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회찬과 함께 읽는 조선왕조실록
노회찬 지음 / 일빛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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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적들은 '이익'을 지키고, 군자는 '명예'를 지킨다.
- 노회찬, [힘내라, 진달래](2004), [우리가 꿈꾸는 나라](2018)




"... 정책을 인물보다 앞세우는 일은 시련의 연속이다. 정책으로 인격화되지 않는 인물은 정치적 동물일 뿐이라는 사실. 정책이 인물보다 더 감동적일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것이 이번 총선의 전투지침이다. 
모든 전투는 시련이다."
- 노회찬, [힘내라, 진달래], '1.22. 일지', <사회평론>, 2004.


2004년 2월부터 시작된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 정국' 속에서 그 해 4월 15일에는 17대 국회의원 총선거가 실시되었다. 299명 국회의원 중 신자유주의 '개혁'을 하려던 열린우리당이 152석, 그냥 수구세력 한나라당이 121석, 민주당과 자민련은 9석과 4석으로 찌그러졌고, '무상의료'와 '무상교육', '부유세' 등의 보편복지 정책과 1인2표 '정당식 비례대표제' 도입을 위해 선거제도 개혁투쟁을 했던 민주노동당이 10석을 차지하면서 4.19 혁명 이후 44년만에 '진보정당'이 국회에 들어간 첫 선거였다.

1992년 민중당의 실패 후에도 지침없이 '진보정당' 건설운동에 매진했던 '진보정치인' 노회찬 선생은 1997년 말 IMF체제와 함께 치러진 대선에서 '96년 총파업을 이끌었던 민주노총 권영길 위원장을 대선후보로 한 '국민승리21'의 중심에 있었고, 역시 2000년 초 창당된 '일하는 사람들의 희망' 민주노동당의 사무총장, 선대본부장으로 2004년 총선을 치른다. 이 해 1월부터 3월 말까지의 기록이 '총선 난중일기'라 불리는 [힘내라, 진달래]다. 

노회찬이 앞장선 민주노동당의 첫 총선에서 전국 각 지구당의 수많은 지역구 후보들과 당원들은  '무상의료'와 '무상교육', '부유세' 등 우리 사회 전례없던 보편복지 정책을 홍보하는 인간피켓이 되고 인간플래카드를 자처하며 이러한 의제들을 전사회적으로 공론화했다. 이러한 '진보정당' 운동은 노회찬의 표현에 따라 "삼겹살 판을 갈기 위해" 그 진보정당이 국회에 들어간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 
'이념정당'이냐 '대중정당'이냐, '대중투쟁'이냐 '의회주의'냐, '혁명'이냐 '개혁'이냐 등등의 어려운 논쟁 속에서 '진보정당'이 몇 차례 부침을 겪으며 '의회' 중심의 '개혁'적 '대중정당'으로 자리잡는 과정에서, 당시 지구당의 후보들이었던 수많은 '소대장'들도 스러져 갔다. 함께 했던 '소총수' 당원들은 얼마나 남았을까 싶지만, "흐르는 물처럼 한 사람이 가고 한 사람이 태어난다('2004.1.16. 일지')"는 노회찬 총장의 말처럼 '진보정당'도 이를 만들어가는 사람들도 어제의 그들과 같을 수는 없을 터. 
흐르는 물처럼 "모든 사물은 변화한다. 변증법 제1조 1항이다.('2004.2.10. 일지')"


"라디오 토론이니 점잖게 진행될 줄 알았는데 시작부터 난투극이다. 5분도 채 되지 않아 서로 사과하라고 언성 높인다. 국민들 앞에 고개들 처지도 아닌데 희대의 영웅처럼 큰소리다. CBS의 좁은 스튜디오가 동물원 우리처럼 느껴진다.
이러니 점잖고, 상식적이고, 순박한 사람들은 정치권을 꺼려하지 않았는가. 그 정치권에 이제 민주노동당이 들어간다. 타잔이 되어야만 이 동물들을 다룰 수 있다."
- 노회찬, [힘내라, 진달래], '3.3. 일지', <사회평론>, 2004.


후보와 이미지, 지역과 학연을 내세운 기존 정치와 선거에 맞서 보편복지 '정책'을 앞세운 '진보정치'가 노회찬을 비롯한 수많은 진보정당 지지자들의 숙원이었다. 
"정책으로 인격화되지 않는 인물은 정치적 동물일 뿐이라는 사실. 정책이 인물보다 더 감동적일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것('2004.1.22. 일지')"이라 상정한 17대 총선의 '전투지침'은 앞으로도 변함없는 '진보정당'의 선거지침이다.
'진보정치인' 노회찬은 갔어도 그의 '진보정치 지침'은 올곧게 남았다.


"여의도 나들목 부근은 어느새 밀려온 봄꽃 천지다. 개나리가 듬뿍 피어 있고 벌써 곳곳에서 진달래가 고개를 내밀고 있다. 3월 28일 아침 여의도. 노란 개나리와 연분홍 진달래꽃이 지금의 열우당과 민주노동당 지지율만큼 상륙해 있다.
힘내라, 진달래. 가슴도 눈시울도 연분홍이다."
- 노회찬, [힘내라, 진달래], 3.28. 일지', <사회평론>, 2004.


'총선 난중일기' [힘내라, 진달래]는 본 선거운동이 시작되기 전인 3월말에 끝나고 본 선거운동인 4월의 메모는 손질된 글로 나오지는 않았다. 그 해 총선 후 10월 이 기록들은 [힘내라, 진달래]라는 제목으로 "전태일 영전에 바친다"는 '서문'과 함께 출간되었고 13회 '전태일문학상' 특별상을 수상한다.

봄이 와서 노란 개나리가 흐드려지고 조금 늦은 연분홍 진달래가 꽃판을 조금씩 점령하고 물들여가는 상상. 기존 정치판에서 '진보정당'의 미래에 대한 '진보정치인' 노회찬의 바램이었다. 
"힘내라, 진달래!"




"촛불의 가장 큰 의의는 무엇일까요? 잘못한 대통령을 끌어내리고 감옥으로 보낸 것일까요? 가장 중요한 것은 정권 교체를 총칼을 든 군인이 아닌, 촛불을 든 시민들이 민주주의 절차를 지키며 이뤄냈다는 점입니다.
민주주의는 시스템입니다. 사람들이 자기 생업 또는 하고 싶은 일에 전념해도 시스템이 잘 작동하면 나라가 문제없이 운영될 수 있습니다... 촛불이 일어난 것은... 시스템이 망가졌기 때문입니다... 모여서 무엇을 했습니까?... 계속 외쳤습니다. 시스템을 복구하라고 말입니다... 언제든지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면,... 국민들은 마음속의 촛불을 꺼내들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촛불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촛불 이후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공정, 평등, 평화를 사회에 정착시키는 중요한 과제가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1987년에 미처 이뤄내지 못했던 일들이지요. 그리고 그 과제들을 풀기 위해 정치부터 바꿔야 한다고 했습니다. 정치를 바로 세우기 위해 가장 중요하며 필요한 일은 무엇일까요? 역시 촛불의 경험이 알려주지요. 국민의 참여가 필요합니다."
- 노회찬, [우리가 꿈꾸는 나라], '참여가 세상을 바꾼다', <창비>, 2018.


내가 유일하게 존경한 '진보정치인' 노회찬 의원이 돌아가시기 전인 2018년 초, <창비>에서 주최한 특강 녹취록을 엮어 그가 운명을 달리한 후인 그 해 9월에 출간된 [우리가 꿈꾸는 나라]는 그의 마지막 '유작'이 되었다.

1987년 이후 체제는 거리에 모인 민중의 힘으로 '민족', '민중', '민주'를 쟁취했다. 
노회찬은 2016~2017년 '촛불항쟁' 이후 우리 사회의 과제는 '공정', '평등', '평화'를 사회에 정착시키는 것이라고 말한다. 여기에 국민의 참여를 보장하는 '민주주의' 시스템은 이제 되돌릴 수 없는 운영원리이며, 이러한 민의가 제대로 의회에 반영되는 정치제도와 선거제도 개혁이 그의 유일한 '정치노선'이었다. '대중투쟁'이냐 '의회주의'냐, '혁명'이냐 '개혁'이냐 등의 논쟁에 대하여 그가 일생의 고단한 삶을 통해 우리에게 구체적으로 제시한 답변이었다.

'혁명'은 체제를 뒤집는 것을 이르는데, '촛불'이 '혁명'이 아니라 '항쟁'이었던 이유는 '촛불'이 '체제변혁'을 요구한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라는 시스템의 상식적인 '복구'를 요구하고 이룬 것이기 때문이다.
'촛불'이 '혁명'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정치개혁과 선거제도 개혁을 담은 새로운 헌법개정으로 '제7공화국' 체제를 열어야 한다는 것이 '진보정치인' 노회찬의 역설한 [우리가 꿈꾸는 나라]다.


그는 '작가'는 아니었고 '정치인'이다 보니 '글'보다는 '촌철살인'의 '말'이 더 유명했다. 그러나 오래전부터 멀리서나마 보아온 그의 '글'은 유명해진 그의 '말'보다 더 빛나기에, 나는 감히 그를 좋아하는 '작가'로 추천한다. 그의 '촌철살인'이 어디에서 나왔겠는가. 매순간 치열하게 사색하고 행동하며 메모한 그의 '글'이 원천인 것이다. 
아마도, 그럴리는 전혀 었었을 것이나 '정치인' 노회찬으로 살지 않았다면 [조선왕조실록]과 같은 우리의 역사와 나아가 인류 전체의 역사를 '진보적'으로 우리에게 재미있게 풀어 설명해주는 이웃집 '작가' 아저씨가 되었을 수도 있겠다.
작가 유시민보다 훨씬 더 친근한 그런.


노회찬 의원 2주기인 2020년 7월 들어 그의 책을 다시 뒤적이던 중, 박원순 서울시장의 사망소식을 듣는다. 입이 있는 자들은 숱하게 떠들어대고 있으나, 내게 떠오른 문장은 한 줄이었다.

'도적들은 이익을 지키고, 군자는 명예를 지킨다'

[논어], [맹자]에나 나올 법한 문장은 인용이 아니라 최근 비보를 듣고 무시로 떠오른 것인데, 전두환, 이명박, 박근혜 같은 자들은 '무죄'를 주장하며 개인의 '이익'을 목숨걸고 지키려 하고 노회찬 같은 군자는 '명예'를 지키기 위해 결국 목숨까지 내놓았기 때문이다.
'삼성 X 파일' 사건으로 '유죄'를 선고받아 의원직까지 상실했던 노회찬은 오히려 당당했으나 '드루킹' 사건 연루설은 그에게 부르주아 법원에서 '유무죄'의 차원이 아니었다. '진보정치인'으로서의 '명예'와 그가 평생을 바쳐 복무했던 인민에 대한 '의무'의 문제였다.


스스로 진보정치의 '원칙'이 되고자 했고, 그 '원칙'을 세우기 위해 일생을 바친 유일한 '진보정치인' 노회찬 선생을 다시금 떠올리는 시간들이 덧없이 이어지는 나날이다.


"스스로 원칙인 사람. 원칙은 그런 사람들에 의해 세워지고 또 관철된다."
- 노회찬, [힘내라, 진달래], '1.17. 일지', <사회평론>, 2004.


***

1. [힘내라, 진달래], 노회찬, <사회평론>, 2004.
2. [우리가 꿈꾸는 나라], 노회찬, <창비>, 2018.
3. [노회찬과 함께 읽는 조선왕조실록], 노회찬, <일빛>,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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