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늦은 시간
클레어 키건 지음, 허진 옮김 / 다산책방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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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늦은시간
클레어키건
다산책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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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늦은 시간 뒤에는 무엇이 남을까. 후회 뿐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이상의 처참함이 그림자처럼 따라온다. 떠나간 여자를 온전히 그리워하는 것도 아니고 자신의 잘못을 순순히 반성하는 것도 아닌 그 사이에 멈춰선 남자. 주인공 카헐은 그 지점에 있다. 오직 클레어 키건만이 포착할 수 있는 인간의 내면의 복잡성을 명료하고 선명한 문장으로 그려내는 것이다. 어쩌면 사랑이 실패할 수밖에 없는 불편한 시도들이 평범한 서사일수도 있지만 키건의 소설 속에서는 관계에서 느끼는 무례와 당혹감들이 마음속에서 어두운 질문을 남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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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얽히고설킨 인간의 싸움과 모든 것이 어떻게 끝날지 다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삶은 대체로 매끄럽게 흘러갔다."
(12~1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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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어키건의 새 소설집은 남자와 여자의 관계를 주제로 한다. 대부분의 소설들이 남녀간의 감정과 갈등에 대해서 다루겠지만 이 소설집은 다른 느낌이다. 화려한 서사 혹은 매혹적인 주인공으로 집중하게 되는 다른 작품과 달리 이 책은 불편한 질문을 이어가게 한다. 표제작 뿐만 아니라 <길고 고통스러운 죽음> 과
<남극>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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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고 고통스러운 죽음>는
‘뵐 하우스’라는 작가 레지던스에 찾아온 여자 작가가 불편한 전화를 받는 것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레지던스를 갑자기 찾아오겠다는 한 독문학 교수 때문에 그녀는 여유롭게 읽고 쓰는 시간을 망처버린다. 그래도 손님을 생각하며 케이크를 굽는 여자는 막상 그를 만나고 최악의 상상으로 스스로 방어하게 된다.
<남극>은 평범하게 시작되지만 충격적이다. 평범하고 안정된 결혼 생활을 하던 여자가 불길한 예감 사이에 일탈을 저지르는 이야기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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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소설에서 여자 주인공 모두 불편함 혹은 그 이상의 불행으로 이어지는데는 상대방 남자가 원인이 된다. 독자에게는 인물을 비난하는 것 이상의 긴 불편함이 따르고 포착하지 못한 감정을 서사로 전달하는 작가의 능력에 놀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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