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담장 넘어 도망친 도시 생활자 - 도심 속 다른 집, 다른 삶 짓기
한은화 지음 / 동아시아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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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다운 집과 너 다운 집. 어떻게 해야 우리 다운 집이 되는 걸까.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에서는 불가능하게 들린다. 집을 짓고 살 생각조차 하지 않고 주어진 평형과 입지를 고려해 대부분 아파트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나에게 맞는 집을 찾으며 규격화된 조건들에 나의 생활을 맞춘다. 몇평인지, 역세권인지, 주변 시설은 어떤지 따져보고 내가 선택하겠지만 사실 선택하는 것은 무수히 늘어선 아파트들이 아닐까. 미국의 건축가 루이스 칸이 "건물들 만드는 것은 인생을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건물과 인생은 하나의 은유로 전해질만큼 가까운데 우리에게는 낯선 말임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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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적일 것만 같던 우리의 집 짓기 여정은 어느 순간부터 아파트 시대의 이상한 주거 르포르타주가 되어버렸다. 이 이야기가 당신의 집과 당신의 인생에 조그마한 변화를 가져다줄 수 있다면, 더 나아가 아파트 단지 밖 삶터에도 볕 드는 계기가 된다면 행복하겠다.
이제 아파트 담장 밖으로, 집을 지으러 출발해 보자."(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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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제목대로 아파트에서 도망친 도시생활자로 서울 중심부에 한옥을 짓고 살아가는 건축기자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한옥을 짓고 살아갈 것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그들은 단순히 낭만이나 고요를 생각한 것은 아니다. 건축전문기자인 만큼 한국의 건축과 부동산 문제에 대한 날렵한 문제의식이 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를 문제제기 차원에서만 다루는 것이 아니라 직접 한옥을 짓고 생활하는 과정을 실천한다. 이 모든 과정에 직접 참여하기 때문에 이 책은 한옥건축의 기록이기도 하고, 또 한옥과 건축, 도시공학 전반에 대한 저자의 식견이 담긴 에세이와도 같다. 그리고 또 하나 놀라운 것은 어떤 이야기든지 굉장히 재미있게 전하고 있다는 것이다. 고난개척의 서사와도 같은 집짓기 스토리에는 유머가 넘치고 부부의 시선으로 새롭게 탄생된 공간에는 따스함이 가득하다. 사실 집 사진만 보면 어딘가 너무 부럽기만 할 듯한데, 솔직한 과정을 담은 이야기를 따라가다보면 이런 시도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결국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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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짓기는 결국 마음 짓기인 것 같아.”
집 짓는 과정에서 무수히 허물어지는 마음을 다시 지어 올리고, 그렇게 애써도 안 되는 일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 그러면서도 꿈을 꾸고 희망하며 살아가는 삶. 우리는 어쩌다 오래된 동네에서 한옥을 짓게 됐고 마음을 짓게 됐으며, 그렇게 어른이 되어가고 있었다.(9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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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서 "사람은 세상과 싸워야 자신의 공간을 얻을 수 있다"는 문장이 나온다. 많은 사람들이 싸움을 포기하고 적당한 공간을 찾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저자는 유쾌하고 진정성 넘치는 "싸움"을 한다. 그리고 결국 승리한다. 너무나 값진 결과가 아닌가. 서촌을 산책하며 한옥을 보고 '이런집에서 한번 살아볼까?'라는 생각은 이제 쉽게 하지 않는다. 집의 사연이 궁금하면서 무한히 응원하고 싶고 또 존경하는 마음이 들뿐이다. 이 생생함을 재치와 유머로 전한 한권이 책이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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