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협찬제작비지원너무늦은시간 클레어키건다산책방..너무 늦은 시간 뒤에는 무엇이 남을까. 후회 뿐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이상의 처참함이 그림자처럼 따라온다. 떠나간 여자를 온전히 그리워하는 것도 아니고 자신의 잘못을 순순히 반성하는 것도 아닌 그 사이에 멈춰선 남자. 주인공 카헐은 그 지점에 있다. 오직 클레어 키건만이 포착할 수 있는 인간의 내면의 복잡성을 명료하고 선명한 문장으로 그려내는 것이다. 어쩌면 사랑이 실패할 수밖에 없는 불편한 시도들이 평범한 서사일수도 있지만 키건의 소설 속에서는 관계에서 느끼는 무례와 당혹감들이 마음속에서 어두운 질문을 남기는 것이다. .."얽히고설킨 인간의 싸움과 모든 것이 어떻게 끝날지 다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삶은 대체로 매끄럽게 흘러갔다."(12~14p)..클레어키건의 새 소설집은 남자와 여자의 관계를 주제로 한다. 대부분의 소설들이 남녀간의 감정과 갈등에 대해서 다루겠지만 이 소설집은 다른 느낌이다. 화려한 서사 혹은 매혹적인 주인공으로 집중하게 되는 다른 작품과 달리 이 책은 불편한 질문을 이어가게 한다. 표제작 뿐만 아니라 <길고 고통스러운 죽음> 과<남극>도 마찬가지다. ..<길고 고통스러운 죽음>는 ‘뵐 하우스’라는 작가 레지던스에 찾아온 여자 작가가 불편한 전화를 받는 것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레지던스를 갑자기 찾아오겠다는 한 독문학 교수 때문에 그녀는 여유롭게 읽고 쓰는 시간을 망처버린다. 그래도 손님을 생각하며 케이크를 굽는 여자는 막상 그를 만나고 최악의 상상으로 스스로 방어하게 된다. <남극>은 평범하게 시작되지만 충격적이다. 평범하고 안정된 결혼 생활을 하던 여자가 불길한 예감 사이에 일탈을 저지르는 이야기라고 볼 수 있다. ..세 소설에서 여자 주인공 모두 불편함 혹은 그 이상의 불행으로 이어지는데는 상대방 남자가 원인이 된다. 독자에게는 인물을 비난하는 것 이상의 긴 불편함이 따르고 포착하지 못한 감정을 서사로 전달하는 작가의 능력에 놀라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