본], <2부 3장>)"이나 "충분히 축적되면... 늘 지대로 바뀌는 경향(같은책, 같은장)"으로 '변신'하는 자본이다. 칼 마르크스가 [자본론]에서 규정한 자본의 본질은 '끊임 없는 자기증식 운동'인데 피케티는 이 운동형태의 '지대추구성'을 보며 '자본의 변신(같은책, 같은장)'을 갈수록 심화되는 현대 '불평등'의 한 조건으로 전제한다.
피케티의 '신소유주의(신자유주의)' 분석에는 여러 개념이 사용되는데, 그 중 '브라만좌파'와 '상인우파' 이야기가 있다. 전통적인 자본가나 지주계급에 뿌리를 둔 '상인우파'는 원래부터 '불평등'의 근원인 반면, 신자유주의 시대를 연 '브라만좌파'는 기존 산업시대 생산력 발전의 주력이었던 '노동계급'의 자녀들로서 평등교육의 혜택을 입고 유럽의 사회민주당과 미국의 민주당의 주력이 된 '좌파' 세대를 이른다. 우리의 '강남좌파'와 '86 세대'와 같다.
이 '교육'을 통해 '지식인' 계층을 형성한 '브라만(힌두교 성직자/지식인) 좌파'는 체제의 기득권을 형성하면서 기존 권력층인 '상인우파'와 결탁하고 신자유주의 체제 유지를 위한 권력동맹으로 굳게 결탁된다. '정치'적으로는 싸우는 것 같지만 '경제'적으로는 이익을 공유하는 양당제 거대정당 과두지배의 맨얼굴이다. 정확히 우리 사회 민주당의 모습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또 하나의 개념이 파생적으로 연결되는데, 바로 '능력주의(meritocracy)'다.
[자본과 이데올로기]의 결론인 '참여사회주의'와 '사회연방주의'의 조건 중 '누진적 조세제도' 외에도 '교육'과 기회의 평등 및 공공재 소유의 확산이 제기된다. 피케티의 관점에 '능력주의'는 엘리트 계층이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강조해 온 이데올로기다. 이 '능력주의'라는 '허위의식(ideology)'은 '불평등'의 정치경제적 근원을 은폐한다.
"모든 문명사회는 '능력주의(meritocracy)'가 속임수라는 사실을 부정한다...
부와 특권의 집중과 세습을 대대손손 유지하는 메커니즘이자 원한과 분열을 불러일으키는 계층제도가 된 것이다. 심지어 새로운 '귀족제도(aristocracy)'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장 중요한 사실은 사람들의 삶을 지배하는 고통이 '능력주의'가 불완전하게 구현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능력주의' 그 자체 때문이라는 점이다... '능력주의'는 시민 대다수를 사회 주변부로 몰아내고 중산층 어린이들을 무기력한 학교로, 중산층 성인들을 장래성 없는 직장으로 보낸다...
다시 말해 '능력주의'는 조직적인 계층 갈등을 조장해 사회적, 정치적 생활을 망가뜨린다... '능력주의'에 힘입은 엘리트들은 제 아무리 순수한 동기를 지니며 양심적인 방법으로 성공을 거둔다 해도 포부와 성과를 달성하는 과정에서 자신들이 비판하는 '불평등'에 관여하게 된다."
- [엘리트 세습], '서문', 대니얼 마코비츠, 2020.
예일대 수학과, 런던 정경대 경제학과 석사와 옥스포드대 철학과 박사 학위를 얻은 미국 예일대 로스쿨 교수이자 사법연구소 소장인 대니얼 마코비츠는 엘리트들 사이에서도 '천재'로 불린단다. 학위와 직업 소개에도 숨이 막히게 재수없는 이 엘리트가 토마 피케티의 '불평등' 연구에 뒤질세라 본인이 속한 미국사회 엘리트 계층의 주요 이데올로기인 '능력주의'를 신랄하게 깐다. 세부 내용 하나하나 수긍할 만 하나 나는 사실, 제목과 표지가 마음에 들어 사서 읽었다. 고대 로마의 제국 팽창과 공화국의 몰락의 근본 토대는 고대 노예제 정치경제체제의 모순이었겠으나, 표면적으로는 부와 성공, 벼락출세자들에 대한 숭배도 원인이었으며 그 지배 이데올로기가 '능력주의'였다 생각했고, 마침 이 책 표지에 그려진 상상의 동물 '그리핀(Griphios)'이 고대와 현대를 이어주는 매개 같았다.
마코비츠는 [엘리트 세습]에서 미국 사회를 분석하면서 미국의 전문직과 화이트칼라 금융업 고위직 종사자들은 '기술혁명'과 궤를 같이 하면서 기존 미국의 '산업민주주의'를 만들어온 '중산층'을 무너뜨리고 '불평등'을 심화시켰는데 이를 가속화시킨 핵심 분야가 '교육'과 '직업'이라고 한다. 부자집안 아들 부시와 중산층 클린턴은 재산의 차이 외에는 교육이나 사회진출의 기회 또는 생활에서 큰 차이가 없었으나 이후 기득권이 된 클린턴 부부나 오바마 등의 민주당 정치권력자들 부류는 자식에 대한 '인적자본' 투자인 '교육'의 불평등을 조장하거나 이용하여 '엘리트 세습' 체제를 강화했다는 것이다.
마코비츠는 [엘리트 세습] 곳곳에서 피케티를 의식하는데, 마치 '불평등'의 기원을 '자본'에서 찾는 피케티의 관점에 이의를 제기하고자 함이다. 어차피 사라져가는 미국 '중산층'을 염려하며 오랜 미국의 영화를 되살리고 싶은 이 미국 엘리트 '천재'에게 마르크스나 사회주의 같은 지난 서사담론은 안중에 없을 것이니, 주류 엘리트에 도전하는 신세대 정치경제학자 토마 피케티는 같은 '엘리트'로서 '경계'의 대상일 수 있겠다.
마코비츠에 의하면 미국 산업의 전성기를 통과한 '중산층'은 미국의 상위 '엘리트'들에 의해 '교육'에서도 밀려나고 '직업' 또한 '번지르한 일자리'가 줄어들면서 '게으른 삶'을 강제당한다는 것이다. 한편으로 '엘리트' 또한 재능 없이 물려받은 재산만으로 '여가'를 즐기며 일하지 않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던 전통적인 '귀족'들과 달리 고수익과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일을 하는 '자기착취'를 통해 비참한 삶을 영위하고 있으므로 "이제 중산층 노동자와 상위 (엘리트) 노동자를 포괄하는,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같은책, <결론>)"는 선언으로 "오래된 구호([공산당선언])를 새롭게 인용(같은책, <결론>)"하며 책을 끝맺는다.
고소득을 받지만 쉬지않고 일을 하는 현대의 '귀족' 엘리트는 어려서부터 상위권 교육환경에서 살인적인 경쟁에 시달려 왔고 '번지르한' 직업에 진입해서도 쉼없는 '자기착취'로 피폐한 삶을 산다. 한편으로 20세기 중반까지 미국을 성장시킨 '중산층'은 중간관리직 일자리가 고위 엘리트들의 '기술혁신'에 의해 줄어들고 소득이 줄어 소비도 줄어드는 악순환으로 빈민계층과 격차가 좁아지고 있다.
수학과 경제학, 철학까지 전공하고 명문대 로스쿨에서 상위 엘리트층 자녀들을 가르치는 '천재' 마코비츠의 뛰어난 수치분석과 비교 그래프들은 화려하기는 하나 미국사회의 분석이므로 저자의 '진보'스러운 수사에도 불구하고 공허하다. '중산층'을 복원하고 '엘리트'를 연민하며 미국 노동자들을 '단결'시켜 얻을 '새로운 세상'이라 해봐야 결국 18~20세기 미연방 공화국의 영광 뿐 아니겠는가.
'불평등'의 정치경제학적 근본 분석은 피해가면서 미국사회가 빠진 '능력주의의 덫' 자체가 극복해야 할 과제라는 서술을 지루하게 읽다보니 얼마전 꼭 읽어야겠다 생각한 우리 책, [세습중산층 사회]가 떠올라 바로 주문하였다.
마코비츠 책, [엘리트 세습]의 원제는 '능력주의 덫(The Meritocracy Trap)]이다.
"한국 자본주의의 고도화는 80년대 학번-60년대생의 시기에 이르러 학력과 전문지식, 직업, 경제적 지위가 맞물린 테크노크라트에 가까운 집단을 대규모로 창출했다. 이들은 이전 세대인 50년대생과 비교해 전문직이나 대기업 내 관리직 비율이 높았다. 또 시대에 맞는 전문지식과 기술을 갖추었기 때문에 1990년 중반 이후 금융과 IT 산업에서 1세대 엘리트층을 구성하게 된다... 또 386세대는 베이비붐 세대보다 동일 연령대에서 자산 축적을 훨씬 더 많이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그들은 '교육'을 통해 자녀에게 자신의 계층 지위를 물려주기 위해 분투하면서 '세습중산층 사회'를 만들어냈다."
- [세습중산층 사회], '6장 세습중산층의 기원', 조귀동, 2020.
경제학 박사과정에서 '인적자본'이 노동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한다는 저자 조귀동은 [세습중산층 사회]에서 한국사회 기득권이 된 '86세대(80년대 학번-60년대생)'와 그들의 자녀들인 '90년대생'들을 통틀어 '세습중산층'으로 본다. 이 책은 아마도 경제학 박사학위 논문을 책으로 낸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같은 시기에 미국에서 나온 마코비츠의 [엘리트 세습] 못지 않게 온갖 수치와 그래프 및 수학적 비교분석이 대부분인데, 결국 '86세대'가 한국의 노동시장을 석권하고 부동산시장을 점령하였으며 그럼에도 자산 뿐만 아니라 90년대생 자녀들을 엘리트 교육시장에까지 진출시키면서 '중산층'의 지위를 세습하는 사회라고 분석하고 있다.
우선 조귀동의 '세습중산층'은 마코비츠의 '중산층'과 다르고 상위 엘리트층이 약간 확대된 것으로 보면 된다. 한 세대 전 '교육(명문대)'을 통해 전문직과 화이트칼라 금융직 등에 종사한다는 점에서 그렇고 그들의 앞세대처럼 물적자산을 물려주기 보다는 효율성 높은 인적자산을 키워주기 위해 '교육'에 투자하는 점에서 그렇다. 한편 마코비츠의 '중산층'은 '세습중산층 사회'에서는 '중하위 80%'에 해당하는 계층 일반으로 보면 된다.
자녀들이 좋은 '직업'을 구할 수 있도록 치열한 입시경쟁 '교육'에 투자하는 '세습중산층 사회'의 분석에 앞서 조귀동은 '노동시장' 분석부터 시작하여 20대 세대 분석, '세습중산층'의 기원인 '86세대' 분석, 그로 인해 세습되는 '계급의식'과 20대 정치성향 분석 등을 수많은 수치비교를 통해 전개하면서 '세습중산층 사회'의 진화를 예측한다.
조국 전장관 자녀 특혜 비리에 대해 분노한 20대라고 해봐야 그 사건을 통해 '피해'를 볼 수도 있는 상위층 자녀들이고, 나머지 다수 20대에게는 남의 나라 얘기일 뿐이다. 예전에는 '개천에서 난 용'이었던 '86세대'가 부동산과 교육, 노동시장을 다 독식한 결과 그 비슷한 '중산층'의 삶을 물려받는 90년대생 자녀들 이후로는 이 망할 '세습중산층 사회'가 더욱 강화된다는 전망 앞에서는 그냥 책을 덮고 싶었다.
"오히려 문제는 명문대를 나오고, 번듯한 '직업'을 가지고, 사회적 인정과 경우에 따라 명망까지 가진 '80년대 학번-60년대생'이 '90년대생'인 자신의 자녀들이 적합한 '능력'을 갖추도록 독려하고, '교육' 제도를 잘 이용해 새로운 경제 여건과 시대 상황에 걸맞는 '인재'로 키워내는 데 성공하는 것 그 자체다."
- [세습중산층 사회], '에필로그 : 세습중산층의 진화', 조귀동, 2020.
[세습중산층 사회]의 저자 조귀동은 이런 '능력주의' 자체가 문제가 된 이 사회를 바꾸기 위해 책의 결론(에필로그)에서 '기회의 평등'과 '누진적 조세'를 제안하는데 다수인 90%가 상위 10%가 접근할 수 있는 공공교육과 상위 10%의 소득에 대한 세금 확대가 그것이다. 결국 '능력주의'의 문제도 '교육'과 '직업(노동)'이며, 해법도 '교육'과 '노동(직업/조세)'에서 찾는다. '자본'이 만든 '능력주의'는 여전히 이윤을 찾아 우리 삶 전 영역을 헤맨다.
"'능력주의'는 귀족제도를 해체하기보다 재편해 부가 토지나 공장이 아닌 인적자본, 즉 숙련 노동자의 자유로운 형태로 존재하는 세상에서 카스트와 같은 계층질서를 만들어낸다... 능력은 능력으로 대체된 귀족의 가치처럼 자연스럽거나 보편적인 덕목이 아니라 앞서 존재한 '불평등'의 결과물이다. 능력은 인적자본의 착취를 정당화하고 부당한 분배를 눈가림하기 위해 만들어진 인공구조물이다."
- [엘리트 세습], '1부 3장 다가오는 계층전쟁', 대니얼 마코비츠, 2020.
피케티나 마코비츠나 조귀동 모두 '불평등' 문제에 주목하고 방대한 조사와 데이터 연구분석을 통해 원인을 규명하면서 더 나은 세상을 지향한다. '불평등'의 토대가 자본주의 정치경제체제라는 근본적 분석에 동의하든 말든, 미국의 '엘리트-중산층' 대립이나 우리의 '86세대-90년대생' 세습관계 등의 계층이나 세대 분석적 접근은 우리의 시야를 넓혀 준다. 그리고 그 다양한 분석들을 망라하는 변혁의 방식으로 이들 모두가 제출하는 것은 '연대'다.
여기에 한 발 더 나아가 '자본'과 '시장'의 무한증식 팽창을 다수가 통제하기 위한 '노동'의 '연대'라면 더욱 좋겠다.
LG 자본에 의해 쫓겨나는 청소노동자들이 바라는 것은 '능력주의의 덫'이든 뭐든 중요한 게 아니라 오로지 인간답게 주체적으로 일하는 것이다.
'노동'하는 다수의 광범위한 연대를 통한 '평등' 지향이라는 방향성이 없다면, 우리 사는 이 세계는 너무도 절망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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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엘리트 세습](2020), 대니얼 마코비츠, 서정아 옮김, <세종>, 2020.
2. [세습중산층 사회], 조귀동, <생각의힘>, 2020.
3. [21세기 자본](2013), 토마 피케티, 장경덕 외 옮김, <글항아리>, 2014.
4. [자본과 이데올로기](2019), 토마 피케티, 안준범 옮김, <문학동네>, 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