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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찬합시다. 릴레이 코너..

정말 사진 한 번 압박이군. 나이가 들어가면서 스냅사진이 점점 건질 것이 없어진다. 광대뼈는 튀어나오고, 눈은 점점 작아지고, 미소 또한 자연스럽지 않고...

아이, 슬퍼라..

40이 넘으면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데..

사실, 요즘은 너무 웃을 일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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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장면인지 자장면인지, 암튼 짜장면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녀석이 있는데, 그는 써클동기 정용이다.

사실, 난 결코 그와 짜장면을 같이 먹은 기억도 없고 (물론, 우리 써클의 뒷풀이는 항상 중국집이 routine course였기 때문에 서로 다른 테이블에 앉아 각자 짜장면을 먹었을 수는 있지만, 함께 얼굴을 맞대고 짜장면을 먹은 기억은 없다), 그가 짜장면을 닮았다거나, 하다못해 짜장면에 곁들여지는 단무지를 닮은 것은 더더욱 아니다.

그런데도, 짜장면을 먹을 때면 으례 그 녀석이 떠오르는 건 우리 써클 홈피에 올린 그 녀석의 한 줄의 글 때문이다.

그는 레지던트를 마치고 미국으로 한 2년간 연수를 갔는데, 그 머나먼 땅에서 고국과 친구들에 대한 그리움에 젖어 '짜장면이 너무나 먹고 싶다. 햄버거만 먹어 90kg이 다 된 정용이가'하며 절규의 단발마를 외쳤는데, 그 뒤의 댓글엔 '네가 정녕 사람이냐?" 라는 둥, " 미국이란 나라가 귀염둥이 발바리같던 너를 한 마리 돼지로 둔갑시켰구나"라는 둥, 경악과 안타까움의 목소리가 끊이지 않았었다. 나 역시 그  호리호리하고 귀엽던 young boy였던 정용이가 90kg이나 가는 거구가 되었다는 소식은 도저히 눈으로 보기 전에는 믿기지 않는 사실이었으나, 오죽 짜장면이 먹고 싶으면 저럴까 싶은 안타까움에 "얼른 온나, 내가 짜장면 곱배기 시켜줄게."하고 댓글을 달았었던 것이다.

그런 그가 어느 날부터인가 홈피에 글을 올리는 정도가 뜸하더니만, (나 역시 뭐 그리 바쁘다고 써클홈피에 한동안 방문하지 않기도 했지만) 미국에 있는지, 한국에 있는지조차 행방이 묘연해지기 시작했고, 가끔씩 섭외를 오는 써클의 후배들에게 물어보았지만 그의 거취를 아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써클 40주년 기념식에서 만난 선배에게서 그의 소식을 듣게 되었는데, 그는 울산에 내려가 개업을 하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순간, 소리소문도 없이 한국에 들어와, 알리지도 않고 그 먼 곳에다가 개업을 한 정용이에게  약간의 배신감과 섭섭함이 밀려왔다.

하하. 그는 알까? 내가 짜장면만 보면 이걸 사줘야 하는데.. 하면서 그를 떠올린다는 것을..

잘 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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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보면 어느 사물을 보았을 때, 어떤 상황에 처했을 때 연상되는 사람이 있게 마련이다.

그 연상되는 사물이나 상황은,  떠오르는 사람의 이미지일 수도 있고, 때로는 그와의 추억일 수도 있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또 긴 30여년의 ..

이제, 하나 하나 소중한 사람들과 그 소중한 이미지, 그리고 소중한 추억들을 반추해 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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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요즘 즐겨 보는 tv 프로그램 중엔 '제 5공화국'이 있다. 별로 역사에 관심이 많은 사람은 아니지만, 12.12나 5.18이 어떻게 해서 일어났는지 그 당시의 상황을 조명한 것을 들여다보는 것은 나름대로 흥미롭다. 나는 이 드라마를 보면서 분노를 하고 때론 답답해 하면서  그동안 까맣게 잊고 있던 애국심을 내 가슴 밑바닥에서 한 번씩 건져보곤 하는 것이다.

어제는 5.18을 재조명한다는 취지로 mbc에서 1시간짜기 특집방송을 내보냈다. 25년전 광주항쟁 때 그 상황을 겪고 살아남은 사람들의 증언들과 그 당시의 현장사진이나 다큐를 섞어 짜깁기한 그 방송을 보면서 난 내내 착잡함과 슬픔에 목이 매었다.

마지막 전남도청을 사수하면서 진실로 공포가 무엇인지를 체험한 그들의 생생한 증언... 이 곳의 진실을 알리기 위해 살아남기 위해 떠난 친구들이 오히려 고마왔다는 어느 목사의 이야기..  비공개 재판으로 진행된 김대중 재판을 지켜보며  한 가지라도 더 기억하여 기록을 남겨야 한 생명을 살리는 데 도움이 되리라고 기도했다던 문성근씨..

나는 내가 나약하다는 걸 안다. 아마 내가 그런 상황에 처했다면 생각해보기도 싫지만, 살기 위해서 혹은 아프지 않기 위해서 스스로 비겁함을 드러냈을 것이다. 그래서 난 그런 나의 비겁함을 드러내도록 하는 상황이 발생되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제발 제발 이제는 아픈 역사가 되풀이 되지 않기를.. 그래서 비겁함을 모면하게 되기를 ...

그 때 스러진 젊은이들의 영혼에 삼가 조의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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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직장에서 세미나가 있어 좀 늦게 집에 돌아갔더니만, 이제 막 유치원에 들어간 5살배기 아들녀석이 매달리면서, 아빠가 학교에서 스승의 날이라고 받아온 꽃을 내일 유치원 선생님께 가져다 드리겠다고 했다.

다른 친구들은 꽃을 다 가져다 드렸는데, 자기만 안 가져갔다고 하면서...

그러고 보니, 스승의 날인데 내가 너무 무심한 엄마라는 생각에  순간 너무 미안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선생님께 죄송한 것보다 친구들은 꽃을 가져다 드리는데, 혼자만 그 광경을 물끄러미 보았을 아들녀석을 떠올리니 가슴이 아팠다.

"경재야, 오는 친구들 모두 선생님께 꽃을 갖다 드렸어?"

"아니, 황도원하고 배서영은 갖다주고, 배강현하고 민지는 안 왔구.. 또.."

"친구들이 선생님께 꽃을 드릴 때 경재 기분은 어땠어?"

"친구들이 미웠어."

엄마의 무심함 때문에 친구들을 미워하게 만들수도 있다는 생각에 순간 겁이 덜컥 나기도 했다.

"그래, 내일 저 꽃 선생님께 갖다드리자."

"엄마, 최고. 엄마, 고맙습니다. 난 엄마가 제일 좋아."

녀석은 이런 말을 하면서 나를 더욱 미안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나는 갑자기 학부형이 된 것 같은 두려움과 책임감을 느끼며 오늘 하루 마음아팠을 녀석을 꼬-옥 안아주었다.



경재야,

네가 내게로 와서 내가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지?

너의 환한 미소에 내 피로가 모두 씻기고

너와의 포옹에 내 가슴은 온통 따뜻함으로 가득하단다.

너로 인해 내가 성숙하고

너로 인해 배려와 이해를 조금씩 배우며

너에게 보여지는 내 행동과 말투를 다시 한 번 반추하게 되니

비로소 어른이 되어 가는 사다리를 한칸 한칸 오르고 있는 것 같다.

늘 감사하고 늘 사랑해.. 우리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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