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간을 걷다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51
김솔 지음 / 현대문학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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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간을걷다
김솔
현대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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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변을 걷는 한 남자가 있다. 그는 강을 따라 행인들 사이를 걷고 있다. 질병으로 한쪽의 결함이 있는 채로, 그는 마음의 균형이 간신히 유지된 채로 나아간다. 하지만 그의 걸음은 멈추지 않는다. 과거의 기억, 남아있는 삶에 대한 예감과 불안 어느쪽이든 그는 걷는다. 서사의 행간 사이를 천천히 걸으며 독자에게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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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졸중으로 자신의 반이 죽었다고 생각하며 죽은 너와 그리고 살아있는 나가 공존하며 호명된다. 예전에 '너'라는 2인칭시점의 소설이 대단히 특이하여 낯선 인상을 받았는데 나가 너를 포함한 불특정 다수에게 말하는 것같기도 하고, 나와 너가 화자이자 청자가 된 것 같아 굉장히 실험적이었다. 너와 나는 사실 주인공 하나이며 뇌출혈로 인해 분열된 것으로 보이지만 사실 한 사람의 기억에 의존한다. 걷기의 리듬, 도심을 흘러가는 강 그리고 한 남자의 기억은 멈추고 솟구치며 예상의 범주를 넘어선다. 그렇기 때문에 몰입감을 주기보다는 의식의 흐름에 따라간다. 평상시에 느낄 수 있는 소설적 재미보다는 다서 난해한 그러나 낯선 매력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남자다 금고기술자라는 설정 역시 특별하다. 유언장과 이혼신고서가 들어있는 금고는 또다른 긴장감을 주는 요소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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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졸중으로 쓰러진 뒤부터 나는 둘로 나뉘었다. 오른쪽 절반은 더 이상 내가 아니고 왼쪽 절반에만 겨우 내가 남았다. 둘로 나뉘기 전까지 나는 오른손잡이였다. 그래서 나의 인생은 늘 오른쪽에서 시작됐다가 왼쪽으로 빠져나갔다. 오른손은 모험을, 왼손은 균형을 담당했다. 그러니 왼쪽 절반에 유폐된 나는 권태와 허무 사이를 오가다가 여생을 소진하게 될 것이다." (9쪽)


설정의 치밀함이 전해지지만 이 낯설게 세공된 세계는 때때로 익숙하게 느껴져 당혹감을 주기도 한다. 문장의 깊이는 상당하지만 가독성이 떨어지는 느낌도 있다. 하나의 사건을 향해 질주하기보기보다는 죽은 너와 살아있는 나의 긴장을 유지하기 때문에 소설적으로 인상작인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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